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2/08/28

모리나가 요우의 프라모델 미궁 일지 2 - 모리나가 요우 : 별점 2.5점

모리나가 요우의 프라모델 미궁 일지 2 - 6점
모리나가 요우 지음/대원씨아이(만화)

일러스트레이터 모리나가 요우가 이런 저런 잡지에 기고했던 일러스트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

작년에 읽었던 1권과 스타일은 똑같습니다. 그림과 글을 빼곡하게 채워놓은 일러스트 에세이라는 점에서는요. 그러나 1권은 모형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2권은 '병기'와 '전쟁'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루고 있는 소재도 폭이 넓습니다. 전차는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전차 소개가 많아서 저자의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비행기 쪽은 신선한게 많았습니다. 메서슈미트나 머스탱같은 대전 당시 주력기들이 아니라 풍선 폭탄, 제로센, 후카 등 일본 병기 중심으로 소개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독일 병기는 아래와같이 비밀무기였던 아라도 정도만 소개되고요.


그 외에도 1차대전에서 시작해서 베트남전, 직접 자위대 등을 찾아다니며 확인한 현용 병기까지 소개 및 언급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거의 한 세기에 걸쳐 언급된다고 할 수 있어요.



병기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싶어하는 욕구, 그래서 작은 부품 하나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정보를 찾아보는 내용들도 많습니다. 모델러가 아니더라도 병기에 관심이 많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고 생각되네요.




직접 특정 병기를 본 후에 느낌을 적어 놓은 에세이들도 좋았습니다. 탱크는 정말로 위압적이며 제로센은 그에 비해 정말 약해보였다는 등의 이야기는 직접 보고 온 사람한테서 밖에는 들을 수 없는 내용이니까요. 병기에 대한 애정, 그리고 모델러로서의 감상도 굉장히 와 닿았고요.


그러나 여러 잡지에 수록한 에세이를 모아놓은 탓에 책이 일관된 방향성을 갖지 못한건 아쉽습니다. 1장과 2장 이후 뒷 부분은 아예 달랐거든요. 단순 여행기라던가 개인 일기에 가까운 내용이 많았던 탓입니다. 영화 감상 노트는 너무 작아서 읽기가 힘든 등의 문제도 있고요. 아무리 컬러지만 100페이지도 안되는 책 치고는 가격도 사악한 편이고요. 오타도 제법 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1장과 2장만 수록하고 가격을 낮추는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저자의 팬이 아니시라면 딱히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모리나가 요우의 프라모델 미궁 일지 1 - 모리나가 요우 / 대원씨아이 : 별점 2.5점












밀실 추리물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하는 명작 10선 (출처 : 서스펜스 라이프)

서스펜스를 좋아하고, 서스펜스를 위한 일본의 추리 소설 전문 사이트 서스펜스 라이프에서 발견한 밀실 추리 추천작 리스트.

추리 소설에는 많은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밀실 추리물은 인기가 많습니다.
모든 문이 잠겨 있는 방 안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범인은 어떻게 피해자를 살해하고 도망쳤을까? 이러한 여러가지 밀실의 수수께끼 풀이를 즐기고, 작가가 교묘하게 만들어낸 수수께끼에 도전해 보고 싶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하는 밀실 추리물 10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1. <<밀폐 교실>> 노리즈키 린타로 *국내 미출간
노리즈키 린타로의 데뷰작으로 수많은 트릭이 사용되고 있다. 학교의 밀실 상태 교실에서 일어난 수상한 죽음, 자살인가 타살인가!
읽기 쉽고 즐길만한 요소가 많은, 밀실 추리물 초심자에게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2. <<혼진 살인 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긴다이치 코스케가 첫 등장하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대표작.
겹겹이 쌓여진 복선이 인상적으로, 밀실 트릭의 개척자격인 작품입니다.

3. <<자물쇠가 잠긴 방>> 기시 유스케
밀실을 주제로 한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연작 단편집.
방범 컨설턴트 에노모토와 변호사 준코 컴비가 밀실 살인 사건 해결에 도전한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가지 밀실 추리물을 읽고 싶은 분들께 딱 맞는 작품.

4. <<꽃의 관>> 야마무라 미사 *국내 미출간
야마무라 미사의 교토 무대 시리즈 첫 작품. 명탐정 캐서린이 처음으로 등장하며, 잘 고안된 메인 트릭도 볼거리. 무엇보다도 교토의 정서를 맛볼 수 있다는게 포인트입니다.

5. <<46번째 밀실>> 아리스가와 아리스
명탐정 히무라 히데오의 첫 등장 작품.
눈으로 갇힌 저택을 무대로 한 완벽한 밀실 추리물.
간단한 트릭이 사용되었지만 풀어내기는 어렵습니다.

6. <<밀실의 열쇠 빌려드립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데뷰작.
유머스러움이 가득하지만, 밀실 트릭도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7. <<날개 달린 어둠>> 마야 유타카
마야 유타카의 데뷰작.
부유한 일족이 사는 외딴 저택에서 벌어지는 연속 살인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본격 추리물다운 설정과 소재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도 반전이 많아서 반전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8. <<지나가는 바람은 초록색>> 쿠라지 아츠시 *국내 미출간
고양이 마루 선배 탐정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아이디어도 좋고, 고양이 마루 선배의 개성과 상냥함이 잘 표현되어 있습ㄴ다.

9. <<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뷰작. 긴 여운을 남기는 청춘 미스터리로 결말도 놀랍습니다. 팬이라면 놓치면 안되겠지요.

10. <<일곱 개의 관>> 오리하라 이치
오리하라 이치의 데뷰 단편집.

데뷰작이 많다는게 특이한데, 다 읽어본건 아니지만 제가 보기에는 '명작' 이라고 부를만한 작품들은 아닙니다. 전부 일본 작품이라는 한계도 분명하고요. 언제나 그렇듯 이런 류의 리스트는 그냥 참고만 하시는게 좋겠습니다.

2022/08/27

수정마개 - 모리스 르블랑 / 심지원 : 별점 1점

 

아르센 뤼팽 전집 6 - 2점
모리스 르블랑 지음, 심지원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뤼뺑은 부하 보슈레의 권유로 하원의원 도브렉의 별장을 털게 되었다. 그러나 물건을 훔치던 중에 도브렉의 하인 레오나르가 살해당했고, 부하 보슈레와 질베르는 체포되어 단두대에 오를 운명에 놓였다.
둘을 구하기 위해 뤼뺑은 도브렉에 대해 조사하던 중, 자기도 감시당하고 있다는걸 눈치챘다. 감시자는 질베르의 친모인 회색 머리의 미녀 클라리스였다.
클라리스가 도브렉 대신 남편을 택했기 때문에 복수에 나선 도브렉으로 인해 그녀의 남편은 자살했고 질베르도 범죄와 방탕에 빠지고 말았다. 27명의 고위 관료를 협박할 수 있는 서류가 도브렉 힘의 원천이었다.
뤼뺑은 클라리스와 힘을 합쳐 질베르를 사면시키고, 도브렉을 몰락시키기 위해 이 서류가 감춰져 있다는 '수정 마개'를 맹렬하게 찾아 나서는데....


