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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9

캐시 아웃 (2024) - 렌들 에멧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페이드 에이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전설적 도둑 메이슨은 FBI 잠입 수사관 아멜리아에게 푹 빠졌다가 체포될 뻔한 다음 은퇴를 택했다. 그러나 자신을 뺀 일당이 동생 숀의 주도로 벌이던 암호화폐 강탈 작전에 문제가 있다는걸 알고 현장으로 향했지만, 곧바로 경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메이슨은 협상 전문가로 나타난 아멜리아와 밀땅을 벌이면서도, 안전하게 탈출하기 위한 플랜B를 고민하여 결국 회심의 카드를 손에 쥐게 되는데...

넷플릭스에 떴길래 별 생각없이 감상한 영화입니다. 오랜만에 본 존 트라볼타는 반갑더군요. 잔혹하거나 무겁게 끌고 가지 않아서 가볍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존 트라볼타와 크리스틴 데이비스의 중년 로맨스도 귀여워요.

그러나 그 외에는 뭐 하나 건질게 없습니다. 은행을 노리는 케이퍼 무비 장르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범죄 계획이 케이퍼 무비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형편없는 탓이 큽니다. 숀의 계획이라고는 은행장을 데리고 개인 금고를 여는 것 뿐이었으니까요.

그 이후의 전개 역시 치밀한 준비나 단계별 장애물 돌파가 아니라, 우연과 억지로 상황을 이어 붙이는 식으로 흘러갑니다. 메이슨 일당은 개인 금고 안에서 특정 숫자가 찍힌 사진을 확보하고, 그것이 살리자르라는 거물 독재자의 비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개인 금고 속 사진에 표시된 숫자로 거대한 국제적 비밀에 접근한다는 설정부터 설득력이 크게 떨어지고, 애초에 그런 민감한 자료가 왜 그런 방식으로 보관되어 있었는지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마침 은행장이 개인 서버가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는 설정도 뜬금없고, 그가 메이슨 일당을 그 장소까지 안내하는 상황도 이해가 안되고요. 그냥 모른다고 우겼으면 됐을텐데 말이지요.

결말은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음의 결정체입니다. 메이슨 일당은 결국 경찰 특공대에 포위되고, 정상적인 범죄 영화라면 이 지점에서 가장 치밀한 탈출 설계나 마지막 반전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플라워스라는 살리자르의 부하를 불러낸 뒤, 그와 협상하는 방식으로 이 상황을 정리해 버립니다. 그것도 메이슨의 요구가 꽤 무리한데도 불구하고 플라워스가 이를 선뜻 들어주는 식이라서, 관객 입장에서는 긴장감보다 허탈함이 먼저 듭니다. 수많은 경찰과 특공대가 현장에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입을 막았는지, 어떤 식으로 사태가 수습되었는지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요. 

또한 경찰에게 포위된 상황임에도 느릿느릿한 전개는 분통터질 정도이며, 액션도 뭐 하나 눈에 띄는게 없습니다. 공간도 작은 은행 내부가 거의 전부라 돈을 들인 티도 나지 않아요. 한마디로 별점 1점도 아까운 완벽한 망작입니다. 케이퍼 무비의 외형은 빌려 왔지만, 장르를 이루는 핵심인 계획의 정교함, 실행 과정의 묘미, 반전의 설득력을 거의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시하고, 진행 과정도 엉망진창이며, 중요한 설정과 결말까지 납득하기 어려워 장르 영화로서의 재미는 전무합니다.

2026/01/25

명탐정 코난 : 17년 전의 진상 (2025) - 야마모토 야스이치로, 카마나카 노부하루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티빙에 업로드되었길래, 작년 말에 기말고사가 끝난 딸과 오랜만에 감상한 코난 극장판입니다. 리뷰가 많이 늦었네요. 정확히 말하면 해당 내용의 TV 시리즈 총집편입니다.
이야기는 두 가지입니다. 현재 벌어진 체스 대회 살인 사건과 17년 전에 있었던 아만다 휴즈와 하네다 코지 살인 사건이 이어지며 전개됩니다. 현재 체스 대회에 참가했던 쿠로다 관리관이 17년 전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설정이지요.

하지만 두 이야기 모두 추리적으로 완성도가 치명적으로 낮습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에요. 우선 체스 대회 살인 사건은 ‘다이잉 메시지’가 핵심 단서로 등장하는데, 피해자가 죽기 전에 굳이 이런 암호 같은 메시지를 만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범인의 이름을 쓰면 되니까요. 트릭을 위한 억지 설정입니다.
범인이 잔을 깨는 척 자작극을 벌인 트릭 역시 억지스럽습니다. ‘네덜란드의 눈물’이라는 일종의 유리 덩어리를 활용해 잔을 깨뜨렸다는 트릭인데, 번거롭고 지나치게 복잡합니다. 한 손으로 컵을 잡고 다른 손으로 네덜란드의 눈물 끝부분을 부러뜨릴 만년필을 사용하는 모습도 어색할 테고요. 이럴 바엔 잔 깨지는 소리를 녹음해 틀어놓은 뒤 컵을 떨어뜨려 깨는 편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17년 전 사건도 마찬가지에요. 원작 이야기를 읽지 않아서 왜 검은 조직과 럼이 아만다를 살해하려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독약이 완벽하다 해도 이렇게 많은 조직원이 호텔에 침투해 보디가드들을 제압했다면 굳이 독을 사용할 이유가 있나 싶습니다. 괜히 다이잉 메시지를 남길 시간만 준 셈이니까요. 언제나처럼 등장하는 독약 설정도 유치했고, 다이잉 메시지의 구체적인 내용도 유치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리고 17년 전 당시 현장에서 도주했던 생존자, 아만다의 보디가드 아사카가 현재 소년 탐정단의 부(副)담임인 루미 선생님이라는 설정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초반부터 ‘수상하다’는 분위기를 깔고 가서 대단한 반전도 없었고, 코바야시 선생님을 죽을 지경으로 만들면서까지 검은 조직을 노렸지만 결국 헛수고로 끝난 결말도 황당했습니다. 이게 대체 뭔가 싶더군요. 키안티 등의 저격을 코바야시 선생 일행이 전혀 눈치채지 못한 점도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긴 시리즈를 끌고 가는 중간 징검다리 역할에 불과한,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졸작입니다. 등장인물의 매력도 별 볼 일 없고, 추리와 트릭은 엉망이며, 액션은 부족하고 작화 역시 수준 이하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이전에 보았던 총집편 "흑철의 미스터리 트레인"은 이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았는데 아쉽네요. 앞으로 총집편은 웬만하면 보지 말아야겠습니다. 

2026/01/10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2025) - 라이언 존슨 : 별점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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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 신부는 몬시뇰 윅스 신부가 지배하는 일단의 추종자들 중심의 성당 보좌로 부임했다. 그는 윅스 신부의 비정상적인 운영과 범죄에 가까운 행동에 분노를 쌓아가다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뒤  윅스 신부가 미사 중 밀실에서 살해당하자 범인으로 몰렸고, 유명한 탐정 브누아 블랑이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섰지만 윅스 신부의 부활 후 정원사 샘슨의 죽음, 의사 냇 박사의 죽음이 잇달아 일어나는데...

미국 넷플릭스 전용 장편 영화인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 최신작입니다. 그런데 분위기와 접근 방식은 전작들과 꽤 다릅니다. 전작들은 브누아 블랑이 직접 휩쓸린 사건을 추리해 나간다면, 이번에는 주드 신부를 도와 사건을 풀어나가는 조력자일 뿐이라는 점에서요. 작품의 주인공은 주드 신부거든요. 비교적 가볍고 장난스러운 분위기였던 전작들에 비해 종교와 신앙, 개인의 분노와 죄책감 등 묵직한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도 차이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아주 괜찮습니다. 고전 본격물 팬이라면 만족할 수 밖에 없는 밀실 트릭이 펼져지는 덕분입니다.

게다가 정보 제공이 공정하다 못해 노골적입니다. 영화에서 존 딕슨 카의 “할로우 맨(국내 출간명 "세 개의 관")”에 등장하는 밀실 트릭 강좌가 직접 인용되기 때문입니다. 브누아 블랑은 장치 트릭 설명에서 멈추지만, 이 뒤에는 '시간차 트릭(살인이 발생한 시점과 발견된 시점이 다르다)'가 이어지는데 실제 범인은 이 트릭으로 범행을 저질렀거든요. 마사는 흉기인 칼 머리의 악마 장식과 동일한 장식을 윅스 신부 미사복 등에 미리 꿰메 두었습니다. 그리고 밀실로 향한 윅스 신부가 항상 마시는 술에 약을 탔고, 술을 마신 신부가 쓰러진 후 피 주머니를 터트려 죽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의사 냇 박사가 상태를 확인하는 척 하다가 악마 장식을 떼고 진짜 칼로 찔러 죽였던게 진상이지요.
이를 진범이 아니라 주드 신부로 혐의를 돌리게 만드는 전개도 좋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윅스 신부의 부활을 그린 불가능 범죄도 고전 본격물스럽습니다. 당연히 시체를 바뀌치기한 것이고(대역은 당연히 윅스 신부와 닮았고, 관을 만들고 나중에 죽은 샘슨이지요) 트릭은 그리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주드 신부가 신앙심과 개인적인 분노 사이에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서, 그가 보고 듣는 정보가 어느정도 왜곡되었다는걸 활용하여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솜씨가 기가 막힙니다. 그가 ‘부활한 몬시뇰을 자신이 죽였다'고 믿게 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정말 극적으로 잘 연출했어요.

