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2/11/26

라디오 체조의 탄생 - 구로다 이사무 / 서재길 : 별점 2.5점

 

라디오 체조의 탄생 - 6점
구로다 이사무 지음, 서재길 옮김/강

다양한 일본 컨텐츠에서 보았던 "라디오 체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설명하는 미시사 서적. 단지 라디오 체조만 설명하는 책은 아닙니다. 라디오 체조, 그리고 더 넓게는 "라디오 방송"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당시 일본의 모습과 사회상을 묘사하는 책이죠.

가장 궁금했던 라디오 체조의 역사 자체는 꽤 단순한 편입니다. 1928년, 미국 메트로폴리탄 사의 라디오 체조를 베낀 것이긴 하나 당대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근대화"를 위한 "근대적 신체로의 교정" 이라는 생각에 합치했기 때문에 방송이 시작될 수 있었으며 이후 비교적 낮은 수신기 보급률과 파시즘적 정책 등의 이유로 아침 일찍 모여서 라디오 체조를 한다는 집단 조기 체조로 진화했다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다지 어렵게 쓰여지지 않아서 쉽게 읽을 수 있으며 라디오 체조에서 구령을 맡았던 사람은 육군 도야마 학교 장교인 에기 리이치로 전전 라디오 체조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 되었다는 것, 일본의 여러 식민지에서도 집단 조기 라디오 체조를 시행했다는 것 등의 새롭게 알게된 것들도 꽤 많은 편입니다. 라디오 방송 관련 이야기들도 자료로서 괜찮았고요.

그러나 읽기 전의 기대에 값한 책은 아닙니다. 라디오 체조에 대한 다양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풀어낸 책을 기대했는데 역사적인 의미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재미보다는 지식에 치중한, 한마디로 말하면 논문에 가까운 책이랄까요. 물론 읽는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울러 라디오가 인기를 끌게 된 "소케이센 (도쿄 6대학) 야구 중계"라던가 베를린 올림픽 중계 시 전설이 된 멘트 "마에바타 힘내라!" 같은 자세한 설명이 등장하는 라디오 방송 관련 이야기들도 나쁘지는 않으나 다른 책에서 이미 접했던 것이기에 신선함이 떨어졌다는 것도 단점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자료적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나 재미로 보기에는 어려운 책입니다. 저같은 근대에 관심있는 일반인에게는 아무래도 에피소드 중심의 미시사 서적이 더 맞는 것 같네요. 정말로 라디오 체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만 권해드립니다.

덧 : 당시 군국주의 파시즘 하의 일본에서 전략적으로 보급한 측면도 분명 있지만 일찍 일어나서 체조를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 명맥이 유지되는 것이겠죠. 저도 건강을 위해서 아침에 일찍 체조를 할까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2012/11/24

칠석의 나라 1~4 - 이와아키 히토시 : 별점 3.5점

지금은 거장 대우를 받는 이와아키 히토시의 90년대 작품. <타지카라오>를 읽은 뒤 생각이 나서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설정 자체는 뻔해요. 80~90년대 유행했었던 "외계에서 찾아온 지능체와의 만남, 그리고 그 후예들의 후일담" 이라는 설정이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마루카미 교수의 실종과 주인공 미나미마루의 초능력을 둘러싼 미스테리 스릴러 형태로 전개됨으로써 흔해빠진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재미를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외계인이 등장하는 설정도 마루카미의 문장 (까치 - 원 - 손)에서 시작해서 "창을 본다"라고 통칭되는 외계를 보는 능력과 "창에 손이 닿는다"로 통칭되는 물질을 그곳으로 보내는 능력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 이 능력이 발현된 이후 외계인이 더 찾아오지 않게 된 이유 등이 작가 특유의 전개로 설득력 높게 표현되기 때문에 유사품과는 그 격을 달리합니다.

