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4/04/30

강호를 건너 무협의 숲을 거닐다 - 량셔우쭝 / 김영수, 안동준 : 별점 4점

강호를 건너 무협의 숲을 거닐다 - 8점
량셔우쭝 지음, 김영수. 안동준 옮김/김영사

사마천의 [사기]에서부터 중국 역사에서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무협소설의 역사와 그 줄기를 치밀하게 추적한 일종의 무협 백과사전. 잘 알려진 "삼국지"나 "수호지"는 물론이고 요사이 드라마화 된 "사대명포"나 "칠협오의"같은 고전, 그리고 김용과 양우생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무협 소설까지 이쪽 장르의 모든 것을 간단한 줄거리와 더불어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무협의 요소, 특히 "협"이라는 관점에서 일관되게 그 역사와 내용을 파고들어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단순히 역사만이 아니라 등장하는 고사나 여러 시가들, 그리고 당시 사회 분위기와 실제 역사 및 여러 무공이나 무기 등의 설명 역시 자세한 편이에요.
특히나 무협소설을 하위 문학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반론하듯 무협소설은 중국의 생활과 문화, 모든것을 담고 있는 하나의 문화 그 자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작가의 생각도 잘 표현되어 있어서 무협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홀딱 반할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하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것은 책의 거진 50%를 김용 관련 글로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환주루주 (촉산전)나 다른 양대 산맥인 양우생, 그리고 고룡 (초류향 시리즈) 등의 설명도 충실한 편이긴 하고, 김용이라는 작가의 대단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중이 너무 크다보니 원래 의도하고 있는 "무협 백과사전"으로서의 가치는 좀 약해지지 않았나 싶거든요.

그래도 무협소설에 대해 이만큼 알려주는 책은 찾기 힘들죠. 별점은 4점입니다. 무협소설을 좋아한다면, 그리고 관련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한다면 꼭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뒷부분에 부록처럼 실려있는 국내 무협소설가 금강이 서술한 '한국무협소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자료적 가치가 본편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글이라 생각되네요.

2004/04/26

다이얼 M을 돌려라! - 알프레드 히치콕 : 별점 4점


전직 테니스 스타 토니(Tony Wendice: 레이 밀런드 분)는 부자인 아내 마고(Margot Wendice: 그레이스 켈리 분)와 결혼한 뒤, 테니스를 그만두고 사업가로 그럭저럭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아내가 옛 동창이자 추리 소설가인 마크(Mark Halliday: 로버트 커밍스 분)와 사랑에 빠지자 아내의 유산을 노리고 청부살인을 계획한다.
옛 동창생 스완(C.A. Swan/Captain Lesgate: 안소니 도슨 분)을 끌어들여 마고를 죽이도록 치밀한 계획을 꾸민 뒤, 자신은 알리바이를 위해 연적 마크와 함께 사교모임에 참석하나 마고는 자신을 목 졸라 죽이려는 스완과 격투를 벌이다 엉겁결에 바느질 가위로 그의 등을 찌르고, 스완은 뒤로 넘어지면서 가위에 깊이 찔려 숨지고 만다.
토니는 이 우연한 기회를 오히려 역전시켜 아내를 계획적인 살인범으로 몰아가며 사형 선고를 받게 하는데 성공하지만, 마고의 애인인 마크와 형사반장(Inspector Hubbard: 존 윌리암스 분)의 끈질긴 추격으로 결국 진상이 밝혀지게 된다.

굉장히 보고싶었던 영화인데 EBS에서 방영해 주길래 놓치지 않고 보리라 마음먹고 기다려서 본 작품. 초반부의 토니의 치밀한 살인 계획과 약간씩 어긋나는 실제상황, 그리고 중반 이후의 토니의 아내를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두뇌게임이라는 크게 두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초반부는 추리소설가 마크가 이야기한대로 “실제로는 제대로 될 리가 없겠죠”라는 완전범죄의 실현 불가능한 현실적 요소들만 잘 보여주고 있어서 재미있더군요. 계획과 달리 외출하려고 하는 아내라던가, 갑작스럽게 멈춘 시계로 타이밍을 놓친다던가, 급한 전화를 하려 하는데 공중전화에 사람이 들어가 있다던가 하는 디테일이 긴장감 있게 진행됩니다.
중반 이후는 오히려 초반의 완전범죄 계획보다 토니의 애드립이 치밀함에서 더 빛을 발한다는 것도 굉장히 신선했고요. (역시 애드립인가!) 무엇보다도  정통 추리물의 구조에 비교적 충실하게 몇가지 단서, 그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이었던 (!) 단 하나의 단서를 가지고 토니의 범죄를 밝히는 마지막 장면은 역시나 멋지더군요. 별볼일 없어 보이던 하버드 형사 반장의 추리가 정말이지 반짝반짝합니다. “마크, 역시 자네 말대로 잘 되지 않는군” 라는 마지막 토니의 명대사도 기억에 많이 남고 말이죠.

