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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2019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16차, 열 여섯번 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입니다. 이글루스 블로그도 어느덧 고등학생 레벨에 진입하였군요. 감개무량합니다.

리뷰에 대해 숫자로 정리해보면, 2019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48 (40)권, 기타 장르문학 1 (3)권, 디자인 or 스터디 4 (0), 역사서 15 (9)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11 (18)권, 기타 도서 18 (21)권으로 모두 97 (91)권입니다 (괄호는 작년).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이 정도면 취미가 독서라고해도 부끄럽지는 않겠죠. 또 올해에는 책 출간과 같은 개인사로 독서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는데, 내년은 올해보다는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19년 베스트 추리소설 :
<<블러디 프로젝트>>
올해의 베스트는 바로 <<블러디 프로젝트>>입니다. 문체와 같은 작품 외적인 문제로 약간 감점해서 별점은 3.5점이지만 내용과 완성도 모두 빼어나며, 재미 뿐 아니라 생각해 볼만 한 메시지를 함께 전해주는 좋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 워스트 추리소설 :
<<살인 카드 게임>>
올해 읽었던 추리 소설들은 처참한 수준의 작품이 많았습니다. 47편의 작품 중 평균 이하를 의미하는 별점 2점 이하의 작품이 30작품이나 될 뿐만 아니라, 졸작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별점 1.5점 이하의 작품은 무려 15편이나 되거든요. 읽은 작품 중 졸작 비중이 31%나 되다니, 무척이나 가혹한 한 해였어요. 심지어 졸작 오브 더 졸작, 정말로 종이가 아깝고 나무에게 미안한 별점 1점의 작품도 <<귀신나방>>과 <<살인 카드 게임>>의 두 편이나 되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엉망이지만 올해의 워스트로는 <<살인 카드 게임>>를 선정합니다. 작가의 이름값이나 출판사의 홍보 등을 미루어 보면 <<귀신나방>>은 그나마 찾아서 읽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살인 카드 게임>>은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2019년 베스트 /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올해 기타 장르문학은 딱 1권을 읽었을 뿐이라 별도로 선정하지는 않겠습니다.

2019년 베스트 디자인 or Study :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저는 디자인 전공자이기는 하지만 북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는 무척 낮았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와는 여러가지로 상황이 많이 변하기도 했고요. 이 책은 저와 같은 북 디자인 초보자라던가, 제목 그대로 북디자인을 잘 알아야 하는 편집자, 혹은 관련 직업인에게 굉장히 유용한 책입니다. 참 많은걸 배웠던, 좋은 독서였어요.

2019년 워스트 디자인 or Study :
이 분야의 독서는 4권 밖에 되지 않고, 그 중에서도 가장 나쁜 별점이 2점이기에 올해는 별도 워스트 선정은 없습니다. 도판만 충실해도 기본은 해 주는 분야니까요.

2019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소비의 역사>>
작년에도 <<그랜드 투어>>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설혜심 교수의 역작. 제목 그대로 소비라는 개념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데, 400 페이지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소재가 흥미롭고 내용의 재미가 대단해서 술술 읽히는 마법과도 같은 책입니다. 도판과 편집도 모두 완벽한 수준이고요. 미시사를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9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올해 역사 도서는 가장 나쁜 별점이 2점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워스트로 꼽기에는 너무 가혹하기에, 올해는 별도로 선정하지 않겠습니다. 역사 도서는 대체로 선방한 분위기네요.

2019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맛의 천재>>
정말 오랫만에 등장한 별점 5점! 이탈리아 요리와 그 요리에 관련된 역사까지 상세하게 소개해주는, 요리와 미시사 양쪽 분야 모두에서 탁월한 놀라운 책입니다. 단점을 찾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완벽함을 자랑하지요. 요리, 특히 이탈리아 요리를 사랑하신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 이탈리아인들은 정말로 위대한 민족이에요. 요리와 예술 측면에서는 말이죠.
참고로, 이  역시 이 분야의 베스트로 꼽을 수도 있겠지만 추리 / 호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군요.

2019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역사 분야와 마찬가지로 별점 2점 이하의 작품이 없기에 올해는 이 분야의 워스트는 없습니다.

2019년 베스트 기타 도서 :
<<이웃집 살인마>>
기타 도서에는 작년에 이어서 별점 4점을 받은 트리오가 존재합니다. 바로 <<이웃집 살인마>>와 <<위작의 기술>>, 그리고 <<위험한 저녁식사>>의 3편입니다. 다 좋은 책이라 우열을 가리기 힘들긴 하지만 <<위험한 저녁식사>>는 지금 읽기에 조금 낡은 이야기가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위작의 기술>>은 다른 책과 겹치는 내용이 있다는 점에서 아쉽지만 베스트에서 제외하였습니다. 물론 모두 좋은 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은 없습니다.

2019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일상 기술 연구소>>
평범한 생활 속 기술 중 유용한 '꿀팁'을 소개하는 그런 책이라 생각했는데, 제목에서 연상되는 '기술'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실망을 안겨다 준 책. 내용도 영 와닿지 않아서 제 주변인에게 절대로 권해주고 싶은 책은 아니었습니다.

2019년 Movie 리뷰 :
영화는 제법 많이 보았지만 고작 4편의 리뷰만 올렸으니 베스트와 워스트를 꼽는게 무의미해보입니다. 올해는 선정 없이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019년 베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2019년 추리 or 호러 만화는 전통의 시리즈인 Q.E.D와 C.M.B의 후속권을 읽었을 뿐입니다. 각 권의 수준도 고만고만하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베스트 권이 아닌 수록작 중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도록 하겠습니다.

올해는 Q.E.D가 아니라 C.M.B 쪽이 볼만했다는게 특징입니다. 별점 3.5점짜리 에피소드가 무려 3편이나 등장했거든요.
C.M.B 박물관 사건목록 (씨엠비) 34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낡은 집>>, C.M.B 박물관 사건목록 (씨엠비) 32의 두 번째 에피소드인 <<혼선>>, C.M.B 박물관 사건목록 (씨엠비) 31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지옥혈>>이 그 주인공입니다.
다 좋은 작품이지만 여기서 한 작품을 꼽는다면 <<혼선>>을 꼽겠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아이의 장난이 강력 범죄와 엮이고, 이 범죄가 극적인 반전과 함께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는 전개가 깔끔한 수작입니다.

2019년 워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베스트와 마찬가지로 워스트 에피소드를 꼽겠습니다. 별점 1.5점의 졸작 에피소드도 무려 3편이나 됩니다. Q.E.D iff 3권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세 명의 자객>>, C.M.B 박물관 사건목록 (씨엠비) 33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보이지 않는 사수>>, C.M.B 박물관 사건목록 (씨엠비) 32의 세 번째 에피소드인 <<사시 부적>>이 그러하죠.
뭐가 더 낫다고 말하기 애매하지만 한 편을 꼽는다면 <<보이지 않는 사수>>입니다. 다른 두 작품은 그래도 '추리'와 '트릭'이 등장하는 반면 이 작품은 너무 작위적이며,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에요.

2019년 베스트 Comic - 기타 :
2019년 기타 만화는 별점 2.5점을 넘는 작품이 없기에 베스트는 별도로 선정하지 않겠습니다.

2019년 워스트 Comic - 기타 :
<<2001+5 Space Fantasia Anthology>>
2019년의 워스트는 호시노 유키노부의 단편집입니다. 이 작품말고 다른 단편집인 <<요녀전설 1>>도 마찬가지로 별점이 1.5점이니 가히 올해의 워스트 작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타석이 두 번이었는데 두 번 모두 병살타를 친 셈입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군요.
똑같이 별점 1.5점짜리 졸작 중 <<2001+5 Space Fantasia Anthology>>를 선택한 이유는? 미완성으로 결말도 없는 작품을 버젓이 책으로 간행하여 팔아먹는 빌어먹을 행태 때문이에요. 이 정도면 병살타가 아니라 거의 게임 엔딩 수준의 실책이라 생각되어 용서가 안되네요.

결산평 :
16년 째라니... 강산이 변해도 이제 한번 반넘게 변했네요. 올 한 해 우리 가족 모두가 무탈하게, 건강하게 보냈다는게 너무나 기쁩니다. 개인적인 가장 큰 목표였던, 제 책을 출간한다는 목표도 이루었으니 보람도 있었고요.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께서는 올 한해 어떠셨나요? 좋은 일 많으셨었다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는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는 그런 한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임이 분명할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거에요. 사랑합니다~!

