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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3

문유 1~4 - 조석 : 별점 3점

문유 4 - 6점
조석 지음/위즈덤하우스

<<마음의 소리>>로 잘 알려진 웹툰 작가 조석의 장편 SF.

굉장히 심각한 과학적인 이론을 바탕에 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구가 멸망하고 자기 혼자 달에 살아남았다고 생각한 생존자와, 실제로는 멸망하지 않은 지구에서 생존자의 일상이 TV로 방송된다는 아이디어가 정말 빼어나요. 이 방송 덕에 문유가 의도치않게 전 지구적인 스타가 된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트루먼 쇼>>의 변주같지만, 이를 '달 기지'와 '운석의 습격'이라는 상황을 결합하여 설득력있게 꾸며내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차별화됩니다.

또 이러한 문유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인 덕분에 조석의 특기인 일상계 느낌이 강하게 담겨있다는 것도 큰 특징입니다. 문유의 일상 이야기가 다양한 장르로 그려진 것도 눈길을 끌고요. SF는 물론 캥거루 캥콩이나 또다른 생존자 탐색 및 추격을 그린 일종의 범죄 스릴러, <<마음의 소리>> 스타일의 개그, 심지어 추리물!까지 포함되어 있는 등 장르적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요. 긴 심각한 장편 드라마를 쪼개어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다는 점에서는 이시구로 마사카즈의 <<외천루>>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상 이야기와 함께 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전개도 꽤 괜찮습니다. 적절하게 삽입된 복선이 좋은 예입니다. 실제로 지구와 통신이 가능하다는 것이 중반부에 밝혀지고, 무선 이어셋이 중요한 소품으로 쓰인다던가 하는 식이죠. 작화도 빼어나지는 않지만 웹툰 1세대다운 내공으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내고 있고요.

아울러 곳곳에 감동을 자아내는 에피소드들이 적절히 배치된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지구인의 마지막 친구"라는 묘비, 캥콩을 지구로 보내는 장면, "We love M.Y"를 전지구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시도 등은 사람을 뭉클하게 만들더군요.

물론 아주 좋은 작품이냐? 하면 그렇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긴 호흡의 이야기와는 무관한, 별개의 에피소드가 너무 중요하게 삽입되어 있는 것은 좀 아쉬웠어요. 예를 들자면 "인공 태양을 활용한 무기" 설정이 그러합니다. 분량과 비중에 비하면, 결국 개그로 활용되었을 뿐이고 이야기와는 무관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무기가 있다면 운석을 향해서 한방 쏘기라도 하던가...
또 이야기 속에서 헛점도 많습니다. 아무리 지구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달 기지가 위치해 있더라도, 마지막 순간에서야 지구에 불이 밝혀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좀 무리라 생각됩니다. 그 외, 로봇을 활용할 수 있는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도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이 너무 늦게 시작된다던가, 겨우 100명 정도 밖에 없는 기지에서 사람을 두고 귀환한다는 것 등도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수천명이 있었더라면 모를까...
또 여러가지 무리한 설정들도 개그로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심각한 드라마와 유기적으로 잘 결합되지는 않습니다. 주로 캥콩이 등장하는 장면이 그러해요.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사용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조석이라는 작가의 능력을 돌아볼 수 있었던 좋은 작품이었다 생각됩니다. 읽는 내내 즐거웠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그리 긴 분량도 아닌 만큼,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그나저나, 이야기 특성 상 영화로 만들만하다 생각되는데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얼마나 제작비를 효과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큰 돈 안쓴 저예산 SF로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2017/09/17

그 무렵 누군가 -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 별점 1.5점

그 무렵 누군가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주말을 보내기 위해 아무 생각없이 집어든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그간 읽어왔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그래도 무난한 수준들이었기에 이번에도 적당한 재미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후지 TV 드라마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즈"의 원작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한 책 뒤 소갯글에 낚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주 별로였습니다. 폭탄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해요. 모두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평균 정도 수준의 완성도를 갖추었다 생각되는 것은 <<수수께끼가 가득>>, <<레이코와 레이코>>, <<재생 마술의 여인>> 세 편 뿐이며, 다른 작품들은 너무할 정도로 그 수준이 낮거나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2011년 일본에서, 그리고 2014년 우리나라에서 발표되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과 내용이기에 조금 조사해보니, 실제로는 20여년 전 일본 버블 경제 시기에 발표되었던 단편들이더군요. 대 인기 작가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묻혀있다가 20여년 만에 발표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너무할 정도로 수준이 낮아서 책을 내 봤자.. 라고 생각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정도로 한심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작가의 수많은 책 중에서도 최 하급을 차치할 유력 후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시더라도 딱히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전무합니다. 다른 좋은 책들도 많으니까요.

수록 작품별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수께끼가 가득>>
야요이의 애인 다카노리가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야요이는 다카노리의 친구라 자칭하는 기타자와라는 남자 등으로부터 사건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전해듣는다. 그것은 다카노리가 거부 나카세 고지로 사장의 유언장을 훔쳐 은닉하였다는 것인데...

페라리와 베엠베, 고층 고급 빌라, 회원제 스포츠 센터 등 버블 시대의 환영이 가득한 작품. 그러나 버블에 대해 정색을 하며 비판하던 기요미가 진범이라는 결말은 독자를 허탈하게 만듭니다. 야요이를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이 돈만 쫓는 속물이라는 결말이니까요. 물론 어차피 진지한 버블 비판이 담긴 사 회파 작품은 아닌 만큼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문제가 많습니다. 작 중 등장하는 트릭은 두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마법사의 손"이라는 기타자와의 대사, 다른 한 가지는 다이잉 메시지 "A"입니다. "마법사의 손"은 "선인장"을 암시하는 말인데, 이미 작중에서 기타자와가 온실에서 시간을 보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대단한 트릭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진작에 조사하지 않은게 오히려 이상하죠. 
"A"라는 다이잉 메시지는 최악이에요. 범인을 나타내는 말도 아니고, 유언장의 트릭을 밝혀내는 키워드에 불과해서 죽기 직전에 쓸 말이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거든요. 이를 가지고 기요미가 범인이라고 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고요. "다이잉 메시지"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작위적인 설정이라 이를 활용한 작품이 좋은 작품이기는 힘든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 TV에서 영상화되었다고 소개되는데, TV로 보는게 훨씬 좋았을 그럴 작품입니다.

