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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1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 셜리 잭슨 / 성문영 : 별점 2점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 4점
셜리 잭슨 지음, 성문영 옮김/엘릭시르

블랙우드가문은 육년전 윌리엄 삼촌과 콘스탄스, 매리캣 자매를 제외하고 일가족이 모두 독살당한 사건으로 마을에서 고립된다. 요리를 했던 콘스탄스가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범인으로 의심받기 때문. 매리캣은 사고 후 미쳐버린 윌리엄 삼촌과 광장공포증으로 집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콘스탄스와 함께 어렵지만 단란하게 살아가는데 사촌 찰스의 방문 이후 생활에 균열이 시작된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열한 번째 책. 고딕 호러의 대가라는 셜리 잭슨의 작품으로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무섭다거나 섬뜩한건 아니고 불편하다는 감정에 가까운데 작가의 엄청나게 디테일한 묘사들 덕분이죠. 특히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집요한 광기로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이 작품 속 사건 사고의 원흉인 화자 매리캣의 성격 묘사가 정말 압권입니다. 초반에 열덟살이라는 나이를 밝혀주지만 내용 내내 초등학생 이상의 연령으로 생각되지 않는 순수하고 그만큼 완전히 미쳐버린 여자아이의 심리 묘사가 그야말로 극에 달해 있거든요. 이런 류의 캐릭터, 성격은 혐오감을 가질 정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굉장히 불편했는데 개인적으로는 <파이 바닥의 달콤함>의 소악마 플라비아 들루스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또 설정 자체야 <이끼>, 아니면 얼마전 보았던 <그것이 알고 싶다>의 <사자개 저택의 비밀>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흔하디 흔한 것이지만 고립된 자매의 묘사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과연 누가 얼마나 미친 것일까? 이러한 광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라는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화재 이후 벌어지는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묘사도 인상적이라 궁금즘을 더해주고 말이죠.

그러나 고딕 "호러"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일단 무서운 부분은 전혀 없고 독살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도 초반에 이미 짐작되기에 대단한 반전으로 느껴지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쳐버린 노인과 완벽하게 범인으로 의심받는 상황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언니를 제외하면 누가 남을까요? 또 완벽하게 미쳐버린 매리캣 시점으로만 전개되어 광기나 범행의 이유 같은게 전혀 설명되지 않아서 굉장히 답답했어요. 그게 뭐든, 최소한 태양이 너무 뜨거웠다 식으로라도 뭔가 설명이라도 해 줬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화형법정>이나 <어두운 거울 속에>와 같은 추리적인 재미요소를 기대했었는데 그러한 기대에서는 완벽하게 빗나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묘사는 압도적이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으며 '미스터리 책장'이라는 레이블로 출간될 작품은 아니었다 생각됩니다. 작가가 쓰고 싶었던 것은 작가가 경험했다는 고립에 대한 두려움과 광기 뿐이 아니었나 싶은데 저와 같이 추리, 혹은 공포를 원하신다면 추천드리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군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단편선들과 같은 약간 마음 불편한 순문학을 원하신다면 좋은 선택일지도?

2014/10/30

침묵 - 엔도 슈사쿠 / 공문혜 : 별점 3점

침묵 - 6점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홍성사

17세기, 박해받던 일본의 키리시탄들을 위해 예수회 선교사 로드리고가 밀입국하여 활동하다가 결국 사로잡혀 마지막에는 결국 배교까지 한다는 내용으로 저 역시도 항상 가지고 있던 "사람이 정말 괴롭고 힘들때 신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문학 작품. 
이전에 읽었던 <순교자>관련 글을 찾아보다가 이 작품의 소개글을 읽고 관심이 가서 읽게되었습니다.

로드리고 신부가 고문을 앞두고 코고는 소리를 듣는데 그 소리는 다른 신자들이 고문을 받으며 내는 신음소리였다는 것, 그리고 무지렁이 신자들이 배교를 하건 말건 중요하지 않고 신부가 배교하기 전에 그들의 괴로움은 끝나지 않는다는 무간지옥이 펼쳐지는 상황이 작품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저는 신부가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 모든 것 역시 핑계가 아닐까요? 본인의 믿음이 정말로 확고했다면 괴로움도 모두 다가올 천국?에 대한 일종의 보상 측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현세의 고통을 내세에서 보상해준다는 일종의 거래가 서구식 종교의 핵심 중 하나니까요. 물론 이 책의 주제는 그것을 다루고자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일본에서 받아들여진 카톨릭은 다른 것이다라는 페레이라 신부의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토속신앙, 혹은 전통적인 가치관과 결합하여 또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이라는 뜻인데 국내의 일부 종교단체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더욱 와닿았습니다.

여튼 생각할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작품으로 종교의 현실적인 문제와 어려움을 잘 짚어낸 수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 : 은밀히 자기들만의 조직을 만들어 종교활동을 이어가던 가쿠레 키리시탄들 앞에 외국인 신부가 나타나 그들을 인도한다... 는 동일한 소재에 <모비딕>을 결합시켰던 호시노 유키노부의 단편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2014/10/29

홍차의 세계사, 그림으로 읽다 - 이소부치 다케시 / 강승희 : 별점 3점 -> 미정

홍차의 세계사, 그림으로 읽다 - 6점
이소부치 다케시 지음, 강승희 옮김/글항아리


제목대로 "차" 자체의 역사보다는 "홍차"의 역사에 관련 정보들을 다양한 자료들과 함께 소개하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 홍차를 중심으로 차의 기원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제목에 걸맞게 차를 마실 때 사용했던 눈이 휘둥그레해지는 각종 도구, 다기들, 차와 관련된 그림과 사진, 지도 등 다양한 사료와 함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책은 유럽에 최초로 소개된 차는 녹차였는데 이것이 왜 홍차로 바뀌었는지 설명해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영국의 수질이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경도가 높은 물이라 여기에 녹차를 우리면 차의 떫은 맛의 요소인 탄닌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데 녹차 대비 탄닌 함유량이 높은 발효차는 중국에서야 떫지만 런던의 경수에서는 순하게 우려져 좋은 맛이 된다고 하네요.
원래 홍차가 실패한 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어쩔 수 없는 환경적 요인으로 반발효차를 만들지 못해 완전발효차가 되었고 차를 만드는 공장에서 찻잎을 건조시키는 땔감으로 쓴 소나무의 연기가 찻잎에 착향된 것이 미묘한 향이 난다는 보-히차, 정산소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원산지인 우이산의 보-히차가 영국의 소비량을 따라기지 못하고 격동기의 중국에서 차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가짜 보-히차가 범람하고 더욱 강한 맛과 향을 착향시키기 위해 강제로 훈연한 랍상소종이 지금은 영국의 전통적인 차로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하니 세상일은 정말 모르는 것이에요.

또 차의 기원을 찾아 이런 저런 곳을 돌아다니며 여러가지 차에 대해 소개해 주기도 하는데 홍차 관련된 장소에 대한 기행문이라는 점에서는 <커피견문록>이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는 지노족이라는 소수민족의 량반차가 인상적이었어요. 왜냐하면 반찬처럼 먹는 차이기 때문이에요. 차의 생엽을 유념하여 생강, 마늘, 고추, 소금과 함께 섞어 뜨거운 물을 부은 뒤 먹는다고 합니다. 꽤 맛있을 것 같죠? 비슷한 반찬처럼 먹는 차가 미얀마에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약간 발효한 절인 음식처럼 먹는다는군요.
그리고는 여러가지 차에 관련된 중요한 역사의 흐름을 짤막하게 알려줍니다. 물론 "보스턴 티 파티"가 빠질 수 없죠. 아편전쟁도 어떻게 보면 차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해석하는 관점도 새로왔고요.

