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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0

삼국지가 울고 있네 - 리동혁 : 별점 2.5점

삼국지가 울고 있네 - 6점
리동혁 지음/금토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갑작스러운 해외 출장으로 한 주 정도 블로깅을 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삼국지 관련 서적입니다. 중국 동포 출신 작가가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고 오류가 너무 많다 느껴 이를 지적하기 위해 썼다고 하네요. 한자를 잘못 본 번역 오류는 물론, 당대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까지 포함해 깨알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이문열 삼국지에 얼마나 많은 오역과 오류가 있었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하나하나 다 들기도 어려울 정도인데요, 물론 이야기의 큰 줄기를 바꾸는 오류는 아니지만, 유비가 조조와 술자리를 가지다가 천둥이 치는 것을 겁내는 장면처럼 원작자의 의도가 무시된 부분은 심각한 각색이자 오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억에 남는 오역, 류를 몇 가지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장수들이 "창을 끼고" 달려 나간다는 표현은 원래 "꼬나쥐다" 또는 "들다"가 맞고, "대도를 찬다"는 표현도 틀렸습니다. 고대의 다다오(대도)는 자루가 긴 언월도 형태로, 허리에 찰 수 없는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원술이 겨드랑이에 두 벌의 보검을 걸고 있었다는 표현 역시 오류이고요. "손을 어루만지며 크게 웃다"라는 표현도 현대어로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고대에서는 "손을 두드리다"라는 뜻이라 "손뼉을 치며 크게 웃다"가 정확한 번역이라고 합니다. 코미디에 가까운 오역도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자객 예양을 "예"와 "양"이라는 지명으로 잘못 번역했다든지, "하늘이 가죽띠에 그 뜻을 밝혀 무왕이 주를 치게 했다"는 문장은 사실상 "혁명"이라는 단어를 잘못 해석한 결과라고 합니다.

비슷한 글자를 오독한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뜻하는 "훠"라는 글자를 순욱의 이름인 "위"로 착각한 것, 손책을 "주둥이 노란 어린놈"으로 번역한 것도 오역인데, 황구(黃口)는 단순히 "어린아이"를 의미한다고 하네요. "카이"라는 말은 갑옷을 뜻하는데, 작품에서는 계속 투구로 묘사되었다고 하고요. 또 "물이 쏟아지고 흙이 밀려오듯 적군이 덮쳐 와야 맞서겠다는 뜻입니까?"라는 하후돈의 말도 잘못된 번역으로, 실제 의미는 "물이 밀려오면 흙으로 막고, 장수가 오면 군사로 막는다"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적군이 오니 맞서 싸우자는 의미죠. 산과 관련된 표현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저자의 말처럼 실제 전투 상황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문열 삼국지의 오역과 오류 지적 외에도 이 책은 다양한 조사와 고증을 통해 당대 무기나 진법, 역사적 상황 등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장팔사모가 뱀 모양이라는 주장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는 "삭모"라는 말에서 유래된 긴 창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도 흥미로웠습니다.
무게 단위 관련해서는 후한 시대의 1근이 지금의 약 500g이 아닌, 222.73g 정도였다는 정보가 대표적입니다. 정사에서 유일하게 언급된 전위의 쌍철극이 80근이라고 하니, 약 18kg 정도로 장사라면 들 수 있는 무게였겠죠.
신체 치수도 당대 척도의 차이에 따라 정리되어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 1자는 약 19.91cm라 공자의 키는 약 191cm, 후한 시대의 1자는 약 23~24cm로, 제갈량의 키는 184~196cm로 추정되며 관우의 경우 정사에는 키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조운의 활약도 당대 사료들을 바탕으로 보면 과장된 측면이 많았다고 설명하고, 조조가 언제부터 악의 화신이 되었는지, 관우가 언제부터 신으로 떠받들어졌는지 등에 대한 탐구도 흥미롭습니다. 특히 촉나라 인물들이 유독 미화된 이유로, 촉은 사관이 없었던 반면 위나 오에는 사료가 남아 있어 인물들의 전설화가 어려웠다는 분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초한지 인물과 삼국지 인물을 연결한 전설도 흥미로웠는데, 명나라 후기 소설집 "유세명언"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초한지의 인물들이 삼국지 속 인물로 환생한 배경이 꽤 논리적으로 설명되더군요.

중국 역사를 인용한 실제 사례들도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어 모택동이 실제 공성계를 실행에 옮겼다는 이야기나, 항일전쟁 시기 허베이성 민병들이 금속 조각을 구하기 위해 가짜 목표를 설치해 일본군의 총포 사격을 유도하고 파편을 회수한 일화는 "풀 실은 배로 화살을 얻다"는 고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또, 유비의 관상을 설명하며 1970년대 말 백전풍을 앓던 한 농민이 황제를 자칭하면서 자신의 몸에 있는 흰 점을 근거로 들었던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결국 그는 체포되어 총살당했다고 하네요. 그 외 흥미로운 이야기로는 제갈량과 같은 사주팔자가 1981년 8월 3일 12시~14시 사이에 태어난 사람과 동일하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말은, 중국인들은 삼국지를 인생 지침서나 성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삼국지를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말라"는 말은 실제로는 허구이며, 광고 문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문열 삼국지에 대한 오류 증명이 중심이라 피식 웃게 되는 재미 외에는 큰 깊이는 없지만, 삼국지 팬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국내에서 이문열 삼국지가 정본처럼 여겨지는 현실에서는 더더욱 의미 있는 작업일 수도 있겠죠. 이 책이 조금이나마 영향력을 발휘해, 지적된 오류들이 수정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물론 제가 다시 이문열 삼국지를 읽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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