뤼뺑 시리즈 장편. 아주 오래전에, <<813의 비밀>>과 함께 아동용으로 접해본 뒤 기억에서 지웠던 작품입니다. 최근 읽을게 없나 찾아보다가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읽다보니 왜 어린 마음에도 기억에서 지워버렸는지 알겠더라고요. 아무런 개연성도, 설득력도 찾을 수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나간 듯한 엉망인 전개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뤼뺑 캐릭터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 작품에서 뤼뺑은 실패만 반복합니다. 도브렉 별장 털이 실패에서 시작해서, 은신처에서 수정 마개를 곧바로 도난 당하고, 도브렉 저택에 침입했을 때에는 도브렉에게 숨어있던걸 들켜 망신을 당하고, 겨우 다시 훔쳐낸 수정 마개는 또다시 도난당하고, 도브렉과 담판을 짓기 위해 나섰을 때에는 정체를 바로 간파 당하며, 납치된 도브렉을 구해주다가 칼에 맞고, 심지어 도브렉을 추적할 때는 허둥지둥 갈팡질팡하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기존의 전지전능한 뤼뺑의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어요. 한마디로 그냥 어설픈 실패자로만 등장합니다. 실패만 거듭하면서 클라리스에게 아들을 구해줄테니 나서지 말라며 큰손리를 치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절망에 빠져 다 잊고 잠이나 자겠다며 수면제를 들이켜는 장면에서는 제가 뭘 읽고 있는지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이런 실패의 연속은 극적인 긴장감을 찾아보기도 어렵게 만듭니다. 뤼뺑 시리즈에서 '이번에는 어떻게 뤼뺑이 실패할까?' 라는걸 기대한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전개도 엉망입니다. 모든 사건이 우연히, 급작스럽게 일어나거든요. 뤼뺑과 클라리스가 도브렉을 감시하는게 교차되는 과정이라던가, 전개의 특정 시점에 맞춰 딱 맞게 벌어진 도브렉 납치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마지막에 도브렉이 진짜로 숨어있는 장소를 뤼뺑이 알아냈던 것도 마찬가지에요. 도브렉의 부하를 산레모 역에서 마주친 덕분이었는데, 이는 작위적인 전개의 극치라 할 수 있겠지요.

설정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도브렉이 중요한 서류 - 27명의 명단이 담긴 - 를 감추기 위해 만들었다는 수정 마개의 존재가 대표적입니다. 서류를 수정 마개 안에 숨긴 뒤, 그 수정 마개를 어딘가에 숨긴다는 설정인데, 이럴거면 그냥 어딘가에 서류를 숨기면 되잖아요? 구태여 수정 마개를 사용하는 까닭을 모르겠어요. <<로마 모자 미스터리>>에서 서류를 숨기기 위한 용도로 모자를 사용했다는 억지 설정과 별로 다를게 없습니다. 오히려 눈에 띈다는 점에서는 모자보다도 못한 셈이고요.
27명의 명단도 가지고 있는 힘에 비하면 설명이 부족하고 비합리적입니다. 도브렉이 그들을 협박하려면, 명단의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자기 정체가 드러나지 않으려고 협박범에게 굴복하는게 보통이니까요. 하지만 명단 속 인물들은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진 걸로 묘사됩니다. 도브렉이 납치되었을 때, 뤼뺑이 약간의 단서를 토대로 "나폴레옹 덕에 귀족이 되었다가 왕정복고로 망해버린 코르시카 혈통의 후예인 명단 속 인물"이 납치범일 것이라고 추리하자, 경찰은 곧바로 그건 알뷔패스 후작이라고 말할 정도로요. 그렇다면 당연히 도브렉의 협박은 먹힐 이유가 없습니다! 이 서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했다면, 더 설득력있는 근거를 댔어야 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습니다. 뤼뺑이 하는 것이라고는 변장과 잠입, 그리고 납치가 전부거든요. 가장 중요한 수수께끼인 '수정 마개'의 위치는 도브렉이 납치당해 고문당했을 때 했던 "메리"라는 단어와 책상 위에 놓여 있다는 말, 도브렉이 짧은 시간 동안 물건을 가져갔다는걸 종합하여 위치를 알아내는데, 도브렉이 가져간 다음에 알아냈으니 제대로 된 추리라고 보기 힘듭니다. 없어진게 담배갑 뿐이었으니 더더욱 그러하지요. 수정 마개는 담뱃갑 안에 들어있던게 당연합니다. '메리'는 도브렉이 메릴랜드 산 담배만 피워서 한 말이라는데 이 상황에서는 그 담뱃갑이 메릴랜드 산이건, 한국 담배 인삼 공사 제품이건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게다가 이 담뱃갑은 종이 띠로 포장되어 있어 최초 뤼뺑의 조사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킹은 죽었다>>처럼 부실한 조사 탓으로 생겨난 수수께끼에 불과한 셈이라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수정 마개는 일종의 미끼였고, 안에 들어있던 서류는 가짜였다는 반전은 괜찮았어요. 도브렉의 의안이 진짜 서류가 담긴 수정 마개였다는 진상, 그리고 이를 숨기기 위해 도브렉은 항상 두꺼운 색안경을 끼곤 했다는 설정도 괜찮았고요.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구멍을 통해 침임했던건 클라리스의 아직 어린 아들이었다는 트릭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장점은 미약합니다. 단점 투성이의 졸작이자 망작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2022/08/21

Q.E.D Iff 증명종료 18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5점

Q.E.D Iff 증명종료 18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아래 리뷰에는 트릭과 진상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령의 집>>
토마와 가나는 200여년을 이어온 송씨 가문의 유언장 개봉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토마의 대학 동창인 장남 송지안의 아들 하오유의 부탁 때문이었다. 하오유는 아버지가 가문의 정령에게 살해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송지안이 가문의 기반을 닦았던 해운 부문을 매각하려 해서, 일족 대부분의 반발을 산 탓이었다. 과거에도 가문에서 적절치 못한 행동을 했던 당주가 무려 3명이나 불가능한 상황에서 살해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송지안이 잠겨져 완벽한 밀실이었던 별채에서 시체로 발견되는데...

송지안이 당주가 사용하는 별채에서 죽었다는건, 송지안이 가문의 당주가 되었다는걸 알고 있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송지안이 당주가 된 건 사건 직전에 있었던 유언장 개봉 이후에 확정된 사실입니다. 즉, 범인은 유언장 개봉 행사에 참석했거나, 곧바로 그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던 가문 내 사람이라는게 분명합니다.

트릭의 기본 아이디어는 괜찮았어요. 범인 송즈하오가 자기가 우연히 갇힌 것처럼 보였던 방 안에서 송지안을 살해하여 알리바이를 만들었다는 발상의 전환이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 시체를 옮기는 과정이라던가, 별채 문을 부술 때 문 앞에 놓여져있던 천구의가 떨어져 망가졌는데, 범인이 그 틈에 열쇠 꾸러미를 던져넣어 원래부터 별채 안에 있던 것 처럼 속였다는 트릭은 많이 유치했습니다. 여러모로 성공하기 어려워보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정령이 범인인 것 처럼 꾸미기 위해 밀실을 만든다는게 너무 억지스러웠어요. 지금이 19세기도 아니고, 21세기에 떠올림직한 방법은 아니지요.

그렇지만 트릭보다는 송지안이 죽기 직전, 송즈하오의 계획을 알고 최후의 힘을 짜내어 신발을 밀실 의자에 감췄다는 결정적 단서, 그리고 송씨 가문 일족 모두가 송지안을 없애기 위해 협력한게 아니었을까라는 토마의 생각이 펼쳐지는 마지막 장면 덕분에 평작 수준은 됩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학원제 조곡>>
토마와 가나가 다니는 학교에서 5일 뒤에 열릴 문화제를 앞둔 준비기간이 시작되었다. 문화제에는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영국 대사가 참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문화제 준비 와중에 정체 불명의 남자가 학교에 나타났고, 주차장에서는 '카와지마님"이라는 기묘한 팻말이 놓여졌다. 과학실에서는 표본이, 면담실에서는 전시가 사라져 버렸으며, 미술부원들도 무언가를 숨겼고, 검도부 행사장에서 준비했던 사진 패널이 부서지는 등의 괴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심지어 화재 사건까지 일어나는데..
.

