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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9

극락도 살인사건 (Paradise Murdered, 2007) - 김한민 : 별점 3점

 


1986년, 평화로운 섬 극락도의 주민 17명이 모두 사라진다. 이유는 천국 같은 이 곳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에서 시작한다. 섬 주민 전원이 용의자일수도, 피해자 일수도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 난생 처음 살인사건을 맞닥뜨린 마을 사람들은 보건 소장 제우성을 중심으로 하여 살인사건 범인 추리에 골몰하지만 점차 주민들의 시체만 늘어간다. 한편, 우연한 기회에 이번 살인사건과 관련된 듯한 모종의 쪽지를 발견한 춘배는 쪽지의 의미를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는데..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결혼 후 처음 맞는 명절이라 제 생애 가장 바쁜 추석을 보낸 것 같습니다. 때문에 추석 기간 동안은 바빠서, 끝나고는 피곤해서 통 블로깅을 못했네요. 포스팅할 꺼리도 별루 없지만 연휴때 본 이 영화에 대해 몇자 적어볼까 합니다.

일단 이 영화는 초-중반부까지는 나름대로 추리물적인 요소를 가지고 진행됩니다.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잔혹한 살인사건과 조금씩 드러나는 단서들 이라는 공식에 충실해 보이죠. 그러나 단서와 사건이 그다지 연관성이 없고 범행 자체가 굉장히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에서 발생하는 문제 등으로 추리물로 평가하기에는 굉장히 부족한 작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류의 폐쇄 연쇄 살인극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에 비례하여 용의자도 줄어들기에 그러한 약점을 끝까지 잘 지켜내는 것이 중요한데 이 영화에서는 용의자고 뭐고 없습니다. 주요 인물들이 정직하게 차례로 죽어나가며 결국 범인을 그냥 적나라하게 드러내 버리니까요. 또 결정적 단서로 보였던 "이장이 들여놓지 말아야 할 것을 들여놨다" 라는 쪽지 역시 단서이기는 커녕 결국 주인공에 의해 설명되어 버리는 영화 전개를 위한 장치에 불과하기에 무척 짜증이 났습니다.

나름 중반까지는 그런대로 흥미진진하게 봤는데 결과적으로는 실망스럽네요. 물론 영화 자체는 잘 찍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아서 솔직히 "추리물"이라고 홍보하지만 않았어도 실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아쉽기도 한데 차리리 종반의 이장집 앞에서 벌어지는 총을 둘러싼 다툼같은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훨씬 괜찮았다는 것을 미루어 본다면 열녀문 귀신 이야기하고 잘 섞어서 잔혹 코미디극으로 완성하였더라면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범죄-추리물을 다루려면 말초신경을 자극해야 한다는 교육을 어디 영화판에서 시키나요? 영화의 맥락과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 쓰잘데 없는 잔혹한 묘사는 거부감만 불러 일으켰습니다. 예전에 감상했던 "혈의 누" 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말이죠. 그나마 "혈의 누"에서는 범행 자체가 잔혹한 나름의 이유라도 있었지만 (당한 그대로 복수한다는) 이 영화에서는 정말 불필요한 요소일 뿐이었습니다.

2007/09/17

대유괴 - 덴도 신 / 김미령 : 별점 4점

 

대유괴 - 8점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Media2.0

기슈 지방 최고 갑부이자 명사인 야나가와 도시 여사가 유괴된다. 여사의 은혜를 받아 현재의 위치에 오른 경찰 본부장은 복수에 불타 수사진을 구성하지만 여사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며 외려 스스로를 "무지개 동자"라고 칭하는 유괴범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100억엔이라는 몸값 요구에 그에 따르는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사건은 전 일본, 아니 전 세계의 화제가 되는데...


세상 많이 좋아졌네요. 이 작품까지 번역되고.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의 원작이라는 탓도 있겠지만 어쨌건 미스테리 팬으로서는 반갑기만 합니다.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에도 당당 12위로 선정되어 있는 텐도 신의 대표작입니다.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유괴라는 범죄를 정교하게 다루면서도 코믹함이 작품 전체에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죠. 재미만 놓고 보면 1급의 재미를 가져다 준다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웃기는 것만이 아니라 캐릭터가 아주 잘 살아 있어서 인질과 유괴범의 지위가 역전되는 상황 설정이 굉장히 설득력이 넘칩니다. 여사님과 3명의 유괴범의 명확한 캐릭터, 특히 이 캐릭터 설정은 가장 결정적 트릭에도 한몫하는 잘 짜여진 것이기도 하고요.