주인공 미나미마루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어요. 이런 류의 작품들 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낙관적이고 천하태평인 성격에다가 강력한 초능력을 가졌지만 당면한 고민은 취직일 뿐이라는 점, 능력에 대해 어떻게 사용할지를 긍정적으로 고민하면서 스스로를 감춘다는 점 등이 현실적이면서도 매력적이거든요.

이러한 탄탄한 설정과 이야기가 요새 기준으로는 길지 않은 4권이라는 분량으로 완결되도록 빠른 호흡을 지녔다는 것 역시 큰 장점이고요. (특히나 요새는 보기 힘든 장점이죠) 물론 호흡이 너무 빠른 탓에 마루카미 교수라던가 요리유키 등 주요 등장인물들 설명이 많이 부족하고 정부가 나섰음에도 결국 별다른 해결없이 대충 정리되는 결말 등 소소한 단점이 조금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저는 불필요하게 길게 늘어지는 것 보다 이렇게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 것이 더 마음에 들어요.

한마디로 다시 읽어도 여전한 재미와 완성도를 갖춘 수작입니다. 별점은 3.5점. 천편일률적인 외계인 이야기가 식상하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2/11/19

스쳐 지나간 거리 - 시미즈 다쓰오 / 정태원 : 별점 2.5점

스쳐 지나간 거리 - 6점
시미즈 다쓰오 지음, 정태원 옮김/중앙books(중앙북스)

하타노 가즈로는 12년 전 근무하던 사립 고교에서 제자와의 애정행각이 들통나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던 중 학원 제자의 한명인 유카리가 연락 두절이 된 것을 알고 그녀를 찾기 위해 상경한다. 몇가지 조사를 통해 그녀를 둘러싼 모종의 범죄를 눈치채고 사건에 접근해 가면서 전 직장인 사립 학교 내 비리와 이사장 사망 사건 등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시미즈 다쓰오의 작품으로 92년도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고노미스)" 1위 작품입니다. 고 정태원 선생님이 번역한 작품인데 뒤늦게 읽게 되었네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흡입력! 일단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에요. 1. 연락이 두절된 제자를 찾는다 -> 2. 제자가 급박하게 떠난 듯 하다 -> 3. 정체 불명의 남자들에게 제자 관련하여 위협을 받는다 -> 4. 전 직장이었던 학교를 둘러싼 음모에 대해 알게 된다 -> 5. 제자와 불륜관계였던 전 학교 직원 쓰노다와 그가 관련된 협박 사건을 알게된다... 라는 식의 에스컬레이트 전개인데 설득력 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서 정말이지 숨돌릴 틈 없이 끝까지 달려주는 맛이 아주 일품이거든요. 흡사 알레스테어 맥클린의 전성기 모험물이 연상될 정도로요. 읽는 재미만으로 따지면 특 A급 오락물이라 할 수 있어요.

물론 일개 학원 강사가 경찰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제자의 실종에 집착하며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이유가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점, 12년 전 하타노가 연류되었던 제자와의 애정행각을 둘러싼 그 때의 주요 인물들이 다시 현재의 사건에서 모두 조우하는 기막힌 우연 등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작위적인 요소가 많다는 것은 분명 감점요인이기는 합니다. 탐정역인 하타노의 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부분은 빠른 전개에는 도움을 주지만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는 어려웠고요.
그리고 홍보문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정통 하드보일드를 기대한 독자에게는 실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도 문제이긴 해요.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순정남이자 전형적인 열혈교사 캐릭터인 하타노부터가 별로 하드보일드스럽지 않을 뿐더러 정교한 구성이나 어두운 범죄, 심리묘사가 두드러지는 하드보일드, 혹은 느와르스러운 작품은 절대 아닙니다. 외려 큰 돈을 둘러싼 범죄에서 빚어진 액션을 강조하는 활극이죠. 구태여 예를 들자면 죤 맥클레인의 <다이하드>에 가까운 작품이에요. 그러고보니 헤어진 전처와 마지막에 잘 된다는 해피엔딩 결말마저도 똑같네요.