<<레이코와 레이코>>

변호사 요코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 레이코를 거두어 돌봐준다. 그러나 레이코는 마에무라라는 남자를 살해한 혐의로 수배된 상태인데...

<<수수께끼가 가득>> 처럼 버블의 환영이 가득하다는 것이 눈에 뜨입니다. 청색 메르세데스 벤츠를 타고다니는 젊은 여성 변호사, 아르마니 양복과 롤렉스 시계로 치장하고 현금은 20만엔 씩 들고다니며, 차량은 6백만엔에 달하는 청색 세르시오라는 29살의 증권 회사 직원 등이 등장하니까요. 이 정도면 여고생 지갑이 구치인 것은 굉장히 소박해 보일 정도네요.

그래도 트릭 한가지는 꽤 괜찮습니다. 레이코가 사나에의 결혼 상대에게 살의를 품는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된 마에무라의 아내가 그녀를 살해에 이용한다는 일종의 원격 조종 트릭인데 꽤 그럴싸하게 그려져 있거든요. 과거 성폭행 경험으로 정신 이상이 생긴 레이코의 상태를 전편에 걸쳐 상세하게 묘사하는 것도 이 트릭에 설득력을 더해주고요.
또 레이코는 다중 인격자이며, 현재의 상냥한 레이코는 과거 살인을 저질렀던 흉폭한 레이코에 대해 모든 것을 잊은 기억 상실 상태라는 결말에서, 사실 이 모든 것은 흉폭한 레이코의 '연기'일 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반전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상당히 서늘하면서도 신선한 아이디어로 이렇게 소모되는게 아깝다 생각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다중 인격이라는 설정은 분명 진부한 설정이고, 너무 극단적인 이상 심리 상태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작위적이긴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재생 마술의 여인>>
네기시 부부는 어렵게 아이를 입양한다. 그리고 아내를 먼저 돌려보낸 네기시 미네카즈에게 입양 센터의 책임자 나카오 아키요는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과거의 범죄, 그리고 현재의 충격적인 진상과 뒤이어 반전으로 끝나는 전개도 무척 좋고요.
그러나 핵심 설정, 즉 '이미 사망한 피해자의 몸 속에 남아 있던 정액을 보관했다가 이를 7년 후에 체외 수정하여 아이를 만든다'는 것을 미네카즈가 믿는다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20여년 전 이야기라고 해도 설득력이 부족해요. 이 정도 기술력이 있다면 정액의 DNA를 분석하여 범인을 찾아내는게 훨씬 빨랐을테죠. 네기시 미네카즈가 공부만 좀 했더라면 별 일 없이 끝났을겁니다. 혹 공부와 자기 개발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작가의 큰 뜻이 담긴 것일까요?

물론 그럴리는 없고...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는 있지만 핵심 설정이 말이 안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아빠 안녕>>
<<비밀>>의 원전입니다. 그러나 단편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에요. 사고로 딸 가나에의 몸 속에 엄마 요코의 영혼이 들어오고, 곧바로 딸이 결혼하면서 끝나버리거든요. <<비밀>>에서처럼 여러모로 복잡 미묘한 부부, 부녀의 관계를 디테일하게 그리지 않아서 영 볼게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1점. 완성된 한 편의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비밀>>을 쓰기 전 편집자에게 건네준 요약본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에요.

<<명탐정의 퇴장>>

본격 고전 퍼즐 미스터리를 패러디하는 작품. <<명탐정의 규칙>>의 원전격 되는 작품입니다. 패러디 외에는 별다른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만화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패러디가 이어지더라도 결국 트릭과 진상이 존재하는, 그런 작품이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여자도 호랑이도>>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를 연상케하는 초단편. 사형수가 문을 3개 열 수 있는데, 한개는 여자, 또 하나는 굶주린 호랑이, 또 하나는 뭔지 모른다는 설정은 재미있었어요. 결국 또다른 하나는 여자이자 굶주린 호랑이었다... 는 결말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이 여자가 '여자의 문' 속 여자인지, '제 3의 문' 속 무언가였는지 밝혀지지 않는 것은 좀 답답했습니다. 이게 핵심이라서 조금 더 정교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자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동경하던 야마사키 유카리와 데이트한 직후, 정신이 든 '나'는 끔찍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이유를 추리하는데...

'나'가 이 상황에 처한 이유를 처음부터 되짚어 하나씩 밝혀내는 전개는 괜찮았어요. 야마사키 유카리의 완전 범죄 계획 역시 아주아주 그럴듯하고요. 여러가지 상황에서의 목격자 증언을 활용한다는 것과, 간단한 바꿔치기 트릭이 핵심인데 간단한만큼 설득력도 높습니다.

그러나 과학 수사 시대에 맞는 트릭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가 탄 것으로 추정된 택시의 지문 조사만 해도 경찰이 상황은 쉽게 파악할 수 있을테죠. 택시에 대한 상세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나'와 유카리의 남자가 동일 인물이 아닌 것이 증명될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수사적으로 부족한 것은 20년 전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이야기가 기승전결이 확실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문제도 큽니다. '나'가 진상을 깨닫고, 자신이 수면제를 먹고 손이 묶인 채 목을 메달기 직전이라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 탓입니다. 다른 장편이라면 도입부에 불과한 내용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느낌이거든요. 여기서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아 복수를 하던가 해야 하는데, 그냥 이렇게 마무리 되니까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가 완성되지 못한 느낌이 강한데, 이어지는 속편이나 후속 이야기가 없다면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 것 같네요.

