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6/04/27

토르: 다크 월드 (2013) - 앨런 테일러 : 별점 2.5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phase 2에 속한 슈퍼 히어로물. 그러나 마블의 슈퍼 히어로물이라기보다 독특한 설정의 판타지 SF로 봐도 됨직한 작품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감상했는데 이제서야 리뷰를 올리네요. <시빌워> 때문은 아닙니다만...

여튼, 장점이라면 우선 1편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기계화된 신화 느낌의 아스가르드 묘사를 들고 싶습니다. 헐리우드 대형 자본으로 상당히 그럴듯하게 꾸며놓았더라고요.
그리고 각본도 괜찮습니다. 토르의 어머니와 로키(?)가 죽는 등 무거운 내용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심각하지만은 않게, 나름 유머를 가미하여 풀어내었을 뿐더러 로키의 매력이 제대로 폭발한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네요. 마지막 장면은 정말이지 아주 기가 막히더군요.

하지만 메인 악당이 약해도 너무 약해서 끝이 너무 허무한건 단점입니다. 액션도 중반부까지는 돈을 팍팍 쓴 느낌을 확실히 주는데 클라이막스는 일기토로 끝나버려 더 허무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전작보다 재미있는건 분명합니다. 동급 마블 영화 수준의 재미는 전해준달까요. 후속작이 기대되네요.

2016/04/24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 - 장유정 : 별점 2점


살림지식총서 342. 제목 그대로 근대 경성다방카페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미시사 서적. 경성을 무대로 한 소설을 창작하고 있기에 자료삼아 구입하게 되었네요.

처음 생겨난 이후 속속 개업한 다양한 다방과 카페들에 대해 상세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좋았습니다. 카페 여급의 월 수입이라던가 여급들의 전직(?), 그녀들의 생각 등도 확인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모호했던 다방과 카페의 명확한 차이에 대해 알게된 것도 수확입니다. 다방은 문화인들의 문화 공간으로의 기능이 강했고, 카페는 여급과 술을 마시며 욕망을 충족시키는 환락의 공간이었다는 것을 상세한 사료와 함께 설명해 주고 있거든요.

하지만 '교수님'이 썼기 때문일까요? 발터 벤야민 등을 인용하며 시대를 분석하는 것은 좀 오버였습니다. 당대 다방과 카페에 대한 사료적 접근만으로 충분했는데 말이죠. 100페이지도 안되는 분량으로는 깊이있는 분석도 무리였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가격이 워낙 저렴하니 아주 안좋다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2016/04/22

수족관의 살인 - 아오사키 유고 / 이연승 : 별점 2점

수족관의 살인 - 4점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제가오카 고등학교 신문부 부원들은 교내 신문 취재를 위해 '요코하마 마루미 수족관'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레몬 상어 수조에 사육사가 떨어져 잡아 먹히는 사건이 벌어진다.
출동한 현경 수사1과의 센도와 하카마다 형사는 모든 용의자들이 확고한 알리바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어쩔 수 없이 우라조메 덴마에게 사건 해결을 요청하게 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려면 그만한 댓가를 지불하셔야죠 - 우라조메 덴마


아오사키 유고의 고교생 오타쿠 명탐정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 두번째 작품. 전편 이후 맞은 여름 방학, 수족관에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

시리즈답게 전작과 동일한 본격물입니다. 하지만 전작보다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기대했던 추리적 측면에서도 트릭이나 별다른 복선, 반전이 없어서 정교함 면에서도 아쉬움을 많이 남기며, 이렇게까지 길게 쓸 이야기였나 의문이 생기기까지 합니다. 첫 현장 상황이 추리 근거의 모든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물론 우라조메 덴마가 중반에 수의사 미도리카와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등 추리를 펼치기는 합니다. 허나 별로 중요하게 설명되지 않아서 독자가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상세한 현장 묘사로 충분했을 정보 제공을 분량을 늘려 제공한 것에 불과하달까요.
또한 비교적 초반에 밝혀지는 두루마리 휴지를 활용한 시한 장치 알리바이 조작 트릭 역시 유치하고 설득력이 낮아서 실망스럽습니다. 이 정도 트릭을 경찰이 알아내지 못한 것은 거의 직무 유기에 가까운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잡하며, 실제로 잘 되었을지도 의문이거든요. 그리고 이 트릭으로 범행 시각을 몇분 옮겨 놓는 것에 의해 모든 용의자들이 알리바이가 존재하게 됩니다. 즉, 범인에게 있어서는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시간 낭비였을 뿐이며 독자에게도 이 트릭의 유무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어 버립니다. 뭐 뒷부분에 화장실 휴지를 바꿔치기하는 시간을 특정하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긴 합니다만 그냥 참고 수준이고요.

아울러 기존의 단점, 즉 사건이 비현실적이라는 한계 역시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특히나 동기는 최악으로 전편보다도 말이 더 안돼요. 전편도 동기가 어설프긴 했으나 그래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범행을 저지른 것인데 반해, 이번에는 단지 '돌고래'를 위해서라니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수족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살짝 묘사함으로써 동기에 대한 설득력을 높이려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죠.
게다가 아메미야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레몬 상어를 없애기 위함이었다는 동기를 좀 더 파고들지 못한 것도 아쉽습니다. 경찰 수사의 기본은 동기가 무엇인지를 조사하는 것이 아닐까요? 용의자들이 수족관 안에 있었던 사람들로 확정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부분이 소홀하게 넘어간 것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사람을 죽이느니 두루마리 휴지를 이용한 장치를 만들어서 수조에 독을 타는게 나았을 텐데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아울러 레몬 상어가 피해자를 먹어버린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그 외 우라조메 덴마의 개인사가 슬쩍 엿보이는데 솔직히 아무런 관심이 생기지 않더군요. 사회 부적응자 오타쿠보다는 건강미 넘치는 유노가 훨씬 마음에 드는데 말이죠. 유노 이야기나 좀 더 펼쳐줄 것이지.

그래도 '명탐정'의 '추리' 자체는 괜찮은 편이기는 합니다.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다운 본격 추리물적인 요소는 분명히 살아있어요. 독자에게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할 뿐더러, 주어진 정보를 통해 마지막 추리쇼에서 범인을 밝히는 카타르시스만큼은 제대로거든요. 사건 현장에 있던 모든 단서들을 활용하는 추리의 과정 역시 기가 막힙니다. '수돗가 옆 피가 잔뜩 묻은 대걸레 모양 혈흔과 범인이 들고가던 양동이 속 핏물은 모순이다. (대걸레를 양동이에 넣고 씻었다면 혈흔이 이렇게나 짙게 남았을리 없다!) 이유는 무언가 피가 묻은 것을 양동이에 넣고 빨은 것이며 그것은 바로 수건이다. 즉, 범인은 수건을 들고 다니는 사육사 중 한명이다'라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이 공개된 단서를 통해 설명되기 때문에 설득력이 아주 높아요.
그러나 이 추리는 단지 용의자를 사육사로 특정하는 것 뿐이며, 정작 진범을 밝혀내는 것은 아메미야의 사체에서 발견된 손목시계가 핵심 단서가 되죠. 발상은 재미있지만 솔직히 억지스러워요. 아메미야의 시계는 방수 기능이 있는 특제라 범인이 자신의 것과 바꿔쳤을 것이라는 건데 말도 안되죠.... 저 같으면 시계를 푼 채로 나 뒀을 겁니다. 뭐하러 자기 것과 바꿔치기를 해서 증거를 남긴답니까?
마지막으로, 현장의 정보를 토대로 추리를 펼친다는 이야기를 '글'로 읽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양동이 속 핏물이 흘렀다와 같은 정보를 독자가 주의깊게 인지하는건 무리니까요. 추리 만화로 따지면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 같은 느낌인데, 이런 점에서는 소설보다는 영상물에 더 적합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현대를 무대로 한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 그리고 경쾌하고 즐거워 읽기에는 편했습니다. 건강하고 활기찬 여주인공 유노의 상큼함과 발랄함도 기분 좋고요.  허나 이만한 길이의 장편으로 만들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추리적으로도 그닥이고요. 전편의 팬이시라면 읽어보실만 하겠지만 단순히 이 작품만의 가치는 낮으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길. 저 역시 이후 소설로 계속 읽을지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 영상물로 제작된다면 볼 용의는 있긴 합니다만...

