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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28

유홍준의 국보순례 - 유홍준 : 별점 4점

유홍준의 국보순례 - 8점
유홍준 지음/눌와


유홍준 교수가 “유홍준의 국보순례”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모아 출간한 책. 우리가 알고 있는 국가지정 "국보"의 개념이 아니라 저자 기준의 국보더군요. 덕분에 잘 알지 못했던 다양한 문화재들이 많이 실려있습니다.

크게는 그림과 글씨, 공예와 도자, 조각과 건축, 그리고 해외 한국 문화재라는 4개의 주제로 구분된 총 100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장점이라면 그야말로 한국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문화재를 저자의 짧지만 재미있고 알찬 글과 뛰어난 도판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죠. 도판은 정말 뛰어납니다!

모든 이야기들이 읽어볼만하고 의미 있습니다만 기억에 남는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026 수자기와 바리야크 깃발 : 이른바 "약탈" 문화재에 대한 반환을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네요.
034 백제 금동대향로 : 개인적으로 국내 문화재 중 최고급 문화재라 생각하는 것이기에 더 인상적! 도판이 정말 예술이에요.
037 익산 미륵사 출토 금동향로 - 038 발해 삼채향로 : 디자인적인 멋도 멋이지만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은 발해 삼채향로와의 관계가 흥미롭더군요.
040 백제 자단목바둑판과 상아바둑알 : 너무 예쁘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인 작품. 일본에 있다는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085 기메동양박물관의 철조천수관음상 - 국내에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밀교풍 디자인. 처음 보는 것이라 신선했어요.
095 브런디지 컬렉션의 고려청자 - 제가 본 고려청자 중 가장 디자인이 압도적인 작품. 이 디자인 그대로 재질을 바꾸어 대량생산해도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고려시대에 이런 수직 - 수평을 활용한 조형미에 디테일한 장식이 결합된 작품이 나오다니 정말 우리 문화의 깊이는 끝이 없네요.

그러나 읽기 편하고 부담없는 대신 깊이 측면에서는 약간 아쉽기도 했습니다. 저자의 다른 책 (예를 들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에서 보아왔던 해당 주제에 대한 깊이있고 박식한 설명이 이어지는 글도 몇편 정도는 실려있어도 괜찮았을텐데 말이죠.

그래도 장점이 너무나 확실하기에 별점은 4점. 이런 책을 소장하지 않으면 무슨 책을 소장하겠습니까. 딸아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갈 날이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빨리 크렴~

2014/01/27

세계대전 Z - 맥스 브룩스 / 박산호 : 별점 3점

세계대전 Z - 6점
맥스 브룩스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브래드 피트의 영화 <월드워 Z>의 원작소설. 좀비관련 소설은 딱히 관심이 없었지만 나름 유니크한 책이었던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의 저자가 쓰기도 했고 평도 좋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무려 5년전인 2008년에 출간되었으니 좀 늦은 감은 있습니다만...

이 책의 장점이라면 무엇보다도 단순한 크리처물이 아니라 일종의 재앙물로 접근하고 있는 점, 그리고 "논픽션" 스타일의 인터뷰 중심 전개로 큰 현실감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대공포"라고 불리우는 좀비의 창궐과 그 이후 벌어진 극심한 혼란, 그리고 마지막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장대한 과정을 거의 전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인터뷰어를 등장시켜 전개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극적인 효과가 더 크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습니다. 피난 행렬이 엄청난 교통 체증을 유발한 고속도로를 좀비들이 덥치는 과정에 대한 증언, 캐나다의 겨울을 이용하여 피난하려는 생존자들이 인육을 먹게되는 과정에 대한 증언, 인도 히말라야의 교통로 차단작전과 작전의 성공으로 끊긴 도로로 좀비들이 몰려와 절벽 밑으로 떨어지면서 물소리같은 - 뚝뚝뚝 - 소리가 들린다는 증언 등이 그러하죠. 인터뷰어의 증언이 아니라 일반적인 소설의 묘사 방식이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와 닿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또 작가가 나름 크리처를 상대로 한 위대한 전쟁이라는 주제를 시니컬한 유머로 변주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에요. 대표적인 것은 미국 대통령이 UN본부 회의에서 좀비에 대한 공격을 천명하며 감동적인 연설 - 인류로 돌아가는 길고 힘든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지구 상에서 한때 자부심에 넘쳤던 영장류의 퇴행성 권태를 택할 것인가? 그게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고, 지금 당장 해야하는 선택이다 - 을 하지만 그것을 들은 인터뷰어가 "전형적인 백인들의 헛소리. 궁둥이는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별을 잡아 보겠다고 용을 쓰는 꼴. 이게 만약 백인 영화였다면 얼간이 몇 놈이 일어나서 천천히 박수를 치고, 거기에 화답해서 나머지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쳐 대고, 누군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식의 인위적인 개지랄을 보겠지만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간 제가 느껴왔던 감동이 백인 중심의 인위적인 개지랄이었다니 입맛이 좀 쓰네요.)
그 외에도 다양한 국가가 등장하여 전체적인 세계 정세를 가상 역사 SF 처럼 펼쳐나가는 것도 꽤 흥미를 돋구는 부분이에요. 미국 중심이기는 하나 그래도 다른 국가들에 대한 안배도 공평한 편이거든요. 관련 자료는 인터넷에도 많이 등장하기에 구태여 소개드리지는 않습니다만 한국이 등장한다는 점, 그 중에서도 북한은 인구마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잠잠한, 이른바 "땅굴도시" 속 좀비국가가 되었으리라 하는 부분은 좀 오싹했어요. 쿠바가 지형적 잇점을 활용하여 완벽하게 좀비와 격리되어 최고의 부국으로 성장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었고요.
마지막으로 인터뷰어들이 비교적 평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아주 이색적이면서도 작품의 현실성을 높여주는 장치였던 것 같습니다. 한 생존자가 동네청년 총각파티를 해 주기 위해 유일하게 동작하는 DVD 플레이어와 포르노를 몇편 구했는데 러스티 캐넌이 회백색 BMW Z4위에서 벌이는 정사장면을 보고 "와우, 이런 차는 더 이상 안 만들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장면은 정말 최고였어요!

그러나 단점도 존재합니다. 가장 큰 단점은 뭐니뭐니해도 좀비의 위험을 너무 과장되게 그렸다는 점이죠. 과거 그 어떤 전투와 전쟁에서도 압도적인 무기의 존재는 병력수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이 증명되었는데 무기와 전술이 "없다시피" 한 좀비와 초현대식 무기로 맞서싸운 모든 전투에서 패배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고립된 건물이나 지하와 같은 특수장소도 아니고 평원에서의 전투에서 그러한 결과는 사실 말도 안돼죠. 이 점은 엔위하키 미러의 6.1 현대 무기의 과소평가와 일치하니 참고하세요.
아울러 좀비가 사람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생명체에게 달려드는데 다른 생명체 (쥐라던가 개라던가..)는 왜 좀비가 되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도 의아한 부분입니다. 생명체 전부에게 좀비 바이러스가 전염되었더라면 인류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텐데 너무 대충 넘어간 것 같아요. 좀비의 목적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라면 결국 어느 정도 이상 좀비가 불어나면 더 좀비가 되는 사람은 없지 않나? 라는 의문도 마찬가지고요. 왜냐하면 살점은 다 뜯어먹힐테니....
또 무의미하달까... 늘어지는 분량도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레데커 플랜같은 경우 꽤나 비중있게 등장하지만 잔인하고 이기적인 생존본능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 외에는 등장하나 안하나 별 차이는 사실 없어요. 전쟁에서 이런 이야기가 드문것도 아니잖아요? 당장 우리만 해도 6.25 때의 한강 인도교 폭파와 같은 좋은 사례도 있고 말이죠. 뭐 최악은 뭐니뭐니해도 일본의 "방패회" 관련 서술이지만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추천작. 단점이 없는건 아니지만 재미 하나만큼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작품임에는 분명하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킬링타임용 독서로는 이만한 선택도 드물 것 같기에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 특히나 좀비에 대해 관심있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와 함께 읽으면 더욱 큰 재미를 느끼실겁니다.

