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돌봐줘 -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작가정신 |
라디오 연속극 작가 막스 코른느루와 맞은편 건물에 사는 으젠 플뤼슈는 서로가 상대방을 염탐하고 있다고 여기며 각자의 일기를 써 내려갔다. 두 사람은 건물에 살고 있는 여러 기이한 인물들과 얽히면서 강박관념이 극에 달하고, 결국 조용한 싸움을 시작하는데...
물만두 홍윤 님 리뷰 추천 도서 두 번째 작품입니다. 막스 코른느루와 으젠 플뤼슈 두 사람의 일기가 전개의 뼈대를 이루고 있지만, 단순한 일기의 반복이 아니라 중간중간 건물 관리인의 편지, 각종 진정서, 대자보 등을 활용해 이야기를 보완하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중간중간 별표와 함께 낯선 전지적 시점이 개입해 상황을 정리해 주는 구성도 신선했어요.
그러나 독특함 외에는 점수를 주기가 어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았습니다. 아파트 주인이 세입자들을 선별하여 통제하면서 거대한 현실 기반 소설을 써 나간다는 설정 자체는 흥미로웠고, 중간중간 사건이 계속 발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그러고 보니 이 아이디어는 최근 감상 중인 일본 애니메이션 UN-GO의 중반 에피소드와도 유사하네요. 다음에 리뷰를 통해 소개하겠습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 거주민 대부분이 비정상적인 인물들이라 현실감이 부족했고, 진중한 추리물로 읽히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중반 이후 브리숑 부인의 번지점프 사망 사건에서, 이미 오래전에 버린 그녀의 개 액토르의 사체를 왜 죽은 그녀가 쥐고 있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부각되다가, 갑작스럽게 흑막을 깨달은 으젠 플뤼슈의 죽음, 가짜 형사 타뇌즈 반장의 정체 폭로 등이 이어지는 전개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마지막 화재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은 최악이었고요. 서스펜스와 반전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언급한 -"서스펜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것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라, 욕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을 가능성이다."-라는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화재로 모두 사망할 거라는 보장도 없었을 뿐더러, 가스파르의 마지막 편지를 보면 자신이 사생아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유전자 감식이라는 개념은 아예 고려하지 않은 걸까요?
솔직히 가스파르의 편지가 결말이 아니라, 이 모든 이야기가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환자들의 이야기로 일부 범행만 사실이었다는 반전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너무 정직하고 단순하게 진행되어서 의외였어요. 이런 전개를 반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거침없이 써 내려간 느낌이라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비하면 "서로를 염탐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스파르의 계획에서 정말 중요한 요소였을까?" 하는 의문이나, "어떻게든 커튼을 치거나 가구를 놓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같은 의문은 사소한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책에 삽입된 일러스트도 아쉬웠습니다. 의도는 장 자크 샹뻬의 스타일을 따르고 싶었던 것 같지만, 결과물은 어설픈 펜 일러스트에 불과했습니다. 그림 자체에 별다른 메시지도 없고, 단순한 삽화 역할만 했으며, 오히려 책을 아동용으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저의 유럽산 추리소설에 대한 편견을 더욱 공고히 해 준 작품이었습니다. 블랙코미디로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물만두 님의 리뷰대로 최소한 웃기기는 했고, 영화감독의 작품 제작 방식 등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긴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한가할 때 시간 때우기용으로 가볍게 읽는 코믹한 책 정도로 생각하면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추천해 드리기는 어렵네요. 어쩌면 제가 아직 프랑스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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