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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스시도감 - 보즈콘냐쿠 / 방영옥 : 별점 2.5점

스시도감 - 6점
보즈콘냐쿠 지음, 방영옥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321개에 달하는 스시 (초밥)를 재료별로 고퀄리티의 사진과 각종 정보와 함께 저자의 평을 곁들여 한 페이지, 또는 반 페이지로 구성하고 있는 제목 그대로 스시 도감입니다.

재료에 대해 간략하지만 필수적인 정보 (제철, 어떻게 먹으면 맛있는지 등)가 잘 정리되어 있으며 "최고가", "고가", "보통", "저가" 로 구분하여 명확한 값어치를 알려주는 식으로 유용한 정보도 많아요.
무엇보다 재미 요소는 만화나 각종 컨텐츠에서 접해보기만 했지 실제로 보거나 먹어본 적은 없는 신기한 재료와 초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맛의 달인>> 에서 이사무가 먹고 눈물을 흘렸던 청새치 초밥이라던가, 역시나 <<맛의 달인>> 에서 생선을 착각해서 망신당할 뻔한 오오하라 사장을 구해주는 에피소드에 등장한 자바리 (구에) 로 만든 초밥 등등 이름만 친숙한 재료가 가득합니다.
또 이런 것도 초밥으로 먹나? 싶은 재료도 눈에 뜨입니다. 회로도 먹기 힘든 다금바리라던가, 군대에서 가장 저렴한 반찬으로 등장했던 임연수어 등이 그러하죠.

이렇게 많은 초밥 중 맛보고 싶은 걸 몇 개 꼽아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자가 천년에 한 번 맛볼 수 있는 진미라는 황적퉁돔 (센넨다이) 초밥, 결점이 없는게 결점이라고 할 정도로 완벽할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한 편인 청황돔 (고로다이) 초밥, 재산을 탕진할 정도로 맛있다는 쥐노래미 (아이나메) 초밥, 태평양의 최고급 새우로 초밥 1개 가격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서 어시장에서도 '살면서 한 번쯤 초밥으로 먹어보고 싶다'는 포도 새우를 우선 꼽고 싶네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단골 초밥집에 들러서 "오늘은 포도 새우 하나 쥐어 주세요"라고 말할 때가 오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모든 분들이 재미를 느낄만한 책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책을 들고 다니면서 어디서든 유용하게 찾아보라고 소프트 양장 실 제본 방식으로 제작했다는 책 소갯글을 보면 초밥을 먹으면서 한 장씩 내용을 찾아보고 감탄하며 정보와 함께 진짜 맛을 음미하도록 하는게 주 용도가 아닌가 싶군요. 아니면 초밥집에 비치해 놓던가요. 하지만 휴대하기에는 조금 크고 무겁다는 점은 좀 아쉽습니다. 차라리 문고본 사이즈였다던가 이 책의 정보를 바탕으로 초밥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면 훨씬 나았을 것 같아요. 조금 범위를 확장하면 해산물 까지 확인할 수 있도록 말이죠. AI를 활용해서 사진만 찍으면 정보를 제공해 준다던가, 예산을 입력하면 근처 어떤 제철 초밥을 어디서 몇 개 정도 먹을 수 있는지 알려준다던가 하는 식의 서비스를 붙이면 충분히 수익이 나지 않을까요? 

하여튼 별점은 2.5점. 모든 분들께 권해드릴만한 그런 책은 아닙니다만 초밥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보셔도 괜찮을 듯 합니다.

2018/08/26

존 윅 : 리로드 (2017) - 채드 스타헬스키 : 별점 3점

 

나름 쏠쏠하게 흥행하여 커리어 끝을 향해 달려가던 키아누 리브스에게 새 생명 (?)을 불어 넣어 준 미중년 액션물 <<존 윅>>의 후속작. 전편 직후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내용은 심플해요. 산티노의 의뢰를 받아들여 그의 누나 지아나를 살해하고 탈출한 존 윅은 그를 살해하려는 산티노의 의뢰를 받은 킬러들의 습격으로 위기에 처하지만, 이를 모두 돌파한 후 산티노를 찾아가 그를 죽인다는게 전부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액션 영화에 사랑과 우정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오히려 이러한 과정에서 전편과 다르게 존 윅이 "전설"에 걸맞는 강함이 유감없이 묘사되어 아주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사실 전편에서는 러시아 마피아에게 납치당하고, 마지막은 늙어빠진 보스와 일기토를 벌이는 식으로 명성에 걸맞지 않는 모습을 보였는데, 여기서는 그런거 없어요. 적이 몇 명이건, 장소가 어디이며 무기가 어떻던 간에 모조리 해치우고 돌파해 버리거든요. 그야말로 "무쌍" 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립니다.
이는 권총을 주로 활용하며 약간의 관절기가 결합된 특유의 액션이 굉장히 깔끔하면서도 속도감있게 묘사되어 설득력을 높여준 덕도 큽니다. 그만큼 액션 장면 묘사가 탁월해요. 그야말로 하나의 스타일을 확립했달까요?

또 전편에서도 마음에 들었었던 "컨티넨탈 호텔" 로 대표되는 킬러들의 사회가 상당한 비중으로 묘사되는 것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존 윅이 다시 킬러로 복귀한 이유부터가 이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룰 중 하나인 표시의 맹세 때문이고, 이후 암살 과정에 필요한 아이템들도 다 컨티넨털 호텔 계열사 (?)를 통해서 구하며 마지막 산티노를 죽인 후 파문당하면서 후속편을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 역시 마찬가지에요.

단점이라면 산티노의 오른팔 아레스입니다. 지아나의 심복이었던 카시안은 강함이 충분히 잘 표현된 반면에 아레스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우선 비쥬얼부터가 너무 작고 왜소하기 때문입니다. 거의 백여명을 혼자 죽이고 온 존 윅을 상대하기에는 연약하고 불쌍해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게다가 마지막에 총으로 기습해도 모자랄 판에 칼질로 도전한다? 이건 뭐 죽으려고 환장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단점이라고 하기는 좀 어려운데 지아나 암살에 구태여 이탈리아 로케를 감행한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뉴욕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말이죠. 전편보다 제작비가 늘은 탓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불필요한 이미지아 설정 과용이라 생각되네요.

