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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6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로렌 슬레이터 / 조증열 : 별점 4점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8점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에코의서재

부제는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입니다. 부제 그대로 10개의 위대한 심리실험과 그 결과에 대한 내용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10개의 실험 모두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었으며, 저자인 로렌 슬레이터의 쉽고 편하면서도 정보 제공을 소홀해 하지 않는 문체 역시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모든 실험이 인상적이었고 뛰어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많은 부분에 응용될 수 있는, 저 자신도 많은 영향을 받은 내용들로 충격적인 실험 결과와 더불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여 줍니다.

뭔가 창조적인 영감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고 생각이 드는데, 10개의 연구 중 "우리가 기억하는 기억은 진짜 기억인가?"를 예로 들자면, 결론적으로 "기억은 조작될 수 있다. 아주 쉽게"라는 연구 결과를 싣고 있습니다. 딸이 이십년 전 아버지가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를 강간, 살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주장했던 사건에서 비롯된 실험과 그 결과로 억압된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죠. 이 실험과 결과에서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괴로워하고 그 사실에 발목이 잡혀있는 대표적인 인물인 "브루스 웨인"을 떠올려보면 어떨까요? 실제로 브루스 웨인의 부모는 그의 눈 앞에서 악당에게 저격당해 살해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죽었다면? 그리고 부모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암시하는 다른 어른이 그에게 이러한 왜곡된 이야기를 주지시켜 기억을 조작했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주위에 있었던 유일한 어른이자 조언자인 집사 알프레드에게 혐의가 실리겠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악에 대한 증오를 품게 된 알프레드가 자신에게 없는 젊음과 기회, 재력을 가진 어린 브루스 웨인에게 실제로는 다른 이유로 사망한 (뭐, 교통사고라고 하죠) 부모님의 죽음을 전해 주며 지속적인 암시로 그의 눈 앞에서 잔인하게 살해 당했다고 기억을 심어 버린거죠. 때문에 브루스 웨인은 알프레드의 조작대로 조종되어 배트맨이 되어 버린 것이고요. 결말은 진실을 알게된 배트맨이 알프레드에게 복수하는 이야기? 어쨌건 요렇게 바라보니 심리학이라는 것도 정말 재미있네요.^^

이외에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윤리적인 부담을 이겨내고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숙제 역시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해당 연구에 대한 반대파의 의견도 충실히 조사하여 서술하고 있어서 균형을 잃지 않았다는 것 역시 높은 점수를 줄 만 합니다. 별점은 4개 얻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여간 다양한 심리학 서적을 읽어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심리학이라는 것이 정말 범위도 넓지만 충격적인 사실도 많아서 흥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 뿐더러 창조적인 작업에도 많은 부분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전부 이 책 처럼 재미있진 않겠지만요...

2008/07/22

제 3의 시효 - 요코야마 히데오 / 김성기 : 별점 3점

 

제3의 시효 - 6점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김성기 옮김/노블마인

요코야마 히데오의 연작 단편집으로 만화 "강력1반"의 원작이기도 합니다. 작품은 F현 경찰청 강력반의 이야기로 총 6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1편은 1반, 2편은 2반, 3편은 3반, 4편은 3반 모두의 이야기이며 5편은 1반의 신참형사, 마지막 6편은 1반과 3반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반의 이야기가 좀 많긴 한데 나름 균형은 잘 맞추고 있는 편입니다.

전부 3개의 반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직에서 각 반마다 지나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의식을 품고 있다는 설정도 특이하지만 각 반마다 특색있는 반장들이 그려지는데 이 반장들 캐릭터가 굉장히 잘 살아 있습니다. 1반의 절대 웃지 않는 "파란 귀신" 구치키와 2반의 전 공안 출신의 엘리트이자 감정없는 냉혈한인 구스미, 3반의 절대 육감의 소유자인 무라세라는 캐릭터들이 각각의 별명과 설정에 잘 어울리는 수사방법, 즉 구치키의 끈질기고 합리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정공법 스타일과 구스미의 용의자를 함정에 빠트리는 지능형 스타일, 그리고 구스미의 육감을 이용하여 범인을 그려내는 수사방법들이 작품에 잘 드러나고 있거든요.

경찰들이 주인공인 경찰 소설이기에 본격 추리의 맛을 느끼기는 좀 어렵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상당한 수준의 트릭이나 두뇌게임이 등장해서 추리 애호가로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던 것은 덤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을 준다면 3점은 충분한 작품으로 보이네요. 아울러 개인적인 베스트를 꼽자면 제일 마지막 작품인 "흑백의 반전"을 꼽겠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좋지만 만화로 이미 접한 작품은 신선함이 조금 떨어지긴 했으니까요.

만화화 된 것은 1편에서 4편까지이며 나머지 2편은 처음 접한 작품인데 원작을 읽고나니 만화쪽도 비록 복사본을 많이 사용해서 쉽게 만든 작품이기는 하지만 캐릭터도 잘 구현하고 스토리도 매끄럽게끔 잘 극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화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1. 침묵의 알리바이
구스미의 1반이 맡은 사건은 현금차량 탈취 살인 강도 사건으로 용의자 유모토를 체포하는데 성공하나 유모토는 법정에서 범행을 전면 부인한다. 알리바이를 제시함에 따라 조사를 맡았던 시마즈의 미숙함과 더불어 찾아온 위기에 1반 반장 "파란 귀신" 구치키가 직접 나서게 된다.
추리물로 보기에는 단서가 부족하고 법정물로 보기에도 애매하지만 구치키의 캐릭터와 함께 몇가지 사소한 단서에서 풀어내는 진상이 인상적인 단편입니다. 조금 더 길게 가져가서 정통 수사물로 만드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은 생각은 들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 제 3의 시효
부녀자 강간 후 남편 살해사건을 저지르고 도망중인 용의자 다케우치의 공소시효를 앞두고 2반은 다케우치의 범행 피해자의 집으로 출동한다. 다케우치가 1주일 간 대만으로 도피했던 것으로 공소시효가 연장된 것을 모를 것이라 여기고 과거의 인연으로 다케우치가 연락할 것을 기다린 것.
냉혈한 구스미와 1반 소속 형사로 2반에 지원나온 모리 형사가 주축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공소시효 연장에 따른 긴장감도 넘치지만 구스미의 치밀한 계략에 따른 "제 3의 시효"와 진범에 대한 추리가 아주 좋았습니다. 단서도 비교적 공정한 편이라 추리 애호가로서 즐겁게 읽은 작품입니다.