한편으로는 8천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유산을 둘러싼 보물 찾기도 병행되는데 이 역시 관객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유일한 단서인 ‘이브의 사과’를 분해한 뒤, 나중에 그게 일종의 '보석함'이었다는걸 드러내는 식으로요.

동기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마사는 성당을 지키기 위해 윅스를 죽였지만, 동시에 그가 부활한 것처럼 꾸며 성당을 되살리고자 했던 겁니다. 윅스 신부가 입을 열면 경력이 끝장날 위기에 빠진 냇 박사가 실행범으로 동참했고요. 그러나 냇은 8천만 달러짜리 보석 앞에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샘슨을 죽인 뒤, 마사까지 죽이려 했지만 되려 그가 죽고 말았습니다. 

이를 그리는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워낙 유명배우들이 많이 출연하는 시리즈답게 이번에도 배우들 캐스팅이 엄청 화려한데, 마사 역의 글렌 클로즈는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평생 헌신했으나 내면에 분노를 품은 인물을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표현해 냅니다. 주드 신부 역의 조쉬 오코너는 흔들리는 신앙과 불안한 정신 상태를 섬세하게 드러내고, 조쉬 브롤린이 연기한 몬시뇰 윅스 역시 광기와 카리스마를 동시에 보여주며 이야기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줍니다. 다른 배우들 연기도 다 좋아요.

그런데 너무 길다는 단점은 큽니다.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조쉬 신부가 윅스 신부와 그의 추종자들을 만나 여러가지 관계를 쌓아올리는 과정을 장황하게 보여주는 탓입니다. 물론 인물들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윅스 신부가 추종자들을 마지막에 협박했더라도 경력을 잃을 위기에 빠진 냇 박사와 작가 리오 말고는 동기가 있는 인물이 없습니다. 장애가 있는 시몬이 실행범일리는 없고(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는걸 보여주어서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노력하지만), 베라 변호사는 아버지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설명해주지 않아서 동기를 짐작할 수 없습니다. 즉, 이런 인간관계는 관객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사족입니다.
신앙심과 개인적 분노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드 신부의 딜레마 역시 흥미롭지만 이렇게 길게 풀어낼 정도로 재미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주드 신부의 정신력이 너무 약하지 않나 싶은 생각만 들어요.

브누아 블랑의 매력도 잘 드러나지 못합니다. 그는 진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사의 자백을 유도하는데, 이는 정의 구현에 충실했던 그간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거든요. 피도 눈물도 없는 추리 기계가 갑자기 따뜻한 남자로 돌변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마사가 용서와 구원의 이미지를 남긴 채 생을 마감하는 결말 역시 식상할 뿐 아니라, 끝까지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는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마지막에 보석이 주드 신부가 만든 십자가 그리스도 상 안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부분 역시 뻔했고요.

그래도 추리적으로 볼거리가 풍부하다는건 분명합니다. 본격 추리물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아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전작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2025/10/11

정체 (2024) - 후지이 미치히토 : 별점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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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살해로 사형 선고를 받은 카부라기는 자해 후 병원 이송 중 탈옥에 성공했다. 형사 마타누키는 카부라기를 집요하게 추적했지만, 카부라기는 계속 도주하다가 결국 '아오바 요양원'에서 발견되었다. 카부라기는 출동한 경찰들에 포위되자 요양원 동료 마이를 인질로 삼았다. 피해자 유족 요시코로부터 증언을 얻을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사형수가 탈옥한 뒤 수백일간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주하는 과정을 그린 범죄 스릴러 드라마입니다. 소메이 타메히토의 소설이 원작이네요.

이야기의 중심은 사형수 카부라기의 도주극입니다. 카부라기가 이송 중 구급차에서 도주한 뒤, 일본 각지를 전전하며 체포의 위기를 피하는 과정이 아주 상세합니다. 변장과 마스크를 이용해 사람들 속에 섞여드는 모습도 설득력 있게 표현되고요. 또 도주 과정에서 카부라기가 인연을 맺은 여러 사람들과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도 큰 울림을 줍니다.
드라마적으로도 잘 구성되어 있으며,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도 안정적이어서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좀 달랐습니다. 보통 이런 류의 억울한 누명을 쓴 희생자의 도주극은 진범을 밝혀내는 부분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중반 이후에 또다른 일가족 연쇄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체포되면서 카부라기가 누명을 썼다는 진상이 드러납니다. 반전도 없어서 관객 입장에서는 맥이 빠집니다. 요시코의 증언만으로 누명을 벗는다는 점도 시시했고요. 
때문에 초반의 스릴러적 긴장감은 뒤로 갈 수록 느슨해지고, 드라마적 색채가 강해집니다. 이는 요시코의 행방을 알아내고 증언을 이끌어내기 위한 카부라기의 노력이 그리 잘 묘사되지 못한 탓도 큽니다. 솔직히 마지막 증언 요구 장면은 '강요'로 보여서 영 별로였어요.

카부라기가 마지막 체포되는 모습은 앞서의 도주극과는 다르게 허술합니다. 오사카 공사장이나 사야카의 집에서 도주 후 변장할 때는 관객도 깜짝 놀랄 정도로 다른 사람처럼 보였는데, 요양원에서는 마이가 잠깐 찍어 올린 SNS로 덜미가 잡힐 정도로 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탓입니다. 주연 요코하마 류세이 문제도 커요. 정체를 숨기고 도주를 이어가기에는 너무 잘 생겼으니까요. 보다 평범한 외모의 배우를 기용하는게 바람직했습니다.

또 카부라기를 돕는 주변 인물들의 동기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나마 마이는 자기 부친도 누명을 썼다는 이유라도 있지, 오사카 공사장에서 만났던 카즈야(점프)는 카부라기를 경찰에 신고했었고, 사야카는 그냥 카부라기 얼굴에 반했을 뿐인데 왜 끝까지 믿고 따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나름대로 성장했다는 장면은 완전히 사족이었고요. 이들보다는 상부의 명령에 의심을 품은 채 카부라기를 추적하는 마타누키 형사의 내적 갈등을 더 잘 살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촬영과 연기 모두 뛰어난, 잘 만든 영화이지만 추리극으로서의 재미는 다소 부족합니다. 기대와 달리 드라마적인 무게가 강했어요. 이런 드라마를 좋아하신다면 모를까, 추천하기는 어렵습니다.

2025/09/20

인사이드맨: 모스트 원티드 (2019) - M.J. 배셋 : 별점 1.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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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연방 은행의 금괴를 노린 강도들이 대규모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했다. 협상 전문가인 FBI 브린과 NYPD 레미가 현장에 투입되어 강도단 리더 '수배자'와 협상을 벌였다. 그러면서 강도단이 은행 지하에서 허드슨 강을 피해 뚫린 옛 터널을 통해 탈출하려고 한다는걸 알아냈지만, 브린도 인질로 잡히고 말았다. 그 뒤 강도단이 폭약을 잘못 쓴 탓에 터널이 붕괴하여 허드슨 강이 범람했고, 강도단은 일망타진 당하는데... 

나치가 남겼던 금괴를 노리는 강도단의 치밀한 계획이 핵심인 하이스트 무비 장르의 영화입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계획은 나쁘지는 않습니다. 경찰은 터널이 존재한다는 정보에 혼란을 겪으며 범인들이 그 길로 도주할 것이라고 판단하지만, 이는 관객을 포함한 모두를 속이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거든요. 실제 계획은 금괴를 녹여 은행 내부의 황동 장식물로 위장한 뒤, 은행 폭파 이후 잔해를 수거하는 업체로 변장해 금괴를 회수하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 계획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별로입니다. 우선 협상 전문가로 등장하는 주인공 브린과 레미는 이야기에서 거의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브린은 심지어 스스로 인질이 될 정도로 무력하기만 합니다. 협상이 도움을 준 부분도 전무해요. 사건의 해결은 모두 강도단의 리더 아리엘라의 계획이었을 뿐입니다. 
괜찮았다는 계획 역시 설득력은 약합니다. 강도단이 금괴를 녹여 황동 장식물로 위장하는데, 그 양이 상당한 탓입니다. 이 작업이 제대로 된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영화처럼 하루 만에 완료된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아리엘라의 목적도 애매해서 이야기의 중심축이 흔들립니다. 오빠를 살리기 위한 금괴 탈취와 나치 잔당 디트리히의 체포라는 두 목적이 충돌하거든요. 결말을 보면 디트리히를 체포되게 만드는게 동기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애초에 금괴를 탈취하러 나설 필요도 없었지요. 오빠는 어차피 죽을테니까요. 이렇게 동기가 모호한 탓에 결과적으로 서사의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바라시 남매 중 막내 에이바는 경찰에 터널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지만, 뜬금없이 등장하고 갑작스럽게 퇴장해 설득력이 부족했으며 나치 금괴라는 설정 또한 새로움이 없고 식상했습니다. 액션 역시 협상가를 전면에 내세운 이야기 구조 탓인지 밋밋하며, 긴장감 있는 전투나 추격전이 부족해 몰입을 방해했고요. 

무엇보다도 화가 나는건, 제가 이 영화를 본 건 인터넷 상에서 접했던 추천 때문인데, 이 영화는 그 영화("인사이드맨")싸구려 후속편이었다는 겁니다. 감독과 주연 모두 바뀐 채 전작의 명성과 설정에 기댄 졸작입니다. 극장 개봉조차 못했는데 당연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한없이 1점에 가까운 1.5점입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금괴를 빼내는 기발한 트릭 하나에 그치는데, 그나마도 억지스럽습니다. 감상에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없는 재앙에 가까운 쓰레기입니다. 찾아보실 필요는 당연히 없습니다.