또한 100억엔이라는 충격적일 정도의 몸값 역시 재미를 한층 돋구어 주고 있으며, 유괴라는 범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은신처"와 "몸값의 전달 방법"에 있어서 정교하면서도 획기적인 트릭을 가져다 쓰고 있어서 추리물로의 완성도도 탁월합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유괴범들의 TV 생방송 역시 기발했고요. 마지막 경찰 본부장과 할머니의 대화에서 밝혀지는 몸값의 행방과 그만큼의 거액을 요구한 진짜 이유가 밝혀지는 장면에서는 정말 무릎을 치게 만드는 등 음미할 만한 요소가 참 많았습니다.

그 외에도 과연 82세의 할머니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산다고 100억엔을 지불하는가? 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되어 생명이라는 것에 대한 가치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더욱 빛나는 것 같습니다.

어쨌건 이 작품이 번역되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는데 재미 역시 탁월해서 기쁨 두배입니다. 앞으로 이런 좋은 작품들이 속속 번역되었으면 좋겠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덧 1 : 백억엔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후일담도 무지 궁금하네요.
덧 2 : 그런데 영화는 솔직히 별로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2007/09/15

빨간 고양이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 단편집) - 정태원 편역 : 별점 4점

 

빨간 고양이 - 8점
니키 에쓰코 외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나온다는 정보를 접하고 구입 의욕에 불타던 단편집이라 출간 즉시 구입, 완독하였습니다.

이 책은 1회, 1948년 부터의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한 단편들을 역자인 정태원 선생님이 번역하신 단편집으로 저같은 일본 추리 소설, 그리고 단편소설 매니아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국내에 첫 소개되는 작가도 많고 유명하지만 소개되지 않았던 걸작도 수록되어 있어 참으로 알찬 선정이 돋보이네요. 물론 아토다 다카시의 "손님"이라던가 니키 에쓰코의 표제작이기도 한 "빨간 고양이", 구사카 게이스케의 "휘파람새를 부르는 소년" 같이 다른 앤솔러지에서 이미 접한 작품도 있지만 16편 중에서 3편 뿐이라 이해할 만 했습니다. 다 좋은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선정된 작품들은 아무래도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들이니 만큼 전부 추리소설들이고, 작품들도 괴이한 분위기의 "해만장 기담"이라거나 대하 역사물 같은 "매국노" 등 작품의 스펙트럼이 무지하게 넓은 등 다양하지만, 전체적으로 문학적인 풍취가 넘치는 작품이 많다는 것이 큰 특징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무슨 상이라는 걸 타려면 문학적으로도 어느정도 성과가 있어야 하는 것이 역시 당연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고전 트릭물 애호가이기에 추리적으로 약간 부족해 보여 조금 아쉽긴 했지만 보다 폭넓은 층에 다가갈 수 있는 작품집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널리 알려져서 잘 팔려줬으면 좋겠네요. 뒷부분 해설을 보니 2부도 기획중이던데 2부 출간을 위해서라도 꼭이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4점. 대부분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만족했던것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유명한 걸작 "돌아오는 강의 정사 (회귀천 정사)" 였습니다. 일본 시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이야기는 역시 명불허전이더군요. 비록 일본시가 한국어로 번역되며 그 풍취를 많이 잃었다 하더라도 걸작은 역시 걸작이구나 싶었습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다 좋은데 좀 취향을 탈 것 같은 작품들은 몇개 있긴 했습니다.

아울러 책의 내용말고 다른 점을 좀 짚어보자면 오탈자가 가끔 있는 편이라 초판 이후에는 수정되었으면 하고, 책의 두께도 엄청난 편인데 양장으로 출간되어 무게를 가중시키는 것도 문제로 보입니다. 폰트를 좀 줄여 두께를 줄이고 양장대신 평범하게 제작하여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과거 다른 태동 출판사의 책들 수준의 크기와 가격이었더라면 만족도가 훨~씬 높았을텐데 좀 아쉽습니다.