2018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2019/12/29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 무라야마 도시오 / 김윤희 : 별점 2점

라면이 바다를 건넌 날 - 4점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김윤희 옮김/21세기북스

라면 관련 서적은 그동안 꾸준히 읽어 온 책 중 하나입니다. 보통 라면의 유래와 지역별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즉석 라면을 만든 안도 모모후쿠에 대한 이야기 등이 주로 소개되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도 딱히 새로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런데 생각 외로 새로운 내용이라 놀랐습니다. 안도 모모후쿠 시점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묘조 식품의 오쿠이 사장이 즉석 라면 시장에 뛰어들어 회사를 성장시키는 과정, 그리고 우리나라 삼양 그룹의 전중윤 사장이 라면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거쳐 오쿠이와 손을 잡아서 기술 이전 등을 받은 끝에 결국 라면을 출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거든요. 제목 그대로 바다 건너 라면을 오게 만든 이야기지요.
때문에 라면의 원료 등은 전혀 상관없는 일본과 한국의 특정 라면 회사의 성장기이며 '즉석 라면 산업' 하나 만을 바라보고 쓰여진 책이라는 점에서 다른 라면 관련 서적과 차별화 됩니다. 오히려 한 때 유행했던 기업 성공담, 기업인 자서전과 더 비슷합니다. 오쿠이와 전준융 사장 두 명의 활약을 비롯하여 건면을 제조하던 묘조 식품에서 라면을 만들기 위해 설비를 만드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아이디어들, 닛신 그룹의 특허를 벗어나기 위해 묘조 그룹이 최초로 라면 스프를 별도 포장하여 제공했으며, 삼양 그룹이 최초로 들여온 라면 제조 설비는 묘조 식품 것으로 라면 제조 관련 기술은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등 소개되는 여러가지 일화들 대부분이 회사와 라면 산업 성공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요. 삼양 식품의 전중윤이 라면 설비를 들여오기 위한 외화 확보를 위해 김종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등의 장면도 기업인 자서전같다는 인상을 더욱 크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좋은 책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과장된 드라마가 너무 많거든요. 오쿠이와 전중윤 사장 두 명을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대단한 인도주의자로 그리고 있는 것 부터가 그러합니다. 묘조 식품과 삼양 식품의 사보에 연재되었던 소설에 가까운 용비어천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에요. 전중윤이 제일 생명 사장으로 취임한 뒤, 라면 산업에 뜻을 품게 된 계기라는 남대문 시장에서의 꿀꿀이 죽 일화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담배꽁초까지 들어 있는 쓰레기 꿀꿀이 죽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먹는걸 보고 충격을 받은게 계기라는데 이를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말았다'고 묘사하는데 과장이 너무 심했어요. 이 장면에서만 이렇게 격한 감정을 드러내었더라면 극적인 장면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류의 묘사는 이외에도 너무 많습니다. 이래서야 논픽션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죠. 중앙 정보부장 김종필마저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능력자로 그려지고 있는 등, 다른 인물 대부분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도 거부감이 들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라면의 역사와는 크게 관계없는, 흔해빠진 비지니스 성공담을 그린 픽션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대부분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기도 해서 자료적인 가치도 별로고요. 라면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시라도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9/12/28

도쿄전력 OL 살인사건 - 사노 신이치 / 류순미 : 별점 2.5점

도쿄전력 OL 살인사건 - 6점
사노 신이치 지음, 류순미 옮김/글항아리

1997년 3월 19일 살해 된 시체로 발견된 도쿄 전력 여직원 야스코 살인 사건의 배경과 재판 과정, 후일담까지를 거의 500여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꼼꼼하게 기록한 논픽션. 사건 발생 당시 굉장한 충격을 열도에 안겨다 주었고, 이런저런 컨텐츠에서 인용되었던 유명 사건이지요. 대표적인 예는 <<여자 친구>>입니다. 작품 속 피해자인 마키코는 명문 대학 법대생으로 재학 중 이미 사법고시에 합격한 엘리트지만 전락하여 매춘을 반복했다는 설정인데 이 사건과 굉장히 흡사하죠. 
그래서 평소 관심있던 차에 국내 출간이 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크리스마스 직전에 완독했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아 리뷰를 조금 늦췄습니다.

그런데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진범이 누구냐?를 탐구하는 법정 미스터리 속성은 거의 없습니다. 네팔인 불법 체류자 고빈다를 범인으로 모는 경찰과 검찰의 비상식적이고 비정한 태도와 주장, 그리고 그 주장을 뒤짚으려는 화자인 취재 기자의 취재와 추리를 3년 여에 걸친 1심 공판 과정과 후일담이 내용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검, 경 합동 환장의 누명 씌우기는 볼 만 합니다. 일단 검찰은 고빈다가 피해자 야스코와 만난 시간부터 제대로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고빈다가 근무지인 식당에서 퇴근 후 10시 7분 열차를 타서 시부야 역에 11시 20분에 도착했을 거라고 주장하지만, 취재 결과로는 10시 22분 열차를 타당하다고 증명되거든요, 설령 검찰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건 마찬가지고요.
검찰이 유력한 증거라고 내민 범행 장소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정액이 들어있는 콘돔 역시 살인의 증거로 볼 수는 없습니다. 고빈다가 매춘을 하던 피해자의 손님으로 범행 장소에서 이전에 관계를 가졌던 건 사실이거든요. 게다가 현장에서 피해자와 고빈다의 것이 아닌 음모 등 다른 증거도 발견되었고, 범인이 돈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빼앗으려다 피해자의 숄더백에 묻힌 피부 조각 역시 고빈다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세세한 억지 주장에 대한 반론은 셀 수도 없으며, 고빈다의 무죄를 강하게 짐작케하는 증언과 증거가 마지막까지 드러나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이렇게 검찰과 경찰이 네팔인을 범인으로 몰려는 의도도 여러가지 증거를 통해 분명히 드러납니다. 사체가 발견된 3월 19일 이후, 고빈다를 출입국 위반으로 취조할 때 이미 타액을 체취했으며 고빈다는 물론, 그의 룸메이트 들에게 고문과 강압 수사로 억지 자백을 받아내는 등 온갖 비인간적 행각이 폭로되고 있거든요. 오히려 이렇게까지 조작했는데도 불구하고, 결정적 증거를 제대로 선보이지 못해 억지 주장만 되풀이한 검찰의 무능함도 돋보이고요.
또 고빈다가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는 장면에서 끝나지만, 에필로그에서 검찰 항소로 열린 2심 재판에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아 십 수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후일담은 기가 막힐 정도에요. 1심 판사가 좌천되기까지 했다니 어디까지 썩어 문드러진건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다행히 재심으로 누명을 벗고 무죄 선고를 받았다지만 십 수년의 세월은 보상 받기 어렵죠. 게다가 이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전 경시청 간부 히라다가 '무죄 판결은 사법부가 여론을 의식한 결과이며 고빈다가 진범'이라고 우기며 극우 단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내용에 이르러서는 정말이지 남의 나라 이야기같지 않았습니다.

화자인 취재 기자 사노 신이치의 꼼꼼한 취재도 돋보입니다. 고빈다의 고향을 방문하여 가족과 추방된 당시 룸메이트 들의 결정적 증언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판에 출두한 거의 모든 증인들을 후속 취재하여 피해자 야스코가 살해되기까지의 동선을 자세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각종 증거들도 상세한 보충 설명을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도와 주고요.
사노 신이치의 추리력이 빛나는 장면도 여러 군데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야스코의 지갑에서 발견된 이오카드 (선불카드)의 존재에 대한 추리입니다. 검찰은 이 카드의 잔액으로 야스코가 특정 장소 (정기권을 버리기 위한) 로 이동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엄청난 구두쇠였던 그녀가 돈을 써 가며 정기권을 버릴 이유는 없죠. 사노 신이치는 그래서 야스코가 이 이오카드를 주웠을 것으로 추리합니다. 비용이 남아있다고 쓰여있지만 사실은 현금을 보태 표를 구입하였기에 잔액이 0원이었는데, 잔액을 몰랐던 야스코는 뒤의 잔액 기록만 보고 나중에 쓸 요량으로 챙겼다는 것이죠. 아주 합리적이에요.
야스코의 정기권을 아무런 접점이 없는 스가모 주택가에 버린 범인의 심리에 대한 변호인단의 추리도 볼만합니다. 시체가 몇일동안 발견되지 않자 범인의 의심이 커져 범행을 드러낼 요량으로 대낮 주택가에 정기권을 버렸다는데 이 역시 그럴듯했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했던, "왜 게이오 대학교를 나와 대기업 도쿄 전력의 간부로 근무하며 연봉이 천만엔이 넘었던 야스코가 수년간 밑바닥에서 매춘을 했는지?"에 대한 나름의 답이 등장해서 속이 다 후련하더군요.
도화선은 그녀가 성스러운 존재로까지 여겼던 아버지가 사망한 것입니다. 그 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도쿄 전력 내 라이벌과의 승부에서도 패배하며 스스로 좌천당했다고 여긴 인사발령을 받고 아버지가 '징벌적 초자아'에 빙의하여 그녀에게 벌을 내립니다. 아버지보다 못한 나를 못나게, 더럽게 만들어야 된다는 이유로요.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를 사회의 밑바닥, 구렁텅이로 떨어트리고 만 것입니다. 그 수준은 가히 참혹해서 2천엔에도 여러명의 외국인에게 길거리에서 몸을 팔고, 노상 방뇨 등을 서슴없이 저지를 정도였죠. 아, 무섭습니다. 확실히 현실이 픽션보다도 더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자극적인 사건과 극적인 재판 과정을 다루고 있기에 아주 흥미로운 독서였습니다. 여러모로 별점 4점을 주었었던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와 비교됩니다. 핵심 용의자가 유죄를 선고받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무죄로 풀려난다는 재판 과정도 동일할 뿐 아니라, 잘못된 경찰, 검찰의 주장을 밝혀내기 위한 상세하면서도 방대한 취재가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점은 같으니까요.
그러나 이 책은 별점 4점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저자인 사노 신이치가 이 사건을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이라던가, 일본 사회의 어둠 등과 엮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문학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입니다. 네팔에서의 여정을 장황하게 소개하는 부분이라던가 야스코의 무덤을 찾은 감상 등이 그러한데 전부 쓰잘데 없을 뿐더러 그 양도 너무 많았어요. 그냥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과 연계하여 작금의 일본 사회를 드러내는 정도에 그쳤다면 좋았을 겁니다. 게다가 이러한 개인적 감상을 무리하게 사건 취재와 엮은 부분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에요. 대표적인게 사건 당일 야스코를 목격한 증인 중 한명인 샌드위치맨 하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험난했던 인생사와 야스코 사건을 엮고, 이를 내면의 어둠 운운하면서 비극적으로 포장하는데 솔직히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하토는 16년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지만 아내의 사망 이후 스스로 술독에 빠져 인생이 망가진거라 이를 딱히 내면의 어둠이나 운명의 장난으로 포장할 이유는 없죠.

