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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1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가라시마 노보루 / 김진희 : 별점 3점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 6점
가라시마 노보루 지음, 김진희 옮김, 오무라 쓰구사토 사진, 최광수 감수/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맛의 달인 걸작 에피소드 중 하나인 '카레 전쟁' (24권) 편에서 카레 전문가 교수님으로 출연했었던, 인도 역사 교수가 쓴 식문화사 서적. 한방약을 카레에 섞어 먹곤 한다던 그 교수님입니다. 전공 분야라는 인도 역사에 대한 지식, 그리고 다년간의 인도 유학 경험과 학자다운 방대한 참고 문헌을 바탕으로 인도 요리가 무엇이며, 왜 지역별, 문화별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책은 왜 '카레'라는 요리가 생겨났으며, 그 어원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해요. 인도 식민지 지배로 인해 인도 식문화가 영국에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는건 다른 책들에서도 소개되었던 내용이지요. 그러나 카레 가루가 생겨난건 영국에 생 스파이스가 없어서였으며, 밀가루를 버터로 볶아 만든 루는 볶은 양파, 토마토 페이스트, 코코넛 크림 등으로 조리 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걸쭉함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는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교수님이 등장하셨던 <<맛의 달인>> 에서도 소개되었던 '커리'의 어원에 대한 추론은 다시 읽어도 흥미로왔어요. 영어 '커리'는 16~17세기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이 기록한 '카릴'에서 유래되었을 거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칸나다어와 타밀어 커리는 야채와 고기라는 뜻인데, 왜 당시 사람들은 수프를 부어먹는 식사를 인도인들이 '카릴 이라고 부른다고 썼을까요? 저자는 당시 포르투갈, 네덜란드 인은 수프를 부은 밥 요리 이름을 물었는데, 인도인들은 수프에 들어있는 건더기, 즉 야채와 생선과 고기에 대해 묻는다고 생각해 대답했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럴듯하지요? '캥거루' 어원 가설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저는 저자의 추론을 지지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도 요리와 그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대한 고찰이 이어집니다. 특징이라면 앞서 '커리'의 어원 추론처럼 어원, 요리 유래에 상당히 디테일하다는 점입니다. 북인도의 긴 후추를 피랄리라고 하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 원정 당시 그리스로 가져간게 영어의 페퍼의 어원이 되었다는 등의 재미난 정보가 가득합니다. 저자가 역사 학자인 덕분이겠지요. 각 지방 및 요리하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요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도 확실히 연구자가 썼구나 싶은 부분이었고요.
하여튼 저자에 따르면, 인도 식문화는 남인도에서 성립된 스파이스를 혼합하여 맛을 내는 '카레 문화'와 우유를 기름, 버터, 요거트 등의 다양한 형태로 요리에 활용하는 북인도의 '우유 문화'가 오랜 역사 과정에서 적절하게 융합되어 구축된 것입니다. 그 근거로 든 것은 7-8세기 남인도 힌두교 사원에 남아있는 신에게 올리는 식사 관련 글귀에 등장하는 재료 - 밀라구 (후추), 만질 (강황), 지라가 (커민), 시르 카두구 (겨자), 코타말리 (코리엔더) - 목록입니다. 이건 현대 카레에 가장 중요한 스파이스로 꼽는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 후추, 겨자'와 동일하거든요. 즉, 당시 남인도에는 커리의 원형이 이미 존재했다는 뜻입니다. 반면 북인도에서는 불교에서 석가에게 우유죽을 공양했던 고사에서 보듯, 우유 식문화가 탄생했고요.
이런 지역에 따른 대립은 카레, 우유 뿐 아니라 밀과 쌀 중 무엇이 주식인지, 재료가 고기인지 생선인지, 논베지테리언인지 베지테리언인지 등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인도는 밀 생산 지역으로 쌀이 아니라 로티라고 부르는 밀가루 빵이 주식이다라는게 대표적인 예이고요.
이런 역사와 지역, 문화를 통한 요리 구분이 굉장히 상세한게 큰 장점으로, 심지어 '자이나교 요리'까지도 별도로 다루고 있을 정도입니다. 자이나교는 철저한 불살생으로 베지테리언 요리로 유명한데, 우리도 인도 요리점 요리로 친숙한 '파니르'가 대표 요리더군요. 파니르는 끓인 우유에 식초를 넣어 굳힌 코티지 치즈이고, 이걸 카레 소스로 끓여낸 요리이지요. 여기에 시금치를 넣은게 '팔락 파니르'고요.
무굴 제국의 궁정 요리도 별도 항목을 할애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정복 세력이 인도로 침입한 것이라, 그 역사적 배경이 다른 인도 요리와는 다른 탓이겠지요. 우선 무굴 요리의 시작은 유목민의 캐러밴 요리로 케밥이 그 원점이라네요. 무굴 제국의 이름도 몽골에서 유래했고, 그들은 원래 아프가니스탄 유목민 출신이니 중앙 아시아 유목민 문화가 그들의 바탕인 건 당연합니다. 여기에 2대 황제가 이란에 망명했던걸 계기로 페르시아의 맛과 정취가 더해졌고요.