그래도 이 정도면 전편을 능가하는 화끈한 후속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거에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8/08/25

음식과 전쟁 - 톰 닐론 / 신유진 : 별점 2.5점

음식과 전쟁 - 6점
톰 닐론 지음, 신유진 옮김/루아크

부제는 '숨겨진 맛의 역사'. 처음에 제목만 보고 음식을 두고 둘러싼 전쟁을 다룬 미시사 서적, 혹은 전쟁으로 비롯된 음식을 다룬 (이런 책 같은) 미시사 서적일 것이라 생각하고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전쟁과는 무관한 몇몇 특정 주제를 가지고 해당 음식과 관련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기대했던 전쟁 관련된 이야기는 없지만 내용이 재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동안은 잘 몰랐던 주제들이라 새롭기도 하고, 저자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시각이 엿보이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풀 컬러로 화려한 도판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고요.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주제 몇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1>>에서는 로마 시대 양어법이 대중화되는 과정이 설명됩니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에 잉어가 급격히 퍼졌는데, 이유는 잉어의 놀라운 생존 능력에서 비롯된 저렴하고 효과적인 단백질 공급원이라는 특징에 더해 카톨릭 교단이 금요일마다 육류 섭취를 금지했기 때문이라는군요. 이후 미국에도 도입되었지만 인기를 얻지 못했다며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왜 미국에서는 잉어가 각광받지 못했을까요? 달리 먹을게 많은 풍요로운 나라였기 때문일까요? 이런 점을 좀 더 자세히 짚어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4>>는 식인에 대한 역사를 다룹니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 많지만 딱 한가지, 아즈텍 제국에서는 사람이 당연한 식재료였다는 설명은 뜻밖이었습니다. 옥수수 중심의 불균형적인 식량 체계와 융통성 없는 수직적 사회 체제 덕분에 벌어진 필연적인 결과였다는데 그동안은 일종의 제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당연한 식재료였기에 사람을 소금, 후추, 토마토와 함께 끓이는 표준 레시피까지 있었다니 완전 놀랐습니다. 그렇지만 저자의 시각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어렵더군요. 이런 관점이라면 '이스터 섬' 에서도 식인이 활발하게 벌어졌었어야죠. 거대 석상 제조를 위해 자연을 파괴하여 식량이 부족한데 거대 석상 제조가 이루어질 만큼 수직적인 조직 체계가 유지된 상황이라면 아즈텍 제국과 마찬가지니까요. 이런 부분에서는 연구가 좀 더 필요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소스 전쟁에서 살아남은 우스터셔 소스의 이야기를 그린 <<6>> 에서 우스터셔 소스의 복잡한 맛은 '카레'와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던 덕분이며 이는 창조자 샌디스 경의 동양에서의 경력 덕분일 것이라는 비화도 흥미로왔지만, 우스터셔 소스는 일종의 바이럴 마케팅 덕분에 성공했다는 시각도 새로와서 마음에 들었어요. 
<<8>> 에서는 바비큐가 소개되는데 단순한 직화가 아니라 오랜 시간 낮은 온도에서 익혀 고기를 둘러싼 섬유질 콜라겐을 젤라틴으로 바꾸는 요리법이라는 정의도 처음 알게 된 것이고요. 이게 저자의 의견인지 사전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이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소개됩니다.

하지만 위의 예에서 언급해 드렸던 몇몇 불만들처럼 내용이 부실해서 보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많아야 20 페이지 안팎의 분량으로 해당 주제를 소화하는데 도판의 분량이 1/3 정도를 차지하니 깊이있는 설명은 애초에 불가능해요. 또 모든 이야기들이 다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닙니다. 디너 파티와 초콜릿 등 별로 관심이 없거나 너무 잘 알려진 주제들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흑사병을 막을 수 있었던 이유가 레몬 껍질 덕분이었다는 <<2>> 과 같이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별점은 2.5점. 화려한 도판 덕분에 소장 가치는 높지만 이 책만 가지고 특정 요리와 문화에 대해 깊이있게 이해하는 건 좀 어렵긴 합니다. 그래도 음식과 문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재미삼아 도전해 보셔도 나쁘지는 않을겁니다. 책 가격이 2만원을 훌쩍 넘기는 하지만....

2018/08/24

밤의 파수꾼 - 켄 브루언 / 최필원 : 별점 2.5점

밤의 파수꾼 - 6점
켄 브루언 지음, 최필원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일랜드 경찰 '가르다' 출신으로 해고 후 사립 탐정으로 먹고 사는 잭 테일러는 딸 앤 헨더슨 자살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이혼녀 애니의 의뢰를 받고 수사에 나선다. 경찰로 보이는 덩치들로부터 린치를 당해 가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잭은 정보원 캐시로부터 앤이 아르바이트했던 가게 사장 플랜터가 수상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애니와 깊은 관계를 맺은 후 친구 서튼과 함께 가게를 관리하는 경비회사 운영자 포드를 찾아가는데...

아이리쉬 하드보일드 누아르의 거장이라는 켄 브루언의 대표작. 많은 작품이 영상화되었으니 상당히 잘 팔리는 작가인 듯 합니다. 이전에 '타탄 느와르의 제왕' 이라는 이언 랜킨의 작품은 읽어본 적이 있는데, 아일랜드 출신의 아이리쉬 누아르 거장이라니 둘이 만나면 좋은 승부가 되겠네요. 

솔직히 아무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페이지가 쭉쭉 넘어가는 맛이 상당해서 놀랐습니다. 이야기는 별 게 없지만 폐인에 가까운 주인공 잭 테일러의 일상을 쫓는 전개가 재미있으며, 특히 길어야 10 페이지 정도인 짧은 단락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아주 탁월한 덕분입니다. 짤막한 일상을 연이어 읽으면서 한 사람의 일생과 심리를 들여다보게끔 만드는 묘사가 정말 절묘해요. 짧은 호흡, 토막글에 친숙한 현대인에게 적합한 작법인데 이런 방법으로 긴 장편을 어렵지 않게 써 낸 솜씨에는 정말이지 박수를 보냅니다. 
이를 빛내주는 글솜씨도 일품이에요. 그야말로 아일랜드 느낌이 왠지 모르게 묻어난달까요? 척박하면서도 거칠고, 즉흥적이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그런 분위기가 문장 하나하나에서 드러납니다. 알콜 중독자 잭 테일러의 일상을 구성하는 술들과 그의 취미인 독서, 영화 감상, 음악에 대한 디테일도 아주 탁월해서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요. 

