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9/12/08

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이름, 시네마 천국 - 별점 2.5점

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이름, 시네마 천국 - 6점
김승구 지음/책과함께

일제 강점기 시절 식민지 조선의 영화에 관련된 미시사 서적. 단순한 '영화사'는 아니고 영화 관련 문화사 서적입니다. 연대별로 주요 영화나 영화인에 대해 짚어주는 식이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과 영화의 흥행 방식, 영화 관련 정책과 영화와 관련된 언론 등의 당시 상황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거든요. 다양한 사료가 바탕이 된 것은 물론입니다. 1920년대 후반에도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가 널리 퍼져있었다는 근거로 1930년에 발표된 이상의 <<십이월 십이일>>에서 주인공인 업 청년의 방 안에도 영화 배우의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었다는 묘사를 예로 드는 식이지요.

몇 가지 재미있는 기록들도 눈에 뜨이는데, 우선 당시 영화 입장료에 대한 것입니다. 1929년 춘천군청 고원의 월급이 23원인데, 경성 조선극장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50~80전이었다는군요. 영화 구경에 월급의 1/40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지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엄청난 고가입니다. 최저 임금을 8,000원으로하고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에 월 4주 근무한다고 치면, 대충 3만원이 넘는 돈이니까요. 물론 당대 최고의 엔터테이먼트 산업으로 지금의 뮤지컬이나 콘서트 급이라고 한다면, 가격 역시 뮤지컬과 콘서트 급으로 책정되는게 딱히 이상해 보이지는 않네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초기의 영화관은 여러가지 시설이 미비했는데 특히 냉, 난방이 큰 문제였다고 합니다. 냉, 난방이 완비된 영화관은 1935년에야 세워졌다고 하는데, 1935년 당시 냉방과 난방까지 제공해 주었다면 3만원은 더욱이 납득이 되는 금액입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상영된 영화의 9할 이상이 헐리우드 영화였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헐리우드 쏠림이 지금보다도 심하네요. 헐리우드의 대자본 투여 영화와는 지금도 국내 영화가 단순 경쟁이 힘든데, 당시의 한국 영화가 경쟁이 되었을 리가 없었겠죠. 그러나 일본 영화가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건 좀 의외입니다.
당시 개봉된 영화 중 <<날개>>나 <<벤허>>, <<빅 퍼레이드>>를 당시 식자층의 평론과 함께 소개해주는 글들도 여러모로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나 <<벤허>>를 카프계 비평가들이 종교가 억압자와 쉽게 타협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종교의 해독성'을 깨닫게 해 주는 '반동 영화의 전형적 표본' 이라고 평했다는데 아주 독특한 시각이에요. 당시 인기있던 몇몇 배우들의 소개들도 재미있게 읽었고요.

또 영화관 한 곳에서 영화를 독점 상영하며, 지정 좌석제도 아니고 한 번 들어가면 하루 종일 있어도 되었다는 등의 당시 영화관 풍속도는 제가 학생이던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해 줍니다. 영화관 한, 두 곳에서 특정 영화를 독점 상영였으며, 지정 좌석이기는 하지만 내가 구입한 회차가 끝나면 계단에 앉아서라도 계속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건 일제 강점기 시절과 별로 다를게 없다고 생각이 되거든요. 그런 내용은 없지만 이러한 흥행 특성 상 - 단관 개봉 - 인기있는 영화를 보려면 일찍부터 가서 줄을 서야 했다는 것도 비슷했을 겁니다. 신문 광고가 주요 홍보 수단이었다는 것도 유사하고요. 즉, 1920~30년대와 80년대까지는 영화 관람 문화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영화 관람 행태가 획기적으로 변한건 멀티 플렉스의 도입,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예매 문화의 활성화 때문이겠죠. 거의 반 세기를 이어온 특정 문화 소비 행태가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변한 예가 또 있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 시절 영화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도판도 비교적 충실하고요.
그러나 앞에 나온 정보가 뒤에 또 소개되는 등 순서가 잘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은 많이 듭니다. 연대별, 주제별로 내용이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영화사, 문화사, 미시사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 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