2014/01/25

오무라이스 잼잼 - 조경규 : 별점 2점

오무라이스 잼잼 - 4점
조경규 글.그림/씨네21북스


국내 요리만화 중에서는 첫손가락에 꼽는 웹툰 오무라이스 잼잼의 출판버젼.
웹툰 연재물은 한회도 빼먹지 않고 챙겨보는 나름 팬이라 자부합니다만 출판버젼은 가격이 꽤 쎈 편이라 구입을 주저가 되더군요. 그런데 이번에 알라딘에서 20% 할인을 하길래 충동구매를 하게 되었네요.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성비가 영 꽝이거든요. 제값주고 샀더라면 정말 돈이 아까웠겠구나 싶을 정도에요. 이유는 만화는 인터넷으로 언제 어디서든 무료로!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뭔가 부가적인 다른 요소가 있었어야 하는데 거의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죠. 에피소드별로 곁가지로 이런저런 것들이 삽입되어 있기는 한데 대부분 분량도 1,2페이지에 그칠뿐더러 그닥 색다르거나 재미있는 것들은 없습니다. 등장 요리에 대한 사진이나 관련된 맛집 탐방류의 정보, 예를들면 일본의 카스테라 맛집이나 을릉도 먹을거리 기행은 인터넷에 넘쳐나는 이야기이고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과자라던가 컵라면의 짤막한 역사, 활명수병의 변천사 같은 것들은 솔직히 왜 실려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딱히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료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약간 실려있는 한페이지짜리 일상툰도 재미와 정성 모두 기대 이하였고 말이죠.
그나마 마음에 든 것은 샌드위치 편에 소개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와 "엘비스 샌드위치"레시피를 만화로 그려준 것 정도에 불과합니다. 샘 초이의 파인애플 스팸같은 스팸요리 부록이나 대만 팥빙수 이야기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한페이지로 너무 짧고 무엇보다 그닥 맛있어 보이지 않아서.... 예전 작가의 다른 대표적 <팬더 댄스>에서 하와이 스팸요리편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러한 에피소드를 엮어 책으로 출간하려는 시도는 보여줬어야 할 것 같네요.

또 웹툰 대비 단행본의 볼륨이 많지 않아 보이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웹툰 특성상 여백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단행본에 맞게 좀 더 꽉 짜여진 편집을 할 수는 없었을까요? 왠지 페이지를 늘리기 위한 아이디어가 전편에 넘쳐나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소소한 일상을 요리와 엮어 전개하는 솜씨와 작품 전체에 흐르는 잔잔한 분위기, 그리고 탁월한 음식 그림 등 좋은 요소가 많기는 하나 이 돈을 주고 구입할 가치는 솔직히 느끼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래서야 후속권을 구입해서 읽을 일은 없겠죠.
그나저나 이놈의 충동구매를 자제 좀 해야 할텐데...

2014/01/24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사건 추적 - 표창원 : 별점 3점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사건 추적 - 6점
표창원 지음/지식의숲(넥서스)

국내 사건 중 유명햇던 사건들에 대해 소개하는 논픽션. 시사저널 연재물을 모아서 책으로 엮여 나온 것으로 연재물을 꾸준히 읽고 갈무리까지 한 저같은 독자에게 새로운 내용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한권으로 모아서 다시 읽었다는 정도?

그래도 한권의 단행본이기 때문에 지니는 장점도 많습니다. 먼저 표창원씨의 일관된 시각 - 범인은 엄정한 죄값을 치뤄야 한다는 것 - 을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미제사건인 제주도 여교사 사건 등을 재조명하여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천명한다던가 하는 부분이 그러하죠.
또 부산의 한 교수가 아내 살해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변호사를 동원해서 20년 형을 선고받은 것과 유명한 시체없는 사건의 피의자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이 대비되는 효과도 단행본이기에 지니는 장점이었다 생각됩니다.
연재물에서는 보지 못했던 짤막한 해외 사례 및 중간중간에 토막상식같이 들어간 표창원씨의 생각도 눈여겨볼만 하고요.

그리고 사건들도 미리 읽었다 뿐 다시 읽어도 그 가치가 반감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애 키우는 아빠라 그런지 유괴사건들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모든 사건에서 유괴 초반에 이미 아이가 살해 당했다는 것, 범인의 처음 의도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더라도 결국 아이의 칭얼거림이나 보챔 등의 행동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치닫게 된다는 분석 등이 인상적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유괴범은 괴물이 아니라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아이에게 교육을 정말 잘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로 유명한 지강헌 사건의 이유가 이른바 사회보호법때문에 556만원이라는 단순절도에도 무려 17년형을 선고받은 탓이 가장 컸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입니다. 저라도 미쳐버릴 형량이긴 하죠. 살인범도 한 20년형 선고받는게 고작인 세상인데.... 어떻게 보면 현대의 장발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어요.

그러나 약간 아쉬운 부분도 없잖아 있습니다. 사건의 주요 인물과 관계된 단체, 회사를 어떤 사건에서는 애매하게 등장시킨 부분인데 법률적인 문제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의아했거든요. 예를 들어 장영자 사건에서 사위와 며느리인 탤런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 같은건데 인터넷 좀 뒤져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라 구태여 숨길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아울러 사건의 범인들의 현재까지 취재하여 엄정한 심판이 이루어졌는지, 관계자들의 근황은 어떠한지까지 알려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이미 출소하였을 윤금이 사건의 범인인 케네스라던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있는 수지킴 사건의 윤태식의 근황은 궁금하더라고요. 윤태식의 경우는 얼마전 여대생 청부살해 사모님과 같이 편안한 징역생활을 하고나 있지는 않은지 걱정도 되니까요.

여튼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범죄를 다룬 논픽션 중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좋은 책으로 범죄, 사건을 다룬 논픽션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그 중에서도 이 글들을 아직 다른 매체로 접하지 않으신 분들께는 추천드립니다.

2014/01/22

당신의 판결은 - 모리 호노오 / 조마리아 : 별점 3.5점

당신의 판결은 - 8점
모리 호노오 지음, 조마리아 옮김/말글빛냄

도쿄 등에서 판사로 재직한 뒤 현재 변호사로 재직 중인 저자가 여러가지 소설과 영화 속 사건에 대해 현실 법정에서의 판결이 어떨지를 설명하면서 형사 재판의 큰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책. 유명한 소설 - 영화 속 등장 사건에 대한 정리와 해당 사건에 대한 현실 법정에서의 판결 및 구형과 그 이유를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작을 몰라도 내용에서 원작의 내용과 핵심 사건을 상세하게 소개해주기 때문에 읽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도진기 작가의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와 굉장히 유사한 컨셉이죠. 그러나 <성냥팔이 소녀는...>은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유치한 설정과 소설적인 전개 때문에 많이 감점했는데 반해 이 책은 실제 소설과 영화 속 사건이 실제로는 어떻게 판결이 내려질지를 굉장히 담백하게 아무런 치장없이 깔끔하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에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성격적으로는 금태섭 변호사의 <확신의 함정> 쪽에 더 가깝달까요? 물론 <확신의 함정>은 판결 중심이 아니라 개인적인 에세이 중심이라 역시 이 책 쪽이 더 낫다 싶긴 합니다.

여튼, 전부해서 24건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데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내용 몇가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격돌> - 우연히 거대 트럭에 쫓기게 된 주인공 데이비드가 격렬한 추격전 끝에 트럭을 벼랑 아래로 떨어트린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초기작.
이 사건에서 데이비드는 명백한 살인의도, 즉 확정적 살의가 있기에 살인죄가 적용된다고 합니다. 생명이 위험했던, 방어에 적합한 행위라는 것을 입증하기 불가능하고 상식적으로는 서로 차에서 내려 이야기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라네요.
그래서 판결은
1. 계획적 살인에 해당
2. 피해자 잘못도 존재
3. 고의성 있던 확정적 살인.
즉, 피해자에게 잘못이 인정되는 계획적 살인으로 고의성 있는 확정적 살인. 징역은 10년 정도 구형될 것이라고 합니다.

<태양은 가득히> - <리플리 1>의 영화버젼. 알랭 들롱의 꽃미모가 폭발하는 고전 명작이죠. 친구 톰을 죽이고 그의 행세를 하면서 재산과 심지어 애인까지 가로채는 리플리의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여기서 피해자의 물건을 횡령하고 처분하는 정도라면 생전에 자기에게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피해자 행세를 한 것은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합니다. 혐의도 상해지사와 살인 중 살인에 가까워지고요. 고의적 상해라면 보통 그 사람 행세는 하지 않기 때문이죠. 피해자와 알고 지내던 사람이 피해자와 실제로 만나본 후 증언하지 않으면 존재 증명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결국 톰 행세를 한 것도 법정에서는 밝혀지기 마련이고요.
단, 열받아서 죽인 후 금품을 취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면 강도 목적임을 증명하기는 어렵고 범행을 완전히 부인하면 살인 입증도 힘들다고 하니.. 일단 끝까지 우겨볼 일입니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 소설로도 유명한 작품이죠.
알리바이는 어떤 불리한 증거가 있더라도 입증만 되면 무죄가 되는 극적인 효과가 있는 마술봉같은 존재! 그러나 그 외의 경우는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되지 않는답니다.

<재와 다이아몬드> -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영화던가요? 영화는 본 적이 없는데 테러리스트의 테러에 대한 판결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실제 재판에서는 계획성에 금전목적이 더해진 경우에만 사형이 적용되기에 테러리스트나 암살자라도 한명밖에 죽이지 않았다면 사형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쉽게 말해서 사람을 죽여도 한명이라면 사형을 선고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일본 기준이겠지만요.
그리고 쇼와 초기 1인 1살인을 신조로 정치권 주요 인물 암살을 실행한 혈맹단 사건에서 실행한 단원 두명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특사로 석방되어 성공한 인생을 보낸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출판사 사장과 도의원이 되었다고 하네요)

<네 멋대로 해라> - 저는 고다르의 원작이 아니라 후대에 리메이크된 리차드 기어의 <breathless>를 봤습니다. 막사는 주인공이 경찰을 총으로 쏴 죽인 뒤 벌어지는 폭주를 그린 작품이죠.
그런데 경찰을 죽였다고 사형이 구형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단지 속설에 지나지 않는다는군요. 물론 무기징역과 같은 중형을 선고받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작품에서 미셸의 범죄는 즉흥적이기에 총기 사용을 고려하더라도 징역 17 ~18년 수준일 것이라고 결론내립니다.