홍차 관련 주요 인물들의 소개와 어떤 활약(?)을 했는지도 상세히 소개됩니다. 얼 그레이 홍차를 만든 그레이 백작 이야기라던가 영국인들이 중국에서 차 수입이 어려워지자 인도의 아삼이나 스리랑카의 실론 등의 식민지를 차 생산지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지금도 그 이름을 강하게 남기고 있는 홍차의 왕 "립턴"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다른 사람들은 정말 홍차를 재배하고 널리 퍼트리는데 노력한 사람이라면 립턴은 순수한 사업가로 생산과 판매에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여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거대 기업을 세운 것이니까요.
참고로 얼 그레이는 유명한 홍차상회 트와이닝에서 정산소종의 훈연향이 랍상소종만큼 강하지 않자 다른 향기에 주목하여 베르가못의 향을 첨가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차가 전래되면서 미국인의 실용적인 관점으로 새롭게 등장한 티백, 아이스티, 레몬티 등이 소개되고 마지막은 맛있는 홍차를 만드는 방법으로 끝맺는데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통해 읽었던 조지 오웰의 수필을 중심으로 설명되고 있어서 더 반갑더군요. 내용의 핵심은 "우유를 먼저 붓느냐, 차를 먼저 붓느냐"였는데 조지 오웰의 주장은 우유의 양을 조절할 수 있으므로 우유를 나중에 부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MIF, MIA 논란은 계속 이어졌는데 왕립화학학회까지 나서서 내린 결론은 "우유가 먼저 (MIF)"입니다. 우유를 나중에 넣으면 우유 속의 단백질이 고온의 차에 의해 변성되어 차의 맛과 향이 나빠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과학이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아주 좋은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재미는 물론 자료적 가치도 충분한만큼 차를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책의 장정, 디자인도 아주 예쁘고 실려있는 도판들도 컬러로 제대로 수록되어 있는 등 책의 완성도도 높은 편입니다.


2014.10.30 수정 ) 댓글을 읽어보니 책 내용에 오류가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하세요.

2014.11.06 수정 ) 댓글을 읽어보니 오류 정도가 아닌것 같기에 별점은 미정으로 최종 수정합니다.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만 리뷰를 남길 수는 당연히 없습니다. "독서"가 자신의 교양을 쌓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데 목적이 있기도 하니까요. 잘못된 정보를 주는 책을 잘 모르는 독자가 읽었을 때의 폐해의 대표적인 경우라 생각하겠습니다.

2014/10/28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2014) - 마크 웹 : 별점 2점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 : 초회 한정판 (2disc) - 4점
마크 웹 감독, 제이미 폭스 외 출연/소니픽쳐스

출장 중 본 영화의 마지막 리뷰. 샘 레이미 3부작 스파이더맨에서 리부트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두번째 작품입니다.

리부트 1탄인 전작을 감상하지 않았었는데 이 작품을 보니 저는 영화의 대상 연령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일단 주인공들이 지나치게 어리게 설정되어 감정이입이 어려웠어요. 단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 자체가 틴에이저처럼 묘사되는데 스파이더맨이라기 보다는 한편의 청춘영화를 감상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캐릭터 형성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덕분에 성격 묘사가 너무 피상적인 것은 아쉽네요. 영웅으로서의 스파이더맨과 궁상덩어리인 자신과의 괴리감에 몸부림치던 피터 파커의 모습이 잘 그려졌던 샘 레이미 시리즈에 비하면 애들에 불과해 보이거든요. 피터 파커와 그웬 스테이시는 사랑때문에 갈팡질팡하는 전형적인 10대의 모습이고 해리 오스본은 왕따 기분을 느끼는 철부지, 심지어는 악역이자 "어른"인 일렉트로마저도 누군가 관심만 가져주면 좋은 관심병 환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배우들도 스파이더맨에 잘 어울린다고 보기 어려워서 피터 파커와 그웬 스테이시는 너무나도 상큼한 청춘이라 고민하나 없을 것 같은 비쥬얼을 뽐내며 해리 오스본은 전성기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에드워드 펄롱을 연상케하는 꽃미남이라 심각한 몸상태나 고민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비버리힐즈 90210>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에요. 일렉트로가 흑인이라는 것도 도발적인 캐스팅에 비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얻은게 많지 않아 보였고 말이죠.

전개도 별로 매끄럽지 않습니다. 일렉트로 정도만 등장했더라면 깔끔했을텐데 해리 오스본 (그린 고블린 2)은 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시니스터 식스를 등장시키기 위한 제작사의 장삿속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였습니다. 또 일견 강력해 보였던 일렉트로의 최후도 어처구니 없더군요. 전기를 왜 받아들이고만 있죠? 쏠 줄도 아는데 들어오는대로 내뱉으면 그만이지... 해리가 그웬을 죽인다는 마지막 장면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 앞서 말씀드린 애들 투정의 정점이었달까요?

"여러분의 친구 스파이더맨"의 유쾌함은 잘 살아있고 헐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볼거리도 나쁜 편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취향이나 분위기가 너무 어린 탓에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샘 레이미 감독의 영화가 최고라고 하기는 뭣해도 궁상맨 스파이더 캐릭터라던가 친구였지만 원수가 되는 피터-해리의 관계는 훨씬 잘 그려내었다 생각되네요. 배우들도 더 나았던 것 같고요. 흥행에 크게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데 사람들 생각은 역시 다 똑같나봅니다.

2014/10/27

화성 연대기 - 레이 브래드버리 / 김영선 : 별점 2.5점

화성 연대기 - 6점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김영선 옮김/샘터사

SF계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의 작품으로 화성인 시점에서 지구인이 아직 화성에 오기 이전에서 부터 지구인 탐험대가 수차에 걸쳐 도착하고 이후 지구인의 이주와 화성인의 멸망, 이주민들의 귀환... 순으로 여러가지 이야기가 수록된 연작 단편집.

연대순 배치는 제목처럼 "연대기"라는 느낌을 전해주는데 크게 기여하고는 있지만 수록된 작품들이 하나로 통일된 작품들은 아닙니다. 본격 하드 SF는 물론 서정적인 동화, 블랙코미디까지 장르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서 몇몇 작품은 다른 작가가 쓴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에요.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처럼 아예 대놓고 다양한 작품들이 수록되었더라면 더 나았을지 모르겠는데 "화성 연대기"라는 속성의 작품만 모아놓다보니 송곳처럼 확 튀어나오는 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이 조금 아쉽더군요.

그래도 한페이지짜리를 포함해서 20편이 넘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볼륨 덕분에 괜찮은 작품도 제법 되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매력포인트라 할 수 있는 블랙 코미디 반전물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지구에서 온 탐험대가 화성인들에게 정신병자로 오해받는다는 <지구인>은 이런 류의 농담물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지적 논리를 보여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고, 아담과 이브가 되었는데 이브가 너무 못생겨서 도망쳐버린 사나이 이야기인 <적막에 휩싸인 도시들>은 이야기의 재미도 재미지만 주인공 월터의 심리묘사가 대단해서 감정이입이 절로 되었고 말이죠.
블랙 코미디 말고도 화성인의 텔레파시 능력을 기반으로한 독특한 이야기인 <3차 탐험대>나 <화성인>도 좋은 작품이며 화성이라는 곳을 망치는 침략자로서의 지구인을 묘사한 <달은 지금도 환히 빛나건만>은 분명한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죠. 화성인이 멸망한 것이 지구인의 "수두"라는 전염병 때문이라니!