<<20>>

결혼해서도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남편 데루히코에게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아내 아사코는 그를 미행하게 되는데...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히가시노 게이고스러웠던 작품. 평범한 가정 주부 아사코가 남편 데루히코가 지닌 비밀이 무엇일까?를 파헤치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대학생 등이 주인공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스탠드 얼론 작품들과 유사하죠.

하지만 데루히코의 비밀이 너무 별게 아니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어린 시절 유괴되어 살해된 니시노 하루미와 나비를 잡으러 가기로 하고 가지 않은 탓에 그녀가 죽었다는 자책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인데... 이 사건과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결심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당쵀 모르겠을 뿐더러, 진상 자체를 이미 시미즈 부부가 알고 있던지 오래였다는 허무한 결말은 영 별로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좀 더 충격적이고 설득력 있는 과거 사건이 드러났더라면 아주 괜찮았을텐데... 이대로는 아닙니다. 하기사, 그랬더라면 여기 수록된 단편 수준으로 끝나지는 않았겠죠.

2017/09/16

피너츠 완전판 8 : 1965~1966 - 찰스 M.슐츠 / 신소희 : 별점 3점

피너츠 완전판 8 : 1965~1966 - 6점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북스토리

1965~1966년까지의 연재분이 담긴 피너츠 완전판 제 8권. 향후 이야기를 끌고갈 중요 캐릭터와 설정이 많이 등장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중요 캐릭터로는 페퍼민트 패티와 우드스탁이 대표적입니다. 라이너스와 찰리 브라운의 캠핑 친구 로이를 통해 알게 된 소녀로 페퍼민트 패티가 첫 등장합니다. 찰리 브라운을 '척'이라고 부르고, 스누피를 개라고 생각하지 않는 등 기묘한 설정은 처음부터 그러하더군요. 그녀는 향후 이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후 비중에 비하면 등장이 너무 늦은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스누피 배 위에 만들어진 둥지에서 태어난 아기새는 이름은 아직 등장하지 않습니다. 허나 우리가 알고 있는 우드스탁과 똑같이 생겼더군요. 아마 다음 권 쯤에는 이름이 부여될 것 같네요. 아직까지 대단한 활약은 없지만, 이름과 함께 활약 역시 많아지겠죠?

또 향후 이야기를 끌고갈 중요 설정들도 많습니다. 드디어 스누피가 "어둡고 폭풍우 치는 밤이었다."로 시작되는 소설을 씁니다! 심지어 첫 작품은 팔리기까지 했으니 굉장히 성공적인 데뷰에요.
1차 대전의 격추왕이 그의 비행기 소프위드 캐멀과 함께 숙적 레드 배런과 벌이는 한판 승부도 드디어 펼쳐집니다. 특히 이번 권에서는 이 격추왕 에피소드가 많은데, 발표 당시부터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언제나의 설정을 바탕으로 한 에피소드들도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행복이란 따뜻한 강아지의"의 몇가지 변주를 비롯하여, 루시가 진행하는 정신과 상담, 라이너스와 담요에 관련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대표적이죠. 당연히 주인공 찰리 브라운 관련 에피소드도 가득합니다. 이번에는 표지 모델까지 차지한 덕분인지, 이전 권보다도 훨씬 활약이 많은 듯 해요. 패배를 거듭하는 야구팀, 빨간 머리 소녀, 연날리기 등 익숙하고 친근한 개그들이 주로 선보이는데, 역시나 잔잔한 재미를 안겨줍니다.

이외의 깜짝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루시와 라이너스가 이사를 간다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입니다. 정말 깜짝 놀랐네요. 곧바로 돌아와서 다행일 뿐이죠... 샐리가 약시를 고치기 위해 내내 안대를 하는 에피소드도 신선했고요. 앞서 말씀드렸던 캠핑 에피소드도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물론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뻔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익숙하고 친근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거에요. 게다가 이번 권은 새로움마저 더해져 있기에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피너츠 팬이라면 구입하지 않을 방도가 없는 매력이 넘칩니다. 피너츠를 좋아하신다면 놓치기 마시길 바랍니다.

2017/09/14

누런개 - 조르주 심농 / 임호경 : 별점 2.5점

누런개 - 6점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

브르타뉴의 항구 도시 콩카르노에서 지역 유지 모스타구엔이 총격을 받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를 수사하기 위해 메그레 반장이 부하 루르와와 함께 현장에 도착한다. 그러나 모스타구엔과 절친으로 라미랄 호텔에서 만나던 지인들인 장 세르비에르, 르포므레가 각각 실종되고 독살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또다른 지인 닥터 미슈는 구금된다. 시장의 닥달에도 불구하고 메그레는 서서히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나가는데....

'열린책들'의 메그레 시리즈 5편. 메그레 시리즈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과거 국내에서 여러번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읽어본 적이 있긴 하나 너무 옛날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던 차에, 알라딘의 15일간 무료 대여 이벤트 기회를 통해 다운로드 받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역시나, 대표작은 대표작이네요. 메그레 시리즈의 모든 특징이 잘 나타나 있거든요. 우선 당대 프랑스에 대한 세세한 묘사가 아주 좋습니다. 이 중에서도 부패하고 방종한 지역 유지들과 피해자인 엠마, 레옹 커플의 비참한 삶과 현실을 대비시키는 부분은 백미입니다. 사회의 모순, 가진 자들의 횡포를 비난한다는 점에서 시공을 초월한 사회파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이니까요. 아울러 사건 현장마다 나타나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자극하는 누런개를 둘러싼 긴장감도 잘 드러나 있고요.