약간의 단점은 있으나 한마디로 잘 짜여진 1급 오락물, 전형적인 헐리우드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추리물이라고 보기 힘든 구석이 많기에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1위를 차지할만한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즐길거리가 많은 것은 분명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킬링타임용 읽을거리를 찾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아울러 다시한번 고 정태원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2012/11/17

죽이러 갑니다 - 가쿠타 미쓰요 / 송현수 : 별점 3점

죽이러 갑니다 - 6점
가쿠타 미쓰요 지음, 송현수 옮김/Media2.0(미디어 2.0)


나오키상 수상작가 가쿠타 미쓰요가 '살의'를 테마로 쓴 단편집.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잘 모르는 작가로 독특한 범죄 스릴러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스쳐지나가는 사람의 "죽이러 갑니다"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과거 초등학교 때 자신을 가혹한 악의로 대했던 선생이 떠올라 찾아간다는 표제작 <죽이러 갑니다> 같이 일상 속 소소한 살의와 그것에 대처하는 일반인의 모습을 그린 소품들이더군요. 여성 작가가 일상 속 살의를 주제로 썼다는 점, 주제를 디테일한 심리묘사를 통해 설득력있게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고이케 마리코가 연상되었습니다.

그러나 고이케 마리코 작품과 가장 큰 차이점은 살의는 그냥 살의로 끝날 뿐이라는 점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본격적인 노력이나 적극적인 행동은 거의 등장하지 않거든요. 그나마 살의를 품은 이유가 확실하고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체력을 키우는 등 가장 적극적이었던 <잘 자, 나쁜 꿈 꾸지말고>의 사오리조차도 살의의 대상인 전 남친 고타와 마주치자 아무런 액션 없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과를 하고 도망칠 뿐이에요. 여기서 범죄를 저지르면 고이케 마리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살의와 절망이 끝없이 업그레이드될 뿐이라면 기리노 나쓰오가 되겠지만... 이런 비겁합이 보통 현실인거죠.
또 약간 독특했던 것은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 여성을 주요 매개체의 하나로 등장시키고 각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비록 이름은 다르지만 이어지는 느낌을 주는 식이라서 하나로 이어진 연작이 아닌가 생각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독특했어요.

그런데 아주 일상스러운 느낌을 주기에는 극단적인 상황과 설정이 많다는 점은 좀 아쉽더군요. 일본에서는 흔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단편이 히키코모리, 왕따, 학대, 이유없는 증오 등이 등장하고 그에 따르는 트라우마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는데 이런 일이 실제로 자주 있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래도 일상스러우면서도 오싹한, 서늘한 느낌을 주면서도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들이라 생각되네요. 대부분 "살의"를 어떻게든 극복하는 결말로 이어지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멀어져가는 부부관계를 몇몇 대사로 표현하는 <스위트 칠리소스>와 어렸을 적 동경의 대상이던 친구가 사소한 왕따 등의 증오를 스스로의 내부에서 키워나가다가 붕괴하는 모습에 대해 지켜본 것을 회상하는 <우리의 도망> 이 개인적으로는 베스트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소설도 아니고 장르문학으로 보기도 어렵지만 소소한 일상 속 디테일한 심리묘사를 즐기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12/11/15