3. 죄수의 딜레마
형사과장 다하타는 자신의 휘하 3반 소속 반장들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서로의 경쟁 때문에 고민이 많다. 마침 진행되는 사건은 3건. 1반의 주부 살인사건과 2반의 조리사 살인사건, 3반의 증권맨 살인사건.
3건의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을 형사과장 시점에서 그린 이색작입니다. 2반의 사건은 제목의 "죄수의 딜레마"를 끄집어 내기 위한 장치일 뿐이지만 구스미의 심리 조작이 빛났고 1반, 3반의 사건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사건이라 보다 흥미진진 했습니다. 나름 형사들의 인정이나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라 훈훈함이 남다르기도 했고요. 추리적으로도 눈여겨 볼 부분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4. 밀실의 탈출구
무라세 반장이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3반의 히가시데가 반장 대리를 맡는다. 마침 백골로 발견된 여성 사체 사건의 용의자를 알아낸 히가시데는 용의자의 맨션을 덮치지만 용의자는 깜쪽같이 사라져버리고, 이 사건을 위한 대책회의가 열리는데..
3반이 주역이지만 주역은 무라세 반장이라기 보다는 반장 대리 히가시데 입니다. 반장 대리의 역할을 맡았지만 동기인 이시가미와의 경쟁으로 날카로운 심리 상태와 용의자가 사라진 것에 대한 의심 등 다양한 심리를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어서 읽는 재미가 느껴지더군요. 흡사 본격물의 느낌을 주는 제목만큼의 대단한 트릭이 나오지는 않지만 비교적 합리적인 트릭이기도 하고, 정보의 제공이 공정하며 추리의 과정도 설득력이 높다는 점 역시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5. 페르소나의 미소
청산가리를 이용한 노숙자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과거의 트라우마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신참 형사 야시로가 수사를 맡게된다.
1반의 신참 형사 야시로가 주인공인 단편입니다. 야시로의 과거의 트라우마 (어렸을 때 유괴사건 범행에 연루된 것) 가 자세하게 설명되는 등 추리와 수사보다는 한 개인에 대한 소품같은 느낌을 많이 가져다 준 작품입니다. 등장인물도 굉장히 적어서 더욱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기도 하네요. 과거의 사건들과 연결되는 트릭은 괜찮았지만 이 단편집에서는 제일 처지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6. 흑백의 반전
일가족 세 명이 칼에 찔려 살해된 사건이 발생한다. 다하타 과장은 3반이 맡은 이 사건에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며 1반을 보조로 투입시키지만 두 반은 경쟁의식으로 과열되어 과장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수사가 전개된다.
2반이 등장하지 않고 1반과 3반이 경쟁하는 작품입니다. 두 반의 반장 캐릭터와 유사한 각각의 수사방법이 잘 묘사되어 있기도 하지만 트릭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모처럼 "본격" 스러운 작품이라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국 과장이 의도한 대로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키며 사건이 종료되는 것 역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결말이기도 했고요. 사건의 동기와 범인, 트릭, 수사과정 모두 합리적이고 잘 짜여진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2008/07/19

GOTH - 오츠 이치 / 권일영 : 별점 2점

 

GOTH 고스 - 4점
오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학산문화사(단행본)

오츠 이치의 단편집입니다. 이전에 읽었었던 "ZOO"와 다른 점은 동일 캐릭터로 이루어진 연작 작품들 이라는 것으로,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네요.

쟝르는 "ZOO"나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과 같은 호러 단편집으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추리적인 요소를 작품에 많이 도입했다는 점은 추리 애호가로서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제 3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고 광고를 하고 있기도 했고 "ZOO"에서도 접했던 오츠 이치의 추리물은 꽤 완성도가 높았기에 기대가 컸었는데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추리적인 요소가 곳곳에 적절하게 사용되는 편이고 정보의 제공도 공정한 편이라 본격물은 아니지만 추리물로서 즐기기에 충분한 수준의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6편 중 추리물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은 반 정도밖에는 안되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추리적인 요소만 놓고 봤을 때 작품들 중 베스트는 역시 "암흑계 Goth" 를 꼽겠습니다.

그러나 단편집 전편에 걸쳐 등장하는 작품의 주인공인 "나"와 친구 "모리노 요루", 두명 모두 죽음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을 품고 있는 고등학생으로 시종 설정이나 여러 묘사를 볼 때 역시나 오츠 이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질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솔직히 이상성격도 어느 정도여야지 이 정도 설정이라면 거의 판타지나 다름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인물들이었거든요. 실제 일본의 사회 분위기가 이런 캐릭터들이 현실적으로 용납되는 사회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장도 어느정도여야죠.... 부수적으로 특유의 적나라하며 잔인한 묘사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더군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별점은 제 개인적 기준으로는 2점입니다. 본격물로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호러물로 보기에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없는 적나라한 피떡 묘사만 난무하는 알맹이 없는 작품이었거든요. 잔인한 묘사가 없이 추리 부분을 약간만 보강했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추리 단편집으로 성립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그나저나, 작품을 2개나 읽었는데 이 작가가 왜 천재라고까지 불리우는 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군요. 장편을 읽어봐야 하나?