2025/08/24

스펜서 컨피덴셜 (2020) - 피터 버그 : 별점 1점

경찰 스펜서는 부패한 상관 보일런을 폭행했다가 5년 동안 수감되고 말았다. 스펜서의 출소 직후 보일런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선량한 경찰 테렌스가 누명을 썼다는걸 알게 된 스펜서는 룸메이트 호크와 함께 잔상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부패한 경찰들이 범죄 조직과 함께 대량의 마약을 유통한 자금으로 카지노 '원더랜드'를 개장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걸 알아내는데...

로버트 B. 파커가 창조한 보스턴 사립탐정 ‘스펜서’ 시리즈 중 하나인 에이스 앳킨스(로버트 B.파커 사후 원작을 이어서 쓰고 있는 작가)의 "원더랜드"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장편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액션물로 범죄 스릴러, 액션, 버디 코미디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나, 어느 쪽에서도 두드러지 못합니다.

특히 기대했던 범죄 스릴러, 수사물로는 최악에 가깝습니다. 일단,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수사는 전개상 거의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결정적인 단서들은 스펜서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우연히 제공해 주니까요. 예를 들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도청 파일을 피해자 테렌스의 아내가 스펜서에게 직접 전해주는 식으로요.
스펜서의 옛 파트너 드리스콜이 악당이라는 사실도 너무 쉽게 밝혀집니다. 초반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이쑤시개 조각이라는 단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추측이 가능한 수준이라 긴장감 있는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부패한 옛 파트너, 마약 조직, 조직 내부의 은폐 구조 등 설정들도 지나치게 전형적이고요.

전개 또한 뻔하고 치밀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중간 보스급인 벤트우드에게 쳐들어가서 물고문을 통해 마약 운송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게 대표적입니다. 이럴 거라면 은밀한 수사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지요. 게다가 정보를 털어놓았다면 악당들도 운송 시간을 바꾸는건 당연한데, 예정대로 운송하다가 마약 트럭을 스펜서에게 탈취당하는건 대체 이게 뭔가 싶더군요.

스펜서 캐릭터도 원작 붕괴 수준입니다. 원작에서는 문학에 조예가 깊어서 시니컬한 말투, 심리 묘사 측면에서 복잡한 면을 보여주는데, 영화에서는 그냥 말빨(?)좋은 전형적인 마초 헐리우드 경찰, 형사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액션에서라도 화끈했어야 했는데, 작중 대부분 장면에서는 적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장면만 반복될 뿐입니다. 이럴거라면 권투에 일가견이 있다는 설정은 왜 덧붙였는지 모르겠어요. 마크 월버그도 그리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 아니고요.

액션은 다른 부분에서도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격투 장면들 모두 속도감이나 위력이 느껴지지 않는 탓에 맨손 액션의 쾌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호크가 덩치를 활용해 마지막에 잠깐 활약하긴 하지만, 이 역시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워 액션적 재미는 떨어집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야기의 절정부입니다. 부패 경찰과 범죄 조직이 결탁한 악의 무리와 대단한 결전을 벌여야 할텐데, 스펜서가 트럭을 몰고 악당 본거지에 돌진한 뒤 호크가 몇 명을 때려눕히는 걸로 결전은 대체로 마무리됩니다. 스펜서와 드리스콜의 1:1 맞짱은 너무 작위적이라 어이가 없더군요. 부패 경찰들 때문에 보도도 못하고 사건이 은폐되었었는데, 스펜서와 호크의 활약 이후 사건이 대대적으로 폭로된다는 결말도 이해가 안되고요.

그래도 너무 바보같아서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다는건 오히려 장점이기는 하네요. 몇몇 유머 코드는 피식 웃게 해 주기는 하고요. 거인 호크, 조력자 헨리 캐릭터는 캐스팅이 좋습니다. 완전한 권선징악 마무리도 후련했고요.

다만 이 정도 장점은 이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보완해주기엔 턱도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범죄물로서도, 수사극으로서도, 액션 영화로서도 건질게 없는 졸작입니다. 원작인 탐정 스펜서에 대한 모독이라 할 수 있는 쓰레기로 에필로그에서 후속작, 시리즈의 여운을 남기는데 어림도 없지요. 소리없이 망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2025/07/26

더 킬러 (2023) - 데이빗 핀처 : 별점 3.5점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넷플릭스 전용 장편 영화.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연출만큼은 매우 정교합니다. 특히 파리 호텔에서의 실패 이후 킬러가 탈출하는 장면은 색감, 구도, 리듬감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킬러가 스스로의 신분을 감추고 위장하며 타겟을 하나씩 처리하는 과정의 디테일도 빼어납니다. 중개인 호지스를 습격하려고 쓰레기 수거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차량은 물론 옷에 부착하는 패치의 로고를 수작업으로 그려서 신분을 속이며, 문이 자동으로 닫히는 시간을 측정해서 침입하는 타이밍을 잡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완벽한 현실감'을 가져다 주는게 굉장히 좋았어요. 정말 저렇게 하면 침입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데이빗 핀처 감독 작품답게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납니다. 킬러 역을 맡은 마이클 패스밴더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게 내면을 표현해내는데 완벽하게 맞아떨어집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허술합니다. 암살 실패로 연인이 폭행당하자 복수에 나선다는게 이야기의 전부로 크게 새로울게 없는 킬러 복수극에 불과한 탓입니다. '킬러의 생활'을 따라가는 일종의 킬러 일상계물이라서 행동의 디테일을 좇는 재미는 있지만, 정교한 퍼즐처럼 맞물리는 서사를 기대한 관객으로서는 아쉬웠습니다.
또 암살 중개인이 킬러를 제거하지 않고, 여자친구만 폭행하고 사라진 설정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왜 기다렸다가 킬러를 죽이지 않았을까요? 협박이라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한데 말이지요. 결국 이는 킬러의 복수극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장치일 뿐인데, 수천km를 여행하며 4명이나 살해하는 복수를 하기에도 단순 폭행은 좀 부족해 보여서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중반부, 킬러가 플로리다로 가서 흑인 청부업자와 벌이는 격투 장면도 아쉽습니다. 상대는 거대한 체격과 잔혹함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격투는 힘의 압도감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길게 늘어지는 인상입니다. 어두운 탓에 액션을 제대로 감상할 수도 없고요. 이럴바에야 킬러의 압도적 강함을 짧게 선보이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울러 초반부터 반복되는 킬러의 나레이션은 철학적 분위기를 조성하지만, 후반부엔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핀처 특유의 절제된 미장센과 현실감 있는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집중력 있는 연기로 몰입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화면 자체로 모든 걸 말하는 영화이지요. 별점은 3.5점입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스타일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2025/07/25

괴물 나무꾼 (2023) - 미이케 다카시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인을 저질러왔던 변호사 아키라는 어느날 '괴물 나무꾼'의 가면을 뒤집어 쓴 괴한에게 공격을 받고 중상을 입었다. 그리고 입원한 병원에서 자신의 머리 속에 '칩'이 삽입되어 있다는걸 알게되었다. 칩은 뇌를 건드려 평범한 인간을 사이코패스로 만들었고, 이는 아키라를 과거에 납치했던 토마 부부의 실험에 의한 것이었다.
괴한의 공격으로 칩이 망가진 아키라는 서서히 인간성을 되찾았고, 칩 이식 수술을 받아 사이코패스가 된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던 괴물 나무꾼의 정체를 깨닫게 되는데...

기괴하고 변태적인 상상력의 영화로 잘 알려진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넷플릭스 전용 영화입니다. 어딘가의 추천을 읽고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흔해빠진 사이코패스물에 변주를 가한 설정은 괜찮습니다. 주인공 아키라 등 어릴 적 토마 부부에게 유괴당했던 아이들은 부부에 의해 모두 뇌에 ‘칩’을 삽입당했고, 칩이 뇌간을 건드려 감정과 공감 능력을 차단했기 때문에 모두 사이코 패스가 되었다는 설정입니다.
토마 부부의 아들이 선천적인 사이코패스였고, 그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사이코패스를 만들었다는 동기도 설득력있습니다. 만들줄 알아야, 부술 수도 있다는 논리인데 그런대로 와 닿았어요.
아키라가 저지른 살인들에 대한 묘사, 사이코패스 아키라에 대한 표현도 좋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부터입니다. 영화는 ‘괴물 나무꾼’의 정체를 쫓는 미스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정작 추리적인 재미는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등장인물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범인은 앞서 등장한 인물 중 하나일 수밖에 없고, 결국 켄모치가 범인으로 밝혀지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설득력 있는 복선이나 서사적인 개연성은 부족합니다. 사실상 유일한 단서는 켄모치가 이누이 형사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머리를 부딪힌 장면뿐인데, 이로 인해 뇌에 삽입된 칩이 고장나고, 그로 인해 인간성을 되찾았다는건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인간성을 되찾은 그가 자신과 같은 실험체들을 죽인 이유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범행 동기가 모호해서 관객이 범인을 추론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탓에, 후더닛(whodunit) 형식으로서도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켄모치는 죽었지만, 켄모치와 아키라의 사투 중에 아키라가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사이코패스라는걸 알게 된 아키라의 약혼녀가 그를 살해한다는 결말도 시시하고 허무합니다.

