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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5

디자인북 - 개러스 윌리엄스 외 53인 / 이혜선 : 별점 3점

디자인북 - 6점
개러스 윌리엄스 외 53인 지음, 이혜선 옮김/마로니에북스

그간 격조했습니다. 업무가 변경되고 출장도 가고, 여러가지 개인 사정이 겹쳐 통 책 읽을 시간이 나지 않네요. 올 한해는 계속 이럴 것 같은데 그래도 어떻게든 읽은 책은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디자인 북>>입니다. '세상을 바꾼 제품 디자인 500' 이라는 부제 그대로 500개의 제품 디자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 페이지에 한 제품 씩, 제품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도판과 짤막한 설명이 곁들여진 구성입니다. 특징이라면 '제품 디자인' 이라는 부제에 걸맞지 않게 일상 생활 속 소품이 많다는 점입니다. 각종 커틀러리나 주전자와 같은 주방 용품, 의자와 조명 기기가 대부분이거든요. 물론 이들도 제품 디자인이긴 하죠. 허나 통념적으로 제품 디자인 하면 쉽게 떠올릴만한 공업 제품이나 디지털 제품, 자동차 등은 거의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롤렉스 오이스터 등 손목 시계가 몇 개 소개되는게 특이했어요. 

그렇지만 이런 점은 딱히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수록된 제품들 대부분 충분히 세상을 바꾼 제품 디자인으로 선정될 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들이긴 하고요. 9091 주전자의 디자이너 리처드 새퍼의 "사람들에게 약간의 기쁨과 재미를 주는 것' 이 중요하다는 말처럼 좋은 내용도 많아요.
또 이러한 소품 (?) 소개가 많아서 생긴 장점도 있습니다. 소개된 몇몇 제품은 저도 충분히 구입할 만 하다는 점이죠. 게데스 연필깍이, 라미 2000 만년필, 맥 라이트 같은 것들이 그러합니다. 포르셰 911, 아니 이런 류의 책에 흔하게 소개되는 디자이너 체어만 해도 구입이 불가능하겠지만 말이죠. 저도 세상을 바꾼 디자인 제품 중 몇 개를 소유할 수 있다는 현실이 너무 마음에 드네요.
디자인보다는 기술적 혁신에 가까운 지퍼, 당겨따는 캔 뚜껑, 스페이스 펜라던가, 마티니 잔이나 제리캔 같이 디자이너도 모르는 제품이 수록될 정도로 다루는 범위도 넓은 것도 장점입니다. 특히 제리캔이 전쟁을 통한 혁신의 완벽한 사례로 독일군이 생포되게 되면 연료통을 파괴할 정도였다는 내용은 인상적이었어요. 그냥 보기만 하면 복제할 수 있어 보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문제도 있습니다. 우선 500개의 작품들이 특별한 분류 없이 소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연대 순이기는 한데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아요. 차라리 의자면 의자, 조명이면 조명 하는 식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어 수록하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카테고리를 명확히 알 수 있는 페이지 디자인도 필요했고요. 지금은 목차도 없어서 특정 제품을 찾거나 해당 제품군의 연대별 흐름을 확인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또 이런 류의 책에서 많이 보아왔던 제품이 또 수록된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어떤 제품은 과연 여기 수록될 만한 제품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아니면 단순히 재미삼아서라도 한 번 알아볼 만한 수준으로는 충분합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즐거운, 어른을 위한 그림책 느낌도 나고요. 분량과 풀 컬러 구성을 고려하면 가격도 이해할 만 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9/02/03

Mystr 럭키팩 8 - 탐정 소설 : Mystr 컬렉션 - 안나 캐서린 그린 외 / 위즈덤커넥트 : 별점 2점

Mystr 럭키팩 8 - 탐정 소설 : Mystr 컬렉션 - 4점
안나 캐서린 그린 외/위즈덤커넥트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고전 단편을 소개하는 e-book 레이블인 Mystr 컬렉션 시리즈에서 "럭키팩" 이라는 이름으로 내 놓은 합본집 중 한 권.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이라 할 수 있는 명탐정들이 등장하는 고전 본격물들이 8편 수록되어 있습니다. 1,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하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고전 본격물은 영원한 제 favorite이니까요.
대부분 저작권이 만료된 저작권 free 판권물로 보이는데 딱 한 편을 제외하고는 국내에 첫 소개되는 작품들로 생각됩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경찰 뮐러라던가, 영국의 사립 탐정 존 벨은 탐정도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일 정도입니다. 희귀하다는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죠.