언제나 평균은 해 주는 Q.E.D의 학원 배경 일상계 추리물. 일상계라고 보기에는 다소 강력 사건(?)이 등장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일상계스럽습니다. 토마가 데이터가 중요하다며 시간을 들여서 측정해가며 오코노미야키를 만드는 장면처럼 말이지요. 아주 귀여웠어요. 가나가 영국 대사에게 차를 대접하는건 소중한 추억이 될 거라고 토마에게 이야기하는 장면도 멋있었고요. 그 때에는 별 것 아니었더라도, 수십년이 지나면 즐겁고 소중한 추억이 열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건데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이런저런 수수께끼들도 소소한 재미가 있었어요. 미술 부원들이 숨겼던건 술이었습니다. 술장사를 하는 부원 아버지가 영국 대사에게 보여주라며 챙겨준 것이었는데, 당연히 고등학생이 술을 가지고 오면 안되니 숨겼던 겁니다. 카와지마님이라는 팻말과 면담실, 부실 증축이 예정되었던 학교 토지와 관련되었던 일련의 사건은 모두 도의원 카와지마를 노린 사기 사건과 관계된 것이었고요. 사기범들은 카와지마에게 학교 땅을 자기들 것인양 팔 속셈이었던겁니다. 그래서 카와지마를 학교로 초대해서 학교 관계자인 것 처럼 연극을 꾸몄던 것이지요. 문화제라서 사람 출입이 자유로운 상태가 된 걸 노렸다는데, 영국 대사가 방문한다는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에서는 설득력이 조금 약했지만요.
무엇보다도 과학실에서 표본을 훔쳤던 사건이 괜찮았습니다. 표본을 훔치려다가 진열되었던 유리 상자를 깼던 범인이, 순간적으로 밖에서 돌이 날아들어 창이 깨진거라고 둘러댔는데, 가나가 찍었던 사진에 과학실 유리창이 멀쩡한게 드러나 있어서 패널을 파괴했던 겁니다. 범인의 순간적인 기지도 괜찮았고, 이게 사진 훼손 사건과 이어지는 전개가 합리적이라 마음에 들었어요.

기본은 해 주는 Q.E.D 일상계의 한 편린은 충분히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2/08/20

시체 찾는 아이들 - 시모무라 아쓰시 / 최재호 : 별점 1.5점

시체 찾는 아이들 - 4점
시모무라 아쓰시 지음, 최재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진상 및 주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체포된 24살의 미청년 연쇄 살인범 아사누마 쇼고는 사형 선고를 받은 직후, 8명의 피해자 중 미즈모토 유카는 자신이 살해하지 않았고, 진범은 자기가 죽여 '추억의 장소'에 묻었다는 폭탄 발언을 해 버렸다. 세간에서는 시체 찾기 소동이 일어났고, 휴직 중인 형사 노조미도 독단적으로 재수사에 나섰다. 그녀는 유카 사건에서 아사누마 쇼고가 아닌 다른 3인조를 범인이라 생각하고 수사를 벌였었는데, 3인조 중 한 명인 히카루가 실종되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인기 유튜버를 꿈꾸는 중학생 소타는 유튜버 니시얀, 세이와 함께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시체 찾기'에 나서는데....

미즈모토 유카 사건에 대해 추적하는 노조미와 소타 일행의 시체 찾기가 병행 전개되는 작품. 중반부까지는 두 이야기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아서 왜 병행 전개되나 싶었는데, 나중에 소타 일행의 이야기는 노조미 이야기의 수년 전이며, 소타 일행 중 한 명인 세이가 아사누마 쇼고였다는 반전이 드러납니다. 아사누마 쇼고의 '추억의 장소'는 3인조가 시체를 찾아 나섰던 바로 그곳이었고요. 이렇게 독자를 속이는 서술 트릭은 꽤 괜찮은 편입니다. 잘 숨기고 있어서 반전에 대한 놀라움과 재미는 충분히 가져다 주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서술 트릭 외에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대부분의 캐릭터는 - 특히 연쇄 살인마 아사누마 쇼고 - 클리셰로만 이루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뻔했고, 소타 일행의 시체 찾기와 노조미의 수사 모두 전개가 비현실적인 탓입니다.
이 중 시체 찾기는 <<스탠 바이 미>> 설정과 너무 유사한데다가 소타 일행 중 한 명인 고등학생 세이의 경우, 시종일관 비정상적인 사고 방식이 두드러지게 묘사됩니다. 일행의 목적지였던 치바의 '우는 아이 숲' 근처에서 만난 미모의 소녀 카호의 등장은 뻔하면서도 억지스러웠고요.
굳이 변명한다면, 세이의 비정상적인 사고 방식은 그가 '살인마' 아사누마 쇼고라는게 밝혀지는 마지막 서술 트릭 장면과 엮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설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호도 앞 부분 미즈모토 유카 사건에서 "남편이 살인을 청부했다"고 말했던걸 설명하기 위해 등장시켰다고 할 수 있고요. 카호를 세이가 강간하려 했던 과정을 통해서, 그가 "믿어왔던 타인에 대한 절망"을 안겨주는걸 꿈꿔왔다는걸 드러내거든요. 이런 설명이 구태여 필요하지는 않았지만요....

그러나 노조미 이야기는 이렇게 독자가 이해해 줄 구석이 전무합니다. 특히 그녀의 사건 추적 때문에 실종된 카네다의 부친인 변호사가 현직 형사의 납치 살해를 교사한다는 설정은 최악이었습니다. 카네다의 부친이 이러한 대형 강력 범죄를 사주할 동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카네다가 미즈모토 유카 사건의 진범이라는건 이 시점에서는 밝혀지지 않았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를 납치해봤자 세간의 화제가 된 시체 찾기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시체 찾기가 성공하여 카네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한들, 카네다가 아사누마 쇼고가 살해한 유카 사건의 진범이라는 증거도 없고요. 변호사가 이런 기본적인 상황도 모른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노조미의 수사는 그 외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증거없이 직관에 의존하는 탓입니다. 애초에 3인조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던 근거부터가 제대로 알아볼 수도 없는 사진 한 장 뿐이었지요. 아사나무 쇼코의 '추억의 장소'도 인터넷 시체찾기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읽고 떠올린 직감에 불과하고요. 이 직감은 정말 황당한데, '아사누마 쇼코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여서' 신빙성을 느꼈다네요. 사건 수사 중인 형사가 사건의 결정적 단서를 'DC 인사이드의 사건 갤러리'를 읽다가 범인과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글에서 찾아냈다는 것과 똑같지요. 이렇게까지 막 나가면 정말 뭐라 할 말이 없어집니다.