또 인간 심리를 깊게 파고들어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메그레 반장의 능력도 유감없이 펼쳐질 뿐 아니라, 그동안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었던 다른 메그레 시리즈와는 다르게 메그레 반장의 추리법으로 '소거법'이 잘 드러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반장은 모스타구엔 사건, 라미랄 호텔 독살 미수 사건, 장 세르비에르 실종 사건, 르포므레 독살 사건에 대해 각각 범행이 가능한 인물을 설정하고 여러가지 이유를 통한 소거법으로 결국 범인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진범 닥터 미슈에게 단두대 행이 아니라는 것은 아쉽지만 나름의 응징이 가해지고, 불행했던 엠마 커플이 단란하게 살아가는 결말도 마음에 듭니다.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결말이 대부분인 다른 메그레 시리즈와 사뭇 분위기가 다른데, 저는 이런 결말이 더 좋더라고요. 고생은 이미 할 만큼 한 엠마에게 더 이상 괴로운 일이 없었으면 했거든요.

그러나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전개에 있어 작위적인 부분이 눈에 많이 뜨인다는 점입니다. 초반부, 페르노에 다량의 스트리크닌이 함유된 것을 닥터 미슈가 알아챈 것이 대표적인 예죠.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는 순전한 우연에 불과해서 정교한 맛은 부족해요. 메그레 반장이 옥상에 숨어 엠마와 레옹 커플의 애정 행각을 엿보는 동안 총격 사건이 발생하여 레옹이 진범이 아님을 눈치챈다는 것 역시 완전한 우연입니다.
또한 이 때 레옹의 은신처를 알아낸 방법도 설명되지 않고, 결국 마지막 추리쇼에서 진상을 장황하게 이야기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는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추리적으로 괜찮다고 해도 메그레 시리즈 기준이지 일반적인 추리소설 기준으로 보면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지금 읽기에 낡았다는 것도 분명하고요. 하지만 고전으로서, 또 유명 시리즈의 대표작으로서의 가치는 아직 유효합니다. 고전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7/09/10

올빼미의 울음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홍성영 : 별점 3.5점

올빼미의 울음 - 8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연히 엿본 여자에게 마음이 팔린 로버트는 그녀를 스토킹하다가 발각된다. 그러나 오히려 그녀 제니는 로버트를 사랑하게 되며, 그 때문에 약혼자 그렉과 파혼한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그렉은 로버트를 습격하지만 이후 행방불명되고 만다. 로버트는 그렉 살해 누명을 뒤집어 쓰게되고, 이후 주변의 시선과 로버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 제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마는데....

서늘한 심리 묘사 측면으로는 장인의 반열에 오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장편.
아무런 정보 없이 처음 접해본 작품. 제가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 '버티고' 레이블이라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버티고'에서 출간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또다른 작품인 <<심연>>은 영 별로였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 작품, 물건입니다. 최고였어요. 나름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의 삶에 균열이 생기고, 그것이 점차 커져가 그와 그 주위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중반 이후, 제니의 약혼자 그렉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를 죽인 살인자로 몰린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압도적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무너져가는 제니와 로버트의 삶에 대한 묘사가 그만큼 대단하거든요. 무엇하나 잘못한 것이 없는데 서서히 궁지에 몰리는 전개는 보는 내내 굉장히 답답하고 짜증이 나지만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의 몰입감을 선사해줍니다. 비유하자면 야구 응원팀이 매 회 실점하는 상황에서도 계속 무사 만루 찬스를 잡지만, 마지막 회까지 한 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느낌이랄까요? 무언가 해결될 것 같지만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수렁에 계속 빠지는 전개는 정말이지 똑같습니다.