추리소설가 마크의 활약은 기대 이하라는 점, 그리고 바람을 피운 마고도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되기에 마크와 마고의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결말부는 좀 아쉽긴 했습니다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명불허전!"의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히치콕의 걸작 중에서도 베스트에 꼽히는 작품답게 등장인물도 몇 없고 세트 하나에서 영화가 거의 다 이루어지지만 그 서스펜스와 치밀한 두뇌게임은 과연! 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토니역의 레이 밀렌드의 뻔뻔스러운 악당 연기와 마고역의 그레이스 켈리의 현재도 빛을 발하는 미모를 감상하는 것은 보너스고요.
때문에 별점은 4점. 아직 보시지 못하신 분들께서는 꼭 챙겨보시길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그동안 항상 궁금했었던 다이얼 M은 토니의 집 전화번호의 가장 앞에 있는 번호의 알파벳 이니셜이더군요. 여기서는 "Murder"의 의미도 있겠지만요.

브라운 신부 전집 3,4,5 : 의심-비밀-스캔들 - G.K 체스터튼 : 별점 3점

의심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장유미 옮김/북하우스
비밀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김은정 옮김/북하우스
스캔들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이수현 옮김/북하우스
단편 추리소설의 황금기의 최고의 명탐정이자 현재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탐정 브라운 신부. 명성에 비하면 국내 소개가 잘 안된 편이었지만 북하우스에서 전집이 몇년 전 출간되었었죠. 구입한지는 제법 된 것 같은데 읽는게 좀 늦었습니다. 그 중 1,2권인 결백과 지혜편은 예전 자유추리문고본으로 먼저 읽어 보았기에 3,4,5권을 먼저 읽게 되었네요.

먼저 각 권에서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만 말씀드리자면,
3편 의심에서는 일종의 알리바이 깨기 트릭인 “기드온 와이즈의 망령”과 불가해한 밀실 살인 사건을 다룬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역시 밀실 트릭의 일종이지만 사건 현장 근처에 있던 개의 심리를 사건과 결부시키는 걸작 “개의 계시”, 괴기스러운 느낌의 복수극으로 완전범죄를 완성하려는 살인범의 트릭을 파헤치는 “날개달린 단검” 이,

4편 비밀에서는 브라운 신부가 자신의 추리의 비밀을 털어놓는 “브라운 신부의 비밀”, 광기의 복수극을 그린 “보드리 경 실종사건”, 연극에 관련된 밀실 살인 사건인 “배우와 알리바이”, 3편의 “날개달린 단검”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최악의 범죄”, 범인으로 몰린 시인의 누명을 벗겨주는 한편 다른 동기에서 진범을 찾아내는 “판사의 거울” 편이,

5편 스캔들에서는 사람의 인상과 기억의 오류를 바탕으로 한 장난인 “폭발하는 책”과 텅빈 술집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는 “퀵 원”, 살인자와 피해자에 대한 오류를 바탕으로 한 “블루 씨를 쫒아서”, 명망있는 제독의 살인사건을 범인의 말 한마디로 파헤치는 “그린맨”, 조그만 마을에 파란을 몰고온 목사 아들의 패륜행위의 뒤에 숨겨진 범죄를 밝혀내는 “마을의 흡혈귀”, 기발한 시체 은닉 트릭이 등장하는 “핀 끝이 가리킨 것”이
좋았습니다.

그외에도 대체로의 단편들이 하나하나가 전부 일정 수준이상을 넘어서는 작품들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탐정들과는 다르게 직관과 인상, 정황에 주력하여 자신의 느낌으로만 사건을 꿰뚫어보는 브라운 신부의 특징도 전편에 걸쳐 잘 살아있고요. (참고로 브라운 신부의 추리의 비밀이 4편 “브라운 신부의 비밀”에서 설명되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참으로 읽기는 힘든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단편집이란 모름지기 쭉쭉 읽어나가는 맛이 있어야 되는 법인데 대사나 묘사가 장황하여 한번에 읽어내리기 어려웠어요. 체스터튼이 워낙 당대의 유명 문인이었던 만큼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문학에서도 뭔가 독특한 자신만의 문체를 도입하여 쓴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예전 다른 문고본에서 읽고 느꼈던 유머러스한 부분이 많이 빠져 있는 것을 본다면 번역 문제인것 같기도 한데 여튼 여러모로 아쉬웠어요.
또 다른 단편집들도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는 한데, 하나의 트릭을 변형하여 여러 곳에 쓰고 있는 편입니다. 특히나 “살인자”<>”피해자”의 역할 바꾸기 라던가 잘못된 증언의 오류를 짚어내는 방식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뭐 등장하는 단편마다 다른 상황에서 재미있게 사용하고 있어서 큰 단점으로 보기는 어렵지만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읽는 재미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지만, 전집으로 출간된 것에 대해서는 고맙기만 할 따름이라 점수를 조금 더 얹어 봅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문체로, 유머스러운 브라운 신부를 보여줄 수 있도록 번역이 조금 수정되면 더욱 좋겠네요.

2004/04/23

가장 가까운 책.....

가장 가까운 책 23페이지 5번째 문장은

功名誰復論블로그에서 봤습니다.

제가 집은 책은 필립 K 딕의 사기꾼 로봇, 문장은...

