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0/04/30

도와주세요~ 이글루스 지식인들!!!!

구글 애드센스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게 웹 브라우저 상황에 따라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네요.
그동안 자동 추가 방식으로 하다가, 모바일에서도 광고가 보이게 하려면 수동으로 추가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바꾼 뒤 부터입니다.

수동으로 광고 추가를 적용했더니, 아래와 같이 모바일 크롬의 PC 버젼에서는 광고가 표시되는 글이 있고,
같은 모바일 크롬의 PC 버젼에서, 동일하게 추가하였음에도 광고가 보이지 않는 글이 있습니다.

모바일 크롬의 모바일 버젼에서는, PC 버젼에서 보였던 광고가 보이지 않기도 하고요.
이 글도 이 아래에 광고를 추가하는데, 안 보이면 마찬가지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어떤 글은 광고가 보이고, 어떤 글은 안 보이고, 또 상황에 따라 보이는 경우도 나뉘는데 혹시 해결 방법을 아시는 분이 계신다면 도움 부탁드립니다. 제발요~

2020/04/28

여태까지 나만의 가가 쿄이치로 형사 시리즈 순위

몰랐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시리즈 주인공인 가가 쿄이치로 형사 시리즈를 얼마전 읽었던 <<기도의 막이 내릴 때>>로 전부 완독했더군요.

기념삼아, 저만의 가가 쿄이치로 형사 시리즈 순위를 공개합니다.

공동 1위 : 별점 3점
<<악의>>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기도의 막이 내릴 때>>
<<신참자>>

공동 5위 : 별점 2.5점
<<붉은 손가락>>
<<기린의 날개>>
<<내가 그를 죽였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8위 : 별점 2점
<<졸업>>

9위 : 별점 1.5점
<<잠자는 숲>>

시리즈 9편 중 무려 7편이 평균 이상의 완성도를 보이는, 좋은 시리즈라는걸 잘 알 수 있습니다. 고전 스타일의 본격 퍼즐 미스터리는 물론 사회파에 서술 트릭, 심지어는 진범이 누구인지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는 실험적인 작품까지 작품의 폭이 넓다는 것도 큰 장점이에요. 당연히 경찰 수사 소설로도 우수하고요. 이 시리즈만 읽어도 추리 소설의 큰 흐름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완결되었다니 아쉽기도 한데, 언젠가 후속작이 나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2020/04/26

우연한 걸작 - 마이클 키멜만 / 박상미 : 별점 2.5점

우연한 걸작 - 6점
마이클 키멜만 지음, 박상미 옮김/세미콜론

여러 예술가들의 걸작들을 전부 10개의 주제로 나누어 왜 그 작품이 걸작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책. 예술에 대해 깊이있는 식견으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 줍니다.
하지만 전혀 쉽지는 않아요.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설명하는 느낌이거든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많이 어려웠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하고 요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가지 기록해 볼 만 한 내용들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보나르의 작품들은 영원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현대 인상파'라 부를 수 있는 좋은 그림이기 때문에 걸작이라는군요. 도판만 보았을 때에는 인상파라기 보다는 좀 더 괴기 쪽에 가깝지 않나 싶지만요.
아마츄어리즘은 적은 노력으로 큰 만족을 얻는 쪽으로 발전했으며, 이는 밥 로스와 일맥상통하기에 밥 로스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츄어들이 그림을 그리는 목적은 프로와 별 다를게 없다는 이유이기도 한데, 확실히 그런 부분이 있지요. 게다가 별다른 목적없이 그리거나 찍은 작품이 '우연과 실수'라는 측면에서 초현실주의와 연결되어 걸작으로 인정받게 된다는군요. 이유는, 이 책에 쓰여진대로라면 그 작품에서 무언가 놀랍거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걸작이라는 거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특히 현대 미술은 기존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과정도 포함되었다고 하니 더더욱 그러해 보여요.
문제는 그런 평을 전문 비평가가 해야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는 진정한 아마추어리즘과는 좀 분리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은 드네요. 철학자이자 미술 평론가 아서 딘토는 아름다움은 더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어떤 것이라고 했는데, 이 노력에 대한 설명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작품의 수준이 판가름날 테니까요. 제가 '이게 걸작이야!'라고 제 딸 아이 그림을 평가해도 세상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요? 결국 다 평론가들 놀음이라는 점에서는 입맛이 좀 씁니다.

또 시대에 따라 경험이 변해서, 아름다움의 정의가 변한다는 것도 와 닿았습니다. 명확한 사실이니까요. 현대에 사는 우리가. 여러가지 매체에서 수없이 보았을 '모나리자'를 보고 놀라움을 느낄 이유는 전혀 없지요. '놀라움' 을 느낄 여지가 적어졌다는 점에서, 현대는 정말 예술을 하기 힘든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존 케이지의 음악처럼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도 못할 기괴한 발상이 난무하고 있죠.
그래도 재미있는 작품과 발상들이 몇 가지 눈에 뜨이기는 합니다. 저자의 친구 알렉스의 서재가 대표적이지요. 알렉스는 원룸 집 벽에 나무 책장을 들여 놓았는데, 책으로 가득차 책 한 권을 더 꽂으려면, 그 두께만큼 다른 책을 빼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서재는 자츰 진화하고, 가꾸는 물건이 되었으며 결국 알렉스 자신을 표현하게 되었죠. 여기에 더해 가차없으면서도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기에 이는 예술이며 작품이 되었다는 논리인데, 그럴듯합니다!
존 레넌의 아내였던 오노 요코의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존 레넌을 유혹하는데 성공한 외국 여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상당한 수준의 교육과 깊이를 가진 여성이라는건 처음 알았네요. '수동성'을 표현했다는 그녀의 여러가지 작품들도 인상적이었고요.
수집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설명도 기억에 남습니다. 수집은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로, 감식안과 더불어 일종의 상징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등의 이유인데, 이유보다도 앨버트 C. 반스의 수집품이라는 실례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만의 독특한 진열 방식으로 수집품이 진열되었는데, 덕분에 그림을 새롭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오노 요코 외에도 새로 알게된 사실은 많아요. 화가들도 규칙적으로 생활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던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루이스 캐럴은 변태가 아니었다는 것, 보나르의 아내 마르트에 대한 집착 같은 것들 말이지요. 특히 보나르가 생의 마지막 시기에 옛 연인 르네를 그린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놀랍습니다. 보나르 작품에 언제나 등장하는 마르트가 잘 보이지도 않게 등장해서, 화면 중앙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르네와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보나르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궁금하지만, 르네야말로 그의 마음 속 천사였고, 마르트는 그를 뒤에서 지배하는 움울한 지박령같은 존재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르네가 마르트와 눈이 마주친건, 결국 지박령의 승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굉장히 암울한 그림이라 할 수 있고요. 아,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니 이런게 예술인거겠죠?

몇가지 작품들에 대한 소개는 굉장히 흥미로와서 인터넷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나치 포로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은 유대인 아가씨 샬로트가 죽기 직전까지 몰두하여 만들었다는, 1300쪽에 이르는 글과 그림으로 구성된 <<인생? 혹은 연극?>>이 대표적입니다. 그게 뭐든, 양이 많으면 일단 독보적인 무언가가 되는 듯 합니다.
자수로 프로야구 선수들 초상화를 만든 죄수 출신 작가 레이 매터슨의 작품들, 초창기 남극 탐험에서 목숨을 걸고 찍은 사진으로 불멸의 이름을 남긴 프랭크 헐리의 기록 사진들도 찾아볼 만 하더군요. 저자가 작품 창작 과정을 직접 관찰한 화가 펄스타인의 작품들 역시 괜찮았습니다. 한 점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도 많았어요. 그 중에서도 거대 작품, 해당 작품이 놓인 장소로 여행을 떠나야지만 볼 수 있는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이상했습니다. 감상 순간의 주변 환경이 중요한 장소 특정적 예술이라는게 있다는 논리에서 시작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대의 이런 작품들은 그냥 크기로 승부하는, 크기로 놀라움을 주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전부가 아닌가 싶기 때문이었어요. 거대 기념비와 별 다를게 없는데 이게 과연 예술인가요? 화가나 조각가가 만들었다고 큰 돌덩어리가 예술이 되는건 아닐텐데 말이지요. 이에 비하면 일상 속 아름다움을 간단 명료하게 표현한 샤르댕이나 티보의 작품들이 훨씬 예술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도판이 부실한건 굉장히 아쉽네요. 컬러로 수록된 도판도 부족할 뿐더러, 그나마 수록된 도판들도 저자가 설명하는 작품들을 전부 담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궁금한건 인터넷으로 직접 찾아볼 수 밖에 없었어요. 그나마 수록된 도판도 흑백이 많아서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고, 예술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으니 좋은 독서임에는 분명합니다. 단지 제 취향과 맞지 않았을 뿐이지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0/04/25

카레 도감 - 가큐 쇼타로, 오카타 오카 / 김영진 : 별점 1.5점

카레 도감 - 4점
가쿠 쇼타로 감수, 오카타 오카 그림, 김영진 옮김/성안당

올해 들어 이상하게도 카레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게 되네요. 이 책은 카레에 대해 여러가지 짤막한 정보들을 관련 그림과 함께 가나다 순서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목처럼 '도감'이라고 할 만한 책은 아닙니다. 그림들은 재미를 더해주기는 하지만 정보 측면으로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 단순한 일러스트에 불과한게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림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자유분방하면서도 과감한 선과 색의 조합이 제 취향이었으니까요.

수록된 정보도 중구난방으로 전혀 정리도 되지 않고, 무슨 기준인지 알 수 없으나 인도에서는 버섯이 인기가 없다던가, 카레가 아침에 먹으면 좋은 이유 (향신료가 건강에 좋고,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등) 와 같은 쓰잘데 없는 내용 등 다루는 범위가 굉장히 넓어서 좀 기묘하면서도 황당한 재미가 있습니다. 실제 요리와 재료를 비롯하여 만화 <<요리인 아지헤이>>에 등장하는 '블랙 카레', 2011년 벨기에에서 제작했던 다큐멘터리 <<성자들의 식탁>>, 심지어 '스푼'까지 한 꼭지 있을 정도니까요.
실존 인물들의 소개도 많습니다. 주로 요리사나 카레와 관련된 유명 연예인이 많은데,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가 카레 매니아로 유명하다며 소개되고 있는게 좀 특이했어요. 그런데 딱 한 가지, '카레맨' 항목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아는 카레맨은 도쿄 시모키타자와 카레 페스티발의 마스코트가 아니라, 프로레슬러 크리스토퍼 다니엘즈의 또다른 기믹이기 때문입니다! 보고싶다 Fallen angel!

다루고 있는 소재의 특성 상 당연히 레시피에 가까운 정보도 많습니다. 이 중 다시 국물로 지은 밥에 버터를 섞은 버터 라이스는 카레와 찰떡궁합이라는데 한 번 시도해봐야겠어요.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로 보이거든요. 감자와 콜리플라워, 카레를 섞어서 물기없이 볶는 알루 고비도 조금 자세하게 레시피를 찾아보고 싶고요. 맛이 없을 수가 없을테니까요. 인도의 레모네이드라는 '잘지라'도 맛이 궁금합니다. 커민과 생강, 블랙 페퍼, 레몬, 소금을 차가운 물과 섞었다는데, 아마도 어른의 맛이겠죠. 인도 남부지방이 원조라는 '치킨 65'라는 요리는 우리나라 양념 통닭과 너무나 비슷해서 놀라운데, 역시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한게 아닐까 싶었고요. 마지막으로 네팔의 술 퉁바도 소개에 따르면 카레와 전혀 관계는 없지만, 마시면서 뜨거운 물을 계속 붓는 음주법과 덕분에 마실 수록 맛이 좋아진다니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흥미거리가 없지는 않지만, 극소수의 볼거리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도감, 즉 사전으로서의 깊이도 부족하고, 지나치게 일본에 편중된 정보들일 뿐 아니라, 어떤 항목들은 카레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도야마현 이미즈시'에 파키스탄 사람들이 많이 모여살고, '카슈미르 카레'는 매니아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이야기같은게 대표적이죠. 우리나라도 따지면 '이태원동 이태원로' 가 사전에 한 꼭지 있는 셈입니다. 인도 카레 맛집이 있다는 이유로요. 그나마 이건 약과로 '츄오센 (일본 전철 노선)'에 맛있고 개성적인 카레 전문점이 많다고 소개하는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츄오센'에 맛있는 스시집, 장어집, 프랑스 요리집도 있을텐데 말이죠.
심지어 아예 '카레'라는 단어도 소개에 포함되지 않는 항목도 다수입니다. 저는 '에그타르트'가 카레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커피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 중에 최고봉은 '콜럼버스' 입니다. 콜럼버스가 카레와 약간이나마 관련이 있는건 '인도'를 찾아 항해를 떠났다는 정도인데, 정작 이 책에서 소개되는 항목의 핵심은 계란을 깨서 세웠다는 '콜럼버스의 계란' 이야기거든요. 이 쯤 되면 '카레 사전' 이 아니라 그냥 작가가 쓰고 싶은 토막 정보들을 대충 모아놓은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 정도에요. 1998년 일본에서 일어났던 '독극물 카레 사건' 에 사용된 독극물이 비소라는 이유로 비소가 한 꼭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에 비교하면 스트리트 파이터의 '달심'이 소개되는건 오히려 당연해 보입니다. 달심은 카레를 좋아하며, 부인 '사리'가 만들었다는 취지의 카레가 실제 시판된 적도 있다고 하니까요.