소타 일행의 이야기도 세이가 주도했던 시체 찾기의 진상이 드러난 뒤 - 부정을 저지른 모친을 세이가 살해했는데 시체를 부친이 몰래 유기했다. 그 뒤 세이는 모친의 환청이 들려 시체의 목을 베려고 시체를 찾아나섰다 - 부터는 막 나갑니다. 세이가 니시얀과 소타를 시체 찾기에 끌어들인 이유부터 설명이 안되거든요. 작중에서는 미쳐버려서 어머니 시체를 찾아 목을 베려 했는데 , 혼자서는 힘들어서 동료가 필요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니시얀과 소타가 시체를 찾는데 특별히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던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장비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이 둘을 왜 데리고 갔을까요? 또 아무리 미쳤다 한들, 사람을 죽이면 벌을 받는다는 기본적인 사회적인 상식을 망각했을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니시얀과 소타도 같이 죽이려고 했던 걸까요? 만약 그랬다면, 범행이 발각될 가능성은 더 높아질텐데요?
게다가 니시얀의 희생으로 소타와 카호가 도주한 다음 이야기는 그야말로 가관이에요. 소타는 세이 모친의 시체를 발견했고, 모친을 세이가 죽였다는 것도 알고, 심지어 니시얀까지 죽었는데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습니다! 단지 무섭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자기를 구하려다가 친구가 죽었고, 살인자는 자기 얼굴을 알고 있는데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게 말이나 될까요? 니시얀도 단순 실종으로 처리된 이유를 납득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소타가 니시얀이 죽는 상황을 방치했던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둘 사이에 절벽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소타가 당시 경찰에 신고만 했어도 이후 8명의 여성은 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소타가 "어릴 때 겁쟁이였다는 것을 처벌할 법은 없다" 고 노조미의 말을 듣고, 니시얀의 할머니를 찾아가 위안을 얻는 에필로그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니시얀이 아니라 8명의 여성과 그 가족에게 사죄하고, 평생 죄의식을 갖고 살아가는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서술 트릭만큼은 괜찮았지만 그 외 다른 부분들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독자를 속이려다가 이야기가 산으로 가 버렸네요. 권해드릴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2/08/15

헌책방 스탭의 추천 - 정말로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설 50선

"'정말 아까운 (못타이나이)' 책방" 이라는 이름의 일본 중고 서점에서 선정한 랭킹입니다. 직원이 선정했다고 하네요.
일본 서점 직원이 갖추고 있는 책에 대한 지식은 상당하다는게 이런저런 컨텐츠에서 언급되어왔는데, 이 랭킹만 보면 조금 미묘합니다. 유명한 작품을 많이 꼽지 않은건 좋아요. 저도 읽어보지 못한 작품이 제법 될 정도니까요. 하지만 유명하지 않은건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제가 읽어보았던 몇 작품은 과연 랭킹에 언급될 정도인지? 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기며, 특정 작가 (키타야마 다케쿠니, 오네자와 호노부, 미치오 슈스케 등)에 대한 편애도 눈에 띕니다.
그래도 보석같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몇몇 작품들도 선정되어 있는 만큼, 일본 서점 직원의 실력을 믿고 아직 읽어보지 않은 몇 작품은 구해볼 생각입니다. 과연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트릭이 뛰어난 미스터리 소설
  1. <<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2. <<앨리스 - 미러 성 살인 사건>> 키타야마 다케쿠니 (국내 미출간)
  3.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4. <<조커 게임>> 야나기 코지
  5. <<악마의 공놀이 노래>> 요코미조 세이시

반전이 놀라운 작품 5선
  1. <<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
  2. <<가위남>> 슈노 마사유키
  3.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니시자와 야스히코
  4. <<이 어둠과 빛>> 핫토리 마유미 (국내 미출간)
  5.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쿠루미

학창 시절 특유의 감각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학원 미스터리 5선
  1.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츠지무라 미즈키
  2.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온다 리쿠
  3. <<빙과>> 요네자와 호노부
  4. <<죽은 자의 학원제>> 아카가와 지로 (국내 미출간)
  5. <<신님 게임>> 마야 유타카 (국내 미출간)

뒷맛이 상쾌한, 한모금의 청량제같이 읽고나서 상쾌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작
  1.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2. <<슬로하이츠의 신>> 츠지무라 미즈키
  3. <<샤바케>> 하타케나카 메구미
  4. <<언제나 아침에>> 이마무라 아이 (국내 미출간)
  5. <<퇴출 게임>> 하츠노 세이 (국내 미출간)

입문자에게 추천하는, 읽기 쉬운 단편집 5선.
  1. <<덧없는 양들의 축연>> 요네자와 호노부
  2. <<우리들이 성좌를 훔친 이유>> 기타야마 다케쿠니 (국내 미출간)
  3. <<술래의 발소리>> 미치오 슈스케
  4. <<GOTH>> 오츠 이치
  5. <<외침과 기도>> 시자키 유

상급자에게 권하는, 독서 후에 싫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이야미스 (싫은 미스터리) 5선.
  1. <<고백>> 미나토 가나에
  2.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3. <<보틀넥>> 요네자와 호노부
  4. <<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5. <<악의 교전>> 기시 유스케

SF와 미스터리가 융합한 신감각 5선.
  1.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2. <<여왕의 백년밀실>> 모리 히로시 (국내 미출간)
  3. <<인격전이의 살인>> 니시자와 야스히코
  4. <<클라인의 항아리>> 오카지마 후타리
  5. <<화성 다크 발라드>> 우에다 사유리 (국내 미출간)

왠지모르게 분위기와 세계관에 끌리는 다섯 작품
  1.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 미나가와 히로코
  2. <<성스러운 검은 밤>> 시바타 요시키
  3. <<클락성 살인사건>> 기타야마 다케쿠니
  4. <<백야행>> 히가시노 게이고
  5. <<광골의 꿈>> 교고쿠 나츠히코

명작만 모았다! 추천 해외 미스터리 소설 10선 (* 해외는 일본 기준)
  1.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2. <<바람의 그림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3. <<레베카>> 다프네 뒤 모리에
  4. <<차일드 44>> 톰 롭 스미스
  5. <<열세 번째 이야기>> 다이안 세터필드
  6. <<소피>> 거이 버트 (국내 미출간)
  7. <<모르그 가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
  8. <<라스트 차일드>> 존 하트
  9. <<사자의 서>> 조너선 캐롤 (국내 미출간)
  10. <<닫힌 책>> 길버트 아데어 (국내 미출간)

2022/08/14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마이클 코넬리 / 조영학 : 별점 2점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4점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속물 변호사 미키 할러는 운 좋게 거물 부동산 업자 루이스가 한 여성을 잔인하게 폭행했다는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되었다. 미키 할러는 루이스가 무죄라는걸 확신하여 변호에 임했지만, 어느 순간 루이스가 유죄일 뿐 아니라 과거 일어났던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루이스에 의해 조사원 라울이 살해당했고 유력한 증거마저 빼앗겼을 뿐 아니라, 라울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는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루이스는 이런 미키 할러를 협박하여 자신의 변호에 힘을 쏟게 만드는데....


마이클 코넬리의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엄청난 성공을 거둔 베스트셀러입니다. 매튜 매커너히 주연의 영화도 흥행에 성공했었고요. 작가가 생각했던 멋진 트릭과 설정을 아낌없이 쏟아붓기 때문에 시리즈의 경우는 첫 작품이 가장 뛰어난 경우가 많기도 하고, 이전에 읽었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에 대한 기억도 좋아서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완독했네요.