"자신의 현실속에 암흑의 20분을 끼워 넣은 셈이다"

ㅎㅎㅎ 나름대로 멋지네요^^

2004/04/21

디 에이트 - 캐더린 네빌 / 조윤숙 : 별점 2.5점

디 에이트 2 - 6점 캐서린 네빌 지음, 조윤숙 옮김/자음과모음

컴퓨터 전문가인 캐더린 벨리스는 알제리에서 OPEC 회담을 위한 컴퓨터 시스템 설치를 강요받는 자리로 좌천된 후, 지인 해리의 딸 릴리를 통해 체스 천재 솔라린을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계속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이 과거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는 공식이 숨겨져 있는 “몽글랑 서비스”라는 신비의 체스판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손에 있는 “8”의 손금으로 태어날 때부터 운명적인 체스 게임에 뛰어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캐더린은 비밀을 이용하려 하는 “백”의 세력에 맞서 자신의 편인 “흑”의 세력과 더불어 체스판과 말, 그리고 비밀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뛰어드는데...

캐더린 네빌 여사의 장편 데뷰작.
위의 줄거리로 요약 가능한 현재 시점의 캐더린 벨리스 이야기, 그리고 몽글랑 서비스가 처음으로 드러나는 격동의 프랑스 혁명기를 무대로 한 수녀 미레유 이야기라는 두가지 축으로 전개됩니다. 마지막에는 이 3세기의 시공을 초월한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구성이죠.
전자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몽글랑 서비스와 “8”의 비밀에 휩쓸려 가면서 서서히 자신의 존재를 자각해 가는 일종의 성장기라면, 후자는 처음에는 소꿉친구인 발렌티느의 복수를 위해, 그 이후에는 비밀스러운 힘의 정체와 자신과 맞서 싸우는 “백”의 여왕과의 전투를 위해 모험에 스스로 뛰어드는 주체적인 이야기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일단, 캐더린 벨리스의 이야기보다는 미레유의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습니다. 프랑스, 영국, 미국, 알제리까지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 비밀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의 묘사까지 훨씬 드라마틱할 뿐 아니라 모리스 탈레랑, 다비드,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장 자크 루소, 벤자민 프랭클린, 거기에 나폴레옹까지 등장하여 역사 추리물 느낌을 가득 전해주기 때문이에요. 초반의 크로스워드와 글자를 이용한 암호풀이 트릭도 괜찮은 편이라 추리소설 애호가로 반가운 부분이었고요.
한가지 특이했던 점이라면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다 미남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키가 굉장히 작은, 결코 잘생겼다고 알려지지는 않은 나폴레옹 조차 엄청난 미남으로 묘사하더군요. 여성 작가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캐더린 벨리스의 모험 부분은 미레유에 비하면 조력자도 훨씬 많고 문명의 이기와 돈을 충분히 사용하기 때문에 긴박감면에서 많이 부족하고, 갑작스럽게 솔라린과 사랑에 빠진다는 등의 설정 등이 너무 순정만화, 로맨스 소설 분위기가 느껴져 영 별로였어요
게다가 시공을 초월하는 힘인 몽글랑 서비스의 비밀이 밝혀지면서부터는 급작스럽게 판타지 소설이 되어버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입니다. 연금술 등 과거의 모든 신비적인 지식과 자료를 총 동원해서 설명해 놓기는 했지만 워낙 황당무계한 이야기라 당최 실감이 나지 않았거든요. 몽글랑 서비스를 보다 실질적인 힘으로 묘사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제일 당황스러웠던건 체스세트를 완전히 갖추지 않아도 비밀을 풀 수 있다는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다 모이면 빛이라도 한번 번쩍여 주면서 고대의 비밀을 알려줄 줄 알았는데 기대와는 사뭇 달라 완전 실망스러웠어요. 영화와 만화 등에 너무 길들여진 탓도 있겠지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별로도 아닌 그런 작품입니다. 데뷰작치고는 적절했달까요. 작가의 후속작이 더욱 기대되네요.

덧붙이자면, 어떤 분은 체스를 잘 모르면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없다고 표현하셨는데 뭐 그 정도로 체스가 중요한 역할로 쓰인다고 보이진 않습니다. 나이트나 폰 등의 행마에 관한 약간의 지식만 알면 무리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2004/04/20

범죄의 재구성 - 최동훈 : 별점 4점


사기 전과로 출소한지 한 달, 최창혁(박신양)은 흥미로운 사기 사건을 계획한다. 그것은 바로 '꾼'들이라면 한번쯤 꿈꾸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한국은행 사기극. 다섯 명의 최고 '꾼'이 한 팀을 이뤘다. 완벽한 시놉시스 개발자 최창혁(박신양)을 비롯, 사기꾼들의 대부 '김선생'(백윤식), 최고의 떠벌이 '얼매'(이문식), 타고난 여자킬러 '제비', 환상적인 위조기술자 '휘발유'.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결국 난공불락 '한국은행' 50억원 사기인출은 성공하지만 결과는 사라지고 없다! 모두 뿔뿔히 흩어지고, 돈은 사라졌다. 분명 헛점이 없었던 완벽한 계획. 무엇이 문제였던 것인가? 수수께끼의 여인의 제보전화로 들통난 사기극 때문에 최창혁은 도주중에 사망하고 '얼매'가 현장에서 체포되며, 도망을 다니던 '휘발유'는 불법 도박장에서 잡힌다. '제비' 또한 빈털터리인 채 싸늘한 시체로 발견 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아직 행방이 묘연한 '김선생'의 또 다른 사기극?