PS : 잔혹성으로 문제가 된 듯 한데 개인적으로 찬성입니다. 최소한 19금 딱지는 붙어야 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1. 암흑계 GOTH
"나"는 의외로 공통의 취미를 가진 것을 알게되어 친해진 "모리노 요루"가 연쇄 엽기 살인마에게 납치된 것을 알게된다. 유일한 단서는 모리노가 주웠던 연쇄살인마의 수첩. 수첩을 단서로 "나"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데..
주인공들의 인물 설정이 등장하는 첫번째 단편입니다. 연쇄 살인마가 누구인지를 알게되는 추리 자체는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높지만 연쇄 엽기 살인마의 범행 자체가 불필요할 정도로 잔인해서 작품에 몰입하기가 힘들었습니다.

2. 리스트 컷 사건 Wristcut
사람들의 손을 잘라가는 엽기 범죄가 일어나는데 "나"는 우연한 기회로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주인공이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게되는 과정이 그다지 매끄럽지 못하네요. 단서가 너무 적었거든요. 결론을 도출해나가는 추리 자체는 말이 되긴 하는데 지나친 비약이라 생각되고요. 주인공의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를 보여주는 약간의 섬뜩한 결론 빼고는 별로 건질게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추리물로 보기에는 2% 이상 부족한 작품.

3. 개 Dog
마을에 애완동물 실종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나"는 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조사를 시작하고 얼마 뒤 여동생의 덕분에 애완동물들의 시체가 버려진 구덩이를 발견하게 된 것을 계기로 사건의 전모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집에 속한 작품 중 가장 서정적인 작품입니다.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의 단편 중 하나인 "소녀의 기도"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결말은 보다 해피엔딩이긴 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캐릭터의 설정이 이 작품에서만 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추리라는 요소는 없어서 별로 건질건 없네요. "나"는 방관자일 뿐일텐데 말이죠....

4. 기억 Twins
모리노는 불면증에 걸린다. "나"는 그녀의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목에 걸 끈"을 찾다가 그녀가 쌍둥이였고 그녀의 동생이 목을 메고 자살했다는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사건을 보다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그녀의 고향집을 찾은 "나"는 모든 사건의 진상을 알게된다.
음.. "ZOO"의 "카자리와 요코"와 조금은, 아주 조금은 비슷한 설정이랄까요? 진상을 알게 되는 몇가지 단서와 추리는 좋았습니다만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나름 잔잔한(?)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었지만요.

5. 흙 Grave
사람을 생매장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 범인. 그가 다음 타겟으로 납치한 것은 여고생 소녀였다. 그러나 납치 후 자신의 수첩이 없어진 것을 알게된 그는 패닉에 빠지고 다시 사건 현장으로 찾아가게 된다.
시점이 주인공 "나" 에서 연쇄 살인범인 범인의 시점으로 이동한 단편입니다. 시점의 이동이 크게 중요한 작품은 아니지만 범인의 심리묘사는 제법 그럴듯 했습니다. 또 "수첩"을 기반으로 하여 전개되는 추리의 과정들도 괜찮았고 마지막의 결말도 아주 깔끔했습니다. 우연에 기반한 설정이 좀 있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6. 목소리 Voice
엽기적으로 살해된 키타자와 히로코 사건이 발생한 이후, 히로코의 동생 나츠미에게 스스로가 범인이라고 밝힌 고등학생이 나츠미에게 히로코 최후의 목소리가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전해준다. 테이프에 이끌려 나츠미 역시 마지막에 사지(死地)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마지막 작품으로 주인공과 키타자와 나츠미, 다시 주인공으로 세번 시점이 이동하는 작품입니다. 시점 이동이 가장 중요한 트릭으로 사용된 서술 트릭물이기 때문인데 좀 뻔한 트릭이라 사실 중간에 알아낼 수 있긴 했습니다. 그래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끝나는 결말 덕분에 작품이 괜찮게 마무리 된 것 같긴 하네요.

2008/07/17

가타부츠 - 사와무라 린 / 김소영 : 별점 3점

 

가타부츠 - 6점
사와무라 린 지음, 김소영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이 작품은 총 6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입니다. 제목의 사전적 의미로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네요. 작가의 의도는 소박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싶어서 쓴 것이라고 하는데 제목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소박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이지만 뭔가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성격의 소유자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주인공들의 고지식함에 관련된 내용은 비록 소설이지만 일반 소시민이 가질 법한 집착이나 생각들이라는 것이 흥미롭기도 했고요. 소박한 이야기답게 이야기의 스케일도 작아서 마음 편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추리 단편집인줄 알고 구입했는데 추리하고는 거리가 좀 있지만 구입을 후회되지 않을 만큼 재미있고 신선한 이야기들이었다 생각되네요. 별 3개는 충분한 책입니다.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작품별로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첫번째 단편인 “맥이 꾼 꿈”은 유부남 유부녀가 우연찮게 만나 사랑에 빠져 불륜관계가 되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살을 결심하는 이야기입니다.
불륜 관계의 남녀가 남겨지는 가족들을 생각해서 자살을 결심한다는 이야기 전개와 그들의 심리묘사가 참 소박하면서도 드라마틱 합니다. 각자 자살을 꿈꾸며 실행에 옮기는 과정도 흥미진진했고요. 그러나 진부한 멜로드라마적인 설정과 마지막의 급작스러운 해피엔딩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제일 첫 작품이 제일 처지는 작품이라는 것이 좀 의아했습니다.