그러나 이 작품은 별로였습니다. 일단 미키 할러 캐릭터부터가 별로에요. 정의로운 변호사와 악덕 변호사 사이의 애매한 무언가로 그려져 있거든요. 조금 자세하게 설명드리자면, 미키 할러는 의뢰인들이 죄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무죄로 풀려나게 만드는데 빼어난 능력을 발휘하는걸로 묘사됩니다. "법은 진실과 아무 상관이 없고 타협과 개량과 조작만이 있을 뿐으로, 나 역시 무죄냐 유죄냐를 다루지 않는다" 면서요. 이 과정에서 "돈이 없으면 죄를 짓지 말라"며 엄청난 돈 욕심도 부립니다. 그렇다면, 루이스의 의뢰를 받아들일 때 그가 무죄임을 확신하고 변론에 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던대로 법의 헛점을 찾아내어 의뢰인을 빼내면 그만이지요.
같은 이유로 루이스가 연쇄 살인범이고, 미키 할러가 과거 사법 거래를 유도해 징역을 선고받게 만든 지저스 사건의 진범이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저스는 돈이 없었고, 루이스는 돈이 많으니까요. 피고만 풀려나게 해 주고 돈만 벌면 되지요.
게다가 앞서 여러 명의 마약 사범들을 무죄로 풀려나게 하는데에는 일말의 주저도, 양심의 가책도 보이지 않으면서 루이스에 대해서만 정의감을 불태우는 것도 앞 뒤가 맞지 않았어요. 이를 미키의 부친 말을 인용하면서 '무고한 사람'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는 식으로 포장하고는 있는데 이 정도로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물론 루이스가 라울을 살해했기 때문에 복수심을 갖는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는 미키 할러가 불필요한 정의감을 불태워 루이스의 뒷조사를 했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즉, 주객이 전도된 상황인 것이지요.
그 외 다른 캐릭터들도 별로인건 마찬가지입니다. 변태 연쇄 살인마 루이스에 대한 설정이라던가 미키 할러와 전처이자 검사 매기와의 관계 등도 진부했습니다. 특히나 루이스의 경우는, 다른 작품들 속에서 숱하게 등장해왔던 두뇌파 연쇄 살인마들과 흡사했을 뿐더러, 다소 뜬금없이 살인마라는게 밝혀져서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로 설득력있게 그려냈어야 했습니다.

이야기도 작위적인 전개가 많아서 잘 짜여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루이스가 진범이라는걸 알아차리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미키 할러는 옛 의뢰인 지저스 사건의 피해자 마사 렌테리아와 루이스 사건의 피해자가 "쌍둥이처럼 꼭 닮았다"는걸 알아채고 루이스가 진범이라는걸 확신합니다. 허나 두 피해자가 그렇게 닮았다는 것 부터가 비상식적이고 작위적이에요. 루이스가 미키 할러의 총을 훔쳐 라울을 살해할 때 사용했다는건 작위적인 설정의 끝판왕 격입니다. 총은 루이스가 미키를 옭아매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만약 미키 할러가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루이스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미키 할러를 협박할 생각이었을까요?
미키 할러의 작전도 치밀하지 못합니다. 고작해야 법정에서 밀고자의 입을 빌어 루이스가 과거 살인을 저질렀다는걸 드러내는 정도인데, 그 밀고자의 증언이 허술하다는건 이미 법정에서 미키 할러 자신이 증명해 버립니다. 경찰이 이 증언으로 보강 수사를 벌일 이유는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고요. 유력한 용의자였던 지저스가 사법 거래를 통해 이미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는걸 자백해버렸는데, 경찰이 다시 수사에 나설만큼 한가할리도 없고, 심지어 담당 형사는 미키 할러를 미워하기까지 하는데 왜 다시 수사를 벌일까요?
루이스의 범죄 행각도 왜 진작에 체포되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대충이었습니다. 루이스는 CCTV에 얼굴을 드러내고 당당히 피해자를 찾아가거든요.

그나마 전자 발찌로 모든 행적이 추적당하는 루이스가 어떻게 라울을 살해했는지? 에 대한 트릭은 하나만큼은 괜찮았습니다. 루이스의 어머니가 대신 범행을 저질렀다는 거지요. 상당히 설득력이 높을 뿐더러, 라울이 죽기 전 손가락으로 남긴 다이잉 메시지 - W, 즉 여자가 범인이다! 라는 것 - 와 연결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단점들이 더 많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이미 영상화가 되었으니, 소설보다는 영상화된 버젼을 보는게 더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네요.

2022/08/13

한산 : 용의 출현 (2022) - 김한민 : 별점 2점

 

그리 길지 않은 여름 휴가 기간 동안 가족끼리 감상하기 위해 선택한 영화. 딸 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이다보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그런대로 볼만하기는 했습니다. 마지막 한산 대첩 장면은 꽤 괜찮았고요. 거북선의 활약이 특히나 인상적으로 그려지는데, 고증의 정확도 여부는 모르겠지만 시원시원하기는 했습니다. 거북 머리를 집어넣을 수 있고, 2층으로 높이를 낮춰 대포에 잘 맞지 않도록 개량한 신형 거북선의 등장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전형적인 '비밀 무기'의 등장을 잘 그려낸 덕분입니다. 이를 위한 복선도 충실하고요.

하지만 그 외 장면, 특히 이야기 전개는 솔직히 아쉬움이 더 컸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각본에 문제가 많아요. 한산 대첩에 이르는 전 과정부터가 그러합니다. 전투 준비와 작전에 더 시간을 쏟았어야 했는데, 곁가지 이야기로 시간을 많이 낭비하거든요. 항왜 준사는 왜 나왔는지조차 모르겠고요. 이순신 장군에게 감화되어 투항한 뒤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데, 작품에서는 전혀 설득력있게 그려지지도 않고, 한산도 전투에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도 못하니까요. 마지막에 의병장과의 에피소드는 너무 뻔하고 억지스러워서 유치하기까지 했습니다. 정보름과 임준영의 세작 활동 이야기도 비중에 비하면 한산도 대첩과 별 관계가 없다는건 마찬가지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비중이 너무도 적고, 명장다운 모습을 거의 보이지 못한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시종일관 별 대사도 없이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휘하 장수들을 강하게 이끌지도 못하고, 학익진의 배치 정도만 내내 고민하는 것으로 그려져 도무지 명장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색무취의 박해일의 연기도 이러한 느낌에 큰 영향을 미치고요. 이와는 반대로 적장 와카자키는 작전을 수립하고 병력을 통솔하며 지휘하는 모습이 더 유능하게, 멋지게 그려지고 있는데, 왜 이렇게 묘사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마지막 한산 대첩도 볼거리는 많지만, 어영담 등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진을 유지하고 잘 버티고 있었던 와카자시가 갑자기 돌진한 까닭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건 문제입니다. 육지에서 승리를 거두었건 말건,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순신을 물리치고 빨리 명나라로 진군하려면 배가 반드시 필요했으니, 와카자시 입장에서는 구태여 무의미한 수전을 벌여 병력과 배를 잃을 이유는 없습니다. 계획대로 육군이 전라좌수영을 점령했다면, 버티다보면 갈 곳 없는 조선 수군이 불리한건 당연하니까요. 심지어 화력과 장비도 압도적 우위라고 보기 어려우니 당연히 제자리에서 버텼어야 합니다. 미끼 선박에 유인당한 뒤 많은 병력수를 믿고 조선 수군쪽으로 돌진했다는 원래 역사를 와카자시의 유능함을 드러내려고 억지로 바꾼 탓에, 설득력과 개연성이 날아가버린게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단점이 워낙 많아서 좋은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당시 해전을 실감나게 그려냈다는 점만큼은 괜찮았습니다.