2016/04/20

맛없어? - 고이즈미 다케오 / 박현석 : 별점 2점

맛없어? - 4점 고이즈미 다케오 지음, 박현석 옮김/사과나무
'저명한 발효학자이자 음식 탐험가인 저자가 직접 겪은 맛없는 음식들에 대해 ‘맛없음’이란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과학적, 인문학적으로 분석해 유쾌하게 풀어낸 책' 이라는 소갯글에 혹해 읽게 된 책.

목차는 모두 아래의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1장 세상의 모든 맛없는 음식
  • 2장 여행자를 위한 식사
  • 3장 날아라! 미각인 비행물체
  • 4장 요리하는 마음

이 중 소갯글과 비슷하게 저자가 생경한 음식에 도전하는, 이른바 '음식 탐험'을 벌이는 이야기는 1장입니다. 그런데 정말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어요. 쉽게 접할 수 없는 기묘한 음식에 도전하는 저자의 도전 정신이 정말 대단하다 여겨졌고요. 우리가 익히 아는 청어 통조림 '수르스트뢰밍'에서 시작하는데 이게 가장 정상적인 음식일 정도입니다. 다음 요리들은 일반 내공으로는 상상을 초월하거든요.
그 중 최고는 애벌레 요리! 벌레 요리는 예전에 읽었었던 <수상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에도 등장하지만 <수상한...> 쪽은 작가 일당이 먹기 싫은 것을 그놈의 돈이 뭐라고 억지로 먹는 상황이라면, 이 책의 저자 고이즈미 다케오씨는 직접 요리를 해 먹을 정도로 적극적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건 용감함을 넘어 무모한게 아닌가 싶어요. 여튼, 맛있다는 소문만 듣고 어렵게 노린재 유충을 구해서 질냄비에 볶은 후 간장을 한두방울 쳐서 먹는 순간....!이빨 사이에 껴서 '톡' 하는 파열음을 남기고 터지고 끈적한 내용물이 흘러나오는데 첫 맛은 달았지만 그 뒤에 노린재 성충의 구역질나는 냄새가 몰려왔다는, 경험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이야기로 스멀스멀 뭐가 올라오는 묘사는 정말 압권이네요.
그리고 <산적 다이어리>에서 꽤나 호평했던 까마귀 고기에 대한 적나라한 평도 재미있더군요. 불단의 향같은 냄새가 지독해서 먹기 힘들다고 하네요. 아무래도 <산적 다이어리>의 주인공 오카모토가 미각 음치인듯? 그 친구는 왠만한건 다 맛있게 먹으니까요.
그 외 한국의 홍어 역시 못 먹을 음식으로 등장하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하지만 2장부터는 그냥 일반 식당에서 파는 음식들 중 맛없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처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물론 저자의 배경에 걸맞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바로 왜 맛이 없는지를 나름의 과학적인 이유로 분석하는 것으로, 몇가지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1. 모둠 냄비에서 짜고 딱딱해서 맛없었던 대구 토막 : 냉동 제품으로 소금을 잔뜩 뿌려 냉동한 것임. 그래서 짤 뿐더러 소금 때문에 탈수 현상이 일어나 살이 딱딱해 지는 것이다.
  • 2. 같은 모둠 냄비에서 돼지고기 조각이 달라 붙은 이유 : 급격한 온도 변화로 단백질의 구조가 변해 서로 굳어 밀착된 것으로 차가운 냉동 상태에서 급속히 가열했기 때문임.
  • 3. 싸고 맛없던 야키니쿠 정식의 소고기 : 거세하지 않은 씨수소에서 나는 냄새가 강했던 탓

허나 이러한 전문성을 제외하면 평범한 맛집 블로거의 맛없는 식사 리뷰와 별다를게 없습니다. 전문적으로 맛없는 이유를 밝혀낸다 한들 그게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못해요. 주인에게 항의하거나, 아니면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아낸다던가 하는 드라마틱한 무언가가 있는게 아니거든요. 요리하는 마음에 대해 역설하는 4장도 뻔한 이야기였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1장은 아주 흥미진진했지만 이후에는 딱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는 평범한 맛집 블로거의 블로그 포스트에 가깝기에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차라리 괴식만 찾아 먹는 이야기였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2016/04/18

클로저 이상용 - 최훈 : 별점 3점

클로저 이상용 9 - 6점 최훈 지음/알에이치코리아(RHK)

최훈 작가를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하대리>부터 팬이 되었죠. 이유는 독특한 개그 센스에 더해 하루하루 완결되는 이야기를 이어서 하나의 거대한 장편을 민들어 낸 아이디어가 정말 참신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야 4컷 만화를 이어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작품이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국내에서는 처음 보는 형식일 뿐더러 이야기의 완성도 또한 높았다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어진 <MLB 카툰>에서부터 주특기라 할 수 있는 덕력 더하기 패러디 센스가 제대로 폭발했죠.

하지만 이후 연재작들의 행보로 팬심은 많이 떠났습니다. 한편, 한편으로 완결되는 프로야구 카툰같은 작품이야 언제 연재가 중단되어도 상관없다손 치더라도, 장편 연재물이었던 <하대리> 3부(였나요?), 팝과 록의 역사를 다룬 <록커두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전 여자 농구 선수들이 나오는 농구 만화 등이 아무런 언급없이 연재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완결된 작품도 흐지부지, 대충 끝냈기에 더 욕을 먹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GM>입니다. 국내 최초로 스카우터, 단장을 주인공으로 팀을 만들어 나가는 독특한 형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작중에서 보여지는 떡밥도 회수하지 못한채 뜬금없이 대충 끝내버렸죠. 스토브리그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시즌 개막도 맞지 못하고 끝낸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삼국전투기>의 경우는 마감일을 준수하지 못해 큰 비난을 사기도 했고요.

하지만 확실히 이런저런 작품들을 모두 끝내버린 덕인지 최근의 행보는 무척 다행스럽습니다. <삼국전투기>는 공명 사후의 이야기의 디테일로는 유사 컨텐츠를 압도할만한 깊이를 보여주어 박수를 받으며 마무리되었죠. 그리고 이 작품, <클로저 이상용> 역시 정상적으로 완결에 이르렀고요.

그럼 이제 <클로져 이상용>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이 작품은 전작 <GM>의 세계관과 동일합니다. 전작 캐릭터(하민우 등)가 감초 역할로 등장해서 팬으로서 무척 반갑더군요. 2군에서 올라온 이상용과 진승남 배터리가 패배주의, 개인주의와 세력 다툼으로 엉망이 된 게이터스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며 여러 상대팀을 제압하여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다는 이야기도 상당히 재미있고요.
허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재미요소는 이상용이 라이벌들과 펼치는 두뇌 게임심리전입니다. 이쪽 바닥의 본좌 <원 아웃>과 비교할만한 수준이거든요. 토쿠치 토야와 이상용 모두 투수로 구위가 아닌 타자와의 심리전을 통해 타자를 제압하는 두뇌파 - 기교파 투수이기도 하고요. 그러고보니 주인공이 적당한 수준의 구위를 가지고 현실적인 야구를 한다는 점에서는 <그라제니>의 본타와도 살짝 겹치는군요. 물론 단순한 설정 따오기는 아닙니다. 이상용은 어머어마한 분석을 통한 데이터 기반의 야구를 한다는 점, 그리고 확실한 주무기 (체인지업)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안되는 타자는 철저히 거르는 식으로 비겁하게 이겨나간다는 차이가 있거든요. 다른 만화들보다 훨씬 현실적인거죠. 어깨가 망가진 채 승부하는 마지막 장면 클라이막스에서 이상용이라는 선수의 장점을 제대로 보여주며 마무리한 것도 아주 좋았고요.