하지만 환상을 다룬 설정이 많이 반복되고 작가 특유의 "기묘한 맛"을 느끼기는 어려웠던 점 등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도 있으며 낡은 소재들이 있기 때문에 <일러스트레이티드 맨>과 같이 지금 시점에 먹히기는 조금 힘들것 같기는 합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좋은 작품이기는 분명합니다. 시대가 지났을 뿐이죠. 이 작품을 실시간을 접했던 당대 독자들이 부럽기만 할 따름입니다. 거장다움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만큼 장르문학 팬들에게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허나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도 조금 묵직한 편이니 만약 브래드버리 입문자이시라면 다른 단편집을 먼저 찾아보시는 것이 좋겠네요.

덧 : 책의 디자인과 장정은 아주 예뻐서 소장가치가 충분한데, 출판사가 "샘터"라는 것이 신기하네요. 앞으로도 꾸준히 장르소설을 출간해 주었으면 합니다.

2014/10/24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 (2014) - 마이클 베이 : 별점 3점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전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정부의 한 조직에서 오토봇과 디셉티콘 관계없이 모든 외계 로봇을 말살하려는 작전을 시작한다. 작전에 휘말려 큰 상처를 입은 옵티머스 프라임은 고물차로 변장해 몸을 숨기고, 우연히 이 고물차를 구입한 가난뱅이 발명가 케이드 예거는 딸, 친구 등과 함께 정부와 또다른 외계로봇 락다운, 오토봇, 그리고 지구인이 개발한 트랜스포머 갈바트론과 스팅어 군단의 거대한 전투에 휩쓸리게 된다.

역시나 출장 때 본 영화입니다. 이전에 봤던 것들은 전부 갈때고 이제부터 소개하는 영화들은 모두 올때 본거죠.

사실 이전 시리즈가 갈수록 별로라 큰 기대가 없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대박이더군요! SF 액션 블록버스터로는 그야말로 왕도격 작품이었습니다.
이야기 전개는 딱히 대단하진 않지만 오토봇도 디셉티콘처럼 외계인이니 말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부관료가 악당이라는 아이디어가 꽤 괜찮았을 뿐더러 외계인의 사체(?)를 가지고 자체제작 로봇을 만드려는 기업인 조슈아 조이스가 엮이는 등의 복잡한 이야기를 길기는 하지만 한편의 영화로 밀도있게 녹여낸 솜씨는 전성기 시절의 마이클 베이를 연상케 했습니다.
또 액션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라 로봇들의 격투는 물론이고 주인공 일행도 예비사위의 카 체이스, 마크 월버그의 맨손격투 및 최종전에서의 난입 활약 등 으로 로봇들에 못지않는 비중으로 다양한 액션을 소화해주어서 눈이 즐거웠고 말이죠. 마크 월버그가 나와서 뭘 하려나 했는데 이렇게까지 활약해줄지는 정말 몰랐네요.
제목에 걸맞게 드리프트, 하운드 등의 새로운 로봇들도 볼거리인데 단지 눈요기에 그치지 않고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옵티머스가 깨우는 다이노봇들은 정말 압권!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멋진 장면들은 정말 최고였어요.

단점이라면 외계인 협력자인 락다운의 역할이 무엇인지 좀 애매하다는 것과 조슈아가 너무 쉽게 개과천선한다는 것인데 작품에 큰 흠이 될 정도는 아닙니다. 조슈아가 우리편으로 돌아선 뒤에 보여주는 깨알같은 유머와 잔재미를 생각한다면 뭐 점수를 더 줄 수도 있고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A급 오락영화로 스트레스와 짜증을 날려버리는 오락영화 기존의 가치에 충실한, 그야말로 마이클 베이다운 영화라 생각되네요.

2014/10/23

고질라 (2014) - 가레스 에드워즈 : 별점 2점


[블루레이] 고질라 - 4점
가레스 에드워즈 감독, 브라이언 크랜스톤 외 출연/워너브라더스


출장 중 본 영화 세번째. 시차적응 실패로 비행기에서 영화만 봤네요.

이 영화는 일본 특촬물의 전설 <고지라>의 헐리우드버젼 리메이크입니다. 1998년에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에 의해 <고질라>라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작되기는 했지만 흥행에 썩 재미를 보지 못했고 팬들의 반응도 그닥 좋지 않았었죠. 당시 팬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괴수물에 대해서 잘 모르고 만들었다!"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는데 일단 이 영화는 그러한 비판을 잘 수용한 느낌입니다. 육중함이 살아있는 고질라 디자인과 일종의 재난물처럼 그려지는 괴수들의 습격이 잘 그려지고 있거든요. 원작과 비슷하게 원자력 사용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점도 반가운 요소였고요.

그러나 이러한 괴수 재난물 속성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면에서는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스토리는 정말 최악이에요. 리뷰에 줄거리를 정리할 수도 없고 이번 출장 때 본 영화 중 워스트로 꼽을 정도로요.
일단 주인공은 대체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와의 고향집 뒤지기에서 시작해서 원폭운송, 마지막 해체까지 하는 것 마다 족족 실패하거든요. 또 주인공 가족 이야기도 사족일 뿐입니다. 과거 원전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구? 어머니의 마지막 장면만큼은 원자력의 공포도 잘 알려주는 괜찮은 씬이었고 원폭에 대한 공포를 괴수와 연결시키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그냥 선량한 피해자가 있었다 정도로 끝냈어야 하지 않았나 싶어요.
어머니의 죽음때문에 진상에 집착한다는 아버지가 거의 시작하자마자 리타이어될 뿐더러 그토록 오랜시간 찾아해메던 진상이 하루만에 전세계로 알려진다는 전개도 어이를 상실케했습니다. 뭔가 있어보였던 세리자와 박사 역시도 잉여임에는 마찬가지입니다. 괴물 이름 붙이는거밖에는 하는게 없는 해설에 가까운 존재니까요. 아니, 몇시간 뒤에 알게 될 그놈의 진상때문에 주인공 가족을 데려와서 결국 죽게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민폐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군요. 군인이라는 주인공이 왜 박살을 내버리지 않았는지 솔직히 의문이에요.
마지막으로 고질라에 비해 괴수 느낌이 덜한 무토 디자인도 아쉬운 점입니다. 곤충 느낌이기는 한데 첫 등장말고는 딱히 압도적이다 싶지 않았어요. 고질라와의 결전도 뭔가 어색할 뿐더러 도시를 파괴하던 위용에 비하면 강력함이 부족해보였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고질라와 괴수의 위력을 일종의 재난물처럼 표현한 박력은 볼만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스토리 전개는 <D-war>보다 나은게 없었습니다. 아무리 스토리 대신 괴수를 보기 위해 보는 영화라지만 차라리 스토리가 없는 편이 나았을 것 같아요. 주인공 이야기는 깔끔하게 원폭 수송작전만 넣고 가족을 잃어버렸다는 등의 작위적인 이야기는 넣지 않았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속편이 나올 모양이던데 괴수영화라면 미약한 존재인 인간이야기는 젖혀두고 괴수에만 집중하여주었으면 합니다.