번역, 책의 완성도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오타도 많고, 잘못 구성된 페이지가 제법 눈에 뜨이거든요. '암추르'는 책 안에서도 '암츄르'라는 말과 혼돈되어 표기되는데, 이래서야 사전으로서는 낙제점이죠. 더군다나 '파키스탄' 소개 항목의 그림은 깨져있기까지 합니다. 교정을 제대로 보지 않은게 명백하다는 증거지요.
풀컬러에 꽤 두꺼운, 묵직한 종이를 써서 인쇄한 200여 페이지 가까운 분량의 책이 16,000원이라는건 비교적 양심적인 가격이기는 한데,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카레에 대한 책은 이제 좀 그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0/04/24

초콜릿의 지구사 - 사라 모스, 알렉산더 바데녹 / 강수정 : 별점 2.5점

초콜릿의 지구사 - 6점
사라 모스.알렉산더 바데녹 지음, 강수정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휴머니스트의 출판사에서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라는 주제로 간행하고 있는 'oo의 지구사' 시리즈 중 한 권. 모두 열 권의 시리즈가 출간되어 있습니다. 저도 소장용으로 모으고 있지요. 리뷰를 올리는 건 이 책으로 여섯편 째네요.

전반적인 시리즈의 컨셉은 비슷합니다. 일단 해당되는 주제의 음식, 또는 재료를 어떻게 먹기 시작하였고, 그 뒤에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통사적으로 훝어봅니다. 그리고 그 음식이나 재료가 우리 식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미칠 것인지를 고찰하며 마무리 됩니다. 그 뒤에는 주영하가 저술한 해당 음식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를 서술한 부록, 해당 음식과 재료로 만드는 요리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고요. 음식, 재료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비슷합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분량을 할애하여 초콜릿의 재료인 카카오를 언제부터 어떻게 먹기 시작하였는지를 마야와 아즈텍에서 시작하여 스페인 정복 이후 유럽으로 전파되어 세계화 되는 과정을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거든요. 마야, 아즈텍 유물이라던가, 각종 문헌과 사료를 바탕으로 충실한 도판과 함께 설명해주기 때문에 설득력도 높고요. 이를 통해 처음에는 의학적 효과와 최음제 등의 용도로 쓰이다가,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얻게 된 이후 18세기 초에는 이미 현대의 핫 초콜릿과 비슷한 레시피가 등장하였으며, 18세기부터는 프랑스와 잉글랜드 아침 식사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으며 온갖 레시피가 쏟아져 나오는 등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 볼만 한 건 사드 후작과 초콜릿의 관계였습니다. 사드 후작이 감옥에서 초콜릿을 원한건 이게 계급을 상징하는 일종의 사치품이었기 때문이었다는 논리이지요.

이후 19세기 들어 기계화를 통한 대량 생산으로 비로서 초콜릿이 대중적인 기호품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 때 즈음부터는 과거의 사치품이 아니라 영양가 높고 저렴한 간식이자 음식이 된 거죠. 따뜻한 가정의 이미지와 일체화 되어서요.
현대에 접어들어서는 온갖 세계의 초콜릿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공정 무역, 서아프리카의 아동 노동과 강제 노동을 통한 카카오 산업의 어두운 부분과 같은 문제와 함께 여성성과 남성성, 쾌락 등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는 초콜릿의 상징성, 그 이미지에 대한 고찰을 끝으로 글은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짤막한 요약대로, 다른 'OO의 지구사'와는 좀 다르게 각 시대별로 초콜릿이 무엇을 상징했는지?에 집중했다는게 눈에 뜨입니다. 아무래도 단순한 먹거리라기 보다는 기호품에 가깝기에 이렇게 접근했을텐데, 꽤 괜찮은 아이디어였습니다. 패션이나 시계, 쥬얼리나 와인과 유사한 방식인데, 초콜릿과 잘 어울린다 싶기도 하거든요. 시계도 쿼츠라는 기술이 탄생한 뒤, 일반화되었지만, 고급 명품 초콜릿 '그랑 크뤼' 처럼 기계식 시계 카테고리가 아직 건재한 것과 같은 이치지요. 다양한 마케팅으로 구축된 '이미지'가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여러모로 생각할 점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통사적인 측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너무 이미지 측면에 집착한 탓입니다. 그리고 제 컨디션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잘 읽히지 않더라고요. 찬찬히 기회가 되면 다시 읽어봐야 되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또 언제나 본 편 이상의 기쁨을 안겨다주었던 주영하의 부록도 이번에는 실망스러웠습니다. 한반도에서의 초콜릿 도입과 발전 및 '발렌타인 데이' 등 초콜릿으로 탄생한 문화 현상을 함께 다루기에는 10페이지를 갓 넘는 분량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좀 더 깊이있는 접근이 아쉽네요. 레시피도 이번에는 눈여겨 볼 만한게 없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초콜릿이라는 음식, 재료보다는 그 상징성과 이미지에 대한 고찰이라는 측면은 좋았지만 재미와 다른 부분의 가치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2020/04/23

C.M.B. 박물관 사건목록(씨엠비) 35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5 - 6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전통의 시리즈 제 35권. 이번 권에는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마약 밀매살인 사건 등 강력 사건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일상계스러운 느낌이 특징이에요. 신라와 타츠키가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사건들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고, 철저하게 '방관자' 역할로 추리만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죠. <<도미토리>>에서, 각성제 유통 혐의를 받는 츠노다가 누명을 벗지 못한 들, <<도토리와 솔방울>>에서 조난당한 부자를 찾아내지 못한 들, <<알리바이>>에서 알리바이 증명을 못한 들 신라가 손해볼건 없거든요. <<크리스마스의 마우>>는 마우가 주인공이니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탐정이 철저하게 방관자이며 제 3자라는게 나쁜건 아닙니다. 고등학생이 살인 사건에 계속 휘말리는 것 보다야 현실적이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일상계 느낌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도토리와 솔방울>> 말고는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 많지 않고, 등장하는 추리와 트릭들도 비교적 소박한 편이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신라가 주인공이 아니라서 별다른 드라마도 없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아주 모자라지도, 아주 빼어나지도 않은 평작 수준이었다 생각되네요. 보다 상세한 리뷰는 아래를 확인하세요. 언제나처럼 스포일러는 가득한 점 잊지 마시길!

<<도미토리>>
타이 푸켓의 백 패커들을 위한 싼 숙소인 '도미토리'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여러명의 여행객들이 묵는 숙소인데, 일본인 츠노다가 각성제 소지 혐의로 체포되고 이를 우연히 일본 대사관에 방문했던 신라 일행이 돕게 되지요. 여행객들이 각자 토산품으로 산 힌두교 신상을 자랑하는데, 츠노다가 산 시바 상에서 각성제가 발견되었거든요.
시바 상의 대좌는 호랑이어야 하는데, 각성제가 들어있던 대좌는 연꽃이라 비슈누와 바꿔치기 된 것이며 때문에 비슈누 상의 주인인 코버가 범인이라는게 결말입니다.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는건 아니며, 증거도 딱히 없고 코버의 말 실수가 전부인지라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그래도 C.M.B 특유의 현학적인 설명이 핵심 결말과 이어지는 전개는 나쁘지 않았으며, '지식'이 중요하다는걸 알려주는 마지막 장면은 좋았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크리스마스의 마우>>
급사한 제약회사 회장 집에 방문한 마우가 8천만불어치 컬렉션 전부를 구입한 뒤, 고갱 그림 도난 사건과 엮이게 되는 이야기. 마우가 탐정역으로 등장하지요.
보험사와 피해자, 은행이 차고 친 이야기라게 내용의 전부라 재미도 없고 추리적으로도 가치 없는 졸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도토리와 솔방울>>
산악 경찰대에 구조 전화가 걸려온다. 산행 중이던 아버지가 사고로 쓰러진 뒤, 아들이 전화를 건 것. 아들은 사고 현장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알려준다. 아들이 말한 '폭포' 등의 단서를 토대로 장소를 확신한 대원은 자신있게 현장으로 출동한다. 그러나 정작 부자는 찾지 못하고, 신라 일행의 도움을 받게 된다.

조난자가 자신의 위치를 몇 가지 단서로 알려주고, 이를 토대로 구조에 나선다는 추리물.
부자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솔방울의 모양이 중요한 단서로 쓰이는 것도 좋지만, 왜 있지도 않은 폭포를 있다고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눈의 착각'이었다며 풀어나가는 전개가 아주 좋았습니다. 두 개의 물줄기가 교묘하게 겹치는 특정 지형에서만 가능하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절벽이 물에 비쳐서 생긴 '깊은 구멍'에 대한 설명 역시 아주 만족스러웠고요. 대단하지는 않지만 풍성한 아이디어가 가득하여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이번 권의 베스트였습니다.

<<알리바이>>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일상계에 가까운 작품.
살인 사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무죄인 주인공이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나가는게 핵심이며, 이 증명에 그가 목도리를 떨어트렸던 아주 사소한 행동이 단서가 된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이 단서를 통해 '그는 목도리를 벗어서 손에 들고 있었으며, 아마도 직전의 식사는 코트와 목도리를 벗어서 놓을 수 있는 곳에서 먹었다' 는 추리도 아주 합리적이었어요.

문제는 시체를 숨기는 핵심 트릭입니다. 조명을 조작했다는 이야기인데, 그만큼 잘 되었을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설령 잘 되었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증거 (조명 조작)가 남는다는 점에서, 좋은 트릭으로 보기는 힘들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본편 트릭보다는 알리바이 증명에 대한 일상계스러운 추리와 '현재를 즐겨야 한다'는 결말이 훨씬 좋았습니다.

2020/04/19

중세 유럽의 레시피 - 코스트마리 사무국 / 김효진 : 별점 1점

중세 유럽의 레시피 - 2점
코스트마리 사무국 지음, 김효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주제에 대해 깊숙히 파고들어, 일반 상식 이상의 정보를 전해준다는 취지의 AK Trivia books 시리즈의 한 권.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중세 유럽 요리의 레시피 43개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레시피 외에 중세 요리 및 저자의 중세 축제 체험기를 다룬 컬럼 몇 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고요.