설정상의 허점도 눈에 띕니다. 아키라는 자신이 뇌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왔는데, 아무리 어렸어도 그런 수술을 받았다는건 충분히 기억하거나 인지할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설득력이 부족해요. 또 켄모치가 왜 하필 ‘괴물 나무꾼’이라는 복장과 설정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도 없고요.
사이코패스인 아키라의 친구 스키타니나 프로파일러인 토시로 란코는 서사에 거의 기여하지 않아서 굳이 등장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이런 요소들은 시나리오의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사이코패스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설정 자체는 흥미롭고, 살인 장면들이 풍기는 감정의 결핍이나 공허한 분위기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 특유의 연출력이 느껴지긴 합니다. 하지만 스릴러로서도, 미스터리로서도 설득력이 약하고, 연출과 구성도 허술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적인 재미를 기대하신다면 추천드리기 어렵습니다.

2025/07/18

나이브스 아웃 : 글래스 어니언 (2022) - 라이언 존슨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 제일의 명탐정 브누아 블랑은 코로나 격리 탓에 지루함으로 몸부림치던 중, 대부호 마일즈의 초대를 받고 그리스의 섬으로 떠났다. 마일즈는 섬의 대 저택에서 친구만을 데리고 자기가 만든 추리극을 선보인 뒤, 범인 찾기 게임을 할 생각이었다. 초대받은 친구들은 모두 마일즈의 돈과 후원이 절실해서 그 앞에서 쩔쩔맸지만, 앤디는 동업자 마일즈에게서 한 푼도 받지 못하고 회사를 쫓겨난 원한이 있어서 냉담한 태도를 유지했다. 

유명 작가가 만들었다는 추리극을 블랑이 단번에 풀어내어 김이 빠져버린 그날 밤, 파티에서 듀크가 술을 마신 뒤 질식사했고 뒤이어 앤디마저 저격당해 살해당했다. 곧바로 블랑은 남은 사람들 앞에서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내기 시작하는데....

넷플릭스 전용 장편 추리 영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전편을 재미있게 보아서 관심이 컸었지만, 2시간이 넘는 시간 탓에 그동안은 손이 가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더위가 몰아친 지난 주말에, 여름에는 추리 영화지!라는 생각으로 보기 시작했네요.

특징이라면 전편도 그랬지만, 고전 본격물의 문법을 현대에 맞춰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잘난 척이 심하고 까칠한 외국인 탐정 브누아 블랑부터 그러합니다. '에르퀼 푸아로'를 현대에 옮겨놓은 듯한 인물이니까요. 괴짜 억만장자가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친구들만을 외딴섬의 대저택으로 초대해 추리 게임을 연다는 설정 또한, 고전적인 클로즈드 서클 추리극을 연상시키고요.
그런데 여기 포함된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현 시점을 반영한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주목받는 정치인, 과학자는 그렇다 쳐도, SNS 중독인 패션 모델과 남성 인권에 대해 떠벌이는 유튜버가 대표적입니다. 마일즈는 아무리 봐도 일론 머스크를 떠올리게 했고요.

이야기도 뚜렷하게 4막으로 나뉘어 시원하게 전개되어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1막에서는 마일즈가 준비한 추리 게임이 중심이 되며, 2막에서는 듀크의 죽음이 벌어집니다. 이어지는 3막에서는 섬에 도착한 인물이 사실은 앤디가 아니라 그녀의 쌍둥이 동생 헬렌이었다는 사실이 회상을 통해 드러나고, 그녀가 언니의 의문사를 밝히기 위해 블랑에게 의뢰했음이 밝혀집니다. 마지막 4막에서 블랑의 추리와 헬렌의 폭주를 통해 이야기는 마무리되고요. 이렇게 구조적으로 큰 흐름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어 몰입하기 쉬웠습니다.

또 다른 장점은 미술입니다. 마일즈의 섬과 '글래스 어니언'으로 상징되는 대저택의 내외부는 시각적으로도 인상 깊습니다. 뱅크시 조각으로 만들어진 부두나 모나리자 등 여러 미술 작품, 초대장이 담긴 퍼즐 상자도 그러합니다. 인물의 성격과 직업을 반영한 의상과 색상 표현도 뛰어나고요. 한 마디로 보는 즐거움은 넘칩니다.

마지막 헬렌의 폭주도 화끈함만큼은 최고였어요. 모든걸 날려버린 뒤, '모나리자'마저 불태우는건 정말 최고의 마무리였습니다. 마일즈의 평소 입버릇과 절묘하게 연결되는 점도 좋았고요.

그러나 기대했던 추리적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주어진 정보를 통해 그럴듯한 추리를 끌어내는 브누아 블랑의 추리쇼는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러모로 헛점이 많이 보이는 탓입니다. 듀크가 마일즈의 차에 치일뻔 했다는 대사로 마일즈가 앤디의 집에 먼저 갔고, 그녀를 살해했다는 근거로 삼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발상은 좋지만 근거로는 턱없이 부족하지요. 마일즈가 멍청이라는 것과 그가 범인이라는건 아무런 관계가 없고요. 최악은 듀크가 마일즈의 잔을 잘못 알고 잡아서 죽은게 아니라, 마일즈가 듀크에게 잔을 전해주었다는 추리입니다. 관객은 모두 해당 장면에서 듀크가 잔을 잘못 잡는걸 봤습니다. 즉, 이건 관객에게 거짓말을 한겁니다. 공정함 측면에서 최악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마일즈가 범인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겁니다. 앤디의 사망과 관련해 마일즈의 차를 친구들이 목격했다는 사실은 정황일 뿐입니다. 범행의 동기가 되었던 메모도 이미 재판에서 조작된 증거를 기반으로 결론이 난 상태라, 지금 와서 앤디가 다시 제출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메모는 마일즈가 모두 앞에서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남아 있지도 않고요. 앤디가 이미 자살했다고 알려진 상황에서 그의 재력과 사회적 입지를 생각하면, 아무리 명탐정 브누아 블랑을 통해 고소된다 한들 유죄 판결은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심지어 친구들마저 편을 들어준다면 더더욱요.
듀크 살인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범행 도구가 독이 아닌 파인애플 주스 알레르기였기 때문에 사망 원인을 사고로 처리할 가능성이 큽니다. 잔을 바꿨다는 점도 증거를 남기기 어려운 부분이라 수사 과정에서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헬렌이 가지고 있던 녹음기를 활용해서 증거를 잡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좀 의외였어요.

그리고 부실한 동기도 문제입니다. 앤디를 살해한 이유가 메모 때문이라지만, 이미 메모를 누가 썼는지에 대한 법적 다툼은 끝난 상태입니다. 앞서 말했듯 지금 앤디가 '메모 원본을 찾았다!'며 들이미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듀크 살해도 넘치는 재력으로 무마하는게 더 손쉬웠을테고, 헬렌을 저격하려 한 마지막 범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일즈는 그녀가 앤디가 아님을 알고 있었고, 메모를 손에 넣은 상황에서 굳이 헬렌을 해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신분을 속인걸 밝히며 듀크를 살해한 범인으로 모는게 더 설득력 있었을 것입니다.
마일즈의 동기도 이렇게 부실하지만, 다른 친구들과 손님들은 더 합니다. 그들 중 누구도 앤디를 해칠 이유는 없었습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메모는 마일즈의 현재 위치에 영향을 끼치기 힘드니까요. 게다가 듀크를 죽일 이유는 더 없습니다. 듀크 때문에 위험을 느낄 인물은 존재하지 않거든요. 때문에 후더닛물로는 낙제점에 가깝습니다. 아무도 설득력있는 동기가 없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이런 범행을 억만장자 마일즈가 직접 벌이는게 가장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것도 세계 제일의 명탐정 앞에서 말이지요. 아무리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벌인 범행이라 하더라도 너무 무모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전작보다 규모가 커졌음에도 이야기의 짜임새와 특히 추리적인 완성도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전편만 보셔도 될 듯 합니다.

2025/07/04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2024) - 김민수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명득 형사와 이동혁 형사는 부패 경찰로 담당 구역에서 돈을 갈취해 왔다. 김명득 형사는 딸아이 수술비 마련을 위해서, 이동혁 형사는 도박에 빠져 거액의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두 형사는 중국인 조직이 현금을 옮기는 정보를 우연히 입수했고, 김명득 형사는 이동혁 형사를 설득해 돈 강탈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동혁 형사의 지인 박정훈 순경도 끌어들였다.

조직이 운반하던 돈은 손에 넣었지만, 총격전이 벌어져 중국인 조직원들과 박정훈 순경, 그리고 광수대 형사가 죽은 탓에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었고, 두 부패 형사가 꾸민 일이라는게 중국 조직원과 광수대 팀장 모두에게 알려지고 마는데...

넷플릭스에서 한동안 1위를 하던 한국 영화입니다. 나름 기대감을 가지고 관람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눈에 띄었습니다. 거칠고 냉소적인 부패 형사 김명득 역을 맡은 정우는 외형과 분위기 모두 잘 어울렸고, 김대명은 자신의 선한 인상을 잘 살려서 조금 어리숙하면서도 적당히 타락한 이동혁을 입체감있게 그려냅니다. 