2014/10/22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2014) - 브라이언 싱어 : 별점 2.5점

[블루레이]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 슬립케이스 한정판 - 6점
브라이언 싱어 감독, 휴 잭맨 외 출연/20세기폭스


트라스크 박사가 발명한, 돌연변이 (뮤턴트)를 찾아내어 살육하는 센티널때문에 위기에 처한 X맨들은 키티 프라이드의 능력으로 울버린을 1973년 과거로 보내어 현재를 바꾸려고 시도한다. 무사히 과거에 도착한 울버린이 찰스 (자비에르)와 에릭 (매그니토)와 함께 사건의 발단이 된 레이븐 (미스틱)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중, 한편 미래의 X맨들에게 센티넬 대부대의 공격이 시작된다.

출장 중 감상한 영화 두번째 작품. 시리즈의 최신작이죠. 그동안 날개없이 추락하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간만에 복귀했군요.

작품의 특징이라면 이전 X맨 3부작과 리부트되었던 와의 세계관을 이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연결고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재미도 상당한데 개인적으로는 미래 시점에서의 액션씬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전에 등장하지 않았던 다양한 뮤턴트들의 멋진 액션들이 굉장히 화려하게 펼쳐지기 때문인데 특히 블링크의 능력이 아주 멋졌어요. 악역인 궁극병기 센티넬의 강함도 인상적으로 표현될 뿐더러 최강자 중 한명이라 생각했던 스톰의 죽음 등 X맨들이 하나씩 박살나는 묘사는 나름 충격을 가져다 주기도 했습니다. 정말 아작난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였거든요.

그에 비해 과거에서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액션보다는 스토리에 집중한 느낌이라 화려함은 덜합니다. 그래도 퀵실버의 등장과 활약은 정말 명불허전이며 마그네토 역시 기차 레일로 센티넬을 장악하는 장면 등에서 기대에 걸맞는 최강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합니다. 무엇보다도 초능력의 특성상 뭔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힘든 찰스 (자비에르)가 능력을 회복한 뒤 공항에서 레이븐 (미스틱)과 일종의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누는 씬은 정말 명장면이었어요. 또 그간 비중이 적었던 레이븐 (미스틱)의 활약이 멋지게 그려진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이자 중간까지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마지막 대단원을 장식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진주인공이라 할 수 있겠죠.
그 외에도 제 출생년도와 같은 1973년이 무대라는 것도 아주 반가웠는데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디테일이 상당해서 깨알같은 재미를 안겨주더군요, 의상이나 자동차와 같은 소품은 물론 케네디 암살이라는 토픽을 적절하게 이야기에 녹여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단점도 명확했습니다. 일단 울버린은 처음 등장해서 조무라기 악당들을 해치우는 것 외에는 당쵀 하는게 없어서 울버린 빠로서는 실망스러웠어요. 마그네토도 좋아하는데 하이라이트 장면에서의 모습은 비행하는 폼이라던가 의상이 뭔가 코즈프레 한듯이 어색해서 별로였고요.
세세한 부분에서 설명이 부족한 전개 역시 아쉬운 점입니다. 마그네토 (에릭)이 트라스크 박사 습격장소에서 레이븐을 죽이려고 하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죠. 그냥 트라스크 박사를 죽이고 레이븐을 데리고가면 되잖아요. 레이븐이 스트라이커에게 사로잡히지 않은 것으로도 미래가 바뀌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다리를 쓰면 초능력을 못 쓴다는 찰스의 설정도 말이 안되기에는 마찬가지... 불구가 된건 총알에 맞아서인데 백신은 뮤턴트 능력을 억제하는 것이니 전혀 관계가 없죠. 마지막으로 마그네토 에릭이 센티넬을 자기것으로 만든 시점에서 왜 야구장을 들어다 놓는 쇼를 펼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은 점입니다. 인간을 위해 만들었다는 센티넬이 공개 장소에서 인간을 때려잡는 영상만 나가도 박사와 센티넬을 뭉개버리기에는 충분했을테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나쁘지는 않지만 성공적인 리부트였던 전작보다는 스토리의 탄탄함이 부족해 보입니다. 미스틱의 활약이 괜찮다고 쓰기는 했지만 울버린이나 다른 액션 히어로가 활약하는게 화려함면에서는 더 도움이 되었을테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세계관을 잘 짜맞추면서 재미를 주는데에도 성공한 만큼 후속작도 기대해 볼만 할 것 같네요.

덧 1 : 늙지않는다는 울버린이 많이 늙은게 티가 나서 안타까왔습니다.
덧 2 : 마그네토는 대체 어떻게 나는 겁니까?

2014/10/21

엣지 오브 투모로우 (2014) - 더그 라이먼 : 별점 3점

[블루레이] 엣지 오브 투모로우 (+Plus SEM 초도 한정 출시) - 6점
더그 라이먼 감독, 빌 팩스톤 외 출연/워너브라더스

가까운 미래, '미믹'이라 불리는 외계 종족의 침략으로 인류는 멸망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인류는 그에 대항해 전 세계 군대가 모두 연합한 연합군인 연합방위군(United Defence Force, UDF)을 창설한다. 방위군의 정훈장교였던 육군 소령 빌 케이지(톰 크루즈 분)는 장군의 명령으로 자살 작전이나 다름없는 작전에 훈련이나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로 배정되고 전투에 참여하지만 해당 작전은 미믹의 음모로 군대는 전멸하고 케이지도 사망하게 된다. 그러나 죽기 직전 자신이 죽인 미믹의 피를 뒤집어 쓴 케이지는 작전 시작 직전으로 다시 환생하게 되는데...

출장 중 비행기에서 꽤 많은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며칠간은 영화 리뷰가 쭈~욱 이어질 것 같네요. 첫번째 리뷰는 제일 먼저 본 <엣지 오브 투모로우>입니다. 이 영화는 널리 알려진대로 <All you need is kill>이라는 일본 라이트노벨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SF 액션 영화죠.

동일한 삶을 반복하는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로 <사랑의 블랙홀>과 유사한 타임 루프물입니다. 차이점이라면 <사랑의 블랙홀>은 잠들거나 죽거나 하루 단위로 리셋되는 것에 반해 이 작품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건 사망에 의해 리셋된다는 것이죠. 나름 과학적인 설명이 들어간다는 것도 <사랑의 블랙홀>과의 차이점이고요. 딱히 설득력이 높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삶이 리셋된다는 독특한 설정에 더해 육중함과 리얼함이 느껴지는 전투씬들. 사랑의 블랙홀같이 죽어가면서 자신을 단련시키는 과정의 설득력. 절망적 전투 이외의 해법 (도망도 있고)을 찾아가는 과정의 짜임새와 여주인공 리타와 함께 헬기가 있는 곳에 도착한 장면에서 보여지는 것 같은 (설탕은 세개넣지?) 여러가지 디테일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오메가의 피를 뒤집어쓴 주인공이 더 이전의 세계로 점프하여 여주인공과 재회한다는 해피엔딩도 아주 좋았어요. 톰 크루즈의 상큼 미소가 제대로 선보이기도 했고 말이죠.