또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는 저자 스스로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해 여러가지 취재를 통해 범인상을 그려내지만, 이 책에서는 그냥 뜨내기 손님이었을 거라는 일반적인 예상 외의 그 어떤 정보도 추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현실만 취재해서 문제만 드러냈을 뿐, 그 이상의 진실은 담아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니까요. 같은 이유로 법정 미스터리를 방불케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했었는데 그러한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배분도 적절하지 못합니다. 지금은 고빈다의 억울한 재판이 9, 야스코의 삶과 죽음이 1 정도의 비중입니다. 이 책을 구입한 독자라면 사야카의 삶에 대한 관심도 높았을텐데 말이죠. 왜 그녀가 밑바닥으로 굴러 떨ㅇ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의사 한 명과의 인터뷰가 전부라 취재의 양과 깊이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의사의 견해도 증명되지 않고요.
또 고빈다 재판에서 사건 당일 사야카와 고빈다의 행적도 너무 많이 반복됩니다. 이런 부분의 정리만 해 주었더라도 분량은 대폭 줄일 수 있었을걸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고, 내용도 흥미롭지만 말씀드린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지금보다 군살을 드러내고 더 논픽션같이 썼더라면 별점 3점 이상은 충분했을겁니다. '오컴의 면도날'이 떠오르는 그런 책이네요.

2019/12/25

도해 고대 병기 - 미즈노 히로키 / 이재경 : 별점 2점

도해 고대병기 - 4점
미즈노 히로키 지음, 이재경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얼마전 <<세계의 전투 식량을 먹어보다>>가 꽤 괜찮았기에 찾아본 AK 트리비아 북 시리즈 중 한 권. 100개의 꼭지별로 각각 소개 1페이지, 그림 1페이지의 구성으로 여러가지 고대 병기와 병기가 사용된 전쟁 등 '트리바아'라는 말에 걸맞는 여러가지 잡학스러운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AK 트리비아 북 시리즈 중에서 '도해' 라는 단어가 붙은 시리즈는 모두 동일 시리즈가 원전이라 생각됩니다. 표지, 내지의 디자인과 책의 구성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라면 이 '도해' 시리즈는 영 재미가 없다는 점이지요. 이유는 책마다 조금 다른데, 우선은 '도해', 즉 정교한 그림으로 설명되는 여러가지 정보를 기대하고 읽었지만 정작 도해 자체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읽었던 <<도해 전국무장>>이 딱 그런 경우였어요. 제 리뷰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여기 수록된 '도해'는 제대로 된 일러스트나 그림이 아니라 파워포인트 보고 자료 같은 도식화된 그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이 책의 경우입니다. 도해라는 말에 어울리게, 소개하는 고대 병기에 대한 일러스트 자체는 나쁘지는 않아요. 그런데 문제는 정말로 정리되지 않은, '트리비아'라는 단어의 의미 그대로 잡학적인 지식 전달에만 치중할 뿐이라는 겁니다. 일단 고대 병기가 무슨 기준으로 선정되어 소개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분류도 엉망이라서 전차와 공성 병기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고요. 그리고 성에 장치하는 뾰족한 나뭇가지인 세르부스나, 성 외곽에 설치한 함정인 리리움을 '병기'라고 소개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이러한 기준이라면 '해자'도 병기인 셈이니까요. 에우리알로스와 마사다가 소개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그냥 '요새' 그 자체인데 말이죠. 하긴, '트로이 목마'까지 병기라고 소개되고 있는 판이니 요새가 병기인 것도 당연한 걸까요?
또 문명의 수준에 있어 '고대 병기'를 논하기 어려울 일본의 투석기와 배가 소개되는 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중국의 수, 당나라 시기의 무기라니 다른 기원전 무기들과는 시기 자체도 맞지 않고요. 구태여 소개할 필요없는 사족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자료를 먼저 조사하고, 재미있을 법한 내용을 뽑아내어 대충 '고대 병기'라는 제목으로 모아서 만든 책입니다. 물론 살라미스 해전의 전법이라던가, 3단 갤리선과 5단 갤리선의 구분 등 도해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투석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술적 진보였다는 인장 스프링과 토션 스프링의 차이는 이 책처럼 그림으로 설명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거에요. 글로는 이해하기 힘들었을테니까요. 또 체계적으로 분류되지는 않았더라도 한 개, 한 개의 이야기는 읽을만 했고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앞서의 이유로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약간 속았다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거든요. 내용을 세분화하여 '고대 무기', '고대의 공성전' 등으로 보다 상세하게 분류하여 책을 발매하는게 맞았을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9/12/22

영국 장식미술 기행 - 최지혜 : 별점 2.5점

영국 장식미술 기행 - 6점
최지혜 지음/호미

제목과 짤막한 소갯글만 보고<<부르주아의 유쾌한 사생활>> 비슷한, 제목 그대로 영국의 장식 미술에 대해 시기별로 대표적인 양식과 작품을 소개해주는 책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저자가 영국의 다양한 저택들을 구경다니며 그 저택과 소장품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일종의 기행문이기 때문입니다. 목차도 특정 시기나 문화, 유행에 집중해서 진행되는게 아니라 런던 시내와 런던 외곽을 구분하여 각각 7곳의 저택을 관광다닌 순서대로 나열된 것에 불과하고요.
게다가 방문한 저택들이 모두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소장품도 아주 돋보이는 그런 공간이라고 하기도 조금은 어렵습니다. 대체로 18~19세기 큰 영화를 누렸던 귀족이나 거부의 저택인데 소장된 가구라던가, 도자기 수집품 등의 면면이 아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국'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저택과 집들의 인테리어와 가구 등이 주로 소개되고 있거든요. 이럴 바에야 한 곳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보다 상세하게 풀어내는게 어땠을까 싶을 정도에요.

물론 개개의 저택과 집들과 방들, 소장품 하나하나 모두가 특색있으면서도 아름다운건 사실입니다. 저자가 클래식 악기와 같은 골동품 전문가인 덕분에, 깊이있는 전문가적인 식견도 곧 잘 눈에 뜨이고요. 예를 들어 자기 컬렉션에 대해 설명하면서 중국 자기 수입품이 마이센 자기로 대체되는 과정과 마이센 자기 최고의 대가인 캔들러라는 조각가에 대한 설명같은 부분이 그러합니다. 여행 동료가 직접 촬영한 사진과 함께 소개해 주고 있어서 눈도 즐거우며 이해도 쉽게 되었고요. 이런 설명은 특히 가구들이 상세합니다. 디테일한 관찰이 과연 전문가다왔습니다.
클래식 악기 전문가다운 골동품 악기 설명도 재미있었던 부분입니다. 다른 대 저택들에 비하면 소박한 펜튼 하우스에 소장된 하프시코드, 버지널, 스피너 등에 대해 소개해주는데, 이 악기들 때문에 이 저택을 방문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건축, 소장품 외에도 다양한 정보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특히 집 주인과 건축가, 디자이너에 대한 정보가 많은데 1939년에 완공된 비교적 최신 건물로 현대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윌로우 로드 2번지의 경우, 건축가 에르노 골드핑거가 건축했는데 이 집이 너무 현대적이라 이를 못마땅했던 작가 이언 플레밍이 자신의 작품에서 골드핑거를 악당으로 지었다는 일화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녀였지만 몇 번의 결혼을 통해 손녀를 차기 왕위 계승자에 가까운 지위까지 끌어올렸던 출세의 천재인 '베스 오프 하드윅'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싶었어요. 속칭 '혼테크'의 1인자인 셈이죠.
또 도판도 전문가의 솜씨는 아니더라도 내용을 확인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풀 컬러라는 점도 좋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기대와는 다르지만 이 책만 놓고보면 볼만한 구석이 없지는 않은, 그런 책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장식 미술만을 둘러본 여행기라는 측면에서는, 이런 류의 기행문의 교과서적인 글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냥 유명 명승지를 둘러보는 기행문보다는 전문적이고 깊이가 느껴져서 괜찮았거든요. 저자의 장식 미술 소개서가 간행되면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2019/12/21

몇 년 전의 크리스마스 이벤트 기록 발굴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에드 멕베인 외 / 이리나 : 별점 2점

리뷰를 쓰다가 이 책에 관련되었던 이벤트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당시 글을 찾아보았습니다. 공식 페이지의 글은 이미 내려갔지만, 티스토리에는 아직 관련 글이 남아있더군요.

오토 펜즐러의 아이디어를 본 따 시작된 이벤트이기에, 참가 기준도 비슷합니다. 대상이 유명 작가가 아니라는 점만 빼면 말이죠.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아요.
1. 대상_미스터리를 즐겨 읽는 형제자매님이라면 누구나
2. 분량_원고지 7매 이내('파일->문서정보->문서통계'로 확인)
3. 조건
(1) 미스터리적 요소를 표함할 것
(2) 배경은 크리스마스 혹은 크리스마스 이브일 것
(3) 이야기에 미스터리 도서의 이름, 혹은 서점 이름이 들어갈 것(이때 ‘특색 있는 소규모 서점’일 경우 가산점 있음)
4. 응모요령_작성한 글을 이 아래 댓글로 달면 됨.
5. 마감_2016년 12월 25일 신데렐라 무도회가 끝나는 시간까지.


당시 저도 졸문을 응모했었는데, 그랑프리는 아니지만 다행히 입선은 해서 <<작가의 수지>>라는 멋진 책을 선물로 받았었습니다. 북스피어의 총수인 마포 김사장님의 단평은 아래와 같습니다.

정오에 공지를 올리려 했는데 다들 너무 잘 써주시는 바람에 마지막까지 고심하느라 늦었습니다. 송구해요. ‘그 짧은 시간에 이런 정도의 이야기를 생각해 내다니’ 하고 솔직하게 감탄했습니다. 읽는 내내 즐거웠어요.

나무랄 데 없는 문장이나 구성을 따진다면 hansang 님의 손을 들어주는 게 마땅하겠지만 막판 유머와 책 제목을 이용한 센스 면에서 김충현 님의 이야기가 제 마음에 쏙 들었어요. 읽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웃게 되더군요.

