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중 본 영화 세 번째. 시차 적응 실패로 비행기에서 영화만 봤네요.
일본 특촬물의 전설 "고지라"의 헐리우드 버전 리메이크입니다. 1998년에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에 의해 "고질라"라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작되기는 했지만 흥행에 썩 재미를 보지 못했고, 팬들의 반응도 그다지 좋지 않았었지요. 당시 팬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한마디로 "괴수물에 대해서 잘 모르고 만들었다!"였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 영화는 그러한 비판을 잘 수용한 느낌입니다. 육중함이 살아 있는 고질라 디자인과 함께 일종의 재난물처럼 괴수들의 습격이 그려지고 있는 덕분입니다. 원작과 비슷하게 원자력 사용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는 점도 반가운 요소였고요.
그러나 이러한 괴수 재난물 속성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면에서는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특히나 스토리는 정말 최악이에요. 리뷰에 줄거리를 정리할 수도 없을 정도니까요.
일단 주인공부터가 대체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와의 고향집 뒤지기에서 시작해서 원폭 운송, 마지막 해체까지 하는 것마다 족족 실패하거든요. 또 주인공 가족 이야기도 사족일 뿐입니다. 과거 원전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는건지 모르겠어요. 어머니의 마지막 장면만큼은 원자력의 공포도 잘 알려주는 괜찮은 씬이었고, 원폭에 대한 공포를 괴수와 연결시키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그냥 선량한 피해자가 있었다 정도로 끝냈어야 했습니다. 주인공 이야기는 깔끔하게 원폭 수송 작전만 넣고, 가족을 잃어버렸다는 등의 작위적인 이야기는 넣지 않았으면 훨씬 좋았을거에요.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진상에 집착한다는 아버지가 거의 시작하자마자 리타이어되고, 그토록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진상이 하루 만에 전 세계로 알려진다는 전개도 어이를 상실케 합니다.
뭔가 있어 보였던 세리자와 박사 역시도 잉여임에는 마찬가지입니다. 괴물 이름 붙이는 것밖에는 하는 게 없는 해설에 가까운 존재니까요. 아니, 몇 시간 뒤에 알게 될 그놈의 진상 때문에 주인공 가족을 데려와서 결국 죽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민폐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군요. 군인이라는 주인공이 왜 박살을 내버리지 않았는지 솔직히 의문이에요.
무토 디자인이 고질라에 비해 괴수 느낌이 덜한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곤충 느낌이기는 한데 첫 등장 말고는 딱히 압도적이다 싶지 않았어요. 고질라와의 결전도 뭔가 어색할 뿐더러, 도시를 파괴하던 위용에 비하면 강력함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고질라와 괴수의 위력을 일종의 재난물처럼 표현한 박력은 볼 만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이야기 전개는 "D-war"보다 나은 게 없었습니다. 아무리 괴수를 보기 위해 보는 영화라지만, 이 정도라면 차라리 스토리는 없는 편이 나았습니다. 속편이 나올 모양이던데, 괴수 영화라면 미약한 존재인 인간 이야기는 젖혀두고 괴수에만 집중해 주었으면 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