특징이라면 중세 유럽의 레시피를 현대의 재료로 재현하는걸 중요한 포인트로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부제인 "손쉽게 만들어 즐겁게 맛보는 중세 요리'에 충실한 셈이죠. 그래서 수록된 대부분의 레시피들이 실제로 현재, 그리고 가정 내에서 구현 가능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맛이 짐작 가능해서 딱히 신선한 레시피는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쿠민 수프'는 향신료 쿠민이 들어갈 뿐, 현재도 우리가 즐겨먹는 '달걀국'과 별 다를게 없습니다. 버섯 수프 '펑거스' 역시 마찬가지. 닭 육수에 다듬은 버섯들과 파, 시나몬, 클로브, 후추를 넣고 끓이는 레시피와 결과물 사진을 보면, 닭 육수를 쓰기는 하지만 멸치 다시마 육수를 써서 만드는 버섯국과 별로 맛이 다를걸로 보이지는 않네요. '작은 새의 무덤' 이라는, 중세풍 이름의 요리도 그 정체는 다진 마늘, 소금, 후추와 버무린 닭다리살을 볶은 뒤 타임, 로즈마리를 넣고 레드 와인과 물에 조리는 와인 닭찜입니다. 이 정도라면, 우리가 흔히 먹는 닭가슴살 간장 조림에서 간장만 와인으로 대체하면 되는 수준이라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어 먹을 수 있겠죠.
또 현대에 재현하기 위해 재료를 나름 응용한다는 것도 눈에 뜨입니다. 중세의 허니 토스트를 재현하기 위해 '식빵'을 쓰는 식으로 말이지요.

물론 현대에 중세 요리를 재현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나쁠건 없습니다. 문제는 내용의 깊이와 전문성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지요. 레시피 하나하나의 분량은 많아야 2페이지 정도에 머물 뿐으로, 정말 '레시피' 이외의 다른 정보가 거의 소개되지 않을 뿐더러, 레시피들의 출처들도 소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저자의 마음 속에서 그럴듯하게 꾸며낸 중세 유럽의 요리인지, 아니면 실존했지만 이를 현대에도 맛볼 수 있게 어레인지한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전문성 측면에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네요.
수록되어 있는 컬럼들도 중세 유럽의 장미, 백합, 제비꽃에 대해 알려주는 정도만이 괜찮았을 뿐 그 외에는 별볼일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쓸데 없는 저자의 중세 축제 체험기나 일본 내 중세 유럽 관련 행사에 대한 정보에 대한 사진과 비중이 높다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풀 컬러지만 재현한 음식들 한 컷씩만 실려있는 수준의 도판도 딱히 대단하지 않으며 책의 완성도도 그냥저냥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중세 유럽의 레시피를 현대에 재현한다는 취지 외에 건질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17,000원이라는 가격도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고요. 이쪽 분야에 관심이 지극히 많으시더라도,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0/04/18

오이시이 빵 - 판토타마네기 / 황세정 : 별점 2.5점

오이시이 빵 - 6점
판토타마네기 지음, 황세정 옮김, 오기야마 가즈야 감수/시그마북스

을 사랑하는 저자가 직접 그리고 쓴 개인적인 빵 사전. 직접 먹어보고, 찾아보고, 조사해 본 범위 내에서의 여러가지 빵과 빵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가나다순서대로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고 있는 일종의 도감입니다.

일러스트와 짤막한 글이 전부라 깊이는 없습니다. 빵에 대해 전문적인 정보를 얻기에도 부족하고요. 또 저자가 관련 정보를 접한 참고 서적이나 출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이게 정말 맞는 내용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건 단점이네요. 예를 들어 도넛 이름의 유래가 반죽 (Dough)에 견과류 (Nuts)가 있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영 미심쩍습니다. 빵과 별 관계가 없는 내용도 적지는 않은 편이고요.
그리고 중간중간 페이지를 오가는 부분이 많이 있는건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좀 불편했었습니다. 일본어 원서도 이렇게 페이지를 오가는 부분이 많을지 조금 궁금해지네요.

그래도 이런저런 빵의 이름을 확실히 알게된건 수확입니다. '바타르'는 바게트보다 길이가 짧은, '중간'이라는 뜻의 이름이라던가, 치아바타는 슬리퍼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던가 ('치아바타'는 이탈리아어로 슬리퍼라는 뜻), 파운드 케이크는 밀가루와 설탕, 버터, 달걀이 각각 1 파운드 씩 들어가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등의 이야기들 덕분이지요.
또 일본 각지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특산물' 빵에 대한 소개도 이 책만의 강점입니다. 직접 전국을 찾아다니며 조사한 결과로 보이는데, 이런저런 재미난 빵들이 많이 등장하거든요. 후쿠오카의 '긴초코', 초콜릿 빵 '맨해튼'. '멘타이 프랑스'. '소문의 빵', (후쿠오카 출신이라 그런지 후쿠오카 빵과 빵집 소개가 많습니다) 삿포로의 '지쿠와 빵', 도야마 현의 '비취 빵', 시가 현의 샐러드 빵, 기타큐슈 어묵집의 '카나페', 키타큐슈의 '킹 빵" 등은 소개만 보아도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어 보이고 내용도 재미있었어요.
비취 빵, 야키소바 빵과 메론 빵, 카레 빵, 크림 빵의 유래, 크로크 마담과 크로크 무슈의 차이 등 토막 상식같은 정보들도 값집니다. 그런데 중간에 등장한, 세라믹이 붙어 있는 그릴이 무척 탐나네요. 숯불 위에서 빵을 굽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데, 왜 저는 몰랐을까요? 조금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카모메 그릴'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더라고요. <<카모메 식당>>에서 연어 구을 때 썼다나 뭐라나. 지금 집은 인덕션 구조라 당장 구입할 생각은 없지만, 이사가게 되면 구입을 고려해봐야 겠습니다.
아울러 이런 글들과 함께하는 그림도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그냥 일러스트만 보아도 높은 수준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아사오 하루밍 느낌도 살짝 나는, 간단하면서도 선 맛이 잘 살아있는 좋은 그림입니다. 이 정도면 그림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다른 작업은 별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약간 의아합니다.

무엇보다도 읽는 내내 책 곳곳에서 빵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어서 흐뭇했습니다. 빵을 너무 좋아해서 후쿠오카에 살다가 빵 소비량이 일본 수위를 다투는 교토로 이사가서 수년 동안 살고, 빵에 대해 궁금한게 많아서 교토에서 빵에 대한 무가지를 직접 만들어 24호까지 배포하고, 생계 유지는 빵집 아르바이트, 여행은 빵집 위주로 다닌다는 덕력이 책 전체에 깊숙이 배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덕후의 덕력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정보 측면보다는 일상계 에세이 만화에 가까운 느낌으로 읽는다면 더 좋을, 그런 책입니다.

2020/04/17

맥거크 탐정단 3 : 사형 선고를 받은 고양이 - 에드먼드 W.힐딕 / 신인수 : 별점 3점

맥거크 탐정단 3 : 사형 선고를 받은 고양이 - 6점
에드먼드 W. 힐딕 지음, 배중열 그림, 신인수 옮김/별별책방

맥거크 탐정단에게 이웃에 사는 윌리 형이 찾아온다. 윌리가 키우는 고양이 위스커스가 이웃집 비둘기를 죽였다는 누명을 써서 동물 보호소로 보내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오래전, 제가 초등학교 무렵 <<매거크 탐정단>>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 중 하나였습니다. 아직도 본가에 몇 권의 유물이 남아있을 정도로 애지중지 아끼면서 읽었던 책들이었지요.
재 출간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오래전 출간된 시리즈는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정도로 엄청 읽었을 뿐 아니라 엄청 좋아했던 일러스트도 모두 바뀌어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읽기에는 제 나이도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도 점점 커 가는 딸 아이의 추리 소설 조기 교육을 위해 한 권 집어들게 되었네요. 마침 오래전 읽지 못했던 책이 눈에 뜨이기 했고요.

책은 아동용 소설 답게 분량은 150 페이지도 안되고, 내용 전개도 쉽고 빠릅니다. 덕분에 완독하는데 한 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네요. 그래도 추리적으로 동기, 단서, 복선 등 갖출 요소는 모두 다 갖추고 있습니다. 위스커스를 가둬 놓은 동안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나면 누명을 벗을 거라는 생각이라던가, 이 생각을 역 이용하는 계획과 같이 고도의 (?) 두뇌 싸움도 등장할 정도지요.
물론 어른들이라면 마틴 할아버지가 진범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긴 합니다. 비둘기와 고양이 모두를 싫어했고, 마침 위스커스를 숨겨놓은 창고에 대해서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어른이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라면 초등학교 3~4학년 까지의 아이들에게는 추리력을 시험해 볼 만한 좋은 도전거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마지막에 마틴 할아버지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맥거크의 기지도 괜찮았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책입니다. 이전의 제가 사랑했던 일러스트는 아니지만, 컬러풀한 일러스트를 포함하여 책의 완성도도 아주 높은 편이거든요. 제 기준으로 별점을 주기는 애매한데,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보면 내용도 재미있고, 그림도 예쁘니 별점 3점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딸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줄 생각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준다면 좋겠는데....

2020/04/12

밀크의 지구사 - 해나 벨튼 / 강경이 : 별점 2.5점

밀크의 지구사 - 6점
해나 벨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의 지구사>> 시리즈 중 한 권. 책이 워낙 예뻐서 눈에 뜨이는 대로 한 권씩 구입했지만, 처음에 읽었던 몇 권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 카레왕의 추천으로 읽은 <<커리의 지구사>>가 아주 좋아서, 나머지도 계속 읽어 보려 합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우유에 대해 다룬 <<밀크의 지구사>>입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밀크, 즉 우유가 우리 식문화에 자리잡은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제일 첫 단락은 왜 인류가 동물의 젖을 먹어야 했으며, 언제부터 젖을 먹기 시작했는지입니다. 동물의 젖을 먹게 된 이유는, 가축을 키우면 그 젖을 식량으로 쓰는건 타당한 이치라고 설명됩니다. 쥐와 고양이, 돼지 젖을 먹지 않은 이유는 먹을 만큼 젖을 짜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이고요. 이후 알려주는건 인류가 언제부터, 어디서 우유를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입니다. 최근 연구결과로는 기원전 7,000년 또는 그 이전에 현재의 터키 지역 쪽에서 먹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그 이후 각종 문명, 문화권에서 젖을 어떻게 짜서 먹었는지 등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각 문화권에 있었던 독특한 레시피, 유제품에 대한 소개도 함께 합니다. 예를 들어 우유를 끓여먹으면 소화하기가 훨씬 숴워져서 고대 인도에서는 뭉근하게 끓인 뒤 강황가루나 후춧가루, 계피 조각, 생강 가루를 넣어서 먹었다는군요. 몽골의 말젖 발효주 아이락 만드는 법, 베두인의 낙타젖은 물과 1대 3의 비율로 희석하면 맛이 좋다는 대 플리니우스의 레시피 등입니다.
동물의 젖을 요리의 재료로 쓴 역사도 당연히 오래 되었습니다. 기원전 1750년 경 바빌로니아 설형 문자 기록에 따르면 밀크나 신 밀크를 새끼 염소 스튜 등에 사용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들은 고기와 밀크를 함께 먹지 않았습니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아서는 안된다는 이유라는데, 나름 타당하네요. 이러한 고대 문명에서의 우유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은 고대 로마까지 이어집니다. 여기까지가 서두라고 할 수 있어요.

이 뒤에서부터는 근대 이후부터의 시기가 핵심으로 다루어집니다. 우유 수요가 증가하여 현대적인 우유 산업이 생성된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기 위함이지요. 우선 17세기 이후부터 시골 동네에서 우유를 꾸준히 먹고, 도시에서도 우유 수요가 증가하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이는 인구 증가와 시장 활성화 덕분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우유 시장이 커진 19세기의 우유는 위험한 식품이었다고 하네요. 지저분한 낙농장에서 비위생적인 운송 과정을 거쳐 냉장도 하지 않은 채 저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유의 양을 늘리고 색깔, 맛, 향을 위해 온갖 첨가물을 넣어 더욱 위험했어요. 이후 19세기 후반 저온 살균법이 보균되면서 겨우 현대적인 우유 보급의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우유 시장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줄어듭니다. 탄산음료 시장이 성장했고, 우유가 사실은 해롭다는 이야기도 계속 확산된 탓이지요. 우유의 유해성에 대한 담론은 우유가 여러가지 처리 과정을 거치기에 불거진 이야기로, 처리 전의 생유를 마시자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긴 하나 당장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다는군요. 여기서 <<은수저>>에서 하치겐이 생유를 먹고 맛있음에 전율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그리고 책은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우유 수요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야쿠르트, 밀크티 등 각종 음료 시장도 성장하고 있지만 낙농업은 환경에 문제를 일으키므로 우유 소비를 줄이는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흔하게 먹는 우유 한 잔에 얼마나 오래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고민이 담겨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네요. 앞으로의 고민까지 말이죠.