그러나 국내에 그동안 소개되지 않은 이유도 읽다보니 알 것 같더군요. 작품의 수준이 기대 이하이기 때문입니다. 탐정들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그냥 몰랐던 탐정, 몰랐던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가치를 느끼기 힘든 시리즈였습니다. 저렴한 가격 외에는 이 시리즈를 구해 읽을 이유는 없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황금 총알
혼 국장에게 요한 더멜이 찾아온다. 그는 펠너 교수의 집사로 교수가 닫힌 서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아서 경찰을 찾아온 것. 혼 국장은 조 뮐러 형사와 함께 교수의 집으로 찾아가 닫힌 문을 열고 시체를 발견한다.
교수는 살해된 것으로 밝혀지는데 방은 완벽한 밀실 상태였고, 흉기인 총알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기묘한 상황에서 조 뮐러는 이 사건이 니에프 부인 자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오스트리아 비밀 경찰국 소속의 자비심 많은 천재 형사 조 뮐러 시리즈 단편으로 밀실 살인 사건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지금 거의 잊혀진 시리즈가 된 이유는 명백합니다. 재미와 완성도 모두 평균 이하였기 때문입니다. 핵심 트릭이라 할 수 있는 밀실 살인 트릭은 열쇠 구멍이 넓어서 빛이 새어나오고 안의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총알도 통과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이디어인데 발상은 신선하지만 대단한건 아니에요. 이야기에 잘 녹아든 것도 아니고, 독자에게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되지도 않았고요. 추리물이라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였습니다.

뮐러가 이전에 맡았던 니에프 부인 자살 사건과의 관련성이 드러나는 부분 역시 작위적이라 아쉽습니다. '우연히' 옷이 찢어진 밀러가 요한으로부터 '우연히' 옷을 빌려입는데 그 옷은 '우연하게도' 예전에 펠너 교수가 요한에게 선물한 것 중 하나였고, 그 때 '우연히' 트리스탄이라는 거대한 사냥개가 친근함을 표시한 상황에서 그 개의 주인이 니에프라는걸 알게된다는 것인데 우연이 한 번은 몰라도 두 번 이상은 너무 많죠. 차라리 뮐러의 니에프 부인 자살 사건 수사가 함께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니에프를 찾아갔다가 개가 친근하게 구는걸 알고 그 옷의 주인이 사냥개와 친했다는걸 알게되는 식으로 전개하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불쌍한 범인 니에프가 자살할 시간을 벌어줄 정도로 자비심이 많다는 뮐러 캐릭터 역시 별로였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부치지 못한 편지
그라우만 부인은 경찰을 찾아와 자신의 조카 알버트가 친구 사이더스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썼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체포된 이유는 사이더스가 살해당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며, 그의 권총이 흉기로 사용되었기 때문.
감옥으로 자신을 찾아온 뮐러에게 알버트는 사이더스의 오래전 큰 돈을 훔쳤다는 전과 때문에 자신이 돌보는 아가씨와의 약혼을 거절했다는 것과, 사건이 일어난 밤 사이더스가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방문했다는 증거를 남기려 노력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하지만 알버트가 후견인인 엘레노라는 알버트가 자신과 결혼하기를 원했다고 말한다.
뮐러의 수사를 통해 사이더스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된 친구에게 쓴 편지가 거짓으로 밝혀진 후 - 그에게 친구가 없었기 때문 -, 이 모든 것은 사이더스의 정교한 자살 계획이라는 진상이 드러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조 뮐러 시리즈. 전편보다도 추리적으로는 더욱 별볼일 없습니다. 현대 독자라면 사이더스가 자살 계획을 꾸몄다는걸 너무나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를 설명하기 위한 조 뮐러의 독백은 장황해서 지루하기 짝이 없어요. 게다가 자살자가 자기에게 총을 쏘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총을 멀리 던진다는게 얼마나 가능할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러나 정황 증거만으로 누군가를 유죄로 만드는 사법 체계의 모순, 그리고 전과자가 갱생할 수 없다고 믿는 일반론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고발하는 사회파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오히려 높다는게 재미있더군요. 이런 부분은 시대를 많이 앞서간 느낌입니다. 사이더스가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려고 했던 검찰청장 구스타프 슈미트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고 알버트는 심장병으로 결국 몇 개월 뒤 죽는다는 씁쓸한 결말까지도 현대적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기대했던 고전 본격 추리물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지만 기대 외의 사회파 추리물적인 가치와 현대적인 분위기는 나쁘지 않기에 이전 작품보다는 좀 더 높이 평가받을만 합니다. 그래도 평균 이하 작품이라는건 변함은 없지만요...