<적과 흑>
줄리앙 소렐이 레날 부인을 쏜 죄는 실제로는 징역 10년 이하 정도, 이유는 피해자가 상처만 입었지 사망하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살인죄가 아니라 살인미수죄죠. 작품에서도 금새 회복되는 것으로 묘사되고요.
살인미수는 피해자에게 생긴 상처의 정도와 범행이 생명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었는지 두가지 사항에 따라 결정되는데 전자는 결과, 후자는 행위의 위험성이라는 것이죠.
즉, 줄리앙 소렐의 범죄는 결과는 중간정도의 상해이고 행위의 위험성은 통상적이지 않은 흉기(총)로 평균적인 징역보다 약간 높은 징역 8~9년 정도라고 합니다. 치정사건은 재판에서 감형돠는 경향도 있고요. 감정이 격해져 냉정함을 잃은 상태라는 것이 참작된다는군요. 줄리앙 역시 자신의 출세길을 막은 전 연인에 대한 분노로 벌인 범죄니까요.

그러나 소설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인 베르테 사건은 반대로 베르테가 불행의 원인을 미슈부인에게 돌리며 협박성 편지를 보내고 총을 쏜 것으로 재판에서 불륜관계였음을 폭로하나 평소 미슈 부인은 정숙하고 평판이 좋아서 베르테를 동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져서 호의를 원수로 갚은 것이라 형은 더 무거워 졌다고 합니다. 호의를 원수로 갚는 범행은 범행의 집요성이 높다고 판단되기 때문이죠.

<제3의 사나이> - 로로가 범죄자로 변해버린 친구 하리를 사살한 것이 유죄인가?
현실에서 일반인의 범죄자 체포는 현행범 체포에 한해서라고 합니다. 법률적으로는 사립탐정이 수사를 하고 범인을 찾아내서 체포하는 것도 안되고 체포하면 역으로 체포죄라는 범죄가 된다는군요. 미행도 집요하게 하면 범죄이고요 (경범죄법 위반)
물론 경찰과 협력했을 경우는 좀 더 넓은 범위가 허용되기는 해서 통상 체포도 가능하기에 로로의 행위도 인정될 수 있고 첫발은 하리가 쏜 총에 맞은 경찰이 쏴!라고 해서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쓰러진 하리를 향해 쏜 두번째 발은 절대로 인정되지 못한다네요. 경찰이라고 해도 용서받지 못하는 일. 로로는 살인죄로 기소되어야 마땅하답니다. 소설에서처럼 '이 일은 모르는 일입니다'로 끝날 일은 절대로 아니라는거죠.

<용의자 x의 헌신>
여기서의 범행은 전 남편에 대한 과잉방어 살인인데 형량은 평균 6~7년입니다. 그러나 가정폭력, 스토킹 등의 상대방의 행위가 있다면 형은 더욱 내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일이 드물지 않다네요.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전 남편 살인은 집행유예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고요. 아울러 중학생 딸은 형사재판에 부쳐지지도 않고 가정재판소의 조치로 끝날 일이라 불기소처분으로 끝날 공산이 큰 상황.
그러나 수학교사 x가 뒤이어 저지른 범행은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고 독선적이고 편집정인 행동으로 유기징역의 상한인 20년형이 예상되며 모녀 역시 사체 유기죄가 성립되고 (공모공동징발) 엄마가 경찰서에 출두해봤자 뒤늦은 것이라 자수도 성립되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한 삽질이라 할 수 있는 결과라 합니다. 용의자 X의 삽질! 옆집에 수학교사가 아니라 변호사가 살고 있었어야 했어!!!

대충 이 정도만 정리했지만 이외의 이야기들도 유익하고 재미난 것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3.5점입니다. 판결의 기준이 일본 기준이라는 것 때문에 약간 감점하지만 재미와 더불어 형법과 판례에 대한 유익하고 기본적인 지식까지 알 수 있는, 그야말로 두마리의 토끼를 한번에 잡게 해 주는 보기드문 책이죠. 제가 원했던 스타일의 책으로 이런 류의 법률 상식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한국 판례를 응용한 한국 버젼이 나와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4/01/21

꽃밥 - 김화성 : 별점 3점

꽃밥 - 6점
김화성 지음, 오금택 그림/동아일보사

춘,하,추,동 4계절로 구분하여 계절별 제철 음식을 안도현, 백석의 시에서 신해철의 노래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인용문들과 함께 재료별, 음식별로 유래와 역사, 간단한 레시피 및 유명 식당, 그리고 맛의 감상을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는 일종의 음식 에세이.

음식에 대한 소개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정보가 전해지는 것이 볼거리인데 예를 들면 풍천장어 (風川長魚)의 풍천은 특정지방의 지명이 아니고 물이 풍부한, 바닷물과 바람을 몰고온다는 의미로 민물과 바닷물이 먼나는 강 하구는 어디나 풍천이라고 하네요. 또한 현재 대한민국에는 풍천장어는 없고 양식 민물장어만 있으므로 굳이 산지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것, 갯장어는 바다장어인데 개의 이빨을 가진 뱀장어 (자산어보) 라서 갯장어라고 한다는 것 역시 처음 안 사실이고요. 마지막으로 장어의 한자는 만 (鰻)인데 이 글자는 고기어(魚), 날일(日), 넉사(四), 또우(又)를 조합한 것으로 남자가 장어를 먹으면 하루에 섹스를 네번 하고도 또 하고 싶다! 라는 뜻으로 옛날 중국에서 그렇게 한자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장어이야기만 해서 좀 그렇긴 한데 다른 이야기들도 재미있는게 많습니다.

그 외에도 기자다운 약간의 비판정신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현세대가 갈치를 제대로 발라먹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어른들 책임, 아이들 밥상머리 교육보다는 돈에만 매달린 탓이라고 하는 식으로요. 솔직히 동아일보 기자에다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글이라고 해서 선입견이 있기는 했는데 전체적인 내용이라던가 마지막 피맛골의 사라진 가게를 소개하는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시통"이라는 술집에 관한 에피소드 등에서 상당히 공평한 시각을 느낄 수 있던 것도 괜찮았습니다. 하긴 요리에 무슨 좌, 우익이 있겠습니까만은....

문제는 신빙성이 좀 떨어지는 항목도 있다는 점인데 왜 홍어좆은 만만한가를 설명하는 부분이 그러해요. 홍어 명인인 나주 영산포의 안국현씨에 입을 빌어 옛날 가난한 어민들이 막걸리잔을 기울일때 변변한 안주가 없어서 손대도 표시 안나는 만만한 수컷 좃을 떼어다 안주로 삼았다, 길이 20~25 cm나 되는 홍어 좃 2개를 썰면 안주 한 접시는 나오고 맛도 좋았다. 그만큼 만만했다... 라는 이론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솔직히 이상하더군요. 그렇게 맛이 좋다면 진작에 팔았겠죠.
뜬금없는 비약도 있고 인용문의 비중이 큰 등 하나의 완성된 글로 보기에 약간 부족한 듯 싶은 것도 있고요.

그러나 그야말로 향토 음식과 식재료를 단순한 레시피나 식당소개 중심이 아닌 그 자체만으로 토속적이면서도 맛깔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추천할만한 책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바지락국
소금으로 간을 하고 물이 팔팔 끓을때 바지락을 넣는다. 여가에 파와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넣고 부추, 콩나물을 취향따라 넣어 먹는다. 위에 떠오르는 거품은 숟가락으로 걷어내는게 좋다.

도다리쑥국
남해안 사람들의 이른 봄 음식. 육수에 된장풀고 도다리 넣어 끓인 뒤 마지막에 어린 해쑥을 넣는다. 양념을 많이 쓸 수록 쑥 향기가 사라지기 때문에 되도록 넣지 않는다. 쑥은 도다리가 완전히 익은 뒤에 넣어야지 너무 일찍 넣으면 쑥이 풀어지고 향이 사라진다.
육수는 보통 무, 다시마, 대파를 푹 끓여 만들지만 멸치를 넣는 집도 있고 육수대신 쌀뜨물만 쓰는 집도 있다. 도다리쑥국은 통영이 최고.
참고로, 통영은 다른 맛있는 음식도 많다. 멍게비빔밥은 멍게젓갈에 새싹, 김가루, 깨 등을 섞어 밥과 비벼 먹는다.

꽃게탕
쌀뜨물 다시마 무 멸치로 국물을 낸 뒤 된장과 고추장을 1:2 비율로 풀고 꽃게, 감자, 애호박, 양파, 쪽파, 버섯, 고추, 오징어 등을 썰어넣고 끓인다. 양념은 고춧가루, 맛술, 마늘, 소금, 생강, 후추로 한다. 마지막에는 쑥갓, 미나리를 넣어 풋풋하고 상큼하게.