혈액형 살인사건 - 고가 사부로 / 박현석 : 별점 2점

혈액형 살인사건 - 4점
고가 사부로 지음, 박현석 옮김/현인

일본 추리소설계의 3대 거성 중 한명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타이틀의 작가가 쓴 단편집. 총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나름 추리소설은 읽을만큼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일본 추리소설 3대 거성 중 두명을 들어본 기억조차 없다니 많이 반성해야 겠어요. 어쨌거나 초기 형태의 일본 추리 단편물을 접할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이기에 관심이 가던 책이었습니다. 국내에는 란포 이외에는 고사카이 후보쿠의 <연애곡선> 정도만 소개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읽어본 결과는 실망이 더 컸습니다. 쓰여진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최소한의 소설적인 완성도가 부족한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특기가 과학이었기에 과학을 응용한 트릭을 만드는 데에는 제법 많이 공을 들였지만 그 외의 부분은 너무 대충 넘어간 느낌이에요. 한마디로 수수께끼에는 적합하나 소설로는 부적합한 그런 작가였달까요.... 감히 일본 추리소설계의 3대 거성 중 한명이 맞는지 의심까지 갖게 만들 정도로요. 그 외에 지나치게 직역스러운 번역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별점은 2점. 자료적으로는 가치가 있고 쉽게 접하기 힘든 당대 작품이기는 하나 이 정도 수준이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다 생각됩니다.

<혈액형 살인사건>
게누마 박사의 죽음과 가사가미 박사 부부의 자살 뒤 1년 후, "나" 우자와가 사건에 대해 공개하는 형태로 쓰여진 중단편 작품.
혈액형이 중요한 동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게누마 박사의 기묘한 죽음에 대한 트릭 (밀실에서 1시간 30분 정도의 가스 흡입으로 사람이 사망할 수 있도록 한 장치가 무엇인지?)이 엄청나게 과학적이라는 점에서 독특함을 풍기는 작품입니다. 그야말로 과학 추리 소설이랄까요? 쓰여진 시대를 감안하면 초월적인 작품라 생각될 정도에요. 일산화탄소를 액화한다는 발상은 지금 읽어도 신선한, 좋은 트릭이라 생각되고요.

그러나 트릭에 비하면 작품 자체는 평균 이하입니다. 우왕좌왕하는 전개에다가 범인이 너무 뻔하게 드러나버리는 등 읽는 재미를 줘야 하는 소설적 완성도가 심하게 별로에요. 혈액형이라는 동기도 시대를 감안하면 특이하나 지금 읽기에는 낡아빠졌을 뿐이죠. 작가가 너무 과학적인 설정과 트릭에만 신경을 쓴 티가 역력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사랑을 위하여>
순수한 선의에서 아기를 집에 데리고 오게 된 주인공과 그의 아내, 아기 어머니를 찾아달라고 의뢰받은 사립탐정, 그리고 다시 아내와 주인공의 수기로 이어지는 작품.
아기가 왜 주인공과 닮았는지, 아기 어머니가 왜 아기를 열심히 찾지 않았는지 등 소소한 수수께끼가 잘 배치된 작품으로 괜찮은 일상계 소품이라 생각됩니다. 각각 1인칭 수기로 이어지는 전개도 낡은 방식이기는 하나 작품과는 잘 어울렸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별점은 3점.

<푸른 옷의 사내>
자택에서 협심증으로 숨진채 발견된 오바마(!) 신조의 죽음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이야기.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어요. 오바마 신조가 죽었다면 가장 득을 보는 것은 상속자 다쿠이치일테고, 그가 오바마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닮았다는 설정까지 있으니 이야기가 길어질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요.
다쿠이치가 상속세 때문에 시체를 방조했다는 진상 하나만큼은 조금 독특하나 그 외에는 별로 건질게 없는 평범 이하의 작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덫에 걸린 사람>
빚때문에 발버둥치는 도모키 - 노부코 부부가 각각 고리대금업자 다마시마를 죽일 결의를 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무려 500엔이라는 거금을 갑자기 입수하게 된다던가, 지나가던 다케야마가 500엔을 분실한 뒤 우발적으로 다마시마를 죽이게 된다던가 하는 식의 우연치고도 너무 지독한 우연이 연달아 벌어지기 때문에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김화백 작품을 보는 기분마저 들 정도에요. 막나가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되잖아요?
죄책감을 묘사하는 부분이라던가 마지막의 "운명이라는 녀석은 항상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운명이다" 라는 도모키의 대사는 멋지지만 그냥 그 뿐이었습니다. 별점 1점 이상은 주기 어려운 몹쓸 작품이에요.