이러한 재미에 더해 최훈 작가 본인이 상당한 수준의 야구 팬이기에 가능했을 것 같은 디테일들도 큰 장점입니다. <GM>에서도 선보였던 데이터 위주의 선수 설정들부터 그러합니다. 옷주름으로 구질을 파악한다는 (쿠세) 이야기라던가, 이상용의 독특한 작전에 의한 병살 플레이 등도 마찬가지고요. 외국인 투수와 통역과의 대화 같은 깨알 개그, 최훈 특유의 패러디들 역시 재미를 더해줍니다.
또 KBO의 팀 구성을 연상케하는 구단들의 설정은 물론, 실존 선수가 떠오르는 여러 캐릭터들 역시 야구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디테일이었습니다. 게이터스가 LG 트윈스를 연상케하므로 LG 팬이시라면 더더욱 좋았을지도? (성적이 안 좋다는 점 때문에 별로였으려나요?)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이 작품 역시 선보인 떡밥을 모두 회수하지는 못했다는 고질적 문제가 해결이 안됐어요. 이상용을 둘러싼 삼각관계가 대표적이죠. 라이벌처럼 등장하는 여러 선수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데빌스의 강타자 김성욱에게 함정을 심어두었다는 설정이라던가, 여자를 두고 얽힐것 같은 이헌에 대한 묘사도 마무리 되지 않고 끝나버리거든요. 일본 연재물처럼 에피소드 한편 한편이 나름의 완결성을 가지고 연재가 이어졌더라면 해결할 수 있었을텐데 신문 연재물로 에피소드의 완결 개념이 없다보니 생긴 문제점으로 추후 단행본을 통해 보완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속 시원함은 부족합니다. 고교 야구 만화로 따지면 지구 예선을 거친 뒤 고시엔 (갑자원)에 진출하면서 "1부 완결"로 끝나는 느낌이랄까요.
후일담도 없는 것 보다야 나았겠지만 게이터스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우승에는 실패하고, 부상당한 이상용은 수술 후 재활하다가 1년만에 방출당하고 그 뒤 램스에 입단하여 선발 투수로 커리어를 이어간다는 후일담을 단 한편에서 마무리한 것은 좀 심하지 않았나 싶네요.
마지막으로 이상용이 만년 2군을 전전하다가 체인지업을 완성하여 최고 수준의 마무리가 된다는 설정으로 시작했는데 마지막에는 커브도 긁히는 날에는 김기정을 상대로 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 완전체 투수로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진 것도 원래 취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여겨집니다.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정인권과의 최후의 승부는 이상용의 특기를 살린 명장면이기는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지기는 합니다. 이미 직구와 체인지업의 구위 자체가 맛이 갔는데 그립을 바꾸는 정도로 삼진을 잡는게 가능했을지 의문입니다. 전부 직구 승부인데 어깨가 맛이 가서 체인지업의 속도로 들어왔다... 고 하는게 더 말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렇듯 단점이 없는 작품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야구 팬들에게는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후속작이 시작될 듯 싶은데 부족했던 부분을 잘 보완해 주면 정말 좋겠네요.

2016/04/16

도련님의 시대 - 다니구치 지로, 세키카와 나쓰오 / 오주원 : 별점 3점

『도련님』의 시대 1 - 6점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카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세미콜론

소설가 나츠메 소세키가 걸작 <도련님>을 쓸 때의 이야기로 나츠메 소세키, 그리고 그가 맥주집에서 난동을 부렸을 때 같은 유치장에서 신세를 진 인연으로 알게 된 협객 호리 시로, 노동운동가이자 시인인 아라하타 간손, 학생 모리타 요네마쓰, 학생 오타 주자부로 4명과 함께 하는 격변의 메이지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도련님>이라는 작품을 쓰려고 한다는 것을 4명에게 밝힌 후 소세키의 머릿 속에서 이야기가 하나씩 구체화되고, 그 이야기가 소세키에게 보이는 작금의 현실과 함께 교차 전개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죠.

메이지 38년, 즉 1905년 급속히 서구화되는 일본에서 지식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고민한다는 내용이 일단 재미있습니다. 아주 허황된 픽션이나 if물은 아니고 실제로 이렇지 않았을까?라는 것인데, 다니구치 지로 그림으로 표현된 덕에 그 위력이 배가되는 느낌이에요. 캐릭터 하나하나라던가 배경의 디테일 모두 최고일 뿐더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닌데 만화로 보니 아주 와 닿더라고요. 만화적으로, 그림으로 특징과 분위기를 아주 잘 잡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그림만으로 일상을 표현한 <고독한 미식가>의 그 느낌 그대로랄까요.
또 실존 인물을 대거 등장시켜 작품에 현실감을 불어넣는 것도 아주 좋았습니다. 안중근 의사! 까지 꽤나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할 정도니 말 다했죠. 그 외 제가 알만한 인물들은 모리 오가이, 라프카디오 헌, 시마자키 도손과 도죠 히데키(!) 정도지만, 그 외 수많은 메이지 시대 유명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인용하는 솜씨는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특히나 모리 오가이, 라프카디오 헌의 에피소드는 이야기의 핵심을 제대로 짚고 있기도 하고요.
아울러 존경해 마지 않는 블로그 이웃이신 대산초어님의 번역 역시 빼어납니다. 주석도 충실하게 달려 있고요.

그러나 몇몇 이야기 외의 역사적인 실존 인물들은 그냥 병풍, 배경에 가깝다는 것은 조금 아쉽습니다. 주요 4인방 중에서도 실존 인물인 아라하타, 모리타는 이야기의 현실성을 덧붙이기 위함이고 주요 인물은 작가의 창작으로 보이는 구 아이즈 번사 (인듯한)이자 현직 협객인 호리와 대학생 오타 주자부로라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허나 이런 류의 작품들 대부분이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충분히 기대에 값하는, "문예 만화"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지적인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메이지 시대와 문학을 사랑하시는 분들, 그리고 다니구치 지로의 팬 분들 모두에게 추천드리는 바 입니다.

그나저나.... 다 읽고 나서야 알았는데 전 5권이더군요. 1권으로 완결성있는 이야기라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다음 권도 빨리 읽어봐야겠습니다. 물론 <도련님>도 읽어봐야할 테고요.

2016/04/14

로산진의 요리왕국 - 기타오지 로산진 / 안은미 : 별점 2.5점

로산진의 요리왕국 - 6점 기타오지 로산진 지음, 안은미 옮김/정은문고

전설적인 미식가 로산진이 단코신샤에 연재했던 글들을 중심으로 엮은 에세이. 로산진의 요리 및 미식 철학에 대해 역설하는 앞부분, 그리고 식재료와 여러 요리들에 대해 설명하는 뒷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부분 에세이, 그 중에서도 딱히 '요리'가 아니라 그 어떤 분야에도 통용될 수 있는 확실한 원칙, 철학에 대한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틀에 박혀 배운 것은 올바를 수는 있어도 반드시 재미있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면 개성있는 것은 재미와 아름다움, 그리고 존엄이 있다. 그런데 몇차례 실패를 겪으며 스스로 다다른 곳은 틀에 박힌 곳이기 십상이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올바름이다. 개성있는 요리에는 틀, 모양, 규칙뿐만 아니라 저절로 배어 나온 맛과 힘이 있다. 틀부터 시작해도 나쁘지 않지만, 스스로 틀 안에 들어가 만족할까봐 걱정스럽다. 틀을 벗고 뛰어넘어야 한다." 같은 것 말이죠. 그게 무엇이든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의 사고방식은 확실히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구나 싶네요.
재료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요리 맛의 9할은 재료다.", "모든 재료는 본맛이 있고 그 맛은 다른 재료로 대체할 수 없다. 요리란 결국 재료의 본맛을 살리는 일이다." 라던가, 작금의 설탕에 대한 이슈를 거의 한세기 전에 이미 짚은 "설탕만 넣으면 맛있다고 믿는 오늘날 요리는 미각의 저하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질 떨어지는 식품을 속여 넘기는 잔꾀를 설탕은 품고 있다." 등 요리의 본질에 대한 글들도 좋았고요.
"삼시 세끼는 맛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사람의 가치는 자신이 만들고 먹는 것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는 브리아 샤바랭을 연상케 할 정도에요. 캬~! 로산진 정도 되야 할 수 있는 말이겠죠?

