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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0

죽음의 행군 - 장 클로드 갈 외 : 별점 4점

죽음의 행군 - 8점
장 클로드 갈, 장 피에르 디오네 외 글 그림/문학동네

"코난 사가"를 연상케하는, 전형적 고대 판타지 영웅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3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프랑스 그래픽 노블입니다. 한 10여 년 전? 유럽 그래픽 노블이 한창 출간될 때 이미 읽었던 작품으로 계속 소장하고 싶던 차에, 마침 여러 가지 기회가 되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재간본으로 인쇄와 번역의 질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이전 판본은 본가에 있어서 비교하지는 못했네요.

이 작품의 장점이라면 무엇보다도 그림입니다. 순수한 흑백으로 그려낸 그림들은 그 치밀함과 묘사력이 정말이지 놀라운 수준이니까요. 작가가 20여 년을 그렸다고 하는 선전문구가 납득이 될 정도에요. 한마디로 그림만으로도 돈이 아깝지 않습니다. 이건 e-book이 아니라 인쇄된, 큼직한 판형의 책으로 읽어야 하는 그런 "작품"이에요. 원화도 보고 싶네요.

또 이야기 역시 "그래픽 노블"이라는 호칭에 어울립니다. 뻔한 세계관을 압도하는 독특한 매력이 가득하거든요. 1부 "대성당의 비밀"은 물에 뜬 대성당의 비밀에 얽힌 놀라운 반전이 인상적이며, 2부인 "정복자의 군대"는 4개의 짤막한 옴니버스 연작으로 거대 영웅 서사극에서 소모품으로 사용되던 평범한 병사들에게 포커스를 맞춘 점과 '기묘한 맛' 류의 서늘한 반전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이야기 - 정복자 군대의 지휘관이 새로운 정복자가 될 것을 꿈꾸지만 아르기드 열병에 걸린 소년이 막사로 뛰어든 뒤 보초와 군사들에 의해 막사에 가둬진 채 통구이가 된다는 이야기 - 가 아주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3부 "아른의 복수"는 아탈리 제국의 왕 이메로즈, 그리고 그가 죽인 바르바르족의 왕 로낭의 후계자 아른과의 사투가 장대하게 그려진 전형적인 영웅 서사극으로 앞선 이야기들 같은 극적 반전은 없습니다. 그러나 일종의 거대 서사극으로는 충분한 재미를 주는 대작입니다. 조금 더 긴 호흡의 군웅물로 전개해도 충분한 매력의 작품인데, 오히려 너무 짧게 끝맺어서 아쉬울 뿐이네요.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뻔한 세계관 때문에 약간 감점하기는 했으나 만화강국 프랑스의 저력을 잘 느낄 수 있는 걸작입니다. 가격도 아주 비싸지 않은 만큼, 장르문학 팬분들 중에서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래픽 노블"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는 게 사실 이해는 잘 안되요. 그냥 만화라고 하면 뭐가 문제일까요? 괜히 고급스럽게 느껴지라고 포장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저 같은 사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고 대부분 그런 사람이라면 "만화"던 "그래픽 노블"이건 큰 상관없을 텐데 말이죠. 마블이나 DC의 만화들처럼 원래도 "Comic"으로 통칭되는 작품은 그냥 "만화"로 출간해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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