그리하여 당 이벤트의 그랑프리는 김충현 님! 감축드려요. 2017년 내내 북스피어의 신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블로그 댓글로 응모하고, 분량도 원고지 7매 이내라는 초단편이라 대단한 이야기는 아닌데, 좋은 평을 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그렇다면 제 졸문은 과연 어떤 내용이었는지? 제가 응모한 글은 아래의 글이었습니다. 아주 조금 수정했지만 큰 틀은 같아요. 모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광호가 회사를 그만두고 추리 소설 전문 서점 '외천루'을 연지 1년여가 흘렀다. 그러나 서점 운영은 생각보다도 훨씬 더 힘들었다. 매월 매월 적자가 아닌 달이 없었다. 광호는 휴일도 없이, 거의 매일 새벽같이 서점에 나와 밤늦게 퇴근했다. 아내에게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고객을 기다리고, 매출을 늘리기 위한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핑계였다. 광호의 꿈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직장 생활에 시달리는 아내, 유치원만 겨우 다닐 뿐 다른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원 하나 보내지 못하는 어린 딸아이를 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었다. 국문학도 시절부터 연인으로, 함께 작가가 되자고 결심했던 아내만 보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크리스마스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티를"은 오래된 말일 뿐, 당연히 매출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도 광호는 어김없이 새벽에 출근하여 서점 문을 열었다. 서점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큰 덩치에 온몸을 둘러싼 듯한 긴 코트, 목 위까지 추켜올린 목도리, 마스크에 털모자라는 독특한 외모의 손님이 서점으로 들어왔다. 걸어 들어오는 발자국 소리도 컸다. 긴 코트 탓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코트 속 옷은 빨간색 계열이었고 구두도 징 박힌 장화였다.
손님은 서점을 잠깐 둘러보더니 곧바로 광호에게 다가왔다. 큰 덩치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는 상당히 중후해서 듣기가 좋았다. 가까이서 보니 상당히 연배가 있는 어르신이었다. 손님은 바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책이 좋은지, 어떤 책을 읽고 싶은지 등등.
대화는 서서히 길어졌다. 광호는 손님이 어떤 책을 좋아할지 고민해서 답을 하였지만, 손님이 물어보는 것은 광호가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 광호가 지금 읽고 싶은 것이 어떤 책인지였다. 광호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 그리고 지금 당장 읽고 싶은 책에 대해 생각나는대로 답했다. 이러한 대화가 진행되던 와중에, 드디어 광호는 깨달았다. 정말로 지금 원하는 것은 책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손님이 마지막에 광호가 추천한 작품을 계산하며 한 말 때문이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니 책보다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네"

손님이 떠난 후 광호는 서둘러 문단속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이제는 불필요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리라. 여유를 가지며 삶을 뒤돌아 보리라. 이건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마침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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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방서로 새벽 교대 근무를 하러 가던 중 옆집 아이 아빠가 한다는 서점에 들렀다. 한파 주의보가 발령된 추운 날씨였지만 아내가 아기 엄마 걱정이 많기 때문이었다. 싹싹하고 착해서 딸 아이 같아 가깝게 지내고 있던 차라 무시할 수 없었다.
혹 가게를 열지 않았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새벽같이 가게 문을 연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무리 책이 좋아도 가족만 하지는 않을 테니 가족과 함께 하는 게 더 좋을 나이라고 한마디 던지고 왔다.

어쩌다 보니 산 책은 아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줘야겠다. 제목은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이야기는 못 해 주겠지만 어르신 부부 사랑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나? 뭐, 아내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2019/12/20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에드 멕베인 외 / 이리나 : 별점 2점

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4점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북스피어

미국 뉴욕에는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유명한 '미스터리 서점'이 있습니다. 유명 추리소설 편집자이자 비평가인 오토 펜즐러가 운영하는 서점으로 1979년에 문을 열었다니 올해로 40년이 되었네요.
이 책은 오토 펜즐러가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서점 고객들에게 선물로 증정했던 소책자에 수록되었던 단편들을 모아 엮은 단편집입니다.

오토 펜즐러의 말에 따르면, 소책자용 이야기의 기준은 세가지였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이야기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할 것, 두번째는 당연하겠지만 미스터리를 포함할 것, 마지막 세 번째는 적어도 몇몇 장면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어날 것이 그 기준입니다. 이 책이 국내 첫 출간될 당시, 책을 펴낸 북스피어가 이벤트삼아서 이와 유사한 조건의 꽁트를 모집했었습니다. 저의 짤막한 글도 다행히 선정되어 <<작가의 수지>>라는 멋진 책을 경품으로 증정받았었죠.
그러나 이벤트가 당첨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선뜻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오토 펜즐러가 자신의 서점 고객용으로 준비한 글을 엮었던 <<라인업>> 같은 경우, 소설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 생각하고 있다가 드디어 올해 크리스마스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네요.

일단, 작가진은 굉장히 화려합니다. 오토 펜즐러의 유명세와 인맥 덕분이겠죠. 도널드 E 웨스크레이크, 로렌스 블록, 에드워드 C 호크, 에드 멕베인, 토머스 H 쿡, 메리 히긴스 클라크 등 제가 소개했었던 유명 작가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가득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심지어 오토 펜즐러가 고전 본격물 스타일의 탐정 역할을 소화하는 작품마저 있을 정도에요. 미스터리 서점이 사건의 무대가 되고, 서점 직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많고요. 오토 펜즐러가 내세운 기준 때문이겠죠. 마찬가지의 이유로 미스터리 서점에서 열리는 파티를 소재로 한 작품도 제법 되는 편입니다.

허나 이러한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 팬, 고객을 위한 서비스적인 묘사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볼만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기본적인 이야기의 완성도가 낮은 탓입니다. 오토 펜즐러가 내 건 조건들도 작위적으로 충족시킬 뿐이에요. 특히나 미스터리 서점에서의 흥청망청 크리스마스 파티는 영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희귀본을 수집하는 수집가가 자신의 서재에 술취한 손님들이 들어오는 파티를 연다는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 솔직히 전체 평균내면 2점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나마 반올림한 점수죠. 수많은 추리 작가, 추리 소설들이 인용되고 작품 속에서 활용되는 것을 보는 재미는 괜찮았지만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면 점수를 주기가 민망한 수준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작가들의 명성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상황인데, 작가들 역시 단순한 팬 서비스 정도로 여긴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토 펜즐러와 미스터리 서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특정 작가의 팬이라도 마찬가지고요. 몇몇 괜찮은 작품이 있기는 하나 극소수거든요. 나중에 e-book으로 각 단편들이 분철되어 판매되면 고려해 보시길 바랍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에 소개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표지 디자인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크리스마스라기 보다는 할로윈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이런 어울리지도 않는 일러스트보다는 그냥 깔끔하게 서점 + 크리스마스 소품이라는 미국 원작 스타일 표지였다면 판매는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아낌없이 주리라>>
도둑 도트문더가 크리스마스날 맨해튼 호텔에서 고대 주화를 훔쳐 달아나다가 우연찮게 '미스터리 서점'에 숨어들게 된다. 그곳에서 주인 오토와 다른 일행들의 착각으로 그들이 벌이는 포커판에 끼어들게 되고, 정직하게 게임을 했지만 240달러 정도를 따고 만다. 그러나 경찰이 출동하여 수상한 사람에 대해 탐문하는데....

걸작 <<도끼>>와 유쾌한 케이퍼 소설 <<뉴욕을 털어라>>, 묵직한 복수극 <<인간 사냥>> 등으로 잘 알려진 유명 작가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단편. 좋은 단편도 여러 편 발표했기에 작품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마침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뉴욕을 털어라>>의 주인공인 도둑 도트문더가 주인공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이야기의 수수께끼는 딱 한가지, "왜 오토와 친구들은 도트문더를 경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일까?" 인데 그 진상이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거든요. 이유는 바로 도트문더가 240여달러의 돈을 땄기 때문이죠. 도트문더가 체포되면 포커판은 깨지고 돈도 다시 찾을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도트문더가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오토와 친구들에게 돈을 잃어주기로 결심했다는 결말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포커판의 유지가 중요했다면, 240여 달러를 다시 잃는 것 보다 오토와 친구들의 돈을 모조리 따는게 게임을 끝내기에 더 현실적인 방법이니까요. 돈은 게임이 끝나고 공평하게 돌려주면 되잖아요? 돈을 다 따거나, 아니면 240여 달러를 다 잃거나 어느 쪽이건 게임이 끝날 때 오토와 친구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기도 하고요.
아울러 크리스마스날 일어난 사건일 뿐, 크리스마스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주제에 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 깊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쓴, 오토 펜즐러의 세 가지 기준에만 맞춘 졸작입니다.

<<계획과 변주>>
희귀 서적 중개인이 뉴욕에서 차례로 살해당한다. 파로아 러브 형사는 그들의 죽음이 대실 해밋의 잃어버린 원고인 <<마른 여자>>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고, 자신의 친구 오토 펜즐러를 찾아가 책 수집상 와일리 에머슨을 함께 찾아가보자고 부탁한다. 와일리 에머슨이 <<마른 여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와일리 에머스는 <<마른 여자>>라는 원고는 본 적도 없다며, 자신을 찾아왔던 수집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토는 와일리 에머슨이 썼다는 원고 뭉치를 들고 나오는데...


흑인 동성애자 형사 파로아 러브가 등장하는 시리즈를 저술한 조지 백스트의 파로아 러브 단편.
크리스마스가 배경이기는 하나 이야기에 영향을 주는 부분은 없습니다. 대실 해밋의 <<마른 여자>>라는 원고를 와일리 에머스가 숨긴채 가지고 있던 이유도 썩 납득이 되지 않고요. 원고를 쫓는 악랄한 무리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는데 어차피 돈 받고 팔 생각이었다면 마찬가지 결과였을텐데 말이죠.
게다가 범인이 오토 펜즐러 서점의 매니저 알렉스였다는 진상도 뜬금없습니다. 나름의 복선이라고 등장하는건 찢어진 청바지와 원고를 노리는 도라를 배웅해 주었다는 것 뿐이라 억지스러웠어요.