두번째 단편 “주머니 속의 캥거루”는 쌍둥이 여동생 아코의 뒷치닥거리 때문에 일상이 꼬이는 주인공 다카모리의 이야기입니다. 최후의 순간에 여자친구와 아코 둘 중 한명을 선택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전개인데요. 제목이 의미하는 난폭한 캥거루를 제압하기 위해 캥거루에 주머니를 씌우듯, 아코를 돌봐주려 하지만 외려 그녀가 족쇄가 되어 자유의지를 잃는 과정이 담담하고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소박하지만 희한한 집착. 이 단편집의 명제를 잘 드러내고 있는 단편입니다.

세번째 작품 “역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역 개찰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취미인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이상적인 기다리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 한 여자, 그리고 그녀가 기다린 남자였지만 그녀를 외면해 버린 남자에게 급작스런 살의를 품게 된다는 전개인데요. 독특한 취미가 인상적이고 이 취미를 통해 한 평범한 남자가 살의를 품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표현된 작품입니다. 평범함 속에 비일상적인 설정을 끌어들이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인 작품이기도 하고요. 가장 비일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가장 끔찍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소박하게 전개하는 솜씨가 참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네번째 작품 “유사시”는 아들에게 갑자기 닥쳐올 사고에 대한 강박증에 빠진 한 주부의 이야기입니다. 강박신경증에 대한 묘사도 세밀하지만 그러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반전이 인상적인 소품입니다. 정말로 소박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인데 디테일한 심리묘사로 반전까지 이르는 과정이 마음에 들더군요.

다섯번째 작품인 “매리지 블루 마린 그레이”는 사고로 인해 3년전 이틀의 기억이 없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여자친구의 고향을 찾는데 그 고향 바닷가의 풍경이 기억 나지만 왜 기억이 나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 수 없고 3년 전 그 기억이 없는 날 그 장소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30년도 아니고 3년도 아니고 딱 3일의 기억상실. 정말 소박하다 못해 눈물날 정도인 설정입니다. 3일의 기억 상실로도 사람이 극단적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라는 것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반전도 마음에 들었고요.

여섯번째 작품인 “무언의 전화 저편”은 한 연립주택 앞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당시 피해자 옆집에 살던 다루미 간토라는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비명소리와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을 무시하고 나와보지도 않은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현대 사회의 매정한 세태를 그리는 듯 하지만 우리 옆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와닿는 점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중간중간의 복선을 통해 마무리되는 결말도 깔끔하고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2008/07/13

외딴섬 퍼즐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선영 : 별점 3점

 

외딴섬 퍼즐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에가미 지로와 아리스는 에이토 대학 추리 동호회의 홍일점인 아리마 마리아의 초대로 아리마가의 별장이 있는 섬으로 여름 휴가를 떠나게 된다. 목적은 마리아의 할아버지인 아리마 데츠노스케가 섬에 숨겨두었다는 보물을 찾기 위함. 섬에 휴가 때마다 모이는 가족들과 손님들이 모두 도착하고 즐거운 휴가가 시작되나 곧바로 마리아의 고모부와 사촌누나가 밀실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연달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에가미 지로는 최후의 순간에 진상을 꿰뚫고 아리스에게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게 되는데…


국내에 두번째로 소개된 학생 아리스 시리즈 작품입니다. 전편인 "월광게임"의 경우 아마츄어 미스터리 매니아의 데뷰작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는데 이 작품은 첫 작품에서의 단점을 보완하여 확실히 업그레이드했네요. 물론 클로즈드 서클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고립된 섬이라는 무대와 일본 추리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부자 가문의 복잡한 인간관계라는 기본 설정은 골든 에이지 시절의 영국쪽 퍼즐 미스터리와 고전 일본 추리물의 영향을 부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뻔했지만 저도 이런 고전적 설정을 무척 좋아하기에 굳이 단점으로 꼽기는 어렵겠죠? 뭐 이런게 정통 아니겠습니까 ^^

작품은 크게 주어진 단서를 이용하여 섬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이야기와 더불어 3건 (피해자는 4인)의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단 보물찾기 이야기는 암호 트릭으로 꽤 잘 만들어진 트릭입니다. 작위적이긴 하지만 기본 개념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독자도 함께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반면 살인사건 트릭은 그냥저냥하더군요. 밀실 트릭은 좀 대충 만든 것 같은 생각이 들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고 다이잉 메시지는 그냥 그러한게 있었다 수준이거든요. 그 외에는 별다른 트릭 없이 “범인이 누구인가?” 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등 트릭물로 보기는 좀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떨어진 지도에 남은 자전거 바퀴 자국을 토대로 하여 범인을 이끌어내는 전개는 좋았습니다. 이치에 합당할 뿐더러 전개도 합리적이고 수긍할만 했기 때문에요. 에가미 지로가 범인을 밝히는 마지막 장 앞에 “독자에 대한 도전”이 있는 것이 만용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공정하면서도 치밀한, 잘 짜여진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그러나 범인이 단 한명으로 좁혀지는 결과를 낳은 것은 굉장히 아쉬웠어요. 전작 “월광게임”이 초딩스러운 불합리한 동기 부여로 작품의 수준이 바닥이었던것에 비교한다면 이번에는 범행의 동기 부여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진일보하여 설득력을 갖추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득력을 제공하는 부분이 너무 자세하게 표현되어 버려서 범행의 과정이나 트릭은 몰라도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었어요. 닫힌 공간에서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면 “누가 범인인가?” 부분을 좀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캐릭터간의 갈등을 보다 디테일하게 묘사했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마키하라 준지 이외의 등장인물들은 갈등 자체가 묘사되지 않아서 마지막 부분에서 동기가 확인되자마자 김이 확 빠져버렸습니다.