하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누아르나 느아르, 범죄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이야기에 알맹이가 전혀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에요. 기묘한 자살 사건에 대해 20살도 안된 정보원 캐시가 배후를 쉽게 알아내고, 잭이 찾아가자마자 바로 범인이 자백하고, 결국 사건의 진상은 잭을 폭행한 전직 경찰 출신 경비원의 자백으로 밝혀지는 식으로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이 너무나 허술합니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인 잭의 단골 술집 그로건스의 바텐더 숀의 죽음에 대한 진상 역시 아무런 수사 없이 뜬금없는 증언에 의해 범인이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에요. 범죄에 대한 묘사도 부족하고, 추리라고 부를 수 있는 점이 전무한데 과연 이 작품이 하드보일드 느와르인지 살짝 의심이 생길 정도입니다. 세 명의 소녀를 포함해서 범인들 두 명, 사건 때문에 얽힌 다른 두 명 등 모두 7명이나 죽어나간 대형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대충, 적당히 넘기고 있으니까요. 주요 참고인이자 유력 용의자이고 거물인 플랜터가 실종되었는데 경찰이 딱히 하는게 없다는게 과연 말이나 됩니까? 게다가 앤은 자살한게 맞다는 증언이 뭔지 결국 밝혀지지 않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캐릭터도 그닥입니다. 잭 테일러의 알콜 중독 묘사는 나쁘지 않았지만 다른 알콜 중독 탐정들과 비교해서 딱히 특별한 건 없고, 오히려 차이점을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멋을 부린 느낌이 강하거든요. 문학 소년으로 시를 좋아했다는 식의 설정은 잭의 알콜 중독과 폭력성과 대비되어 극적인 효과를 높여주기는 하지만 솔직히 불필요했어요. 설득력도 없고요. 금주를 결심했다가 무너진 후 애니와 헤어지고, 런던으로 향할 것을 결심하는 과정도 진부했습니다. <<싱 스트리트>>도 아니고, 50 가까운 중년 남자가 왠 런던?

아울러 앞서 말씀드렸던 토막글이 이어지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구성은 흥미롭지만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지나가다 만난 사람에게서 받은 정보로 경마에서 대박이 터진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죠. 이 대박으로 잭이 런던으로 떠날 결심을 하면서 사건을 대단원에 이르게 만드는 작위적인 연출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앤에게서 받은 돈으로 런던을 갔어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읽기 편한, 적절한 재미에 더한 구성과 전개는 일품이지만 추리적인 성격이 강하지 않다는 점에서 감점합니다. 영상화가 되었다고 하는데 한 번 보고 싶기는 하네요.

2018/08/19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 - D.P. 라일 / 강동혁 : 별점 2점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법의학 Q&A - 4점
D. P. 라일 지음, 강동혁 옮김, 강다솔 감수/들녘

전문의이자 미스터리 작가이기도 한 저자 D.P 라일이 미스터리 작가들을 위해 운영하는 자문 사이트에 올라온 질문과 답변을 정리하여 모아 놓은 책.

실제 작품에 사용하기 위한, 굉장히 실용적(?) 인 질문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저에게는 '독물'에 대한 정보들이 아주 유용했는데 예를 들어 사막에서 표류하는 사람의 죽음을 앞당기기 위한 물질은? 이라는 질문에 등장하는 알코올 관련 이야기는 인상적이에요. 맥주를 예로 들어 알코올은 이뇨제처럼 작용한다고 설명하는데 아주 그럴듯했거든요. '라식스' 라는 약을 사용하면 큰 효과를 볼 것이라는 정보와 함께 말이죠.
흰독말풀이 효과적인 독극물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유용합니다. 악취도 심하고 맛도 지독하지만 먹일 수만 있다면 굉장히 유독하다고 하니까요. 술에 섞으면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있고요. 비슷하게 쉽게 구하 수 있는 벨라도나, 독미나리, 디가탈리스, 사리풀 등에 대한 정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항상 궁금했던, 수은 온도계의 수은이 정말로 유독한지에 대한 답도 나와 있습니다. 실제로 유독하며 섭취보다는 증기로 만드는게 더 강력하다는군요. 이런 위험한 물질을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다니! 놀랍기만 할 뿐입니다.
그 외에도 베타 차단제라는 일련의 약품은 스트레스 반응을 무디게 하여 거짓말 탐지기를 무력화 시킬 수도 있다던가, 담수 익사와 염수 익사의 구분 방법, 협죽도를 먹으면 고양이가 중독되는지 여부 등 관심이 있다면 쓸만한 정보가 많아요. 실제로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그런 내용들이 가득하니까요.

독물 외에도 평상시 궁금했던 내용도 많아요. 그 중에서도 알코올 섭취로 동사를 막을 수는 없다와 표류 중 소변을 마시는 건 생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의외라 기억에 많이 남네요. 베개를 이용한 질식 살인이 굉장히 효과적이라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을테고요. 같은 이치로 다양한 시신 유기 방법에 대한 정보도 읽을만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라면 읽으면서 재미를 찾기는 힘들다는 점입니다. 물어보는 사람한테만 궁금한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답변도 원론적인 의학적인 사식에 기반한 내용이기에 재미있을리가 없지요. 내용도 별다른 가공없이 인터넷 사이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고요. 차라리 정보를 기반으로 한 작품과 함께 소개하는 식으로 재미를 더하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요? 이대로라면 작가 지망생을 위한 일종의 자료집에 불과해 보일 뿐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정말로 미스터리 작가를 지망한다면, 혹은 사람이 죽는 과정이라던가 방법에 관심이 많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용도 어차피 인터넷으로 찾을 수 있는 내용들이 많으니까요. 설령 이 책을 읽지 못했다 하더라도 미스터리 작품을 쓰는데 큰 문제는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의사들만 미스터리 작품을 쓰는 건 아니잖아요?

덧붙이자면, 책의 성격은 굉장히 애매한데 "추리, 호러 관련 독서" 로 분류합니다. 추리 소설을 쓰기 위한 일종의 참고서이니까요.

2018/08/18

조선의 탐식가들 - 김정호 : 별점 3점

조선의 탐식가들 - 6점
김정호 지음/따비

조선에서 음식을 좋아했던 유명인들과 그들이 좋아했던 음식들, 관련된 다양한 일화들을 모아 정리한 음식, 미식, 미시사 서적. 
조선 시대 선비들이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선비에게는 소박하고 정갈한 밥상이면 충분하다는 이덕무, 이익, 정약용 부류, 그리고 지금도 미식가로 유명하며 미식과 탐식을 즐겼다는 허균, 서거정 부류가 있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탐식가' 중심의 이야기들을 주로 풀어내고 있죠. 9장에 후기까지 3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앞부분, 1장에서 3장까지는 소고기 관련 이야기인데 이 중에서는 소고기는 금령이 내려졌지만 사대부들은 쉬쉬하면서 찾아먹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하고 맛있다고 알려진 '우심적' 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소의 염통을 양념 간장을 발라 구워 먹는 것인데 왕희지에게 대접했다는 고사 때문에 귀한 사람에게 대접하는 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많이 먹었다고 하네요. 유래도 그럴듯하지만 맛도 괜찮을 듯 한데 왜 지금은 먹지 않는건지 궁금해집니다.
조선 시대에는 돼지고기보다 소고기가 비싼 음식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초식동물인 소와는 다르게 잡식성인 돼지는 먹이 문제로 보편적인 육류로 자리잡지 못한 탓으로 돼지고기가 한 근에 1전 2푼, 소고기는 한 근에 7, 8 푼이었다고 합니다. 1푼을 대충 만원이라고 치면 소고기 600g에 7~8만원 선이니 괜찮은 가격이군요.
또 이렇게 소고기가 나름 널리 퍼졌기 때문인지 음력 10월 초하룻날은 소고기를 구워먹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초콜릿이나 사탕을 주는 날도 좋지만 이런 우리의 전통도 계속 이어 가면 좋을 것 같아요. 소고기로 유명한 횡성군에서 시작하면 딱이지 않을까요?