한마디로 단편에 적합하지 않은 이야기를 무리하게 펼쳐낸 느낌입니다. 조금 더 길게, 상세한 설명을 더하여 풀어냈어야 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녹슨 책갈피 도난 사건>>
닉 벨벳은 크리스마스 주간에 고등학교 때 친구 찰스 오닐로부터 의뢰를 받는다. 의뢰는 오토 펜즐러에게 판매한 대량의 헌 책 속에 끼워진 금속 책갈피를 훔쳐와 달라는 것. 닉은 택배기사로 변장하여 서점에 잠입한 뒤, 책갈피를 빼내오는데 성공한다.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단편. 시리즈 캐릭터인 괴도 닉 벨벳이 주인공입니다. 확실히 제왕다운 작품이에요. 오토 펜즐러의 어떻게 보면 무리한 요구를 모두다 들어주면서 완성도까지 높은 수작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크리스마스라는 시즌을 유효적절하게 써먹고 있는게 눈에 뜨입니다. 크리스마스라 바빠서 닉의 변장이 잘 먹혔거든요. 오토 펜즐러가 대량의 추리 소설을 구입한 것과 그 탓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책갈피를 훔치게 되는 과정도 그럴듯합니다.

또 녹슨 책갈피를 거액의 수고비를 지불하면서까지 훔치게 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도 인상적입니다. 사실 진상이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앞서 찰스의 여동생 마시의 남편이 목을 칼로 베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가 이미 상세하게 설명되니까요. 그래도 '구리는 녹슬지 않는다. 이건 부식한게 아니다!'라는 닉 벨벳의 착안과 이를 통해 진상을 끌어내는 추리는 꽤 그럴듯합니다. 자수하라는 닉의 제안도 깔끔하고요.

무엇보다도 닉이 택배기사로 변장할 때, 위장을 위해 준비했던 여자친구의 추리소설들 중 한 권 - 놀랍게도 수 그래프턴의 <<알리바이의 A>> - 이 꽤나 값나가는 작품이었다는 결말이 아주 크리스마스스럽습니다. 오토 펜즐러씨가 횡재했다는 결말인데, 원고도 써 주고 덕담까지 해 준 셈이니 에드워드 D.호크는 상당한 대인배였던 것 같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5점. 오토 펜즐러의 기획 의도에 정확하게 부응하는 작품입니다. 완성도를 떠나 이 정도로 의도를 잘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역시 대가는 대가구나 싶네요.

<<모작 살인 사건>>
안 팔리는 아동 추리소설가 루페 페티코드는 자신의 교육 센터 창작 수업 수강생이 검토를 요청한 원고에 홀딱 반한다. 그 원고를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넘겨 선인세로 거액을 약속받은 루페는 원작자 도라 윔블러를 어쩔 수 없이 살해하게 되는데...

잘 모르는 작가인 론 굴라트의 작품. 다른 누군가의 작품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기 위해 원작자를 살해한다는 이야기는 많을겁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럴듯한 동기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은 좋아보였던 도라 윔블러의 작품도 사실은 '도작' 이라는 진상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 덕분에 기존 다른 작품들과는 차별화되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옛 고전물을 떠올리게 만드는 걸작이라고 칭송받지만, 사실은 고전물의 모작에 불과했던 것이죠! 정말 유쾌하면서도 인상적인 반전이었습니다.

루페 페티코드의 나름 절박한 현실, 작가로서의 뒤틀린 긍지와 복수심이 만화적으로 과장되어 있는게 옥의 티이기는 합니다. 너무 스테레오 타입의 묘사였거든요. 반전 외의 모든 전개 역시 스테레오 타입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뻔했고요. 그래도 반전만으로 모든게 용서되는 작품. 별점은 3점입니다.

<<이보다 더 어두울 순 없다>>
네로 울프를 추종하는 탐정 레오 헤이그의 조수이자, 그가 해결한 사건들을 소설로 발표하는 칩 해리슨은 오토 펜즐러의 요청을 받아 '미스터리 서점'에 방문한다. 크리스마스가 끝난 직후, 귀중한 코넬 울리치의 육필 원고가 도난당한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의뢰였다.
매튜 스커더 시리즈로 유명한 로렌스 블록의 단편. 매튜 스커더 시리즈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코믹한 전개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화자인 칩 해리슨의 거침없는 언변이 아주 돋보여요. 온갖 고전 추리소설을 비트는 독설, 그리고 오토 펜즐러가 흠모하던 여성과 하룻밤을 보냈지만 술 때문에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는 상황을 풀어낸 전개도 유쾌하고요. 오토 펜즐러에게 장난치기 위해 쓴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에요.

문제는 로렌스 블록답지 않은 유쾌함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다는 점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파티의 구실일 뿐 이야기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으며, 추리 역시 대단할게 없거든요. 용의자들을 불러 모아 순서대로 증언을 듣는걸로 사건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여섯명, 아니 일곱명의 용의자가 원고를 돌려보았으며, 마지막에 원고를 읽었던 연회업체 사장 진 보트레이가 오토 펜즐러의 침대 옆에 원고를 올려놓아 곧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진상은 허무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의 명성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졸작으로 로렌스 블록의 광팬이 아니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요정들의 선물>>
보스턴에서 희귀 초판본 배달을 의뢰받고 오토 펜즐러의 '미스터리 서점'에 방문한 사설탐정 존 프랜시스 커디는 오토 펜즐러부터 새로운 의뢰를 받는다. 그가 수집한 추리 소설가들의 소장품이 동일 가격의 돈이 들은 봉투와 바꿔치기 당한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것. 유력한 용의자는 세 명의 추리 소설가였다. 존은 세 작가를 차례로 탐문한 뒤, 진상을 알아낸다.

진상은 림프종으로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작가 모리가 꾸민 장난이었다는 소품으로 오토는 손해본게 실제로 없기 때문에 진지한 범죄가 아니라 장난이라는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토 펜즐러를 피해자로 삼은 생생한 추리 소설을 오토 펜즐러에게 선사한다는 건 추리 소설가가 세울법한 계획이구나 싶어 재미있었습니다. 모리의 시한부 삶이 다음 크리스마스를 맞지 못할 것 같다는게 도화선이 되었다는 설정은 필요없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지만요. 이 설정 때문에 밝고 유쾌할 수 있는 작품의 분위기가 좀 묵직해졌거든요.

그래도 미스터리 서점의 주인과 그의 친구인 추리소설가들이 벌일법한 크리스마스 장난과 선물이라 단편집 주제에 꼭 맞아 떨어진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엄마가 산타클로스 아저씨를 죽였어요>>
앨런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한다. 어느 바쁜 크리스마스 오후, 그의 앞에 맥스라는 꼬마가 나타나 산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한다.
제목이 스포일러입니다! 제목이 다 망쳤어요. 맥스가 산타클로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할 때 부터 맥스의 엄마가 산타클로스를 죽였다는건 명백해집니다. 산타클로스의 정체가 대체로 아빠라는 점에서 피해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동기도 대체로 짐작이 가고요.

물론 추리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잔뜩 등장하는 전개는 볼만 합니다. 특히 서점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손님인 2급 형사 로지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경찰 소설을 쓰는 작가 중에 정작 경찰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데, <<87분서>> 시리즈로 일세를 풍미한 작가 스스로에 대한 자학개그로 느껴졌거든요. 역시 로지가 고양이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을 싫어한다면서 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고양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말도 굉장히 와 닿았고요. <<삼색털 고양이>> 시리즈는 솔직히 첫 편을 제외하고는 엉망이었죠. <<펠리데>>는 괜찮았었지만요.
또 범죄물의 거장 에드 멕베인답게 맥스의 엄마가 서점에 나타나는 장면의 긴박감도 꽤 훌륭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제목만 조금 비틀어서, 은유적으로 표현했더라면 훨씬 나았을텐데, 에드 멕베인답지 않은 안일한 구성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동방 박사의 간계>>
오토의 손님 키티는 오토에게서 한 희귀본의 완벽한 표지를 가진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친구 오토를 위해 희귀본을 완벽하게 만들어 선물하려던 키티는 그 남자 가토의 방에 잠입하여 표지를 빼내 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선물용 희귀본 <<바깥 화장실 가는 길>>이 도난당한걸 알게 되는데...
오토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두 도둑이 각자 서로의 희귀본과 표지를 훔친다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의좋은 형제>>같은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완성도는 낮습니다. 전반적으로 설명이 부족한 탓입니다. 왜 오토에게 귀중한 희귀본을 선물하려고 하는지, 키티와 가토는 직업이 도둑인지 등 기본 설정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거든요. 둘이 자신에게 선물을 하려는걸 오토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고요. 또 오토가 둘이 그에게 선물하려던걸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가 흘린 정보로 둘이 각자 상대방이 가진 물건을 훔쳐내리라고 예상하는건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게 둘의 인연을 이어주려는 오토의 계획이었다니! 억지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했어요.

크리스마스, 선물, 해피엔딩 등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어울리는 소재들을 잔뜩 가져다 쓰기는 했지만 이래서야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내 목표는 신성하니>>
윌슨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스터리 서점을 방문한다. 삼촌에게 고가의 책을 선물하려 한다는 핑계를 대고 오토 펜즐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목적은 선물 구입이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였다...

오토 펜즐러에게 원고를 퇴짜맞은 후, 복수심에 사로잡힌 작가가 그를 죽이려 한다는 서스펜스 스릴러.
그러나 아쉽게도 긴장감이 잘 살아나지 않아서 서스펜스물로는 실격입니다. 정말로 윌슨이 오토 펜즐러를 죽이려고 했는지조차 모호하게 느껴질 정도니 말 다했죠.

