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존 르카레 지음, 이종인 옮김/열린책들 |
수십 년 전 모스크바는 영국 정보부 내에 자신들의 스파이를 심어 놓는다. 그리고 지금 그 스파이는 정보부 최고위직에 올라 있다. 모든 작전이 그로 인해 수포로 돌아가고, 중요한 정보망은 그대로 노출되는 상황이다. 혐의자는 정보부장을 포함한 최고위 간부 네 명. 과연 그중 스파이는 누구인가? 은퇴한 정보부 요원 조지 스마일리는 어떤 동료도, 그 누구도 믿지 못할 상황에서 혼자 힘으로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책 소개에서 인용)
존 르 카레의 냉전시대를 무대로 한 유명한 스파이 소설입니다. 썩 좋아하는 쟝르는 아니지만 이 책은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책 중 한권이기에 출간된지는 좀 오래되었지만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일단 좋은점 부터 이야기하자면 우선 유명세만큼이나 무시무시한 디테일은 확실히 대단한 수준이었습니다. 조직의 구성과 각종 직책의 명칭에서 시작해서 실제 작전과 임무에 대한 설명은 소설이 아니라 르포를 보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심지어는 저자가 "창조한" 용어가 나중에 실제 정보기관에서 쓰이는 일상용어가 되었다라는 이야기까지 있으니 거의 이쪽 용어를 확립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서커스", "두더쥐", "램프라이터", "베이비시터" 등이 있겠죠.
두번째로는 스파이 답지 않은 조지 스마일리라는 돋보이는 주인공 캐릭터를 들고싶네요. 대니 드 비토를 연상시키는 키가 작고 땅딸막한 외모에 액션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로 (TV 드라마에서는 알렉 기네스가 맡아 연기했다고 하는데 비쥬얼적으로는 미스 캐스팅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내에게마저 버림받은 비참한 존재, 한마디로 하찮은 동네 아저씨지만 그 정체는! 영국정보부에서도 나름 다섯손가락안에 꼽히는 거물 스파이라는 것! 모종의 이유로 은퇴한 이후에도 정부의 부름을 받고 홀로 엄청난 작전을 수행한다는 설정은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가 연쇄살인범이라는 이야기와 왠지 비슷한 맥락이랄까요. 돌아온 제5전선 (미션 임파서블) 간지도 좀 나고 말이죠. 배우는 비록 대니 드 비토나 정현돈이겠지만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그다지 와 닿지도 않는 이야기라 개인적으로 몰입해서 읽기는 좀 힘들었습니다. 냉전이 끝난 것도 10년도 훨씬 더 전이니 당연하겠죠. 장점이기도 한 디테일한 묘사 역시 대단한 수준을 넘어서서 너무 장황했다 느껴졌고요. 물론 이러한 묘사에서 후대에 인정받는 문학적 성취가 있었겠지만 지나치게 길 뿐더러 불필요한 심리묘사 등이 너무 많았습니다... 또한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이중 간첩의 정체를 밝혀내는 이야기가 정교하거나 세련된 복선도 없고 추리적 요소 역시 전무한 상태로 단지 주인공 스마일리의 여러가지 조사와 심문, 그리고 자백에 가까운 녹취에 의해 밝혀진다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했기에 나름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제가 기대한 것과 너무 달라서 실망스러웠어요. 약간의 추리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굉장히 미미한 수준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기에는 역부족이었고요.
한마디로 지금 시점에서 보기에는 크게 흥미롭지도 않은 작전을 무려 500여 페이지로 기록해 놓았을 뿐으로, 저자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처럼 스파이 작전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을 대변하는 묵직한 주제의식이라도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나마도 없어서 저에게는 실망이 조금 더 컸던, 알고있던 명성에는 값하지 못한 작품이었습니다. 스마일리와 동료들의 권력과 돈 앞의 쇠락한 모습이 현실적인 부분을 대변하기는 하겠지만 역시나 상식선에서 그치는 뻔한 묘사였으니까요. 아무래도 저는 스파이 소설하고는 잘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드는군요. 스파이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바이블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하나, 확실히 지금 읽기에는 확실히 너무 낡아버린 주제와 낡아버린 이야기인것 같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ps : 전 제목이 주인공들의 직업이라 생각했었는데 읽고보니 일종의 암호-코드명이더군요. 요거 하나는 참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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