<위조지폐 사건>
중학생 화자인 "나"와 동급생 모리 하루오가 친구 도비야마의 고향에 방문해서 그 마을에서 벌어진 위조지폐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으로 셜록 홈즈 느낌이 가득 나는, 전형적인 셜록 홈즈 스타일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작품을 굉장히 좋아하기도 하지만 탐정역의 모리 하루오가 강아지 발바닥의 잉크를 단서로 하여 절에 방문한 뒤 논리적인 추리를 통해 진상을 알아낸다는 과정 자체는 셜록 홈즈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면서도 설득력이 넘쳤습니다. 만약 시리즈가 있다면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작품이었어요.
그러나 아동용으로 창작된 듯 한 조금 저렴한 문체와 묘사, 그리고 탐정역인 모리 하루오의 인간적 매력이나 개성이 전혀 표현되지 않는 점 등이 점수를 깎아먹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진주탑의 비밀>
경찰과 협력하여 일하는 하시모토 빈이 깜쪽같이 가차로 바꿔치기 당한 진주탑의 행방을 밝혀낸다는 작품으로 역시나 셜록 홈즈 스타일입니다. 의뢰인의 의뢰와 주요 단서를 놓고 벌이는 탐문 수사,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인물을 모두 모아놓고 벌이는 깜짝 추리쇼까지 완벽하게 고전적인 작품이에요.
허나 사세의 간단한 공작으로 이루어지는 트릭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좀 아쉽네요. 어차피 전문가들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다면 사세 입장에서 진주탑을 만들 때 몇몇 진주만 바꿔치기 했다면 훨씬 용이하게 돈을 손에 넣었을텐데 이런 공작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것도 무려 7만엔이나 되는 거금을 쓴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성이 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스타일은 잘 따라 했지만 내용면에서는 부족함이 많았다 생각되네요.

<거미>
쓰지카와 박사와 시오미 박사라는 두 박사간의 알력다툼과 그로 인해 비롯된 살의에 대한 이야기로 동기는 <혈액형 살인사건>과 좀 비슷하고 트릭은 <웃지 않는 수학자>와 동일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웃지 않는 수학자>에서는 나름 폐쇄공간에다가 특정 시기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제한조건이 있기는 하나 이 작품에서의 연구실 회전은 상시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정말로 트릭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기는 합니다. 에도가와 란포 스타일인 거미에 대한 광기 묘사도 뭔가 2% 부족할 뿐더러 좀 뻔했고요. 그냥저냥한 당대 분위기스러운 평작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꾀꼬리의 탄식>
명문 화족 후타가와 가의 후계자 시케유키의 죽음, 그리고 상속자 시케타케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써내려간 중단편. 제법 긴 분량인데 시케유키가 사망할 때 까지의 전반부, 노무라의 아버지와 시케유키가 남긴 문서로 이루어진 중반부, 시케타케의 정체와 시케유키 죽음에 얽힌 트릭을 파헤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케유키가 일본 알프스를 파헤치는 작업을 하는 이유가 서서히 밝혀지는 과정까지의 긴장감이 꽤 그럴듯하고 시케유키를 독살한 트릭도 괜찮은 편이나 진상이 정말로 무엇이었는지 알려주지 않고 유력 용의자를 급작스럽게 단죄하며 끝내버리는 마지막 결말때문에 작품을 망쳐버렸어요. 어차피 증거도 없고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겠지만 이렇게 끝내는건 너무 안이한 처사였다 생각됩니다. 최소한 진상은 밝혀 줬어야죠.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워요. 별점은 2점입니다.