하지만 이야기와 연출은 모두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전개가 식상하고 허술한 탓이 큽니다. 중국 조직의 검은 돈을 노리는 부패 형사 컴비의 범죄 계획이 영화의 중심축인데 이를 위한 치밀한 두뇌 싸움이나 전략적인 모습은 거의 그려지지 못하거든요. 범죄 장면은 계획이라기보다 단순한 강탈에 가깝고, 그마저도 긴장감이나 디테일이 부족해서 장르적인 재미를 거의 느낄 수 없습니다. 이래서야 케이퍼 무비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사건 수사 과정도 매우 단순합니다. 두 형사가 사건을 맡게 된 상황이라서, 조여오는 수사망 속에서 자기들의 범행을 숨기며 탈출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은 전무한 탓입니다. 중국인 조직과 광수대가 두 형사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전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연과 운에 의지할 뿐이니까요. 그래서 극적인 긴장감을 느낄 여지도 없습니다. 액션도 눈에 띄게 부족해서 범죄물에서 기대할만한 박진감 넘치는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광수대 팀장 오승찬도 이 돈을 노리고 있었다는 반전도 수많은 작품에서 반복되어온 장치라 신선함이 부족합니다. "범죄도시 2"와도 별로 다를게 없지요. 김명득이 오승찬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는 이유도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아 답답했고요.

클라이막스에서 돈을 숨겨둔 비닐하우스에 중국 조직과 사건의 흑막인 광수대 팀장이 모두 출동해 모두를 일망타진한다는 결말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뻔합니다. 특히 범행에 총이 사용되었음에도, 중국인 조직원들이 형사들에게 총이 있을거라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등 허술한 부분도 많고요. 김명득은 죽고, 살아남은 이동혁이 김명득의 딸을 데리고 호주로 가서 새 인생을 산다는 마무리도 별로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김명득이 부패하게 된 이유가 아내와 딸의 병원비와 수술비 때문이라는 설정은 최악입니다. 신파적일 뿐 아니라 낡아 빠져서 21세기에 볼 만한 설정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30여년 전 "투캅스"에서처럼 순수하게 '돈이 좋아서'라고 풀어내는게 더 그럴듯했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도, 인상적인 이야기 전개도 없었고, 전반적으로 구성이 허술해 아쉬움만 남습니다. 코로나 시기 촬영 완료 후 창고행이었다가 작년 극장 개봉하여 폭망했다고 알고 있는데, 창고행과 흥행 실패 모두 납득이 가는 졸작입니다. 구태여 찾아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5/06/07

백수아파트 (2025) - 이루다 : 별점 2점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수인 안거울은 큰동생 두온의 집에서 조카들을 돌보며 지냈지만, 오지랖 넓은 성격 탓에 쫓겨나듯 독립하게 되었다. 그녀가 새로 이사한 곳은 재개발 예정지에 위치한 백세 아파트로, 이곳에선 새벽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층간소음이 발생해 주민들이 괴로워하고 있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안거울은 이내 주민 대표 지원, 무당 무학보살, 전직 회계사 경석, 공시생 샛별, 유튜버 동오와 협력하게 되었고, 203호에 사는 광신도 여성을 체포하게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그녀는 범인이 아니었다. 
안거울은 크게 좌절했지만, 결국 소음을 일으킨건 경석이며, 그 배후에 아파트 경비원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주민들과 함께 마지막 대결에 나서는데...

이 영화는 백수 소시민이 층간 소음 추적에 나선다는 일상계 코믹 추리 스릴러입니다. 연휴를 맞아 티빙으로 감상했습니다. 

장점이라면 우선, 남는 것이 시간뿐인 백수가 탐정극을 끌고 나가는 설정 자체가 독특하고 흥미롭습니다. 실제로 층간 소음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작전—탐문 수사, 주민 파티 구성, 소음 측정기 활용 등—은 현실적인 공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요. 무엇보다 수상해 보인다고 막무가내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서와 증거를 수집하고, 그에 대한 반론 상황까지 함께 제시하며 범인을 좁혀가는 과정은 장르적 재미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건 203호가 범인이 아니라는게 노숙자 증언으로 밝혀진 뒤, 경비가 그 때 소음을 일으켰고 이유는 자기 멤버 중 한 명이 범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거울의 추리입니다. 뒤이어 거울은 쉼터 사용자 목록을 조사하여 범인이 경석이라는걸 밝혀내게 되지요.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인공 안거울 캐릭터도 생생합니다. 배우 경수진 씨의 연기가 좋더라고요. 그가 함께 지내는 조카가 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존재였고, 현재 곁에 있는 조카는 귀신이라는 설정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다른 아파트 주민들도 잘 표현하며, 곳곳에 피식하게 만드는 재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저예산 영화라 해도 영상미나 연출의 완성도, 스케일 모두가 영화보다는 TV 드라마에 가깝다는건 아쉽습니다. 차라리 기, 승, 전, 결의 네 파트로 나누어 - 안거울 설정 설명과 이사 후 층간 소음을 만나는 기, 안거울이 오지랖 넓게 나서서 범인을 찾기 시작하는 승, 203호를 범인으로 특정하지만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는게 밝혀지는 전, 진범인 경비와 마지막 승부를 펼치는 결 - 연속극 형식으로 구성했다면 더 효과적이었을겁니다. 

또한 후반부로 갈수록 추리 스릴러로서의 서사의 긴장이 급격히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범인이 경비원으로 밝혀지는건 너무 노골적이었고, 경비원이 감추고 있던 서류를 놓고 다투는 장면이 너무 길며 긴장감도 느낄 수 없었던 탓입니다. 경비원은 안거울을 살해하려고 했다가 실패한 상황인데, 서류를 숨기고 있었는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안거울이 경찰에 신고만 해도 살인미수, 납치 감금 등으로 중형을 선고받았을텐데 말이지요. 경비원과 부하들이 주민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 백주대낮에 그렇게 심한 폭행을 저지르고 빠져나간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아울러 재건축을 유도하기 위해 집값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몇 개월씩 소음을 유발했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장기간 문제가 지속되었다면, 영화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범인이 밝혀졌을 법하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이보다는 차라리 다른 방법, 예를 들어 방화를 시도하는 등의 적극적인 방법이 더 현실적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시도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영화보다는 백수 안거울을 중심으로 한 연속 TV 시리즈가 훨씬 어울렸을테고요. 같은 설정의 TV 시리즈를 기대해 봅니다.

2025/05/09

야당(2025) - 황병국 : 별점 2.5점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마약 수사의 뒷거래
모든 것은 야당으로부터 시작된다!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된 이강수(강하늘)는 검사 구관희(유해진)로부터 감형을 조건으로 야당을 제안받는다. 강수는 관희의 야당이 돼 마약 수사를 뒤흔들기 시작하고, 출세에 대한 야심이 가득한 관희는 굵직한 실적을 올려 탄탄대로의 승진을 거듭한다.

한편, 마약수사대 형사 오상재(박해준)는 수사 과정에서 강수의 야당질로 번번이 허탕을 치고, 끈질긴 집념으로 강수와 관희의 관계를 파고든다.

마약판을 설계하는 브로커 강수,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관희, 마약 범죄 소탕에 모든 것을 건 상재.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이해관계로 얽히기 시작하는데… (공식 시놉시스)

올해 개봉해서 간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범죄 스릴러극입니다. 연휴에 감상하였습니다. 

좋은 흥행 성적이 이해가 되더군요. 시종일관 관객을 몰입시키는 전개력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임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는 덕분입니다. 특히 이강수와 오상재 복수극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유튜브 생중계가 일품이에요. 굉장히 대담하면서도, 구관희와 조훈의 추악한 거래를 전국민에게 드러내는 효과적인 장치로 통쾌함을 선사해 주니까요. 생중계를 눈치챈 구관희 일당이 다급하게 블라인드를 내리는 장면은 완벽한 마무리였다 생각되고요. 이 생중계를 마지막 순간까지 감춘 구성은, 마지막에 터지는 반전으로서의 효과를 극대화 해 줍니다. 

등장인물 설정도 좋습니다. '야당'이라는, 전혀 몰랐던 직업(?)을 주요 소재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에 더해, 검사가 절대악이자 최종 빌런으로 대통령 선거의 흐름까지 뒤흔든다는 설정이 최근 현실과 맞닿아 있어 묘하게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구관희 검사에 대한 약간이지만 나름 복잡한 설정도 잘 그려져 있고, 강하늘과 유해진의 연기도 이를 잘 뒷받침해 줍니다.

하지만 단점도 뚜렷합니다. 우선 이강수라는 인물의 설정이 다소 납득이 어렵습니다. ‘야당’이라는 직업 특성상 은밀하게 움직여야 할 그가, 마약사범들과 경찰 앞에서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모습은 현실성이 떨어져요. 아무리 구관희 검사라는 뒷배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지요. 언제 비명횡사해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졌고, 이런 경솔한 면모는 이후 등장하는 치밀한 복수극과도 어울리지 않아서 인물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립니다.
대선후보 아들로 구관희를 설득해 강수, 상재, 수진의 인생을 망치고 복수심을 품게 만든 조훈은 더 최악이에요. 요즘 시대에, 대선후보 아들이 저렇게 오만방자하고 막나간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잘 나가던 배우였지만 마약으로 인생을 망친 수진은 뻔한 설정이라 진부했고요.

이강수와 오상재가 꾸미는 작전도 설득력이 다소 부족합니다. 조훈의 마약 투약 장면이 담긴 영상을 USB에 담아 야당 의원에게 전달하려다 실패하는 설정은, 디지털 시대에 걸맞지 않게 느껴집니다. 이메일이나 클라우드 같은 더 빠르고 효율적인 수단이 있는데 굳이 USB를 사용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거든요. 이건 오상재가 체포되는데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듀폰 라이터를 이용한 도청 장치 역시 마찬가지에요. 라이터가 영화 속에서 너무 자주 비춰져서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폐인이 되었던 이강수가 마약을 끊고, 체력을 키워 복수에 나서는 과정은 설명이 더 필요했습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걸맞게 수위 높은 장면들도 다소 과합니다. 마약 복용 후 벌어지는 난교 장면이나 과도한 살인 묘사는 굳이 이 정도까지 노출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장면을 빼고 수위를 조절해 15세 관람가로 개봉했다면 흥행에는 더 도움이 되었을겁니다.