4장에서 알 수 있는 당시의 개고기 사랑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정약용이 개고기 애호가로 몸소 레시피를 편지에 써 보낼 정도였다네요. '채소밭에 파가 있고 방에 식초가 있으면 이제 개를 잡을 차례입니다.'로 편지가 마무리되는데 정말 좋아한다는게 절절히 느껴집니다. 심지어 왕실 연회에도 올랐다니 말 다했죠. 

그리고 9장에서의 왜관의 승기악탕을 좋아했던 조선 사대부들과 이것이 현재의 스키야키로 이어지는 역사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저는 여태까지 이게 "스키야키"인 줄 알았는데 원래 삼나무 상자에 끓여먹는 '스기야키' 라고 하니 상당히 의외였어요. 
원래 조선에서 '승기악탕'은 맛이 뛰어난 음식을 나타내는 별칭으로 '도미면' 이 그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관 연회에서 스기야키가 조선 관리들에게 대접된 후, 빙허각 이씨의 책 <<규합총서>> 에서 왜관음식으로 닭찜 '승기악탕'이 소개되며, 한글학회의 '큰사전'에서 '승기악탕'은 도미면과 스기야키의 조리법이 합쳐진 새로운 요리로 정의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최근 '편백찜' 이라고 편백나무 상자에 숙주를 깔고 그 위에 얇게 썬 소고기를 얹어 쪄 먹는 음식이 유행하는데 이왕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일거라면 조선 최고의 음식이었던 '승기악탕' 을 현대식으로 만들었다! 고 하면서 홍보하는게 어땠을까 싶습니다. 레시피를 조금 바꾸던가, 도미면같이 생선을 재료로 쓰는 메뉴를 추가해 보아도 좋았을테고요. 괜찮아 보이지 않나요?

이렇게 좋은 내용이 많지만 글이 좀 정리가 안된 느낌이 강해서 담고있는 내용만큼이나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조금 더 깔끔하게 정리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쉬워요.

그래도 별점은 3점.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높습니다. 조선 시대 식문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8/08/15

해골 서점직원 혼다씨 1,2 - 혼다 : 평균 별점 2.5점

해골 서점직원 혼다씨 1 - 6점
혼다 지음/미우(대원씨아이)

해골 서점직원 혼다씨 2 - 4점
혼다 지음/미우(대원씨아이)

일본의 모 만화 전문 서점에서 일하는 혼다씨가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린 일종의 전문가 일상툰 (에세이 코믹)

"만화가가 주인공인 만화는 다 재미있다!" 라는 제가 만든 말이 있습니다. 허언은 아닌게 거장 후지코 후지오의 <<만화의 길>>, 지금은 이름조차 잊혀진 쿠스노키 케이의 <<만화가의 사랑>>, 데즈카 오사무의 건투를 그린 <<블랙잭 창작비화>>, 처절한 생존기인 <<만화가 상경기>>, 요절복통 <<월간 순정 노자키군>>, 전설의 막장 만화가 신조 마유의 <<바보도 따라할 수 있는 만화 교실>>, 이 바닥의 금자탑 중 하나인 시마모토 가즈히코의 <<호에로 펜>>과 <<푸른 불꽃 (아오이 호노오)>>, 점프 방식으로 그려낸 만화가 만화인 <<바쿠만>> 등등 제가 읽었던 대부분의 만화가 만화가 그러했거든요.
이와 비슷하게 "서점이 무대인 만화는 다 재미있다!" 라는 (역시나 제가 만든) 말도 있습니다. 국내 소개는 되지 않았지만 구제 반코의 <<엉망진창 서점>> 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서점 숲의 아카리>> 등도 모두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입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작품은 서점을 무대로 한 일상툰으로 저의 명제에 그런대로 부합하는 작품입니다. 최소한 1권만큼은 기대에 값하거든요.

다른 작품들과의 차이점이라면 주인공 혼다씨가 일하는 곳이 "만화 전문" 서점으로 상당히 크고 유명한 서점인지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작품을 원하는 특별한 손님과의 에피소드가 주요 재미 요소로 그 중에서도 초절정 핵미남 외국인이 말도 안되는 성인 동인지를 찾는 에피소드, BL만화를 원하는 외국인 손님들과의 에피소드와 같은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일본 BL의 파괴력은 정말로 상상 초월이더군요! 외국인들을 묘사한 방식도 독특하면서도 특징을 잘 잡아내고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 주고요. 그 외에도 추천을 원하는 쾌활한 외국인에게 <<팬티 가면>> 을 권해주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소개와 추천, 탐색의 와중에 여러가지 만화에 대한 정보도 넘쳐나는데 동인녀들이 찾으면 소리를 지를 정도의 인기작가라는 오게레츠 타나카 선생님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처음 알았네요.
그럼 여기서 질문, "감동적인 순정만화", "길어야 3권까지", "40대 남성도 즐길 수 있는" 만화를 찾는 손님이 구입한 작품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베르제르크>> (마우스로 긁어보세요)입니다! 꺄오! 정말이지 1권은 별점 3점이 아깝지 않아요!

하지만 2권부터는 재미가 덜합니다. 손님과의 에피소드는 야쿠자가 책을 사서 교도소로 배송하는 정도만 재미있었을 뿐 나머지는 서점 안에서 벌어지는 업계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며, 이 역시 대체로 좋은 쪽으로만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서점 직원들끼리의 회식을 그린 에피소드에서 재미가 좀 터지나 싶었는데 이 역시 ''재미있개 디스하는 능력이 없다'고 빠져나가 버릴 뿐이고요. 책 뒤의 특별 보너스 만화를 읽어보니 1권에서의 <접객 연수>> 에피소드 때문에 문제가 생겨 콘티를 점장에게도 사전에 확인받게 되었다는데 그래서 그런 듯 싶습니다. 어디나 검열이 문제죠... 때문에 2권 별점은 2권도 과합니다.

그래서 두 권 평균 별점은 2.5점. 점장의 사전 검열 절차가 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기에 더 구입해 읽어볼 생각은 없습니다.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1권만 읽어보셔도 충분하실겁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 데이비드 발다치 / 황소연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 6점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북로드

전직 미식축구 선수였던 에이머스 데커는 시합 중 큰 충격을 받고 죽다 살아난 후,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 뒤 경찰로 변신하여 이 능력을 이용해 많은 범죄를 해결해 나가지만 아내와 딸, 처남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후 거의 폐인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가족이 살해당하고 15개월 후, 그는 범인이 자수했다는 이야기를 옛 파트너로부터 전해 듣는데...