<호박 파이프>
한 집에서 피살된 일가족, 남겨진 방화의 흔적,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백주강도 사건의 관계자 이와미가 얽혀 의외의 진상이 드러난다는 본격 추리물. 간단한 암호 트릭과 더불어 방화에 이용된 염산가리와 설탕의 혼합물에 유산을 떨어트리는 장치 등 복잡한 트릭이 사용된 작품입니다. 전개도 흥미로운 편입니다. 이와미라는 평범한 회사원이 범죄에 어떻게 관계되었는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완성도는 그닥 높아 보이지는 않네요. 백주강도가 탐정역을 자연스럽게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설득력이 전무할 뿐 아니라 트릭의 과학적 설명은 합당하나 범인이 그렇게까지 정교한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거든요. 그야말로 트릭을 위한 트릭일 뿐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니켈 문진>
묵직한 니켈 문진에 맞아 죽은 시체로 발견된 시미즈 박사의 사인을 둘러싸고 그의 서생인 시모무라와 우치노가 두뇌싸움을 펼쳐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녀인 야에코를 화자로 하여 전개하는 구조는 독특하긴 하나 이야기 전체의 설득력이 낮아서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왜 시미즈 박사가 독가스를 연구했는지, 또 왜 독일어로 그 연구를 기록했는지도 설명되지 않고 비밀을 훔치려는 사람들의 공작이 너무나 허술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에요.
순수한 니켈이 자석에 반응한다는 과학 상식을 알게된 것 이외에는 건질 부분이 전무한, 그야말로 너무한 수준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12/11/12

절대 0도의 수수께끼 - E.S 가드너 : 별점 2점

변호사 페리 메이슨 시리즈로 유명한 E.S 가드너의 작품인 표제작과 R.M 파뤼의 <액체 침략자>라는 작품이 실려있습니다. 구 아이디어회관 문고본 시리즈의 하나로 직지 프로젝트 덕분에 이전에 전자책화 된 것이죠. 이번에 구글북스에서 무료로 제공하길래 다운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절대 0도의 수수께끼>는 억만장자의 유괴사건에서 시작되어 관계자들이 연이어 사라지는 사건을 추적하는 핑거튼 탐정소의 탐정 로드니의 활약을 그린 모험물입니다. 절대 0도가 되면 분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물질이 사라진다는 이론이 핵심 설정이기에 SF로 분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무리가 아닌가 싶네요. 로드니가 절대 0도에 대해 눈치채게 되는 몇가지 단서 및 복선이 등장하며 나름 단서를 짚어나가며 수사하는 과정이 디테일하기 때문에 구태여 분류하자면 추리물이라 생각됩니다. 워낙에 말도 안돼는 핵심 설정과 트릭 때문에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도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요.거기에 더해 꽤 박진감 넘쳤을 전개과정의 묘사가 아동용으로 번역되면서 많이 훼손된 듯하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페리 메이슨이라도 등장했더라면 팬심으로 점수가 좀 더 올라갔을지 모르나 점수를 줄만한 부분이 도통 없네요.

<액체 침략자>는 작은 호수의 여과성 바이러스가 지능을 갖추게 된 뒤 인간으로 부터 얻은 지식으로 업그레드하여 지구를 정복(?)하려 한다는, 1930~4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외계에서 온 방문객 소재의 작품입니다. 흔해빠진 소재와 설정이지만 물로 희석되면 죽는다는 바이러스의 약점을 잘 활용하여 바다로의 길을 차단하는 작전이 등장하는 부분은 꽤 흥미로왔으며 주인공 화학자 데이가 인류를 정복(?) 하려는 여과성 바이러스와 일종의 우정을 나누게 된다는 발상과 바이러스보다는 주인공의 동료인 슈미트 쪽이 외려 더 악당이라는 점이 상딩히 돋보였습니다. 80여년 전 작품이나 이러한 점에서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지더군요.
결론적으로 지나치게 아동틱한 번역은 아쉬우나 시대를 앞서간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디어들이 돋보이는 괜찮은 소품이었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구글북스 자체의 성능이나 가독성은 나쁘지 않았어요. 그러나 기존 아이디어 회관의 직지 프로젝트 버젼 전자책에 포함되어 있는 삽화가 빠진 것은 무슨 이유인지 좀 궁금합니다.