그래도 별점은 2.5점입니다. 인물 설정의 허술함과 작위적인 장치들, 과도한 수위는 몰입을 저해하지만 재미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킬링타임용 범죄극을 원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2025/03/01

명탐정 코난 :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2024) - 나가오카 치카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홋카이도의 하코다테에서, 괴도 키드가 히지카타 토시조에 썼다는 일본도를 훔치려 했다. 이 칼들을 모으면, 오노에 재벌 선대가 남긴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핫토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키드는 칼을 훔쳐갔지만, 암호를 풀 수 없어서 코난 일행에게 돌려주었다.

이 때 오노에 가문 변호사가 살해되었고, 경찰은 모리 탐정, 핫토리와 함께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될 보물 찾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보물을 노리는 무기 상인 카도쿠라가 오노에 선대로부터 칼을 맡았던 전직 사범 후쿠시로를 납치했고, 괴도 키드를 쫓던 나카모리 경부도 카도쿠라에게 저격받아 중상을 입고 마는데...

"흑철의 어영"에 이은 명탐정 코난 극장판 시리즈의 27번째 작품입니다. 일본의 유명 관광지 하코다테를 배경으로 전설적인 보물과 연쇄 사건이 얽힌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선, 추리적으로는 꽤 흥미롭습니다.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한 암호가 등장하는데, 전통 일본도의 구조와 히지카타 토시조가 남긴 시집, 하코다테의 오릉곽 등 실존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몰입감을 높이며, 사라진 성릉도 대신에 히지카타 토시조가 칼싸움 중 남겼다는 자국의 본을 떠서 코등이를 만드는 이야기는 팩션같은 재미도 줍니다. 덕분에 2차 대전 당시 숨겨진 무기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도 그럴듯하게 포장됩니다.

주 무대인 오릉곽은 물론, 여러 하코다테의 실제 명소들이 등장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코다테 뿐 아니라 모미지가 좌충우돌하면서 다른 홋카이도의 명소를 보여주기까지 하고요. 덕분에 단순한 미스터리가 아니라 '여정 미스터리'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엔딩에서는 실제 사진이 보여지는데, 꼭 한 번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장판 코난 특유의 비현실적인 액션도 여전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납득할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케이블카 선로를 따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달리거나, 비행기 날개 위에서 검술 대결을 펼치는건 고속 열차가 탈선하거나,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고 침몰하는 것에 비교하면 소소한 편이지요. 실제 명소들이 무대인 덕분이기도 할 텐데, 앞으로도 이러한 방향성이 유지된다면 좋겠습니다.

시리즈 팬으로는 핫토리 헤이지가 핵심 멤버로 활약한다는게 좋았습니다. 제 최애 캐릭터 중 한 명이거든요. 핫토리가 카즈하에게 고백하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 모미지의 훼방으로 고백에 실패하는 장면 등은 충분히 즐길만 했고요. 신이치와 괴도 키드가 닮은 이유(알고보니 사촌간!)가 밝혀지는 쿠키 영상도 호불호가 갈린다는데,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괴도 키드 세계관과 엮을 필요는 없어 보이긴 했지만요.

그러나 단점도 없지 않습니다. 일단, 이야기가 너무 허술합니다. 초반에는 칼을 훔치려는 키드와 핫토리, 코난과의 대결이 펼쳐지고, 그 뒤에는 보물을 찾으려는 암호 해독이 진행됩니다. 이 이야기만 중심으로 전개해도 차고 넘쳤을 텐데, 경찰이 개입하게 하기 위해 변호사 살인 사건을 삽입한건 무리수였습니다. 애초에 범인이 저지를 이유가 없었던 사건이기도 했고요. 키드 역시 칼을 훔치려다가 돌려준 이후에는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이유가 없어서, 계속 등장하는건 억지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동기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전황을 바꿀 수 있을 만큼 강력했던 무기라 하더라도, 21세기에 경제적 가치를 가질리 없습니다. 이 당연한 이치를 무시하고, 악당들이 경찰에게 총질을 하고 일본 대도시에서 폭탄 테러를 하면서까지 이를 찾아다니는 전개는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다른 이야기도 이 때문에 여러모로 이상하고요. 차라리 금괴가 보물이라는 설정을 밀어붙이는 것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암호 풀이의 과정은 좋지만,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밝혀내는 마지막 장면은 많이 허술했습니다. 트릭은 성릉도의 코등이(?)의 모양이 오릉곽과 동일하다는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먼저 기구를 띄운 뒤 칼을 바라보면서 오릉곽과 코등이의 형태가 일치하는 고도를 찾아냅니다. 기구 고도에 위치하는 장소는 하코다테 산 밖에 없으니, 하코다테 산의 이 고도 위치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건데, 실존하는 장소에 기반한 트릭이라는건 장점이지만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기구를 띄우는 위치를 정확하게 모르면 고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칼을 세우는 위치에 따라서도 오차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요. 기구에서 산을 가리키는 정확한 방향을 모르면, 이 역시 오차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래서야 '하코다테 산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라는 말과 별다를게 없어서, 이렇게까지 고생해서 암호를 풀 필요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데, 이 정도면 그래도 평작은 된다 싶네요.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2024/08/07

키스 더 걸 (1997) - 게리 플레더 : 별점 1.5점

알렉스 크로스의 조카 나오미가 납치되었다. 범인은 젊고 아름다우며 능력있는 여성들을 연달아 납치하는 '카사노바'였다. 알렉스 크로스는 '카사노바'를 잡기 위해 관할이 아닌 노스캐롤라나 더램으로 향해 수사팀에 합류했다. '카사노바'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에 성공한 여의사 케이트의 도움이 수사에 큰 힘이 되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본 1997년도 영화. 제임스 패터슨의 알렉스 크로스 시리즈 중 한 편을 영화하였습니다. 원작 소설은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군요. 리뷰도 올리지 않았고요. 그래서 처음 보는 작품처럼 볼 수 있었습니다.

대체로의 제임스 패터슨 작품이 그러하듯, 전형적인 헐리우드 범죄 스릴러입니다. "양들의 침묵" 이후 대 유행했던 천재 연쇄 살인마와 수사관의 대결이 뻔하게 펼쳐집니다.
그래도 몇 가지 차이점을 두어 변주를 꽤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범인 '카사노바'가 연쇄 '살인마'는 아니고, 사랑을 갈구하여 여성을 납치하는 연쇄 '납치마'라는 점입니다. 이게 꽤 중요합니다. 납치한 여성들을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경찰이 알아내지 못해서, 알렉스 크로스를 비롯한 경찰이 용의자를 추격할 때 쉽게 총격을 가하지 못하게 되거든요. 혹여 죽기라도 하면, 납치된 여성들이 굶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두 번째는 서부(LA) 지역에서 활동하는 연쇄 살인마 '젠틀맨'과 '카사노바'는 동일인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명이라는 진상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헐겁습니다. 알렉스 크로스가 FBI에게 알리지 않고 케이트와 루돌프 검거에 나서 그를 놓친다던가, '카사노바'의 은신처에 대한 단서를 얻은 뒤 둘이서만 찾아나서는 것처럼 알렉스 크로스와 케이트 컴비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비합리적인 전개도 많습니다. 루돌프가 범인이라는걸 케이트가 확신한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루돌프는 범인의 지인이었을 뿐인데 말이지요. 카사노바가 은신처를 손에 넣은 방법도 모르겠고요.
'카사노바'가 생각보다 별로 뛰어난 범죄자가 아니며(증거를 계속 남김), 하는 짓도 뻔하기 그지없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덕분에 대결 구도는 초반부를 지나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합니다. 액션이 별볼일없는데 두뇌 싸움도 없으니, 영화가 재미가 있을리가 없지요.
경찰이 '카사노바'였다는 반전도 지금 보기에는 너무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범죄도시 3"에서도 써먹을 정도로 널리 퍼진 설정이기도 하고요. 게다가 앞서 별다른 비중도 없던 인물이 갑자기 범인이라고 등장하는건 뜬금없었습니다. 반전에 집착한 나머지, 합리성을 결여한 결과랄까요.
그리고 예상했던대로, 모건 프리먼은 알렉스 크로스와 별로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포르쉐를 타고다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의사이자 형사인 인물에는 좀 더 섹시(?)한 배우가 나았을 겁니다. 애슐리 쥬드가 연기한 케이트와의 관계 설정을 위해서도요. 영화에서는 거의 부녀 관계처럼 보이더라고요.

건질 장면이 없지는 않습니다 .알렉스 크로스가 케이트에게 투여된 약물의 출처를 조사하여 LA의 의사 루돌프가 수상하다는걸 알아내는 장면, 마지막에 경찰 서명과 카사노바 서명을 비교하여 정체를 알아채는 장면은 추리적으로 볼만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역시 저는 제임스 패터슨과는 안 맞는 듯 합니다.

