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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3

엿듣는 벽 - 마거릿 밀러 / 박현주 : 별점 2점

엿듣는 벽 - 4점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멕시코로 여행을 떠난 절친 윌마와 에이미가 건달 조와 함께 바에서 술을 마신 뒤, 윌마는 호텔 방에서 추락사했고 에이미는 충격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에이미의 남편 루퍼트가 그녀를 돌보기 위해 멕시코로 향했지만 에이미는 급작스럽게 사라졌다. 그녀의 행방에 의심을 품은 오빠 길은 사립탐정 도드를 고용하여 사건의 진상을 캐기 시작하는데....

서스펜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3대 여성 서스펜스 스릴러 작가 중 한 명인 범죄 소설가 마거릿 (마가렛) 밀러의 장편소설. 하드보일드 3대 거장 중 한 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부인이기도 하죠. 그녀에 대한 상세 정보는 여기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대표작이라는 "내 안의 야수"는 이전에 읽어보았는데 지금 읽기에 조금 낡은 설정이기는 했지만 서스펜스만큼은 명성에 걸맞는 수준이었지요.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로 전개는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무언가 범죄가 일어난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이 루퍼트에 대한 기묘하고 의심스러운 묘사—집에 찾아온 버턴 양에게 화를 내고 그녀를 멀리한다든가, 가정부 겔더의 취직을 알선하는 척 하며 가짜 전화를 건다든가, 윌마의 유품인 은상자를 몰래 버린다든가 등—, 사립탐정 도드의 끈질긴 조사, 그리고 버턴 양과 길, 헐린 등 주변 인물 시점의 묘사가 합쳐지면서 서서히 윌마 살인 사건이라는 범죄로 구체화 되어가며 서스펜스가 커지는 전개는 일품입니다. 최후의 그 순간까지 에이미가 어떻게 되었는지 밝히지 않으면서 독자의 애간장을 태우는 것도 효과적이었고요. 작품을 마무리하는 에이미가 남기는 "내가 윌마를 죽였다는 사실"이라는 대사도 인상적입니다. 서늘한 느낌을 제대로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멋진 전개에 비하면 아쉬움 점도 적지 않습니다. 아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만으로 진상을 숨겨가며 마지막에 연극까지 벌인다는 것부터가 문제점 투성이지요. 마거릿 밀러 여사가 자신만을 맹목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궁극의 남편상을 소설에서라도 구현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이유야 어찌되었건 작품 속 상황을 요약하자면 "미국인 부자가 불쌍한 멕시코인 객실 담당 하녀를 돈으로 매수하려다가 실패한 후, 마지막에는 연극까지 펼쳐 진상을 왜곡하게 만든 사기극"에 불과합니다. 자기 여자에게만 따뜻하면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건가? 여튼 미국이 멕시코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런 수준으로 보여서 마음이 영 편치 않더군요.

게다가 조를 살해한 것을 루퍼트가 버젓이 아는데 고향으로 돌아와 옛 직장에 복귀까지 한 콘수엘라의 행동 역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휴게소에서처럼 도망치려는 시도를 하는 게 상식적이죠. 아니면 이왕 한 명 죽인 거 루퍼트까지 죽이던가요. 루퍼트의 집에서 조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뿐더러, 루퍼트가 아내를 죽이고 정부와 도망치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었으니만큼 성공만 했더라면 영구 미제 사건으로도 남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물론 콘수엘라는 그런 사실을 모르긴 했습니다만...).

하긴 애당초 콘수엘라가 조를 살해한 이유도 석연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로, 소악당이자 사기꾼인 조가 그 돈을 받는 게 뭐가 그리 위험하다고 발을 빼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껏 결혼까지 했는데 다툼이 좀 있었다고 바로 칼질을 한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워요. 콘수엘라가 조를 죽였다는 것도 루퍼트의 증언만이 유일한 증거인데, 이래서야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던 조의 입을 막고 콘수엘라를 함정에 빠뜨리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고요. 아내를 위해서 사기극을 저지르는 놈인데 알게 뭡니까.

이렇게 끝낼 바에야 에이미가 루퍼트 말대로 뉴욕으로 여행 중이었던 게 사실이고, 의심증에 사로잡힌(그리고 경제적으로 막다른 상황에 놓인) 길이 루퍼트를 살해한다는 식의 결말이 더 나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서스펜스는 훌륭하고 읽는 재미도 충분하나 마지막 연극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감점합니다. 거장의 고전이기는 하나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까지는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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