그러나 좀 판타지스러운 부분, 특히 오메가라는 존재의 설정은 유치했고 마지막 작전의 비약이 조금 심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쉽더군요. 원칙대로라면 오메가가 있는 장소를 알아낸 시점에서 무의미한 탈출을 계속 할 이유가 없었으니 리타가 쏴버리는게 나았겠죠. 그리고 오메가를 죽인 뒤 다시 리셋되자 이미 오메가가 죽은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도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리셋은 되지만 오메가는 죽어버려서 되살아나지 않아서 리셋되는 상황의 세계가 바뀌었다!는 것인데 그래도 케이지가 잠에서 깨어나는 곳에서 시작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별점은 3점. 불만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웰메이드 SF 활극임은 분명해요. 톰 크루즈라는 이름도 톰 행크스나 브래드 피트처럼 이제 배우 이름을 믿고 보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 같네요. 가끔 실패는 하지만...

2014/10/20

삼국지가 울고 있네 - 리동혁 : 별점 2.5점

삼국지가 울고 있네 - 6점
리동혁 지음/금토


오랫만에 뵙습니다. 갑자기 해외 출장을 가게 되어서 한주 정도 블로깅을 못했네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삼국지 관련 도서로 중국 동포 출신 작가가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고 오류가 너무 많아 썼다는 책입니다. 한자를 잘못 본 번역 오류는 물론 당대 역사에 대해 잘못 이해했던 부분 등을 모두 포괄하여 깨알같이 지적질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죠. 읽고나니 이문열 삼국지에 오역이나 오류가 정말로 믾더군요! 예를 하나하나 들기도 어려울 정도에요. 물론 큰 틀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비가 조조와 술자리를 가지다가 천둥이 치는 것을 겁내었다는 부분의 오류는 조금 심각하다 싶기도 했습니다. 원작가의 의도가 무시된 것이나 나름이 없는 각색이자 오류였으니까요.

책에 실린 오역, 오류 중 기억에 남는 것만 몇가지 적어본다면,
모든 장수들이 "창을 끼고" 달려나간다는 것.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전 한글 판본의 "꼬나 들다"가 맞는 표현이죠. "대도를 찬다"라는 것도 잘못된 표현으로 고대의 다다오 (대도)는 모두 자루가 긴 언월도 류의 칼로 허리에는 찰 수 없다고 하네요. 원술이 겨드랑이에 두 벌의 보검을 걸고 있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 오류이고요.
"손을 어루만지며 크게 웃다" 역시도 현대는 쓰다듬다라는 뜻의 한자어지만 고대에서는 "두드리다"는 뜻으로 쓰인 글자이기에 "손뼉을 치며 크게 웃다"라고 옮겨야 정확하다고 합니다.
코미디에 가까운 오역도 많습니다. 유명한 춘추전국시대의 자객 예양을 예, 양 땅이라고 번역한 것이라던가 "하늘이 가죽띠에 그 뜻을 밝혀 무왕이 주를 치게했다..." 는 묘사는 "혁명"의 오역이라고 합니다.
비슷한 글자를 잘못 본 것도 많아서 "누군가"라는 뜻의 "훠"라는 글자를 순욱의 이름자인 "위"로 잘못 본 것이며 손책을 "주둥이 노란 어린놈"이라고 한 것도 명백한 오역으로 황구, 즉 황커우는 단순히 어린아이라는 뜻이라네요. 카이라는 말은 갑옷인데 나올 때마다 투구라고 묘사되었다고 하며 "물이 쏟아지고 흙이 밀려오듯 적군이 덮쳐 와야 맞서겠다는 뜻입니까?"라는 하후존의 말도 굉장히 많이 나오는 말이라는데 이 역시 오역으로 "물이 밀려오면 흙으로 막고, 장수가 이르면 군사로 막으라"는, 그야말로 적군이 오니 맞서 싸우자라는 뜻이라는군요.
산에 관한 오류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저자의 말대로 실제로 뭇사람들의 생사가 걸린 실전이 아닌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고요.

이러한 이문열 삼국지의 오역, 오류에 대한 지적질 외에도 나름대로 조사를 거쳐 여러가지 재미난 것들을 알려주고 있으며 역사적인 상황을 잘못 이해한 것은 진법에 대한 설명이나 언월도, 장팔사모등도 고증 및 실제 사료를 인용하여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장팔사모가 뱀모양이었다는 것도 허구일 것이며 기다란 창을 가리키는 "삭모"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나 후한 시대의 한근은 지금 (500그램)의 절반 정도인 222,73그램이였다는 정보가 대표적입니다. 유일하게 정사에서도 유일하게 언급되었다는 전위의 쌍철극이 여든근으로 이 정보에 따르면 약 18킬로그램, 한쪽이 9킬로그램 정도이니 장사라면 충분히 쓸만한 무게인 것이겟죠. 춘추전국 시대의 한 자는 19.91센티미터라서 공자의 키 아홉자 여섯치는 191센티, 후한 시대의 한 자는 23,04 또는 24.2센티미터라 제갈량의 키는 184~196센티미터, 관우의 키는 야사와는 다르게 정사에는 그 키가 얼마인지 나오지 않는다고 하고요.
조운의 활약도 당대의 여러가지 사료를 근거로 몹시 과장된 것이라고 밝혀주고 있습니다
항상 궁금했던 조조가 언제부터 악의 화신으로 탈바꿈 하였는지, 관우가 언제부터 강태공을 누르고 신이 되었는지와 같은 이야기들도 재미있었으며 촉나라 인물들이 미화된 것은 촉이라는 나라가 위와 오와는 다르게 사관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이채로왔습니다. 조조, 손권과 그의 부하들은 사료가 상세하게 남아 전설로 미화될 여지가 별로 없었지만 유비 집단의 인물들은 사료가 없어서 상상력을 한껏 발휘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초한지 시대의 인물들과 삼국지의 인물을 엮었다는 고대 삼국전설 이야기도 흥미로운데 특히나 이 책에 소개된 명나라 후기의 소설집 <유세명언>의 일부를 통해 초한지의 인물들이 삼국지의 인물들로 환생하는 이유와 과정은 당대 덕후의 논리가 느껴지는 명장면이었어요.
 
중국인답게 실제 중국 역사에서 벌어졌던 사례를 인용하는 것도 인상적으로 대표적인 것은 모택동이 벌였던 공성계, 그리고 항일전쟁 시기 허베이성 민병들이 지뢰를 만들 금속조각을 얻기 위해 사람이 매복한 듯 가짜 목표를 만들어 일본군 총포사격을 유도한뒤 총알과 포탄 파편을 파내었다는 "풀 실은 배로 화살 얻기" 작전을 사용했다는 일화와 같은 것입니다. 유비의 특이했던 관상을 이야기하며 1970년대 말 백전풍 환자였던 농민이 황제를 자칭하며 증거로 몸의 흰 점을 보여주어 한동안 떵떵거리며 살았다는 이야기도 중국인이 아니라면 알기 힘든 일화겠죠. (당연히 잡혀서 총살당했다고 하네요)
현대에도 써먹을만한 지식도 있는데 예를 들면 제갈량의 사주팔자를 소개하며 현대에 그와 꼭같은 사주팔자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1981년 8월 3일 12시에서 14시 사이에 태어난 사람의 사주팔자가 그러하다는군요.

