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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 - 대중서사장르연구회, 박유희 외 : 별점 3점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 - 6점
대중서사장르연구회.박유희 외 지음/이론과실천

한국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의 매체에 등장했던 추리물의 역사에 대해 개략적으로 정리하여 알려주는 문화사 서적. 근현대 이후의 장르 문학이나 매체가 아니라 고전 설화와 각종 야담, 역사서 등에 등장했던 추리 서사부터 소개하고 있기에 그 양과 깊이가 실로 방대합니다. <<아랑 전설>>에서 밀양 부사가 빨간 깃대를 흔들고 가는 아랑에 대해 꿈꾼 후, 범인이 '朱旗'라는 사람임을 가리킨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이야기, 암행어사 박문수 설화에서 '한각사중계월침, 붕월반월원무심'이라는 점 글귀의 뜻 풀이 같은 것이 등장하는 식이거든요.

근대적인 추리 소설, 즉 '정탐 소설'이 처음 등장한 <<쌍옥적>> 이후의 자료는 더욱 풍부합니다. <<쌍옥적>> 시기에 <<박쥐우산>>이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르루주 사건>>을 번안한 <<누구의 죄>>를 표절한 느낌의 작품이기는 한데, 범행 동기와 범인 설정에 있어 당시 국내 실정에 잘 맞도록 나름 개선, 발전시킨 부분도 있어서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더군요. 근대 초기에 셜록 홈즈와 같은 정통파 추리물이 아니라 '에밀 가보리오'의 프랑스 소설이 유독 인기를 끌었다는 점도 꽤나 흥미로왔고요.

아울러 근대에 추리 소설이 번안되어 소개되면서 이른바 '탐정 소설'이 높은 수준의 독서력을 가진 독자들이 읽는 지적인 작품으로 어필했다는 것도 신선했습니다. 추리 소설이 항상 싸구려 문학의 대명사로 알려진 80년대 이후를 살아온 저에게는 이해가 안되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하죠. 트릭을 풀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과학적인 지식이 뒷받침 된 이해력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근대에는 그러한 독자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었을테니까요. 이렇게 초창기 추리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아주 괜찮은 듯 싶어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정탐', '탐정'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당대 분위기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어요. 인용되는 자료들을 보니 각종 신문 기사 헤드라인에서 이 단어들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대구에 사는 한 소년이 10세 아동을 납치 살해한 후 협박장을 보냈다는 기사가 대표적이에요. 범행도 충격적이지만 이 소년이 '탐정소설만 매일 탐독'했다고 소개되거든요. 이렇게 탐정소설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상식이 널리 퍼지게 되는 것이죠. 가슴아프게도 이러한 부정적 인식, 앞서 말씀드린 물질 문명에 대한 부분, 거기에 '그로 (그로테스크)'라는 말로 대표되는 새로운 유행의 결합 등으로 한국 추리 문학이 서서히 선정성, 엽기성이 강조된 싸구려 펄프 픽션화하는 과정이 해방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아울러 지적인 영역, 논리적 추론과 과학적 수사 외에도 서구 물질 문명의 유혹 역시 지식인들을 끌어당기는 요소였다고 하는데, 이 역시 후대에 좋지 않는 영향을 끼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적인 영역이 아니라 물질 문명에 대한 부분만 확대, 발전해 버렸으니까요.

그래도 저도 익히 알고 있는, <<최후의 증인>>이라는 기적으로 대표되는 김성종 시대에서 현재 (이 책이 발표된 2010년 기준)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마지막 부분 덕분에 아직 한국 추리문학에 희망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한국 추리문학의 미래로 <<경성탐정록>>이 소개되었기 때문이에요. 저 역시 <<경성탐정록>>이야 말로 한국 현대 추리문학이 이룬 놀라운 성취 중 하나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정성, 엽기성이 사라지고 정통 추리 서사에 기반한 본격물이라는 점에서, 원점에 회귀한다는 측면은 분명히 있죠. 이를 '일제 강점기'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추리문학의 역사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고요. (반은 농담인거 아시죠?)

<<경성탐정록>> 외에도 고전에서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는 추리문학 발전 와중에 등장한 수많은 작품이 소개되기에 눈길을 끄는 작품도 적지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후반 친일 문학의 홍수 속에서도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추리 서사를 보여주는 김동인의 <<수평선 너머로>>, 친일 문학이기에 다시 읽을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서사면에서는 흥미로와 보이는 김내성의 <<태풍>>, 해방 후 추리 문학계의 1인자였다는 방인근의 작품들 (그 중에서도 사립탐정 장비호 시리즈), 허문영의 번개 탐정 시리즈 등이 그것들입니다. 아쉽게도 방인근, 허문영의 작품들은 소개만 보아도 앞서 말씀드린 펄프 픽션들에 다름없기에 구태여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방인근 작품들에 등장하는 해방 이후 주요 설정들 - 일본인이 해방 후 강제로 쫓겨가며 챙기지 못했던 재산을 되찾으려고 한다던가, 국가 혼란기에 국보를 훔친다던가 등등 - 은 한번 연구해 볼 만 하다 싶더군요.

이러한 추리 문학 뿐 아니라 추리 문학을 기반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흐름 및 주요 작품의 소개 또한 책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데, 이 역시 읽어볼만 합니다. 007 시리즈의 여러 모방작들 등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스파이물, 액션 스릴러, 느와르 등 다루는 폭도 넓고요. 제가 관심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놓치시기 힘들 내용들이었어요.

단점이라면 소개되는 작품들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기껏 흥미를 자아내는데 정작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니 무척 답답하더라고요. 지금 구하기 쉬운 작품들도 아니니까요. 도판도 부실한 편이라 아쉽습니다.
그래도 읽기 전에는 내가 아무리 추리 애호가지만 이런 것 까지 찾아서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얻은 것이 훨씬 많은 독서였습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3만원이라는 가격도 마음에 들고요.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가 식민지 시대 추리 문학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책은 다루는 폭과 기간이 훨씬 넓다는 차이가 있기에 비교해 읽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추리 문학, 장르 애호가분들께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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