2012/11/10

수학암살 - 클라우디 알시나 / 김영주 : 별점 2점

 

수학암살 - 4점
클라우디 알시나 지음, 김영주 옮김, 주소연 감수/사계절출판사

일상 생활 속 수학의 힘을 보여준다는 취지로 다양한 생활 속 오류를 소개하는 책. 총 6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적인 내용은 많지 않고 사례들도 오타라던가 별거 아닌 과장법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중요한 오류" 라 느껴지지도 않는 문제가 큽니다. 짤막짤막하게 이어지는 내용들 덕분에 읽기 쉽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냥 그 뿐이랄까요.

그래도 몇가지 재미있었던 사례를 꼽아보자면
  • 아이 다섯명이 감자 네 개를 나눠 가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자로 퓨레를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
  • 보통 면적이 두배가 되면 길이는 2파이, 다시 말해 141% 의 비율로 늘어나기 때문에 A4 크기는 A2로 확대해야 글자가 두배가 된다는 것.
  • 샴페인 잔은 원뿔을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높이의 절반은 전체 부피의 1/8 에 불과함.
  • 파스칼이 계산한 "주사위를 네번 던졌을 때 6이 나올 확률"은 6이 나오지 않을 확률인 5/6의 4승을 1에서 뺀 값인 0.52라는 것.
등이 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기대와는 너무 달랐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연령대가 낮은 청소년 층에 적합한 교양서라 생각되네요.

2012/11/09

무협의 시대 - 송희복 : 별점 3점

 

무협의 시대 - 6점
송희복 지음/경성대학교출판부

1960년대, 근대적 무협 영화를 창조한 호금전에서 이소룡까지 약 20여년간의 무협영화사를 감독별, 배우별로 소개하는 영화사서적.

사마천의 사기 속 <자객열전>과 무협 영화와의 상관관계, 이른바 "협"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도입부에서 시작하여 실질적인 무협 영화의 시대를 연 호금전 감독 작품 중심의 1부, 무협영화 전성기 장철 감독을 위시하여 왕우, 적룡, 강대위와 이소룡 등 70년대 무협의 다양한 배우와 작품에 대해 소개하는 2부, 그리고 70년대 이후를 짤막하게 정리한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호금전이나 장철같은 거장에 대한 자료는 인터넷 등을 통해 찾아볼 수 있지만 왕우를 위시하여 강대위, 적룡, 나열, 이소룡 등의 남자배우에다가 정패패, 초교, 이청, 하리리, 상관영봉 등의 여자배우까지 소개하는 등 자료로서의 가치가 무척 높더군요. 도판도 컬러는 아니나 엄선했다는 느낌은 전해 줄 정도로 꼼꼼하기도 하고요.
또한 아주 상세하지는 않으나 주요 작품별 소개에서 개봉당시 신문 광고라던가 소장한 비디오 테이프 표지같은 실질적이고 경험적인 자료를 덧붙인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들은 아무리 걸작이더라도 지금 감상한다면 낡아빠졌을 뿐이라는 사실이 좀 슬프긴 합니다. 제가 보았던 <외팔이> 가 단적인 예가 될 수 있겠죠. 그래도 <복수>는 상당히 재미있게 본 만큼 장적강 트리오의 최고작 (장철 - 적룡 - 강대위) <자마>, 쇼브라더스의 야심작이자 무협영화의 벤허라고 칭하는 <유성호접검>, 외국에서는 최고의 무협영화로 불리운다는 <죽음의 다섯손가락>은 한번 구해보고 싶네요. 간지가이 적룡따꺼의 전성기 주연작이라는 <초류향>도 궁금하고 말이죠.