그러나 마지막에 오토가 윌슨에게 지금의 이야기를 자신에게 써 내면 고료를 주겠다고 구슬리는 장면의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대단한 반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퇴짜를 놓은 평론가가 퇴짜를 맞은 작가에게 한다면 충분히 설득력있는 이야기로 느껴지거든요. 작가를 인정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잖아요?

그래도 별점은 1.5점입니다. 전개가 엉망이라 점수를 주기가 힘드네요.

<<고양이 요정 스피릿>>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찰서장 커디 맨검은 우연히 옛 인연이 있는 뉴욕 형사 로리를 만나 함께 오토의 미스터리 서점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가한다. 그리고 유명 작가 바트 웰스의 전처 클라우디아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데....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미스터리 서점에 대한 떠들썩한 묘사는 볼거리입니다. 화자인 커디 맨검의 과장섞인, 허풍스러운 말투가 인상적인 탓으로 오토 펜즐러가 통이 커서 캐비어와 샴페인을 <<전쟁과 평화>>에서 보다도 많이 내 놓았다는 류의 말이 가득하기 때문이에요. 또 오토 펜즐러의 관심사, 미스터리 서점과 그곳에서 키우는 고양이에 대한 상세한 묘사 등은 작가가 오토 펜즐러를 속속들이 알고 있구나 싶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건은 너무나도 별볼일 없습니다. 장황한 파티, 여러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 후 시체가 발견되고 사건이 해결되기까지는 달랑 2페이지 정도로 마무리되거든요. 고양이 스피릿이 바트 웰스의 바지에서 귀걸이를 발견하는게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이러한 고양이의 도움이 없었어도 범인이 드러나는건 어렵지 않았을거에요. 흉기인 샴페인 병에 바트의 피가 묻어 있었고, 동기마저도 명확했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1점. 주인공의 장황한 대사만 돋보일 뿐, 추리적인 부분에서 아무리 봐도 점수를 줄 부분이 없다면 추리 소설이 아니라 무슨 스탠딩 코미디와 다를 바 없지요.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
프리랜서 편집자 베로니카 크로스는 박봉 때문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며 부수입을 챙긴다. 그녀는 토요일마다 서점에 나타나 싸구려 중의 싸구려 소설인 브루노 클렘의 페이퍼 백만 찾는 손님 해리에게 도대체 왜 브루노 클램 책을 읽는지를 묻는다.
토머스 H 쿡의 단편. 심리 묘사의 대가다운 진중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또 누구나 가졌을 법한 질문, 이런 싸구려 책을 뭐하러 읽는가?에 대한 깊이있는 답도 인상적이고요. 베트남 전쟁에서의 무자비한 살인으로 후유증에 시달리는 해리에게는 싸구려 페이퍼백, 펄프 픽션이 일종의 스카치 위스키나 마약과도 같은 효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읽는다는게 그 진상인데, 이를 대단히 유려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고급 문학만 읽는 베로니카 역시 이런 류의 고통 - 강한 증오심으로 죽은 아버지의 얼굴을 후려쳤던 것 - 을 잊기 위해 책으로 도피하는게 아닐까 싶은 결말도 돋보입니다. 결국, 수준을 떠나 문학은 마약이라는 결론이랄까요?

문제는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신간이 나오지 않는 브루노 클램의 책 대신, 시리즈가 많은 다른 싸구려 소설을 권해주고, 베로니카도 누군가가 무언가를 원하는건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는 교훈을 얻는다는 결말이 해피엔딩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딱히 흥겹거나 유쾌하지도 않고요. 또 미스터리라고 할 법한 내용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좋네요. 다른 졸작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후회하게 될 거에요>>
미스터리 서점은 끔찍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오토 펜즐러의 유일한 희망은 미스터리 소설을 수집하는 백작 부인이 찾는 <<데인 가의 저주>>를 찾아내어 판매를 성사시키는 것 뿐. 다행히 크리스마스에 책을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백작 부인에게 건네기 전, 책을 분실해 버리고 마는데...
오토 펜즐러의 아내라는 아동 도서 작가 리사 미쉘 앳킨슨의 이야기. 크리스마스에 미스터리 서점에서 벌어진 미스터리라는 조건은 충족시키지만 완성도는 별로입니다. <<데인 가의 저주>>가 사라진 이유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어요. 급료 없이 스티븐 킹의 신간 스릴러를 원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마지막 근무와 책을 숨기기 위해 스티븐 킹의 표지를 덮었다는 묘사가 합쳐지면 그 답은 너무나 뻔하잖아요.
게다가 백작 부인이 고가의 컬렉션을 오토 펜즐러에게 남기고 사고로 죽는다는 결말은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것도 순록이 끄는 썰매에 치어서 죽는다니, 이게 무슨 장난도 아니고....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려운 망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긴 겨울의 한잠>>
프리랜서 사진가였던 '나'는 오토 펜즐러의 도움으로 알코올 중독에서 빠져나와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맞은 첫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아래층 화장실을 방문했던 산타클로스의 시체를 발견한다. 산타클로스의 정체는 서점 직원 알란이었다.
셜록 홈즈 원고가 동기인 고전 본격물 스타일의 정통 추리 단편. 오토 펜즐러가 직접 탐정역을 수행하는게 독특했습니다. 전개, 특히 셜록 홈즈와 비슷한 추리쇼를 펼쳐가면서 범인을 드러내는 마지막 장면 등에서 고전 본격물을 잘 흉내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흉내에 그칠 뿐이라 아쉽습니다. 고전물 만큼의 정교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수께끼인 "왜 희귀본을 창고에 넣는다고 했던 알란이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채 살해되었는가?"부터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으니까요. 당연히 산타클로스가 알란을 죽이고, 옷을 갈아입힌게 뻔하잖아요?
그렇다면 산타클로스는 누구냐는 수수께끼가 남는데, 여기서 억지스럽게 이야기가 비약해 버리고 맙니다. 시체 발견이 계기가 된 튜바 연주자 더그가 범인으로, 그는 시체 근처에 떨어진 튜바의 밸브 오일을 감추기 위해 다시 현장을 방문했다는 설정인데 이건 말도 안되죠. 현장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면 다시 돌아가서 증거를 인멸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요? 그냥 도망가버리면 되지요. 현장의 튜바 밸브 오일이 그렇게 대단한 단서가 될 수도 없었을겁니다. 애초에 서점에 나타나지 않은걸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고전 본격물에 대한 팬심으로 조금은 후한 점수를 줍니다.

<<콜드 리딩>>
미스터리 서점에서 일하는 로저의 특기는 손님들을 파악하여 그들이 원하는 책을 권해주는 것. 그런 그에게 크리스마스 이틀 전, 매들린 커크라는 아가씨가 나타난다. 유명 작가였던 할머니 매들린 커크 (동명이인)의 미발표 원고를 발견하고 그 값어치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로저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여 원고를 확인하기로 약속하는데, 원고를 빼앗기 위해 누군가 그녀를 습격한다. 로저는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여 범인이 누구인지를 추리해낸다.


서점 손님을 보고 그들이 원하는 책을 추리해낸다는 로저의 특기는 재미있습니다. <<시인장의 살인>>에서 학생 식당 손님이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추리 배틀을 펼치는 아케치 교스케와 하무라 유즈루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저는 별로였지만 존.D.맥도널드의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가 중요 소재로 등장하여 관련된 정보가 사건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되는 등 추리 소설에 대한 깊은 이해도 인상적이었고요.

문제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라는 일상계스러운 추리라면 모를까, 폭행 납치에 살인 미수까지 벌이는 범인을 추리하기에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범인인 맥도널드 팬을 특정하는건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를 위한 복선도 없지는 않고요. 그러나 단편 소설 분량에서 쉽게 풀어낼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크리스천 킬러>>
지능은 좀 떨어지지만 사람 죽이는 일에 충실한 킬러 사케시언은 독실한 크리스천. 어느날 자신의 타깃인 스티븐의 여동생을 진짜 천사로 착각한 뒤 살인을 그만둔다.
크리스천 킬러가 천사 분장을 한 타깃의 여동생을 만난 후 살인을 그만두지만, 또 다른 킬러의 살인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이야기. 그냥 봐도 <<레옹>>이 떠오르지요? 우직한 킬러 사케시언, 살아있는 천사같은 헤일리 캐릭터도 딱 그러하고요. 마지막에 사케시언이 죽고 마는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별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타깃인 인간 쓰레기 스티븐이 살아남는 결말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래도 딱 한가지, 사케시언이 죽기 전 진짜 천사를 보았다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 뻔하지만 극적인 전개에 이 결말을 더하면 평작 수준은 되다고 보여지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오토 펜즐러의 조건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작품이에요. 특별히 수수께끼가 등장하지 않으니까요.

<<칠십네번째 이야기>>
미스터리 서점에서 칠십 세가지 이야기가 수록된 단편집을 구입한 주인공은 책에 수록된 <<어셔가의 몰락>>을 읽은 후, 자신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 아래층 한국인 편의점 주인을 트렁크에 넣어 땅에 파 묻는다...
영미권 작품에 흔한, 1인칭 시점의 정신병자가 등장하는 사이코 스릴러. 하지만이 작품의 주인공은 사이코패스 이기는 한데, 지능지수가 너무 떨어져서 문제입니다. 어린 시절에 저질렀던, 동물들을 땅에 파묻던 행동을 범죄와 연결시키는데 발상이 지극히 유치하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동기도 없는 충동적인 행동이라는 점도 그러하고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나 루스 렌들같은 심리 묘사를 선보였다면 나름 볼만한 작품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묘사 역시 전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마지막 목격자로 오토 펜즐러와 서점 직원을 등장시킨 건 명백한 패착입니다. 지나치게 억지스러웠어요. 때문에 별점은 1점입니다.