뒤에는 언제나처럼 부록으로 주영하가 쓴 한국에서의 우유 문화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놀랐던 점은, 한국 우유 산업은 일제 강점기 때인 1911년에 이미 생산과 판매 모두 법령으로 확립되었다는 점입니다. 일본 열도의 우유업이 한반도에 그대로 투입되었기 때문이죠. 일본에 우유 산업이 발전한건 일찌기 산업화된 유럽과 미국의 우유 기술을 도입하여 홋카이도 개척 당시 낙농 사업을 펼쳤으며, 19세기 후반에 서구화를 위한 서구 추종 분위기에 육식과 함께 편승한 탓이었고요. 심지어 조선총독부에서 젖소를 직접 도입할 정도로 우유 공급을 권장했다고 합니다. 조선 국민들을 전쟁에 써먹기 위한 육체 개조 목적이었지요. 하여튼 이렇게 근대적인 우유 산업은 이미 20세기 초반에 확립되었습니다. 지금의 서울우유협동조합부터가 1937년 경성우유동업조합으로 시작했다고 하니까요. 우유에 대한 식문화 만큼은 다른 서방 선진국에 비해 그다지 뒤지지 않은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우유 소비량은 1997년 이후 더 이상 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의 이유와 마찬가지겠죠. 젊은 층 인구 감소를 보면, 앞으로는 더 줄지 않을까 생각되고요. 애초에 근대화, 서구화를 위해 도입되었다는 목적을 돌이켜 보면, 이미 서구 문화권과 다름없는 현재 시점에서 우유 소비량이 더 증가한다는건 어려운 일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 뒤 마지막은 우유에 대한 몇 가지 레시피가 실려있는데 수 페이지에 불과하고, 내용도 별다를건 없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우유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서 만족스럽습니다. 대단한 깊이는 없지만, 가볍게 읽기도 좋았고요. 충실한 도판과 함께 해당 음식의 역사에 대해 한 번 훝어준다는 이 시리즈 컨셉에 충실하거든요.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0/04/11

탐식생활 - 이해림 : 별점 2.5점

탐식생활 - 6점
이해림/돌베개

여러가지 재료와 요리에 대한 정보를 멋진 사진, 그리고 맛볼 수 있는 곳이나 전문가가 누구인지 함께 소개하며 알려주는 책. 구성이라던가 문체 등에서 '에스콰이어'나 '지큐' 같은 잡지의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보그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있어보이는 문체와 고급진 사진 때문이죠.

그러나 잡지 기사처럼 단순히 특정 가게나 재료, 요리의 홍보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크게 4개의 주제로 48개의 재료와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름 새로운 정보에 대해 많이 알려줄 뿐 아니라, <<만화 고기 스테이크>> 처럼 만화 속 고기의 종류와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그 방법까지 알려주는 재미난 항목도 있는 덕분입니다. 조개를 맛있게 먹는 법이나, 완벽한 스테이크를 만들기 위한 방법 같은 레시피에 가까운 정보도 좋았고요.
이러한 새로운 정보 중에서는 저지 우유에 대한 소개가 제일 반가왔습니다. 우유의 맛을 결정하는 유고형분 함량이 홀스타인보다 높으며, 실제로 영국에서는 왕실에 납품된다니 그 맛이 무척 궁금해졌거든요. 조사해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우유의 밀크홀 1937에서 구입 가능하네요. 가격은 일반 우유의 3배 가격인데, 기회가 되면 한 번 구입해봐야겠습니다. 그 외에는, 양파가 이 땅에 들어온지는 고작 100여년, 지금과 같은 불고기는 첫 등장이 1960년 대인데 지금은 우리나라 요리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재료와 요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에요. 재료와 요리가 얼마나 파급력, 전파력이 강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 외에도 과메기 제조법의 역사 등 재미난 정보가 많습니다.

레시피 정보로는 맛있는 밥을 짓는 방법이 기억에 남네요. 쌀을 씻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쌀을 보관하고 밥을 지어야 맛있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주거든요. '쌀을 과하게 박박 문지르지 말고, 손끝을 세워 한 방향으로 돌리면서 손가락으로 쌀을 씻는다, 이때 물은 쌀이 푹 잠길 정도로 쓰지 않아도 무방하다, 혼탁한 물을 자주 따라 내면서 조금씩 보충하는 식으로 씻는다, 맑은 물이 나오면 쌀에서 나온 여분의 전분이 충분히 제거되었다는 뜻. 불리는 시간은 보통 30분이지만, 30분을 기준으로 잡고 쌀의 상태에 따라 가감한다. 1시간을 넘길 필요는 없다'로 이어지는데,일본 드라마 <<협반>>에서 알려주었던 방법과 비슷하다는게 눈에 뜨입니다. 특히 쌀을 도정하면, 빠르게 산화하고 변질되어 2주 이상 그 맛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쌀을 쌓아 두던 그 옛날 부잣집들보다 “쌀 한 되(1.8리터) 팔아 오라.”라고 하던 가난한 집들의 쌀 구입법을 따라야 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정보였어요.
아이디어가 바탕이 된 특별한 요리 이야기는 많지 않지만, 만화 고기 스테이크 외에는 곰탕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도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지 않나 싶군요. 곰탕 최적의 온도에 대한 고찰, 밥을 미리 말아 넣는 토렴의 과학적 원리 (찬 밥에 수분을 더하고 온도를 높이면 전분은 다시 말랑말랑진다)와 적절한 염도에 대한 이야기가 잘 설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 곰탕이 먹고 싶어 집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책답게, 재료에 대한 고민도 빠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맛의 달인>>에서 지로가 공장식 '브로일러 닭'의 사육 환경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처럼 말이지요. 이 책에서도 닭고기와 달걀을 통해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맛있는 달걀은 결국 신선도와 사료 문제라고 하니, 달걀은 비싼 달걀을 10구짜리를 사서 먹는게 가장 맛있다는 식으로요. 그러나 이는 단지 '맛'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가격 차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장벽이 있기 때문이지요. 저도 한 집의 가장으로서, 단지 맛 만을 추구하지 못하는 현실은 아픕니다만, 앞으로는 마트에서 저렴한 특가 상품과 친환경 등 생산 단계에서부터 환경을 생각한 상품 중 어떤 상품을 골라야 할 지 더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책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보도 많고, 어떤 이야기는 특정 업소에 대한 광고에 가깝다는건 감점 요인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음식, 요리 관련된 다른 책들을 많이 접해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재미있는 정보를 고급진 사진, 편집과 함께 즐기실 수 있는 만큼,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4/10

로마 모자 미스터리 - 엘러리 퀸 / 이기원 : 별점 1.5점

로마 모자 미스터리 - 4점
엘러리 퀸 지음, 이기원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월 24일 월요일 저녁 로마 극장. 인기리에 공연 중이던 연극 <<건플레이>>의 2막이 끝나갈 무렵, 좌측 LL32번 좌석에서 앉은 채로 독살된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의 이름은 몬테 필드로, 변호사이지만 수많은 악행으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수사에 나선 퀸 경감과 아들 엘러리는 피해자의 모자가 사라진 사실에 주목하는데.....

기념비적인 엘러리 퀸의 데뷰작. 이른바 '국명'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엘러리 퀸은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문체가 지나치게 딱딱하고 장황하며, 탐정인 엘러리 퀸의 과시욕과 허세가 제 취향이 아니거든요. <<너버스 브레이크 다운>>의 저자 다카미 요시히사처럼 잘난 척 하는 탐정과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는거죠.

이 작품은 그래도 데뷰작인 덕분인지 그렇게까지 허세가 가득하지는 않습니다. 가끔 이런저런 고전 속 대사를 인용하는 정도라 충분히 참을만 했거든요.
하지만 의외로, 엘러리 퀸이라는 이름에서 기대해 봄직한 추리적인 요소가 완전 실망스러웠습니다. 변호사이자 비열한 악당인 피해자 몬테 필드의 시체 옆에는 그가 쓰고 왔을 모자가 발견되지 않았다는게 핵심 요소인데, 엘러리의 추리는 ' 범인이 몬테 필드의 모자를 자기 것 대신 쓰고 갔고, 범인의 모자는 극장 안에 남아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즉 연극 소품의 모자일테니, 연극 배우가 범인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자를 겹쳐서 쓰거나, 자기 모자 안에 몬테 필드의 모자를 어떻게든 구겨 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모자를 구겨서 품 안에 넣을 수도 있었을겁니다. 몬테 필드가 쓰던 모자는 크고 화려하다는 묘사가 있는데, 이런 모자를 쓰면 눈에 더 잘 뜨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꼭 배우인 스티븐 배리가 아니라 극장 지배인이나 극장 홍보 담당자 등이 범인일 가능성은 왜 배제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스티븐 배리만 사건 당일 극장 밖으로 나갈 때 양복을 입고 있었다는 설명이라던가, 초반에 꽤 중요하게 언급했던 머리 크기에 대한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되지는 않고요. '독자에의 도전'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이유로 이 책에 등장한 정보만으로 범인을 특정하기는 여러모로 무리입니다.

게다가 몬테 필드가 모자 안에 협박에 사용한 서류를 넣고 다녔다는 설정 역시 억지스러웠습니다. 몬테 필드는 협박 대상자와 같은 수의 모자를 구입한 뒤, 이를 비밀 장소에 숨겨 놓고 협박 대상자를 만날 때 마다 비밀 장소에서 모자를 꺼내어 쓰고 나갔다고 묘사됩니다. 그런데 이런 비밀 장소가 있었다면, 서류만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가지고 가면 되잖아요? 왜 비싼 모자를 다수 구입해 가면서 그 안에 서류를 숨겼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묘사만 보면 당시 신사들이 모자없이 다니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나 본데, 그런 사회적 분위기도 잘 와 닿지는 않았고요.

하여튼 이렇게 모자를 중심으로 추리가 이루어지는데, 이에 대한 추리와 설정이 이해가 되지 않으니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그 외의 여러 등장 인물의 묘사도 불필요한 부분이 많고 지루했고요. 어차피 극장 내 관계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황에서, 극장 외 다른 인물들로 분량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딱 한가지, 독살에 사용된 테트라에틸납이라는 독약은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휘발유에 첨가되기 시작한 물질로, 작 중 전문가 존스 교수에 따르면 독살에 굉장히 최적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색투명하고 오로지 희미한 냄새만 나지만 독성은 강력할 뿐 아니라, 양조용 증류 장치만 있으면 휘발유를 가열하여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거든요. 이렇게 완벽한 독약은 본 적이 없는데, 왜 다른 작품에 사용되지 않았을까요? 궁금해집니다. 참고로 테트라에틸납은 오래전에 첨가되던 물질로 지금은 모두 퇴출되었다니, 혹시라도 시도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독특한 독약의 존재가 작품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합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추리 소설 역사에 길이 남을 작가와 탐정의 데뷰작이라는 역사적 가치 때문에 0.5점을 더했을 뿐입니다. 그 외의 다른 가치는 찾아보기 어렵네요. 일반적으로 수준이 그닥 높지 않은 편인 국명 시리즈 중에서도 최악으로, 엘러리 퀸의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0/04/05