참게장

펄펄 끓인 묵은간장 (간장, 물, 다시마, 무, 양파, 마늘, 고추, 생강, 감초, 생지황)을 참게에 부어 삭힌다. 식으면 따라낸 뒤 다시 끓여 붓기를 최소 대여섯번 반복한다.

잔치국수
국물이 생명. 멸치에 다시마, 무, 대파, 바지락, 북어머리 등을 넣고 푹 우려냄.

2014/01/20

몰타의 매 - 대실 해밋 / 김우열 : 별점 4점

몰타의 매 - 8점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열린책들


샘 스페이드의 탐정 사무소로 원덜리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이 찾아온다. 자신의 어린 여동생이 서스비라는 남자와 도주하였다는 것. 서스비를 찾아내 여동생을 되찾고 싶다는 의뢰였다. 동료 탐정인 아처가 의뢰를 맡고 서스비를 미행하지만, 밤사이 변사체로 발견된다. 더군다나 그가 미행하던 서스비까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상황. 경찰은 용의자로 스페이드를 지목하고, 그는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해 사건을 추적해 나간다. (책소개에서 인용)

대실 해밋의 샘 스페이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고전 하드보일드 추리장편. 무려 1930년 발표된 작품으로 하드보일드의 전형을 구축한 작품입니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읽어도 충분한 가치와 재미를 갖추고 있는 놀라운 작품이기도 하죠. 지니고 있는 명성이 쉽게 이해가 될 정도로 말이죠.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는 뭐니뭐니해도 시대를 앞서간 주인공 샘 스페이드에 있습니다. 마초이자 상남자에다가 나쁜 남자이기까지 하거든요. 파트너의 아내를 유혹해서 불륜을 저지르는데다가 쿨함이라고는 전혀없는 돈귀신으로 도움을 얻으려고 찾아온 여자에게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500달러를 악착같이 받아낼 정도죠. 거기에 더해 총으로 위협하는 악당들도 맨손으로 제압하는 완력, 경찰에게도 굴하지 않고 농담과 비야냥으로 받아치는 반골정신도 겸한, 그야말로 안티 히어로의 표본같은 캐릭터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묘사도 탁월해서 얼굴에 여러개의 V가 표시된다는 첫 등장 시의 묘사부터 독자를 사로잡고요.
등장 이후 단 한번도 진실을 말하지 않은 오쇼네시라는 팜므파탈 역시 추리소설사에 길이 남을 악녀로 스페이드와 함께 완벽한 컴비플레이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역사적 유물인 "몰타의 매"을 소재로 녹여낸 참신함과 "몰타의 매"를 찾는 보물찾기라는 내용은 이후의 하드보일드 작품에서 보기 드물었기에 돋보인 점이에요. 특히 몰타의 매의 유래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나름 그럴듯했거든요.
그 외에도 다른 하드보일드 작품들 같이 명대사가 난무하는 그런 문학적 간지는 별로 없지만 깔끔하고 간결한 문장도 인상적입니다.이야기 중간에 스페이드가 이야기한 일화, 한 사내가 우연히 죽을뻔한 뒤 아예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종적을 감춘다는 내용같은 부분은 뭔가 울림을 전해주더군요.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될만한 내공은 확실히 느껴졌어요. 

하지만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는 좀 애매하다는 것은 단점이긴 합니다. 하드보일드 추리물이 별다른 트릭이 없는 장르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트릭이고 뭐고 정말 전혀 없어요. 유일한 수수께끼는 서스비가 매 조각상을 어디에 감추었냐에 대한 것일뿐인데 이건 오쇼네시의 뒤를 쫓는다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는 것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딱히 스페이드가 등장해서 활약할 여지가 없습니다. 실제로 거트먼과 카이로는 스페이드의 도움 없이 매가 있는 곳을 찾아내는데 성공했죠.
전개도 속도감있고 빨라 독자를 몰입시키기는 하나 세세한 부분에서의 설득력도 부족합니다. 카이로가 스페이드를 찾아온 이유, 거트먼이 스페이드를 고용하려는 이유 등 스페이드가 사건에 엮이는 과정이 대표적이죠. 오쇼네시가 스페이드를 고용했기 때문이라 하더라도 생판 관계없는 사람을 끌어들이느니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그녀를 미행만 해도 충분했을테니까요. 하긴 오쇼네시가 서스비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스페이드를 끌어들인것 부터 설득력이 없으니... 아처를 쏴버린 것처럼 그녀 스스로 서스비를 쏴버리는게 제일 깔끔했을텐데 왜 이렇게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었을까요? 어차피 경찰도 그녀의 존재는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서스비가 과거 도박조직에 연루된 원한으로 살해된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는데 말이죠.
마지막에 스페이드가 경찰에 오쇼네시를 넘기는 것도 잘 이해가 안됐습니다. 스페이드가 그녀를 넘기지 않으면 바로 체포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을지 잘 모르겠거든요. 희생양은 거트먼 일당으로 충분했을것 같은데, 한명 죽이나 두명 죽이나....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추천작. 단점은 조금 있으나 사소할 뿐 이 바닥의 영원한 고전, 원전으로서의 가치와 재미를 유지하고 있는 보기드문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아직 읽지 못하신 모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덧 1 : 오쇼네시에게 교수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전기의자를 쓰지 않았었나요? 이 당시 하드보일드에서 흔히 이야기되는건 "싱싱 (형무소)"과 "전기의자" 인데 이 작품은 예외적이라 의아했습니다.
덧 2 : 샘 스페이드의 파트너가 마일스 "아처"라는 것이 좀 특이했습니다. 하드보일드 3대 탐정 중 한명인 "루 아처"가 바로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묘한 인연인데 로스 맥도널드가 루 아처 창작 시 이 점을 염두에 두었는지 좀 궁금하네요.

2014/01/15

3시의 나 - 아사오 하루밍 / 이수미 : 별점 4점

3시의 나 - 8점
아사오 하루밍 지음, 이수미 옮김/북노마드


저자인 아사오 하루밍 (浅生 ハルミン)이 2010년 1년간 매일 3시에 무엇을 했는지를 간단한 일러스트와 짤막한 문장으로 정리한 일종의 그림일기 / 에세이집. <と/to - 小泉 誠>를 통해 이미 따뜻하고 푸근한 그림을 접한 적이 있는데 고양이 관련 블로그와 책으로도 꽤 유명한 작가더군요.

여튼, 부담없고 가볍다는 점도 좋고 정감넘치고 따뜻한 그림도 좋은 에세이집으로 굉장히 독특한 사고방식이 엿보이는 것도 재미요소입니다. 뭐 이런 책을 내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은 아니겠지만요. 예를 들자면 친구가 만들어준 미트소스 스파게티가 먹고 맛있어서 물어봤더니 재료가 전부 너무나 비싼거더라, 엄마가 유명 여배우인 아이는 늘 이런 음식만 먹는지도 모르겠다, 비일상적인 일상의 식사였다고 평을 한다던가, 이시이 모모코의 <팀 래빗의 모험>에서 "함께 춤을 췄습니다"라는 구절이 특히 좋은데 전후로 '춤'에 대한 이야기가 한번도 나오지 않다가 갑자기 추기 때문이라고 감상을 남기는 식이에요. 아래의 직접 만든 아이패드도 그러하죠. 아 귀엽다!

또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다는 점도 아주 공감이 가는 점입니다. 이 책에 등장한 책만 따로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나게 소개하고 있기도 한데 소개된 대표적인 책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조사해보니 국내 출간된 책은 역시나 거의 없네요.
그림작가 사사메야 유키의 <14분의 1의 달> (국내 미출간 / 구하려면 구할 수 있음)
니콜슨 베이커의 <메자닌> (국내 미출간 / 같은 작가로 보이는 작가의 다른책도 꽤 흥미로움)
히라마쓰 요코 <장어라도 먹을까?> (국내 미출간)
사카자키 시게모리 <도쿄 요리 골목 평판기> (국내 미출간)
가와바타 야스나리 <아사쿠사 베니단 (淺草紅團)> (국내 미출간 / 구하려면 구할 수 있을 듯)

결론적으로는 추천작. 별점은 4점입니다. 평화롭고 잔잔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에세이집입니다. 따뜻한 그림과 잔잔하면서도 약간 기묘한. 책 속 글귀를 빌자면 비일상적인 일상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고양이를 좋아하신다면 더욱 마음에 드실겁니다.

덧붙이자면, 솔직히 간단하고 쉽게쉽게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간단한 일러스트라도 의뢰받은 내용을 어떻게든 잘 전달하려는 고민을 깊게 하더군요. 왠지 죄송스럽습니다...

2014/01/14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 - 모리 아키마로 / 이기웅 : 별점 2점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 - 4점
모리 아키마로 지음, 이기웅 옮김/포레


"내가 하려는 건 미적 추리이고, 그에 따라 나타난 진상이 미적이지 않으면 내 관심은 그 시점에서 소멸될 거야."