특정 지역에 독특한 식문화가 생겨나게 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이유 설명도 그 깊이가 남다릅니다. 남인도 케랄라 식문화 소개가 좋은 에에요. 이 곳은 원래부터 후추와 카다몬이 자생하였던 향신료의 천국이었는데, 이후 남서 해상 무역 중계 기지라 남동아시아에서 클로브, 넛맥이, 스리랑카에서 시나몬이 운반되어 향신료의 폭이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로마 및 서방 지역과도 관계가 깊어서 이미 1세기에 그리스도 포교가 이루어졌고, 유대교 성당인 시나고그도 있었으며, 무슬림도 거주하면서 커피 재배 등에 종사했을 정도로 국제 도시이기도 했다고요. 중국배 역시 12세기 경부터 모습을 드러내었으며, 15세기 초에는 정화의 선단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이런 지역이라면 향신료를 풍부하게 사용하면서, 외부 식문화도 많이 유입된 요리가 생겨날 수 밖에 없겠지요.
또 스리랑카 신할족은 북인도 왕자의 후예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언어와 전통은 북인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식문화는 가까운 남인도 카레와 밀착되어 있으며 특징은 매운 맛, 그리고 몰디브 피쉬의 사용, 코코넛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스리랑카의 식문화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맛의 달인의 '카레 전쟁'의 스리랑카 요리 소개 부분과 똑같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몰디브 피쉬를 절구로 빻는 장면은 사진까지 똑같더라고요!

소개되는 요리들에 대한 소개도 재미있었어요. 기억에 남는 요리는 빈달루입니다. 어원은 포르투갈 요리 카르니 드 비나달로스의 비냐달로스라네요. 이게 인도식 발음으로 변형되었던 거지요. 16세기 초에 포르투갈이 고아를 점령했을 때 전래되었던 요리라고 합니다. 처트니도 영국식 잼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힌디어로 '다'라는 뜻의 '차트나'가 어원인 인도 요리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그외 정 요리에 대한 설명도 상세합니다. 몇몇 요리는 레시피도 함께 소개해주고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칠리, 터메릭, 커민, 코리앤더와 후추가 듬뿍 들어간다는 라삼 파우더로 만든 라삼은 우리 입맛에도 잘 맞을 듯 싶더군요. 타밀어로 '후추 주스'라는 뜻이라니, 매콤한게 딱일거 같아요.

이런 내용들 소개에 이어, 책은 현대 인도 요리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마무리됩니다. 인도 요리란 어디까지나 스파이스와 우유를 주요소로 하는 요리의 총칭이며, 원래 다양한 지방에서 자기들끼리만 먹었었지만, 지방 요리가 인도 전체로 퍼져 현대 인도 요리가 된 것이라고요. 이를 '다양성 속의 통일성' 이라고 말합니다.

카레, 커리 뿐 아니라 '인도 요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해 준 좋은 책입니다.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니라, 근거가 확실한 전문가적인 식견으로 썼다는 점이 돋보였고요. 목차가 조금 두서가 없다는건 아쉽지만,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하지요. 좋은 책이었습니다. 커리와 인도 요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글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고요.

그나저나 일본에 좋은 카레 책이 많이 나오는걸 보면, 확실히 카레에 진심인 나라가 맞긴 맞나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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