최근 잘 나간다는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의 작품. 소문만 들었지 읽어본 건 처음이네요. 

천재 탐정과 천재 범죄자의 대결을 그린 작품은 쎄고 쎘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특이한 건 탐정과 범죄자가 천재인 이유는 후천적인 서번트 증후군 능력이며, 이는 20년 전 둘에게 닥쳤던 커다란 충격과 관련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 능력을 이용하여 범죄자 와이트를 추적해 나가는 에이머스 데커의 추리 과정이 재미의 핵심 요소고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데커의 두뇌가 여러가지 상황과 단서를 토대로 범인이 내 건 수수께끼를 하나씩 해결해 가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적절한 복선과 함께 설득력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범인의 이상한 행동을 분석하고, 여러가지 수사를 통해 범인의 탈출구와 이동경로를 발견하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또 이를 뒷받침하는 CCTV 및 각종 감식, 과학 수사와 같은 설정들과 현실을 색깔, 숫자와 함께 기억하고 인지하는 데커의 능력에 대한 묘사도 훌륭합니다.

그러나 복선이 잘 짜여져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위적인 내용도 많아요. 예를 들어 데비의 할아버지가 방공호에 대해 데비에게 알려주었다는건 완전히 우연에 불과합니다. 차라리 오래된 설계 도면을 뒤져서 알아냈다는게 나았을 거에요. 그리고 냉장고 안에 숨어 있을 수 있다가 철조망 구멍으로 빠져나갔다는 처음의 추리도 가능한데 비밀 통로를 통해 빠져나갔다는 수수께끼를 배치한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데비에게 수사가 쏠리게끔 하려는 의도였다면 사물함 속 노트의 그림으로 충분한데 말이죠. 
또 데커의 처남과 아내, 딸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1년 이상 지난, 15개월 후 시점에 맨스필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이유도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했어요. 데커와 게임을 하려고 했다면 첫 살인 시점에서부터 게임이 시작되었어야죠. 이 사이에 데커가 도시를 뜨거나, 자살이라도 했으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게다가 레오폴드가 구태여 자수를 하여 존재를 드러낸 이유도 이해불가에요. 범행의 동기를 직접 드러냈고 세븐 일레븐이라는 단서를 남긴 것 외에는 레오폴드의 자수, 석방과 실종과 이 게임은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동기와 단서는 게임을 위해 필요했지만 직접 모습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죠. 다른 단서들처럼 메시지로 남겨도 충분하니까요. 또 처음에 세븐 일레븐이 편의점이 아니라 과거 인지연구소 주소를 의미한다는 걸 미리 깨닫지 못한 것도 어설퍼 보였고요. 레오폴드의 존재는 마지막 대결에서 내분을 일으켜 자멸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는데 이 마지막 장면은 굉장히 작위적이고 뻔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아울러 범인 와이트를 너무 전능한 것으로 묘사한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기억을 잘 한다고 해서 천재 범죄자가 되는건 아닌데 말이죠. 게다가 변장의 천재라는건 너무 억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동기에요. 범인이 에이머스 데커의 일가족을 죽이고, 고등학교에서도 여러명을 죽이고 데커와 게임을 벌이는 과정만 보면 데커를 뼈저르게 증오하고 있다는걸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증오의 원인이 둘이 함께 지냈던 연구소에서의 사소한 행동 -
와이트는 경찰관과 미식축구 선수들이 포함된 그룹에게 폭행과 강간을 당했는데, 미식 축구 선수 출신인 에이머스 데커가 장래 경찰관이 되겠다고 해서 그를 증오하게 되었다 - 때문이었다? 아내 성폭행 사건에서 범인들이 아니라 신고하지 않았던 목격자들을 죽여나간다는 희대의 쓰레기 <<살인 곱하기 다섯>> 급으로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증오심을 품어야 하는 대상의 번지수가 틀려도 너무 많이 틀렸잖아요. 이렇게 잔인하고 방대한 범행을 저지를 만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아주 빼어나지는 않고 단점도 많아서 감점합니다. 허나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재미는 괜찮았던만큼 더운 여름날 한가롭게 읽기 적당한 킬링타임용 소설을 원하신다면 추천해 드리는 바입니다.

2018/08/12

마크 쿨란스키의 더 레시피 - 마크 쿨란스키, 탈리아 쿨란스키 / 한채원 : 별점 2.5점

마크 쿨란스키의 더 레시피 - 6점
마크 쿨란스키.탈리아 쿨란스키 지음, 한채원 옮김/라의눈

얼마전 <<대구>> 라는 책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다양한 음식 관련 저서로 잘 알려진 마크 쿨란스키의 책입니다. 워낙에 좋아하는 작가라 주저없이 구입하게 되었네요.

그런데 구입하기 전에 책 소개를 좀 읽어보고 살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크 쿨란스키의 다른 책들처럼 음식이나 요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재미있게 전달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벽하게 기대와 다른 '레시피 모음집'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양한 경력을 지니고, 음식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마크 쿨란스키이기에 평범한 레시피 모음집은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 번, 딸 탈리아가 지구본을 돌려 짚은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 먹던 가족의 게임에서 시작된 책인데, 해당 나라에서 많이 먹는 음식을 평범한 미국 가정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거든요. 푸드 프로세서와 오븐만 있으면 거의 모든 음식을 만들 수 있을 정도입니다. 유럽은 물론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에 우리나라와 몽골까지 포함된 아시아까지 정말로 방대한 종류의 음식을 소개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이 중에서도 깍둑썰기한 참치에 참깨,다진 파, 카이엔 페퍼, 참기름, 간장을 섞는 하와이 식 애피타이저 '아히 포키', 잘게 자른 토마토와 오이, 양파, 올리브 오일, 민트 잎과 후추로 만드는 이란의 '시라지 샐러드', 이런저런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지만 오븐이나 푸드 프로세서도 없는 우리집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어 보이는 독일의 소고기 요리 '사우어브라텐', 새조개를 소금물에 담아 끓인 후 우유와 샐러리를 넣어 만드는 아일랜드의 '새조개 수프', 소고기 슬라이스를 양념에 절인 후 구워 먹는 니카라과의 '니카라관 비프' 등은 저도 도전해보고 싶어집니다.