<<이름이 뭐길래>>
전직 공중 곡예사 렉시 스미스는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할머니의 유언으로 그녀가 퇴짜맞았던 원고들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내 놓은 뒤, 친구 알비라의 사인회로 향한다. 사인회가 끝난 뒤, 사인회장이었던 미스터리 서점의 오토 펜즐러와 일행은 파티를 갖는다. 그곳에서 렉시는 할머니의 작품 중 한 편이 유명 작가의 작품과 5년 전에 바꿔치기 되었다는걸 알고 경악한다.
서스펜스 스릴러물로 유명한 메리 히긴스 클라크의 단편. 작은 애완동물들을 사랑하고 추리 소설가를 지망했던 할머니 캐릭터 설정이 귀여웠던 작품입니다.

문제는 특별한 반전이 있는건 아니며, 할머니의 작품이 사실은 대단한 걸작들이었다는 결말이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점이죠. 렉시가 전직 곡예사였다는 설정도 딱히 효과적으로 사용된건 아니고요. 분쇄될 뻔 했던 봉투를 더 극적으로 회수했었어야 했어요.

그래도 크리스마스 특별 단편이니 이 정도는 눈감아줄 만합니다. 전개도 깔끔하고 시원시원해서 읽을 만 하고요. 완성도보다는 분위기가 적당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9/12/16

2001+5 Space Fantasia Anthology - 호시노 유키노부 / 김완 : 별점 1.5점

2001+5 Space Fantasia Anthology - 4점
호시노 유키노부 글 그림, 김완 옮김/애니북스

좋아하는 작가 호시노 유키노부의 단편집. <<요녀전설 1>>은 대실망이었지만 이번에는 항상 평균 이상의 작품을 선보였던 SF 단편집이라 나름 기대를 했습니다. 대걸작 <<2001>>의 후속작같은 느낌의 제목도 큰 기대에 한 몫 단단히 했고요.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나 실망입니다. 특히 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 탓이 가장 큽니다. 제대로 완결을 맺지 못하고 중도에 연재가 중단된 미완성 작품이거든요. 연재 잡지가 폐간되었다는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만, 작가 후기에서라도 결말에 대해 전해주지 못하는 완벽한 미완성 작품을 돈을 받고 판다는건 좀 비양심적인 행위가 아닌가 싶어요. 죽은 작가도 아니고, 엄연히 살아있다면 결말은 정리해서 알려줬어야죠! 그렇다고 미완성인 이야기를 억지로 단행본화할 만큼 멋지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호시노 유키노부의 장기인 Hard SF가 아닌 스페이스 오페라같은 가벼운 액션 활극인데, 특징은 명확하지만 호시노 유키노부라는 이름에서 기대할만한 이야기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내용도 평이하고요. 그나마 <<아서월드>>라는 소제목도 있는 것 처럼, 아서왕 전설을 이야기에 깊숙이 연결시켜 전개하는 아이디어 정도만 눈에 뜨일 뿐입니다. '아발론'이라고 명명한 고대 외계인의 우주선 '엑스칼리버'를 손에 넣은 지구인들이 침략자들에 대항해 싸워나간다는 식이죠. 등장인물들도 팬드래건, 랜슬럿, 갤러해드, 퍼시벌, 거웨인 등 친숙한 이름들이 대거 등장하고요. 솔직히 너무 억지스럽게 가져다 붙인 티가 물씬 나서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요. 결론적으로 점수를 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이 미완성 작품 외에는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역시나 대체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전체 평균 별점을 내자면 1.5점 정도? 

<<밤의 망망대해에서>>
이전 <<2001>>의 단편과 이어지는 내용으로, 오래전 우주를 탐사하기 위해 출발했지만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커크의 후일담을 그리고 있습니다. '월-E'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구형 로켓이 신형과 사랑에 빠져 신세대의 아담과 이브가 된다는 내용이니까요. 대단한 상상력이 발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고생만 한 커크에게 꽤 괜찮은 선물같은 결말이라는 점에서는 그런대로 괜찮았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진노의 그릇>>
러시아에서 핵전쟁을 일으킨다는 내용의 짤막한 작품. 솔직히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냉전시대에 누구나 상상했었을 그런 이야기를 충실하게 그림으로 옮긴 정도에 불과하니까요. 별점은 1.5점입니다.

<>
제목처럼 3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2장 분량으로 짤막한 SF 꽁트입니다. 앞장은 기묘한 설정, 뒷장은 그 설정에 대한 반전과 같은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반전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소설로 따지면 '쇼트쇼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소품이라 점수를 주기 애매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포보스 & 데이모스>>
화성의 포보스 기지에서 급작스러운 바이러스에 의한 사고가 발생되었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작품입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포보스 기지의 바이러스는 포보스 지하에서 채굴한 얼음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는 지구에서 튕겨나온 운석에서 비롯되었다는게 결말입니다. 반전은 이 운석은 공룡 멸종을 가져온 대폭발 때문에 지구에서 튕겨나온 것으로, 멸종하던 공룡들의 공포를 그 사체와 함께 냉동건조하여 담았다는 것이고요.
과감한 SF 적인 발상에 여러가지 과학적 설정이 뒷받침되어 꽤 독특한 반전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호시노 유키노부 스타일의 작품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설득력이 높다고 하기는 어렵지만요. 그래도 이 정도가 그나마 읽을만한 수준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안개행성>>
행성 화이트 포레스트 2호를 탐사하기 위해 착륙했던 우주선 풀룩스의 통신 두절 후, 구출을 위해 출동한 우주선 카스토르도 행성의 고농도 산소층 때문에 화재를 당해 겨우 착륙한다.
풀룩스의 생존자인 조종사 레크랑을 찾아나선 대원들은 짙은 안개 속에서 문명의 흔적을 발견하나, 이내 기묘한 생물의 습격을 받는다. 행성의 대기를 흡입한 대원 지나는 에어록을 열어 놓은 채 탈출하고, 모든 대원들이 행성의 대기를 흡입한 뒤 서서히 기억을 잃기 시작하는데...


지적인 동물이 나타나 불을 쓰기 시작하면 산소층이 반응해 신경 가스를 내뿜는 방위 시스템이 움직이고, 이 가스를 맡은 생명체는 기억을 잃고 사고력이 쇠퇴해 문명이 멸망한다는 설정이 아주 인상적인 SF. 행성, 또는 숲이 사라지기 전에 자구책을 마련했다는 것이죠. 문명은 발전을 위해 숲을 벌채하기 때문입니다. 설정도 멋지지만, 이야기도 진상을 서서히 드러나게끔 풀어나가고 있어서 굉장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지식과 경험이 없으면 노인은 필요가 없다는 말을 했던 선장의 자살 등 곳곳에 멋진 장면도 많고요. 한마디로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제법 눈에 뜨입니다. 우선 외계 문명이 돌로 건물을 만들 정도였다면 불도 진작에 썼을텐데 그 전에 쇠퇴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홀로 우주선에 복귀하여 탈출하는데 성공한 조종사 이언이 필요없는 기억과 정보부터 잃는다는 설정도 마찬가지고요. 우주선 탈출 방법이라던가 조종법은 기억하지만 다른 동료들과 연인에 대한 기억을 잃는다? 너무 편의적인 발상이죠. 특히 동료의 아들 사진을 보며 소중한 무언가를 잊었다는 식으로 끝내는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른 수록작들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운 수작입니다. 별점은 3점. 이 작품 하나만큼은 찾아서 읽어보실 만 합니다.

2019/12/15

소금 - 마크 쿨란스키 / 이창식 : 별점 2점

소금 - 4점
마크 쿨란스키 지음, 이창식 옮김/세종서적

"소금"이 어떻게 인류 문화와 관련되어 왔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문화사미시사 서적. 다양한 음식에 대해 문화사적으로 들여다보는 저작물로 잘 알려진 마크 쿨란스키의 작품입니다. 작가에 대한 신뢰가 깊어 아주 오래 전 구입했었지만 이제서야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마크 쿨란스키의 책 답게 디테일은 발군입니다. 중국, 유럽과 미국, 그리고 다른 신대륙을 아우르는 거대한 스케일로 소금 채취와 무역, 그리고 관련된 다른 산업들과 세금 등의 정책 등을 설명해주는 과정의 깊이가 실로 놀라운 수준이거든요. 특히나 중국 소금 전매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초반부는 미국인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디테일을 자랑합니다. 한자에 대한 설명까지 해 주는 수준이니 말 다했지요. 이집트와 페니키아를 거쳐 지중해 일대로 널리 퍼지게 되는 남부 유럽에서의 염장 문화에 대한 설명, 켈트족들의 염장 문화가 로마로 건너가 제국의 일부가 되는 과정의 소개도 역시 상세하고요.
로마에서는 소금이 급료라는 말의 어원이 될 정도로 제국에 필수적이었다는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는 물론, 여러가지 염장 문화에 대한 설명과 제염소에서 어떻게 소금을 채취하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신기한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염장 요리 중 가장 유명한 '가룸'이 특히 인상적이에요. 염장 생선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만든 소스인데, 고기와 생선, 야채 요리는 물론 과일에도 몇 방울씩 뿌려 먹었다고 합니다. 우리로 따지면 액젖을 과일에 뿌려 먹었다는건데 솔직히 별로 맛있었을것 같지는 않네요. 로마의 멸망 이후 사라진건 맛이 없었기 때문일 거라는 개인적인 확신이 듭니다.
그리고 베네치아와 제노바를 거쳐 중세 이후, 어업이 발전하면서 염장 대구와 청어를 위한 대량의 소금이 필요해저 영국을 중심으로 여러 제염소와 암염 채굴을 위한 소금 광산이 어디에 어떻게 생겨나서 유지되는지 설명됩니다. 영국, 프랑스, 스웨덴, 폴란드와 오스트리아 등 관련된 각 나라의 여러가지 염장 음식이 함께 소개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후 신대륙 미국과 카리브 해의 제염소들에 대한 소개와 근, 현대로 넘어오면서 제염소들이 몇 개의 거대 회사로 통합되고, 제염업도 일반 소금보다는 비료 제조를 위한 가성칼륨 생산에 촛점을 맞추는 등의 변화가 그려지면서 글이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자의 다른 책들에 비하면 재미 측면에서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유는 소금이라는 소재 자체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구>>의 경우,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어장을 발견한게 어떻게 다른 인류 문화, 역사와 이어지는지가 아주 흥미로왔었습니다. 그러나 '소금'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재료라서 전 세계 어디에서든지 어떻게든 구해서 먹을 필요가 있었다는게 문제입니다. 소금에 세금을 붙이건 말건 상관없어요. 어차피 못 먹으면 죽는거 밀수를 하거나, 아껴 먹거나 했을테니까요. 소금 가격이 움직일만한 거대한 시장의 변동도 특별히 그려지지 않고요. 한마디로 소금 산업에 있어서 그 어떤 발견과 기술 개혁이라도 인류 문화에 영향을 끼친건 없습니다. 이래서야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지요.
게다가 지나치게 과장된 부분도 눈에 거슬립니다. 미국에 영국 소금을 유통시키기 위한 영국의 노력이 독립 운동을 불러왔다는 식의 설명이라던가, 소금은 경제적 독립에 꼭 필요한 요소였다는 등의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물론 모두 맞는 말이기는 하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지요. 몇 가지 아이템 중 하나라면 모를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거의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을 통해 소금 산업의 역사를 전 세계에 걸쳐 상세하게 알려주는 역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재미와 가치를 찾기 힘들었지만 이쪽 산업,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문제는 이미 절판되었다는 건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겠죠.