아이비 코티지 살인 사건
예술가 개빈 킹스코트가 그의 저택 아이비 코티지에서 살해된채 발견된다.
킹스코트는 머리에 난 상처로 사망했고, 현장도 엉망이었던 상태로 현장을 방문해서 나무를 몇 그루 훔치려 했던 정원사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 상태로 "나"는 사건을 수사한다는 지인 마틴 휴이트와 함께 현장을 찾는다.


셜록 홈즈와 그의 라이벌 시대인 고전 본격 단편물 황금기 탐정 중 비교적 알려진 편인 사립 탐정 마틴 휴이트 시리즈 중 한 편.
킹스코트가 묶었던 하숙집에서 그가 꾸몄던 나무 장식품들을 완벽하게 파괴하고 도망친 하숙인들 사건과 킹스코트 살인사건이 엮이는 전개가 꽤나 깔끔합니다. 하비 찰리트가 다이아몬드를 방에 숨긴 후, 킹스코트가 그 보석을 찾아내었다는 마틴 휴이트의 추리도 그럴싸하고요. 특히나 도둑들이 킹스코트가 자고 있지 않을 때 만나려는 의도가 있었으며, 그들이 찾고 있는 건 서랍장 안에 들어갈 만한 작은 물건이었다는 설명은 정말 기가 막힙니다.

물론 옛 하숙집 주민 중 한 명이 찰리트라는게 밝혀진다면 사건이 쉽게 해결되었으리라는 점, 그리고 하비 찰리트의 급작스러운 등장과 사망은 완성도를 조금 떨어트리는 요소입니다. 그래도 별점은 2.5점은 충분한 무난한 작품이에요. 후대에도 잊혀지지 않은 시리즈와 작품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연쇄 보석 도난 사건
제임스 노리스 경이 마틴 휴이트를 자신의 렌튼 크로프트 저택으로 초대한다. 이유는 저택에서 벌어진 보석 절도 사건의 해결을 위함이었다.

마틴 휴이트는 노리스경으로부터 11개월 전 부터 무려 3건의 연쇄 보석 도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듣는다. 보석은 창문 외에는 모든 문이 잠긴 방 화장대에서 사라졌고, 남은 것은 불에 탄 성냥 하나 뿐으로 경은 방이 어두웠을 때 도둑이 성냥을 켜고 서둘러 화장대를 살핀 후 보석을 훔쳐 달아난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훨씬 귀한 반지를 남겨둔 채 싸구려 브로치가 도난당했고, 세번 째 사건은 바로 직전에 고가의 브로치가 사라진다. 그런데 주인이었던 경의 처제가 방을 비운 것은 5분도 되지 않고, 창문은 굳게 닫혀있었으며 문은 열려 있었지만 바로 옆이 경의 딸 방이라 누군가 움직였다면 소리가 들렸어야 했다. 오직 남아있는건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마찬가지로 타버린 성냥 뿐이었다.