미학이 주요 테마인 독특한 일상계 추리연작 단편집. 제 1회 애거서 크리스티 상을 수상하였다고 하네요. 사실 이런 책이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국내 최고의 추리애호가 사이트인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 중인 "2013년 올해의 추리소설" 이벤트에서 몇몇 분들이 언급하였길래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미학전공자인 탐정이 등장하여 "미학 강의"를 이야기의 뼈대로 삼고 있다는 점이죠. 이야기를 다른 무언가와 절묘하게 겹쳐서 진행하는 작품은 일상계 연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지만 (예를 들어 "고서"가 주제인 <비블리아 고서당>시리즈, "호텔"과 손님들이 중심인 <매스커레이드 호텔>등등등...) "미학"이라는 주제는 정말 처음 봤습니다.
단지 독특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학이론을 일상계 추리물 속에 결합하여 녹여낸 솜씨도 아주 돋보였어요. 화자인 "나"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에드거 앨런 포라는 설정이기에 포의 작품을 중심으로한 여러가지 미학적 분석과 이론이 등장하는데 실제 사건이 이러한 이론들과 엮여 나가는 과정이 제법 괜찮거든요. 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싶은 기막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 작품이에요. 실제 통하는 이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에 등장하는 검정고양이의 미학 이론과 논리 역시 읽으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 정도로 그럴싸해서 미학이론에 대한 현학적인 재미도 충분히 충족시켜 주고요.
그 외에도 "검정고양이"라는 별명 외에 탐정역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화자역의 이름 역시 등장하지 않는 것도 특이했습니다. 추후 서술트릭에 써먹으려는 장치일까요?
아울러 특이한 탐정, 천재탐정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지만 "미학"을 전문으로 하는 교수 탐정 역시 이 작품이 처음이었어요. 뭐... 미학전공이라는 것을 빼면 탐정 자체의 캐릭터는 천재 학자이자 잘난척 덩어리로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시니컬한 대사로 똘똘 뭉쳐있는 점에서는 임상 범죄 학자 히무라 히데오나 갈릴레오 유가와가 바로 연상되는 캐릭터라 별로 차별화되지는 않습니다만...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첫 두편 이외의 나머지 네편은 추리적으로나 이야기 전개가 모두 미흡하다는 점이죠. 미학이론과 추리가 제대로 조합되지 않은 탓으로 솔직히 이후의 시리즈가 기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독특한 설정을 지속적으로 끌어나가기에는 힘이 딸리는 느낌이었어요.

때문에 전체 별점은 평균해서 2점... 앞의 두편은 미학이론과 추리의 결합이 잘 이루어진 좋은 작품들로 별점 3점 이상은 충분한 작품들입니다만 뒤의 네편이 점수를 모두 깎아먹네요. 그래도 앞의 두편만큼은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독특한 일상계 추리물을 찾으신다면 정답일 수도 있겠습니다. e-book으로 팔던데 이 작품만큼은 각 단편별로 별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나저나 이거 다음권을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달과 나의 거리>
"나"가 어머니의 정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기이한 지도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내용으로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다케토리 이야기>의 원제는 <다케토리옹 이야기> 였는데 이야기 자체가 달과 인간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제목이 바뀌었다던가, 나폴레옹 3세가 고용한 오스만 남작이 파리에 가스등을 전면으로 도입하며 "예술의 학살자"임을 자처한 이유는 달을 대체하여 달의 주민을 파리에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던가하는 눈이 휭휭 돌아가절 정도의 현학적인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거의 강의에 가깝게 말이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미학 강의가 저에게는 아주 재미있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지도의 수수께끼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지도에 관계된 두 학자의 전공분야가 앞서 자세하게 설명한 이론과 딱 들어맞고 진상 역시도 합리적으로 설명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고요. 암호로서의 가치도 없는 기이한 지도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징표가 된다는 것은 와닿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전체적인 짜임새와 완성도는 좋았고 무엇보다도 미학이론과 일상계 추리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아이디어가 잘 구현된 작품으로 새로운 시리즈의 도입부로는 충분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벽과 모방>
3년전 "나"와 검은고양이가 처음 만나게 되었던 세미나 팀에서 여름 휴가를 계획한다. 장소는 팀원 중 한명인 세키마타의 가루이자와 별장. 그러나 세키마타는 팀원들이 방문한 날 기이한 행동을 보인 뒤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다.

세키마타의 자살 원인을 분석하는 추리와 작품을 관통하는 바그너와 니체의 "벽" 이론이 절묘하게 결합된 작품. 일본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서양에서는 말하는 벽은 공포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 기본 개념의 붕괴- 는 것, <검은 고양이>에서의 벽을 해석하는 이론, "모방"과 "카피"의 차이 - 모방은 정신과 행위에 관한 개념이지만 카피는 완성된 결과만을 지향하는 것 - 를 설명해 주면서 이 개념이 이 사건에 깊게 얽혀있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것 등이 아주 좋았습니다.
세키마타의 모방 행위는 분명히 비정상적인 것이라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긴 하나 미학과 추리를 절묘하게 엮어나가는 내용이 기존에 알고있던 추리소설의 상식을 깨는 멋진 작품이었어요. 강의가 지나치게 장황하지 않아서 이해하기 쉬우며 적절한 길이로 마무리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물의 레토릭>
연인이 동반자살로 의심되는데 여자가 사용한 향수의 향기가 이후에도 떠돈다는 괴담(?)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인데 일단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와 사건을 엮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습니다. 물 - 여성의 시체라는 모티브 외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거든요. 미학강의와 일상계 추리를 엮는다는 설정에 지나치게 지배된 느낌이에요. 사건도 오해와 잘못된 증언이 결합된 것일 뿐 사건성이 전혀 없는 내용이었고요. 또 우연과 작위에 의한 전개가 많다는 것도 감점요인입니다.
모든 면에서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숨기면 꽃>
검은 고양이가 이전에 알고 있던 여류학자 이구스가 실종되어 그녀의 행방을 쫓는 이야기.
작중에서 <도둑맞은 편지>와 말라르메의 <주사위 던지기>를 주로 강의하고 있지만 내용에 비하면 거창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알맹이는 별거 없는데 포장만 요란한 종합선물세트같은 작품이었달까요. 진상도 딱히 설득력이 없어서 전혀 와닿지 않았어요. 머리를 깎았다고 해서 딸을 못 알아볼 부모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눈이 안 좋다고 해도 저같으면 목소리로 알아볼 수 있을거라 자신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두개골 속에서>
5년전 혜성처럼 데뷰했으나 데뷰작 이후 사라져 버린 천재시인 시조 도미아키의 데뷰 5주년 기념 파티에서 그의 신작이 낭독된다. 그리고 그와 동일인물임을 의심받던 영화감독 에즈미가 자살하는데...

<황금충>을 리그랜드와 황금충이 서로에게 침입했다고 설명하는 미학강의만큼은 재미도 있고 괜찮았지만 문제는 위의 이야기들과 동일합니다. 그것은 바로 미학강의가 시조 도미아키와 에즈미 감독의 죽음을 설명하는데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고 억지스럽기만 했다는 것이죠. 사디즘 - 마조히즘의 관계처럼 에즈미는 관능 속에서 생을 긍정하는 반면 시조는 그로테스크한 모티브 속에서 유머러스하게 죽음을 긍정한다는 정 반대의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부연 설명만으로 이야기 전개는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검은 고양이의 누나 레이카가 제대로 설명만 해 주면 애시당초 사건이 될 수도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역시나 설정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무리수를 둔 작품이랄까요... 별점은 1.5점. 내용보다는 미학강의가 더 좋아서 완벽하게 주객전도된 느낌입니다.

<달과 왕>
한 노교수의 죽음, 그리고 그와 젊은 여류학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단편.
포의 <까마귀>가 그리스 음악적인 시라는 것, 여기서 까마귀의 "Nevermore"는 악기를 의미할 수 있다는 등의 현란한 미학 강의만큼은 볼거리이며 작중 등장하는 그리스 연극 <쫓는 왕>과 작중 사건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설정도 꽤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 전혀 건질게 없다는건 문제죠.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렇지 바로 앞의 사람이 소리를 내는데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골전도"를 응용한 발성법이라는 불필요한 설정 역시 불필요한 사족으로 보였습니다. 어치피 말도 안되는 것, 선하나 더 긋는다고 뭐가 달라지는건 아니죠. 선글라스를 끼면 신호등이 푸른달로 보인다는 마지막 이야기도 만화적이라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이전의 막장 작품들보다는 내용면에서 설득력도 있고 결말부분에서 나와 검정고양이 관계의 진전을 암시하는 달달한 전개도 나쁘지는 않아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14/01/13

민들레 소녀 - 로버트 F 영 / 조현진 : 별점 3점

민들레 소녀 - 6점
로버트 F. 영 지음, 조현진 옮김/리젬

전부 1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SF 단편집.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3>을 읽고 읽게 되었습니다. 뭐 도저히 안 읽을 수 없게 소개를 해 놔서... 도대체 그 소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참고로 <비블리아..> 이전에 일본 애니메이션 <클라나드>에서 비중있게 언급된 것이 계기가 되어 국내에 번역 출간된 것으로 해설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본 SF 쪽에서는 그만큼 잘 알려진 작품이라는 뜻이겠죠? 