1. 초승달 - 기기 다카타로
부유한 호소다 에이스케와 아야코라는 30살이 넘게 차이나는 부부는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었으나 아야코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아야코 집안에서 살해 의혹을 들먹이며 변호사를 통해 위자료를 요구한다. 사건의 진상은?
1948년의 첫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상 수상작입니다. 정태원 선생님 해설을 통해 작가가 작품에서의 문학적인 부분을 굉장히 강조했던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작품 역시 순문학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트릭이라는 것이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라 본격물로 보기에는 힘들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무척 높다는 느낌을 전해 주네요. 개인적으로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짤막한 단편이 본편보다도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뭔가 환상특급 같은 느낌을 주었거든요.

2. 해만장기담 - 가야마 시게루
대 부호인 쓰가모토 박사는 지상에 지옥을 구현하였다는 해만장이라는 저택으로 유명하다. 박사의 외아들 고비오의 생일파티가 해만장에서 있던 밤, 박사의 딸인 마야와 고비오가 엽기적인 방식으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고지라의 원작자인 가야마 시게루의 작품으로 1948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신인상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가야마 시게루는 전에 "넹고넹고"라는 환상문학적인 작품을 이미 접해보긴 했었습니다. 이 작품 역시 설정 자체가 약간은 허구에 근거하고 있어서 정통 추리물보다는 환상 추리 문학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인데 저자의 방대한 박물학적 지식을 토대로 구현된 세계관은 압권이더군요. 변격물과 정통파의 중간지점쯤에 위치했다고나 할까요? 과학적으로 뭔가 있어보이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실제 생물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트릭은 6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새롭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작가의 지나치게 장황한 묘사는 부담스럽더군요.

3. 눈속의 악마 - 야마다 후타로
다마에라는 아름다운 무용수에게 반한 의대생 다치바나는 자신의 친구이기도 했던 부자 가타쿠라에게 그녀를 빼앗기고 좌절한다. 그러나 가타구라가 의처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뒤, 다치바나는 우연히 알게된 다마에의 비밀을 통해 의학적 지식을 활용한 음모를 꾸미게 된다.
이 작품은 순전히 다치바나의 1인칭. 그것도 서간문 형식으로만 독특한 전개방식을 보이며 무엇보다도 당시 일본에서는 새로왔을 의학적 트릭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놀라왔습니다. 심리를 잘 이용한 교묘한 트릭이기도 해서 마음에 드네요. 유명한 고전 일본 추리작가 야마다 후타로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지만 작품 자체도 명불허전! 특히 예전 읽었던 "마지막 인사"에 비교해 본다면 추리적 요소가 많다는 것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4. 허상음락 - 야마다 후타로
음독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유미코는 시동생 우스케에게 치아키 의사가 있는, 자신이 과거에 근무했던 병원으로 옮겨줄 것을 부탁한다. 치아키 의사는 진료 중 유미코의 몸에 드러난 수많은 상처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사실 위의 "눈속의 악마" 보다도 작가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작품은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탐미주의적 문학관이 짙게 옅보이는 심리극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추리적 알맹이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애증 관계의 색다른 해석과 덧없는 결말이 펼쳐지는 인물과 심리 묘사가 워낙 탁월하여 작품 자체로서 높이 평가받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뭐 솔직히 추리물로 보이지는 않아서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의외이긴 하지만요.