그 외에도 실제 범행이 아리스가 이야기하듯 “철인 3종 경기” 같은 체력이 필요했다는 점, 어차피 복수극이었다면 에가미와 아리스 같은 외부 손님이 없는 다른 시기 (몇 년 뒤가 되더라도) 에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들도 보완해야 할 점입니다. 보물찾기 트릭도 단서가 너무 명확한 장소를 나타내고 있어서 구태여 암호를 풀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몇년간 찾았으면 결국 발견하지 않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시대가 많이 흐른 탓이기도 하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김전일" 스러운 전개 (혐오스러운 범행때문에 발생한 눈물의 범죄. 동정할 수 밖에 없는 범인 등)가 약간 거슬리기도 했고요.

아쉬운 점들 때문에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뭔가 2% 부족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전작보다는 확실히 좋아졌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계속 발전하는 모습이니 다음 작품 “쌍두의 악마”는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몇가지 문제점을 보완하여 그야말로 확실한 정통 고전과 같은 맛을 충분히 전해주지 않을까 생각되어 기대가 큽니다. “쌍두의 악마”는 그렇잖아도 걸작이라는 평도 많으니 올 여름 시즌 지나기 전에 나와주면 좋겠네요.

2008/07/12

왓치맨 - 알란 무어 / 정지욱 : 별점 4점

 

왓치맨 Watchmen 2 - 8점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시공사

악당들과 싸우던 슈퍼 히어로들은 킨 법령에 의해 거의 대부분은 은퇴 수순을 밟는다. 그러던 어느 날 "코미디언"이란 히어로가 변사체로 발견되고, 예전 동료의 한명은 "로어샤크"는 예전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히어로들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것을 서서히 간파하게 된다. 조사의 와중에 "로어샤크"는 경찰에 체포되나 그를 도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는 "나이트 아울"은 그를 탈옥시키고 결국 모든 사건과 음모의 주동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데...

휴고상을 수상하는 등 너무나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걸작이라는 평이 자자했던 왓치맨이 드디어 국내 정발되어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평단의 평 처럼 대단한 예술성을 느꼈다고 하긴 어렵지만 확실히 재미있더군요. 단순한 권선징악적 이야기가 아닌 복잡한 음모가 이면에 펼쳐지며 절대적으로 선한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슈퍼 히어로물이라는 점에서 슈퍼 히어로물을 잘 아는 성인을 위한 만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의 지구 평화를 지키기위한 명목하에 벌어진 거대한 음모에 대한 히어로들의 암묵적인 동의, 그에 반발하는 로어샤크의 제거라는 극단적인 결말은 무척 인상적이었고요. 절대 선이 존재하지 않는 디스토피아적인 SF, 그리고 다른 차원의 지구와 세기말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겠지만 친숙한 슈퍼 히어로물에 이러한 세계관을 도입한 아이디어는 높이 사 줘야죠.

아울러 추리 애호가로서는 "추리적" 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왔습니다. 히어로 연쇄 살인사건이라 할 수 있는 중심 사건과 그것을 조사해 나가는 로어샤크의 모습은 하드보일드 물을 연상케 했거든요. 수사 과정 자체는 별거 없는 탐문수사에 그치지만 거대한 음모와 그것을 밝혀나가는 과정은 꽤 흥미진진하고 나름 하드보일드 전통에 충실하다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래픽 노블"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정도로 미국 만화 특유의 선을 살리면서도 정교하게 그려지며 화려한 채색이 덧붙여진 데이브 깁슨의 그림도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세부적인 디테일 하나를 놓치지 않는 치밀함 역시 빛을 발하고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작품에 대한 방대한 정보와 해석이 넘쳐나는데 그러한 세부 정보가 없이 처음 접하더라도 작품의 수준은 평범 이상을 보여주는 뭔가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를 종합해 보았을 때 별 4개는 충분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이번에 영화화되어 개봉할 예정이라는데 스토리를 영화 하나로 압축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예상되긴 하지만 무척 기대됩니다.

파라노이아 - 조셉 핀더 / 박찬원 : 별점 2점

 

파라노이아 - 4점
조셉 핀더 지음, 박찬원 옮김/로크미디어

애덤 캐시디는 대기업 와이엇의 하급 직원으로 해고된 직장 동료를 위해 시스템을 조작해 거액을 융통했다가 들통난다. 그런 그에게 사장인 와이엇은 경쟁사 트리온 시스템에 입사하여 고급 정보를 빼내올 것을 명령하며 그 명령을 거부할 경우 애덤은 곧바로 감옥에 갈 상황에 처해 어쩔 수 없이 그 제안을 수락한다.

와이엇은 그에게 엘리트 사원으로 보이게끔 다양한 스파이 훈련을 시키고 갖가지 내부 정보를 알려 주고 그 덕에 애덤은 트리온에서 승승장구하며 트리온 사장 고더드의 신임을 받고 점차 진정한 인격자 고더드의 인품에 매료되어 와이엇을 배반할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드디어 추리 / 호러 관련 카테고리의 300번째 포스트입니다. 리뷰만을 다루므로 300권째 관련 카테고리 리뷰가 되겠네요. 6년여만에 300권째 포스팅이니 1년에 50여권씩 읽었다고 할 수 있는데 참 감개무량합니다^^  리뷰에 앞서, 일단 이 책도 역시 국내 굴지의 추리 사이트 "하우미스테리"의 이벤트를 통해 얻게 된 책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또한 하기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하세요.