오래전 하서 추리문고 단편 모음집을 통해 읽었었던 걸작 <<렌턴관 도난 사건>>과 같은 작품. 거의 밀실에 가까운, 사람은 드나들 수 없는 방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을 해결하는 마틴 휴이트의 활약이 정말로 인상적인 단편입니다. 단서는 불에 탄 성냥개비 뿐인데, 현장은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 불을 밝히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는게 드러난 후 성냥개비의 용도에 주목하여 추리하는 과정도 설득력 높고 여기서 "앵무새"가 범죄에 사용되었다는 진상도 아주 그럴듯합니다. 그 외의 독자에게 제공되는 정보 - 약간의 틈을 이용하여 방에 침입할 수 있는 건? 왜 한 번에 하나의 물건만 훔쳤는지? 왜 물건의 가치를 알 지 못했는지? 등등 - 도 상당히 공정한 편이라 이 정도면 홈즈 시대 고전 본격물 단편 중 최상급 수준의 작품이라고 보아도 무방할거에요.

유일한 단점이라면 이미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으며, 이런 저런 추리 퀴즈에서 트릭이 소개되어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점인데 이는 시간이 오래 흐른 탓일 뿐 작품의 잘못은 아닙니다. 오히려 마틴 휴이트라는 탐정의 매력이 떨어지는게 이 작품이 지금은 많이 잊혀진 이유가 아닐까 싶기는 하군요. 이대로 잊혀지기는 아까운 이 작품에 대한 제 별점은 4점입니다.

둥근 방
존 벨은 웬트워스 가와 관련된 사건에 대한 친구 변호사 에드콤비의 의뢰를 받는다. 사건은 웬트워스가의 유일한 상속인 아치볼드의 기묘한 죽음. 그는 사망 당시 완벽한 건강 상태를 가지고 있었다는게 밝혀진 것. 그가 머물렀던 여관 주인 등의 증언으로 아치볼드의 방에서 유령이 나오며 그는 공포 때문에 죽었다는 소문이 드러난다.

존 벨은 수사를 통해 캐슬 여관에서 그 간 세 번 유사한 사건이 벌어졌다는걸 알게되고 직접 캐슬 여관에 투숙할 계획을 세운다. 캐슬 여관 주인 가족은 유령이 나와서 세 명이나 죽었다고 강하게 경고하지만 그는 결국 투숙에 성공하고, 하룻밤을 무사히 버틴다.
다음날 원래 제분소였던 여관 건물을 조사하다가 여관 주인 바인드로스와 부딪히고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두번째 밤을 보내다가 방이 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런던의 유명 탐정 존 벨 시리즈. 존 벨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는게 독특했습니다. 대부분의 셜록 홈즈의 라이벌 시리즈물은 화자가 별도로 있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읽다보니 탐정 스스로가 직접 위험에 뛰어들어 사건을 해결하는 전개라 1인칭으로 쓰여진게 이해는 되더군요. 무엇보다도 '회전하는 방'에 갖힌 묘사에는 아주 딱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약간은 고전 모험물 느낌도 났습니다. 스케일이 큰 기계 장치 트릭 역시 이런 느낌에 한 몫 단단히 하고 있고요.

하지만 제분소 건물, 회전하지 않지만 가동 가능한 물레방아 등의 조건이 무언가에 사용되었다는 내용은 좀 뻔했으며 회전 때문에 건강한 사람이 아무 상처없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사람이 죽을 정도의 고속 회전이라면 원심력으로 어딘가에 부딛혀서 상처가 나는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작품 속에서처럼 완전 범죄가 가능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또 무언가 조작이 있는 방에서 기묘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탐정이 직접 방에 뛰어들어 죽을 고비를 넘긴다는 내용은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등장하는 이야기라 식상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시대를 뛰어넘을 만한 가치는 딱히 없는 작품입니다.