5. 린치 - 오쓰보 쓰나오
10년만에 출옥한 전 야쿠자 세이기치. 그는 일찌기 금불상을 훔쳐내어 그 행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 알려져서 야쿠자 조직의 표적이 된다.
과거의 금불상 도난 사건과 현재. 그리고 야쿠자 조직의 흥망성쇠가 얽힌 이야기로 복잡한 인간관계가 후반부에 가서 모두 밝혀지는 하드보일드적 작풍이 독특했습니다. 사건이 트릭보다는 일종의 "해설"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 역시 비슷했고요. 하지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이 동양적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하드보일드 작품과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죠. 걸작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6. 어떤 결투 - 미즈타니 쥰
야스코를 놓고 경쟁하던 두 젊은이 시라사키와 구보타는 결국 권총 결투를 벌이는데 시라사키가 죽게된다. 친구 그룹은 사건 은폐를 위한 조작을 시도하는데...
이 단편집에 드디어, 처음으로 등장한 정통 추리물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짤막하지만 권총 결투라는 소재를 도입한 이국적인 설정이 돋보였습니다. 또 단지 이국적인 느낌만 전해주려고 등장한 설정이 아닌 실제 사건에 중요한 요소로 쓰이는, 트릭이 근간이 되는 설정이라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작품 중간에 등장하는 여러 조작과 그것을 밝혀나가는 경찰과의 두뇌싸움도 볼만 했고요. 다른 작품들처럼 문학성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추리물로 즐기기에는 부족함 없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7. 매국노 - 나가세 산고
전쟁 (2차 세계 대전) 말기 중국 베이징에서 사토미야 료스케는 친일신문 사장 2명의 진상 조사를 체리라는 아가씨에게서 의뢰 받는다. 조사를 진행하던 중 그는 이 사건이 일본의 신기인 곡옥과 얽혀있는 것을 알게 되는데...
실제 중국 거주민이었던 작가의 아주아주 디테일한 당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실 사건 트릭자체는 너무 보잘것이 없습니다. 대하 역사극에 일부로 추리적 요소가 삽입되었다고 보여질 정도로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은 작품이더군요.

8. 여우의 닭 - 히가게 죠기치
신지는 나무를 하던 중 낮잠을 자다가 악몽을 꾼 직후, 형수 모치의 시체를 발견한다.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 생각한 신지는 사건 은폐를 위해 시체를 숨기지만 또다른 시체가 발견되어 경찰의 표적이 된다.
전쟁 직후 귀환병의 비참한 생활을 잘 묘사한 문학적 흥취도 뛰어나지만 실제로 사건, 동기, 트릭의 3박자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걸작 단편입니다. 날짜별로 구분된 챕터는 조금 거슬렸지만 워낙 묘사와 전개가 뛰어나 보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여운을 남기는 결말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9. 피리를 불면 사람이 죽는다 - 쓰노다 기쿠오
경찰청 담당 기자 료스케는 자신이 썼던 완전범죄 기사에 대한 반박글을 보냈던 에나라는 아가씨를 오카다 경감에게서 한 사건의 중요 참고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연찮게 개인적으로 만난 뒤, 그녀가 관계된 완전범죄를 실제로 목격하게 되는데...
실제 경찰과 그 관계자가 보는 앞에서 벌어지는 완전범죄를 그린 단편으로 일반적인 범죄물로 그려지다가 한번의 반전을 통해 트릭물로서의 가치도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전후 일본의 혼란과 인간의 잔인합도 약간 그리는 사회파적인 특성도 조금 있고요.

10. 그린차의 아이 - 도이타 야스지
노배우 나카무라 가라쿠는 7년만에 무대 복귀를 결심하지만 복귀 무대의 아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망설이고 있다가 지인과 함께 신칸센 그린차를 타고 도쿄로 떠난다. 그린차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소녀의 정체를 놓고 추리가 시작되는데..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라는 가부키 배우 나카무라 가라쿠가 등장하는 소품으로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차분하고 소박한 내용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일상 생활 속에서의 추리" 라는 점이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아울러 가부키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와 지식이 특히나 돋보이더군요. 그런데 설정과 캐릭터에 비한다면 추리적인 요소는 사실 많이 약하다는 것이 문제이긴 합니다만....

11. 시선 - 이시자와 에이타로
가지하라 형사는 자신의 조카와 결혼을 앞둔 후배 시바타 형사와 탐문수사에서 돌아오던 중 한 결혼식을 바라보다고 결혼식 신부가 지난 은행강도 사건 피해자와 관련이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시선으로만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가지고 전개되는 짤막한 작품입니다. 단편에 최적화된 듯한 내용과 전개는 흡입력이 상당하더군요. 길이에 비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으로 드라마틱 하지는 않지만 묵직하게 전해주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12. 손님 - 아토다 다카시
이전에 읽었던 "Y의 거리"에 포함되었던 작품으로 아토다 다카시 특유의 반전이 인상적인, 서늘한 느낌의 작품입니다. 아토다 다카시의 대표작이자 최고 걸작은 "나폴레옹광"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작품 역시 만만치 않은 전율을 가져다 주는 좋은 작품이죠.