최창혁의 형인 소설가 최창호에게 이 사건을 알려준 후 김선생의 동거녀였던 사기꾼 서인경 (염정아)는 최창혁의 보험금을 노리고 최창호에게 접근하며 김선생 또한 돈을 찾기 위해, 사건의 흑막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하는데… 결국 김선생은 모든 수수께끼의 근원은 최창호에게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사건의 배경은 4년전 사기사건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는 것을 알아낸다... 

국내에서 그간 보기 힘들었던 정통 범죄 사기극 영화. 제목처럼 사건이 발생한 후 목격자들과 범인들, 사건 당사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과거의 범행을 재 구성해 나가는, 과거의 범행과 현재의 사건이 겹쳐지며 하나로 귀결되는 구조의 플롯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자료조사도 충실하여 각종 은어는 물론 얼매의 은행 인출 사기, 제비의 혼인 빙자 사기 등의 사기 수법도 적나라하게 공개되고 있고요. 보면서 느낀건데, 알면서도 사기 당할 만 하더라고요. 정말 대단하다는….^^
거기에 더해 이 영화의 핵심인 최창혁과 김선생의 머리 싸움을 그린 각본이 정말 탄탄합니다. 홍보처럼 “한국 은행 50억 인출 사기”는 단지 수단 중 하나일 뿐이고 (사실 그 사기 내용은 상당히 조잡한 수준입니다) 실제로 영화는 최창혁과 김선생의 내내 치열한 머리 싸움을 그리고 있는데, 관객에게도 공정하게 진행될 뿐 아니라 복선도 치밀하며 반전도 상당한 편이라 여타 사기 영화에 뒤지지 않는 완벽한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연기도 일품인데 그 중에서도 백윤식 선생의 연기가 정말 대단하더군요. “지구를 지켜라”를 아직 못 봐서 그 명성 전해 듣기만 했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었어요.박신양의 능글능글한 사기꾼 연기와 염정아의 한국형 팜므파탈 (구로동 샤론스톤) 연기도 좋고요. 그 밖의 모든 출연진의 연기가 탄탄한 것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간 뜸했던 천호진씨의 형사 연기와 임하룡 선생님의 깜짝 출연이 좋았습니다.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나오는 최창혁의 사소한 사기는 큰 게임의 승자로서 너무 쪼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고, 김선생의 최후도 보여준 카리스마에 비해서는 너무 시시한 것 같아 약간 불만스럽더군요. 영화 전체적으로 몇가지 의문점이 좀 생기기는 하고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우리나라에 흔해빠진 조폭 범죄물이 아닌 정통 사기극으로 이 정도 수준의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 우리나라 영화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흐뭇하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이하, 영화를 보고 궁금점… 아직 못 보신 분은 보지 마시길!

1.최창혁이 승용차에 자신 대신으로 태운 시체는 대체 어디서 난 시체일까요?
2.최창혁이 형 최창호로 성형수술을 하는 설정인데 그렇게 빨리 수술을 하고 아물 수 있을까요?
3.제비가 돈을 혼자 갖고 튈 줄 어떻게 알고 그 여자에게 전화 연락을 했을까요?
4.서인경은 왜 최창혁을 도와줄까요? 사랑 때문에?
5.그럼 마지막에 최창혁이 다시 성형수술을 한건가요? 

2004/04/17

장화신은 고양이 - 에드 멕베인 : 별점 1점

별볼일 없는 형사 변호사 메슈 호프는 칼튼 버너비 메컴의 변호를 맡는다. 그는 영화감독으로 혼자 편집실에서 일하던 아내 플루던스 메컴의 살인 용의로 체포된 인물로 마당에 파 묻은 피 묻은 옷과 흉기라는 결정적 증거와 함께 이웃 사람의 증언 때문에 궁지에 몰린 상태.
호프는 플루던스의 직장과 원한 관계를 조사하며 플루던스가 죽기 직전까지 편집하고 있었던 필름이 사라진 사실을 발견하고 그 필름의 정체와 소재 파악에 집중한다. 
결국 플루던스가 제작한 영화는 “장화신은 고양이”라는 포르노 영화로 이 영화에 관련된 또 다른 인물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내는데….