2019/12/14

세계의 전투식량을 먹어보다 - 키쿠즈키 토시유키 / 오광웅 : 별점 3점

세계의 전투식량을 먹어보다 - 6점
키쿠즈키 토시유키 지음, 오광웅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굉장히 특이한 주제를 깊숙이 파고드는 AK Trivia book 시리즈의 한 권.

제목 그대로 세계의 전투 식량과 그 역사, 기타 관련된 정보를 다루고 있는데 초반에 등장하는 여러 국가들의 현용 전투 식량에 대한 소개부터가 엄청난 수준입니다. 심지어 레이션 별 칼로리까지 소개하고 있을 정도에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전투 식량에 치킨 누들, 즉 라면이 포함되어 있다던가, 프랑스 전투 식량은 그 맛이 빼어나서 과연 프랑스답다던가, 스위스 전투 식량은 그냥 민간 시장용 시판물을 패키징한 것에 불과하다던가 등 재미있는 정보도 많고요. 개인적으로는 소개된 국가들 전투 식량 중에서는 러시아 것이 가장 탐났습니다.
물론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왠만한 쇼핑몰에서 다양한 국가의 전투 식량을 구입할 수 있어서 특별한 내용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허나 하루의 3끼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등 이 책에서 제공하는 상세 정보를 알기는 어렵기 때문에 나름의 가치는 확실합니다.

이러한 현용 전투 식량 소개 외에도 미국 독립전쟁에서부터 다루고 있는 병영식의 역사 등 관련 자료도 풍부합니다. 미국 남북 전쟁부터 통조림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심지어 당시 깡통 통조림을 생산했던 밴 캠프사와 언더우드사는 현재도 건재하며, 당시와 똑같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니 한 번 구해서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그 뒤는 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과 현대의 병영식이 소개되는데 역시 꽤 흥미로왔습니다. 병영식, 전투 식량의 발전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간단하게나마 일람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고요. 2차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 전투 식량이 별 차이가 없는게 좀 의외였습니다. 2차 대전 때 어느정도 전투 식량의 형태가 완성된 탓이겠죠.
기본적인 주식 외에도 초콜릿이나 잼, 사탕류와 기타 국가별 특이한 음식들이 망라되어 있으며, 이 외에도 레이션을 구성하는 가열제와 액세서리 백으로 제공되는 각종 액세서리 및 커틀러리와 식기, 조리 도구 등 관련된 아이템에 대한 소개도 상세합니다. 전투 식량 속 단골 아이템을 꼽아서 언제부터 전투 식량에 포함되어 제공되었으며, 국가별로 어떤 차이를 보내는지를 알려주는 챕터도 흥미로왔고요. 맨 마지막에 '오래전 야전식을 재현하자!'는 취지로 소개하는 미국 독립전쟁, 남북전쟁과 구 일본 육군 야전식 레시피 역시 재미있는 아이디어였다고 생각됩니다. 딱히 해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요.
모든 내용이 방대한 도판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확실히 일본인들이 뭔가 집요할 정도로 파고 드는건 잘하네요.

그러나 일본인이 쓴 책이라 일본 자위대,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구 일본 육군의 전투 식량과 병영식에 관련된 정보가 많다는 건 아쉽습니다. 자위대 전투 식량은 전 메뉴를 소개하고 있기까지 하거든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그래도 대한민국 육군의 전투 식량도 소개되고 있다는게 위안거리입니다.
그리고 전투 식량 소개와 역사 및 기타 정보가 이른바 선진국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단점입니다. 제 3국이나 아프리카 등의 전투 식량 소개가 더 많았으면 했는데 말이죠.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저처럼 '잡학다식' 쪽 분야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다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전투 식량도 좀 사 먹어 봐야 겠군요. 러시아, 없다면 프랑스 것이라도요. 또 AK Trivia book 시리즈도 몇 권 더 구입해 보아야겠습니다.

2019/12/12

Q.E.D. iff 3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1.5점

[고화질]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03 - 4점
MOTOHIRO KATOU/학산문화사

연달아 읽은 Q.E.D season 2인 iff 시리즈의 제 3권. 살인 사건과 일상계라는 두 종류의 이야기가 수록되어있는 전통적인 구성입니다. 그러나 전 권과 마찬가지로 이번 권 역시 마음에 들지 않네요. 한 두가지 눈에 뜨이는 트릭이 있기는 하나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설득력이 결여된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는 형국이군요.... 수록된 에피소드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세 명의 자객>>.
사기꾼 야마구치에게 원한을 품은 쿠로츠 유이, 오카다 미키, 후지시마 아키코는 야마구치가 연 파티에 참석하여 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각자 계획을 실행하고, 야마구치는 시체로 발견되는데,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세 명의 범인이 각각 살인 계획을 실행하지만 정작 피해자는 엉뚱하게 죽는다는 내용의 작품. 세 명의 범인이 짠 계획 모두 완전 범죄를 목적으로 했다는 점에서는 정통 본격물 느낌입니다. 범행 계획과 그 과정이 먼저 선보인다는 점에서는 도서 추리물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세 명의 계획 모두 실망스럽습니다. 특히 후지시마 아키코의 계획은 최악이에요. 독사를 이용하는 계획인데, 그녀가 펫샵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용의자를 특정하는건 너무나 쉬워서 알리바이 트릭 따위는 소용 없을 정도거든요. 단지 칼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었다는 이유로 오카다 미키가 용의선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요. 그나마 쿠로츠 유이의 계획의 핵심인 야마구치의 사체를 테이블 사이에 숨긴다는 트릭 하나만큼은 그럴듯했습니다만, 시체의 무게도 있고 시간적 여유도 별로 없으니 계획대로 잘 되었을 것 같지 않네요.
무엇보다도 야마구치가 수영장에서 금괴를 꺼내려다 힘이 다해 죽었다는 결말은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걸 알면, 보통은 경찰을 부르거나 최소한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할텐데 아무리 봐도 현실적이지가 못해요.

Q.E.D 최대의 장점인 즐거운 일상계 이야기도 아니고, 수학이나 과학적인 지식 전달과 함께 펼쳐지는 이야기도 아니라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자전거 도둑>>.
토마가 초등학교 때 일본 시골에 잠시 머무르면서 학교 친구 아키유키의 형인 다카히코의 심부름 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자전거 도둑으로 몰렸었던 사건을 다룬 일상계 작품.고등학생이 된 토마에게 누군가 오래된 심부름 센터 건물의 철거 대리인을 맡긴 뒤 진상이 드러난다는 이야기죠.

진범이 토마일리가 없으니 범인은 누군가 다른 사람입니다. 읽으면서 원래는 다카히코가 자전거를 구입하고 떠날 세계 여행을 말리기 위해 어머니가 자전거 도난 사건을 일으키고, 토마를 범인으로 몰았다고 생각했지만 진상은 다카히코가 자전거를 손에 넣기 위해 벌인 일이었죠. 요렇게 독자를 함정에 빠트리는 전개는 나쁘지 않았어요.

그러나 문제는 다카히코가 자전거를 얻기 위해 벌인 트릭의 현실성이 많이 낮다는 점입니다. 자전거 발주 팩스를 조작하여 공짜로 한 대의 자전거를 더 얻어내는 조작이 과연 그렇게 쉬웠을까라는 상황은 둘째치고라도, 당시 돈으로 2만엔이 넘는 자전거의 발주 실수를 그렇게 쿨하게 주인이 넘겼으리라고 예측하는 건 무리니까요.
또 이야기의 설득력도 낮습니다. 다카히코가 자전거를 손에 넣었지만, 세계 여행을 포기하고 어머니에게 계속 복수하며 살아간다는건 이해하기 어려워요. 말 실수 하나가 십여년을 옭아맬 족쇠는 될 수 있지만, 부모 자식간에 그렇게 오랜 기간 족쇠가 될 정도의 말 실수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다카히코가 심부름 센터 직원들에게 가장 힘든 잡초 뽑기가 공평하게 돌아가도록 조작한 트릭은 괜찮아서 약간의 점수를 주지만, 이야기 자체의 완성도는 좋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