어쨌건, 닥치고 리뷰부터 하자면 이 책은 줄거리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산업 스파이물" 입니다. 산업 스파이로 선택된 주인공의 이력이 좀 특이하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이야기이죠. 그런데 읽으면서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치밀한 부분보다는 예상된 수순에서의 전개와 결말을 이끌어 내기 위해 무리수를 많이 둔 느낌이 강하거든요. 또한 와이엇과 트리온이라는 두 회사를 절대악과 절대선에 비유하여, 주인공이 절대선 앞에서 고뇌하는 전개 역시 많이 뻔하고요. 킬러가 암살 대상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와 별로 다를 것도 없었거든요. 애덤의 승승장구하는 과정 역시 현실에 기반하지 못한 만화같은 느낌이 물씬 묻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반전의 허탈함이 가장 문제로 보입니다. 절대선이 사실은 절대악을 능가하는 절대악이었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설득력이 떨어졌거든요. 작중에서 꽤 산전수전 다 겪은 여우로 나오는 와이엇이 고더드의 가식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정도 업력이면 이미 업계에 소문이 나도 엄청나게 퍼진 것이 당연할텐데 말이죠. 이러한 세세한 부분에서 작중 계속 보여주는 고더드의 연기(?)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못하기에 반전 자체의 충격은 잠시 있지만 그것이 유지되지 못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 정도로 독자를 설득시키려 하는 건 무리죠. 무협지에서 뜬금없이 죽은 아버지의 원수가 사부였다! 라는 정도 수준이랄까요.

물론 무리수를 두긴 했지만 결말의 반전 덕분에 스토리가 명쾌하게 정리되고 주제의식을 드러내긴 합니다. 그러나 반전 직후 작가가 주인공 애덤의 시각을 빌어 말하는 기업과 직원과의 관계, 즉 직원은 기업에 속한 소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직원은 어떻게 보면 월급을 주는 회사의 소유물이 맞기 때문이죠. 그게 싫다면 회사를 다니지 말고 평생 자유인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던가... 때문에 이야기 자체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지만 직장생활을 10년이상 한 저에게는 환타지 소설과 같이 현실성 없는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시마과장"이 산업 스파이로 나오는 기업 환타지랄까요... 아니, 차라리 시마과장 쪽이 더 현실감 있어 보일 정도에요.

한마디로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릴러로 별점은 2점입니다. 제가 직장인이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결코 공짜로 읽었다고 생각보다 높은 점수를 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책 뒷커버를 보면 영화화가 진행중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며 영화화한다면 나름 2시간 동안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긴 한데 정작 imdb에는 관련 정보가 뜨지 않는군요. 판권만 팔린 것 같은데 이런건 과장 광고가 아닌가요?

2008/07/11

이중구속 - 크리스 보잘리언 / 김시현 : 별점 4점

이중구속 - 8점
크리스 보잘리언 지음, 김시현 옮김/비채

로렐은 대학 2학년 때의 어느 가을날 취미이던 싸이클링을 즐기다 버몬트 산길에서 두 명의 괴한에게 강간당할 뻔한 뒤 아픈 기억과 트라우마를 가지고 노숙자 쉼터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중 노숙자 쉼터 운영자인 캐서린의 부탁으로 바비 크로커라는 노숙자의 유품인 사진을 정리하던 중 사건이 있었던 그날 그 장소의 자신이 찍힌 사진을 발견하고 노숙자 바비의 정체와 사진 뒤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는 작업에 빠져든다

탐색 작업 중 바비의 누나로 보이는 파멜라 부캐넌이라는 노부인이 사진을 되찾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고 로렐은 갖은 방해공작을 이겨내어 사진이 가르쳐 준 장소에서 무언가를 찾게 되는데...

추리 동호 사이트인 "하우미스테리"의 이벤트를 통해 입수하여 읽게 된 장편입니다. 최근들어 장편소설은 읽은 기억이 없는데 이 작품은 무척 독특한 부분이 많고 재미도 있어서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즐겁게 읽을 수 있었네요.

우선 출판사에서 반전이 대단하다고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반전은 어떻게 보면 "살인자들의 섬”과 좀 유사한 반전으로 어느 정도 예상은 가능한 편입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밝혀지는 충격적인 요소와 진상은 놀라운 수준이라 반전물로의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일종의 서술 트릭이기는 한데 다른 서술 트릭물과는 달리 전편을 통틀어 해당 반전을 합리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한 여러가지 장치들이 효과적으로 쓰였다는 것이 차이점으로 충격과 합리성을 같이 지녔다는 것이 대단한 점이겠죠. 챕터마다 앞부분에 짤막 짤막하게 등장하는 정신과 의사의 진단 내용,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대사와 묘사 속에 숨겨져 있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정말 치밀해서 감탄을 자아내거든요. 그만큼 설득력이 있기도 하고요.

이외에도 추리 애호가로서 반가왔던 것이 로렐의 사진에 대한 치밀한 추적 과정이었습니다. 꽤 합리적인 추리적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거든요. 또한 로렐에 대한 심리묘사는 반전과도 많은 연관이 있기에 무척 중요한 부분이기도 한데 감정이입하면서 읽을 수 있도록 잘 처리했더군요.