또 해당 국가에 대해 짤막하지만 특유의 글 솜씨로 재미있게 소개해 주는 부분도 볼거리입니다. 특히 마크 쿨란스키가 이런저런 이유로 직접 방문했었던 나라의 경우, 본인이 해당 국가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해주는데 이런 글들은 정말로 재미있었어요. 
소개되는 음식을 통해 해당 지역의 문화를 살짝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어요. 하와이의 대표 음식으로 일본의 타쿠완 (다꾸앙)이 소개되는 글을 통해 일본인들이 하와이에 다이콘 (무) 을 들여왔다는걸 알게 되는 식이죠. 전문가다운 식견을 보여주는 항목도 있습니다. 일본 요리를 소개하면서 '굴은 일본인들처럼 씻을 필요 없다' 고 하는 부분이 대표적이에요. 소금물로 씻는게 좋아 보이기는 합니다만.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레시피 모음집이고, 저자 가족에게는 즐거움이자 기쁨이었겠지만 독자에게는 딱히 땡기지 않는 나라와 요리들이 포함되어 있는 등 모든 내용이 만족스럽지만은 않습니다. 가격도 2만원을 훌쩍 넘고요. 무엇보다도 마크 쿨란스키의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른 책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몇몇 국가, 혹은 대륙으로 압축하여 해당 국가의 요리와 음식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게 훨씬 나았을 것 같습니다.

2018/08/11

그래, 나는 연필이다 - 박지현 : 별점 2.5점

그래, 나는 연필이다 - 6점
박지현 지음/CABOOKS(CA북스)

다큐멘터리 감독 박지현이 <<연필, 세상을 다시 쓰다!>> 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송할 때 인터뷰했던 내용을 정리하여 발표한 논픽션
공학자로 다양한 저서를 발표한 헨리 페트로스키, 저도 구입한 연필깎기 전문가 데이비드 리스, 연필심 조각으로 유명한 달튼 게티, 평범한 엔지니어로 연필 홀릭인 마티 오윙스, 연필로 직접 써서 만드는 잡지 <<맑은 연필>>을 간행하는 황성진, 3D 시대에 연필로 그리기를 고집하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어 '연필로 명상하기'의 안재훈 감독과 다른 관계자들, 하이퍼 리얼리즘 연필화가 디에고 코이,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마르타 알레스와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뒷부분에는 영국에서 최초로 흑연이 채굴되어 연필의 고향이 된 보르데일 방문기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했던 여정이 짤막하게 정리되어 있고요. 

저도 몇 권의 책을 가지고 있는 헨리 페트로스키가 연필에 대해서 책을 쓴 줄은 몰랐는데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그렇지만 인터뷰는 별다른 내용은 없더군요. 오히려 <<연필깎기의 정석>>의 저자 데이비드 리스와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이 단순한 농담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연필깎기로 먹고 산다는 상황 자체가 상당히 놀라왔거든요. 그러면서도 '항상 가장 저렴하고 빠른 해결책만 찾지 말고 조금 더 돈과 시간을, 특히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라' 던가 '그 어떤 일도 단순하지 않고 놀라운 일들이다' 라는 말은 상당한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그냥 퍼포먼스로 먹고 사는 인물은 아닌 것으로 보여 의외였습니다. 
그 외에도 달튼 게티의 삶과 작품들, 연필은 그냥 자기 노력 하나만으로 그림에 다가가는 공평한 기회를 준다는 안재훈 감독 등 깊이와 울림이 느껴지는 인터뷰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티 오윙스나 마르타 알레스와의 인터뷰는 딱히 무언가를 느끼기 힘들었고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한 과정 역시 불필요한 사족이었다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시청하지 못했지만 이미 제작되어 방송까지 된 다큐멘터리와 비교할 때 이 책이 방송된 내용과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솔직히 회의적이에요. 이럴거면 그냥 다큐멘터리를 충실하게 책으로 옮기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컬러 대신 흑백을 채택한 내부 도판도 연필 속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겠지만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TV로 시청하신 분들은 구태여 시청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네요.

2018/08/05

인크레더블 2 (2018) - 브래드 버드 : 3.5점



14년만에 찾아온 후속편. 놀랍게도 제가 14년 전 감상했던 전편의 리뷰를 이 블로그에 남겼었더군요. 그때는 결혼도 하기 전이었는데 아내, 딸과 함께 감상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당시 리뷰에 댓글을 달아주신 잠본이님이 아직 건재하신 것에도 무척 감사드리고 싶네요. 이글루스를 앞으로도 오래오래 지켜 주시길.

작품의 상세 줄거리와 내용은 다른 분들이 많이 올려주시고 해서 구태여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확실히 잘 만든 작품이더군요. 
특히 엘라스티 걸 헬렌의 활약 장면들이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며 자기 부상 열차를 멈추는 씬은 속도감과 공간감이 엘라스티 걸의 초능력과 잘 결합된 그야말로 명장면이었어요.

또 다양한 능력의 슈퍼 히어로들이 나와서 액션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딱히 없지만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합도 잘 짜여져 시각적 쾌감이 상당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프로존이 대활약하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고요.

하지만 전편과 비교해 볼 때 미스터 인크레더블의 비중이 대폭 감소한 건 아쉬웠습니다. 일단 단독 액션씬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전편에서는 홀로 옴니드로이드를 격파하고, 나중에 도시를 습격한 거대 옴니드로이드의 약점 (자신의 무기로 부술 수 있다!)을 간파하여 해치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말이죠. 
또 이렇게 단순히 액션씬에서의 비중만 감소한 것도 아닙니다. 초반부 언더마이너와의 싸움에서 일격을 당해 큰 위기를 불러온다던가, 헬렌은 척척 해낸 아이들 돌보기마저도 제대로 못 해서 며칠 잠도 못 잘 정도로 고생하고 어려움에 처하는 장면은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어요. 근육질 마초 남성이 아이들 돌보기를 힘들어 한다는 흔해빠진 코미디 영화와 별로 다를게 없었고요. 그나마 자력으로 성장하는 모습, 가족의 화합을 디즈니스럽게 그린 묘사는 괜찮았지만 역시나 전형적인 부분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반대로 앞서 말씀드렸듯 엘라스티 걸 헬렌의 비중이 대폭 상승한 것에 더하여, 전편에서는 민폐 캐릭터에 가까왔던 바이올렛의 변신과 비중도 대단히 커졌습니다. 사실 헬렌은 전편에서도 굉장히 능력있고 적극적인 여성으로 그려졌기에 비중이 커진걸 대단한 변신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바이올렛은 정말이지 제작진의 의도가 아닌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수동적으로 몸을 숨기고 방어막에 집중했던 전편에서는 상상도 못했을 (작중 시점에서는 고작 3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세뇌당한 보이드와의 결투 (심지어 이기기까지!) 에 더해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는 "컨트롤 타워" 역할까지 수행하니까요. 뭘 노린건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씁쓸하기도 하네요. 이는 전편에서 제대로 스피드스터의 모습을 보여주며 각성한 대쉬가 개인 단독 액션 장면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완전한 쩌리로 전락한 것과 일맥 상통하겠죠. 