87분서 시리즈로 유명한 에드 멕베인의 “호프 변호사 (Matthew Hope)” 시리즈. 시리즈의 일곱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원제는 아마도 .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도 다 번역 출간 된 듯 한데 평소 구하지 못하다가 우연찮게 이 작품만 구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싸구려 펄프픽션"! 이었습니다. 엽기적이고 잔인한 살인 사건의 묘사나 “포르노 필름”이라는 선정적인 동기,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매춘부들 등 범죄물에서 흥행이 됨직한 소재만 모아다가 만든 이야기에요. 그나마도 무언가 괜찮은 플롯, 트릭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소재만 모아 놓았을 뿐이라 한번 읽고 끝날 수준의 싸구려 잡문에 불과합니다. 말초적인 부분을 자극하는 몇몇 묘사들은 잠깐 잠깐의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만 단지 그뿐인이고요.. 포르노 영화가 수백만달러의 값어치가 있을 것이라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제껴두더라도 제목이 “장화신은 고양이”라니 이것 참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네요.
게다가 "호프 변호사" 시리즈지만 실제로 탐정 역할을 하는 것은 포르노 영화 스탭으로 “보물단지”가 될 지 모르는 필름을 찾는 티크와 모즈라는 떨거지입니다. 아 제작자라는 헨리라는 놈도 있구나. 여튼 포르노 필름을 찾는다는 곁가지 이야기가 오히려 추리적으로 흥미진진하게 묘사되며, 호프 변호사는 주인공에 걸맞는 활약을 커녕 이혼한 아내와 딸과 관련된 가정사에 고민하는 모습만 주로 보여주는데 대체 이게 뭔가 싶더군요.
아울러 호프 변호사의 사생활을 이용하여 시리즈 전체를 하나의 일관된 큰 이야기로 포장하는 방식은 "87분서"와 유사하지만 노골적으로 시리즈 물임을 선전하는 것 같아서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87분서도 두 작품밖에 읽어 보지 못했지만 나름 추리와 하드보일드 요소가 잘 조화된 작품들이었는데 이 작품은 흥행은 되었을지 모르지만 많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저에게 미국 쪽 하드보일드 계보는 안 맞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2004/04/14

얼굴에 흩날리는 비 - 기리노 나쓰오 : 별점 3.5점

顔に降りかかる雨 (文庫) - 8점
기리노 나쓰오/講談社

주인공 무라노 미오는 어느날 낯선 남자들의 습격과 같은 방문을 받는다. 그들은 4,500만엔이라는 조직의 거금을 가지고 사라진 미오의 친구 우사가와 요오꼬의 행방을 쫓는 조직의 하청업자이자 요오꼬의 애인인 나루세와 조직원들. 미오는 요오꼬의 마지막 전화상대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주일 시한으로 나루세와 같이 요오꼬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요오꼬의 사무실과 집, 자주 찾던 점술가까지 조사하는 미오는 요오꼬의 숨겨졌던 진실을 점차 밝혀낸다. 그러는 와중에 자기를 협박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나루세와 서로 호감을 느끼게 되며 그에게 자신의 상처받은 과거의 치유를 원하게 된다.
결국 미오는 르포라이터인 요오꼬의 마지막 작품에서 요오꼬가 독일에서 목격한 신나찌 그룹 살인사건과 실종 사건의 연관성을 눈치채고 최후의 순간에 진범을 알아내게 되는데...

제 39회 에도가와 란포상 최우수 수상작. 독특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제목부터 인상적인 작품으로, 여성 작가다운 섬세한 심리 표현과 디테일한 묘사가 일품이었습니다. 시간 제한 내 특정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 - 남성 컴비를 주인공으로 한 추리 스릴러는 상당히 많은 편이죠. 그러나 이 작품은 앞서 말씀드린 표현과 묘사들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읽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캐릭터도 독특합니다. 가정 불화 끝에 남편이 자살한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미오는 어쩐지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남자주인공 나루세가 상당히 괜찮아서 충분히 커버가 되네요. 약간 안티 히어로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것이 전형적인 일본 소설 주인공과 비슷하긴 한데 확실히 뭔가 특출난 맛이 있거든요.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기복이 심한 편입니다. 독일 신나찌 그룹 살인사건과 실종사건을 엮는 과정은 억지스럽고, 요오꼬의 과거를 추적해서 밝혀내는 사생활들은 사건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오히려 너무 오버해서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에요. 몇몇 캐릭터의 설정 및 등장에 있어서도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이 존재하며,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부분의 전개가 정말로! 별로여서 아쉽습니다. 기껏 추적 잘 하다가 단 한번의 목격으로 모든 사건을 마무리 짓다니… (물론 이 목격의 전 단계에서 추적에 의해 얻은 단서가 실마리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요)

이런 점을 본다면 이야기 자체가 정통 추리물보다는 스릴러 영화에 가까워 보입니다. 기본 캐릭터도 괜찮고 이야기 중간 중간의 스릴과 흡입력은 상당한데 추리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2% 부족하달까요. 보다 추리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으면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뭐 그래도 기본적인 재미는 충분하고 디테일한 여러 묘사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란포상 최근 수상작들 중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에는 대 실망했고 “희고 긴 복도”도 트릭이 불만스러웠는데 간만에 괜찮은 작품을 읽을 수 있었네요. 그래서 별점은 3.5점입니다. 일본 여성 작가 중 미야베 미유키와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 같은데, 최근작인 “아웃”도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2004/04/12

