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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3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엮음 / 이규원 : 별점 4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상 - 8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마쓰모토 세이초 선생  (이후 "선생" 생략) 의 계승자이자 애호가로도 유명한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 여사 (이후 "여사" 생략) 가 직접 선정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입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야 뭐 추리 애호가는 누구나 알만한 거장이죠. "일본 사회파"라는 쟝르의 창시자이기도 하고 말이죠. 제가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점과 선" 이었고, 그 이후 하서 출판사 판본을 통해 "제로의 촛점", "모래그릇" 등을 차례로 읽었고 그 이후 비교적 후기작품인 "나비성"이나 "적색등" 같은 작품까지, 국내 출간된 장편은 거진 다 읽어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명성과 작업량에 비해 국내 출간된 작품이 수가 적고, 또 단편은 극히 드물어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친절한 해설과 짤막한 감상,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이 일정한 기준으로 선정되어 실려있는 풍부한 구성이라 읽고난 후에도 만족이 큰 단편집이었습니다. 거장의 방대하고 어마어마한 작품세계를 알짜배기만 쏙쏙 뽑아 읽는 기획인지라 나름 공부도 된 것 같아 좋더군요.

이 단편 컬렉션 상권은 전부해서 4개의 큰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주제별로 조금 자세히 이야기해 본다면,

일단 제 1장인 "거장의 출발점" 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초기작으로 추리소설은 아닌 순문학 작품 2편이 실려 있습니다. 특히 데뷰작이자 아쿠타카와 상 수상작이라는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은 가슴이 먹먹해 지는 이야기 구성은 물론 문체나 자료 조사 등 모든 부분에서 역시나 대단함을 느끼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어느 창녀의 죽음" 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두번째 작품인 "공갈자" 역시 좋은 작품이고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감이 있고 탈옥에 관련된 내용이 반전같이 등장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너무 생각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별로 상상의 여지가 없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뭐... 어차피 주제에 맞게 초기작 중에서 선정한 것이니 제 기대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었겠죠. 추리물이 아니기도 하니까요.

2번째 장인 "My Favorite"는 미야베 미유키가 마음에 들어한 추리소설 4편이 실려 있습니다. "사화파"의 창시자답게 본격 정통 추리물들은 아니지만 충분히 설득력있고 지금 읽어도 그럴 듯한 트릭과 설정들이 등장하는, 그야말로 거장의 아우라를 느끼기에 충분한 좋은 작품들이 실려 있네요.
제일 먼저 등장하는 작품은 굉장히 신선하고 독특할 뿐 아니라 지금 읽어도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일 년 반만 기다려"입니다. 이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도 해설에서 절찬하고 있는데 확실히 찬사가 아깝지 않은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주로 1인칭으로 그려지는 전개도 독특했고 말이죠. 유사한 설정의 작품인 다카키 아키미쓰의 "살의"와 비교해 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다시 찾아봐야겠네요.
그리고 이어지는, 아주 단순한 단서에서 비롯되는 무서운 진상이라는 주제를 잘 표현한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 도 좋았습니다. 사실 저는 이 작품이 저는 "일 년 반만 기다려" 보다도 더 낫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로 사소한 부분에서 불거지는 추리의 과정이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설득력 역시 충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의 전체 단편을 통틀어 유일하게 "탐정" 역할이 등장하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이런 고전적인 요소를 무척 좋아라 하니까요.
세번째 작품인 "이외지리"의 경우는 섬뜩한 맛이 일품인 단편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에도 시절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소재로 하였기에 미야베 미유키의 "혼죠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느낌도 살짝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요소는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순전히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에도 취향이 반영된 선정이 아닐까 의심되기는 합니다...
4번째 작품인 역사추리물 "삭제의 복원" 의 경우에는 1장에 실려있던 "어느 <고쿠라 일기>전"과 연결되는 소재, 즉 일본의 문호라는 오가이의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치는 형식의 작품인데 역사추리물로의 완성도는 높지만, 오가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흥미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쉽더군요. 소재에 대한 흥미가 제로인지라... 만약 따로 출간되었더라면 구태여 찾아 읽지 않았을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오가이"라는 인물에 대해 흥미가 생긴 것 정도가 수확이네요.