여튼 각설하고, 이 책의 가장 대단한 점은 넓은 장르범위를 커버한다는 점입니다 . 작품의 폭이 넓은 작가야 스티븐 킹 등 이쪽 분야에서는 널리고 널렸습니다만 모든 장르 자체를 섭렵하여 넘나드는 작가는 보기 드물죠. 킹의 코미디야 있을 수 있다고 쳐도 달달한 러브스토리는 쉽게 연상이 되지 않잖아요?
그러나 이 단편집은 러브스토리에서 시작해서 코미디, 풍자극, 정통 SF, 쇼트-쇼트 스타일 꽁트 등 다양한 장르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떤 작품에서는 젤라즈니의 문학적인 SF가 연상되고 어떤 작품에서는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가 연상되고 어떤 작품에서는 아시모프의 묵직한 종교적 SF가 떠오르고 어떤 작품에서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블랙 유머나 "기묘한 맛"이 연상되는 식이에요.
구태여 분류하자면 달달하고 잔잔한 사랑이야기이자 딱 한번 남은 시간여행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깜짝 반전이 괜찮은 타임슬립 SF <민들레 소녀>, 유쾌한 결말이 돋보이는 깜찍한 SF 요정물(?) 코미디인 <프라이팬 조종사>, 자본가들의 계획으로 단순 소비재인 자동차와 TV에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가는 소시민들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 / 풍자하는 <21세기 중고차 매장에서>, <팝콘 튀기는 TV>, 종교적인 성찰을 다룬 <과거와 미래의 술>과 <약속의 별>, 문학의 중요성을 문학에 대해 잘 모르는 안드로이드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시인과 사랑에 빠진 큐레이터>, <당신의 영혼이 머물 자리>, 우주비행사의 고독을 일상계스러운 분위기로 굉장히 설득력있게 그려낸 분위기있는 정통 SF <별들이 부른다>, 가벼운 쇼트-쇼트 스타일 콩트 코미디인 <파란 모래의 지구>, <하늘에 새겨진 글자>에다가 <시계장치 오렌지>를 연상케하는 끔찍한 마인드컨트롤 설정이 돋보이는 기묘한 맛 류의 <붉은 학교>, <일종의 타임 패러독스 SF <시간을 되돌린 소녀> 등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완성도 역시 명성에 걸맞는 수준이고 책장도 쭉쭉 넘어가는, 쉽게 읽히면서도 독자의 흥미를 끄는 작품들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지난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 많다는 것은 감점요인입니다. 유쾌한 꽁트나 코미디쪽은 괜찮은데 종교적인 주제의 작품, 풍자적인 작품의 경우는 많이 낡아 보였거든요. 종교적 색채가 과하고 너무 설교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역시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아울러 전체적으로 독자에게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많은 것도 아쉬웠습니다. 여운을 많이 남기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자 하는 작가의 스타일인 것 같기는 한데 별로 효과적인것 같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완성도 높은 단편집임에는 분명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민들레 소녀> 외에 <프라이팬 조종사>와 <붉은 학교>를 꼽겠습니다. <민들레 소녀>는 SF 장르물 중 손꼽을 정도로 멋진 러브 스토리이며 <프라이팬 조종사>는 기발한 상상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붉은 학교>는 교육에 대한 서늘한 비판이 인상적이었고요. 다른 작품들도 괜찮은 만큼 읽기 편한 SF 장르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참고로 이 책을 <민들레 소녀>와 그 작품을 소개한 다른 창작물에 의해 접하고 흥미를 가지신 분들께서는 기대와는 다르기에 와닿지 않을 작품이 제법 많다는 점은 꼭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2014/01/10

죽음의 행군 - 장 클로드 갈 외 : 별점 4점

죽음의 행군 - 8점
장 클로드 갈, 장 피에르 디오네 외 글 그림/문학동네


<코난 사가>를 연상케하는전형적 고대 판타지 영웅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3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프랑스 그래픽노블. 한 10여년전? 유럽산 그래픽 노블이 한창 출간될 때 이미 읽었던 작품으로 계속 소장하고 싶던 차에 마침 여러가지 기회가 되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재간본으로 인쇄와 번역의 질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이전 판본은 본가에 있어서 비교하지는 못했네요.

이 작품의 장점이라면 무엇보다도 그림입니다. 작가가 20여년을 그렸다고 하는 선전문구가 납득이 될 정도에요. 순수한 흑백으로 그려낸 그림들은 그 치밀함과 묘사력이 정말이지 놀라운 수준이니까요. 한마디로 그림만으로도 돈이 아깝지 않아요. e-book이 아니라 인쇄된 큼직한 판형의 책으로 읽어야 하는 그런 "작품" 인데 원화도 보고 싶네요.
또 "그래픽 노블"이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이야기 역시 나쁘지 않습니다. 뻔한 세계관을 압도하는 독특한 매력이 가득하거든요. 1부 <대성당의 비밀>은 물에 뜬 대성당의 비밀에 얽힌 놀라운 반전이 인상적이며 2부인 <정복자의 군대>는 4개의 짤막한 옴니버스 연작으로 거대 영웅 서사극에서 소모품으로 사용되던 평범한 병사들에게 포커스를 맞춘 점이라던가 "기묘한 맛" 류의 서늘한 반전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이야기 - 정복자 군대의 지휘관이 새로운 정복자가 될 것을 꿈꾸지만 아르기드 열병에 걸린 소년이 막사로 뛰어든 뒤 보초와 군사들에 의해 막사에 가둬진채 통구이가 된다는 이야기 - 가 아주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3부 <아른의 복수>는 아탈리 제국의 왕 이메로즈와 그가 죽인 바르바르족의 왕 로낭의 후계자 아른과의 사투를 장대하게 그린 그야말로 전형적인 영웅 서사극으로 앞선 이야기와 같은 극적 반전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보기에는 충분한 내용이었습니다. 조금 더 긴 호흡의 군웅물로 전개해도 충분한 매력의 작품인데 너무 짧게 끝맺어서 아쉬울 뿐이네요.

결론은 추천작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뻔한 세계관때문에 약간 감점하기는 했으나 만화강국 프랑스의 저력을 잘 느낄 수 있는 걸작임에는 분명하죠. 가격도 아주 비싸지 않은 만큼 장르문학 팬분들 중에서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래픽 노블"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는게 사실 이해는 잘 안되요. 그냥 만화라고 하면 뭐가 문제일까요? 괜히 고급스럽게 느껴지라고 포장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저같은 사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고 대부분 그런 사람이라면 "만화"던 "그래픽 노블"이건 큰 상관없을텐데 말이죠. 마블이나 DC의 만화들처럼 원래도 "Comic"으로 통칭되는 작품은 그냥 "만화"로 출간해주었으면 합니다.

2014/01/09

저스트 고고! 1~32 - 라가와 마리모 : 별점 3점

Just Go Go! 저스트 고고! 32 - 6점
라가와 마리모 지음/대원씨아이(만화)

중학 육상계의 알려진 스타 이데 노부히사는 우연히 알게된 다카다 히나코에게 한눈에 반해 그녀가 다니는 마쿠노가와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테니스를 시작하게 된다. 한때 유명한 쥬니어 선수였던 타키타 루이 역시 마쿠노가와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테니스부에 가입한다. 이 둘을 중심으로 한 청춘 테니스 성장기 시작!

저스트 GO : 샤니무니 GO - 청춘 스포츠의 완성형
연말연시 연휴를 이용하여 완독한 작품입니다. 상당히 오래전에 읽기 시작했었고 작년 초에 만보님 포스트를 보고 꼭 찾아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완결을 보는건 한참 늦었네요.

이 작품을 처음 접할때에는 사실 순정만화가의 스포츠물이라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기와 나>나 <언제나 상쾌한 기분>에서 접했던 잔잔한 개그에 대한 기대가 더 컸었죠. 그런데 주인공 두명을 비롯한 다른 모든 동료들, 선수들, 친구들이 단 한번도 빗나가지 않는 성실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밝고 건전한 청춘의 모습에 테니스라는 소재가 잘 더하여진, "청춘 스포츠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재미있는 결과물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댓가를 얻는다"라는 당연한 명제를 잘 그려낸 성장기로도 훌륭하고요.
메인 러브라인인 이데 - 히나코 커플의 완성과 나머지의 커플들도 분위기를 조성해가며 마무리하는 완벽한 해피엔딩도 흐뭇하며 (루이 - 마코 / 슌 - 나디아 / 밀레뉴 - 코유키 등) 개그 역시도 충분히 기대에 값합니다.
또 이 작품에서의 타키타 루이와 이데 노부히사는 완성된 기계와 타고난 체력과 천재성으로 성장해 나가는 초보자라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 주인공이지만 약간의 디테일한 차이 (루이는 유명 테니스 선수의 아들, 이데는 육상계의 슈퍼스타)와 함께 톡톡 튀는 대사, 여러가지 상황극으로 나름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만 해요. 순정만화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특출난 편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그냥 바보인 이데보다는 츤데레 왕자 루이쪽이 더 마음에 들기는 했습니다만....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순정만화 특유의 복잡한 가정사가 타키타 루이, 사세코 슌 모두에게서 선보인다는 점, 메인 히로인인 히나코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그려지지 못한 점, 마지막으로 등장인물들에 대해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펼쳐보이는 점이 그러합니다. 마지막 단점은 특히나 최종 보스와 같았던 사세코가 마지막 전국체전에서 이데와 타키타 두명에게 차례로 패배하는 것에서 그 정점을 찍는데 그냥 이데 - 타키타의 결승전만 그리는게 나았을 거에요. 현실적으로는 이미 프로 진출하여 나름 세계에서 싸워온 사세코가 이 두명의 레벨과 같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죠. 에필로그도 여운을 남기기에는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생각되고요.
또 아무래도 정통 극화가, 소년만화가에 비하면 핵심이 되는 테니스 장면의 박력이나 연출이 조금 부족하긴 합니다. 마지막 전국체전 결승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멋진 연출을 보여주지만 사실 "테니스"의 연출보다는 여러가지 심리, 배경묘사 덕이 크거든요. 뭐 어쨌거나 시합장면 자체는 긴박감이 넘칠 뿐 아니라 주인공들이 별다른 "필살기" 없이 순수하게 정석적인 랠리로 포인트를 쌓아나가는 패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아주 단점이라고 하기도 뭣하긴 한데 스포츠물이라면 기술에 대한 묘사는 좀 더 들어가는게 나았을겁니다.

