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5/11/17

잠자는 숲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1.5점

잠자는 숲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카야나기 발레단 사무실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화가 가자마 도시유키였다. 몰래 침입한 가자마를 발레단원 하루코가 살해한 것으로, 정당방위로 보였다. 그러나 가자마가 발레단에 침입한 이유를 알지 못해 고민하던 경찰들을 농락하듯, 발레 마스터 가지타도 연습 중 살해당했다. 두 개의 사건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가가는 발레리나 미오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도 사건의 진상에 점점 접근해 나가는데...

"졸업"에서의 연인 사토코와 헤어진 뒤 경찰이 된 가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가가 형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추리소설이긴 하지만 ‘추리’라는 요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건의 발단이 되는 가자마의 죽음은 별다른 트릭이나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 사고사에 가까운 탓입니다. 물론 맨 마지막에 범인은 하루코가 아니었다는 진상이 밝혀지긴 합니다만, 독자가 주어진 정보로 진상을 밝혀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맥락상 하루코가 죽였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기도 하고요.

두 번째 사건인 가지타 살인 사건에는 트릭이 사용되었지만, 가지타가 살해당한 방법이 뭔가에 찔렸기 때문이고 윗 옷 안에 모종의 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다는건 현장 검증 만으로 초기에 밝혀집니다. 때문에 특별히 대단한 트릭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범인인 야스코가 이런 장치 트릭까지 사용해가며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는 단점도 큽니다. 경찰 수사가 집중되는 와중에 공연 연습 중 살해한다는 무모한 짓 덕분에 용의자는 발레단 사람으로 좁혀지고, 다른 사람을 시켜 자켓에 물을 묻히는 알리바이 공작을 통해 빠져나가려 한 시도는 작중 언급되듯 공범, 혹은 우연으로 해석될 수 있는 유치한 공작에 불과해서 결국 용의선상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니까요. 한마디로 "쓸모 없고 무모하고 현실성 없는 바보 같은 짓거리"였습니다.
그리고 가지타가 자기 등을 뭔가가 찌르는데도 자리에 앉아 공연 감독을 계속했으리라는 확신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도 의문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벌떡 일어나서 등에 뭐가 있나 확인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이럴 거였다면 차라리 의자에 주사기를 붙여 놓는 식으로 흉기가 드러나도 상관없도록 만드는 게 나았을 겁니다. 흔해빠진 주사기는 구입 경로를 파악하기 어렵고, 공연 연습 중 수시로 단원들이 지나다녔기 때문에 용의자를 만들기도 더 쉬웠을 테니까요.

4년 전 배신의 복수라는 동기도 빈약합니다. 자신을 치정 사건의 당사자로 몰았다는 것인데, 4년 전 사실이 밝혀졌다는 이유로 급작스러운 살의를 품었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어차피 다 끝난 일인데, 뭐가 그리 큰 문제였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히가시노 게이고 초기작에서 자주 보이는 조금 억지스러운 전개도 아쉬웠습니다. 특히 미오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정작 미오가 범인이라는건 독자를 기만하는 것입니다. 독자를 교묘하게 속이는 고도의 서술 트릭물과는 거리가 멀고, 대놓고 사기 치는 것에 불과해요.

덧붙여 단점이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가가와 발레리나 미오의 달착지근한 연애 감정이 가득하고, 가가 교이치로가 사랑에 죽는 쾌남 형사로 묘사되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후속작들에서 보여주는 묵직한 매력은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래서야 주인공 말고는 '가가 형사' 시리즈라고 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상, 즉 4년 전 야스코와 아키코가 얽힌 치정 사건이 두 사건의 동기임을 밝히는 부분은 추리라고 부를만 합니다. 그중에서도 치정 사건을 일으킨 발레리나는 사실 아키코였다는 것이, 그녀의 연인이었던 화가 아오키가 남긴 그림을 통해 밝혀지는 부분만큼은 인상적이었어요. 4년 전 당시 야스코는 아직 필사의 다이어트 이전이라 그림의 모델일 리 없다는 것이 단서인데,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정보가 제공되는 등 추리 소설의 미덕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미오의 빈혈에 대한 추리 역시 일상 미스터리스러운 느낌을 전해 주는 부분으로 나쁘지 않았고, 벽에 부딪힌 가가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도 괜찮았습니다. "졸업"에서도 그랬지만, 가가의 아버지를 궁극의 탐정 역할로 설정하려는 계획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마치 "맥가이버"의 할아버지처럼 말이죠. 세 번째 작품부터는 왜 이런 설정이 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또 발레단에 대한 자료 조사가 충실한 점도 좋았습니다. 발레단의 분위기와 연습, 공연 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작품의 설득력을 높여 주었고, 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과 독침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을 연결시킨 설정도 약간 억지스럽지만 괜찮았어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엘러리 퀸의 작품"을 언급하는 장면도 눈에 띄었습니다. 저 역시 엘러리 퀸 작품의 트릭이 그렇게나 잘 먹혔을 것 같지 않다는 데에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별로이고, 점수를 줄 만한 부분도 적습니다. "졸업"에 비하면 트릭마저도 별 볼일 없으니까요. 확실히 초기작이라는 티가 팍팍 나는, 가가 형사 시리즈의 팬이라도 딱히 구해 읽어볼 필요없는 망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