우부메의 여름 - 교코쿠 나츠히코 : 별점 2.5점

우부메의 여름 - 6점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손안의책(사철나무)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작가 세키구치는 친분이 있던 탐정 에노키즈의 조수 역할을 한 것을 계기로 유서깊은 산부인과 병원 가문인 구온지 의원의 괴사건 - 구온지 가문의 사위인 마키오씨가 밀실에서 행방불명되고 아내인 교코는 20개월째 임신 중인 상태라는 것 - 에 참여하게 된다.
전쟁때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일종의 과거-원념을 볼 수 있게 된 에노키즈는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남긴채 사건에서 손을 떼지만, 과거 마키오와 학교 동창으로 교코와 마키오의 연애편지를 전달했던 역할을 했던 세키구치는 심약한 성격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과거에 쫓기며 사건에 점차 빠져들게 된다.
결국, 사건은 평소 친하던 고서점 교코쿠도의 주인이자 세이메이의 계보를 있는 신사의 신주인 추젠지 아키히토의 추리로 구온지 가문의 숨겨진 역사와 사건의 뒤에 감추어진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데….


일본의 유명 인기 작가 교코쿠 나츠히코의 데뷰 장편. 꽤 비싼 가격이지만 괜찮게 디자인된 장정과 작가 이름에 혹해서 바로 집어 든 작품입니다. 좋은 책은 많이 사 주어야 추리장르가 활성화 되겠죠? (물론 저도 헌책방을 애용하긴 하지만요...) 손안의 책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디자인과 장정은 정말 괜찮네요.

작가 교코쿠 나츠히코는 추리소설가이기도 하나, 일본 요괴에 대해서도 권위자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이전에 먼저 접해보았던 단편집 “백귀야행”도 괴담류의 공포소설이었죠. 그래서 그럴까요? 이 작품 역시 “우부메”라는 일본 전통 요괴, 즉 아이를 낳다가 죽은 어머니의 집념이 형상화 된 요괴를 테마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러나 단순 괴담은 아니며 20개월이나 임신을 하고 있다는 임산부나 밀실에서 사라진 의사, 그리고 구온지 가문 병원에서 발생한 계속된 신생아 실종 사건이 복합적으로 얽혀서 전통 요괴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현대적인 감각의 추리 소설로 재탄생시키는 솜씨가 과연 일품이더군요. 변격물과 유사하지만 그 감각을 따와서 보다 현대적인 작품으로 발전되었다고 할까요?

하지만 세간의 호평, 걸작이라고 소문에 비하면 아쉬움이 더 많습니다. 일단 말 많은 주인공인 추젠지 아키히토부터가 별로에요. 똑똑하고 잘난척 하는 탐정의 전형이라 왠지 거부감이 느껴질 뿐더러, 추리의 바탕이 되는 논리를 설명하는 부분들은 짜증이 날 정도로 장황하고 지루하거든요.
해설자역의 실질적 화자 세키구치 역시나 추리소설의 해설자 역으로는 빵점에 가깝습니다. 본인 스스로 너무나 심약하고 마음의 병도 있는데다가, 사건에 간접적으로 관여되어있기도 해서 사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미궁에 빠지는 결정적 이유가 세키구치의 오락가락하는 정신 상태 탓이니 더 말을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제가 추리소설에 보아왔던 것 중에 가장 터무니없는 밀실 트릭이 등장하는 것도 감점 요소에요. 이래서야 추리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작가의 논리 - 추젠지의 말을 빌린 - 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수긍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독특하고 감성적인 문체에서 발생하는 흡입력도 상당하며, 현대적 감성의 변격물을 요괴 이야기와 결합한 아이디어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정통 본격 추리소설을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웠던 결과물입니다. 
제가 아는 추리 매니아이신 decca님은 집어들고 하루만에 다 읽으셨다고 하는데, 좀 더 추리소설에 가까운 후속작을 기대해 봅니다.

2004/04/09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 벤 메즈리치 / 황해선 : 별점 3점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 6점
벤 메즈리치 지음, 황해선 옮김/자음과모음
3학년이 된 MIT 전기공학도 케빈은 같은 학교를 중퇴한 피셔와 마르티네즈에 이끌려 ‘동부의 라스베가스’ 애틀랜틱시티로 첫 원정 도박에 따라 나선다. 짧은 시간에 800달러를 딴 것은 우연한 불행의 단초가 아니라, 그를 도박판에 끌어들이려는 치명적 유혹이었다. 
블랙잭 비밀 조직은 뛰어난 두뇌를 지닌 데다 ‘중국계’라는 자격 요건을 갖춘 그를 발탁한다. '동양계 큰 손'이 도박장에서 오히려 어색하지 않다는, 인종적 선입견마저도 철저히 계산에 넣은 것. 조직은 블랙잭의 모든 것을 학구적으로 파헤쳤고, 조직원들은 리더인 MIT 퇴직 교수 로사를 사교(邪敎)집단 교주처럼 숭배했다. 케빈은 카지노를 유린하는 체계적 분업인 '스포터(spotter)', '고릴라', '빅 플레이어' 같은 도박사 수련 단계를 밟아 최고 지위에 오른다. 

