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황매(푸른바람) |
현재 최고로 잘 나가는 신세대 추리 작가 오츠 이치의 작품도 드디어 국내 출간이 시작되었네요. 표제작을 비롯해서 10편의 독특한 작품들이 실려있는 단편집입니다.
읽어보니 역시나 괜찮더군요. 호러에서 추리, 블랙 코미디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실려있어서 작가의 팔색조같은 매력을 즐기기에는 아주 좋았고, 재미는 물론 기발함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주가 탁월해서 "과연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군!" 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천재"라고 부를 수 있을지 판단하기는 조금 이르지만, 이 단편집 하나만으로도 다양성과 기발함 측면에서는 합격점을 주기 충분했습니다.
또 작가가 독자의 심리를 잘 건드릴 줄 안다는게 굉장히 돋보였습니다. 단적인 예로 목차 순서 역시 심리적 충격을 극대화 하는 의도로 짜여진 것으로 보였거든요. 작품별 심리적 충격의 강도를 강-약-강-약-중-강-약-중-중-약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순서로 배치하여, 충격이 강한 작품이 연속해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데, 확실히 독자 마음을 가지고 놀 줄 아는것 같아요.
하지만 신세대 일본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가장 큰 문제점인 만화적인 상상력에 의존한 부분이 높다는 점, 그리고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일부러 흐리는 듯한 전개가 많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발하나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만화나 TV 시리즈의 한 편이라면 모를까 소설에서 써 먹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 싶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결말이 좀 약한것 같은 느낌도 들고 말이죠.
그래도 최근 읽어 보았던 신세대 일본 작가들 작품 중에서는 가장 새롭다!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섬뜩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다양한 이야기는 폭넓은 독자층을 수용하리라 생각되며 책의 번역과 장정도 괜찮으니 한번 구입해 보셔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1. Seven Rooms
두 남매가 갑자기 유괴되어 어딘지 알 수 없는 방에 갇히게 된다는 호러 단편. "큐브"와 굉장히 유사한 전개지만 스케일은 대폭 낮추고, 수수께끼 역시 별다른게 없습니다. 하지만 동생의 체구가 작은 점을 이용하여 한정적인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나가는 솜씨가 아주 돋보였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되는 피해자들의 운명, 기발한 탈출방법을 꽤 그럴듯하게 묘사하거든요. 그리고 감정을 스멀스멀하게 건드리는 섬찟함 역시도 매력적이었고요. 무지무지하게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는 점은 약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2. SO-far
부부싸움끝에 아이가 심리적으로 치명상을 입는다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작품. 이 작품집 내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무난한 수준의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특출난건 없다는 뜻인데... 별점은 2점입니다.
3. ZOO
표제작으로 사실 표제작이 될 정도로 최고 수준의 작품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살인자의 심리묘사와 생활을 극한의 디테일로 묘사하는 작품인데 작가가 정말 이 작품을 쓰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들여 쓴 티는 나지만 결말이 좀 아니더군요. 중간까지는 확실히 잘 달려줬는데 말이죠. 뭐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무난한 결말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4. 양지의 시
일종의 SF로 생명 창조에 관한 이야기로 젤라즈니와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동급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정통 SF로 보기에는 여러가지 부분에서 좀 애매한 부분이 있고 만화 등에서 유사 설정을 따온 느낌이 강하다는 것은 감점 요소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5. 신의 말
주인공이 지닌 말의 힘, 그것이 거의 전지전능하다는 설정의 작품으로 약간 "스멀스멀" 계열입니다. 주인공의 폭주와 그럴싸한 이야기 전개는 괜찮았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계속 들더군요. 만화에서 본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너무 막 나간것 같기도 해서 조금 감점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6. 카자리와 요코
쌍동이 중 한명은 어머니에게 엄청난 학대를, 한명은 과분한 사랑을 받는 좀 전형적이고 뻔한 설정의 작품. 그러나 학대받는 아이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솜씨가 탁월하고 "스멀스멀"한 느낌이 잘 묻어나와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말부분의 반전(?)과 헤피엔딩이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본다면 좀 이색적이라 독특하기도 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7. Closet
시동생 살해 혐의를 받는 주인공이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정통 추리물 형태로 전개한 작품으로 추리 매니아로서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결말이 시시한 것은 안타깝지만 작품 특성상 어쩔 수 없었겠죠.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은 작품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8. 혈액을 찾아라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이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 벌어지는 가족들간의 소란가득한 슬랩스틱 블랙 코미디. 장르 속성에 충실하게 굉장히 웃깁니다. 정말이지 작가의 폭넓은 작품 범위에 깜짝 놀랐어요. 또 사건의 결말에서 밝혀지는 진상이 의외로 정통 추리물에 가깝다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었고요. 여러모로 즐길거리가 많았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9. 차가운 숲의 하얀 집
클라이브 바커 스타일의 기괴한 환타지물. 바커 못지않은 엽기적 상상력이 표현된 작품인데 "스멀스멀"의 도가 너무 지나쳤습니다. 도저히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결말의 반전이 있긴 하지만... 별점은 1.5점입니다.
10.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
하이잭킹당한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블랙 코미디. <혈액을 찾아라>와 유사하지만 조금은 더 무겁고 진중한 작품입니다. 황당하고 웃기면서도 이색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딱 한가지, 상투적인 결말은 아쉽더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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