또 제가 즐겨 읽었던 만화 <맛의 달인>의 우미하라(가이바라) 유우잔의 모델이 확실히 기타로오 로산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맛의 달인>에서 중요하게 등장했던 몇몇 에피소드가 로산진의 글로 등장하니 상당히 반갑더군요.
예를 들자면 조리법에 있어 가쓰오부시를 대패로 최대한 얇게 갈아야 하고, 다시마는 잠시 담갔다 빼는 정도로만 해야 된다는 이야기는 까다로운 손님이 우미하라인 것을 모르고 지로가 최고의 다시 국물을 내어 요리를 만드는 에피소드에 등장하죠. 프랑스에서 오리 요리를 먹을 때 소스 없이 지참했던 간장과 고추냉이 (와사비)로 소스를 만들어 찍어 먹었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맛의 달인>에서는 오리 고기를 간장에 찍어먹는 행동을 비판한다던가, 은어 최고의 산지가 어디인지 이야기하다가 '고향의 은어가 최고다' 라는 독특한 발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 부분이 있기에 '표절'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죠.

그러나 뒷부분 식재료 관련 이야기는 별반 재미도, 가치도 없어서 조금 아쉽네요. 그가 조선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먹었던 도미가 최고였다 등 우리 땅 관련된 이야기 정도는 눈길이 가지만 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거든요. 너무 일본적인 사고방식이 거북할 뿐더러 (일본 재료가 최고라는 근거없는 자부심)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식재료 이야기도 많기 때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거장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은 좋았지만 지금 읽기에 낡고 어울리지 않는 점이 있기에 감점합니다. 그래도 요리와 미식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한번 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6/04/11

가면무도회 1,2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3점

가면무도회 1 - 6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가면무도회 2 - 6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 번 결혼, 네 번 이혼이라는 화려한 남성편력으로 유명한 여배우 지요코. 그녀의 다섯 번째 연인인 다다히로는 재계의 거물이자 공작가의 후손이다. 다다히로는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지요코의 첫 번째, 두 번째 남편의 죽음에 대해 조사해줄 것을 의뢰한다. 그러던 중 첫 번째 남편의 1주기가 그가 숨진 휴양지에서 마련되고, 태풍이 휘몰아치던 밤 마침 근처에 있던 지요코의 세 번째 남편이 숨진 채 발견된다. 그리고 네 번째 남편마저 모습을 감추고 마는데…….
아스카 다다히로의 요청으로 사건에 뛰어든 긴다이치 코스케는 현지 경찰 히비노 경부보 등과 함께 사건을 수사해 나가면서 충격적인 진상을 알게 된다. (이상 책 소개 참조)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대장편. 1974년에 발표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가 인생 끝자락에 위치하는 작품입니다. 저보다 나이 어린 작품은 처음이네요
사실 요코미조 세이시의 후기작은 대부분 별로였을 뿐더러 1, 2권 합쳐 7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이라 그닥 땡기지는 않더군요. 허나 전작을 거의 다 읽었기에 숙제하는 기분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아주 괜찮았습니다. 장점이 명확했기 때문이죠. 첫번째 장점은 700여 페이지를 넘는 분량이지만 비교적 쉽게 읽힐 정도로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도입부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오도리 지요코의 전남편들이 연쇄적으로 죽어나가면서부터는 아주 흥미로와요. 조금 지루할만하면 사건이 터지는 전형적인 연속극 구조랄까, 고전적이지만 거장답게 적절히 잘 짜여져 있어서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장점이자 최고의 장점은 놀라운 진상, 그 중에서도 "후에노코지 야스히사가 사망 전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는데 그녀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정말 엄지 척이에요. 충격과 놀라움의 정도로 비교하자면 <소름>에 버금간다 생각될 정도에요. 또 이 진상이 지요코의 돈을 긁어내기 위한, 애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후에노코지 아쓰코의 음모였다는 것에서 전전 구세대 집권층에 대한 작가의 날선 비난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세번째 장점은 가루이자와라는 무대와 재벌 가문들이 얽혀있는 뻔한 설정을 묘하게 현대적으로 선보인다는 점입니다. 놀랍게도 막장 설정이 아니에요! 결혼과 이혼 좀 자주하면 어떻습니까?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모델로 한 듯 싶은데 작품 발표 시점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이혼 경력은 2번밖에 없으니 조금 애매하긴 합니다) 물론 억지스러운 기괴한 묘사로 (미사의 변모에 대한 것 등) 고전 변격물 성향도 엿보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거장이 자신의 스타일을 변주하여 어떻게든 현대 추리 소설의 흐름에 동참하려 한 노력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과거 프랑스에서 장 뤽 고다르 등이 주체가 되어 "누벨바그"라는 새로운 영화 흐름을 이끌 때 과거의 거장 르네 클레망이 "그럼 내가 진짜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지!" 라면서 <태양은 가득히>를 발표했다는 에피소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대적인 분위기에 더해 경찰 수사가 중요하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을 주름잡았던 사회파의 영향력이 살짝 엿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쉬움도 없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한 탓이 크죠. 마키 교고의 시체가 기묘한 성냥개비 퍼즐 - 색맹이 유전되는 법칙 - 과 함께 발견되는 부분은 전통적인 고전 본격 추리물의 향취가 느껴지기는 했으며, 쓰무라 신지가 마키 교고의 시체를 유기한 후 지쳐서 집에 있는 위스키를 마셨는데 그 안에 청산가리가 들어있더라라는 식으로 흘러가는 전개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많이 부족해요.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요.
단순하게 생각해도 첫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첫번째 남편 후에노코지 야스히사 사건의 경우, 그가 죽기 전 전화를 통해 말한 것이 핵심 동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즉, 그가 오도리 지요코를 협박할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인데... 이 사실을 오도리 지요코 스스로가 경찰에 직접 말하는 시점에서 그녀는 이 비밀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그녀는 모르는 그녀의 비밀은 결국 딸 미사에 관련된 것일 수 밖에 없죠. 경찰에게 도전하기 위함일 수도 있지만 아무도 모를 전화 통화 이야기를 직접 꺼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지고요.
그리고 그녀가 몰랐던 미사의 비밀은 혈액형에 대한 것, 그리고 가즈히코에 의해 색맹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폭로됩니다. 이 쯤 되면 과연 지요코가 불륜을 저질러 낳은 딸이고, 딸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진범인지? 에 대한 선택지만 남게 됩니다. 이 정도면, 그리고 명탐정 긴다이치라면 미사가 모습을 감추기 전에 그녀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텐데 너무 질질 끈 느낌이에요. 긴다이치는 2권 초반에 이미 색맹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 것 처럼 묘사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미사에 대해 너무 일찍 밝혀버리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렸던 놀라운 진상의 충격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에요. <소름>의 경우 마지막 페이지에서 진상을 밝힘으로서 충격을 극대화하는데 이 작품은 그런 맛은 많이 부족하네요
진범이 밝혀지는 것은 모두 오도리 지요코의 두번째 남편인 아쿠쓰 겐조의 전처 후지무라 나쓰에의 목격 증언으로 밝혀진다는 점에서도 제대로 된 추리물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녀가 경찰에 가서 증언하지 않은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또 등장인물도 최근 읽은 작품 중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많아서 몰입해서 읽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전남편만 해도 4명에다가 현재 교제하고 있는 건 재계의 거물인 아스카 다다히로, 지요코의 딸 후에노코지 미사와 할머니 후에노코지 아쓰코, 아스카 다다히로의 딸 히로코와 사위 데쓰오, 그가 총애하는 젊은이 무라카미 가즈히코와 고고학자 마토바 히데아키....
이렇게나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이유는 보통이라면 유력한 용의자를 헛갈리게 하기 위함이겠죠. 하지만 너무 많아서 혼란만 가중될 뿐더러 등장 인물 중 용의선상에 올릴만한 인물이 거의 보이지 않기에 그닥 성공한 전략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아스카 다다히로를 노리거나 오도리 지요코를 노렸다면야 명확한 동기가 있는 인물이 드러났을텐데 오도리 지요코의 '전남편' 들이 범행 대상이라면 동기가 없다시피 하니까요. 그나마 작중 나오는 말 처럼 아스카 다다히로가 전남편들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정도만 동기 비스무레하지만 설득력은 엄청 떨어지죠. 아무래도 분량 늘리기가 주목적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마지막으로 설득력없고 개연성없는 전개도 옥의 티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왜 다시로 신키치가 아스카 다다히로를 저격했는지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점이죠. 미사가 야스히사를 죽인 이유와, 죽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셈이었을지도 묘사되지 않고요. 진상과 반전은 놀랍지만 이를 포장하는 전개와 묘사, 설득력 모두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제 생각, 기대보다는 훨씬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기대치가 낮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거장이 말년에 힘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죠. 노력이 가상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추천할만 하지만 읽으시기 전 긴다이치의 명추리가 거의 없다는 것은 참고하시길.