2024/07/21

모래그릇 (砂の器) (1974) - 노무라 요시타로 : 별점 4점


마츠모토 세이초의 대표작을 1974년도에 영화화한 작품. 원작을 읽기는 했었는데 수십년 전이라, 잘 기억나지 않아서 더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재미도 재미지만, 굉장히 잘 만든 영화입니다. 연기, 촬영은 물론 음악까지 모두 빼어납니다. 특히 히데오의 아버지가 나병에 걸린 뒤 부자는 정처없는 떠돌이가 되었는데, 카메다케 마을 순사 미키 켄이치의 설득으로 아버지는 히데오의 장래를 위해 수용소 행을 택했고, 결국 수용소로 떠나는 기차역으로 히데오가 달려오는 장면과 음악가가 된 와가 에이료(히데오)의 신곡 '숙명(사다메)'이 발표되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는 클라이막스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정적인 촬영과 장엄한 음악이 잘 어우러진 명장면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음악에 가장 많은 돈(300만엔)을 쓴 작품이었다는데,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리 영화로도 괜찮습니다. 이마니시와 요시무라 형사가 살해된 피해자의 사투리와 했던 말을 토대로 행적을 추적하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입고 있었던 옷과 한 여성이 잘게 자른 종이 조각을 흩뿌렸다는 신문 기사를 연결하여 기차 선로 주변을 뒤져 종이 조각이 아닌 '옷' 조각을 찾아내 피해자의 혈흔이 묻어있다는걸 밝혀내는 등의 뚝심있는, 발로 뛰는 수사를 잘 묘사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과장된 연기 방식 등 다소 낡은 티가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지만, 구로사와 아키라가 건재했던 일본 영화계 전성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수작입니다.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24/07/17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2023) - 케네스 브래너 : 별점 3점

명탐정 에르큘 푸아로는 은퇴 후 베니스에서 조용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푸아로의 친구이자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 올리버가 찾아와 심령술사 조이스 레이놀즈에 대해 검증해 달라고 부탁했다.
할로윈 날, 교령회가 열리던 로웨나 드리에크의 저택을 방문한 푸아로 앞에서 조이스는 죽은 로웨나의 딸 알리시아의 목소리로 "나는 살해당했다, 범인은 이 안에 있다"고 말한 직후 살해당하고 말았다.
마침 몰아친 폭풍우로 저택마저 고립되었고, 푸아로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맞서 싸우면서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였다. 그 와중에 로웨나 집안의 주치의 레슬리마저도 잠긴 방 안에서 칼에 찔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데....


딸아이 때문에 가입한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감상한 영화입니다. 캐네스 브래너의 푸아로 시리즈 전작인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나일강의 죽음"은 원작도 원작이지만, 영화 버전으로도 이미 감상했기에, 아무리 추리 애호가라지만 별로 볼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가 원작 "핼로윈 파티"를 읽지 않았던 덕분에 흥미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원래 제목부터 "A Haunting in Venice"인 것처럼, 전통적인 '저주받은 저택' 소재의 호러물과 결합되어 있다는 특징이 눈에 띕니다. 등장인물들이 머물고 있는 저택에 유령이 많다는 설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서, 초반부 교령회에서부터 시작해 푸아로가 세면대에서 유령을 보는 장면 등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들이 많거든요. 주로 탐정과 등장인물들 간의 대사로 전개되고, 액션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으며, 범행이 일어나는 장면도 대체로 숨겨져 있어서 - 범인이 드러나면 안되므로 - 시각적으로 볼거리가 없는 정통 고전 본격 추리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였을 텐데,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덕분에 지루함 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촬영과 미술도 뛰어납니다. 인물들은 물론 무대가 되는 저택 곳곳의 디테일도 좋고, 모두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볼만했습니다. 푸아로가 유령을 보고 느낀 이유가 약물에 중독된 탓이며, 이를 통해 과거 알리시아의 죽음이 약물로 인해 벌어진 사고였다는 추리로 이어지는데, 그 과정도 합리적이고, 약물이 들어있는 '꿀'에 대한 묘사가 곳곳에 등장하는 식으로 단서도 공정히 제공됩니다. 그리고 범인이 엄마 로웨나였다는 진상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살아남은 등장인물들 앞에서 펼치는 추리쇼도 고전적이면서도 멋있었습니다.

물론 관객이 약물에 대해 알아채는 건 다소 한계가 있고, 로웨나가 오랜 시간 동안 '꿀'을 없애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는 등 사소한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푸아로가 은퇴하여 은거하고 있던 중이라는 설정도 구태여 넣을 필요가 있을까 싶고요. 일부 지루한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고전 정통 추리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는 잘 만든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6/26

라플라스의 마녀 (2018) - 미이케 타카시 : 별점 1.5점

티빙에서 뭐 볼거 없나 하고 탐색하다가 발견한 작품. 소설 리뷰에서도 밝혔지만, 영화에 적합한 소재라 생각했었기에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실망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형편없는 각본입니다. 메인 빌런인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악행, 그리고 겐토의 복수심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영화만 보면 왜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장면들도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너는 누구지?'라고 묻은 아오에 교수에게 마도카가 '마녀, 라플라스의 마녀'라고 답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손발이 오그라들더군요. 요즘 슈퍼 히어로물도 이렇게 유치하지는 않을겁니다. 그 외에도 호러 영화 스타일 느낌을 주려고 한 장면들이 눈에 띄는데, 억지스럽기만했습니다. 나름대로 인상적인 필모그래피를 갖춘 미이케 다케시 감독 영화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이었습니다.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연기도 별로였습니다. 특히 토요카와 에츠시의 아마카스 사이세이는 최악이었습니다. 좋은 배우인데 왜 이랬을까요?

기대했었던 공기의 흐름같은 자연 현상을 조작(?)하는 극히 일부 장면 - 마도카가 발연통으로 아오에 교수에게 연기가 흘러들어가도록 한다던가, 종이 비행기를 날리는 장면 등 - 은 괜찮았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흥행에 재미를 못 본 듯 한데 당연합니다. 재미도 없고, 완성도도 별로니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4/06/12

명탐정 코난 : 흑철의 어영 (2023) - 타치카와 유즈루 : 별점 3점

전 세계 경찰의 CCTV를 연결하여 감시 및 확인이 가능한 시스템 '퍼시픽 부이'가 도쿄 하지조지마 근해 바다 속에 건설되었다. 여기에 도입된 신기술 '생장 인식 프로그램'은 어떤 인물의 특정 시기 사진을 입력하면, AI로 현재의 모습을 알아내어 전 세계 카메라를 이용해 그 인물이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시스템을 노린 검은 조직에게 엔지니어 나오미가 납치되었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생장인식 프로그램 데이터로 하이바라가 셰리라는게 드러났다. 검은 조직은 하이바라마저 납치했고, 이를 막으려던 코난 일행을 피해 잠수함으로 도주했다. 한편 퍼시픽 부이에서는 검은 조직의 내통자를 추궁하던 직원 레온하르트가 살해당하는데....


명탐정 코난의 26번째 극장판. 지난 주말에 딸아이와 함께 티빙을 통해 감상했습니다. 
사실 이전에 감상했던 최근 극장판들(대표적으로 "비색의 탄환")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었습니다. 추리와 액션 모두에서 재미를 주는데 실패했고, 황당하게 스케일을 키우는 바람에 탈선한 기차가 날아올라 도시를 덮친다는 등, 아무리 만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가득했던 탓입니다. 극장판이란 강박관념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이 작품은 재미있더군요! 우선 설정이 돋보였어요. "명탐정 코난"의 핵심인 '몸은 작아졌어도 두뇌는 그대로!'를 활용한 '생장 인식 프로그램'은 하이바라가 납치당하는 상황의 설득력을 높여줄 뿐더러, 주인공들에게 또 위기가 닥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불어넣는 좋은 장치였습니다. 전세계 CCTV를 실시간 감시하고 언제든 데이터 확인이 가능한 '퍼시픽 부이'의 설정도 괜찮았고요. 검은 조직이 자신들이 기록된 영상을 조작하기 위해 퍼시픽 부이 시스템을 노린다는건 충분히 말이 되지요.
하이바라가 셰리일지 모른다 여긴 검은 조직이 하이바라를 납치하는 사건 중심의 스토리도 깔끔하며 액션도 좋았습니다. 검은 조직 요원 핑가와 란의 격투, 워커의 차를 쫓는 카체이스는 최근 보기 힘들었던 몰입감을 선사해 주었으니까요. 해상 시설물 퍼시픽 부이를 검은 조직의 잠수함이 공격하는 장면도 나쁘지 않았고요. 말도 안되게 스케일을 키웠다기보다는, 비교적 상식적인 수준으로 그려진 덕분입니다. (악의 조직이 잠수함까지 갖추고 있다는건 좀 그렇지만... '백팔용'인가?)
검은 조직의 레귤러에 아무로와 아카이, 경시청의 메구레 경부와 시라토리 등 괴도 키드와 하츠토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요 인물들이 거의 등장하여 각자의 역할을 선보이는 것도 팬으로서는 감사했던 부분입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일단 추리적으로는 그닥이에요. 추리할만한 사건은 퍼시픽 부이에 잠입한 검은 조직 요원 핑가의 정체를 밝히는 것 뿐인데, 손동작이라는 단서는 제공해주지만 용의자가 워낙 적은 탓에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는 탓이지요.
핑가가 코난 일행을 상대하기에는 확연히 처지는 모습만 보여준 것도 - 란에게 발차기를 얻어맞고, 코난에게 도주 경로가 드러나 범행이 탄로나는 등 - 별로였습니다. 이렇게 약하다면 먼가 사연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진에 대한 쓸데없는 라이벌 의식만 불태우는 잔챙이로 보여 실망스러웠어요. 
검은 조직이 퍼시픽 부이를 파괴한 것도 다소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백도어 등으로 외부 조작이 가능했으니 그냥 놔 두는게 훨씬 유용했을텐데 말이지요. 하긴, 한 명이 잠입한 것만으로 동영상 데이터 조작과 백도어 삽입을 이렇게나 쉽게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시스템을 장악하는게 더 나았을까요?
무엇보다도 베르무트가 직접 변장을 하여 조직이 '생장 인식 시스템'은 오류 투성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는지 밝혀지지 않는건 답답했습니다. 그녀도 이 시스템이 활성화되면 정체가 탄로날 수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다음 이야기에서 밝혀지면 좋겠네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명탐정 코난" 팬 입장에서, 그리고 '하이바라 아이'의 팬으로서 두말할 나위 없이 재미있게 즐겼던 작품이에요. 일본에서의 대박 흥행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흥행을 거두었다는데,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2/21