평일엔 캠퍼스 모범생, 주말엔 욕망의 천국 라스베가스의 승부사로 위태로운 두 겹의 생활은 짧은 기간 전업(專業) 갬블러 생활을 했지만, 졸업 후 시카고 투자은행에 들어간 뒤에도 계속 되었다. 변장하고 가명을 쓰거나 어리숙한 척 연기하는 일은 일상이 됐다. 한판 수입 40만달러, 수익률 80% 

이후 조직은 '공룡'으로 커가면서 내홍을 겪고, 케빈을 끌어들였던 피셔가 앞장서 은사인 로사 교수로부터 '젊은 세대의 독립'을 선언한다. "도박사가 해야 할 가장 중대한 결정은 떠나야 할 때를 결정하는 것일세…" 자신이 최저점에 위치해 있다는 승부처에서의 자기 합리화가 중대 결심을 미루게 한다는, 피셔의 고별사가 복선(伏線)으로 깔린다. 

승승장구하던 새 팀에게 그림자 같은 미행이 뒤따른다.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것을 도박사로서의 덕목으로 강요하는 라스베가스의 불문율 탓에, 팀은 시카고나 슈리브포트(루이지애나)로 활동 공간(카지노)을 넓히고 철저한 준비로 라스베이거스를 역습하기도 한다. 그러나 '철옹성' 으로서의 자존심을 잃은 라스베이거스가 고용한 사립 탐정들의 추격과 보복, 그리고 단 25,000달러에 조직의 비밀을 판 배신자 때문에 피 끓는 20대의 5년을 불살랐던 라스베이거스. 1년에 20번 왕복하며 매주말 40시간, 시간당 60판, 모두 4만8000번의 피 말리는 승부를 치렀던 케빈의 삶은 라스베가스를 떠나 벤처기업에 취직함으로써 현실로 돌아온다.

블랙잭(숫자 합계가 17~21 사이에서 높은 패를 쥔 쪽이 승리하는 딜러와의 1대1게임)의 허점을 공략하는 묘수인 '카드 카운팅(card counting)'으로 1990년대 중 후반에 실제로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에서 수백만 달러를 땄다는 MIT 출신 천재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비교적 자세하게 쓰여진 카드 카운팅 방법이 가장 인상적으로 실제로 도전의식(?)을 불태우더군요. 낮은 점수의 카드를 +1, 높은 점수의 카드를 -1로 하여 그 숫자를 순간적으로 더해서 지수가 높아질 때 판에 뛰어들어 딜러와 승부한다는 것이 기본 개념입니다. 그 때가 높은 점수 카드가 많이 남았을 때라는 거죠. 그 외에도 순간적으로 여러명의 카드를 분석하여 계산한다던가, 카드 셔플 시 특정 카드의 위치와 순서를 추적한다던가, 팀을 여러 명으로 나누어 운영함으로써 카드 카운팅의 위험을 최소화 하는 방법 등의 여러가지 노하우까지 공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수학적인 게임이라는 블랙잭, 펼쳐진 카드로 다음에 나올 카드를 예상할 수 있다는 확률의 법칙이 수학 천재들에 의해 분석되었기에 거의 완벽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죠.

물론 카지노 측이 더 현명하여 자동으로 카드를 섞는 기계나 여러 감시 장치의 도입으로 이러한 방법에 따른 위험을 줄이고, 카드 카운터를 세심하게 적발하는 등 몰락의 과정도 충실히 묘사됩니다. 실제로 불법도 아니고 단지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을 뿐인 천재들에게 카지노가 가한 응징은 좀 무자비하더군요. 물론 그들의 파워..를 막기에는 멤버들의 힘이 너무나 미약했던 탓이 크겠지만요.

이런 류의 책 치고는 나름대로 교훈적이기도 한데, 보안회사에 인터뷰 차 찾아간 케빈이 카드 카운팅의 우월성을 입증하며 카지노를 나서는 마지막 장면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도박은 하지 않고 그동안 잃어 왔던 것을 되찾기 위해 애쓰지만 한편으로는 카드 카운터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인데 과연 케빈은 도박의 유혹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찾은 것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여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설득력도 높이 평가할만 하고 꽤 재미있게 읽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수학과 도박, 확률 이론에 관심있으신 분들께서는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덧 : 하나 못 마땅한 것은 카지노에서 큰 금액을 베팅하는 인물은 “동양인” 이라고 하는 설정이더군요. 한국계 가명도 당연히 등장하고요. 졸부 아들들이 얼마나 돈을 흥청망청 써대길래…