2016/04/09

그들이 본 임진왜란 - 김시덕 : 별점 2점

그들이 본 임진왜란 - 4점 김시덕 지음/학고재

17~19세기 일본 에도 시대 베스트셀러였다는 오제 호안의 <다이코기>, 하야시 라잔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보>, 호리 교안의 <조선정벌기>, 18세기 말 ~ 19세기 초 유행한 장편 역사 소설 <에혼 다이코기>를 통해 당시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설명해 주는 미시사 서적. 주제가 꽤나 관심이 가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여러 사료를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 임진왜란을 일으켰는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전쟁의 전초기지 나고야성의 건립.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를 중심으로 한 전쟁 이야기, 명의 원군 출정과 화의 노력, 전쟁의 재개 (정유재란), 히데요시의 죽음과 전쟁의 종결까지를 설명해줍니다.

뭐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라 딱히 새로운 정보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시각이 다르다고는 해도 역사적 사실이 크게 다르게 그려지지는 않았을테니 당연하겠죠.
물론 나름 괜찮은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통역에 대한 설명이 좋았어요. 말이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를 쳐들어왔으니 당연히 통역이 필요했겠죠. 쓰시마번 소 요시토시가 보유한 통역들은 물론 점령을 통해 확보하기도 한 모양이더라고요. 게다가 놀랍게도 <고려말에 대하여>라는 한국어 회화집까지 만들어졌답니다! 전쟁에 필요한 말들 - "이 길인가", "곧이 이르라", "나이 몇이고", "자식 있는가" 등등 -, 포로 중 재능있는 인물을 골라내기 위한 말들 - "피리 부는가", "장인인가", "글 하는가" 등등 -, 포로를 부려먹기 위한 말들 - "잘 씻으라", "술 덥혀라", "이거 가지고 있어라", "가지고 가라" 등등 - 이 실려있다고 하는군요. 명령에 따르지 않는 조선인을 위한 "사람 많이 죽였다", "네 목 벨 것이야" 라는 말까지요. 상당히 유용했으리라 짐작됩니다.
씁쓸한 것은 여성을 성폭행하기 위한 말들이 실려있는 것이죠. "고운 각시 더불어 오라", "옷을 벗으라" 등등등. 안타깝기만 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로 진출하여 벌어진 에피소드들, 통역관으로부터 '오란카이'라는 지역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오란카이인들과 싸워 일본 무사의 용맹함을 보여주겠다!'고 결심하고 침공을 했다는 글도 재미있습니다. 당연히 '오랑캐'를 뜻하는 말로 간도 거주 여진족을 뜻한다고 하네요.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한극함을 패퇴시킨 글도 '세루토스'라는 거인과 싸웠다고 되어 있는데 '세루토스'는 절도사를 뜻하는 말이라고 하고요.
일본 문헌이지만 용맹을 선보인 조선 군인들이 있다는 것도 반가왔습니다. 유극량이 대표적으로 그 외 송상현, 류성룡, 신각, 곽준, 곽재우 등의 활약이 기록되어 있다는군요. 이순신은 아예 '영웅'으로 칭하고 있고요. 당연히 이들을 이긴 일본군의 우수함과 용맹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목적이 컸겠지만 그래도 고마울 따름이죠.
그 외 전쟁에서 '이가 지역의 닌자'가 행주산성 전투에서 활동했다는 대목도 신선했고요.

아울러 전쟁 이야기는 확실히 특이했어요. 책에서 <삼국지>의 한 장면처럼 그렸다고 언급할 정도로 영웅담처럼 변주한 이야기들이 많은 탓인데, 그 중에서도 가토 기요마사를 영웅시한 것이 눈에 뜨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참고 문헌들이 발표된 에도 시대에 가토 기요마사의 인기가 올라가고 고니시 유키나가의 인기가 떨어진 탓이라고 합니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세키가하라 전투 패전 후 체포되자 할복을 해야 하는데 천주교 신자라서 할복을 하지 않아 처형되었기 때문에 에도 시대 가치관과 배치되었기 때문이라네요. 허나 특이할 뿐 딱히 사료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더군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그닥 깊이있는 내용도 아니고 흥미로 읽기에는 딱히 재미도 없어서 권해드리기는 좀 어렵네요. 책에서 언급된대로 <징비록> 정도만 읽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6/04/07

세한도 - 박철상 : 별점 3점

세한도 - 6점 박철상 지음/문학동네

아마 대한민국 국민 중 <세한도>라는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유명세에 비해 그렇게 대단한 그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그림 부분의 완성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은 탓이죠.
이 책은 이러한 저같은 무식자를 위해 쓰여진 책입니다. 왜 세한도가 대단한 그림인지를 알려주니까요.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세한도>라는 작품 자체에 대해 깊숙히 파고들어 설명해주는 부분, 그리고 작품의 창작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추사 김정희의 일생과 그의 성취를 설명해주는 부분으로요. 때문에 예술, 문화서적이기도 하고 미시사 서적이기도 합니다.

이중 김정희의 일생은 앞 부분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일생은 아닙니다. 문과 급제 후 중국 연행길에 올라 당대 지식인들 (특히 스승으로 모신 옹방강)과 만나 교류하며 벼슬을 이어가다가 귀양을 가 세한도를 그리게될 때까지만 수록되어 있으니까요. 여기까지의 분량이 약 100여페이지인데,  그간 깊이 알고 있지 못했기에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재미가 컸습니다. 귀양갔다는 것이야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안동 김씨 세도 정치 때문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또 윤상도의 상소로 촉발된 국문 과정을 소상하게 묘사한 부분은 대하 역사드라마를 보는 색다른 재미를 전해 줍니다.

