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의 매 -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열린책들 |
샘 스페이드의 탐정 사무소로 원덜리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이 찾아온다. 자신의 어린 여동생이 서스비라는 남자와 도주하였다는 것. 서스비를 찾아내 여동생을 되찾고 싶다는 의뢰였다. 동료 탐정인 아처가 의뢰를 맡고 서스비를 미행하지만, 밤사이 변사체로 발견된다. 더군다나 그가 미행하던 서스비까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상황. 경찰은 용의자로 스페이드를 지목하고, 그는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해 사건을 추적해 나간다. (책소개에서 인용)
대실 해밋의 샘 스페이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고전 하드보일드 추리장편. 무려 1930년 발표된 작품으로 하드보일드의 전형을 구축한 작품입니다.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읽어도 충분한 가치와 재미를 갖추고 있는 놀라운 작품이기도 하죠. 지니고 있는 명성이 쉽게 이해가 될 정도로 말이죠.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는 뭐니뭐니해도 시대를 앞서간 주인공 샘 스페이드에 있습니다. 마초이자 상남자에다가 나쁜 남자이기까지 하거든요. 파트너의 아내를 유혹해서 불륜을 저지르는데다가 쿨함이라고는 전혀없는 돈귀신으로 도움을 얻으려고 찾아온 여자에게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500달러를 악착같이 받아낼 정도죠. 거기에 더해 총으로 위협하는 악당들도 맨손으로 제압하는 완력, 경찰에게도 굴하지 않고 농담과 비야냥으로 받아치는 반골정신도 겸한, 그야말로 안티 히어로의 표본같은 캐릭터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묘사도 탁월해서 얼굴에 여러개의 V가 표시된다는 첫 등장 시의 묘사부터 독자를 사로잡고요.
등장 이후 단 한번도 진실을 말하지 않은 오쇼네시라는 팜므파탈 역시 추리소설사에 길이 남을 악녀로 스페이드와 함께 완벽한 컴비플레이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역사적 유물인 "몰타의 매"을 소재로 녹여낸 참신함과 "몰타의 매"를 찾는 보물찾기라는 내용은 이후의 하드보일드 작품에서 보기 드물었기에 돋보인 점이에요. 특히 몰타의 매의 유래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나름 그럴듯했거든요.
그 외에도 다른 하드보일드 작품들 같이 명대사가 난무하는 그런 문학적 간지는 별로 없지만 깔끔하고 간결한 문장도 인상적입니다.이야기 중간에 스페이드가 이야기한 일화, 한 사내가 우연히 죽을뻔한 뒤 아예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종적을 감춘다는 내용같은 부분은 뭔가 울림을 전해주더군요.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될만한 내공은 확실히 느껴졌어요.
하지만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는 좀 애매하다는 것은 단점이긴 합니다. 하드보일드 추리물이 별다른 트릭이 없는 장르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트릭이고 뭐고 정말 전혀 없어요. 유일한 수수께끼는 서스비가 매 조각상을 어디에 감추었냐에 대한 것일뿐인데 이건 오쇼네시의 뒤를 쫓는다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는 것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딱히 스페이드가 등장해서 활약할 여지가 없습니다. 실제로 거트먼과 카이로는 스페이드의 도움 없이 매가 있는 곳을 찾아내는데 성공했죠.
전개도 속도감있고 빨라 독자를 몰입시키기는 하나 세세한 부분에서의 설득력도 부족합니다. 카이로가 스페이드를 찾아온 이유, 거트먼이 스페이드를 고용하려는 이유 등 스페이드가 사건에 엮이는 과정이 대표적이죠. 오쇼네시가 스페이드를 고용했기 때문이라 하더라도 생판 관계없는 사람을 끌어들이느니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그녀를 미행만 해도 충분했을테니까요. 하긴 오쇼네시가 서스비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스페이드를 끌어들인것 부터 설득력이 없으니... 아처를 쏴버린 것처럼 그녀 스스로 서스비를 쏴버리는게 제일 깔끔했을텐데 왜 이렇게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었을까요? 어차피 경찰도 그녀의 존재는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서스비가 과거 도박조직에 연루된 원한으로 살해된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는데 말이죠.
마지막에 스페이드가 경찰에 오쇼네시를 넘기는 것도 잘 이해가 안됐습니다. 스페이드가 그녀를 넘기지 않으면 바로 체포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을지 잘 모르겠거든요. 희생양은 거트먼 일당으로 충분했을것 같은데, 한명 죽이나 두명 죽이나....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추천작. 단점은 조금 있으나 사소할 뿐 이 바닥의 영원한 고전, 원전으로서의 가치와 재미를 유지하고 있는 보기드문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아직 읽지 못하신 모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덧 1 : 오쇼네시에게 교수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전기의자를 쓰지 않았었나요? 이 당시 하드보일드에서 흔히 이야기되는건 "싱싱 (형무소)"과 "전기의자" 인데 이 작품은 예외적이라 의아했습니다.
덧 2 : 샘 스페이드의 파트너가 마일스 "아처"라는 것이 좀 특이했습니다. 하드보일드 3대 탐정 중 한명인 "루 아처"가 바로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묘한 인연인데 로스 맥도널드가 루 아처 창작 시 이 점을 염두에 두었는지 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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