오래된 책들 (10) - 대지옥전 진광대왕


이 카테고리로는 오랫만에 글을 올리네요. 오래된 책들 이야기 열번째는 국내 작품인 <<대지옥전 진광대왕>> 입니다.

이 작품은 김규홍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이 작품으로 공모전 대상을 수상한 뒤, 같은 설정으로 연재를 시작했다는 데뷰 스토리는 이명진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과 동일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명진의 작품은 제대로 완결되었지만, 이 작품은 연재 중이었던 잡지가 폐간되는 바람에 1권만 발간되고 소식이 끊겼다는 점입니다.

단행본 앞 부분에 공모전 대상을 수상했던 바로 그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완성도는 상당한 수준입니다. 대상 수상이 납득이 갈 정도로요. 옥황상제와 염라대왕 세력의 대결을 토대로 한 설정, 꽤 괜찮은 캐릭터 디자인에 더해 말하는 한자어와 공격을 결합시킨 독특한 액션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래의 '폭', '발' 같은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이후 작가가 발표한 희대의 히트작 <<마법 천자문>>으로 이어지게 되지요.



출간 당시 신간으로 구입한 뒤, 본가에 고이 모셔져 있던 작품을 오랫만에 발굴한 뒤, 기쁜 마음에 소개해 드리고 몇 자 적어봅니다.

호기심이 생겨 인터넷으로 중고가를 알아보았는데, 아예 매물 자체가 없어서 놀랐습니다. 매물은 물론이고 거래나 중고 서점 등록 기록 자체가 없는 90년대 이후 작품은 정말 처음 봤습니다. 안 팔리기는 정말 안 팔렸나 본데, 희귀한건 명백한 사실이니만큼 고가의 가격이 형성되어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해봅니다. 과연 얼마에 팔 수 있을까요?

2022/08/07

추리 소설 1,100번째 리뷰 등록


추리 소설 리뷰는 2003년 2월 23일 <<빙설의 살인>>에서부터 시작했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 8월 7일 오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1,100번째 추리 소설 리뷰글이 되었네요.

기념할만한 1,000번째 리뷰였던 <<주석달린 셜록 홈즈 6>을 올린 날짜가 2021년 1월 23일이었으니 100편의 리뷰를 추가하기까지는 1년 7개월, 19개월 정도 걸렸군요. 한 달에 추리 소설만 5권 조금 넘게 읽은 셈입니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2,000개의 추리 소설 리뷰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 볼 생각입니다. 사실 읽는건 문제없는데 리뷰를 쓰는게 힘들지는 합니다. 블로그를 계속할 동력도 사실 거의 없고요.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계속 힘 내 봐야죠.
한 달에 5권 정도면, 900편의 리뷰에는 180개월 걸린다는 이야기인데, 그 전에 이글루스 서비스가 중지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크긴 합니다만...

하여튼 그동안 블로그에 찾아주시고, 관심과 댓글로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마지막으로 그림은 11년 전 EST님이 보내주셨던 <블로그 6주년 축전>을 이용한 것인데, EST님께는 특히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추리 소설 1,000번째 리뷰 등록!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 김선형 : 별점 2.5점

가재가 노래하는 곳 - 6점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살림

<<아래 리뷰에는 트릭과 진상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부 노스캐롤라이나 슾지대에서 태어난 카야는 엄마와 언니, 오빠들, 마지막으로 아빠마저 집을 떠나 어린 나이에 홀로 남겨졌다. 하지만 카야는 어린 나이와 마을에서는 '마시 걸'이라고 불리우며 차별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살아 남았다. 놀라운 생존 본능과 흑인 점핑, 그리고 첫 사랑 테이트의 도움 덕분이었다. 심지어는 글을 깨우친 뒤 독학으로 슾지에 대한 여러가지 연구를 진행하며 책까지 출간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테이트와의 이별, 첫 남자 체이스에게 배신당하는 아픔도 겪었다.
몇 년이 지나 돌아온 체이스는 그녀를 강간하려 시도했고, 카야는 겨우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뒤, 체이스는 망루에서 떨어진 시체로 발견되었고, 카야는 유력한 용의자로 법정에 서게 되는데...


일전에 소개해드렸던 랭킹에서 해외 미스터리 걸작 베스트 10에 당당히 선정되어 있기에 궁금한 마음에 읽어보게 된 작품입니다. '버려진 아이'인 카야가 테이트와 점핑의 도움만으로 훌륭한 늪지대 전문가로 성장한다는 낭만적인 성장기와 체이스 살인 사건이 병행해서 전개됩니다.
초반부 어린 카야 시점에서의 여러가지 묘사들과 성장기스러운 분위기,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에 대한 엄청난 디테일 - 제목부터가 엄청난 오지인 노스캐롤라이나 늪지대를 의미합니다 - , 특히 1950년대 후반부터 재판이 있던 1970년까지 난무했던 인종 차별, 여성 차별, 편견이 난무했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 대한 묘사와 이야기의 절정 부분이 법정 장면이며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함께 펼쳐진다는 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 <<앵무새 죽이기>>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작품인건 분명합니다. 성장기 측면에서는 이 작품 쪽이 더 볼만한 부분이 많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여러가지 남부 요리들에 대한 묘사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그리츠'가 기억에 남습니다. 옥수수 가루로 만든 죽인데, 처음에는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먹는 형편없이 빈약한 일상식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거의 40여년이 흐른 뒤에는 관광지의 별미처럼 격상하는게 재미있었어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보릿고개 때 소나무 껍질로 만들어 먹다가 지금은 지역 명물 별미가 된 송기떡 같은 경우겠지요? 그 외의 음식들 묘사도 그럴듯했습니다.
카야를 도와준 몇 안돼는 지인인 흑인 점핑과 메이블 가족과의 에피소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카야의 첫 책이 출간되었을 때, 당시 시대 분위기 때문에 서로 포옹하지는 못했지만 두 손을 꼭 감싸쥐었다가 돌아서서 떠나는 장면은 많은걸 생각하게 해 주었어요.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애매합니다. 디테일의 끝판왕이기는 한데, 한 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인간 관계부터 그러하지요. 어린 카야만 남겨두고 엄마부터 시작해서 언니, 오빠들이 집을 떠난 뒤 아예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는건 쉬이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카야의 아빠를 비롯, 조디 오빠, 테이트, 체이스 등 카야 주변의 모든 백인 남자는 모두 한 번씩 카야를 버렸다는 일관된 설정도 영 별로였습니다. 카야가 체이스같은 인간 쓰레기에게 손쉽게 농락당하는게 특히나요. 전혀 카야스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카야는 늪지 생태계에 대한 상세한 관찰을 통해, 암컷이 수컷을 짝짓기와 먹이로 이용하는 방법을 이미 통달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수컷은 무가치하며, 암컷들을 전전하며 거짓으로 암컷을 유혹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요. 그렇다면 본능적인 팜므 파탈로, 체이스의 등골까지 뽑아먹는 악녀로 묘사되는게 더 설득력이 높지 않았을까요? 단지 암컷으로서의 본능 때문에 체이스의 유혹에 넘어간다는건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추리물로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알리바이 트릭만큼은 괜찮았습니다. 카야가 빠듯한 시간 안에 망루에 도착해서 체이스를 살해할 수 있었던 건, 그 지역의 '이안류'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는 트릭인데, 전문적이면서도 설득력도 높았으니까요. 그 지역에서 보트만 십 년 넘게 따온 카야라면 쉽게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할만큼 카야에 대한 배경 설정은 완벽한 편이기도 하고요.
마침 사건 당일 출판사로 출장을 떠났던 카야가 도심이 아니라 버스 정류장 근처 호텔에 숙박했었던 등의 요소도 잘 짜여져 있습니다. 검사측 주장대로 걸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자연에서 지내다보니 도심 속 호텔을 싫어했으리라는 것도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버스에는 카야와 체형이 흡사한 승객이 탑승했었다는 일종의 변장 트릭도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고요. 현실적이라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과연 카야가 법정에 피고로 서서 유죄 판결을 받을만 했나? 라면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 법정 추리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녀가 체이스를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단 하나도 없는 탓입니다. 체이스 옷에 그녀의 모자 섬유가 묻어 있었던건 사건 당일 묻었다고 볼 근거가 없고, 체이스 살해 현장으로 그녀가 이동했다고 확신하는 증인도 없습니다. 아니, 그녀가 체이스 살해 현장으로 시간 맞춰서 이동이 가능했는지조차 검사는 증명할 수 없었지요. 게다가 이 모든게 사실이라서 그녀가 망루에서 체이스를 만났다 한 들, 그녀가 체이스를 밀쳐 떨어트려 살해했다는 증거 역시 없습니다. 즉, 제대로 정신이 박힌 배심원이라면 그녀가 유죄라고 판단할리 없어요.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배심원들의 편견인데, 마침 배심원 중에는 그녀에게 호의적인 사람들도 있었다는 설정이니 그녀가 무죄로 풀려나는건 당연합니다. 카야가 흑인은 아니지만, 비슷한 편견 때문에 유죄를 받는 식으로 흘러갔다면, 그건 그야말로 <<앵무새 죽이기>>의 복제에 불과했을테고요.