이어지는 세한도라는 작품에 대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에요. 처음 알게 된 내용이 많거든요.
세한도가 왜 뛰어난지에 대한 이유들이 대표적으로, 첫번째는 세한도는 문인화의 정점으로 이른바 "선비의 기상이 나타나는" 그림이기 때문이라는군요 . 묘사력보다는 품격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참고로, 이 부분 설명을 위한 말을 잘 보는 "구방고" 고사의 언급은 실로 대단하다 느껴졌습니다. 내면을 볼 수 있다면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는 고사인데, 이런 고사를 쉽게 인용할 수 있다는게 놀라왔어요.
그리고 두번째는 추사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공부한 그 내공이 지극히 깊으며, 이러한 공부가 보여주는 결실이 바로 <세한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추사의 편지들과 소장했던 책들을 통해 충분히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세한도가 귀양 시 자신을 위해 헌신하며 여러 책을 보내준 역관 이상적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된 것이고요.

마지막은 그림에 대한 감상으로 마무리됩니다. 문인화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수련을 거듭한 거친 터치 (적묵법, 초묵법)에 대한 설명도 좋았지만, 그림의 구도와 찍혀있는 인장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림 외의 요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림과 그림에 쓰여진 글, 찍힌 인장을 한 덩어리로 보고 감상하는 새로운 감상법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평소 알고는 있지만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하는 그러한 것에 대한 상세하고 깊이있는 리뷰에 가까운 책입니다.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 빼어나고요.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도판이 생각만큼은 충실하지 못하다는 점인데, 책의 판형과 가격을 고려한다면 크게 불평하기도 어려울 것 같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공부는 많이 되었고 느낀 것도 많지만 세한도가 정말 그리 뛰어난 그림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글씨 외의 그림만 평가한다면 완성도가 빼어나다고 보기는 여전히 힘들어 보이거든요. 선비의 기상도 딱히 느껴지지 않고요. 아울러 추사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이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완성도와 무관한거니까요.

2016/04/05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노버트 데이비스 / 임재서 : 별점 3점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6점 노버트 데이비스 지음, 임재서 옮김/북스피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개 카스테어스와 함께 하는 탐정 도앤은 다른 관광객들과 멕시코의 관광지 로스알토스로 버스 여행을 떠난다. 그의 목적은 미국인 앨드리지를 찾아 모종의 행동을 하기 위함. (처음에는 부패 정치인들에게 고용되어 앨드리지가 미국에 돌아가지 않게 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후에 앨드리지를 미국에 데려가기 위해 온 것으로 밝혀진다.)
허나 그가 앨드리지를 만나는 순간 로스알토스에 대지진이 덮치고, 앨드리지를 포함한 여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이 중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 재벌 상속녀 패트리셔가 실제로는 살해된 것으로 밝혀지고, 범죄자 보티스트 보노파일을 체포하기 위해 마을을 감시하던 군인 페로나 대위가 마을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다른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마포 김사장으로 유명한 북스피어 김홍민씨의 홍보글을 통해 알게 된 책. 김사장의 홍보력이야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에 대한 소개는 다른 책들보다도 호기심을 자극한 점이 있습니다. "하드보일드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도 노버트 데이비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노버트 데이비스의 열렬한 팬이었다."라고 소개되는데 하드보일드의 큰 형님이자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는 무게있는 작품같이 느껴졌거든요. 도저히 안 읽을 수가 없더군요.

허나 실상은 정 반대입니다. 기대와 예상을 이렇게까지 뒤집은 작품은 기억에도 몇개 없지 싶을 정도로 말이죠.
예상했던 묵직함과는 몇만광년 떨어져 있는 작품으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유쾌하고 시끌벅적합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모두 극단적이기 짝이 없고요. <스쿠비 두>가 연상되는, 거대한 그레이트 데인 카스테어스를 끌고다니는 탐정 도앤부터가 그러합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읽은 고문서를 통해 과거 개척시대 영웅 페로나 부관에게 푹 빠진 재닛은 한류스타에 빠진 일본 아줌마와 다를게 없고요. 여기에 파리 끈끈이를 발명한 부자의 상속녀 패트리셔 밴 오스델 일행과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덩어리 아들 모티머를 중심으로 한 배관 업자 헨쇼 가족, 근거없는 엘리트 의식과 자신감에 절어있는 멕시코 군인 페로나 대위 (개척시대 영웅의 직계 후손!) 등 모든 캐릭터가 좋게 말하면 한개성하고, 나쁘게 말하면 만화적이라고 할 정도로 화려합니다.
또 이러한 과장된 캐릭터들이 멕시코 휴양지 로스알토스에서 대지진, 반군과 엮인 범죄자와 은닉 무기 등의 스케일 큰 사건에 휩쓸려 좌충우돌 소동을 벌인다는 내용은  옛날 코미디 영화 시리즈 "무슨무슨 대소동", 아니면 주성치 영화를 연상케 합니다. J.M 메르의 <개를 돌봐줘>가 떠오르기도 해요. 사건이 얽혀 있는 블랙 코미디라는 점에서 말이죠.

하지만 다행히도! 단순한 블랙 코미디는 아닙니다. 소갯글이 아주 허언은 아닌거죠. 일어나는 사건들 모두 이치에 합당할 뿐더러 앞뒤도 잘 맞고, 복선도 잘 짜여져 있습니다. 재닛이 탐독한 페로나 부관의 일기와 마을의 은닉처가 연결된다는 설정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네요. 그러고보니 무언가에 푹 빠져 있는 오타쿠가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사건 해결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인데 요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뭔가가 나올 것 같군요.
아울러 추리적으로 상당한 수준이며, 탐정 도앤 역시 만만치 않는 명탐정이라는 것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대지진의 와중에 상속녀 패트리샤가 사망한 사건이 사실은 살인 사건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밝혀내는 장면이 대표적이죠.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을 적절히 이용한 것도 좋지만, 순식간에 확인한 현장의 유류물을 나중에 진상을 밝힐 때 적절히 써먹기도 하니까요. (그녀의 가방은 어디로 간 걸까요?)
유력한 용의자 그렉의 시체를 어디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도 마찬가지. 특히 단순한 부자의 변덕으로 보인 패트리셔의 방문 목적을 셜록 홈즈 식으로 해석해 내는 것아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그건 바로 관광객들 모두 화가 프레딜립 때문에 로스알토스에 오는데 패트리셔만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꽤나 그럴듯 했습니다.
또 복잡한 사건을 한방에 해결하는 능력 역시 탁월합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지만 결국 보티스트 보노파일을 죽이고, 그를 돌봐주던 흑막이 카야오 대령이라는 것도 밝히고, 패트리셔 살인사건의 진범과 실종된 그렉의 행방까지 한방에 해결해 버리니까요. 명탐정의 기본 소양이라 할 수 있는 추리쇼를 펼쳐 보이는 것도 물론이고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대로,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작품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확실히 하드보일드이긴 합니다. 하드보일드의 핵심이 탐정이라면 이 작품 역시 경쟁작들에 뒤질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요. 제목처럼 진실은 말한 적도 없고 - "탐정은 그럴 수만 있다면 절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노상 거짓말만 늘어놓습니다. 비즈니스죠." -, 모든 것을 돈으로 바라보는 나쁜 놈인데다가 명탐정이기도 하니까요.
여기에 더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 죽이는 것 역시 서슴치 않습니다. 작중 어맨다 트레이시의 말을 빌자면 "이자는 교활하거든. 아갔리 침 뱉는 것보다 쉽게 죽일 사람이야."인 거죠. 아, 당연히 말발도 아주 좋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샘 스페이드나 필립 말로우에 에이스 벤츄라를 섞은 느낌이랄까...  (아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오버스러운 설정, 작위적인 요소 때문에 조금 감점하기는 하지만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유쾌하며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덕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비트겐슈타인이 좋아한 이유는 킬링 타임용으로 딱이었기 때문이겠죠.
세상은 넓고, 모르는 작가도 많고, 재미있는 작품도 아직 이렇게나 많다니 너무나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신선한 작품이 많이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묵직한 고전 하드보일드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할 수 있다는 점 꼭 참고하세요.