무증거 범죄 - 쯔진천 / 최정숙 : 별점 2점

무증거 범죄 - 4점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년 전부터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번화한 도시. 범인은 살인 현장에 지문과 ‘날 잡아주세요’란 메시지가 인쇄된 종이 한 장만을 남기고 다른 어떤 허점도 드러내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네 번째 특별조사팀마저 성과 없이 해산되자, 경찰은 수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범죄논리학 전문가 옌량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편 한순간의 실수로 불량배를 죽이게 된 청년 앞에 한 남자가 다가와 증거를 없애줄 테니 범죄를 부인하라며 경찰 대처법을 가르쳐주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용)
중국 추리 소설은 찬호께이의 작품 3편 - <<13 .67="">><<망내인>>, <<기억나지 않음, 형사>> - 과 원샨의 <<역향유괴>> 만 읽어보았습니다. 찬호께이의 작품은 대체로 평작 이상이었지만 원샨의 작품은 기대 이하였었는데, 이 작품은 어떨까 싶어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트릭이 존재하는 본격 추리물은 아니며, 범죄자와 탐정의 두뇌 싸움이 핵심인 범죄 스릴러입니다. 그러나 제목의 '무증거 범죄'가 의미하는 완전범죄에 대해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습니다. 전前 수사전문 요원이었던 뤄원이 깡패 소태보가 살해된 현장을 조작하는 과정의 디테일, 그리고 이 사건이 범죄논리학자 옌량에 의해 하나씩 단서가 드러나며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이 볼 만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2만 위안이 넘는 큰 돈을 하트 모양으로 작게 접어서 사건 현장에 숨겨 놓는다는 아이디어가 기발했어요. 이 돈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몰려들어 현장이 훼손되게 만드려는 의도였는데, 아주 설득력 넘쳤습니다.
이 사건과 항저우 시에서 "나를 잡아주십시오"라는 메모를 남기고 벌어진 연쇄 살인극이 맞물리는 전개도 좋습니다. 뤄원이 자신의 아내와 딸이 실종된 현장에 남겨진 지문의 소유자를 찾기 위해, 그 지문의 소유자가 범인인 살인극을 조작하여 일으켰다는 동기였는데 대담한 아이디어일 뿐 아니라, 설득력도 충분합니다. 이러한 설득력 덕분에, 이야기를 끝까지 읽게 됩니다.
옌량이 추리한, 뤄원이 주후이루와 궈위가 저지른 살인 은폐를 도와준 이유도 그럴듯합니다. 뤄윈이 소태보를 애초부터 살해할 목적이었지만, 선수를 빼앗긴 뒤 은폐를 도와주었다는 이유인데,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이 그게 사실이라는걸 암시하니까요. 좀 작위적이기는 해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이외에 익숙치 않은 중국식 묘사들도 흥미로왔습니다. 제목의 '무증거 범죄 (완전범죄)'를 비롯하여 상식적이다, 이론적이다라는 말을 '유물론자'라고 표현한다던가, 범인이 경찰 수사에 대해 잘 알고있다는 걸 '역수사 능력' 이라고 표현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으며, 두뇌 싸움도 제대로 펼쳐지지도 못하는 탓입니다. 이는 옌랑과 경찰이 뤄원을 잡아 넣을 증거를 찾아내는데 결국 실패하는 탓이 가장 큽니다. 옌량의 활약이 없는건 아니지만, 두뇌 싸움의 결과는 일방적입니다. 게다가 고차방정식 운운하며, 증거가 없으니 범인부터 대입해서 시나리오를 짠다는 옌랑의 방법론은 일견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특정 인물을 범인으로 만드는 조작극과 별로 차이가 없어서 아주 실망스럽습니다. 이는 뤄원이 "모든 이야기가 들어맞는다고 해서 내가 범인이라곤 할 순 없어. 자네의 시나리오는 아무한테나 죄를 뒤집어씌운 다음 범행 동기를 설명할 수 있지."라고 통렬하게 부정하지요. 옌랑은 마지막에는 감정에 호소해서 어떻게든 자백을 이끌어내는게 전부였을 뿐입니다. 한 마디로 뤄원한테 완패한 셈입니다. 이래서야 공정한 두뇌 싸움으로 보기는 어렵죠.
또 뤄원이 연쇄 살인극을 벌이는 와중에, 과연 단 한 번도 경찰 수사 물망에 오르지 않을 정도의 완전범죄가 가능했을지?에 대한 설명도 많이 부족합니다. 뤄원이 대단한 전문가라는걸로 퉁치기는 힘들어요. 실제로 공원에서의 범행은 목격자도 있었는데 말이죠. 하긴, 이는 뤄원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범죄가 완전범죄가 된 것에 비하면 약과이기는 합니다. 우발적으로 급작스럽게 벌인 범행인데도 불구하고, 경찰 최고의 전문가가 사력을 다해 찾았지만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지 못할 완전 범죄가 성립된걸 단지 운이라고 치부하는게 가능할까요? 작 중에서 뤄원의 능력이 시종일관 대단한걸로 묘사되는 것과는 배치되는 내용이기도 해서 납득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울러, 옌랑이 뤄원을 수상하다고 여긴 계기가 된 뤄원의 차에 대한 감상은 억지스럽습니다. 뤄원답지 않은 좋은 차는, 범행을 저지르고 용의선상에서 쉽게 빠져나가기 위함이라고 추리하지만, 뤄원이 과거 출원했던 특허로 성공한 부자라고 설명되는 만큼, 좋은 집과 좋은 차는 그 재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의심을 할 이유는 없어요. 또 그게 수상했다면 좋은 집에 사는 건 왜 트집을 잡지 않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은 사소할 뿐, 가장 큰 문제는 책 뒤 해설에서도 실려 있듯이, <<용의자 X의 헌신>>과 너무나 비슷한 구조라는 점입니다. 수학, 과학과 관련된 천재들의 두뇌 대결, 순전히 선의에 의해 사건 은폐에 가담한다는건 완전 판박이죠. 애틋한 사랑을 키워나가던 두 청춘 남녀가 결국 파멸한다는 결말까지도 똑같고요. 작가 스스로도 영향을 받았다는걸 인정했다는데, 그렇다면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무언가 새로운게 있었어야 했습니다. 공정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요. 그러나 그러한 새로운 요소는 중국이라는 무대의 특성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오리지널 만큼의 수작은 아닙니다.
그나마 캐릭터를 가져오려면 제대로 가져왔어야 했는데, 옌량과 뤄원 모두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갈릴레오 유가와 역인 옌량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범죄자와의 승부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결정적 단점이 있으며, 뤄원은 아무리 아내와 딸 실종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서라지만, 잔챙이 범죄자들을 다섯 명이나 살해했다는건 동정심을 가질 여지가 없으니까요. <<용의자 X의 헌신>> 속 이시가미처럼 뤄원이 아내와 딸의 실종 이후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를 독자에게 잘 공감시키지 못한 탓입니다. 이건 작가가 놓쳤다고 밖에는 볼 수 없겠죠. 
어설프게 캐릭터를 베끼지 말고, 초반부에 옌량이 똥이 있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뒤 벌어지는 사고는 재미있었던 만큼, 이런 식으로 좀 어설픈 인물로 그려가는게 차별화되고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읽는 재미는 나쁘지 않지만, <<용의자 X의 헌신>>에 비교하자면 한없이 부족하네요. 중국 추리 소설이 궁금하신게 아니라면,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중국 추리 소설은 찬호께이만 믿고 가야겠습니다.

2020/04/03

[번역] 2DK 개미지옥 - 아토다 다카시

일전에 졸역한 'A 사이즈 살인사건'을 올리며, 반응이 괜찮으면 다음 편도 번역하겠다고 약조한 바 있습니다. 너무나도 엉망인 번역 탓에 송구스럽지만, 즐겨주신 분이 계신 듯 하여 다음 편인 '2DK 개미지옥'도 소개해 드립니다. 의역으로 가득찬 졸역이지만, 추리적으로는 전작보다 훨씬 나은 작품이라 생각되니,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창 심심하신 분들께 위안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울러 관리 측면에서 좀 길지만 한 편으로 올리는 점, 참고 부탁드려요.