이 와중에 등장하는 주변인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 역시 수렁에 빠지는 과정에 실감을 더해 줍니다. 유일한 친구로 믿었던 직장 동료마저 함께 하기를 거부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살인자라 욕하며, 심지어 경찰마저도 면전에서 대 놓고 비웃는 등의 묘사가 이어지는데 독자라서 정말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끔찍해요. 그렉이 로버트를 죽이려고 총을 들고 쳐들어온 날, 운 좋게 그를 제압하는데 성공한 로버트를 도와주지 않고 오히려 그렉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이웃 콜비씨 에피소드는 그 중에서도 백미죠. 흉기를 들고 쳐들어 온 낯선 남자를 제압했지만, 이웃이 나보다 이 남자를 더 신뢰하는 상황인 것인데 이 쯤 되면 모든 곳에서 도망치고 싶은 생각밖에는 안 들것 같아요. 출구없는 감옥과 다를게 없죠.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 로버트가 제대로 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죠. 아주 평범한 인물이었다면 이 상황이 더 끔찍하게 다가왔겠지만, 그가 제니의 집 앞을 일부러 배회하고 스토킹한 것은 사실이거든요. 제목처럼 올빼미가 밤에 울 듯 그의 밤 산책이 모든 것의 원인이 된 것이죠. 그가 밤 산책을 하지 않았다면, 뒤 이어질 엄청난 비극 - 세 명의 죽음 - 은 일어나지도 않았으리라는 점에서 면죄부를 주기는 힘듭니다. 올빼미만 울지 않았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아울러 제니의 자살에는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이유도 존재하며, 그 외에도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몇몇 묘사들 역시 그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기는 어렵게 만듭니다.
또 제니가 낯선 스토커와 곧바로 사랑에 빠진다던가, 로버트의 전처 니키가 그를 파멸시키지 못해 안달이 난 이유 등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해 답답합니다. 캐릭터 설정이 그닥 탄탄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나마 제니는 동생의 죽음으로 죽음과 항상 맞닿아 있었기에 '죽음'을 상징하는 로버트와 엮일 인연이었다...는 설명 (물론 설득력은 없습니다) 이라도 해 주지만 니키, 그렉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못해요. 니키가 왜 로버트를 이렇게까지 미워하는 것인지 독자는 도무지 알 길이 없어요. 심지어 자기 돈까지 들여가면서 로버트를 파멸시키려 노력하는데 그 심리를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렉은 실연으로 괴로워하는 성인에서 복수와 자기 합리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어린아이로 돌변하는 느낌이고요. 제니가 자살한 이유는 로버트 때문이 아니며, 실종된 그렉을 살해했다는 누명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는 것도 망각한 유아적인 태도에는 몹시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마지막에 술에 취한 그렉에게 니키가 살해당하는 결말은 끔찍하지만 시원해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니키가 벌인 그간의 행동은 죽어도 싸다 여겨지니까요. 그렉 역시 보석 기간에 살인을 저질렀으니 전기 의자 행은 피하기 어려울테고 말이죠. 이 정도면 9회말까지 시청한 관객을 위한 시원한 역전 홈런 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9회말까지 보는 동안 암에 걸려도 일곱번은 더 걸렸겠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아쉬움 때문에 조금 감점하지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장편 중에서 재미와 함께 서스펜스를 가져다 주는 보기드문 수작입니다. 명성에 비하면 '재미' 측면에서는 부족했던 작가인데 이 작품은 제가 읽은 하이스미스 장편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네요. 아직 읽지 않으신 범죄 문학 애호가 분들께 적극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덧붙이자면, 영화화가 바로 연상될 정도의 묘사가 출중한데 역시나 영화화가 되었더군요. 그것도 1987년, 2009년 두번이나요. 이 중에서도 1987년 작품은 거장 클로드 샤브롤이 감독하기도 했고, 가장 잘 만든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원작 영화 중 한 편이라고도 하니 한번 구해보고 싶군요.

2017/09/09

토니와 수잔 - 오스틴 라이트 / 박산호 : 별점 2점

토니와 수잔 - 4점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gt;

심장전문의 아놀드와 자식 세명과 함께 사는 수잔은 어느날 전 남편 에드워드로 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그가 쓴 소설을 읽고 평가해 달라는 것. 수락한 수잔에게 보내진 소설 <<녹터멀 애니멀스>>를 읽어내려가면서, 수잔은 소설의 전개와 함께 자신들의 인생을 반추하게 되는데...

어딘가에서 멋드러진 리뷰를 읽고 집어든 작품. 480페이지에 이르는 대장편으로 극단적인 "액자 소설"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에드워드의 <<녹터멀 애니멀스>>라는 작품을 작 중에서 그것을 읽어내려가는 수잔의 심리와 함께 실시간으로 병행 전개하고 있거든요. <<녹터멀 애니멀스>>의 주인공이자 화자 '토니 헤이스팅스'와 '수잔'이 전개의 두 축이기에 제목도 <<토니와 수잔>>인 것이죠.

우선 <<녹터멀 애니멀스>>는 딱히 대단한 작품은 아니에요. 아내와 딸이 강간 살해당한 대학 교수 토니를 그리는데, 묘사는 괜찮지만 신선한 부분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류의 복수극은 너무 흔하기도 하고요. 토니를 유약한 찌질이로 설정하여 강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기는 하지만 결국 그 뿐입니다. 불한당들에게 어설프게 저항한 것 때문에 자책하는 묘사를 디테일하게 풀어줬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더군요.
그래서 수잔 파트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보통 액자 소설의 경우, 작중 진행되는 책과 본편 이야기가 어떻게 엮이냐가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았는데 절묘하게 엮인다던가, 아니면 그냥 소설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굉장한 트릭이 숨어있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

그러나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수잔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한 중년 여성의 상념을 다룬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 정교하게 짜여진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에드워드가 그녀에게 책을 보낸 의도가 일종의 복수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는 전개가 특히 그러합니다. 25년전 소설을 쓰지 못한다고 자신을 비난했던 수잔에게 "내가 쓴 소설을 읽어봐! 죽이지!"라는 과시, 그리고 그녀의 대한 경멸을 담은 것이죠. 마지막에 소설을 다 읽으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러 오겠다고 하고 수잔을 바람 맞힌 이유도 "너의 의견 따위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라는 극도의 모욕이고요.

허나 이 모든 것은 수잔의 생각일 뿐, 별다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나마 근거라면 에드워드가 찾아오지 않은 정도? 그 외의 모든 것들 - 수잔이 책을 읽고 나서 현실에 타협한 자신과 현 남편 아놀드에게 분노를 느낀다던가, 에드워드의 복수라는 것을 눈치챈다는 것 등등등 - 은 자신의 과거와 처한 상황에 대한 수잔의 생각일 뿐입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페이스 북 등의 SNS에서 잘나가는 동창의 근황을 보고 열폭하는 심리 묘사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 동창이 나를 미워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은 것으로 오해하는 식이고 말이죠.

아울러 본인 상념에 기초해서 수잔이 에드워드에게 '평이 궁금하면 자신을 만나러 올 것'이라고 편지를 보내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녹터멀 애니멀스>>를 빗대어 보면, 토니는 평생을 찌질하고 나약하게 보냈지만 결국 원수에게 마지막 응징을 가하고 죽게 되죠. 이처럼 에드워드 역시 마지막 복수를 수잔에게 가하는데 성공했다면 이후 일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의미가 쉽게 도출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에드워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무의미한, 헛된 몸부림일 뿐인거죠. 책을 읽고 자신에 대한 온갖 생각은 다 하면서 이런 정도의 상상력조차 수잔이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수잔에게 감정이입을 하기가 더더욱 힘들어져 버립니다. 순전히 그녀의 망상일 뿐이라는 확신을 굳히게 만들 뿐이에요.