2004/04/07

39계단 - 알프레드 히치콕 : 별점 4점


해니(Richard Hannay: 로버트 도나트 분)는 캐나다에서 업무차 런던에 온다. 어느날 쇼구경을 갔다가 아나벨라(Annabella Smith: 루시 맨하임 분)라는 묘령의 여인을 만나는데, 그녀는 자신이 스파이로 지금 쫓기고 있으며, 스파이들이 영국 공군의 기밀을 외국에 넘기려 하고 있기에 그것을 막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39 계단'이라는 알 수 없는 암호를 남긴다. 그러나 그날밤 그녀는 살해된다.
해니는 아나벨라가 얘기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떠나나 기차 안에서 자신이 아나벨라의 살인범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아나벨라를 살해한 스파이들에게도 쫓겨 파멜라(Pamela: 마델레인느 캐롤린 분)에게 도움을 청하나 거절당한다. 겨우 기차에서 탈출한 해니는 스코틀랜드의 어느 농가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그 농가 아낙의 도움으로 다시 경찰의 추적에서 벗어난다. 구사일생으로 아나벨라가 남긴 지도로 조단 교수(Professor Jordan: 고드프리 터얼 분)의 집에 도착한 해니는 교수가 스파이 두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교수의 집에서도 탈출한 해니는 경찰에 가서 사실을 말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다시 경찰서에서 도망치게 되고 결국엔 파멜라의 신고로 경찰로 위장한 스파이들에게 잡힌 뒤, 파멜라가 위험하다고 느낀 스파이들은 파멜라와 해니를 수갑으로 묶어 두지만 해니는 또다시 탈출한다. 결국 파멜라도 해니의 말을 믿게 되고 스파이 두목인 교수가 조직인 '39계단'에게 위험을 알린 뒤, 런던 극장에서 기밀을 넘겨받아 국외로 탈출하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존 버칸의 39계단을 영화로 옮긴 히치콕의 초기 대표작. 소설은 한 3년 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파멜라라는 여인의 비중이 큰 것 같지는 않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소설은 너무 오래된 탓에 명성에 걸맞지 않게 지루한 부분도 있었고 결말도 다소 맥빠졌었죠.
하지만 영화는 무려 70여년 전 영화라 흑백이고, 낡은 촬영과 편집 탓에 조금 적응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재기발랄하고 보는 재미가 넘칩니다.

일단 리차드 해니라는 주인공 캐릭터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전체적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있는 캐릭터거든요. 유머러스한 성격이 돋보이는데 특히 파멜라와 수갑에 엮인채 탈출하여 숨어든 여관에서 보여주는 재치와 유머는 정말 최고였어요. 아직 자기를 믿지 못하고 여관 여주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파멜라를 호주머니에 넣어둔 파이프담배로 위협하며 사랑의 도피중인 연인이라고 설명하는 장면 같은 부분이 특히 그러합니다.
거기에 여러가지 복선과 음모가 얽히는 전체적인 스토리도 괜찮았어요. 원작을 많이 각색했는데 원작보다 더 나아 보일 정도로 말이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코트에 넣어두었던 찬송가 책처럼 우연에 의지하는 설정이나 진정한 흑막 조단 교수를 너무 빨리 보여준 점, 그리고 여자 캐릭터 얼굴이 도대체 구분이 잘 안 간다는 단점이 있지만 단점들로 폄하하기에는 굉장히 멋진 고전입니다. 히치콕의 영국 시절, 그러니까 초기 시절 최고 걸작이라는 평판이니 한번 구해보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원작소설을 읽으신 분들도 많은 부분 각색되어 보다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만큼 놓치시지 마시길.

덧 1 : 그런데 왜 스파이 조직 이름이 “39계단”일까요? 원작에서는 지명.. 으로 쓰였던 것 같았는데...
덧 2 : 자신의 영화에 항상 카메오 출연한다는 히치콕 감독은 여기서는 해니가 여관에서 가명을 쓸 때 이름만 잠깐 나오고 마네요. 초기작이라서 그런가?

2004/04/05

우무베의 여름

교코쿠 나츠히코.

15,000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실제로는 할인해서 12,000원에) 산 신간입니다. 바람쐬러 홍대앞에 잠깐 나갔다가 우연히 보고 구입했습니다. 음.. 충동구매 조심해야 하는데.

책 장정이나 판형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가격은 살인적이지만, 재미만 있다면야 용서해 줄 수 있죠.

그나저나.. 예전 "독살에의 초대"이후 가장 비싼 책 산 듯 싶네요. (전공서적 빼고요^^)

안 읽은 책이 늘어만 가니 살짝쿵 걱정도 되지만, 일단 뿌듯합니다.

2004/04/04

에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네요

회사가 이전하는 바람에 인터넷이 불통이었고 이래저래 나름대로 바빠서 블로그에 신경쓰지 못했네요. 회사도 슬슬 정리되어가니 이제 다시 힘 내 봐야죠.

오늘 신촌 숨어있는 책에서 몇권의 헌책을 구입했습니다.

MIT 수학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 - 벤 메즈리치 : 최신간인거 같은데 운좋게 구했습니다. 무척 흥미로울거 같네요

에이트 - 케더린 네빌 : 자주가는 헌 책방에 항상 하권만 있어서 입맛만 다시다가 드디어! 상하권을 모두 구했습니다. 체스도 좋아하니 어서 읽어 봐야겠어요.

장화신은 고양이 - 에드 멕베인 : 호프 변호사 시리즈라네요. 에드 멕베인은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얼굴에 흩날리는 비 - 기리노 나쯔쇼오 : 란포상 수상작인 그동안 너무나 구하고 싶었던 책입니다. 오늘 건진 책 중 최대 수확인듯. 일본 추리소설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이 모든 책 5권 합쳐서 만원! 어서 읽고 리뷰 올려야 겠네요.

신촌 숨어있는 책에 그 외에 호러 걸작 "메두사"와 디 판관 시리즈 "쇠못 세개의 비밀" 등이 아직 남아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보세요. 헌책방은 역시 보물창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