도요코 선의 N 역에서 하차하여 서쪽의 개찰구로 나오면, 길고 완만한 오르막 언덕이 나타난다.
"아저씨, 비켜비켜! 비켜요!"
새된 목소리가 들렸다. 두 명의 아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위험하잖아!"
사무라 에이스케는 다급하게 보도 옆으로 몸을 피했다.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그 옆을 지나갔다.
언덕의 길이는 50여 미터, 경사는 78도. 확실히 스케이트보드를 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학교에서는 분명히 도로에서 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시키고 있겠지만, 개구쟁이 아이들이 귀담아들을 리가 없다.
"뭐, 다른 놀이터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사무라는 석양빛으로 길게 드러워진 아이들의 그림자를 뒤로 한 채, 다시 서둘러 언덕길을 올랐다.
언덕을 오르면 바로 묘법사다. 절에는 산호(山呼)와 사호(寺呼)가 있는 법이니, 묘법사도 정식으로는 어딘가산 묘법사라고 불러야겠지만, 사무라도 산호까지는 모른다. 똑같이 시체를 취급하는 장사라도, 수사 1과의 형사가 산호까지 알 정도로 절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 리는 없다.
산호가 있는 건 절이 분명 산 위에 있기 때문이다. 묘법사 정문까지 긴 고갯길이 이어진 것에서도 그러한 산호의 유래를 느낄 수 있다. 예전에는 이곳 주변도 너도밤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한적한 산길이었겠지만, 지금은 그저 회색 빌딩과 콘크리트 포장길이 무표정하게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 가운데 묘법사만 홀로 고집을 부리듯 화려하게 자연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안채로 가는 쪽문을 빠져나와 마당 쪽으로 고개를 내밀자, 형형색색의 튤립이 피어 있는데, 툇마루를 따라 화려한 와인잔을 늘어놓은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
사무라가 인기척이 느껴지는 툇마루 쪽을 향해 말했다.
"여어. 기다렸다고."
감색 티셔츠를 입은 주지 스님이 사무라를 알아채고 고개를 까닥였다. 스님 앞에는 몇 년 전 은거한 노사가 입을 다물고 앉아 있었다. 주지 스님은 노사의 머리를 면도하는 중이었다. 노사는 치매가 시작된 후에는 좀처럼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날씨가 좋은 탓이겠지. 사무라와 친한, 현재의 주지 스님은 데릴사위로 노사는 그의 장인이다. 주지 스님이 수행승이던 시절부터 장인의 머리를 깎는 일은 그의 몫이었을 거다. 그 습관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으로, 평소엔 멍한 얼굴을 하는 노사도 오늘만큼은 위엄을 떨치듯 고개를 바짝 세우고 있었으며, 그 뒤에서 티셔츠를 입은 스님이 얌전히 면도하는 모습은 시간이 십수 년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듯했다.
"곧 끝나니까. 2층에서 기다리게."
지켜보던 사무라에게 주지 스님이 활달한 목소리로 말했다.
"푹 쉬고 있으라고."
사무라는 현관으로 돌아 나온 뒤, 젊은 수행승의 안내로 언제나의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는 아니나 다를까 벌써 바둑판과 방석이 갖추어져 있었다. 오월의 바람이 어디선가 꽃향기를 날라와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살인사건 얘기를 꺼내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이렇게 상쾌한 봄날 저녁 스님을 상대로 한가롭게 바둑을 두고 지내고 싶다.
"오래 기다렸지? 미안."
스님이 큼직한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들어왔다. 사무라 에이스케는 살인 담당 형사로는 아직 신출내기로 쉰을 넘은 주지 스님과는 부모 자식만큼이나 나이 차이가 났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이 잘 맞았다. 바둑 솜씨는 서로가 상대보다 조금 강하다고 생각하는 정도. 세상에 이렇게 멋진 적수는 없다.
"자, 시작할까?"
스님은 바둑판 덮개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잡을게요'
사무라가 선을 잡았다.
"정선."
"네."
잡은 돌을 세어보니 열한 개였다. 흑을 잡은 사무라는 가벼운 묵례 후, 우상귀에 돌을 두었다. 돌은 고급품으로, 1.5cm 정도의 두께였다. 내려놓은 돌이 바둑판 위에서 살짝 떨렸다.
"오늘은 그쪽부터 두는건가?"
"우선 이쪽 집을 벌어 놓으려고요."
"그렇군."
번갈아 열 수 정도 둔 뒤, 사무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혼잣말하듯 사건을 입에 올렸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는데 시체가 마중을 나왔답니다."
돌을 집어 든 스님의 손이 잠시 공중에 머물렀다.
"이런, 벌써 교란 전술 시작인가?"
"천만에요. 이건 진짜 사건이에요. 지난주 시모키타자와에서 일어난 정말 기묘한 사건이지요."
스님은 사무라의 공격을 살짝 피하며 물었다.
"부처님은 남자였나? 아니면 여자였나?"
그때 미닫이문이 열리며 수행승이 술과 안주를 가져왔다.
"아직 식사하기에는 좀 이르지? 술이나 한잔하자고."
'항상 죄송합니다.'
안주는 죽순조림과 참치 초무침이었다. 닳고 닳은 스님 같으니라고. 술은 흠뻑 취할 정도로 마시고, 남의 살도 매우 좋아한다. 먹을거리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일에 정말로 밝다. 살아가는 도중에 우연히 묘법사의 사위가 되어 스님이 된 것 같은데, 스님이 되기 전에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사무라도 아직 물어본 적이 없다.
수행승이 나가자 사무라가 말했다.
"부처님은 남자입니다."
"그렇군. 그럼, 부처님은 새 신부의 옛날 애인쯤이려나."
"아니,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합니다."
"그럼 신랑의 친구였나?"
"그렇지도 않고요."
"호오. 그럼 신랑, 신부, 그 누구와도 관계가 없다고?"
"본인들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어요. 그 남자가 부부의 2DK 아파트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죽었는데 말이죠."
* 2DK : 방 2개 + Dining Room (식당) + Kitchen (부엌) 으로 이루어진 집
"아이고 부처님, 알몸으로? 그런데 이 돌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그나저나 알몸으로 죽으면 안 되지."
스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구석진 돌을 공격해 들어갔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 화요일, 5월 9일의 일입니다. 시모키타자와의 그린 아파트에 사는 젊은 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이죠. 스즈미 코지와 스즈미 료코 부부로...."
"잠깐만. 아파트에 살던 젊은 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 아닐까?"
".….…?"
"그렇지만 맞잖아.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아직 부부가 아니었으니까."
"아하하하. 스님의 억지는 당할 수 없네요.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두 사람이 결혼한 건 5월 3일입니다. 아파트를 빌린 것은 4월 중순이고요. 남자가 결혼식까지 혼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난 뒤 일주일간 규슈를 돌아보았고......."
"그리고 돌아와 보니 세상에나! 벌거벗은 남자가 죽어있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 이건 안 돼. 방심하면 안 되지. 엄청난 실수를 할 뻔했군."
스님은 입을 삐죽이며 사무라를 노려보았다. 오른쪽 구석에서 사무라의 흑과 대치 중인 백의 생사가 불안했다. 스님은 얼굴을 바둑판에 묻고 그 돌 무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무라는 어려운 사건을 맡을 때마다, 고양이가 다래나무에 이끌리듯 묘법사를 찾는다. 그래서 스님은 웃으면서 '자네는 뭔가 풀 수 없는 사건을 만나면 절에 발길을 옮기는군'이라고 말하곤 했다.
오늘의 방문도 마찬가지 목적이다. 이번 사건은 정말로 기묘했다. 스님에게 이야기한 대로 사건이 신고된 날은 5월 9일 화요일이었다. 그날, 시모키타자와의 번화가로부터 조금 뒷골목에 들어간 3층짜리 아파트에 스즈미 코우지, 료코 두 사람이 돌아왔다. 코우지는 굵은 체크 재킷에 밤색 바지, 료코는 꽃무늬 투피스에 연지색 모자를 차려입었다. 낡은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모습이었지만,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막 신혼여행을 끝낸 뒤, 걸음걸이도 가볍게 둘만의 스위트 홈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신랑이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
두 사람은 아무도 기다릴 리 없는 방을 향해 말을 걸었다. 물론 대답은 없었다. 인기척이 없는 실내에 공기가 축축하게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신부가 이 아파트에 발을 들여놓은 건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결혼식 전에 짐을 나르고 청소를 하거나, 혹은 내친김에 미래의 배우자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이러쿵저러쿵 몇 번이나 이 아파트를 찾았었다. 그러나 정식 거주자로서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시각은 오후 4시가 넘었다. 실내는 밝았다.
"나올 때 커튼 치는 걸 깜빡 한거야?"
며칠 전 신랑은 이 방에서 결혼식장으로 향했을 것이다.
"음, 그랬었나?"
코우지는 자신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료코는 시원시원하게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켰다. 그런 다음 오늘부터 자신이 지배하게 될 땅을 점검하듯 부엌을 살펴본 뒤, 욕실 문을 열었다. 순간 숨을 삼키는 듯한 기색이 흐르고, "꺄악!"이라는 비명과 함께 료코가 도망치듯 튀어나왔다.
"왜 그래?"
"사, 사, 사람이......"
료코는 남편에게 매달려 욕실 쪽을 가리켰다. 코우지는 옆에 매달아 놓은 프라이팬을 손에 들고 조심조심 욕실로 향했다. 프라이팬을 든 것은 무의식중에서도 무기가 될 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기는 필요 없었다. 희미하게 김이 피어오르는 욕실 좁은 욕조 속에서 한 남자가 목을 늘어뜨린 채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죽었어."
"정말?"
"틀림없어……. 가스가 새고 있어."
확실히 욕실에 발을 들여놓자, 날카로운 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스즈미 코우지는 서둘러 욕실 창문을 열고 가스 욕조의 밸브를 잠갔다.
"누구야? 이 사람은?"
료코가 코를 막으며 물었다.
"모르겠어. 난 몰라, 이런 남자."
코우지는 숨을 멈춘 뒤, 다시 한번 욕실로 돌아가 시체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34, 5살쯤 되어 보이네."
시체는 섬뜩했지만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야. 도대체 누굴까..... 너는 어때?"
새신랑은 "너"라는 호칭을 약간은 어색하게 사용하며 아내에게 말했다. 료코는 두려움을 억누르려는 듯 가슴을 두 손으로 누르며 욕실을 들여다보았다.
"몰라, 이런 사람."
"그래도 모르니까, 잘 봐."
"잘 보라니......몰라."
"좋아. 어쨌든 경찰에 전화하자."
"으....."
축복받아야 할 새로운 삶의 첫걸음은, 낯선 노출광에 의해서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죽은 남자의 신원은 알아냈나?"
묘법사의 주지 스님은 천천히 고개를 위, 아래로 움직여 바둑의 형세를 가늠하며 물었다. 바둑은 중반의 접전을 끝내고 종반전에 진입한 상태였다. 지금까지의 전황은 사무라가 우세했다. 스님은 형세를 단번에 만회할 수단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이제 둘 곳도 없는 곳들을 상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둘 데가 없을걸요? 그 근처는."
"응. 없는 것 같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심야 방송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게 효과적이라는데, 스님의 두뇌도 그런 구조인 것 같다. 바둑을 두면서 동시에 사건을 추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둑이 별로일 때에는 아직 추리 쪽도 정리되지 못한, 암중모색의 단계이다. 아까부터 변변한 수가 없는 걸 보면 스님의 추리는 아직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한 듯 싶었다. 사무라는 이 상태에서는 적당히 스님의 비위를 맞추며 질문에 대답하는 게 제일 좋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했느냐 하면……."
사무라는 흑돌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걸 모르면 이야기가……. 안 되지...."
팟! 하고 스님의 흰 돌이 응전해왔다.
"우리 경찰은 우수합니다. 당연히 밝혀냈죠."
"그렇군."
"미나토구의, 가전 제조업체 경리부에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이름은 코이즈미 노부히코, 나이는 37세. 가족으로는 아내와 자식은 두 명…….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와 유치원 다니는 남자아이입니다. 세타가야의 공단 주택에 살고 있고, 월급은 20 수만엔 정도. 잔업 수당은 부인에게 주지 않고 모두 용돈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어디에나 있는 듯한 평범한 직장인이고, 취미는......"
"골프와 마작."
"그것도 추리인가요? 하지만 틀렸습니다. 골프도 못 치고, 마작도 못 한다네요. 취미는 산책과 사교댄스, 그리고 패션이었답니다. 멋 내기를 좋아했다는군요."
"술은?"
"조금."
"유흥 업소는 다녔던가?
"스님이 그걸 물어볼 거로 생각해서 회사 동료에게 물어봤죠."
"잘했네. "
"직장인이라 가보긴 했지만, 부지런히 다니는 편은 아니었다는군요. 구태여 말하자면 적당하였달까요?"
"흥, 흥......"
스님은 갑자기 화제를 바둑으로 돌렸다.
"어, 거기 그런 수가 있었나?"
"이쪽 돌은 덕을 좀 본 것 같죠?"
"이미 대세에 영향은 없나."
"그런 셈이죠."
"확실히, 여기서 끝났구먼."
"그런 것 같네요."
"유감이군. 이번에는 내가 졌네. 잠시 모습을 못 본 사이에 실력이 늘었는걸? 수사는 대충 하고 바둑책을 읽으면서 공부한 거 아냐? 덕분에 범인은 전부 다 놓치고 말이야."
"와, 엄청난 말씀이시네요. 스님 쪽이야말로 틈나는 대로 비밀로 전해진 전설의 두루마리를 숙독하면서 공부하시는 거 아니었나요?"
"아니, 환절기에는 부처님이 되는 사람이 많아서 절도 꽤 바쁘다고."
"그래요?"
계가해 본 결과, 흑집은 마흔 둘, 백집은 스물셋으로 덤을 빼도 무려 열네 집 반의 승리였다.
"아이고 망신스러워. 이건 대패야 대패."
스님은 갑자기 생각난 듯 손을 두드려 술을 추가 주문했다.
"그러면 다시 한 판 더?"
"네, 네."
첫판에서 사무라가 이기면 스님은 분해서 꼭 다음에는 이기려고 한다. 착수도 날카로워졌고, 그 영향으로 추리 쪽도 좋아진다. 사무라에게는 더 바랄 나위 없는 결과였다. 사무라는 따끈하게 데운 술을 목구멍에 흘려 넣고, 맛있게 버무린 초무침을 한 입 깨물었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흑으로 시작하지."
"네."
바둑돌을 치운 뒤, 두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스님은 흑 1, 3, 5로 시작하는, 슈사쿠 명인의 포석으로 두기 시작했다.
사무라가 손을 잠깐 멈춘 사이,
"그 살해당한 남자,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하고 스님 쪽에서 교란 전술을 써왔다.
"고이즈미 노부히코입니다."
"그래그래. 그 고이즈미와 신혼부부의 관계는?"
"그게 아무래도 확실치 않아요."
"호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남편은, 이런 남자는 전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아내 역시 이런 사람 알 리가 없다고 경찰에서 줄곧 증언하고 있거든요."
"그럼 왜 그 남자가 아파트에 있었지?"
바둑은 포석이 끝나고, 한 수, 한 수 둘 때마다 심사숙고가 필요한 중반의 공방전에 돌입하였다. 사건의 추리도 조금씩 조금씩, 까다롭고 어려운 부분을 향하였다.
"그게 문제라고요. 아파트 관리인이나 이웃에게 물어봐도 아무도 그런 남자를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 고이즈미 누군가가 전에 그 아파트에 살았던 건 아니겠지?"
"맞아요. 그 부분은 정말로 아주 상세하게 수사를 진행했는데, 고이즈미 노부히코와 그린 아파트를 연결하는 것은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아, 깜빡했네!
스님은 정석대로 흑돌을 놓으며 외쳤다.
"뭘요?"
"살인사건이 맞나?, 애초에, 욕실에는 가스 냄새가 났었잖아? 사고사 가능성은 없나?"
이번 한 수로 흑이 형성한 빗살 모양 세력이 백의 중요한 지점을 단절시켰다. 스님의 수는 두면 둘수록 점점 날카로워졌다.
"사고사 가능성도 있습니다. 목욕탕의 가스 욕조는 뚜껑을 닫으면 불이 꺼지도록 만들어진 물건인데, 고무관을 연결한 부분이 느슨하더군요. 그 부분에 가스 누출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충분하죠."
"하지만 자네 말로는 신혼부부는 아파트로 돌아가서 한동안 가스 냄새를 눈치채지 못했잖아? 작은 아파트 목욕탕에서 사람이 죽을 정도로 가스가 샜는데, 거실 다다미방에서 알아채지 못한다는게 말이 되나?"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부부에게 물어보니 남편은 현관을 열자마자 약간 가스 냄새가 났던 것 같기도 했다 하고, 부인은 욕실 문을 열었을 때 너무 놀라서 냄새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도대체 욕실에 얼마나 가스가 차 있었는지도 정확히는 알 수 없고요.".
"나중에 테스트 해봤을 거잖아. 같은 욕조로."
"물론이죠. "
"어땠나?"
"어느 쪽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는 꽤 오랜 시간, 대략 한 시간 정도 가스가 누출된다면 모르고 목욕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응, 응. 그렇지. 가스 중독은 먼저 운동 중추를 마비시키니까. 뭐지? 몸이 이상한데?라고 깨달았을 때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거지"
"스님은 부처님 만드는 법도 잘 아시네요."
"그런 거북한 소리 말라고. 그것보다도 구석의 이 대마 말이야, 이 녀석도 부처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아무리 스님이라도 좀 힘들어 보이는데요?"
"그래, 그래."
스님은 다시 바둑판으로 몸을 기울였다. 사무라는 화제를 되돌렸다.
"그래서 욕실 정황만으로는 뭐라 말할 수 없어요. 목욕탕에서 가스가 누출되어 일어난 사고사는 도내에도 매년 몇 건씩 신고되니까요."
"그럼 고이즈미 누군가 씨도 사고사라고 하는 게 어때? 경찰도 바쁠 거잖아."
"가능하다면 그렇게 처리해버리고 싶기는 합니다. 위에서도 그럴 생각이 없지는 않아요. 사인도 마침 일산화탄소 중독이니까요. 하지만 피해자가 어째서 생면부지의 집에서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게 문제에요. 그것 때문에 최소한 저는 그렇게 간단하게 사고사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자랑스러운 국민의 경찰, 민중의 지팡이로서 말이죠."
"고맙군그려."
탁! 소리가 났다. 바둑판 위의 돌이 흔들렸다. 두 번째 판은 스님의 우세로 흘러가고 있다.