말하는 시바신
존 벨은 로리에 박사로부터 시바신에 빠진 에드워드 더시거라는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더시거의 조카딸 헬렌은 그가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또다른 조카 재스퍼 베그웰과 결혼하려는 이유가 삼촌을 구하기 위해서라는 이상한 말을 남긴다. 하지만 더시거가 벌이는 시바 신상 앞에서의 기괴한 의식을 목격한 로리에 박사는 그가 미쳤다는걸 확신하나 헬렌의 말 때문에 존 벨에게 무언가 음모가 있는게 아닌지 확인해 줄 것을 부탁한다.
강령술사로 변장하여 로리에 박사와 함께 더시거의 저택으로 향한 존 벨을 맞은 베그웰은 더시거 삼촌이 미쳐서 헬렌을 죽이려 한다고 경고하고, 더시거 역시 존 벨에게 시바 신이 자신에게 끔찍한 일을 명령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음날 새벽 헬렌은 몰래 존 벨을 만나 재스퍼를 만난 두세달 전 부터 삼촌이 이상해졌다며 재스퍼가 재산을 노리고 이런 일을 벌인게 아니냐는 생각을 털어놓는다.

타원형 회랑에서 소리가 전달되는 구조를 응용한 과학 트릭이 등장합니다. 특정 위치에서 나는 소리가 회랑 반대쪽 특정 위치에서만 들린다는 것인데 저도 언젠가 기사에서 보고 트릭에 써 먹어야 겠다! 고 생각했었던 내용이라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수십년 전 작품에 사용되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역시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나봅니다.

하지만 과학적 트릭이 사용된 것 외의 작품의 완성도, 가치는 높다고 하기는 어렵네요. 아무리 소리의 "촛점"이 맞아야만 들린다고 하더라도 더시거 혼자 환청을 들은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거든요. 게다가 존 벨 역시 단 몇시간의 조사 중 우연하게 이 소리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또 설령 환청을 들었다쳐도, 더시거 정도 되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광기에 곧바로 사로잡혔다는 것 역시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과학적 트릭 외에는 건질게 없는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저라면 좀 더 이 설정을 잘 활용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소모된게 아까울 뿐입니다.

동굴 속 유령
바이올렛 스트레인지는 뮤지컬을 보다가 특별한 한 명의 남자를 보고 정신을 잃고 만다. 그의 얼굴에 너무나 뚜렷한 우울함이 나타나 그 슬픔이 그녀의 가슴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 로저 업존은 바이올렛에게 다가와 사건 해결을 의뢰한다. 사건은 도박 때문에 가정이 파탄날 위기에 몰려 이혼 절차를 진행하던 중 아내가 침대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것으로 죽음의 원인으로는 심장 질환이 거론되었지만, 시체 손목이 멍들어 있던 탓에 로저 업존에게 이런저런 추문이 덧붙여져 그는 거의 사회적으로 매장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바이올렛에게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털어놓는다. 첫번째는 아내가 죽은 날 아이의 양육권을 걸고 아내와 도박을 벌였다는 것, 두번째는 그녀에게 패배한 후 도박을 벌이던 해안 지대 동굴에서 홀로 뛰쳐나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얼마 전 동굴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아내를 묶어 죽음에 이르게 한 후 시체를 옮겨 놓았다는 증거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여성 작가가 쓴 작품답게 복잡하고 여성스러운 심리 묘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정말이지 별로인 작품입니다.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로저 업존의 증언이 대부분이며 바이올렛은 단 하루, 저택을 방문한게 전부이며 현장 검증이나 별다른 수사는 이루어지지도 않습니다. 바이올렛의 분장쇼 한 번으로 사건이 해결되는 결말도 어처구니 없지만 이 분장쇼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되지 않아서 추리물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네요.
아울러 충직한 아버지의 하인이 진범이었다는 진상도 그렇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누가 범인이든 어차피 별로 중요한 상황도 아니니까요. 솔직히 아버지 로저가 범인이었다 하더라도 이야기 전개와 결말에 별 차이가 있지 않았을겁니다. 곧 죽을 사람이니까요.