2016/04/03

세인트 메리의 리본 - 이나미 이쓰라 / 신정원 : 별점 2.5점

세인트 메리의 리본 - 6점 이나미 이쓰라 지음, 신정원 옮김/손안의책

출판사 손안의 책과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인 커뮤니티인 하우미의 콜라보레이션 기획물 '하우미 컬렉션'의 첫번째 작품. 하우미에서 기획을 담당했다기에 하우미 회원으로 안 읽을 수가 없더군요 아니, 외려 읽는게 늦었다 싶네요. 이나미 이쓰라의 단편집으로 표제작 외 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우미 컬렉션이라는 기획물 의도에 적합한 작품인지 의문이 드네요. '추리물' 이라고 부를만한 작품은 딱 한편, 표제작인 <세인트 메리의 리본>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인트 메리의 리본> 역시 주인공이 탐정일 뿐,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에요.

그래도 다행히 작품 하나하나의 재미는 비록 편차가 있기는 하나 나쁘지는 않습니다. 기존에 읽어왔던 일본 추리물과도 확연히 구분되는 장점도 명확하고요. 그것은 바로 주인공들이 모두 '진짜 사나이' 들인, 묵직한 남자 소설이라는 점입니다. 남자 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작품들은 많습니다만, 보통은 남자의 탈을 쓴 폭력 성향 가득한 마초들이 대부분이죠. 그에 반해 이 책 속 남자들은 배려할 줄 알고 심지가 굳은, 진짜 사나이들입니다. 그들에 대한 묘사 역시 정말 매력적으로 작가가 이런 남자를 그리고 싶었다는게 문장 하나하나에서 느껴질 정도에요.

이렇게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구나! 싶은 부분은 또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 장면, 상황에 집중한다는 것으로 <모닥불>과 <종착역>이라는 작품이 그러합니다. 어떤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핵심 장면만 뽑아내서 작품을 쓴다는 발상은 정말 기발하네요. 단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지니고 있긴 합니다. 긴 이야기의 일부만 읽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 정도.장점과 단점이 명확한데 제게는 장점 쪽이 더 많았습니다. 작품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모닥불>
남의 여자와 도망치던 남자는 여자가 죽은 후에도 계속 쫓기다가 한 노인의 오두막까지 오게 되는데...

도주하는 남자, 그리고 개의 행동과 밭을 밟지 않으려는 남자의 행동을 보고 그가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간파한 노인이 등장하는 소품. 노인이 남자를 쫓는 조직원들을 고수의 풍모를 보이며 한방에 제압하는 장면이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줍니다. 짧지만 화끈한 액션에 더해 총에 대한 묘사도 아주 탁월하고요. 주머니에서 방아쇠를 당길 셈이라면 리볼버를 써야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냥 나가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큽니다. 남자가 도주하게 된 자세한 사정이라던가, 이후 남자가 어떻게 되고 노인이 어떻게 되는지는 전혀 등장하지 않거든요. 무대가 어디인지, 누가 선인지 악인지도 설명되지 않고요.

그래도 딱 한 장면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묵직한 남자 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하나미가와의 요새>
지바의 알려지지 않은 강 주변에서 우연히 전쟁 당시의 토치카를 발견한 사진작가 마쓰무라는 토치카에 머무는 포 할머니와 하라다와 만난 이후 시공을 초월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진작가 마쓰무라가 전쟁 당시 극적인 비밀 계획을 목격한다는 일종의 타임 슬립물.
보통 이런 류의 소설이라면 패망한 일본군 수뇌부가 재물을 옮기는 것을 빼돌리려는 하라다 조장의 작전과 이와 맞물려 진행되는 동물원 동물 탈주 계획이 핵심일테죠. 허나 이 작품에서 이러한 작전은 거의 언급만 되는 수준으로 증기 기관차의 질주, 질주하는 열차 주변에서 벌어지는 활극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묘사에 있어 매력이 철철 넘치고요.


그러나 단점은 전작과 동일합니다. 전작보다야 이야기로의 완결성은 있습니다만... 타임 슬립의 이유가 무엇인지, 포 할머니의 정체가 무엇인지, 빼돌린 재물과 탈주한 동물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하라다 조장은 무사한 것인지 등 상세한 설정은 뭐 하나 설명되는 것이 하나도 없거든요.

이래서야 솔직히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죠. 조금 더 길게 쓰더라도 떡밥은 모두 회수하는게 훨씬 좋았을거에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보리밭 미션>
영국 뉴베리에 있는 농장주의 남편이자 제임스는 B-17F 폭격기 진 할로호의 기장이다. 목숨을 건 작전은 성공리에 끝나지만 볼 터렛의 입구가 고장나 사수 제프 가르시아가 갖히게 된다. 착륙 직전 바퀴의 이상을 알아차리고 동체 착륙 시 제프가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제임스는 폭격기 기수를 농장으로 돌린다. 그리고 농장 가운데 수로 '마시의 리본'에 기체를 포개어 볼 터렛을 으스러뜨리지 않고 착륙하려 하는데...

"파일럿이 되고 싶다면, 되려무나. 남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야." 제임스. 아들 리처드가 농장주가 아니라 파일럿이 되고 싶다고 하자 하는 말.

2차대전의 독일 본토 폭격전을 그린 밀리터리 항공물로 앞부분 제임스와 리처드 부자가 농장에서 보내는 목가적인 그림과 폭격에 관련된 화약냄새 물씬나는 화끈한 묘사가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작품의 매력 포인트라면 사고뭉치 제프를 구하기 위해 승무원 모두가 목숨을 거는 "전우애", 즉 "싸나이 의리"가 아주 매력적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거야말로 밀리터리물의 로망이죠. 결말도 해피엔딩이고요.
2차대전, 항공물, 목숨을 건 작전, 전우애와 해피엔딩이라는 점에서는 오래전 영화 <멤피스멜>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뭐 좀 뻔하기는 하지만 전 이런 이야기 아주 좋아해요!

이러한 멋진 드라마에 더해 수록작 중 유이한, 이야기의 완결성이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별점을 더 얹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종착역>
도쿄역 아카보 (철도 역내에서 승객의 화물 등을 대합실이나 차량 같은 데에 운반하는 사람) 의 우두머리인 라이조는 고향 산림에 펜션과 양로원을 짓겠다는 꿈이 있다. 그러나 억 단위의 돈이 필요한 현실 앞에 좌절한 상태. 그러던 중, 야쿠자가 운반하는 현금의 존재를 우연찮게 알게된 후 몰래 빼돌리게 되는데...


도쿄역에 대한 세밀한 묘사라던가, 뭔가 사연이 있어보이는 사나이 라이조에 대한 묘사 등 작가의 글 솜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

허나 돈을 빼돌리는 과정의 디테일 외에 라이조가 계획에 성공했는지, 야쿠자들이 어떻게 나올지 등이 설명되지 않는 미완성 작품입니다. 본격적인 장편이라면 첫 머리에 불과한 이야기에요. 이러한 점에서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세인트 메리의 리본>
노세 지역의 땅 3만 5천평을 소유한 류몬 다쿠. 그는 맥주를 좋아하는 애견 조와 함께 잃어버린 사냥개를 찾는 것이 주업인 사냥개 탐정이다. 그런 그에게 이치쿠라 가문의 외동딸이 잃어버린 '맹도견'을 찾는 의뢰가 들어오는데...