그래도 이 모든 것은 시대가 변했고 제가 늙었기 때문에 느낀 감상일 뿐,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슈퍼 히어로물의 팬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꼭 한 번 보아야 할 작품이에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인크레더블 2 (2018) - 브래드 버드 : 별점 3.5점



14년만에 찾아온 후속편. 놀랍게도 제가 14년 전 감상했던 전편의 리뷰를 이 블로그에 남겼었더군요. 그때는 결혼도 하기 전이었는데 아내, 딸과 함께 감상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당시 리뷰에 댓글을 달아주신 잠본이님이 아직 건재하신 것에도 무척 감사드리고 싶네요. 이글루스를 앞으로도 오래오래 지켜 주시길.

작품의 상세 줄거리와 내용은 다른 분들이 많이 올려주시고 해서 구태여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확실히 잘 만든 작품이더군요.
특히 엘라스티 걸 헬렌의 활약 장면들이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며 자기 부상 열차를 멈추는 씬은 속도감과 공간감이 엘라스티 걸의 초능력과 잘 결합된 그야말로 명장면이었어요.
또 다양한 능력의 슈퍼 히어로들이 나와서 액션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딱히 없지만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합도 잘 짜여져 시각적 쾌감이 상당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프로존이 대활약하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고요.

하지만 전편과 비교해 볼 때 미스터 인크레더블의 비중이 대폭 감소한 건 아쉬웠습니다. 일단 단독 액션씬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전편에서는 홀로 옴니드로이드를 격파하고, 나중에 도시를 습격한 거대 옴니드로이드의 약점 (자신의 무기로 부술 수 있다!)을 간파하여 해치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말이죠.
또 이렇게 단순히 액션씬에서의 비중만 감소한 것도 아닙니다. 초반부 언더마이너와의 싸움에서 일격을 당해 큰 위기를 불러온다던가, 헬렌은 척척 해낸 아이들 돌보기마저도 제대로 못 해서 며칠 잠도 못 잘 정도로 고생하고 어려움에 처하는 장면은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어요. 근육질 마초 남성이 아이들 돌보기를 힘들어 한다는 흔해빠진 코미디 영화와 별로 다를게 없었고요. 그나마 자력으로 성장하는 모습, 가족의 화합을 디즈니스럽게 그린 묘사는 괜찮았지만 역시나 전형적인 부분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반대로 앞서 말씀드렸듯 엘라스티 걸 헬렌의 비중이 대폭 상승한 것에 더하여, 전편에서는 민폐 캐릭터에 가까왔던 바이올렛의 변신과 비중도 대단히 커졌습니다. 사실 헬렌은 전편에서도 굉장히 능력있고 적극적인 여성으로 그려졌기에 비중이 커진걸 대단한 변신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바이올렛은 정말이지 제작진의 의도가 아닌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수동적으로 몸을 숨기고 방어막에 집중했던 전편에서는 상상도 못했을 (작중 시점에서는 고작 3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세뇌당한 보이드와의 결투 (심지어 이기기까지!) 에 더해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는 "컨트롤 타워" 역할까지 수행하니까요. 뭘 노린건지는 모르겠지만 약간 씁쓸하기도 하네요. 이는 전편에서 제대로 스피드스터의 모습을 보여주며 각성한 대쉬가 개인 단독 액션 장면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완전한 쩌리로 전락한 것과 일맥 상통하겠죠.

그래도 이 모든 것은 시대가 변했고 제가 늙었기 때문에 느낀 감상일 뿐,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슈퍼 히어로물의 팬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꼭 한 번 보아야 할 작품이에요. 별점은 3.5점입니다.

2018/08/04

강호인문학 - 이지형 : 별점 3점

강호인문학 - 6점
이지형 지음/청어람미디어

사주, 풍수, 주역이라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실체에 대해 잘 모르는 동양 철학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개념과 원리를 알려주는 입문서입니다. 어딘가의 책 소개를 보고 구입하게 되었는데 책 소개대로 굉장히 쉽게 쓰여 있어서 재미있게 만족하면서 읽었습니다.

저자의 정리에 따르면 사주는 오행의 확장판이며 주역은 음양의 확장판, 풍수는 기의 확장판이라고 합니다. 오행은 세상을 구성하는 다섯가지 기운이며 음양은 밤과 낮의 순환, 기는 땅속 신경망이 에너지라고 하고요.
이 설명을 기반으로 사주, 풍수, 주역을 한 챕터씩 할애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중 사주는 만세력을 기반으로 한 실제 사주 보는 방식과 결합하여 설명해 주고 있어서 아주 흥미로왔습니다. 읽으면서 직접 만세력 앱을 설치하여 딸과 아내의 사주를 살짝 볼 정도로 말이죠. 딸아이가 불과 금의 기운이 강하고 물과 흙의 기운이 없다는 걸 알았는데, 다음에 혹시 이사가게 되면 딸아이 방은 황토방에 까만 색으로 인테리어를 해 줘야 하나 싶어요. 
또 항상 궁금했던 것, 사주가 정해져 있다면 운명의 갯수가 몇개일까? 도 51만 8,400개라고 알려주고 있으며 사주는 오랜 기간 축적한 데이터베이스에 기반하고 있을 뿐 결함이 없는게 아니며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타인을 자신의 삶 속에 적극적으로 끌여 들여야 한다는 조언도 인상적이었고요.

하지만 풍수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어요. 풍수의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시작하는 도입부는 재미있었지만 저자의 말대로 지금은 단지 아파트 정도에 머무를 담론이 되어버린 현실에서는 딱히 흥미를 끌 만한 부분이 없었거든요.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다!" 고 해 봤자 이를 개인이 어쩔 수 있는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마지막 주역은 분량은 적지만 괜찮았습니다. 괘와 효의 구성과 의미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에서 현대에서 실제로 효를 하나씩 뽑아 괘를 만들어 점을 치는 방법까지 소개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주역의 괘를 뽑는 행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아주 기억에 남습니다. 랜덤에 불과하니 하늘의 뜻을 묻는게 아니라 무작위에 향후 상황을 맡기는 것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는 논리적인게 아니라 '믿음'에 기댄다는 거죠. 이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크리스천이 기도하고 불자가 발원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는 주장인데 이치에 맞긴 합니다. 아니, 생각해보면 단순히 기도와 발원만으로는 어떤 응답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직접 괘를 뽑으면 그래도 결과는 바로 나오니 기도보다는 괘를 한 번 뽑는게 나은 것이죠! 캬~

이렇게 사주, 풍수, 주역에 대한 설명 뒤에는 이 모든 건 자연의 흐름이고 순환이니 걱정하지 말고 몸을 맡겨라라는 글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어른들 말씀대로 그냥 재미삼아 보는 것이지 너무 의미를 부여하면 곤란하다는 뜻이겠죠?