탐정이 추리를 하지 않고, 진범이 누군지 중요하지도 않은 작품이 좋은 추리소설일 수 없겠죠. 완벽하게 건질게 없는 워스트 중의 워스트로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눈먼 의사, 아내, 그리고 시계
하스브룩 씨는 5년 전 자신의 집 안에서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공격당해 총을 맞은 후 사망한다. 자기 전 집 안의 블라인드와 셔터는 철저하게 내려졌던 상태. 꾸준히 수사를 이어온 사립탐정 "나"는 당시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맹인 의사인 재브리스키가 하스브룩을 죽였다고 생각한다는걸 알아낸다. 그의 미모의 아내는 그가 망상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결국 재브리스키는 경찰에 출두하지만 동기가 없다는 그의 말과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난다.
결국 재브리스키는 스스로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걸 경찰에 증명하기 위한 실험에 뛰어들지만 과녁인 시계를 품은 아내를 쏘고 만다.


사립탐정인 "나"라는 화자에 의한 사건의 첫 수사 보고서와 바이올렛 스스로 "나"로 지칭하고 쓴 수사 보고서가 혼재되어 전개되는 구조가 독특한 작품. 질투에 사로잡힌 재브리스키가 집을 잘못 알고 하스브룩 씨를 쏘아 죽였다는 진상도 괜찮고요. 이를 위해 재브리스키는 맹인이며 사건 당일 극도의 흥분에 사로잡혔다는 묘사를 통해 그가 집을 잘못 찾은 이유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과정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도 술에 취했을 때 아파트를 착각해서 다른 아파트 현관문에 먹히지도 않는 비밀번호를 여러번 눌렀던 적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더군요.

하지만 진상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독자에게 제공되는 단서는 거의 없습니다. 재브리스키 부인에게 추근대던 남자가 현관문을 통해 도망쳤다는 정도? 그 외에 아무도 믿지 않는 재브리스키의 주장 (권총은 길거리에 버렸는데 누가 주워간 것이다 등) 이 사실이었다는건 너무 황당하고요. 또 바이올렛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이래서야 탐정 없이 재브리스키의 1인극으로 그의 자백으로 이야기를 끝맺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을겁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좋은 설정, 재미있는 사건을 억지스러운 전개와 탐정 캐릭터의 개입으로 망쳐버린게 아쉽습니다.

2019/02/02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 - 오혜진 : 별점 3점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 - 6점
오혜진 지음/어문학사

6년전에 읽고 리뷰까지 남겼는데 어쩌다보니 깜빡하고 다시 구입해서 읽게 된 책입니다. 5년이 넘어가니 그냥 새로 읽는 것과 다를게 없네요. 다시 리뷰 남깁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5장은 맺음말로 내용은 4장 구성), 해방 전까지의 한국 추리 소설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정리한 책인데 문학사니까 일종의 미시사 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전에 읽었던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해방 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이 점은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와 더 비슷하군요. 그러나 내용이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술한 시각이 일관되기 때문에 더 나은 점도 많이 있습니다. 이전에 유사한 책들을 많이 읽어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눈에 뜨이는 부분도 제법 되고요.

우선 추리 소설을 어떤 기준으로 연구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 (이브 뢰테르의 세가지 분류 - Mystery, Crime novel, Suspense - 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과 서구 추리 소설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짤막하게 소개하는 부분 등 도입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연구서다운 상세한 설명과 접근 방법이 좋더라고요.

