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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5

빨간 고양이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 단편집) - 정태원 편역 : 별점 4점

 

빨간 고양이 - 8점
니키 에쓰코 외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나온다는 정보를 접하고 구입 의욕에 불타던 단편집이라 출간 즉시 구입, 완독하였습니다.

이 책은 1회, 1948년 부터의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을 수상한 단편들을 역자인 정태원 선생님이 번역하신 단편집으로 저같은 일본 추리 소설, 그리고 단편소설 매니아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국내에 첫 소개되는 작가도 많고 유명하지만 소개되지 않았던 걸작도 수록되어 있어 참으로 알찬 선정이 돋보이네요. 물론 아토다 다카시의 "손님"이라던가 니키 에쓰코의 표제작이기도 한 "빨간 고양이", 구사카 게이스케의 "휘파람새를 부르는 소년" 같이 다른 앤솔러지에서 이미 접한 작품도 있지만 16편 중에서 3편 뿐이라 이해할 만 했습니다. 다 좋은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선정된 작품들은 아무래도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들이니 만큼 전부 추리소설들이고, 작품들도 괴이한 분위기의 "해만장 기담"이라거나 대하 역사물 같은 "매국노" 등 작품의 스펙트럼이 무지하게 넓은 등 다양하지만, 전체적으로 문학적인 풍취가 넘치는 작품이 많다는 것이 큰 특징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무슨 상이라는 걸 타려면 문학적으로도 어느정도 성과가 있어야 하는 것이 역시 당연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고전 트릭물 애호가이기에 추리적으로 약간 부족해 보여 조금 아쉽긴 했지만 보다 폭넓은 층에 다가갈 수 있는 작품집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널리 알려져서 잘 팔려줬으면 좋겠네요. 뒷부분 해설을 보니 2부도 기획중이던데 2부 출간을 위해서라도 꼭이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4점. 대부분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만족했던것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유명한 걸작 "돌아오는 강의 정사 (회귀천 정사)" 였습니다. 일본 시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이야기는 역시 명불허전이더군요. 비록 일본시가 한국어로 번역되며 그 풍취를 많이 잃었다 하더라도 걸작은 역시 걸작이구나 싶었습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다 좋은데 좀 취향을 탈 것 같은 작품들은 몇개 있긴 했습니다.

아울러 책의 내용말고 다른 점을 좀 짚어보자면 오탈자가 가끔 있는 편이라 초판 이후에는 수정되었으면 하고, 책의 두께도 엄청난 편인데 양장으로 출간되어 무게를 가중시키는 것도 문제로 보입니다. 폰트를 좀 줄여 두께를 줄이고 양장대신 평범하게 제작하여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과거 다른 태동 출판사의 책들 수준의 크기와 가격이었더라면 만족도가 훨~씬 높았을텐데 좀 아쉽습니다.

1. 초승달 - 기기 다카타로
부유한 호소다 에이스케와 아야코라는 30살이 넘게 차이나는 부부는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었으나 아야코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아야코 집안에서 살해 의혹을 들먹이며 변호사를 통해 위자료를 요구한다. 사건의 진상은?
1948년의 첫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상 수상작입니다. 정태원 선생님 해설을 통해 작가가 작품에서의 문학적인 부분을 굉장히 강조했던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작품 역시 순문학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트릭이라는 것이 인상적인 작품은 아니라 본격물로 보기에는 힘들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무척 높다는 느낌을 전해 주네요. 개인적으로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짤막한 단편이 본편보다도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뭔가 환상특급 같은 느낌을 주었거든요.

2. 해만장기담 - 가야마 시게루
대 부호인 쓰가모토 박사는 지상에 지옥을 구현하였다는 해만장이라는 저택으로 유명하다. 박사의 외아들 고비오의 생일파티가 해만장에서 있던 밤, 박사의 딸인 마야와 고비오가 엽기적인 방식으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고지라의 원작자인 가야마 시게루의 작품으로 1948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신인상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가야마 시게루는 전에 "넹고넹고"라는 환상문학적인 작품을 이미 접해보긴 했었습니다. 이 작품 역시 설정 자체가 약간은 허구에 근거하고 있어서 정통 추리물보다는 환상 추리 문학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인데 저자의 방대한 박물학적 지식을 토대로 구현된 세계관은 압권이더군요. 변격물과 정통파의 중간지점쯤에 위치했다고나 할까요? 과학적으로 뭔가 있어보이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실제 생물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트릭은 6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새롭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작가의 지나치게 장황한 묘사는 부담스럽더군요.