아쉬운건 그야말로 입문서라 조금만 깊게 알고 싶어도 이 책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점입니다. 저자의 의도가 사주와 풍수, 주역의 개념에 대해서만 짚고 넘어가려는 것이라 그런 것일테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부록 삼아 참고가 될 만한 서적을 추천해 주고 있긴 합니다만 아쉽긴 아쉬워요.

허나 개인적으로 어렵게만 생각했던 동양 철학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모든 분들께 추천해 드리기는 조금 어렵지만 관심이 있으신 입문자 분이 계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공정드래곤즈 1~3 - 쿠와바라 타쿠 : 별점 2점

[고화질] 공정 드래곤즈 03 - 4점
쿠와바라 타쿠 지음/대원씨아이(만화)

바야흐로 먹방의 시대입니다. 백종원 씨를 비롯, 여러 셰프들이 스타덤에 오른지 오래이며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맛있는 것을 먹는 온갖 예능들도 넘쳐나고 있고, 무엇보다도 맛있게 먹는 모습만으로 스타가 된 사람들마저 등장하고 있으니 과히 틀린 말은 아니겠죠.

이는 만화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물론 요리 만화는 등장한지 오래되긴 했습니다. 고전 <<맛의 달인>> 에서 시작하여 빵, 카레, 중화요리, 초밥, 도시락, 와인, 술, 빵 등 요리사가 주인공이며 특정 요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만화는 수도 없죠.
하지만 그동안은 주로 주인공의 직업과 소재가 특이한 배틀물 수준에 머무른 작품이 많았었던 반면, 현재의 관찰형 예능에 먹방이 결합된 TV 예능처럼 단순한 음식 소개와 배틀에서 벗어나 <<심야 식당>> 처럼 음식을 소소한 일상, 인간 드라마와 결합시킨다던가 <<고독한 미식가>> 처럼 평범한 음식을 실존하는 평범한 식당에서 평범하게 먹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로 전개하는 식의, '음식을 소재로 한 소소한 일상계'가 큰 유행을 몰고 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작품들 외에도 영상화 된 작품만 따져도 <<하나 씨의 간단 요리>>, <<와카코와 술>>, <<라멘 너무 좋아 코이즈미 씨>>, <<음식의 군사>> 등 수도 없을 정도로 지금도 그 인기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상계 음식 소재 만화가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현재 음식 만화에서 작지만 확실한 인기를 몰고 온 분야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건 바로 판타지 세계관과 음식 소재를 결합한 '이세계 미식물'입니다. 쿠이 료코가 <<던전 밥>> 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장르는 <<던전밥>> 에서처럼 이세계의 몬스터를 재료로 친숙한 음식을 만든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여, <<이세계 주점 노부>> 등 처럼 현대 (그 중에서도 일본) 요리를 그러한 음식을 잘 모르는 이세계 주민에게 소개한다던가, 아예 현대 일본인이 이세계로 이동하여 자신의 요리 실력으로 현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맛없는 밥 엘프와 유목생활>>, <<이세계에서 카페를 개점했습니다>> 등으로 아이디어가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세계'가 아니라 현대 요리사가 전국시대로 타임 슬립한다는 <<노부나가의 셰프>> 와 같은 이야기도 포함될 수 있겠죠.

서론이 좀 길었는데, 이 만화는 이러한 '이세계 미식물' 장르에 속한 작품입니다. 그 중에서도 원조 <<던전 밥>> 의 특징을 많이 따르고 있죠. 용을 사냥하는 용 사냥꾼들이 용을 재료로 이런저런 친숙한 음식들을 만든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이세계 전문직 종사자의 평범한 식단을 테마로 했다는 점에서는 '일상계 음식 만화'의 한 범주로 볼 수도 있을테고요. 

하지만 단순히 아류작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포룡선 퀸자자호를 타고 용을 사냥하는 사람들과 사냥 과정에 대한 디테일 - 용이라고 불리우긴 하지만 크툴루 신화 속 크리쳐가 연상되는 "용", 고전적인 비행선인데 용을 잡기 위한 다양한 장비 (작살총, 봄랜스, 창과 이런저런 와이어, 후크들, 오토자이로)를 갖춘 퀸자자호, 포룡 과정에서 하늘에 떠 있는 퀸자자호 내부에서의 식사와 빨래와 같은 생활 묘사 등등등 - 이 펜터치 중심의 고전적이면서도 빼어난 작화로 잘 그려져 있어서 큰 재미를 선사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용 사냥꾼이 용을 사냥하고 그 부산물을 조리해 먹는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많았던 1권과는 다르게 2, 3 권 부터는 세계관이 긴 호흡의 이야기로 확장되어 나갑니다. 단편으로 나누어져 있긴 하지만 2권은 용의 거래로 먹고 사는 마을 '퀀 시'에 기항한 퀸자자호가 마을에서 깨어나 폭주하는 용을 사냥하는 이야기에 승무원 지로의 짤막한 사랑 이야기가 곁들여지며, 3권은 사냥 중 지상으로 떨어진 타키타가 지상의 사냥꾼에게 구조된 후, 자신을 따르게 된 새끼 용을 무리에게 돌려보내 준다는, 한 권에 한 편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구성이거든요.

허나 이러한 변화는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세계 미식물' 을 보고 싶었던 것이지 일상계 이세계 사냥 판타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거든요. 이야기가 딱히 새롭거나 재미있었던 것도 아니며 전형적인 설정과 이야기인 탓도 크고요. 용잡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 어우러지는 2권은 조금 낫지만 3권은 전형적인 나우시카류의 이야기에 불과하잖아요. 이러한 전형적인 전개에 고기에 푹 빠진 미카는 <<던전밥>>의 라이오스와 유사한 등 퀸 자자호의 승무원들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 뻔한 캐릭터라는 점이 더해지니 식상해도 너무나 식상할 따름이었습니다.

용 고기가 무슨 색깔이며 구울 때는 어떻고, 날로 먹으면 어떤지 등 기본적인 특성조차 소개되지 않고 이런저런 요리를 선보인다던가, 뒤로 가면 갈 수록 특별한 요리에 대한 설명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전개를 보면 판타지 구루메 만화를 그려달라는 편집부의 요구를 따르는 척 하면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그려나가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뭐 이런 류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많을테니까요. 저는 아니었지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3권까지는 그래도 어찌어찌 읽기는 했는데, 다음 권을 읽게 될 지는 잘 모르겠군요. 

그러고보면 저와 같은 이세계 미식물 팬을 위해서 지브리에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를 활용하여 비슷한 컨텐츠를 내 놓으면 좋을 것 같네요. 나우시카 세계관에서 오무를 가지고 만드는 요리 등이 등장하면 참 재미있지 않을까요? 서둘러라 지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