천재탐정 미타라이: 살인사건의 진실 (2016) - 이즈미 세이지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잡지 편집자인 오가와가 미타라이를 찾아와 미해결 수수께끼 사건 해결을 요청했다. 미타라이는 고고섬에 변사체가 연달아 떠내려온 사건에 흥미를 갖고, 조사와 추리로 사체는 후쿠야마에서 해류를 타고 내려왔다는걸 알아냈다.
후쿠야마로 향한 미타라이는 다른 외국인 변사체와 함께, 류진 폭포 부근에서 눈과 입이 꿰메어진 부부와 그들의 죽은 아기가 발견된 사건과 마주쳤다. 그리고 사건에는 후쿠야마 굴지의 기업인 사이쿄 화학 공업과, 과거 '세이로'라고 불리우던 전국시대 병기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밝혀내는데....


작가가 허락하지 않아서 영상화가 늦어졌다는, 시마다 소지미타라이 시리즈 첫 번째 영화. 티빙에서 감상했습니다. 지난 연초에 감상했는데 리뷰가 늦었네요.

여러 사건이 등장해서 추리적으로 풍성하다는게 장점입니다. 아래 순서로 사건이 일어납니다.
  1. 고고 섬으로 6구의 변사체가 떠내려온다. 한편 후쿠야마 바다에서는 '수룡'을 목격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2. 류진 폭포 부근에서 눈과 입이 꿰메어진 이비 부부와 그들의 죽은 아기가 발견되었다.
  3. 후쿠야마에서 외국인 여성 변사체가 발견되었고, 경찰은 사체를 옮기려던 외국인 무리를 검거했다.
  4. 역사 연구가 타키자와가 전국시대 병기 '세이로'의 존재를 알아냈다.
  5. 타키자와가 수상한 외국인과 부딪혔는데, 그는 이상한 알약을 떨어트렸다. 그 뒤 타키자와를 외국인 무리가 습격하려다 그녀의 저항으로 되려 추락사했다.
여기서 '외국인'들이 관련되어 있는 고고 섬 변사체, 후쿠야마 여성 변사체, 타키자와 습격 사건은 한 묶음입니다. 위험 약물을 제조 판매하던 외국인 무리가 관련자들 사체를 바다에 버렸고, 타키자와가 비밀을 눈치챘다 여기고 죽이려 했던 겁니다. 

이 사건들을 빼면 핵심 사건은 이비 부부 사건과 수룡의 정체, 두 가지로 중반 이후에는 두 사건, 그 중에서도 정통 추리물이라 할 수 있는 이비 부부 사건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이 사건은 아기 보모 타츠미가 실수로 아이가 추락사한걸 감추려고 유괴극을 꾸몄으며, 복수를 위해 이비 씨 가족을 감시하던 마키타 사장이 이를 눈치채고 부부마저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게 진상인데 여러가지 단서, 복선을 나름 공정하게 보여주면서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마키타 사장이 협박 편지를 남긴게 아니라서, 이비 씨에게 편지 내용을 읽어보라고 시켰고(내용 파악을 위해), 몸값 약속 시간도 선뜻 바꾸어 주었다는 등의 추리도 합리적이었어요.
'세이로'가 수룡이며, 이는 알고보니 잠수함이었다는건 역사 추리물 형태인데, 역사 속 기록과 연결하여 팩션처럼 전개하는게 재미있었습니다. 전국시대 병기가 흑선에 대항할 비밀무기로 기능한다는건 말도 안되지만, 잠수해서 흑선의 '외륜'만 노린다면 혹시?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설득력도 있었고요.

영화 만듦새도 좋습니다. 특히 촬영이 아주 인상적이에요. 요새 영화에서 보는 선명한 조명이 아니라, 자연광을 쓴 듯 자연스럽고 다소 낮은 채도의 약간 오래 전 영화같은 화면을 보여주는데 굉장히 좋았어요. 작위적일 수 밖에 없는 추리물이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화면이 그래도 생생함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촬영 덕분에 후쿠야마, 세토 내해 일대를 배경으로 삼는, 일종의 '여정 미스터리'로서의 가치도 높습니다.
주연 타마키 코지의 미타라이 연기는 본격물 탐정으로서의 모습에 충실해서 나쁘지 않았어요. 전형적이지만 이런 작품 속 탐정들이 뭐 대부분 그러하니까요. 만약 미타라이가 실제로 있다면 이렇게 생겼을 것 같다!는 이미지는 잘 전해줍니다.
하지만 추리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이비 부부 사건은 마키타 사정의 동기, 그리고 경찰 수사 부분에서 아쉽거든요. 단순 복수로 이런 엽기적인 범행을 벌인다? 설득력이 낮습니다. 아기가 이미 죽었다면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앙값음이 되었을텐데 말이지요. 외국인 수하들을 시켜 진작에 복수할 수도 있었는데 이런 기묘한 범행을 구태여 저지른 이유도 설명되지 못합니다. 이비 씨 가족을 꾸준히 감시해왔다는 설정, 성공한 사업자가 자기 공장에서 불법 의약품을 제조한 이유도 작품 내에서 조금 설명해주는게 좋았을 겁니다.
그리고 경찰은 이비 씨가 과거 과격한 환경 단체 시위를 했고, 그 시위 탓에 사이쿄 화학공업 관계자가 자살했다는걸 알아냈습니다. 그렇다면 자살자의 가족을 찾아 나섰다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을거에요. 영화에서처럼 '하나 뿐인 아들의 행방은 지금 알 수 없다'며 대충 흘려보낸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잠수함 세이로를 마키타 사장이 타고 도주하던 화물선에 충돌시켜 멈추는 장면은 뭔가 했습니다. 이유도 알 수 없고, 당황스럽기만 했거든요. 이렇게까지 해서 화물선을 멈춰야할 이유도 없었으니까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미타라이 시리즈 팬이라면 즐길만한 작품인건 분명합니다. 2시간 남짓한 상영시간동안 저는 충분히 즐거웠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02/14

키시베 로한은 움직이지 않는다 (2017~2020) : 별점 2.5점

"죠죠의 기묘한 모험" 시리즈 4부의 조연 키시베 로한이 주인공인 단편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 원작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죠죠 시리즈는 좋아하기에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에피소드도 4편 뿐이라 부담없어서 좋았습니다. 한 번에 몰아서 보았네요.

특징이라면 호러물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기괴한 등장인물들과 더불어 대결 장면에서의 섬찟한 긴장감을 주는 묘사가 탁월한 덕분이지요. 최고는 "무츠카베자카"입니다. 오오사토 나오코가 실수로 남자친구를 죽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집에는 약혼자가 찾아와서 시체를 치워야 하는데 시체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터져나옵니다! 상처를 붕대로 감고, 꿰메기까지 했는데도 피를 막을 수 없는 상황! 하지만 결국 문을 열고 들어온 약혼자는 피를 볼 수 없었습니다. 과연 나오코는 어떻게 피를 숨겼을까요? 
다른 에피소드들에서도 "고해소"는 악령, "부호촌"은 산신, "더 런"은 헤르메스 화신이라는 기괴한 적과의 대결이 선보여집니다.

죠죠 시리즈다운 두뇌 게임 요소도 있습니다. "부호촌"이 대표적입니다.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내리는 산신을 상대로 함정을 간파하여 예의를 차림은 물론, 집사를 헤븐즈 도어로 조작하여 대결을 승리로 이끄는 식이거든요.
앞서 소개해드린 "무츠카베자카"에서 피를 숨긴 방법, "고해소"에서 비둘기 떼가 노리는 팝콘을 무사히 던져서 먹는 방법도 두뇌 게임이라 볼 수 있고요.

그러나 문제도 없지 않아요. 일단 작화 문제가 큽니다. 컬러와 디자인이 과해서 보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원작의 괴이한 패션 감각은 만화는 흑백이라서 그렇게 거슬리지 않지만, 풀 컬러 애니메이션에서는 거의 시각적 공해라고 해도 무방하겠더라고요. 핵심 장면 외에는 흑백으로 제작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동화도 그닥이에요. 잘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효과가 조금 화려한 슬라이드 쇼와 별로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대결도 헤븐스 도어의 능력을 활용하여 마무리하는건 별로였습니다. "무츠카베자카"에서, 소녀가 사고로 죽었는데 헤븐스 도어로 과거로 시간을 되돌려 살려내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낸다는건 무리일 뿐더러, 살려내는 방법도 단지 '키시베 로한을 알기 이전'으로 되돌리는게 전부라는건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부호촌"도 단순 대결물로 끌고가다가 헤븐스 도어의 능력으로 마무리한건 아쉬었습니다. 마을의 존재가 굉장히 흥미로왔는데도 말이지요.

그래도 재미 측면에서는 나무랄데없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다른 원작 에피소드들도 영상화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