무엇보다도 "위대한 개츠비" 라는 고전을 작품 안에 실질적으로 부활시켜 인용하며 작품의 주요 스토리로 끌어가는 이야기 전개 능력이 너무나 탁월하더군요. 이런 것도 일종의 팩션이라고 봐야 할까요? "리터러리 스릴러"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것 같은데 아무튼, 소설적으로 처음 시도되는 아주 특이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하나의 작품 속에서 널리 알려진 고전이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융합되고 현실과 허구를 잘 넘나드는 것이 작품과 완벽하게 어울렸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바비 크로커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과정이 좀 장황하고 그 정체가 그다지 작품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뭔가 엄청난 진상과 수수께끼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데 너무 초반에 정체를 드러낸 감이 없잖아 있거든요. 아울러 지나치게 두껍다는 것 정도되겠습니다. 뭐 그만큼 많은 설명과 묘사가 들어가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무척이나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소설 자체만으로도 뛰어나지만 추리와 스릴러를 넘나드는 쟝르문학적인 가치도 충분하고요. 추리 팬이나 쟝르문학 팬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여름 더위를 식히는데 정말 제격인 일급 소설이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번역은 덤이고요. 별점은 4점 주겠습니다. 결코 공짜로 읽게되어 높은 점수를 준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읽을 기회를 주신 하우미스테리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과연 로렐이 찾은 상자 안에 정말로 들어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제목의 진정한 뜻이 뭘까요? 로렐의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한데...

2008/07/07

탐정 갈릴레오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억관 : 별점 2.5점

 

탐정 갈릴레오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재인

"용의자 X의 헌신"의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가 등장하는 연작 단편집입니다. 전에도 설명했지만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작품은 그래도 단편 연작이고 평도 괜찮아 구입하게 되었네요.

일단 천재 물리학자라는 주인공 캐릭터에 걸맞게 과학 수사물로 보일 만큼 과학적, 물리학적 이론에 대한 설명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지식이 실제 사건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냐 하면 꼭 그런것은 아니라는 것이 약점입니다. 때문에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좀 부족한 약간은 애매한 성격의 작품집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작품이 대부분이었고 말이죠. 솔직히 소설이라는 쟝르보다는 영상물이나 만화에 더 어울리는 소재라 생각됩니다. (Q.E.D 스러운 트릭도 몇개 눈에 띄였고요) 

물론 시니컬한 천재 유가와를 다시 보는 매력은 존재하지만 이 캐릭터 역시 지나칠 정도로 스테레오 타입이라 지루한 점이 없잖아 있네요. 왓슨 격의 캐릭터 구사나기 역시 뻔하고요.

그래도 이만큼의 다양한 과학적 지식을 조사하여 묘사한 작가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고,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해서 후속작도 기대가 되네요. 이정도로 쉽게, 빠르게, 재미있게 읽힌다면 추리물로서의 쾌감이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쟝르문학 나름의 가치는 충분하겠죠. 별점은 2,5점입니다.

참고로, 개인적인 베스트는 교과서적인 미스테리 과학 수사물 "이탈하다" 였습니다.

1장 타오르다 :
한 거리에서 발생한 석유통의 자연발화사건으로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친다. 경시청 수사 1과의 구사나기는 미궁의 자연 발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테이토 대학 동기인 물리학자 유가와를 방문하여 사건 해결을 요청한다.
방 바꾸기 트릭이라던가 나름의 서술 트릭은 좋았지만 기본적인 범행 자체의 현실성이 너무 많이 떨어져 보입니다. 주요 소재인 "레이저"라는 장치가 나름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되기는 했지만 그 위험성을 놓고 볼 때 다른 시한장치 쪽이 더욱 안전하고 현실적이지 않았나 싶거든요.

2장 옮겨 붙다 :
중학생들이 쓰레기로 가득찬 저수지에서 발견한 알루미늄 판을 이용하여 만든 데스마스크를 학교 축제에 제출하고, 그 데스마스크가 실제 실종된 치과의사의 얼굴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저수지에서 치과의사의 시체를 찾아낸 경찰은 유일한 단서인 알루미늄판으로 만들어진 데스마스크의 생성 과정을 밝혀내기 위해 구사나기는 다시 유가와를 만나는데...
데스마스크가 주요 소재이긴 하지만 실제 사건을 밝혀내기 위한 가장 큰 단서는 아니더군요. 트릭이 기발한 것은 아니라서 추리적 재미는 떨어지지만 제목에서도 묘사된 데스마스크의 생성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좀 더 해당 현상이 추리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좀 남네요.

3장 썩다 :
한 자린고비 슈퍼마켓 주인이 욕조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고. 그러나 가슴 근처 조직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괴사한 것 때문에 진상 규명을 위해 구사나기는 다시 유가와를 찾아간다.
주요 소재인 "초음파"를 이용한 범행 도구에 관련된 트릭이긴 한데 어차피 증거 (조직의 괴사) 가 너무 뚜렷이 남는지라 당쵀 왜 이러한 도구로 살인을 저질렀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용의자도 특정하는 것이 가능하고 알리바이도 애매한 이상, 흉기가 규명되지 않더라도 수사에는 무리가 없어 보이기에 추리물로는 빵점짜리로 생각됩니다.

4장 폭발하다 :
쇼난 해안 해수욕장에서 벌어진 폭발사고로 한 여성이 사망한다. 그 뒤 한 남자가 자기 방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구사나가는 피해자가 테이토 대학 졸업생으로 테이토 대학 주차장의 사진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단서로 유가와를 찾아가 탐문한다.
두개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주요 소재인 "나트륨"과 관련된 사건은 폭발사고, 그리고 또 하나의 살인사건은 첫번째 사건과 연관된 부수적인(?) 사건입니다. 그래도 두번째 사건을 통해 첫번째 사건과의 연관성을 밝히고 동기와 범인을 알아내는 전개가 매끄럽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단편으로서의 완성도는 높습니다. 과학적 이론이 실제 범행에 실질적으로 응용되는 점도 높이 살 만 하고요. 그러나 위험물질에 대한 보관 관리의 문제나 실제 범행 도입 시 행여 있을지 모르는 위험을 너무 축소하여 대충 넘어간 것은 좀 거슬리더군요. 그래도 꽤 완성도 높은 단편이었습니다.