마지막으로 대개 중국인들은 삼국지를 좋은 소설로나 칠 뿐 인생 지침서나 성전으로는 간주하지 않는다는 지극한 끝맺음 말도 인상적이에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삼국지를 한번도 읽지 않은 시람과는~" 어쩌구는 모두 허구, 아마도 광고에서 비롯되었을 허구일 뿐이라는 것이죠.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이문열 삼국지에 대한 오류 증명이 주라 피식한 재미 외에 별다른 것은 없지만 삼국지의 팬이라면 한번 읽어볼만한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문열 삼국지가 거의 정본처럼 대접받는 국내에서는 더더욱 중요할테고요. 이 책이 조금이나마 영향력을 갖게되어 소개된 오류나마 수정되기를 기원해봅니다. 뭐 제가 이문열 삼국지를 다시 읽게 될 일은 없겠지만요.

2014/10/13

사라진 테니스 스타 - 까뜨린느 아를레 : 별점 2점

사라진 테니스 스타 - 4점
까뜨린느 아를레 지음/추리문학사

테니스 세계랭킹 1위 이반 파첵이 자택에서 조깅도중 납치된다. 납치범들이 요구한 100만달러의 몸값을 테니스협회는 거절하나 세계랭킹 2위 데렉 빌더가 이반 파첵의 테니스 생명을 걱정하여 대신 몸값을 지불할 뜻을 밝힌다. 그러나 몸값 지불장소였던 전미오픈의 경기장에서 데렉 빌더까지 헬기를 이용한 범인들에게 납치되는데...

김성종 최신세계추리소설 시리즈. <지푸라기 여자 (꼭두각시 여인)>으로 유명한 카트린 아를레 (까뜨린느 아를레)의 작품으로 내용은 제목 그대로 납치된 테니스 스타와 몸값 지불을 둘러싼 유괴극입니다. 인질이 전미 랭킹 1, 2위의 프로 테니스 선수라는 것이 특이할 뿐 유괴극답게 촛점은 몸값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에 맞춰져 있죠.

일단은 기발한 완전범죄극이었던 <지푸라기 여자>의 원작자가 쓴 작품다웠달까요? 범인들이 거의 성공한다는 이야기라는 것이 인상적으로 특히 몸값 전달 방식의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먼저 납치되었던 이반 파첵을 활용하여 더 큰 돈을 다시 벌어들인다는 트릭인데 정말이지 잘 짜여졌다 생각되네요. 프로 테니스와 유괴를 결합한 소재도 독특하고요.

그러나 이 몸값 전달 작전을 제외하고는 추리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크게 특기할만한 내용은 없습니다. 외려 작가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허술한 부분이 많아 보일 뿐이었어요. 아무리 경호가 부족했다 하더라도 전미 랭킹 1위의 프로 테니스선수가 쉽게 납치된다는 도입부부터 그렇지만 데렉 빌더가 헬기로 납치되는 부분은 정말이지 황당하더군요. 경찰이 아무리 허수아비라도 백주대낮에 생중계되는 테니스 경기중 벌어진 납치극을 수수방관한다니 이건 말도 안되죠. 모든 경찰력을 동원한다면 충분히 헬기가 내리는 곳을 특정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또 여기서 놓쳤더라도 헬기가 영화 촬영에 쓰인 소품이라는 것을 확인했더라면 범인들이 어디 있는지 충분히 특정할 수 있었을테고 말이죠. 경찰이 공범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또 마지막에 범죄에 흑막이 있었다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은 점입니다. 폴란드 민주화 운동을 위해 자금을 모으려는 원래 범죄 의도도 나름 설득력있는 만큼 사족에 불과하다 여겨졌어요. 후속작을 염두에 둔 설정이었을까요? 어차피 볼 일도 없겠지만....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장점도 있지만 설득력 측면에서 많이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절판된 작품이지만 구태여 구해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번역이 별로이기도 하고요.

2014/10/10

린 UX- 제프 고델프, 조시 세이던 / 김수영 : 별점 2.5점

린 UX - 6점
제프 고델프.조시 세이던 지음, 김수영 옮김, 김창준 감수/한빛미디어(한빛아카데미)


정말로 간만에 읽어본 전공 / 업무 관련 서적. "린" 사고방식으로 UX를 개발하기 위한 방법론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정해진 적은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것에 대한 방법론이죠.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입문서라기 보다는 전공자 혹은 관련 업무 종사자를 위한 이론서에 가까운데 그런 것 치고는 나름 재미있게 쓰여진 편입니다. 꽤나 흥미롭게 읽히며 이런저런 것들은 실무에 도입 가능하겠구나 싶은 것도 있고요.

그러나 "가정"에 많은 것을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약점이 있는 방법론입니다. 사용자 조사나 퍼소나 구축까지도 많은 부분 가정에 의존한다는 것은 좀 문제가 있죠. 또 아예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것에 대한 과제라면 이 책에 나오는 식의 가정 수립도 어려울테고요.
아울러 또 각 단계별 설명에 그치지 말고 이러한 방법론이 실제로 적용되었던 사례, 또는 이 방법론으로 개선할 수 있었던 것들도 상세하게 설명해주었어야 한다 생각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하나의 큰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단위 단위로 쪼개진 항목들을 개선하는데 더 효과적인 방법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실무자가 나름 변경하여 적용하면 충분히 새롭고 큰 과제에도 효과적으로 쓰일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변경, 적용하는데에는 그만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겠죠.

그래도 전공서적치고는 읽기도 쉽고 분량도 적절한 편입니다. UX업무를 하는 주니어 뿐 아니라 시니어에게도 꽤나 눈여겨볼만한 부분이 있었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4/10/08

세상을 바꾼 50가지 의자 - 디자인 뮤지엄 / 권은순 : 별점 4점

세상을 바꾼 50가지 의자 - 8점
디자인 뮤지엄 지음, 권은순 옮김/홍디자인

영국의 디자인 박물관 '디자인 뮤지엄'이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디자인 분야의 주요한 오브젝트를 선정해 소개한 디자인 뮤지엄 시리즈의 한국어판 제 1권입니다. 생활 디자인 중에서는 조명과 함께 하나의 장르화된 것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의자"에 대한 이야기로 지난 150년간의 디자인 역사를 살펴보자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디자인 사에서 의미있는 50개의 의자를 선정하여 한장으로 사진과 함께 소개해 주고 있는데 제목이나 주제에 어울리게 이 책만 읽어도 어느 정도의 디자인 흐름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나무로 시작해서 모더니즘, 미술 공예운동, 바우하우스,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믹스 앤 매치, 팝아트... 등으로 이어지는 식이죠.

구성과 내용도 마음에 들 분더러 비교적 관심이 가던 주제일 뿐더러 읽다보면 알고 있었던 디자이너나 의자가 등장해서 더욱 반가왔습니다. 마르셀 브로이어, 미스 반데어로에, 임스 부부, 필립 스탁, 부흘렉 형제같은 사람들말이죠. 크리스틴 킬러 스캔들 사진으로 유명한 모델 3107도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그래서 별점은 4점. 인쇄의 질이 약간 마음에 들지 않고 책이 장정은 마음에 들지 않아 약간 감점하지만 자료적 가치와 더불어 눈까지 즐거운 책입니다. 분량도 짤막하니 쉽게 읽을 수 있어 좋았고요. 디자인 전공자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인터넷 서점에서 원래 가격의 50% 할인된 가격으로 팔고 있는데 이 가격이만 정말 살만 합니다!