카야가 체이스의 목걸이를 풀어 가져간 이유를 제대로 설명 못하는 약점도 거슬렸습니다. 목걸이가 남아있었더라면 그냥 사고사로 처리되었을 겁니다. 게다가 그 목걸이를 아무리 잘 숨겨 놓았다 하더라도 집 안에 숨겼다? 완전 범죄물로 보기 힘들 정도의 큰 결격 사유에요. 완전 범죄를 계획했던 범인이 자기 집에 결정적인 증거를 가져다 놓는건 아무리 봐도 말이 안됩니다. 이는 진상을 어떻게든 드러내기 위한 억지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카야가 죽은 뒤, 그녀와 결혼한 테이트가 집 안 비밀 장소에서 목걸이와 카야가 쓴 글을 찾아내어 진상이 드러난다는 결말도 식상했고요.

즉, 법정 미스터리나 완전 범죄 추리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기에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낭만적인 성장기로는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다소 진부했고, 추리물로서도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역대 서양 미스터리 베스트 10 중 한 작품으로 꼽힐 작품은 아니에요. 그래도 한 번 읽어볼만한 작품인건 맞습니다. 이런 류의 랭킹은 불신이 더 컸었는데, 가끔은 참고할만 하네요.

2022/08/06

미스터리 클락 - 기시 유스케 / 이선희 : 별점 1.5점

 

미스터리 클락 - 4점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창해

<<아래 리뷰에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시 유스케의 에노모토 케이 시리즈 단편집. 모두 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철저하게 '밀실'을 테마로 삼고 있는, 제대로 된 정통 본격 추리 단편들입니다.

그러나 재미도 없고, 대체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본격 추리물임에도 독자가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는 단점이 가장 큽니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첫 번째 수록작인 <<완만한 자살>>입니다. 꽁꽁 잠긴 밀실 안에서 총을 입에 대고 쏘아 죽은 시체가 발견됩니다. 에노모토 케이가 밝혀낸 진상은 범인이 실제 총과 똑같이 생긴 물총 안에 위스키를 넣고 입 안에 쏘아 넣는 모습을 보여준 뒤, 진짜 총으로 바꿔치기 해서 일종의 자살을 유도했다는 거지요. 일단 공정성 면에서는 빵점입니다. 독자에게 제공되는 단서는 피해자가 알코올 중독이었다는 것, 그리고 방 안에 감돌았던 위스키 향기밖에는 없거든요. 이 정도로 저 진상을 추리해는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그렇지, 진짜 총과 똑같이 생긴 물총이라는 트릭은 너무 했어요. 아주 오래 전 "거꾸로 들고 쏘면 되는 총"이 등장하는 이현세의 망작이 있었는데, 이 트릭은 그보다도 엉망입니다.
<<거울 나라의 살인>>에서는 미로의 여러 장치들과 편광 유리를 활용하여 CCTV를 속이는 트릭, <<미스터리 클락>>에서는 정교하게 시계에 덧대어 붙인 장치 트릭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들 역시 정보 제공이 공정하지 않습니다. <<거울 나라의 살인>>에서 미로의 인형 얼굴이 볼록한지, 오목한지라던가 CCTV의 위치와 거울과의 관계, 그리고 <<미스터리 클락>>에서 시계에 덧붙인 장치는 글로는 트릭을 알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각 정보가 핵심인 탓입니다. 소설보다는 영상물이나 만화에 사용되었어야 할 트릭이에요. 독자가 추리할 수 있는 여지는 없습니다. 이런 장치 트릭들은 너무 정교해서 범인 의도대로 잘 동작했을 것으로 보기도 힘들고요.

또 트릭에만 집중한 탓에 이야기들의 설득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문제도 큽니다. 예를 들어 <<거울 나라의 살인>>에서는 미술관 관장이 살해당한건 완벽한 밀실로 보였지만, 경찰은 에노모토 케이가 밀실을 뚫고 잠입했다는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계획살인이었다면, 이 세상 어느 바보가 자기 외에 범행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고 사람을 죽이겠나?"라며 에노모토 케이 대신 다른 범인을 찾습니다! 하지만 이건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범인 에노모토 케이가 CCTV가 숨겨져 있어서 자기가 찍히는 줄 모르고 불가능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는게 당연합니다. 당장 에노모토 케이를 체포해야 했어요.
<<미스터리 클락>>은 범인 도키자네가 직접 범인을 잡겠다며 참석자들을 협박한다는 전개 자체는 그럴싸했습니다만, 동기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부유하고 성공한 아내를 남편이 살해하는건 보통 돈과 다른 여자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서 도키자네는 다른 여자가 있다거나, 돈에 그렇게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내 레이코는 도키자네를 깊이 사랑하는 것으로 묘사되고요. 사건이 일어날 개연성, 즉 와이더닛 측면에서의 설명이 전무하고 하우더닛후더닛에만 집중했는데 완성도 측면에서 썩 좋은 결과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네요.
만화적인 설정과 묘사들이 많은 점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미스터리 클락>에서의 휴대폰 통화도 되지 않는 오지의 저택에서 고가의 시계 순서 맞추기 게임을 한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캐릭터 묘사 역시 문제가 많은 편이에요. <<거울 나라의 살인>>에서의 안면 인식 장애가 있는 앨리스 전문가처럼요. 준코 변호사가 살인 사건이 벌어진 심각한 상황에서 본인의 억지 추리를 말했다가 놀림거리가 되는 역할로만 묘사되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안티 히어로같은 존재인 에노모토 케이의 매력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합니다.