5장 이탈하다 :
한 살인사건에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보험 영업 사원. 그의 유일한 알리바이는 범행 시간대에 회사일을 땡땡이치고 인적드문 강변에서 차를 주차시켜 놓고 낮잠을 잤다는 것이지만 목격자는 전무한 상태였다. 그러나 해당 시간대에 그 강변과 차가 도저히 보일 수 없는 위치의 아파트에서 고열로 아파하던 한 소년이 "유체이탈"로 해당 차를 목격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밝혀져 그 그림의 단서 채택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 구사나기는 유가와의 도움을 요청한다.
흥미로운 소재였습니다. 전 작품을 통틀어 과학적 이론이 범행과 아무 관련없는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인지 억지스러운 트릭보다는 관련된 이상 현상 (여기서는 "유체이탈") 을 과학적으로 밝혀나가는 "미스터리 수사단" 같은 전개를 보여주는데 꽤 현실성 있고 공정한 단서의 제공으로 추리물로서의 가치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빛의 굴절"이라는 꽤 잘 알려진 현상을 통하여 이론적으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타당하고 설득력있어 보였고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2008/07/05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 - 마이클 핸런 / 김창규 : 별점 2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과학 - 6점
마이클 핸런 지음, 김창규 옮김/이음

형의 권유로 읽게 된 과학서적입니다. 제목 그대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내용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과학적 이야기를 쉽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방대한 우주 안에 있는 또다른 생명체나 생각하는 기계, 우주의 탄생 및 종말, 시간 여행 및 공간 이동 등 소설안에 등장하는 다양한 과학적 이론을 재미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대충대충 썼다고 느꼈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나름 굉장히 심오한(?) 물리학적, 과학적 틀 안에서 쓰여졌다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SF 팬들이 깜빡 죽는 것도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작품의 수준을 떠나 꾸준히 사랑받는, 나름의 컬쳐가 된 작품은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른 법이겠죠. 

그러나 아무리 쉽게 쓰여진 책이라고 하더라도 저에게는 어렵더군요. 제가 워낙 과학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타입이라서요. 기억에 남는 내용이라곤 시간 여행과 공간 이동에 관한 재미난 실례와 이른바 "평행우주"에 대한 이야기 뿐이고 실질적인 물리학적 이야기는 단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네요.

그래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작품의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저는 완독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겠습니다.

2008/07/01

위고 카브레 1,2 - 브라이언 셀즈닉 / 이은정 : 별점 3점

 

위고 카브레 2 - 6점
브라이언 셀즈닉 글.그림, 이은정 옮김/꿈소담이

고아 위고 카브레는 번잡한 파리의 기차역에 살고 있다. 위고의 고단한 삶의 목적은 사고로 죽은 아버지가 남긴 자동 인형 수리를 마치는 것. 그래서 위고는 행방불명된 삼촌의 시계지기 일을 대행하고 때때로 도둑질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와중에 책을 좋아하는 소녀 이사벨과 기차역에서 장남감 가게를 하는 괴팍한 할아버지와 복잡하게 얽히게 된 위고는 이사벨의 도움으로 마침내 자동인형을 복구하는데 성공한다. 자동인형을 동작시키자 인형은 곧바로 수수께끼와 같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일종의 그림책입니다. 2008년도 칼데콧 상을 수상한 작품이네요. 조금 조사해 봤더니 칼데콧 상은 가장 뛰어난 그림책의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주는 상이라고 하는군요. 제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쟝르에 혹해있기도 하고 작품의 소개글이 너무 근사한 나머지 충동적으로 구입해 읽어본 책입니다. 책 내용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브라이언 셀즈닉의 디테일한 연필화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읽고난 감상은 뭐랄까.. 좀 속은 느낌입니다. 1권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는데 2권에서 너무 쉽게쉽게, 엄청난 해피엔딩으로 풀어버리는 바람에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고 너무 뻔해지거든요. 동화에서 너무 큰 걸 기대한 제가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만 1권은 정말 굉장히 좋았기에 2권의 결말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더군요. 게다가 별 내용도 없는데 하드커버 양장본 1,2권으로 나온 형태는 용서가 안됩니다. 원서는 한권이던데 말이죠. 국내 종이질이 더 후진가?

어쨌건 저에게는 내용보다는 그림 쪽이 훨~씬 가치가 많은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좀 돈이 아깝기도 하네요. 그래도 조르주 멜리에스라는 실제 영화계의 선구자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팩션적 요소와 더불어 꿈(?)과 희망(?)을 전해주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화로서 부족함은 없습니다. 애니메이션같은 연출을 보여주는 그림도 굉장히 좋고요.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보기에는 많이 유치했기에 마케팅을 좀 잘못한거 같긴 한데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라면 충분히 즐길거리가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그래서 무난하게 3점 줍니다. 제가 나이가 들은게 잘못이지 책 자체는 괜찮았으니까요.
 
아울러 영화화가 계획되어 있다고 책 띠지에서 광고는 하고 있는데 최근 어떻게 구현될지 좀 궁금해지는군요. 영화로 만들기에는 스케일이 많이 딸려보이거든요. 뭐 대단한 액션이나 효과가 있는 것두 아니고.... 차라리 브라이언 셀즈닉의 일러스트를 그대로 살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