시신이 발견된 그린 아파트는 콘크리트 3층 건물로 문제의 방은 306호실, 계단을 올라 안쪽에서 두 번째 방이다. 현관을 들어서면 다다미 넉 장 반쯤 되는 식당 부엌이 있고, 오른쪽 안쪽으로 가스대와 싱크대가, 왼쪽에 좁은 널빤지를 세워놓은 듯한 욕실 미닫이문이 있다. 식당 겸 부엌의 안쪽은 다다미 6장짜리 방, 그 안쪽으로 다다미 8장짜리 방이 있는데 신혼부부는 이곳을 침실로 삼으려 했는지 큰 더블베드, 그리고 막상막하로 큰 옷장이 놓여 있다. 사체 부검 결과, 사망 추정 시각은 발견된 시간으로부터 40시간에서 45시간 전, 즉 전전날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의 사이이다.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질식사. 사체에 외상은 전혀 없이 깨끗한 상태였다. 약물의 흔적도 없었다.
"자물쇠는 구석구석까지 채워져 있었겠군."
바둑은 세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두 번째 판은 스님의 압승. 사무라는 도중에 돌을 던졌다.
"맞아요. 그리고 혹시 창문이 잠겨있지 않았었더라도 방은 3층이고 창문 밑은 절벽입니다. 현관 말고는 출입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어요."
"현관문은 확실히 잠겨 있었나?"
"남편인 스즈미 코우지는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누군가의 옷과 신발은?
"있었어요. 욕실 미닫이문 위에 선반이 있는데, 거기에 놓인 의상 바구니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렇군."
세 번째 판은 중반까지 느긋하게 진행되었다.
"팬티, 셔츠, 양말, 이름이 새겨진 와이셔츠, 영국제 양복 상, 하의가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습니다. 주머니에는 명함, 던힐 라이터, 테크노 시계 등. 신발은 구찌 제품으로 신발장 안에......"
"고급품뿐이네. 누군가의 지문은?"
"선명한 것은 침실에서 두 개, 다다미 6장짜리 방 하나, 부엌에서 목욕탕까지 일곱 개 정도."
"기묘하군."
스님이 과장되게 팔짱을 꼈다. 뭔가 복잡한 생각이 뇌리에 오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는 팟! 사무라의 흑집 안에 백돌을 놓았다. 세력을 새롭게 만들려는 전략이었다.
"신발에 붙어있는 흙은 아파트 부근의 것이었습니다."
"그렇군."
"뭔가 아시겠어요?"
"아니, 아직 아무것도……. 신혼부부 사이는?
"좋은 것 같아요. 뭐, 신혼부부는 대체로 사이가 좋지만....... 신랑 선배의 권유로 맞선을 보고 6개월의 교제 끝에 결혼. 당사자들은 물론 양가 부모님들 모두 좋은 인연이라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둘이 죽은 남자를 모른다는 게 정말이겠지?"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 정성 들여 수사했지만, 고이즈미와 부부, 구리고 그린 아파트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저도 부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확실하겠지."
"이거 참, 송구스럽네요."
"죽은 고이즈미는 어떤 사람인가?"
"평범한 직장인인데, 여자관계는 깔끔하지 못한 편입니다. 4년에 한 번꼴로 부인을 울렸거든요."
"올림픽 같은 남자잖아."
스님은 자신의 농담을 즐기듯 쾌활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바둑판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정말 별난 사건이구먼."
"예, 뭐......"
"죽은 남자의 회사는 그래, 경기는 괜찮았다던가?
"최근 몇 년 동안의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요."
"그래?"
스님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사건을 생각하고 있는지 바둑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사무라 쪽도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좋다.
"좋아."
생각을 마친 스님은 굳은 결심을 한 듯, 사무라의 흑 세력을 비집고 장렬하게 돌을 내려놓았다. 묘수였다. 백에게도 위험한 수였지만, 흑으로서는 도무지 뾰족하게 응대할 방법이 없는 멋진 수였다. 무리해서 장렬한 싸움을 시작하더라도, 결과는 흑의 패배임이 눈에 보이듯 뻔했다.
"아! 굉장한 묘수네요. 완전히 당했습니다."
"아니야, 이쪽도 약점이 있어."
그러나 스님이 승리를 확신했다는건 말투로도 잘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스님의 추리도 막바지에 이른 게 틀림없다.
"사무라"
"네."
"자네, 피아노 칠 줄 아나?"
"아뇨, 음악은 전혀 재능이 없어요."
"그래? 그렇다면, 자네 아파트에서는 피아노를 쳐도 되나?"
"예, 일단은요. 피아노를 치든, 방망이를 두드리든 뭘 해도 상관없습니다. 해 본 적은 없지만요."
"그럼 그린 아파트는 어떨까?"
"글쎄요......"
"그린 아파트에서 피아노를 쳐도 되는지, 개나 고양이를 키워도 되는지, 이 점을 조사해 주게."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 기묘한 질문이 사건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무라는 검은 수첩을 꺼내 스님의 질문을 적었다.
"아무래도 바둑은 이것으로 끝이군요."
스님의 한수로 반상 위의 모든 싸움은 끝났다. 계가해보니 백의 일곱 집 반 승. 종반전에서 스님의 수가 절묘했던 덕분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사무라가 꾸벅 머리를 숙였다.
"아니, 아니. 정말 운이 좋았다고."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사건 쪽 말인데...."
"네, 네."
스님은 뒤섞여 있는 돌들을 색깔별로 골라낸 뒤, 손끝으로 좌우로 나누며 말했다.
"신혼부부 아파트 침실......"
"예......?"
"거기 옷장 서랍......"
"네?"
"거기에 자석에 달라붙는 게 몇 개나 들어 있을까?"
"그걸 조사해야 하는 거군요."
"맞아. 내친김에 죽은 고이즈미 누군가 씨. 이 사람은 텔레비전 영화 따위를 보면서 자주 졸지 않았는지, 부처님 부인에게 물어봐 달라고. 그리고 사건이 있었던 306호실, 베란다에 러닝머신이 놓여 있었는지, 커다란 화분은 없었는지......"
"글쎄요. 그건 분명히......"
"일단 알아봐 달라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그린 아파트 306호실에 살았던 여자 중에서는 누가 수학을 제일 잘했을 것 같은지......"
"네? 그런 거 물어본다고 알아낼 수 있을까요?"
"뭐, 괜찮아. 아무튼 물어보라고."
"관리인이나 이웃을 만나서 어떻게든 대답을 모아보겠습니다."
"그렇지. 그렇게 해서 수학을 제일 잘할 것 같은 여자를 알아내면, 그녀를 만나서 수학을 제일 잘하는 여자를 만나서 개미를 좋아하는지 물어봐 줘."
"개미라니……. 그……. 저…. 설탕에 꼬이는 그거요?"
"그렇고말고."
"점점 모르겠네요"
"그렇게 불평하지 말고 한번 해 보라고."
"물론 물어보고말고요. 다른 건 없나요?"
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 오늘은 그 정도로......"
"알겠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알아낼 수 있겠나?"
"글쎄요."
사무라는 여태까지의 이야기를 적은 수첩을 쳐다보았다.
"모레, 이틀 후 점심때까진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
"그거 딱 좋군그래. 나는 그날 2시 즈음까지는 잠깐 본업 쪽 일이 있어서 외출하지만, 3시 이후에는 완전히 비어 있거든. 또 바둑을 두러 오라고. 오늘은 내가 이겼지만, 모레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저는 항상 살인사건을 떠안고 다니기 때문에 바둑에 집중하는 건 어렵단 말입니다."
"천만에. 나야말로 자네가 힘든 숙제를 가져오기 때문에 여러모로 힘들다고."
"그럼, 이번의 숙제는 모레 무사히 해결될까요?
"글쎄, 그건 모르지."
지금 여기서 스님의 추리를 물어봤자 말해줄 리가 없다. 모든 것은 모레의 즐거움. 사무라는 그때까지 스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탐문과 조사를 해 올 수밖에 없다.
"정말 귀찮게 해드렸습니다."
"조금만 더 붙잡고 싶긴 하지만, 자네도 바쁘잖은가."
"그럼 실례했습니다."
현관을 나서자 부드러운 바람이 또 어디선가 농밀한 꽃향기를 실어 온다. 사무라는 향긋한 냄새를 가슴 가득히 담으며 긴 고갯길을 내려갔다.