여튼 결론적으로는 추천작. 밝고 건전한 청춘 스포츠물의 왕도를 걷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 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쌈질만 하는 청춘물, 필살기와 특훈과 근성으로 포장된 흔해빠진 배틀 스포츠물에 질리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14/01/08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 도진기 : 별점 2.5점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 6점
도진기 지음/추수밭(청림출판)

추리소설을 쓰는 현직 검사이신 한국의 존 그리샴 도진기 작가가 쓴 일종의 쉬운 법률 안내서. 염라대왕이 천국과 지옥행을 결정하는 판사 역할을, 소크라테스가 염라를 도와주는 변호사로 등장하여 여러 역사속, 픽션속 사건의 피고인에 대한 재판을 진행한다는 내용으로 본인의 능력을 살려 일종의 소설과 같은 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장점이라면 등장하는 사건들이 흥미로운 것들이 많아서 쉽게 읽힌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내용은
윌리엄 텔이 아들에게 화살을 쏜 것에 대한 재판
결과가 생길 수 있지만 그래도 좋아! 라는 것이 미필적고의, 결과가 생길 수 있지만 설마 그러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식있는 과실로 윌리엄 텔은 고의도 없었고 미필적고의 (아들이 죽어도 좋아)도 없었기에 인식있는 과실에 해당되어 처벌받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하멜의 피리부는 사나이 재판
피리소리가 아이들을 꾀어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면 무죄라고 합니다. 상당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검투사 막시무스가 다른 검투사들을 죽인 것에 대한 재판
기대가능성이 없어서 (올바른 행동을 기대할 수 없음) 죄가 되지 않습니다. 강요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당연한가?

샤일록의 계약에 대한 재판
계약 자체가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라 무효!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빼앗은 마녀와의 계약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른바 신체포기각서라던가 도박빚 역시 무효라는군요. 단 무효인 도박 빚이라도 일단 돈을 주었다면 돌려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짤막한 내용만 보아도 상당히 재미나죠?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소설도 아니고, 법률 안내서도 아닌 애매한 결과물이라는 점이죠. 소설적인 부분을 본다면 설정 자체가 지나치게 아동적으로 유치하며 중간중간의 대사들 역시 그러하기 때문에 많이 어색합니다. 법률 안내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소설적인 설정과 구성에 너무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어서 깊이가 부족하고요.
그냥 현직 검사의 관점으로 이 책에 등장한 사건들에 대해 쉽고 재미나게 설명해 주는 정도로 충분했을텐데 너무 오버한 느낌이에요.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신 것 같기도 합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있는 내용이 많고 장점도 확실해서 아예 폄하하기는 힘드나 억지스러운 설정은 빼는게 훨씬 나았을거 같네요. 유사한 책이지만 깔끔한 금태섭 변호사의 책이 저는 더 마음에 듭니다.

2014/01/07

착각을 부르는 미술관 - 셀린 들라보 / 김성희 : 별점 2점

착각을 부르는 미술관 - 4점
셀린 들라보 지음, 김성희 옮김/시그마북스


간만에 읽은 미술관련 서적. 제목 그대로 시각적으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들을 전부해서 아래와 같은 다섯개의 큰 목차를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1. 눈을 속이다
2. 또 다른 의미를 담아내다
3. 형체를 만들다
4. 시각을 탐구하다
5. 현실을 초월하다


그런데 제 생각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예를 들면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유명한 과일과 야채로 이루어진 인물화와 같은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거든요. 물론 이러한 작품들이 "착각을 부른다"라는 주제에는 부합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말 그대로 눈의 착각을 이용한 작품이나 작가의 기묘한 상상력이 바탕이 된 극사실화가 실려있으리라 기대했기에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또 책의 성격상 도판이 엄청나게 중요한 책인데 유명 작품에 대해 달랑 하나의 사진으로만 소개하는 식이라 풍성함이 부족한 것도 단점입니다. 작가 중심의 소개라면 대표작을 여러개 소개해주는 것이 훨씬 좋았을텐데 보통 단품의 회화작품 하나만 소개해주는 식입니다. 조각이나 설치미술 등은 보다 다양한 구도가 필요했을것 같은데 그렇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결론내리자면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론 뮤엑의 거대 조각과 같이 이전에는 몰랐던 몇몇 작가와 작품들을 알게된 것, 특히 잘 몰랐던 현대 미술에 대해 약간이나마 알게된 것은 좋았지만 도판을 보강하고 조각 등은 3D 입체 동영상화한 영상 컨텐츠로 만드는게 훨씬 좋았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4/01/06

베이커 스트리트 살인 - 아서 코넌 도일, 마틴 H 그린버그 외 / 정태원 : 별점 2.5점

베이커 스트리트 살인 - 6점
아서 코넌 도일 외 지음, 마틴 H. 그린버그 외 엮음, 정태원 옮김/단숨

홈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다양한 후대 작가들이 쓴 단편 소설들을 모아놓은 파스티쉬 앤솔러지. 7년전에 출간되었던 <베이커가의 살인>과 같은 책으로 표지와 구성이 미묘하게 다르긴 하나 내용은 기본적으로 동일합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형태로 재출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이전 판본의 편집과 구성,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들거든요. 코난 도일경의 글이 앞에 위치한 배치라던가 디테일한 디자인 등 전체적인 구성이 더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어른의 사정이 있는거겠죠?

여튼, 내용 리뷰는 같은 책이니 당연히 이전 리뷰와 거의 동일합니다. 서문 및 각종 에세이들의 자료적 가치는 높지만 수록 단편 11편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고 고 정태원 선생님의 번역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띄여 선뜻 권해드리기는 좀 어렵다는 것까지 말이죠. 특히나 "홈스" 라고 번역된 이름은 아무리 읽어도 영 어감이 별로더군요....

그래도 나이가 들고 취향이 약간 바뀐 탓에 예전 리뷰에서 좋게 평했던 작품보다 시원찮게 평가했던 작품이 더 마음에 들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괜찮았던 작품은 아래의 세작품입니다.

<홈스를 태운 마차>
우연히 홈스를 태우게 된 마부를 화자로 한 슬랩스틱 소동극에 가까운 유쾌한 소품. 추리는 거의 없다시피할 정도지만 유쾌한 분위기에 더해 마부의 고민까지 깔끔하게 해결하는 전개가 좋았습니다.

<아라비아 기사의 모험>
실존인물인 <천일야화>의 작가 리처드경을 등장시키고 당대로서는 최첨단 문물인 코닥 카메라, 그리고 역사적 사실은 투탄카멘의 무덤을 엮어 그려낸 괜찮은 역사추리물입니다. 진상을 추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홈스가 실재 역사와 교묘하게 엮이는 전개가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었어요.