물론 아주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480여 페이지 분량이 쉽게 읽힐 정도로 잘 쓰여져 있긴 하거든요. 특정 책을 읽고 특정 독자가 느끼는 온갖 상념을 글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한 복잡하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어떻게든 하나로 완결된다는 점도 대단했고요. 또 책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남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반적인 액자 소설 상식에서 벗어난 구성의 아이디어가 참 좋네요.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보통 액자 소설은 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와 밖에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는 엮이는데, 이 책은 그냥 독자의 감상평으로만 엮여 있다니 정말로 기발하잖아요?

하지만 저에게는 좋은 작품, 좋은 '스릴러'라고 보이지는 않았어요. 한 여자의 내면 심리 묘사를 그린 일종의 순문학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버티고" 레이블의 책들은 심리 묘사가 중심인 작품이 많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최고 수준입니다. 이런 류의 여성 심리 묘사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면 권해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나저나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단순히 상념이 중심인 수잔의 파트는 어떻게 영상화했을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군요.

2017/09/08

독서만담 - 박균호 : 별점 2.5점

독서만담 - 6점
박균호 지음/북바이북

국내의 애서가 박균호씨가 자신의 일상 및 그에 관련된 책을 하나씩 소개하는 독서 관련 에세이 모음집. 이런저런 책도 몇 권 쓰셨고 상도 타는 등 이 쪽에서는 상당히 유명하신 분으로 보이네요.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가던 차에 읽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든 것은 독서를 강요하거나 과시하지 않는 일상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유명 애서가, 독서가 다운 내용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오카자키 다케시라고 하기에는 과장이지만 충분한 내공은 느껴졌어요. 저 역시 독서가 취미라고 자부하고 있기에 공감가는 내용도 많았고요.
이미 절판된 책을 구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대표적입니다. 제게도 몇몇 희귀본을 구하기 위해 온갖 인터넷 서핑은 물론, 발품까지 팔아가며 헌책방을 순례했던 과거가 있으니까요. 책을 보물처럼 다루는, 정신적 사랑을 하는 애서가와 책을 막 다루는 육체적 사랑을 하는 애서가가 있다는 분류법도 와 닿습니다. 저도 정신적 사랑을 하는 애서가 쪽이라... 최근 제 딸이 제가 구입한 책을 마구 볼 때 가슴 한 켠이 아련해지곤 하거든요.
재미난 정보도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비자금 숨기기 용도로 새로운 책의 활용법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연히 책 속에 현금을 꽂아 놓는 방법이 등장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저자는 "사진집"을 사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제 값 받고 쉽게 팔 수 있는, 환금성이 좋기 때문으로 국내 사진가로는 김기찬의 작품, 해외는 마이클 케나의 사진집이 특히나 현금화하기 좋다고까지 소개해 줍니다. 이 정도면 진정한 꿀팁이겠죠.

저자가 소개하는 일상 속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습니다. 이러한 일상 이야기가 결국 이런저런 책 이야기로 이어지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서적 버젼의 <<오무라이스 잼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에요. 학교 교사 시절 만났던 문제아 '정미소 왕자'와의 추격전에서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로 이어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휴게소에서 너무나 맛있는 오뎅을 먹었고, 그 휴게소가 보면 볼 수록 기묘한 장소더라라는 이야기에서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로 이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놀라움과 행운을 안겨다 준 책이라는 점에서 같다는 것이죠.

이렇게 일상과 함께 소개되는 책들도 당연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책들과 더불어,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 너무나 사랑해서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은 한 권인 <<숨어사는 외톨박이>>
  •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피터 게더스의 <<노튼 3부작>>
  • 엘리엇 어윗의 사진집. 플립북 형태로 사진을 동영상처럼 감상할 수 있다고 함.
  • 이윤기의 소설 <<하늘의 문>>.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별명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멋진 문장이 가득함.
이렇게는 꼭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읽고 좋아했던 책들이 소개되는 부분도 반갑습니다. 같은 책이지만 저자가 저와는 다르게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고요. 예를 들면 <<에이드리언 몰의 비밀일기>>가 나름 영국 신자유주의 정책 부작용을 그린 뒷배경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제가 읽은 것은 이십여년 전이라 그 때는 그냥 웃고 넘기고 말았는데, 한 번 다시 읽어봐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는 아내와의 냉전을 다룬 이야기가 반복되어 많이 지루합니다. 초, 중반부까지의 독특한 시각과 발상도 별로 없고요.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중반 이후는 한 개의 같은 이야기 (냉전)를 가지고 소개하는 책만 바꾸어가며 소개하는 느낌이에요.
아울러 뒤로 가면 갈 수록 책 보다는 일상 속 에피소드의 비중이 많아지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덕분에 책 소개도 중요 에피소드 정도에 그쳐서 얄팍합니다. 별다른 깊이를 느끼기 힘들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취미가 독서인 애서가들을 위한 괜찮은 에세이집이었습니다. 가벼운 에세이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단, 중반 이후부터는 좀 많이 뻔합니다...

2017/09/03

미스테리아 13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5점

미스테리아 13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미스테리 장르문학 전문잡지 미스테리아 최신간. 창간 2주년 기념호라 그런지 특별 보급가이기도 하고, 항상 관심있게 찾아보던 주제인 "경성"을 특집으로 하고 있어서 구입해 읽어보았습니다.