3. 눈속의 악마 - 야마다 후타로
다마에라는 아름다운 무용수에게 반한 의대생 다치바나는 자신의 친구이기도 했던 부자 가타쿠라에게 그녀를 빼앗기고 좌절한다. 그러나 가타구라가 의처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뒤, 다치바나는 우연히 알게된 다마에의 비밀을 통해 의학적 지식을 활용한 음모를 꾸미게 된다.
이 작품은 순전히 다치바나의 1인칭. 그것도 서간문 형식으로만 독특한 전개방식을 보이며 무엇보다도 당시 일본에서는 새로왔을 의학적 트릭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 놀라왔습니다. 심리를 잘 이용한 교묘한 트릭이기도 해서 마음에 드네요. 유명한 고전 일본 추리작가 야마다 후타로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지만 작품 자체도 명불허전! 특히 예전 읽었던 "마지막 인사"에 비교해 본다면 추리적 요소가 많다는 것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4. 허상음락 - 야마다 후타로
음독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유미코는 시동생 우스케에게 치아키 의사가 있는, 자신이 과거에 근무했던 병원으로 옮겨줄 것을 부탁한다. 치아키 의사는 진료 중 유미코의 몸에 드러난 수많은 상처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사실 위의 "눈속의 악마" 보다도 작가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작품은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탐미주의적 문학관이 짙게 옅보이는 심리극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정도로 추리적 알맹이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애증 관계의 색다른 해석과 덧없는 결말이 펼쳐지는 인물과 심리 묘사가 워낙 탁월하여 작품 자체로서 높이 평가받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뭐 솔직히 추리물로 보이지는 않아서 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의외이긴 하지만요.

5. 린치 - 오쓰보 쓰나오
10년만에 출옥한 전 야쿠자 세이기치. 그는 일찌기 금불상을 훔쳐내어 그 행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로 알려져서 야쿠자 조직의 표적이 된다.
과거의 금불상 도난 사건과 현재. 그리고 야쿠자 조직의 흥망성쇠가 얽힌 이야기로 복잡한 인간관계가 후반부에 가서 모두 밝혀지는 하드보일드적 작풍이 독특했습니다. 사건이 트릭보다는 일종의 "해설"에 의해 설명된다는 것 역시 비슷했고요. 하지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이 동양적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하드보일드 작품과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죠. 걸작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6. 어떤 결투 - 미즈타니 쥰
야스코를 놓고 경쟁하던 두 젊은이 시라사키와 구보타는 결국 권총 결투를 벌이는데 시라사키가 죽게된다. 친구 그룹은 사건 은폐를 위한 조작을 시도하는데...
이 단편집에 드디어, 처음으로 등장한 정통 추리물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짤막하지만 권총 결투라는 소재를 도입한 이국적인 설정이 돋보였습니다. 또 단지 이국적인 느낌만 전해주려고 등장한 설정이 아닌 실제 사건에 중요한 요소로 쓰이는, 트릭이 근간이 되는 설정이라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작품 중간에 등장하는 여러 조작과 그것을 밝혀나가는 경찰과의 두뇌싸움도 볼만 했고요. 다른 작품들처럼 문학성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추리물로 즐기기에는 부족함 없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7. 매국노 - 나가세 산고
전쟁 (2차 세계 대전) 말기 중국 베이징에서 사토미야 료스케는 친일신문 사장 2명의 진상 조사를 체리라는 아가씨에게서 의뢰 받는다. 조사를 진행하던 중 그는 이 사건이 일본의 신기인 곡옥과 얽혀있는 것을 알게 되는데...
실제 중국 거주민이었던 작가의 아주아주 디테일한 당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실 사건 트릭자체는 너무 보잘것이 없습니다. 대하 역사극에 일부로 추리적 요소가 삽입되었다고 보여질 정도로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은 작품이더군요.

8. 여우의 닭 - 히가게 죠기치
신지는 나무를 하던 중 낮잠을 자다가 악몽을 꾼 직후, 형수 모치의 시체를 발견한다.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 생각한 신지는 사건 은폐를 위해 시체를 숨기지만 또다른 시체가 발견되어 경찰의 표적이 된다.
전쟁 직후 귀환병의 비참한 생활을 잘 묘사한 문학적 흥취도 뛰어나지만 실제로 사건, 동기, 트릭의 3박자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걸작 단편입니다. 날짜별로 구분된 챕터는 조금 거슬렸지만 워낙 묘사와 전개가 뛰어나 보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여운을 남기는 결말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9. 피리를 불면 사람이 죽는다 - 쓰노다 기쿠오
경찰청 담당 기자 료스케는 자신이 썼던 완전범죄 기사에 대한 반박글을 보냈던 에나라는 아가씨를 오카다 경감에게서 한 사건의 중요 참고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우연찮게 개인적으로 만난 뒤, 그녀가 관계된 완전범죄를 실제로 목격하게 되는데...
실제 경찰과 그 관계자가 보는 앞에서 벌어지는 완전범죄를 그린 단편으로 일반적인 범죄물로 그려지다가 한번의 반전을 통해 트릭물로서의 가치도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전후 일본의 혼란과 인간의 잔인합도 약간 그리는 사회파적인 특성도 조금 있고요.