<체셔 치즈 사건>
트릭은 번역으로는 알수 없는 일종의 삼행시같은 것이고 설정과 전개는 예전에 읽었던 데이비슨 포스트의 <대암호>와 유사하지만 시대와 장소를 잘 살린 덕에 차별화되는 높은 설득력을 갖게 된 괜찮은 작품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앞서 권해드리기 좀 어렵다고 쓰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완성도와 재미는 보장하는만큼, 셜록 홈즈의 팬들이시라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4/01/03

일본 근대의 풍경 - 유모토 고이치 : 별점 3.5점

일본 근대의 풍경 - 8점
유모토 고이치 지음, 연구공간 수유 + 너머 '동아시아 근대 세미나팀' 옮김/그린비

근대 초창기에 여러가지 문물들이 일본에 언제 도입되었는지, 어떠한 배경으로 도입되었는지 등을 항목별로 2~3페이지 정도를 할애하여 관련된 도판과 함께 소개해주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장 정치·경제
페리 내항 / 세관(운조쇼) / 견미사절단 / 견구사절단 / 요코스카 제철소 / 파리 만국박람회 사절 / 이민 / 화족(華族) / 관리 / 이와쿠라사절단 / 오키나와현 / 훈장 / 재판제도 / 지폐료 / 조폐료 / 국립은행 / 위식주위조례 / 시구개정 / 도미오카 제사장 / 기독교 / 징병 / 초지회사 / 원로원 / 자유민권운동 / 신문지조례 / 성냥 / 연설 / 가이코샤 / 세이난 전쟁 / 동상 / 야스쿠니 신사 / 집회조례 / 일본철도회사 / 계엄령 / 관보 / 조약개정 / 내각제도 / 보안조례 / 추밀원 / 대일본제국헌법 / 만세삼창 / 장사 / 아시오 광독사건 / 교육칙어 / 제1회 총선거 / 제국의회 / 구매조합 / 대본영 / 일청전쟁 / 사회주의 / 동맹파업 / 내지잡거 / 일영동맹 / 일러전쟁 / 철도국유법 / 대역사건 / 일영박람회 / 일한병합 / 공장법 / 천황붕어

2장 풍속·사물
가스등 / 간코바 / 고아원 / 구세군 / 권총 / 그림엽서의 유행 / 나체화 / 난로 / 남극탐험 / 냉장고 / 램프 / 무도회 / 미싱 / 박람회 / 백화점 / 비누 / 사진 / 선풍기 / 수도 / 시계 / 시계 2 / 안전 면도기 / 엘리베이터 / 연필 / 오포 / 온도계 / 유모차 / 일루미네이션 / 자유폐업 / 전등 / 제등행렬 / 철제다리미 / 축음기(레코드) / 클리닝 / 토끼의 유행 / 페인트 / 펜·만녀필 / 하이칼라

3장 레저·스포츠·예능
경마 / 노조키카라쿠리(요지경) / 당구 / 동물원 / 메리고라운드 / 보트 레이스 / 볼링 / 수족관 / 스케이트 / 신극 / 야구 / 양악 / 여배우 / 여배우 양성소 / 영화 / 예기의 만박 참가 / 예능인의 해외공연 / 옷페케페이부시 / 워터 슈트 / 테니스 / 파노라마 / 해수욕 / 환등 / 활인화

4장 복식
가방 / 구두 / 모자 / 서양식 머리 / 숄 / 안경 / 양복(남성용) / 양복(여성용) / 양산 / 이발

5장 음식
레모네이드 / 맥주 / 빙수 / 서양요리 / 소고기 전골 / 우유 / 커피 / 통조림 / 포도주

6장 미디어
명함 / 신문 / 인쇄 / 전신 / 전화

7장 교통
도로정비 / 비행기 / 비행선 / 승합마차 / 인력거 / 일전증기 / 자동차 / 자전거 / 전차 / 철도 / 철도마차

8장 직업
경찰 / 군대 / 군악 / 보험 / 부기 / 소방 / 우편 / 치과의학 / 호외팔이

9장 교육
고교생 / 국정교과서 / 대학생 / 도서관 / 박물관 / 박사학위 / 소학생 / 식물원 / 어진영 / 여학생 / 운동회 / 유도 / 유치원 / 중학생 / 체조 / 프랑스어학교 / 화족학교(학습원)

10장 토목·건축
근대공원 / 기상대 / 등대 / 로쿠메이칸 / 료운카쿠 / 벽돌 / 벽돌거리 / 비와호 수로 / 양육원 / 엔료칸 / 온실 / 철교 / 프랑스 기와 / 호텔

11장 위생
종두 / 콜레라 / 페스트

부록
일본의 역사
메이지 연표
메이지 시대 인물
메이지 시대 신문·잡지
찾아보기

목차만 보아도 굉장히 흥미롭지 않습니까? 게다가 번역도 깔끔하고 도판이 풍성하여 자료적 가치도 높은 편입니다. 대부분의 도판이 사진없이 삽화와 그림들 (특히 신문인 "마루마루 진문" 삽화의 비중이 높음) 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어요. 아.. 저는 이렇게 특정 항목에 대한 것을 요약된 글과 그림으로 설명하는 백과사전처럼 구성된 책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부록입니다. 두꺼운 책의 상당 분량을 (거의 1/4 정도?) 일본 역사의 개요와 이 책에 등장한 주요 인물들의 약력을 소개하는데 할애하고 있는 것인데 분량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되거든요. 일본 근대에 대해 관심있는 독자가 일본 전체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유도 별로 없을 뿐더러 등장하는 인물들의 약력은 중요한게 아니죠. 정 궁금하면 다른 상세한 자료를 찾아보지 이러한 미시사 서적을 왜 찾아보겠습니까... 원저에도 있는지 궁금하긴 한데 한국에 번역 출간하면서 덧붙인 것이라면 쓸데없는 삽질이라고 전해드리고 싶네요.

그래도 다른 곳에서 구하기 힘든 정보가 많기에 추천합니다. 별점은 3.5점. 감점요인인 부록을 들어내고 해당 분량에 해당하는 가격을 내렸다면 만점을 줄 수도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2014/01/02

푸른 작별 - 존.D.맥도널드 / 송기철 : 별점 2점

푸른 작별 - 4점
존 D. 맥도널드 지음, 송기철 옮김/북스피어

마이애미의 포트로더데일 바히아마르 해변 F-18 선착장에 정박 중인 버스티드 플러시호에 거주하는 트래비스 맥기. 그는 탐정도, 경찰도 찾아줄 수 없는 물건을 찾아주며 대신 보수로 잃어버린 액수의 절반을 받아 먹고 사는 인물. 그러던 어느날 댄서 추키 맥콜을 통해 추키의 동료 캐서린 커의 의뢰를 받는다. 사건 해결을 위해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보물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노리고 그녀에게 접근한 뒤 배신한 주니어 앨런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조사를 시작하게 되는데.....

안녕하세요.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2014년 새해 첫 리뷰네요.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많이 접했었던, 상당한 유명세를 자랑하는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 1작입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과히 대단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릴러인 펄프 픽션이더군요. 독특한 캐릭터에 기댄 하드보일드 추리 액션물이라는 점, 꽤나 감성적인 묘사력으로 포장되었다는 점에서는 <약속의 땅 (탐정 스펜서 시리즈)>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추리적인 과정이 별로라는 점도 동일해서 모든 사건 수사는 트래비스가 원하는대로, 생각하는대로 쉽게쉽게 전개됩니다. 덧붙이자면 중반부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캐서린의 아버지 배리가 어떻게 거금을 얻었는지에 대한 조사는 그닥 중요한 것도 아니더군요. 배리가 군에서 벌였던 밀수의 디테일 (금을 비행기 부속품으로 복제)은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사건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에 불과한데 차라리 이 밀수에 대한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또 트래비스 맥기가 하는 일이라곤 결국 앨런의 보트에 숨어들어 홈즈 시절의 <보헤미아 스캔들> 과 동일한 구닥다리 작전으로 보석을 숨겨놓은 곳을 알아낸 뒤 폭력으로 제압하는 뻔한 짓거리밖에는 없습니다. 이 작전에 가짜 보석이 왜 필요했는지는 의문이에요. 어차피 악당인 앨런도 별반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인물도 아닌데 다른 작전, 예를 들면 성폭행으로 경찰에 신고한 뒤 구류기간 동안 보트를 조사해서 빼돌릴 생각은 왜 안했는지도 모르겠고요. 
또 설정이 좀 잘못되어 있다는 인상도 받았는데 예를 들면 배리가 교도소에서 보석을 숨긴 곳을 캐서린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은 이해불가고 악당 앨런이 보석 판매에는 철저히 신중을 기울이면서도 성적 욕망을 위해서는 그 어떤 리스크도 무릅쓴다는 것은 굉장한 모순이죠. 중반에 트래비스가 젊은 미식축구 라인배커를 간단하게 때려 눕히는데 앨런에게는 흉기를 이용하여 기습을 가했음에도 떡이 되도록 맞아나가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마지막으로 맥기 - 로이스와의 관계 및 그녀가 죽음에 이르는 결말도 개운치 못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 시리즈, 특히 이른바 "순정 마초"라는 트래비스 맥기가 왜 많은 인기를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복잡하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필요할 경우 일종의 '정신상담'을 해 준다는 독특함과 여자를 위해 눈물을 보이는 순정만큼은 독특하지만 사랑하는 여자가 죽어도 눈물 한번 보인 뒤 바로 시니컬한 유머 ("안녕 도미니크, 다음에 만날때는 지옥이겠지")를 날리는 우주해적 코브라같은 돌직구 스타일의 하드보일드 마초가 더 제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뭐 이건 개인 취향 문제겠죠.

물론 유명세에 걸맞는 점도 존재합니다. 악당인 앨런만큼은 원초적 욕망으로 가득찬 날것 그대로 강하게 표현되어 최후의 순간 (닻에 걸려 미소짓는 장면!)까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해변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도 볼거리입니다. 취업도 힘들고 짧을 수 밖에 없는, 부질없는 젊음에 대한 사고방식 역시도 괜찮았고요.

허나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유명시리즈에 걸맞는 아우라는 느끼기 어려웠기에 후속권이 나오더라도 더 읽게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새해 첫 리뷰를 한 작품치고는 실망스럽네요. 그래도 펄프 픽션답게 쑥쑥 읽히는 재미는 있고 분량도 적절한만큼 킬링타임용 읽을거리를 찾으시는 분들께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