우선 특집인 "경성" 관련 기사들은 기대에 값합니다. 1930년대 경성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장르 문학'과 관련된 시각으로 설명해주는 내용인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별건곤>>에 실렸다는 경성 7대 특수촌이나 5대 마굴에 대한 탐사기는 충분히 하나의 작품 소재가 될 만큼 재미있었어요. 경성을 탐정 소설의 배경으로 바라보아 분석하는 기사들도 좋았습니다. 예를 들면 <<염마>>에 등장하는 서광옥의 X별장이 "체신국 뒤로 해서 개천을 메워가지고 새로 낸 큰길을 단 후 누상동 큰거리에서 언덕 위에 지은 큰집을 찾았다"라는 묘사를 통해 '아방궁'이라 불렸던 친일파 윤덕영의 저택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알려주는 식이죠. 여기에 더해 남촌과 북촌의 특수성과 같은 사회적인 부분이라던가, 아편굴과 같은 특수 장소와 같은 당대 경성에 대한 갖가지 디테일이 가득하여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울러 박태원의 <<최후의 억만장자>>는 예전에 읽어봤던 작품으로 내용은 별 볼일 없지만, 삽화를 맡았던 월북 화가 정현웅의 그림만큼은 마음에 들었어요. 목판화 스타일의 삽화는 지금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수준의 완성도라 굉장히 놀라왔거든요.

물론 이런저런 한국 추리소설 역사서에 실려있는 내용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기사들도 제법 됩니다. 김동인의 <<수평선을 넘어서>>에 대한 기사가 대표적이에요. 얼마전 읽었던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에 수록된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거든요. 주제에 맞춰 "경성"이라는 공간, 배경에 집중하지 않고, 당시 사회적 배경을 통틀어 설명하고 있는 탓입니다. 이렇게 풀어내면 다른 유사한 컨텐츠와 변별력을 가지기 힘들죠.

그래도 이나마는 괜찮은 수준이고... 특집 외의 기사들은 기대 이하의 결과물이 많습니다.
홍보 문구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8인에게 가상 표지를 제안했다는 <<세상에 아직 없던 책>>은 그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박철희의 <<환상의 여인>> 정도만 괜찮을 뿐 솔직히 여기 실려있는 표지로 실제 책이 출간된다면? 구매 욕구를 느낄만한 책은 단 한 권도 없습니다. 요새 대학생들 과제도 이것보다는 괜찮을 것 같은데, 그냥 왠만한 미술 대학 디자인 학과와 연계하여 결과물을 수록하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또 <<미스테리아>>의 핵심 컨텐츠인 리뷰 형태의 새 책 소개도 이번에는 그냥저냥입니다. 그닥 끌리는 책이 없더군요. 게다가 리뷰어 중 한 분은 "인형사, 자유기고가"라고 되어 있는데, 무슨 기준의 리뷰인지도 헛갈립니다. 꼭 전문가가 좋은 리뷰를 쓴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는 컨텐츠가 아니라, 비용을 들여 구입한 책의 리뷰라면 그만큼의 전문성은 보장되어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요? 그리고 미스터리 애호가라면 최소한 인터넷을 통해 잘 알려진 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잠깐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당쵀 뭐하시는 분인지 모르겠더군요. 이 분이 소개하는 기타무라 가오루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들도 구태여 리뷰가 필요한지도 의문입니다. (심지어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은 '소시민'시리즈 최신간!) 이 잡지를 구해 읽어볼 정도의 독자라면, 이 두 작품은 딱히 리뷰가 필요없을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는 독특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까 싶네요.

뒤 이은 영화 <<불한당>>의 감독 인터뷰 역시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감독이 SNS를 통해 실수했던 이력만 기억에 남을 뿐으로 이런 인물을 지면을 할애해가며 인터뷰를 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불한당>>이 국내 범죄, 느와르 영화에서 특기할 만한 성취를 이룬 작품인가요?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별로 그랬을 것 같지도 않네요.

특집 외 기사들 중에서는 미스테리 속 음식에 대해 파헤치는 정은지 작가의 컬럼과 3편의 논픽션 정도만이 그나마 괜찮은 편입니다.
정은지의 는 국내에는 소개된 적이 없는 형사 몬탈바노 시리즈를 소개하며, 작 중 등장하는 다양한 이탈리아 요리들의 소개가 곁들여지는 구성인데 재미도 있고 신선했습니다. 제가 준비 중인 '장르 문학 속 음식 이야기'라는 컬럼과 비교되어 자극도 되었고요.
3편의 논픽션은 법의학자가 분석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살인 매뉴얼, 한강변에서 발견된 시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중 마지막 이야기가 가장 강렬합니다. 범인을 조작하려는 경찰의 노력에, 무고한 용의자가 겨우 혐의를 벗는 과정, 그리고 결국 미제 사건으로 범인은 커녕 피해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결말까지 모두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역시 이전 호들과는 다르게 수준 이하의 작품이 더 많네요.
우선 로스 맥도널드의 <<사라진 여인>>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루 아처 시리즈라는 점을 제외하면 특기할 만한 점이 전무한 소품입니다. 루 아처가 묶은 모텔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루 아처가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인데 루 아처가 하나씩 손에 넣은 단서를 되짚어가면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라 추리의 여지도 없고 이야기도 원사이드하게 흘러갑니다. 선택지가 하나 뿐인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랄까요? 딱히 반전이 있는 진상도 아니고요. 이 정도면 평범 이하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국내작가 차무진의 <<비형도>>는 전개는 흥미로우나 좋은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런 단서나 복선도 없이 귀신들 사이에 어울린다는 결말이 영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물론 조상병이 살의를 품은 순간, 그 장소에 있던 귀신들 속으로 들어가 귀신들의 역할극이 벌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되기는 합니다만... 개연성도 없는 역할극이 전체 분량의 90%에 달하는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죠. 생각한대로 현실이 바뀌는 "열린 우주"라는 핵심 설정 및 이를 통해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은 아주 재미있었는데 아쉽네요.
하기사 좋았던 부분들도 여러모로 애매하긴 합니다. 사건의 시작은 학예사의 뿔테 안경이 아니라 "껌"이었어야 할 것 같고, 학예사가 목을 메다는 장면은 이게 뭔가 싶으니까요. 여튼, 이 역시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래도 피터 러브시의 <<오이스터 브라운이 저지른 범죄>>는 아주 괜찮습니다. 펄, 오이스터 자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트리거의 의심을 독자에게 공유하게 만드는 전개는 정말로 일품이에요. 분명 언니가 사라졌는데 애써 있는 것 처럼 가장하는 오이스터의 행동의 이유는?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퇴비화 속도가 빨라지는 발효 촉진제를 산 이유는? 집에 아무도 들이지 않는 이유는?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추리, 즉 "펄은 죽었고 오이스터가 그녀를 자체적으로 처리하려 한다"는 흐름으로 이어지니까요. 하지만 진상은 정말로 터무니없었고 황당하다는 점에서 독자의 뒷통수를 칩니다. 거장다운 장난스러운, 그렇지만 또 서늘한 결말도 매력적이에요.
트리거가 어디로 갔는지 정말 아무도 몰랐을지, 그리고 트리거의 차가 집 앞에 있으므로 완벽한 인멸은 불가능 했으리라는 점에서 조금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만, 거장의 실력만큼은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기사, 읽을 거리로 가득차 있는데 특집과 정말로 몇 안되는 기사, 한 편의 단편만이 기대에 값하기에 전체 별점은 2.5점입니다. 가격이 저렴하지 않았다면 2점 이상 주기는 힘들었을거에요.
식민지 경성, 그리고 그 공간을 무대로 한 장르 문학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셔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추천드릴만한 부분이 많지는 않습니다.