10. 그린차의 아이 - 도이타 야스지
노배우 나카무라 가라쿠는 7년만에 무대 복귀를 결심하지만 복귀 무대의 아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망설이고 있다가 지인과 함께 신칸센 그린차를 타고 도쿄로 떠난다. 그린차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소녀의 정체를 놓고 추리가 시작되는데..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라는 가부키 배우 나카무라 가라쿠가 등장하는 소품으로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차분하고 소박한 내용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일상 생활 속에서의 추리" 라는 점이 정말이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아울러 가부키에 대한 작가의 깊은 이해와 지식이 특히나 돋보이더군요. 그런데 설정과 캐릭터에 비한다면 추리적인 요소는 사실 많이 약하다는 것이 문제이긴 합니다만....

11. 시선 - 이시자와 에이타로
가지하라 형사는 자신의 조카와 결혼을 앞둔 후배 시바타 형사와 탐문수사에서 돌아오던 중 한 결혼식을 바라보다고 결혼식 신부가 지난 은행강도 사건 피해자와 관련이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시선으로만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라는 명제를 가지고 전개되는 짤막한 작품입니다. 단편에 최적화된 듯한 내용과 전개는 흡입력이 상당하더군요. 길이에 비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으로 드라마틱 하지는 않지만 묵직하게 전해주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12. 손님 - 아토다 다카시
이전에 읽었던 "Y의 거리"에 포함되었던 작품으로 아토다 다카시 특유의 반전이 인상적인, 서늘한 느낌의 작품입니다. 아토다 다카시의 대표작이자 최고 걸작은 "나폴레옹광"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작품 역시 만만치 않은 전율을 가져다 주는 좋은 작품이죠.

13. 빨간 고양이 - 니키 에쓰코
역시 이전에 읽었었던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 걸작선"에 포함되었던 작품입니다. "빨간 고양이"라는 인형에 함축된 중의적 의미를 풀어내는 트릭과 범인을 집어내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타당한 정통 안락의자형 추리물로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좀 처량하고 너무 착하게 끝나는 결말은 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작가 니키 에쓰코의 작품군이 대체로 해피엔딩에 기반한 만큼 작풍이라 보는 것이 맞겠죠. 어쨌건 정통 추리물 애호가에게 좋은 선물이 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14. 돌아오는 강의 정사 - 렌조 미키히코
근대의 천재시인 소노다 가쿠요는 2번의 정사 미수 끝에 자살한 인물. 그러나 그의 친구이기도 했던, 그리고 그의 전기를 쓰다가 중단한 "나"는 그의 2편의 정사 미수 후 발표된 "정가"와 "소생"이라는 시를 분석하여 그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다.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에 9위로 선정된 "회귀천 정사". 바로 그 작품입니다. 천재 시인의 연작시를 토대로 과거를 밝혀내는 전개의 작품으로 시를 통해 발현되는 문학적 가치도 빼어나지만 사건 앞뒤에 포진한 단서와 복선을 가지고 결말까지 이르는 과정 역시 이치에 합당하며 정교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 한편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가 여러배 높아지는, 그만큼 뛰어나면서도 항상 읽고 싶었던 작품이기에 무척 만족스럽네요. 단 일본어 였을 때 너무나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느껴졌을 싯구들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그 맛을 좀 잃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점이 있고 정통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는 추리의 과정이 심심한 편이긴 합니다. 그래도 걸작은 걸작입니다.

15. 나무에 오르는 개 - 구사카 게이스케
"나"는 동생 겐지가 신이라는 친구가 사고로 사망한 뒤 남은 유일한 친구 히데오와 개가 나무에 올라갈 수 있는지 없는지 때문에 격렬하게 싸우는 것을 중재하다가 과거 헤어진 연인 마치코의 집까지 찾아가게 된다. 그 며칠 뒤 개가 우물에 빠지는 사고, 그리고 겐지마저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나"는 모든 사고의 원인이 된 나무에 올라가 모든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찾아내게 된다.
제가 그간 읽었던 구사카 게이스케의 작품은 항상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서 소품 느낌을 주면서도 정교함과 더불어 독자의 뒷통수를 치는 반전이 인상적인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과거의 사건과 연결되어 정교하게 현재 시점의 사건을 다루는 솜씨가 역시나 탁월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반전도 인상적이고요.

16. 휘파람 새를 부르는 소년
역시나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 걸작선"에 수록되어 접해보았던 작품입니다. 거기서는 "꾀꼬리"라고 되어 있지만 같은 작품이죠. 위에 쓴 평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더 마음에 듭니다. 추리나 결말이 더 제 취향이었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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