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일의 명탐정 브누아 블랑은 코로나 격리 탓에 지루함으로 몸부림치던 중, 대부호 마일즈의 초대를 받고 그리스의 섬으로 떠났다. 마일즈는 섬의 대 저택에서 친구만을 데리고 자기가 만든 추리극을 선보인 뒤, 범인 찾기 게임을 할 생각이었다. 초대받은 친구들은 모두 마일즈의 돈과 후원이 절실해서 그 앞에서 쩔쩔맸지만, 앤디는 동업자 마일즈에게서 한 푼도 받지 못하고 회사를 쫓겨난 원한이 있어서 냉담한 태도를 유지했다.
유명 작가가 만들었다는 추리극을 블랑이 단번에 풀어내어 김이 빠져버린 그날 밤, 파티에서 듀크가 술을 마신 뒤 질식사했고 뒤이어 앤디마저 저격당해 살해당했다. 곧바로 블랑은 남은 사람들 앞에서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내기 시작하는데....
넷플릭스 전용 장편 추리 영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전편을 재미있게 보아서 관심이 컸었지만, 2시간이 넘는 시간 탓에 그동안은 손이 가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더위가 몰아친 지난 주말에, 여름에는 추리 영화지!라는 생각으로 보기 시작했네요.
특징이라면 전편도 그랬지만, 고전 본격물의 문법을 현대에 맞춰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잘난 척이 심하고 까칠한 외국인 탐정 브누아 블랑부터 그러합니다. '에르퀼 푸아로'를 현대에 옮겨놓은 듯한 인물이니까요. 괴짜 억만장자가 자신에게 원한을 가진 친구들만을 외딴섬의 대저택으로 초대해 추리 게임을 연다는 설정 또한, 고전적인 클로즈드 서클 추리극을 연상시키고요.
그런데 여기 포함된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현 시점을 반영한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주목받는 정치인, 과학자는 그렇다 쳐도, SNS 중독인 패션 모델과 남성 인권에 대해 떠벌이는 유튜버가 대표적입니다. 마일즈는 아무리 봐도 일론 머스크를 떠올리게 했고요.
이야기도 뚜렷하게 4막으로 나뉘어 시원하게 전개되어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1막에서는 마일즈가 준비한 추리 게임이 중심이 되며, 2막에서는 듀크의 죽음이 벌어집니다. 이어지는 3막에서는 섬에 도착한 인물이 사실은 앤디가 아니라 그녀의 쌍둥이 동생 헬렌이었다는 사실이 회상을 통해 드러나고, 그녀가 언니의 의문사를 밝히기 위해 블랑에게 의뢰했음이 밝혀집니다. 마지막 4막에서 블랑의 추리와 헬렌의 폭주를 통해 이야기는 마무리되고요. 이렇게 구조적으로 큰 흐름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어 몰입하기 쉬웠습니다.
또 다른 장점은 미술입니다. 마일즈의 섬과 '글래스 어니언'으로 상징되는 대저택의 내외부는 시각적으로도 인상 깊습니다. 뱅크시 조각으로 만들어진 부두나 모나리자 등 여러 미술 작품, 초대장이 담긴 퍼즐 상자도 그러합니다. 인물의 성격과 직업을 반영한 의상과 색상 표현도 뛰어나고요. 한 마디로 보는 즐거움은 넘칩니다.
마지막 헬렌의 폭주도 화끈함만큼은 최고였어요. 모든걸 날려버린 뒤, '모나리자'마저 불태우는건 정말 최고의 마무리였습니다. 마일즈의 평소 입버릇과 절묘하게 연결되는 점도 좋았고요.
그러나 기대했던 추리적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주어진 정보를 통해 그럴듯한 추리를 끌어내는 브누아 블랑의 추리쇼는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러모로 헛점이 많이 보이는 탓입니다. 듀크가 마일즈의 차에 치일뻔 했다는 대사로 마일즈가 앤디의 집에 먼저 갔고, 그녀를 살해했다는 근거로 삼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발상은 좋지만 근거로는 턱없이 부족하지요. 마일즈가 멍청이라는 것과 그가 범인이라는건 아무런 관계가 없고요. 최악은 듀크가 마일즈의 잔을 잘못 알고 잡아서 죽은게 아니라, 마일즈가 듀크에게 잔을 전해주었다는 추리입니다. 관객은 모두 해당 장면에서 듀크가 잔을 잘못 잡는걸 봤습니다. 즉, 이건 관객에게 거짓말을 한겁니다. 공정함 측면에서 최악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마일즈가 범인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겁니다. 앤디의 사망과 관련해 마일즈의 차를 친구들이 목격했다는 사실은 정황일 뿐입니다. 범행의 동기가 되었던 메모도 이미 재판에서 조작된 증거를 기반으로 결론이 난 상태라, 지금 와서 앤디가 다시 제출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메모는 마일즈가 모두 앞에서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남아 있지도 않고요. 앤디가 이미 자살했다고 알려진 상황에서 그의 재력과 사회적 입지를 생각하면, 아무리 명탐정 브누아 블랑을 통해 고소된다 한들 유죄 판결은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심지어 친구들마저 편을 들어준다면 더더욱요.
듀크 살인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범행 도구가 독이 아닌 파인애플 주스 알레르기였기 때문에 사망 원인을 사고로 처리할 가능성이 큽니다. 잔을 바꿨다는 점도 증거를 남기기 어려운 부분이라 수사 과정에서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헬렌이 가지고 있던 녹음기를 활용해서 증거를 잡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좀 의외였어요.
그리고 부실한 동기도 문제입니다. 앤디를 살해한 이유가 메모 때문이라지만, 이미 메모를 누가 썼는지에 대한 법적 다툼은 끝난 상태입니다. 앞서 말했듯 지금 앤디가 '메모 원본을 찾았다!'며 들이미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듀크 살해도 넘치는 재력으로 무마하는게 더 손쉬웠을테고, 헬렌을 저격하려 한 마지막 범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일즈는 그녀가 앤디가 아님을 알고 있었고, 메모를 손에 넣은 상황에서 굳이 헬렌을 해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신분을 속인걸 밝히며 듀크를 살해한 범인으로 모는게 더 설득력 있었을 것입니다.
마일즈의 동기도 이렇게 부실하지만, 다른 친구들과 손님들은 더 합니다. 그들 중 누구도 앤디를 해칠 이유는 없었습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메모는 마일즈의 현재 위치에 영향을 끼치기 힘드니까요. 게다가 듀크를 죽일 이유는 더 없습니다. 듀크 때문에 위험을 느낄 인물은 존재하지 않거든요. 때문에 후더닛물로는 낙제점에 가깝습니다. 아무도 설득력있는 동기가 없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이런 범행을 억만장자 마일즈가 직접 벌이는게 가장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것도 세계 제일의 명탐정 앞에서 말이지요. 아무리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벌인 범행이라 하더라도 너무 무모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전작보다 규모가 커졌음에도 이야기의 짜임새와 특히 추리적인 완성도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전편만 보셔도 될 듯 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