이후 실제 한국 추리 소설의 역사 역시 재미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우선 1920년대 중반 "취미"라는 용어가 일상화 되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원래 있던 단어인줄 알았는데 말이죠. 당시 중산층의 개념이 1년 수입으로 1년간 채무 없이 살 수 있는 정도를 뜻하며, 극히 드물었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취미"에는 돈이 들고,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값싼 인쇄물을 가까이 하는 책읽기가 그나마 일반적인 취미로 널리 퍼졌다는 것이죠.
또한 이러한 출판 산업의 호황에 더해 당시 언론 통제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가 난무한 것, 그리고 "자본주의" 때문에 상업화로 흐른 등 "대중 소설"을 위한 토양이 갖추어져 결국 추리 소설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런 책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지금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비싼 책 값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아울러 당시에도 코난 도일과 르블랑에 대한 편식이 심했다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이후 당시 발표된 여러 추리 소설을 소개하는데 이 역시 흥미로왔습니다. 최독견의 <<사형수>> 라던가, 신경순의 <<피무든 수첩>>, <<제 2의 밀실>>, 최유범의 여러 작품들이 그러합니다. 특히 최유범의 작품은 비록 일부 표절 (<<브루스 파팅턴 설계도>>) 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미스터리 추리 소설로 장르의 규칙을 철저히 수행하고 있다고 하니 놀랍네요. 수수께끼 풀이가 완벽한 수준의 해방전 국내 작품은 그 유래를 찾기 힘든데 말이죠. 그 뒤에 이어지는 다른 작품들은 국내 추리 소설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사랑과 연애사"가 부각되는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최유범의 작품이 더욱 빛을 발합니다. 
그 뒤 김동인의 <<광염소나타>>, 박태원의 <<우맹>>, 김유정의 <<만무방>>과 같은 추리 서사가 도입된 국내 소설 소개가 이어집니다. 염상섭의 <<사랑과 죄>> 역시 마찬가지죠. 영화에 나온 수법을 따라하는 모방 범죄가 등장하고, 살인 사건이 주요한 내용인 등 꽤 진지한 추리 서사가 도입된 작품이라는데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몇몇 부분은 안타까움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통속 소설", "대중 소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당시부터 존재했었다는 점입니다. 추리 소설이 싸구려 통속 소설로 폄하된 이유가 이 땅에 추리 소설이 소개된 시점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인데, 심지어 추리 소설을 창작, 번역하기까지 했던 일부 작가들조차 (염상섭 등) 동일한 인식을 지녔다는 점에서 통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과학적, 근대적 사고가 널리 퍼진 것이 논리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추리 소설의 유행과 관계되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러한 근대적 사고 방식을 토대로 한 작품이 이렇게까지 폄하되는 것도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물론 당시 미디어, 작가들의 잘못도 크겠지만요.

마지막 4장에서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세 편의 작품 - 채만식의 <<염마>>, 김동인의 <<수평선 너머로>>, 김내성의 <<마인>>- 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당대 추리 소설의 수준, 그리고 어쩔 수없는 한계를 설명하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내성의 여러 작품들이 함께 소개되고 있는데, 김내성의 <<마인>>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 눈에 뜨입니다. 지금 읽으면 많이 허술하지만 당대 국내 추리 문학계를 대표했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 작품 소개 모두 읽을만 합니다.
그러나 책의 특성상 (일종의 학술 논문) 전편 내용이 수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관심이 크다면 별도로 구해 볼 수 밖에 없거든요.

마지막에는 1940년대로 넘어오면서 전쟁 탓에 스파이 소설이 범람하였으며, 이른바 "친일 문학"으로 여러 작품이 발표된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외국인 여성 마리에가 만드는 센닌바리가 경성의 방공 시설과 반도내 포대 위치를 말하는 모르스 부호가 숨겨져 있음을 폭로한다는 김내성의 <<수놓은 송학>>이 대표적인데, 꽤 괜찮은 아이디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식민지에서의 친일, 매국 문학으로 전락한 작가의 모습은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다른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하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으로 이는 6년 전과 같습니다. 다른 유사 자료, 도서와 차별화되는 점도 크고, 나름의 재미는 물론 여러가지 정보와 함께 큰 흐름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추리 소설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저는 두 번 읽었지만 여전히 괜찮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