그나저나 여기 나온 의자들을 소장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저같은 사람들을 위해 나중에라도 여기 나온 의자들을 3D 모델링하여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앱을 통해 사용자가 모든 각도를 볼 수 있도록 제공하는 서비스가 나오면 정말 좋겠습니다.

2014/10/07

zum닷컴 소개

얼마전에 올렸던 "세계 7대 불가사의" 리뷰가 zum닷컴 이글루스 밸리 인기글에 소개되었네요.
소개해주신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저 제목은 사뭇 내용과 달라 좀 죄송하기도 합니다. 저는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별로 쓴게 없는데 말이죠.

여튼 국내 3위의 포탈업체에서 소개하니 방문자수도 간만에 폭주해서 무척 기뻤습니다. 아무리 마이너 블로거를 자부하고 있더라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는게 좋은건 당연한 것이니까요.

이런 행운이 자주 있으리라 기대는 하지 않지만 이번에 찾아주신 분들이 부디 한번으로 그치지 말고 앞으로도 쭈~욱 찾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아울러 이글루스 이웃분들의 좋은 글이 이렇게라도 많이 소개되었으면 합니다.

보틀넥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점

보틀넥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동급생 스와 노조미기 추락사한 곳에서 실수로 떨어져 버린 사가노 료.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같은 장소지만 유산되었다는 누나 사키, 죽어버린 노조미가 살아있는 또다른 평행우주의 세계였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장편.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청춘 성장기? 청춘 드라마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작가 특유의 주인공 캐릭터 스타일에 대한 일종의 비판입니다. 캐릭터가 가진 문제에 대해 자각하고 반성의 의미로 쓴게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주변 환경을 거스리지 않고 최대한 은근하게 살아가자는, 회색이 되고 싶어하는 소시민 시리즈의 고바토나 고전부 시리즈의 오레키 호타로가 연상되는 1인칭 주인공인데 이러한 성격 탓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그려지거든요. 제목 그대로 "보틀넥 - 병목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랄까요.
사키가 현명함과 행동력으로 더 나른 세계를 만든 결과에 충격을 받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는 결말까지도 끔찍하죠., 자기 자신은 최선이라 생각하고 아무런 악의도 없었지만 주변 인물들이 나 때문에 붕괴했다는 것을 알게된다니 정말이지 이건 저주와 다를게 없는것 같아요.

물론 단순한 비판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시리즈 주인공들과는 다르게 사가노 료는 별다른 추리력이 없고 탐정역은 누나 사키가 수행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추리력없는 소시민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조심해! 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또 적절한 분량에 쉽게 읽힌다는 장점에 더해 추리적으로도 아예 건질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도로를 위험하게 가로막은 은행나무를 둘러싼 이야기라던가 노조미의 죽음에.대한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는 특유의 일상계 추리물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거든요. 후미카라는 캐릭터가 설득력을 가질만큼 제대로 묘사되지 않아서 잘 와닿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뭐 나쁘지 않은 수준이에요.
그 외에도 실제 지명을 작품에 잘 녹여낸 묘사도 괜찮았습니다. 여정 미스터리가 연상될 정도로 그곳에 살거나 가 보았더라면 무척이나 반가왔을만한 곳들이 상세하게 등장히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노조미가 추락사했다는 도진보라던가 가나자와의 21세기 미술관, 와카마쓰정, 무로우 사이세이의 시비 등입니다.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꽤나 주요 장소로 등장하는 자스코 (Jasco)도 실제 여기 있을것 같네요.

그러나 이러한 캐릭터 중심의 드라마 외에는 딱히 특기할만한 점은 없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평행우주라는 SF 판타지스러운 설정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 설정은 료와 사키를 대비하여 그들의 세계에 어떤 결과가 빚어졌는지를 그리기 위한 장치일 뿐이거든요. 별다른 이유나 과학적인 근거도 전혀 없고요.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솔직히 추리물을 기대했는데 정작 접한것이 청춘 반성, 성장기라 실망한 탓이 큽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추리물"을 좋아하신다면 딱히 구해보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2014/10/06

세계 7대 불가사의 - 피터 A. 클레이턴 외 / 김훈 : 별점 2점

세계 7대 불가사의 - 4점
피터 A. 클레이턴 외 지음, 김훈 옮김/가람기획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알려진 건축물들에 대해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을 가지고 그 진위여부 및 상세한 내용을 알려주는 미시사 서적.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요. 번역의 문제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고 발음도 부정확하며 (쿠푸왕이라고 표기하는가 하면 배는 "케오프스 (쿠푸)"의 배"라고 표기하는 식) 여러가지 단위를 현재의 단위로 변환하여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함에다가 도판들의 인쇄상태가 별로이기 때문입니다. 가람기획의 책들은 대체로 내용에 비해 완성도가 많이 아쉽습니다... 내용도 익히 알려진 세계의 7대 불가사의에 대한 학술적인 설명이 전부라 생각만큼 재미가 없기도 하고요.

그래도 각 항목별로 인상적이었던 것을 소개해드리자면,

<피라미드>
피라미드 근처에서 완벽한 형태의 배 (케오프스의 배)가 출토된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무려 5,000여년 전의 배가 원형 그대로 발굴되다니! 이집트는 항상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이런 정보까지 접하니 더 가고 싶어지네요.

<바빌론의 공중정원>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기록되어 있기는 하나 실제 바빌론 유적에서는 관련된 유물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지 조금 궁금합니다.

<제우스 상>
남겨진 기록들을 통해 실제 제우스상이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높이는 13m 정도로 거대한 조각상은 현대에도 볼만한 것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이 신상은 예술적 성취를 이룬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는데 축조 방식이 안에 나무로 틀을 만들고 작은 조각을 이어붙인 것이라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에요. 이후 신상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진 뒤 화재로 소실되어버렸다는데 그나마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는게 다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에 쓰여진대로 황폐해지더라도 그냥 올림피아에 남아 있었더라면 뼈대정도는 전해져 현대인들이 그 위용에 감탄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기도 합니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상당히 방대한 분량인데 신전이 실제 어떤 구조였는지 장황하게 설명할 뿐 알맹이는 딱히 없었습니다. 기둥의 숫자가 그야말로 기둥숲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대단한 구조물이었던 듯 싶기는 한데 실물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레움>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도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유물인데 역시 재미있게 읽었던 항목입니다. 십자군들이 성벽을 만들기 위해 훼손하고 파괴한 것도 많지만 최초 붕괴 때 토사에 묻혀 운좋게 살아남은 거대 조각들 (특히나 지붕의 전차상 일부)의 위용은 다시 보아도 대단할 뿐더러 이것이 발견된 위치를 토대로 높이를 추산하고 여러 사료들과 남은 유물로 어떻게 생겼을 것이라는 것을 추론하는 고고학적인 과정은 추리물을 보는 재미마저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왜 이러한 유물들이 대영박물관에 있는건지 당쵀 모르겠네요.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에서 언급된 빼앗긴 우리 문화재를 보는 기분이 들었는데 원래 있던 곳으로 제대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로도스의 거상>
일단 이 거상이 세워진 과정을 알게된 것이 수확입니다. 알렉산더 사후 도시국가 로도스가 프톨레마이오스의 편을 들었기 때문에 적대세력이었던 안티고노스와 대립하여 포위공격을 당하지만 그것을 이겨낸 것이 계기라죠. 공사비는 공격해왔던 안티고노스의 아들 데메트리오스가 가져왔던 공성장비들을 팔아치운 것으로 마련했다고 하니 진정한 전승기념비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실제 생긴 형태가 익히 알려진대로 두 다리를 벌려 그 사이로 배들이 지나다녔다는 것은 허구이며 하나의 통 형태에 가까왔을 것이라고 알려주는 주장도 탄탄한 사료를 바탕으로 설득력있게 전개하여 신뢰가 가더군요.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상세한 사료가 많이 남겨진 유적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다른 것들에 비해 굉장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거든요. 다른 것들이 미터 단위라면 센티 단위까지 설명하는 식이니까요. 그러나 조금 크다는 것 말고는 왜 불가사의에 선정되었는지 알기 힘든 건축물이라 생각됩니다. 차라리 본문 글에서 언급되었던, 인근 바다에서 인양되었다는 10M에 이르는 이시스 석조 조각상이 더 인상적인데 자료를 조금 더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쓰니 건진 내용도 제법 되는군요. 허나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14/10/02