그나마 마지막 수록작 <<콜로서스의 갈고리 발톱>>은 괜찮았습니다. 특히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보트가 일종의 밀실과 같다는 독특한 설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살해했던 근처 어디에서도 접근하는 사람이나 배는 없었다는게 소나 관측으로 증명되었거든요. 하지만 바닷 속에서 올라오는 것 까지는 탐지할 수 없었던 소나 관측의 헛점과 기압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을 역이용했던 트릭도 나쁘지 않았어요. 과거 나기사를 동갈치에 찔려 죽였던 것으로 위장했던 사건의 트릭까지 함께 밝혀지는 등 추리적으로 풍성하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하지만 굉장히 특수한 장치 (잠수복)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좋은 트릭이었는지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이런 전문적인 장치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면 독자가 풀어낼래야 풀어낼 수 없었던 트릭이니까요. 즉, 독자가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는건 다른 작품들 단점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트릭에만 매몰되어 이야기 완성도가 떨어지는데, 그 트릭마저도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이제 이 시리즈도 그만 읽어봐야 겠습니다.

2022/08/05

영국 추리작가 협회 (CWA) 선정, 사상 최고의 추리소설 100선 (The Top 100 Crime Novel)

영국 추리작가 협회 (The Crime Writers' Association: CWA)에서 1990년 발표했던 사상 최고의 추리소설 100선 (The Top 100 Crime Novels of All Time) 입니다.
2022년 현재 시점에서 국내 미 출간작은 회색으로 처리하였습니다. 국내 출간작은 모두 59편입니다. 대부분의 출간작이 상위 50위 이내 (43편) 집중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상위권에 유명 작품이 더 많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몇 년 전에 미국 추리작가 협회 (MWA) 선정 베스트 미스터리 100을 소개해 드렸던 적이 있는데, 비교해서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특히 MWA에서는 1위로 꼽은 셜록 홈즈 시리즈 순위가 낮은게 가장 의외였어요. 세 편 선정된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중 <<마지막으로 죽음이 온다>>가 다른 유명 걸작들을 능가하는 작품인지는 살짝 의심스러웠고요. 미국 작품은 하드보일드 계열만 주로 선정한게 의도인지도 궁금합니다.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 중에서는 도로시 L 세이어스의 <<학원제의 밤>>이라던가,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사라진 완구점>>, 마저리 엘링엄의 작품 등이 눈에 뜨이는데, 언젠가는 국내에 출간되면 좋겠네요.

1위 <<진리는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2위 <<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3위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존 르 카레
4위 <<학원제의 밤>> 도로시 L 세이어스
5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6위 <<레베카>> 다프네 뒤 모리에
7위 <<안녕 내 사랑>> 레이먼드 챈들러
8위 <<월장석>> 윌키 콜린스
9위 [[the ipcress file]] 렌 데이튼
10위 <<몰타의 매>> 대실 해밋
11위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조세핀 테이
12위 <<실종 당시의 복장은>> 힐러리 워
13위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14위 <<로그 메일>> 제프리 하우스홀드
15위 <<기나긴 이별>> 레이몬드 챈들러
16위 <<살의>> 프랜시스 아일즈
17위 <<자칼의 날>> 프레드릭 포사이스
18위 <<나인 테일러스>> 도로시 L 세이어스
19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20위 <<39계단>> 존 버컨
21위 <<셜록 홈즈의 모험>> 아서 코난 도일
22위 <<살인은 광고된다>> 도로시 L 세이어스
23위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애드거 앨런 포
24위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에릭 앰블러
25위 <<사라진 완구점]] 에드먼드 크리스핀
26위 [[Tiger in the smoke]] 마저리 엘링엄

27위 <<가짜 경감 듀>> 피터 러브시
28위 <<흰 옷의 여인>> 윌키 콜린스
29위 [[A Dark-Adapted Eye]] 바바라 바인
30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제임스 M. 케인
31위 <<유리 열쇠>> 더쉴 해밋
32위 <<배스커빌 가의 개>> 아서 코난 도일
33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존 르 카레
34위 <<트렌트 마지막 사건>> E.C 벤틀리
35위 [[From Russia with Love]] 이언 플레밍
36위 <<경관 혐오>> 에드 멕베인
37위 <<제리코의 죽음>> 콜린 덱스터
38위 <<낯선 승객>>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39위 <<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40위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41위 <<독 초콜릿 사건>> 앤서니 버클리
42위 <<성녀의 유골>> 엘리스 피터스
43위 <<죽음의 혼례>> 엘리스 피터스
44위 <<죽음의 키스>> 아이라 레빈
45위 <<재능있는 리플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46위 <<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47위 <<호수의 여인>> 레이먼드 챈들러
48위 <<무죄 추정>> 스콧 터로우
49위 <<내 눈에 비친 악마>> 루스 렌들
50위 <<벨벳의 악마>> 존 딕슨 카
51위 <<치명적 반전>> 바바라 바인
52위 [[The Journeying Boy]] 마이클 이네스
53위 [[A Taste for Death]] P.D. 제임스

54위 <<독수리는 날개치며 내렸다>> 잭 히긴스
55위 [[My Brother Michael]] 메리 스튜어트
56위 [[Bertie and the Tin Man]] 피터 러브지
57위 [[Penny Blac]] 수전 무디
58위 [[Game, Set & Match]] 렌 데이튼
59위 [[The Danger]] 딕 프란시스
60위 [[Devices and Desires]] P.D. 제임스
61위 [[Under World]] 레지널드 힐
62위 [[Nine Coaches Waiting]] 메리 스튜어트
63위 [[A Running Duck]] 폴라 고슬링
64위 [[smallbone deceased>> 마이클 길버트
65위 [[The Rose of Tibet]] 라이오넬 데이비슨
66위 [[Innocent Blood]] P.D. 제임스

67위 <<맹독>> 도로시 L 세이어스
68위 [[Hamlet, Revenge!]] 마이클 이네스
69위 <<시간의 도둑>> 토니 힐러먼
70위 [[A Bullet in the Ballet]] Caryl Brahms & S. J. Simon
71위 [[Deadheads]] 레지널드 힐

72위 <<제3의 사나이>> 그레이엄 그린
73위 [[The Labyrinth Makers]] 앤서니 프라이스
74위 [[the quiller memorandum>>애덤 홀

75위 <<내안의 야수>> 마거릿 밀러
76위 [[The Shortest Way to Hade]] 새러 코드웰
77위 <<질주>> 데스몬드 배글리
78위 [[Twice Shy]] 딕 프란시스
79위 [[The Manchurian Candidate]] 리처드 콘돈
80위 [[the killings at drift>> 캐롤라인 그래험

81위 <<야수는 죽어야 한다>> 니콜라스 블레이크
82위 <<고르키 파크>> 마틴 크루즈 스미스
83위 <<마지막으로 죽음이 온다>> 애거서 크리스티
84위 <<녹색은 위험>>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85위 [[Tragedy at law]] 시릴 헤어
86위 <<콜렉터>> 존 파울즈
87위 <<기데온과 방화마>> J.J. 매릭
88위 <<대통령의 유산 The Sun Chemist>> 라이오넬 데이비슨
89위 <<나바론 요새>> 알리스테어 맥클린
90위 [[The Colour of Murder]] 줄리안 시몬즈
91위 [[Greenmantle]] 존 버컨

92위 <<모래톱의 수수께끼>> 어스킨 칠더스
93위 [[wobble to death>> 피터 러브지
94위 <<붉은 수확>> 더쉴 해밋
95위 [[The Key to Rebecca]] 켄 폴렛트
96위 [[Sadie When She Died]] 에드 멕베인
97위 [[The Murder of the Maharajah]] H.R.F. 키팅
98위 [[What Bloody Man Is That?]] 사이먼 브렛
99위 [[Shooting Script]] 게빈 라이얼

100위 <<네 명의 의인>> 에드거 월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