표제작. 이 작품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죠. 1993년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하고 1994년 '고노미스'에서 3위를 차지한 작품이거든요.
하지만 탐정이 나올 뿐, 추리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유사 설정의 작품(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탐정으로 등장하는)<트랙커 토우마>라는 추리 만화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작품보다도 추리적으로 별로에요. <트랙커 토우마>야 말로 알려지지 못한 작품이라 안 읽어보신 분들이 많으실텐데... 이보다 못하다면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사건 해결 후 계화가 경위를 듣고 싶어하지만 류몬 다쿠가 거절하는 장면의 묘사, '나는 "기업 비밀입니다"라고만 대답했다. 자랑할 만큼 대단한 추리를 한 것도 아니었고, 모험도 없었을 따름이다.'라는 말 그대로일 정도거든요. 작 중에서 류몬 다쿠가 하는 일이라곤 운좋게 사건 현장 거의 대부분이 찍힌 비디오에서 수상한 트럭을 발견한 뒤, 트럭을 쫓아 집을 알아내고 개에게 냄새를 확인시키는게 전부입니다. 다른 탐정일 역시 마찬가지, 개 '조'의 후각에 의존하거나 친구로부터 들은 정보로 잠복하여 확인한다 밖에는 없어요.

물론 이런 수사가 현실적인 탐정의 수사 방법이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쓰려면 억지스럽게 하드보일드 탐정을 엮지는 말았어야 해요. 애초에 류몬 다쿠는 거액의 재산가이기 때문에 사건에 목숨을 걸고 일희일비하는 하드보일드 탐정하고는 어울리지도 않죠.
엮으려면 이야기, 사건을 통해 엮었어야 하는데 조직 폭력배와 얽힌다는 무리한 설정으로 끌고나가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사실 류몬의 땅을 노리는 센추리 흥업과 하나비시 구미의 수작질은 CCTV 설치로 충분히 막을 수 있고, 광역 폭력단 효도구미의 김계화와 엮이는건 완전 억지였으니까요.
게다가 마지막에 메리를 하나에게 선물한다는 결말은 지나칠 정도로 편의적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수임료보다 비싼 개를 턱하니 선물할 정도의 재산가가 하드보일드 탐정일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낭만적인 자선사업가 산사나이이죠. <캔디캔디>의 윌리엄 아저씨와 다를게 하나 없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사냥개 탐정이라는 직업과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모습만큼은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류몬의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 모두 멋진 사나이를 표방하고 있기도 하고요. 억지로 하드보일드 탐정물로 엮느니 그냥 산사나이의 인간 드라마로 그리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 같습니다.

2016/04/01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 코넬 울리치 / 이은경 : 별점 2.5점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 6점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단숨

<하기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찰 숀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미모의 여인을 구한다. 그녀 진 레이드는 자살하려 한 이유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아버지 할란 레이드가 기묘한 예지 능력자 톰킨스에게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삶이 지옥에 빠진 탓이었다.
숀은 그녀를 돕기 위해 상관 맥마너스에게 사건을 보고하고, 맥마너스는 여러 부하들을 선발해 사건의 뒤에 숨은 진상을 밝혀내려 하는데....


우리 모두 혼자야. 우리들 모두 각자라고. - 톰킨스. 아버지의 삶이 3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예언을 들은 진이 아버지가 혼자여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자 하는 말.

윌리엄 아이리쉬라는 필명으로도 유명한 코넬 울리히 (울리치)의 대표작 중 한편. 대표작에 걸맞게 작가의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전통적인 하드보일드와는 거리를 둔, 그야말로 "느와르"라고 할만한 그런 작품입니다. 일단 1차원적인 폭력적인 묘사는 거의 전무하며, 감성을 자극하는 특유의 묘사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섬찟하게 만드는 심리 서스펜스 중심이라는 점이 그러해요. 특히나 어둠에 대한 공포심을 그리는 묘사가 그 중 압권입니다. "밤은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제목이 좋은 예죠, 밤 하늘의 별들을 눈에 비유하며 밤을 두려워하는 여인의 심리를 묘사한 것인데 정말 멋드러진 글이라 생각됩니다.
시대를 앞서간 오컬트 설정, 즉 톰킨스가 정말로 예지 능력자였다는 것도 볼거리에요. 초반에 진과 레이드 부녀가 그의 기묘한 예언에 처음으로 마주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톰킨스는 부녀에게 기묘한 예언 - "무릎에 다이아몬드 시계를 찬 저녁 만찬 손님들에게, 주식 중개인에게, 그리고 주식 매입을 위해 어서 돌아가시오. 그리고 가는 길에 어떤 여자아이를 부딪쳐 쓰러뜨리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 을 남기는데 그 예언이 하나씩 사실로 판명되죠. 아주 놀라우면서도 독자를 사로잡는 부분이었어요. 무릎에 다이아몬드 시계를 찬 것의 진상은 정말이지 생각도 못햇네요.

그리고 2부에서 예언을 사건으로 처리하려 하는 맥마너스의 지시와 그를 따르는 부하들의 활약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당신은 사자의 아가리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요."라는 레이드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토대로 사자에 대해 조사할 것을 부하 한명에게 지시하는데 실제로 서커스 사자가 탈주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식이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이 사건은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려 한 범죄와 관련되어 있기도 하고요!
또한 사건은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레이드의 재산을 노린 음모가 얽혀 있다는 것이 톰킨스의 집 근처에 잠복한 두명의 형사에 의해 밝혀지게 됩니다. 이렇게 예언들에 관련된 사건들의 또다른 진상이 밝혀지는 것은 정통 수사물을 보는 맛도 제법 느껴질 만큼 잘 짜여졌다 생각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너무 오래된 탓일텐데 지금 읽기에는 묘사가 너무 장황하고 지루한 감이 크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맛있는 것도 너무 많이 먹으면 물리듯 아무리 좋은 묘사라도 끝도 없이 이어지니 지루할 수 밖에 없죠.
아울러 장황한 묘사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여 공허한 느낌도 줍니다. 예를 들자면 진이 밤을 두려워한다는 설정을 들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떠나갈 것을 두려워하기에 하루하루, 일분일분이 소중할 수는 있지만 딱히 밤이 두려울 이유는 없죠. 시간이 지나는건 낮이든 밤이든 상관 없잖아요? 차라리 시계를 무섭다고 하던가.
그리고 2부의 내용 대부분은 몇시간 남지 않은 삶으로 괴로워하는 레이드, 그리고 그를 보며 괴로워하는 진과 숀에 대한 묘사로 채우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절대적으로 절망한다는 것 역시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의 기묘한 저녁 만찬과 룰렛 도박은 뜬금없기 그지 없었고요. 그야말로 오래전 작품이라는 티가 팍팍 났달까요?
무엇보다 마지막은 정말 최악입니다  결국 자정이 되었는데 레이드가 착란을 일으켜 사자가 그려진 스테인드글라스에 뛰어들어 자살을 한다? 너무 편의주의적인 발상이죠. 우리나라 드라마의 기억상실 설정이 떠오를 정도로요. 저택 입구의 사자상이나 이 스테인드글라스를 써먹어 레이드를 죽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쉽게 가는건 정말 예상 밖이었어요. 최소한 외부에서의 공격, 예를 들어 음모를 꾸민 월터 마이어스가 톰킨스와의 만남 이후 저택에 침입하여 레이드를 살해하려 한다는 정도의 장치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덧붙여,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톰킨스의 예지 능력이 사실이었다는 설정은 조금 허무했습니다. 예지한 것들이 인간의 힘으로 조작하기 어려운 것들이 존재하기에 (대표적인 것이 무릎에 다이아몬드 시계를 차는 것이겠죠) 당연히 그랬겠지만 이래서야 서스펜스 스릴러라기 보다는 오컬트 호러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런 그가 마이어스에게 휘둘린다는 것도 말도 안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거장의 대표작으로 "느와르"가 무엇인지 한껏 느낄 수 있긴 합니다만 지금 읽기에 지루한 부분이 많기에 감점합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