한마디로 말해서 무협영화라는 쟝르물에 대한 헌사로서 관심있으시다면 재미도 같이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매니아가 애정의 대상을 할 수 있는 극한의 디테일로 그려내었기에 관심이 있다면 재미가 없을 수가 없죠. 척박한 국내 환경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도 확실한 책이고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무협영화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께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2012/11/03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김태수 : 별점 4점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8점
김태수 지음/황소자리

신문광고를 중심으로 근대에 대해 설명하는 미시사 서적.

근대 조선에 대한 미시사 서적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큰 분야라 이 블로그에서 리뷰한 것만 열권이 넘을 정도로 많이 읽고 접해왔습니다. 그러나 어느정도 읽으니 주제와 내용면에서 많이 겹치는 것이 눈에 뜨이더군요. 주요한 일상생활사는 주로 <별건곤>에서 인용하는 책들이 많기에 가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 생각되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차별화되는 포인트가 있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문광고라는 주제가 아주 좋아요. 당대의 사회상과 관심사를 한눈에 보여주는데 광고만한 것이 또 있을까요? 광고를 주요 매개체로 하여 여러가지 자료를 토대로 해당 내용에 대해 설명해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른 근대 미시사 서적과 겹치는 주제가 있기는 하나 내용면에서 "다르다"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전해주더군요. 각 꼭지별로 상세한 자료조사를 통해 당시 광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등 자료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것도 마음에 들은 점이고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생|개쌍놈도 데리고 노는 민중화의 세상이라
고무신|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
성병약|화류병은 문명의 병이다
영어|입신의 기초이며 출세의 자본이라
아지노모도|끄내라, 끄내! 밥상 드러온다
과자|포켓트에 너흘 수 있는 호화로운 식탁
산아제한|'가정화합의 벗' 삭구를 아시나요?
전쟁|캬라멜도 싸우고 있다
창씨개명|나의 조선 이름은 촌티가 나서......
영화|촤뿌린씨의 눈물과 웃음, 거리의 등불은 빛난다
자동차|제갈량의 목우유마냐 옥황상제의 용마냐
라디오|문명이 운다 조선의 라듸오!
위생|건전하고 매력 있는 살바탕을 맨드러야
박가분|부인 화장계의 패왕
백화점|백화점 승강긔 바람에 억개가 읏슥하다
술|맥주는, 가로대 자양품이라
커피|양탕국이냐, 독아편이냐
손기정|축! 마라손 왕 손남 양군 만세
전당포|훈장 3원, 요강 50전
바리캉|경제계의 대복음, 이발계의 혁명
양장|유방을 해방하자
포르노그래피|밤의 쾌락을 맛볼랴는 남녀에 권함

목차만 읽어도 너무나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저는 전부 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항목은 "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라는 현란한 카피가 돋보이는 별표 고무의 광고 등이 실린 <고무신>, 화류병 (매독) 치료를 위한 다양한 제품의 광고를 선보이며 당시 성병의 전파 경로 등을 고찰하는 <성병약>, 당대의 피임약과 아들낳는 약 등을 소개한 <산아제한>, 창씨개명을 위한 개명에 돈을 받은 작명소 광고에서 부터 창씨개명에 대한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창씨개명> 등이 있습니다. 전병하라는 농부가 성을 "전농"으로, 이름의 병하를 한자를 바꾸어 일본 발음으로 부르니 "덴노 헤이카"가 되었다는 등의 사연이 참 재미있더군요. 현재 두산의 모태인 박승직 상점의 "박가분"이 조선 화장품의 패왕이 되었다가 결국 연독 (납) 중독이 발견, 보도됨으로 사멸했다는 일대기가 기록된 <박가분>도 흥미로왔고요.

결론내리자면 최근 읽은 관련 미시사 서적 중에서는 가히 최고라 생각됩니다. 흥미로운 주제, 주제에 대한 소개 및 설명. 충실한 도판 등을 통한 자료적 가치 모두 뛰어나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근대 조선, 경성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 강력하게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