야행 - 모리미 토미히코 / 김해용 : 별점 2점


야행 - 4점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예담

전작들이 국내에서도 꽤 인기를 끌었던 일본 작가 모리미 토미히코의 연작 단편집. 제목과 표지만 보고 충동적으로 집어든 책입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야경>> 같은 책으로 생각하고요. 하지만 내용은 그야말로 환상 소설인데,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10년 전 실종된 하세가와와 함께 했던 여행을 다시 떠난 5인이 멧돼지 전골을 앞에 놓고 각자 겪었던 기묘한 체험 (그것도 기시다 미치오라는 화가의 동판화 시리즈 '야행'와 관련되어 있는)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는 도입부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나카이가 이야기하는 첫번째 이야기 <<오노미치>>에서, 수수께끼의 집으로 빨려들듯 사라진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호텔 종업원의 아내는 어떻게 된 것인지?와 같은 궁금증을 계속 등장시켜 흥미를 자아내는 전개도 제법이고요.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궁금증에 대해 해결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내는 이상한 집 암실에 갇혀있었다는 것이 전부이며 호텔 종업원과 아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거든요. 또 이야기에서 나카이가 호텔 종업원을 공격하여 거의 죽였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듣는 지인들이 별다른 반응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요.

다케다가 이야기하는 두번째 이야기 <<오쿠히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회사 동료와 함께 커플로 여행을 떠났다가 우연히 만난 카리스마 점장이 미시마 씨로부터 "2명에게서 사상(死相)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불안에 휩싸인다는 부분까지는 아주 괜찮아요. 4명 중 2명이 누구인지? 미시마 씨의 능력은 대체 무엇인지? 등 수수께끼를 쌓아나가는 전개도 전편과 같고요.
그러나 이 역시 풀어놓은 떡밥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라진, 즉 죽은 2명이 회사동료 마스다와 미야인지, 다케다와 루리 커플인지도 등장하지 않을 정도니까요. 마스다와 미야 커플이 실종된 것이라고 해도 이상합니다. 이런 중대 사건을 별 일 아닌 것 처럼 지인들에게 털어놓는 다케다와 그것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지인들 모두 상식적으로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나마 후지무라 씨의 <<쓰가루>>라는 세번째 이야기는 '후지무라 씨의 어릴 적 친구 가나 짱은 후지무라 씨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존재였다' 라는 식으로 부족하나마 한편으로 마무리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과거인지, 현재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엔딩은 별로였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지인들 앞에서 하고 있다는 설정이니 과거의 일이라고 친다면, 도대체 그 집에서 뭐가 어떻게 됐는지는 왜 설명하지 않는거죠? 인터넷 토막글도 기승전결이 있는 세상입니다. 이 정도로 설명이 부족하면 아무리 좋게 봐 줘도 한계 역시 분명합니다.

네번째 이야기 <<덴류쿄>>는 다나베 씨의 이야기로 '야행'의 작.가 기시다에 대한 설정을 본격적으로 풀어놓는 이야기입니다. '야행'에 등장하는 귀신도 등장하고요. 그런데 앞의 세 편과는 좀 동떨어진 내용입니다. 바로 뒷 이야기인 마지막 밤 <<구라마>>를 통해 '아행'과 기시다, 그리고 실종된 하세가와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두 설명되기 때문이에요. 즉, 네번째, 다섯번째 이야기가 한 묶음이며 모든 내용이 설명된다는 뜻이죠.
이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네번째, 다섯번째 이야기를 묶어서 하나의 중단편으로 발표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야행'과 '서광'은 서로 대칭이며, 두 세계는 그림으로 이어져있다는 설정은 괜찮았던만큼 꽤 그럴듯한 환상 소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괜찮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며, 묘사도 괜찮아서 몇몇 부분은 굉장히 공감됩니다. 여정 미스터리를 연상케하는 일본 각 지방의 묘사도 볼거리이고요. 허나 절반 이상이 납득하기 어렵고 개연성 없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닥 권해드릴 만한 책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