13. 빨간 고양이 - 니키 에쓰코
역시 이전에 읽었었던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 걸작선"에 포함되었던 작품입니다. "빨간 고양이"라는 인형에 함축된 중의적 의미를 풀어내는 트릭과 범인을 집어내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정통 안락의자형 추리물로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좀 처량하고 너무 착하게 끝나는 결말은 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작가 니키 에쓰코의 작품군이 대체로 해피엔딩에 기반한 만큼 작풍이라 보는 것이 맞겠죠. 어쨌건 정통 추리물 애호가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14. 돌아오는 강의 정사 - 렌조 미키히코
근대의 천재시인 소노다 가쿠요는 2번의 정사 미수 끝에 자살한 인물. 그러나 그의 친구이기도 했던, 그리고 그의 전기를 쓰다가 중단한 "나"는 그의 2편의 정사 미수 후 발표된 "정가"와 "소생"이라는 시를 분석하여 그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다.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에 9위로 선정된 "회귀천 정사". 바로 그 작품입니다. 천재 시인의 연작시를 토대로 과거를 밝혀내는 전개의 작품으로 시를 통해 발현되는 문학적 가치도 빼어나지만 사건 앞뒤에 포진한 단서와 복선을 가지고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 역시 이치에 합당하며 정교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 한편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가 여러배 높아지는, 그만큼 뛰어나면서도 항상 읽고 싶었던 작품이기에 무척 만족스럽네요. 단 일본어 였을 때 너무나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느껴졌을 싯구들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그 맛을 좀 잃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점이 있고 정통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는 추리의 과정이 심심한 편이긴 합니다. 그래도 걸작은 걸작입니다.

15. 나무에 오르는 개 - 구사카 게이스케
"나"는 동생 겐지가 신이라는 친구가 사고로 사망한 뒤 남은 유일한 친구 히데오와 개가 나무에 올라갈 수 있는지 없는지 때문에 격렬하게 싸우는 것을 중재하다가 과거 헤어진 연인 마치코의 집까지 찾아가게 된다. 그 며칠 뒤 개가 우물에 빠지는 사고, 그리고 겐지마저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나"는 모든 사고의 원인이 된 나무에 올라가 모든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찾아내게 된다.
제가 그간 읽었던 구사카 게이스케의 작품은 항상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서 소품 느낌을 주면서도 정교함과 더불어 독자의 뒷통수를 치는 반전이 인상적인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과거의 사건과 연결되어 정교하게 현재 시점의 사건을 다루는 솜씨가 역시나 탁월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반전도 인상적이고요.

16. 휘파람 새를 부르는 소년
역시나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 걸작선"에 수록되어 접해보았던 작품입니다. 거기서는 "꾀꼬리"라고 되어 있지만 같은 작품이죠. 위에 쓴 평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더 마음에 듭니다. 추리나 결말이 더 제 취향이었다고나 할까요?

2007/09/13

INNO.... 이제 끝인가?

http://aving.net/kr/news/default.asp?mode=read&c_num=59354&C_Code=01&SP_Num=0

과거 몇개의 대박 제품으로 일종의 "신화"을 이룩했던 이노디자인과 김영세 사장.
자체 브랜드로 제품을 내 놓은 모양인데 전 제품 모두 디자인과 컨셉이 조악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네요. 가정용 블루투스 헤드셋? 대체 그걸 누가 쓰죠? 초소형 블루투스 헤드셋 역시 마찬가지. 도저히 팔릴것 같지 않습니다.... 마우스들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결정적인 것은 예전 아이리버 N 시리즈를 안좋은 쪽으로 발전시킨 듯 한 MP3 Player. 용량이 2G밖에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두께가 10mm가 넘어가는 과감할 정도의 시대를 역행하는 투박함. 일단 저 태극문양부터 어떻게 좀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물론 실물을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제 생각에는 "팔릴 것" 같은 제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실물이나 한번 보러 전시장이나 찾아가 봐야겠네요.