3번째 장인 "노래가 들린다, 그림이 보인다" 는 제목 그대로 노래와 그림에 대한 추리 단편 두편이 실려있습니다. 노래와 그림을 소재로 추리소설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일종의 모범 답안 같은 작품들이랄까요?
"수사권외의 조건"은 과거의 히트곡을 테마로 한 단편으로, 누구나 아는 히트곡이지만 시간은 좀 흐른, 그래서 그 노래가 인상에 깊이 남는 상황을 잘 짚어낸 작품이었습니다. 90년대 후반에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듀엣으로 흥얼거리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확실히 엄청 튈것 같기는 합니다.^^
두번째 단편인 "진위의 숲"은 길이가 제법 긴, 단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작품으로 그림 위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결말이 좀 시시하고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는 추리적 요소가 부족한, 범죄-사기물이긴 하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작가의 새로운 면을 접한 것 같아 굉장히 신선하기도 했고 워낙에 소재가 독특해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갤러리 페이크"의 한 에피소드를 읽는 기분이었달까요? 그러고보니 이 작품의 주인공도 엘리트지만 현재 일본 미술계에서 왕따가 되어버렸다는 측면에서 후지타 레이지와 왠지 겹쳐보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인 제 4장 "‘일본의 검은 안개’는 걷혔는가" 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많은 논픽션 시리즈 작품들 중에서 쇼와사 발굴이라는 주제의 2.26 사건 (군부 쿠데타 미수 사건) 관련 글, 그리고 전후 일본의 이른바 "추방"과 "레드퍼지 (좌익 세력 말살) 를 다룬 글, 이렇게 두편의 논픽션을 골라서 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별 재미가 없어서 대충 읽어버렸네요.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애시당초 별 관심 없는 분야였거든요. "추방과 레드퍼지" 편은 해방 직후 우리나라 상황과 오버랩되는 재미는 좀 있었지만 뭐 그뿐이었습니다. 다양한 쟝르에 손을 댄 "거장" 의 대표작을 엄선했다는 작품집 취지 탓에 당연히 포함된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논픽션 대신 추리단편을 더 실어주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 같아요. 마쓰모토 세이초의 히트 논픽션인 "일본의 검은 안개" 라는 시리즈 물 제목에서 "검은 안개"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정도만 새롭게 다가온 정도입니다.

덧붙여, 4개의 주제가 모두 끝난 뒷부분에는 마쓰모토 세이초와 같이 일했던 편집자 3인의 짤막한 추억담이 실려있습니다. 일종의 부록같은 느낌인데 거장이 편집자에게 시키는 "자료조사" 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더군요. 앞서 말했던 "고증"과 "자료조사" 가 중요한 이야기들의 방대하고 치밀한 조사 내용을 볼 때. 편집자들의 노고가 느껴져 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입니다. 지금이야 인터넷 등으로 업무가 좀 편해졌을 것 같은데 60~70년대의 자료조사는 정말 발로 뛰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을테니... 편집자들의 고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또 이렇게 편집자를 부려먹을(?) 수 있는 "거장"의 "당당한 작업 태도" 는 부러울 따름이고요. 쩝.

결론적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기획과 구성은 물론 선정된 작품 거의 대부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죠. 친절한 해설과 미야베 미유키의 짤막한 감상도 무척 좋았기에 이어질 다음 권들도 기대가 아주 큽니다. 책의 디자인도 그럴듯 했고 말이죠. 3권이 연달아 꽂혀 있는 책장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네요^^ 개인적 베스트는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 를 뽑겠습니다.

PS :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표작들의 다양한 영상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구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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