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7/07/22

주정꾼 탐정 - 에반 헌터 / 김병선 (자유추리문고 50) : 별점 3점

드디어 어렵사리 구하게 된 자유추리문고의 "주정꾼 탐정" 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네요^^


작품의 작가 에반 헌터는 "87분서" 시리즈의 작가 "에드 멕베인"입니다. 에드 멕베인은 거장이기는 하지만 워낙 다작인 탓에 실망스러웠던 것도 제법 있었죠. 특히 후반기 작품들은 많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이 작품은 작가의 초기작으로 당시 유행의 끝자락이던 초기 하드보일드 정서를 제대로 전해주는 것과 동시에 정통 본격 추리물스러운 점이 많아서 마음에 들더군요. 서정적인 문체와 묘사도 아주 인상적이었고요. 하드보일드계의 서정시인 로스 맥도널드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주정꾼 탐정인 주인공 커트 캐넌의 캐릭터가 무척 독특한데 알콜중독 룸펜 탐정으로 "800만가지 죽는 방법"의 매튜 스커더의 형님뻘로 로렌스 블록이 많은 부분 영향을 받아서 매튜 스커더를 창조한 것은 확실합니다 . 탐정 면허증도 없는 알콜중독자로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유사한 수준을 넘어서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매튜 스커더보다는 바람난 아내를 응징하려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커트 캐넌이 더 설득력있게 다가왔습니다. 역시 아류가 원조를 뛰어넘기는 힘든 법이에요.

그러나 8편의 단편이 다 추리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을 뿐더러 작품별 편차도 좀 있고, 작가의 히트작인 "87분서" 시리즈와 유사한 스토리, 분위기가 반복된다는 것은 단점이기는 합니다. 특히 몇몇 작품의 세부 묘사는 굉장히 비슷하더라고요. "대중소설" 작가인 에드 멕베인이기 때문인지 거의 모든 편에서 처음 만난 여성과의 정사가 그려지는 등의 통속적 요소도 거슬리는 점이었고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기다렸던 만큼,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를 전해주기에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명작이나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할 수 있지만 추리소설 황금기 막차(?)의 느낌은 잘 전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8편의 단편 중 개인적인 추천작은 <다시 만남>으로 추리적인 요소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제일 마음에 들더군요. "주정꾼 탐정" 으로서의 캐릭터가 가장 잘 살아있는 다른 추천작이라면 "나도 산타클로스"를 꼽겠습니다.

1. 떠나지 않는 유령 (Die Hard)
커트 캐넌은 한 남자가 마약중독에 빠진 자기 아들을 구해달라는 의뢰를 받지만 거절한다. 그러나 남자가 자기 눈 앞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사건 수사에 뛰어든다.
아마 커트 캐넌 시리즈 제 1작이겠죠? 뉴욕 뒷골목의 묘사와 인물 묘사가 일품이긴 한데 범인이 너무 쉽게 드러나는 약점이 있더군요.

2. 죽은 사람의 꿈 (Dead Men Don't Dream)
소꼽친구 찰리의 장례식에 참석한 커트 캐넌은 다른 친구들로부터 그 지역 건달들에게 상납금을 내지 않아 찰리가 살해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건달 소탕에 나선다.
하드보일드 액션물로 커트 캐넌이 동네 건달들과 한판 벌이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전체적으로는 마이크 해머스러운 느낌으로 추리적으로 특기할 것은 없네요.

3. 프레디는 그곳에 (Now Die in It)
지인 루디가 처제 베티의 임신 사실을 고백하며 상대 남자가 누구인지 밝혀줄 것을 의뢰한다.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베티가 살해당한 뒤 사건 수사에 나서게 되는데...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추리물. 룸펜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수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루 아처 시리즈 단편과 꽤 유사한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범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4. 착한이와 죽은이 (Good and Dead)
룸펜 친구 조이가 살해당한 뒤 커트는 그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어서 살해당한 것이라는 중국인 칭크의 말을 듣고 관련 인물 조사에 나선다.
한여름 더위의 묘사가 탁월한 작품. 역시 "경관혐오"의 작가 답다는 느낌이 물씬 나더군요. 추리적으로는 별다를게 없고 관련 사건의 연결고리가 너무 쉽게 드러나는 단점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지만 묘사가 정말 좋아서 읽는 재미 만큼은 끝내줬습니다.

5. 나의 죽음 (The Death of Me)
커트 캐넌은 신문에서 그가 죽었다는 기사를 읽은 뒤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나선다.
커트 캐넌이 드디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시즌의 이야기로 내용은 갱들의 세력 다툼이 대부분이라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팜므파탈, 갱, 킬러 등 하드보일드 액션물의 모든 요소가 등장해서 스케일이나 캐릭터에서 영화적인 느낌을 많이 전해주기는 하는데 뭔가 좀 어수선했고요. 아무래도 단편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소재가 아니었나 싶네요.

6. 나도 산타클로스 (Deadier Than the Mail)
커트 캐넌은 유년시절 친구 키트 오드닐의 부탁으로 생활보호 대상자들의 복지수표 도난 사건 수사에 착수한다.
영문 원제가 너무 범인을 뚜렷이 암시하고 있으며 범행이 우발적이고 좀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추리적으로 문제점은 많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묘사가 마음에 들은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맹점을 찌르는 맛이 좋아서 추천하고 싶네요.

7. 다시 만남 (Return)
커트 캐넌에게 헤어진 옛 아내 토니가 다시 찾아와 새출발 할 것을 약속하고 그에 고무된 커트 캐넌은 부랑자 룸펜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탐정일을 제대로 시작할 것을 결심한다.
커트 캐넌 시리즈의 핵심 인물인 전처 토니가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정통 하드보일드적인 냄새도 나면서도 여러가지 곁가지 설정들이 양념처럼 재미를 더하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재미도 재미지만 커트 캐넌의 심리 묘사가 특출나다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범인의 공작이 너무 얄팍하지 않나 싶은 생각은 들지만 (예를 들자면 저같으면 확실한 알리바이 공작을 하고 있었겠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8. 거리에 내리는 주먹비 (The Beating)
룸펜들을 노리는 테러가 연달아 발생하고 결국 한명이 살해당하게 된다. 경찰 수사를 믿지 못하는 커트 캐넌은 스스로 미끼가 되어 밤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하는데...
역시나 여름 묘사가 발군인 단편으로 진상이 밝혀지기까지의 조사과정이 허술할 뿐더러 단서없이 함정수사(?)로 범인을 잡는 결말이라 조금 시시했어요. 커트 캐넌과 부랑자 이웃간의 애정이랄까... 하는 감정만큼은 독특하긴 했으나 그냥저냥한 평작으로 생각됩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