포르노 영화 역사를 만나다 - 연동원 : 별점 2.5점

포르노 영화 역사를 만나다 - 6점
연동원 지음/연경문화사(연경미디어)

포르노 영화의 역사를 다룬 미시사 서적. 영화라는 산업의 초장기부터 음지에서 존재해 오다가 <딥쓰로트>를 계기로 흥행 성공과 함께 합법화 및 대형화, 이후 비디오의 등장 및 21세기로 이어지는 역사를 짚어주고 있습니다. 실제 사람들의 생활을 바꾼 포르노의 이면, 예를 들어 홈 비디오의 보급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 포르노라는 내용 등은 상당히 인상적이에요.
이러한 흐름과 함께 <딥쓰로트>나 'Devil in miss jones="jones', <녹색 문 뒤에서> 같은 나름 의미있는 작품에 대한 평가는 물론 유명한 관계자들 이야기, 이외에도 정치권의 탄압이라던가 범죄조직과 엮인 포르노 영화계의 뒷 이야기, 부록으로 유명 배우 린다 러브레이스, 존 홈즈, 치치올리나 등의 약력과 같은 흥미로운 소재도 많이 실려있습니다. 제가 어둠의 경로로 일찌기 감상했었던 유럽의 포르노제국 프라이빗의 몇몇 작품 소개는 반갑기까지 했습니다.

단점이라면 깊이있는 분석은 없는 단순한 소개라는 점, 그리고 유럽 포르노 영화도 약간 소개되기는 하나 거의 미국 중심의 소개라는 점입니다.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일본쪽 내용이 없는건 조금 아쉽긴 하더라고요. 국내 현실상 도판이 상세하지 못한 것도 문제라 생각되지만 이건 뭐 어쩔 수 없는거고...

여튼 남자들이라면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는 주제이기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영화 역사에 관심있으시다면 한번쯤 봐도 실망하지는 않으실 것 같네요. 아주 오래전 영화잡지 키노에 실렸던 전설적인 공포영화 소개 기사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확실히 하드 코어와 하드 고어는 통하는데가 있나 봐요.

그나저나 책보다는 영상매체 다큐멘터리가 훨씬 더 어울리는 내용이라 생각되는데 저자가 인용한 히스토리 채널의 포르노그라피의 역사를 다룬 다큐도 보고 싶군요.

2014/10/01

지구의 마지막 날 - 필립 와일리 : 별점 3점



지구를 향해 두개의 별이 다가온다. 발견자의 이름을 따 브론슨 알파 / 베타라고 불리우게 된 두 별의 접근으로 지구는 파괴될 위기에 처하고, 헨드론 박사의 지휘 하에 일단의 과학자들이 모여 지구 파괴 후 지구 궤도에 안착하여 또다른 지구가 될 브론슨 베타로 이주하기 위한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 계획이 시작된다.

필립 와일리의 고전 SF. 바로 직전에 읽은 <하늘의 공포>와 같이 "직지 프로젝트" 결과물로 구글북스를 통해 무료로 읽게 된 작품입니다. <하늘의 공포>처럼 아동용에 가까운 결과물이라는 것도 같습니다. 때문에 상당부분 축약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문어체 형식이 많은 등 번역의 질은 한층 낮고요.

허나 축약과 번역문제를 무시한다면 작품 자체는 지구 멸망을 다룬 고전 SF의 걸작으로 널리 읽힐만한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1930년대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시대를 앞서간 측면도 분명 있고요. 특히나 외계 운석이 격돌하여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두개의 별"이 다가오고 그 중 한개가 지구 궤도에 안착할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실제로 브론슨 베타가 지구 궤도에 안착하였다고 해서 과연 사람, 아니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었을 것이냐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수천억분의 일의 우연이라도 있을 수 있으니 수긍할만 하겠죠. 첫번째 접근 이후 지구가 황폐해진 묘사는 <매드맥스>나 <북두의권>과 같은 세기말, 문명 멸망 이후의 세계를 그린 작품들의 설정과 유사한 점이 많아 재미있기도 하고요. 아울러 냉전 이전이라 소련이나 핵의 위험과 같은 요소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든 점이에요.

물론 작품 내에 몇가지 의문점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첫번째는 헨드론 박사가 우주선을 제조하기 위해 거대한 공장 및 집단 거주단지를 건설하는데 이러한 계획의 비용과 장비를 누가 후원했는지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화 버젼의 줄거리를 보면 시드니 스탠턴이라는 부호가 원조를 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책에서는 전혀 그런 이야기가 없거든요. 그리고 처음에 거의 2년에 걸쳐 100명 정도만 탑승할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다가 고작 몇개월 사이에 남은 인원이 모두 탈 수 있는 두번째 우주선을 만든다고 하는 설정 파괴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전개였고요. 헨드론 박사를 중심으로 1,000여명이나 되는 인력이 똘똘뭉쳐 한치의 흔들림없는 단결력을 보여주는 과정은 일종의 종교적 광기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런 부분들 때문에라도 정식 번역본, 아니면 평가가 좋은 영화버젼을 한번 보고싶어지네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아동용 번역본이라는 것이 문제일 뿐 80여년이 흘렀지만 읽을 가치는 충분한 좋은 작품입니다. 

그리고 함께 수록된 베리야에프의 단편 <열려라 참깨>가 의외의 재미를 선사해준 것도 아주 좋았어요. 괴퍅한 노인과 충직한 하인 앞에 기술자가 나타나서 로봇을 판다는 이야기에서 갑자기 잘 짜인 범죄물로 마무리 되는 의외성이 돋보였거든요. 자동문을 음성인식으로 열 때 목소리 톤에 따라서 문이 열리지 않는다던가, 개를 짖게 하면 안된다는 복선도 잘 녹아들어 있는 등 짜임새도 괜찮았고 말이죠. 특히 음성인식 자동문은 제가 음성인식을 이용한 제품 개발에 참여해 보았기 때문에 더 와 닿기도 했습니다.
SF보다는 코믹 범죄물로 봐야 할 것 같은데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이 작품만큼은 추리-범죄물 애호가시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인 <합성 인간>은 기이한 SF였던 기억이 나는데 이런 작품을 발표했다니 상당히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