2007/09/10

새로운 UI 적용 신제품 개발에 대하여

 전에 쓴 글에 이어 2탄입니다. 새로운 UI와 GUI를 적용하여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국내 소비자들은 궁금해 할 겁니다. 왜 우리나라에는 Apple같은 제품이 없을까? 이유는 명백하죠. 사실 기업이 연구개발에 쓰는 돈이 적기 때문입니다.... 최근 추세를 본다면 삼성 같은 경우는 예외가 될 수도 있겠지만 기업 문화 풍토가 바뀐것이 채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아직 외국 기업들에 비한다면 많이 부족하죠.

또한 연구 개발 인력의 대부분이 하드웨어쪽에 많이 치중되어 있다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혁신적인 UI나 GUI를 개발,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O/S나 소프트웨어적인 환경이 많이 뒷받침 되어 줘야 하는데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이쪽 분야, 즉 O/S나 소프트웨어쪽에는 큰 관심이 없고 제품의 외형이나 크기, 그렇지 않으면 다양한 기능들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을 뿐이니까요. 특히 아무래도 디바이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칩셋은 외국 업체가 완전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격 경쟁력이나 성능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들이 특정 칩셋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며, 이 경우 칩셋에 O/S나 펌웨어가 종속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렇다면 자체 O/S나 펌웨어를 개발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가격 경쟁력이 안되니까요.... 

결국 자체 개발이 아닌 외부 솔루션에 UI나 GUI를 의존하는 경향이 커졌고 국내 휴대폰은 대체로 심비안, PMP 등 모바일 제품은 WinCE O/S를 사용하며 최 상층 껍데기 GUI부분은 대부분 Flash로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WinCE는 물론 대부분의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이 구현되고 개발자도 많은, 상대적으로 개발하기 쉬운 O/S임에는 분명하고 Flash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두 솔루션 모두 "느리다" 라는 단점은 극복하지 못하고 있죠. Flash의 경우 요새는 많이 최적화 되긴 했지만, 그리고 용량이 작고 상대적으로 제작하기가 쉽다는 장점은 있지만 사실 모바일 제품에 쓰기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솔루션입니다. CPU점유율을 일단 많이 차지하는 약점 때문에 퍼포먼스가 느려지기 쉬워서 전체적으로 UI나 GUI를 구성하기에는 무리가 많이 따르는 솔루션이죠. 3D를 사용하기가 너무나 버겁다는 약점 역시 아직도 존재하고요.

하지만 GUI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Flash만한 쉽고 인터랙티브한 툴이 거의 없기에, 또한 국내 Flash 개발자들의 수준은 세계적이기에 (제가 같이 일해본 친구들만 하더라도 매크로미디어 본사에서 인정한 실력자들만 해도 두세명 이상입니다) 적합치 않은 칩셋과 하드웨어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성능을 끌어내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실력의 개발자라 하더라도 기본 하드웨어 퍼포먼스를 뛰어넘도록 할 수는 없으므로 자체적으로 최적화된 O/S를 탑재한 Apple을 따라잡기는 넘을 수 없는 안드로메다의 벽이 있을 뿐입니다. (Sony의 십자형 UI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결국 국내에서는 혁신적인 기술로 UI와 GUI를 구현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아이디어가 빛나는 UI의 승부가 될 수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Apple의 수많은 멋진 효과와 기술은 어차피 따라잡을 수 없는 만큼 보다 사용하기 편하고 직관적인 UI로 승부를 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되거든요. 개인적으로 효과는 순간적인 재미일 뿐이며 직관적이고 쉬운 사용성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되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러한 제품을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회사의 상위층들의 입김이 많이 좌우된다면 결국 뻔한, 진부한 UI와 GUI로 결과물을 도출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당연하겠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뻔한 제품에 모험을 걸고 싶어하지 않을테니까요. 선행 연구팀이 존재하고 한두개의 파일럿 제품 출시로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는 몇몇 대기업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비슷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경영진의 의지가 잘 결합되어 개발된 몇 안되는 국내 제품 중 대표적인 것이 iriver의 D-Click 시스템이라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이 시스템이 아주 뛰어나다거나 사용성이 무척 높냐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요) 독특한 재미와 사용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도 온전한 제품으로 출시될 확률이 너무나 적기에 결과물 자체는 충분히 만족할 만 합니다. 국내에서는 너무나 드문 경우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네요.