이틀이 지나고, 스님에게 부탁받은 조사를 모두 마친 사무라는 약속한 3시에 맞춰 묘법사로 이어지는 언덕을 올라갔다.
"아저씨, 위험해요!"
그저께와 같은 개구쟁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언덕을 내려왔다. 사무라는 아이와 지나쳐 절의 입구를 통과했다.
"실례합니다."
"시간을 딱 맞췄군."
스님이 감색 줄무늬 옷을 입은 채 현관으로 나왔다. 지금 외출에서 막 돌아온 것 같았다.
"모처럼이니까 한 판"
"네."
사무라는 한시라도 빨리 스님의 입에서 범인으로 점찍은 사람이 누구인지 듣고 싶었지만, 묘법사 주지 스님의 두뇌는 언제나 바둑돌의 움직임과 함께 활동을 개시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바둑을 두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는다.
"자, 오늘은 기껏해야 한 판이겠네."
스님이 선을 잡은 결과, 사무라가 흑이었다.
"글쎄요. 과연 어떨지....."
"어때, 부탁한 조사 쪽은?"
"네, 다 조사를 마쳤습니다. 만족하실지 어떨지는 자신이 없습니다만."
"아니, 아니, 천만에."
"우선 피아노는 말이죠."
"그래."
"치는 건 금지입니다. 뻐드렁니에 쭈글쭈글한 아줌마로 엄청나게 짜증나는 스타일인 아파트 관리인이 신경질적으로 답하더군요. 벽이 얇아서 이웃에 폐를 끼치니까 악기류는 절대 사절! 이라고요."
"개,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금지지?"
"아, 그렇습니다. 잘 아시네요."
"왠지 그런 느낌이 드네."
"그리고 다음에는......"
사무라는 주머니의 수첩을 꺼내 들었다.
"맞아, 맞아. 양복장 서랍에 자석에 달라붙는 게 몇 개 들어 있는지......"
"맞네 "
"스님의 목적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조사해 왔습니다. 손톱깎이, 가위, 양복장 열쇠, 부서진 시계, 클립, 회사 배지, 금속 빗, 안전핀, 샤프펜슬의 이상 아홉 개가 자석에 붙었습니다. 샤프펜슬은 플라스틱이지만 연결 부분이 쇠로 되어 있어서 붙더라고요. 대충 이 정도입니다."
"수고 많았어."
"그다음에 죽은 고이즈미 노부히코가 TV를 보면서 자주 졸았는지 여부였죠? 이건 부인에게 물어봤어요."
"아, 4년마다 눈물을 쏟았다는 올림픽 부인?"
"맞아요. TV를 보면서 선잠 자는 건 항상 자기였으며, 남편은 졸지 않는 쪽이었다고 대답하더군요. 하지만 곧바로 이런 질문이 수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따가운 눈총과 함께 쏘아붙여서 혼났습니다."
"그건 미안하네."
"아닙니다. 그럼 다음에 조사한 건……."
"이봐, 자네 차례야."
"아, 고맙습니다."
사무라는 스님만큼 편리한 이중구조식 두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바둑 쪽에는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
"다음은 베란다에 러닝머신과 화분이 있는지였죠?"
"그래. 맞아."
"스님에게 그걸 들었을 때, 나도, 어라?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혹시 모르니까 조사해 봤습니다. 그런데....."
"베란다가 없었어?"
"맞아요. 아예 베란다는 있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베란다에 러닝머신이든 화분이든 놓을 방법도 없죠. 창밖에 있을 수 있는 건 공기와 유령뿐입니다."
"그럴 줄 알았어."
"정말이에요? 바둑처럼 억지 부리시기 없습니다."
"바둑 쪽도 억지 따위는 부리지 않는다고. 어차피 요즘은 이기기만 하니까 억지 부릴 기회조차 없잖은가?"
"어, 그랬나요?"
"이론보다 증거. 이 수는 어떤가?"
스님이 둔 수에, 사무라 오른쪽 세력이 갑자기 약해졌다. 묘수였다.
"이건......"
"괜찮았지?"
"음....."
절묘한 수를 보니, 스님의 뇌세포는 최고조로 향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조사 중에서 제일 어려웠던 건, 예상대로 지금까지 306호실에 살았던 여자 중에 누가 가장 산수를 잘하는지였습니다."
"산수가 아니야. 수학이라고."
"아, 맞네요. 하여튼 이웃 등을 조사한 결과를 말씀드리자면, 3년 정도 전에 이사 간 미야오 씨라는 젊은 부인이 가장 잘하는 거로 결론났습니다. 이분은 약사 면허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이과 전공이라면, 당연히 제일 수학을 잘했을 거라는 이유죠."
"그러면 그 젊은 부인에게, 개미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보았는가?"
"네, 찾아가 물었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권투 선수 말인가요? 라고 되묻더군요."
"무하마드 알리와 착각했군."
* 일본어로 개미는 '아리'
"네, 그래서 권투 선수가 아니라, 곤충인 개미 이야기라고 했더니,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라고요."
"그 여자는 매력적인 외모에, 두 살쯤 된 아기가 하나......"
"세상에, 맞아요! 스님,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팟! 스님이 돌을 한층 더 강하게 바둑판 위에 내려놓았다.
"그 여자가 범인이니까"
"정말요?"
사무라는 아연실색하며 스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아셨습니까? 동기는? 어떻게 살해한 거죠?"
"본좌는 억지를 잘 부려잖나.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는 없지."
"억지는 농담이었습니다만... 빨리 알려주세요."
"자네 말을 하나씩 하나씩 듣다 보면, 이쯤에 범인이 숨어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
"자 보라고. 죽은 남자에게는 아무런 외상이 없고, 구두에는 아파트 부근의 흙이 묻어 있다고 했지?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고, 죽은 누군가 씨는 덩치가 상당히 큰 데다가 306호실은 후미진 곳에 있고 창문은 높아. 이런 걸 종합해보면, 누군가 씨는 자신의 두 발로 걸어서 306호실에 왔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해."
"그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사교댄스를 좋아하고, 패션을 좋아하는 멋쟁이고, 여자 문제로 4년에 한 번꼴로 아내를 울리는 남자가 한밤중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아파트를 방문했다는 것은……. 소모산 (作生)!"
스님이 웃으며 선문답의 표어를 외쳤다.
"즉, 여자겠죠."
사무라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였어. 306호실의 실제 거주자들은 한창 신혼여행 중. 그렇다면, 이 방에 들어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유력한 건 관리인이겠지. 하지만 관리인은 고이즈미 누군가 씨가 도저히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짜증나는 쭈글쭈글 아줌마였어. 맞지?"
"네."
"그렇다면 그다음 후보는 306호실의 이전 거주자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이사할 때 방 열쇠는 관리인에게 돌려주지만, 그 이전에 여러 가지 이유로 여벌 열쇠를 만드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그건 그렇죠."
"그린 아파트는 피아노를 쳐도 안 되고, 개나 고양이를 키워도 안 된다. 그렇다면 이런 아파트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이사를 할 수밖에 없어."
"그렇군요."
"그렇다면, 306호실에는 지금까지 몇 명의 젊은 부인이 살았으며, 그 부인들이 아이를 낳은 뒤 어디론가 이사를 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해. 또 요즘 젊은 부인들이 남편 몰래 남자 친구를 만들고 있을 확률은 약 8%라고 하지."
"정말입니까?"
"아하하하. 주간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어. 매력적인 부인이라면 좀 더 비율이 높을지도 몰라."
"음, 확실히 그 젊은 부인, 미야오 유키에 씨라고 합니다만, 상당한 미인이었습니다."
"경찰이 이상한 관심 가지지 말라고."
"아이고, 이거 참, 잘 알고 있다고요."
"그 젊은 부인은 예전에 어딘가에서 고이즈미 누군가 씨를 알게 되어 불장난을 시작했던게 아닐까? 사교댄스를 추는 댄스홀에서 만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고이즈미 누군가는 별로 좋은 남자는 아니었어. 대단한 악당은 아니지만, 남의 약점을 잡은 뒤 협박하여 용돈을 갈취하는 정도의 범죄는 저질렀을 거야. 목욕탕 선반에 놓인 영국제 양복, 신발장의 신발은 경기가 별로인 회사에 다니는 월급이 20수만 엔인 월급쟁이에게는 사치스러우니까. 미야오 유키에 씨도 이 남자에게 협박을 당했겠지."
"그게 살인의 동기였을까요?"
"아마도. 마지막까지 몰린 나머지 살의를 품은 거야. 3년 전에 살고 있던 아파트의 열쇠를 이용할 생각을 한 뒤, 간단한 조사를 통해 지금 사는 사람들이 신혼여행을 떠나 일주일 동안 집을 비운다는 걸 알아내고는 범행에 이용한걸세. 결혼과 신혼여행은 널리 알리는 경사이니만큼, 이웃에게 물으면 곧바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그 틈을 타서 남자를 유인해서 죽인 거야."
"그랬군요."
"남의 아파트를 마치 자기 집인 것처럼 속이고는, 남편이 출장을 갔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만나고 싶다는 정도만 말해도 플레이보이 고이즈미 누군가는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 조심을 거듭하여 몰래 숨어들어왔을 테지."
"그리고 그곳에서 목욕을 시키다가......"
"그건 아니야. 가스 목욕 중에 사고로 죽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계획적으로 그런 상황을 만드는 건 어려워. 일단 가스가 새는 상태에서 욕조 안에서 잠을 자지 않으면 죽지 않는단 말이지. 그러나 자네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에게는 조는 버릇이 없었어. 욕조에서 자는 사람은 상당히 선잠을 좋아하는 사람일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하잖은가. 설령 졸았다 해도 죽는다는 보장도 없고, 약물 흔적도 없고."
"과연, 일리 있네요."
"게다가 범인으로서는, 혹시라도 이웃들이 가스 냄새를 눈치채면 큰일이란 말이지. 그런 위험한 짓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럼 어떻게...?"
사무라는 남은 돌을 바둑판 위에 떨어트리며 말했다.
"어라? 돌을 던지는 건가?"
"네, 도저히 승부가 안 되네요."
"음, 그렇겠지, 그렇겠지. 그러면 사건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면, 고이즈미 누군가가 살해된 건 목욕탕이 아니었어.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는 더 좁고 밀폐된 곳이 필요했어. 바로 침실 옷장이지. 옷장 열쇠는 서랍 속에 있었지? 자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말이야."
"자석에 달라붙는 게 뭔지는 그래서 조사를 시키신 거군요. 그런데 남자는 옷장 안에 왜 들어간 거죠?"
"여자가 시켜서 옷을 벗고 목욕탕에 들어가려는 찰나! 여자가 남편이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겠지. 방은 3층이고, 창문 밑은 절벽이야. 도저히 도망칠 방법이 없어. 숨을만한 베란다도 없는 데다가 알몸이고. 그 상황에서 고이즈미 누군가가 아닌 그 누구라도, 여자가 빨리 옷장으로 들어가요! 라고 말하면 들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지. 그 뒤 옷장 문을 밖에서 잠가야만 열 수 없다는 설명을 들으면, 밖에서 자물쇠를 채워 버려도 수상하다고 느끼지 않았을 테고."
"스님, 보고 오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아하하, 그럴 리가. 하지만 이 추리는 대충 맞을 거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그건 미야오 유키에 씨에게 자네가 개미 좋아하느냐고 물어봤기 때문이지. 그때 그녀가 새파랗게 질렸다고 했잖은가. 그 말을 듣고 나는 내 추리가 맞다는걸 롹신했다네."
사무라는 고개를 저었다. 개미를 좋아하면 어떻다는 것일까. 스님은 즐거운 듯이 웃고 있다.
"도시가스 냄새는 강하니까. 수면제라도 먹이지 않는 한 그렇게 쉽게 큰 남자를 죽일 수는 없어. 옷장 안에 숨어 있어도 가스 냄새가 나면 남자는 난리가 날 테고. 그래서 범인은 냄새가 없는, 순수한 일산화탄소를 맡게 할 생각을 한 거야. 그 뒤 사고사로 수습되기를 꿈꾸며 시체를 욕조에 집어넣은걸세. 잘만 됐더라면, 뭔가 이상한 사고사로 대충 마무리되었을 수도 있었겠지."
"........."
"그런 걸 생각할 수 있고, 거기에 더해 실행까지 하려면 확실히 화학에 대해 지식이 필요해. 그래서 수학을 잘하는 여자라는 힌트로 찾아보라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약사님이 등장하시더구먼."
"예"
"실험실에서 일산화탄소를 만들려면, 황산과 개미산을 혼합하면 된다네. 옷장 뒤에 구멍을 뚫어 튜브라도 꽂아두면, 쉽게 안에 있는 사람을 죽일 수 있어. 형사에게 갑자기 개미를 좋아하느냐는 말을 듣고 그 부인이 새파래진 것은 그 탓이야. 그녀는 개미라는 말을 들으면, 개미산이라는 특별한 약품을 떠올릴 수밖에 없거든. 범행이 인상 깊게 남아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 여자가 범인이라는 걸 확신한거야. 뭐, 일부 세세한 점은 내 추리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욕실에서 가스 중독을 시키는 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뒤, 내 추리는 이렇게 진행되었다네...."
스님은 여전히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건 신식 개미지옥이네요."
"그거 딱 어울리는 말이구먼. 이제부터 그린 아파트로 가서 옷장 뒤에 구멍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그다음에는 그 여자, 미야오 유키에 씨를 다시 한 번 방문한 뒤, 옷장 뒤에 개미구멍이 있었다고 말해 주라고. 매력적인 여성분께서 어떻게 나오실지, 몹시 기대되는구먼."
놀랍게도, 스님의 추리는 이번에도 적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