글이 너무 길어졌는데 국내에서 혁신적이고 새로운 UI와 GUI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1. 회사들이여 돈을 써라! 특히 S/W 등 원천기술에 신경좀 써라!
2. 경영진이여 야망을 가져라!

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쉬운 이야기지만...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아이디어와 욕심없는 기획자나 개발자는 드물겠지만 현실의 벽에 좌절할 수 밖에 없는 국내 개발 풍토가 안타까와 적은 글이긴 합니다만, 앞으로는 차차 나아지겠죠. 아니, 나아져야만 합니다. 특히 로열티가 제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만큼 O/S부터 순수 국내 혈통의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제품이 제발 나와주기를 기원해 봅니다.

2007/09/06

UI와 GUI로 국내에서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해서

뭐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원래 저의 직업은 UI기획자입니다. 지금은 조금 다른 업무를 하고 있지만요. 어쨌건 국내 UI나 GUI를 업으로 하시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몇자 적어봅니다. 먼저 제가 그래픽 전공자라서 타 전공자들과 약간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신입, 혹은 UI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글을 썼다는 것을 양지해 주세요.


일단 국내 UI나 GUI 쪽 분야는 두가지 전공으로 나뉠 것 같습니다. 그래픽과 엔지니어라는. 그래픽은 주로 GUI 작업 쪽을 진행하다가 넘어오는 것이고 엔지니어들은 개발 작업을 진행하다가 넘어오는 경우겠죠. 순수 기획자 출신의 UI 기획자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특히 Device쪽에서는요. (물론 Web UI 쪽에서는 순수 기획자들이 많이 있긴 합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국내에서 현재 UI기획을 하기 위한 업무를 진행하고 싶다면 위의 두가지 경우를 거쳐 나가는 것이 쉬운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엔지니어 출신의 UI기획자는 아무래도 많지 않은 편입니다. 아무래도 엔지니어들이 UI를 하는데에 대한 메리트가 국내에서는 크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들도 외부에서 역량있는 업체에 UI, GUI 일체를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외주업체들은 대부분 그래픽 작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업체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래픽 전공자가 이러한 관련 업체에 입사하기가 더욱 쉽다고 생각합니다. UI와 GUI를 전담하는 업체가 개발자를 필요로 하지는 않으니까요. 저도 그래픽을 전공한 이러한 외주 업체 출신이고요. 이쪽 분야로 유명한 업체로는 바이널이나 이노이즈, 펜타브리드 등의 회사가 있습니다. (요새는 좀 판도가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외주를 준 적이 없어서...) 물론 이러한 업체에 입사해서 누구나 UI 기획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전문 업체이니 만큼 많은 일을 수행하고 접하기에는 좋고, 그만큼 공부도 많이 되고 스스로 뻗어나갈 수 있는 힘을 쌓기 쉽겠죠.

하지만 그래픽 전공은 누구나 하기에는 적합치 않고, 사실 UI라는 것을 전공하기 위해 그래픽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은 낭비죠. 또한 커리큘럼이 제대로 짜여져 있는 것도 아니라서 어차피 입사 후에 다 새롭게 배워야 하는 일들일 뿐이고요. 그래서 학부에서 전공으로 삼고 싶다면 KAIST가 현재로서는 가장 유명한 이 분야 학교라 보여집니다. 일단 시설이나 자료도 빵빵하고 학습 커리큘럼 등이 탁월하다 생각됩니다. 그 외의 인지심리학 등을 배울 수 있는 심리학과 등이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네요. 전공으로 학부 졸업을 마친다면 외주업체 보다는 대기업의 "선행 연구소" 쪽으로의 취업도 용이하다고 생각되어 추천하고 싶습니다. 뭐 제가 알기로는 대부분 대기업의 UI, GUI 책임자들은 대부분 그래픽 전공자들로 알고 있는데 서서히 바뀌어 나가겠죠.

그 외 타 분야 전공자라면 관련 업체에 어떻게든 입사하여 경력을 쌓아나가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주위에 그렇게 발전한 친구들도 몇명 있기도 하고요. 물론 개인적으로 따로 공부는 꾸준히 해 나가야겠지만요. 

어쨌건 국내 환경의 특이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래픽 전공자가 이쪽 분야 기획자 중에서 상당히 많은 편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전문학과와 전문인들이 슬슬 등장하고 있다 보여지네요. 저도 밀려나지 않으려면 좀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할텐데 걱정이네요....

2007/09/04

게@임 (g@me, 2003) - 이사카 사토시 : 별점 2점

 


잘나가는 광고인 사쿠마는 진행하던 큰 프로젝트가 새로 부임한 부사장 카츠라기에 의해 중단되어 업무 일선에서 밀려난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카츠라기의 딸 쥬리가 가출하는 것을 목격하고 쥬리는 사쿠마에게 자신이 첩의 자식이라 괴롭게 산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유괴하여 아버지에게서 몸값을 받아내자고 유도한다. 사쿠마는 개인적인 복수심이 맞물려 몸값을 요구하게 되고 성공적으로 돈을 받아내는데 까지는 성공하지만 의외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게임의 이름은 유괴"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소설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닥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기에 영화만 보게 되었습니다. 보고나니 제 취향이 역시나.. 였다는 생각만 드네요. 저의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비호감을 역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작품이었습니다.

일단 히가시노 게이고를 싫어하는 이유 중 제일 큰 이유인 "지나칠 정도의 로맨스적인 설정"이 이 작품에서도 너무 과하게 부각되어 있다는 인상이 일단 강했습니다. 두명의 사랑이 싹트는 장면 등에서는 나름의 현실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차라리 로맨스를 싹 빼 버리고 사건의 중심인물인 카츠라기-사쿠마의 대립을 보다 강화하고 치하루의 팜므파탈적인 매력을 부각시키는 것이 더욱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로맨스가 부각되는 것 때문에 사건의 중심인물이자 게임을 이끌어 나가는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카츠라기의 캐릭터가 너무 약해지고 마지막 한방 역전의 쾌감이 부족해져 버렸거든요. 물론 제가 소설을 읽지는 않았고 이러한 점은 나카마 유키에라는 톱스타를 기용함으로 인해 발생한 영화적 과장일 수도 있겠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제가 읽은 다른 작품들을 고려해 본다면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이네요.

스토리를 떠나 영화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TV 미니 시리즈 수준의 촬영과 연출로 긴박감이 많이 떨어지는 편입니다. 핵심적인 부분인 몸값 전달 부분의 무덤덤한 연출은 물론이고 배우들의 연기도 그냥저냥이라 실망스러웠습니다. 사쿠마 역의 후지키 나오히토는 그런대로 적역이었지만 나카마 유키에가 연기한 치하루는 나카마 유키에의 다른 캐릭터가 자꾸 연상되어 결과적으로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았고요. 이러한 부분은 제작사가 후지 TV(?)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 한데 그야말로 TV 영상물 같은 퀄리티와 문법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추리적으로는 가짜 유괴에 거기에서 비롯된 몸값 전달 방법, 그리고 반전과 반전에 이은 주인공의 위기 탈출이 정교하지는 않지만 짜임새있게, 물 흐르듯이 전개되어 보는데 큰 무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반전 부분이 무척 기발하기에 솔직히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반전에 뒤이은 마지막 위기 탈출(?)이라 할 수 있는 장면은 그다지 잘 짜여지지 않았고 너무 허술해서 마지막 마무리를 짓는데 좀 많이 부족해 보인 것이 아쉽습니다. 이야기의 결말 역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또 사소한 부분일 수 있지만 사쿠마가 e-mail을 통해 흥정을 하는데 IP추적에 대해 과연 몰랐던 것일까요?

내용만 놓고 본다면 영상물에 제법 잘 어울릴 소재였는데 극적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정교한 연출이 부족했던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같은 원작자의 "호숫가 살인사건"과 비교되더군요. 어쨌건 히가시노 게이고나 나카마 유키에의 팬이 아니라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