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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9

소원의 집 -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 하창수 : 별점 2점

소원의 집 - 4점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하창수 옮김, 이승수 해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해/바다출판사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스무번째 책. <정글북>으로 유명한 키플링의 말년 단편들이 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얇고 짤막하고 만듬새도 예뻐서 부담없이 가끔 집어들고 읽곤 하는데.... 대체로 내용이 어렵고 대중적이지 않으며 잘 와닿지 않았더랬죠.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기로는 역대 제가 읽은 시리즈 중에서는 최고에요. 그래도 다른 책들은 한두편이나마 쉽거나 대중적인, 흥미를 끌만한 작품이 있었는데 그렇지도 않고 말이죠. 덕분에 두께는 얇지만 읽는 시간은 왠만한 장편급으로 시간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작품은 표제작인 <소원의 집> 입니다. 한 여인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그의 고통을 자신이 받게 해달라는 소원을 혼백이 살고있는 소원의 집에 빈 뒤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죠. 애시크로포트 부인과 피틀리 부인이라는 두 할머니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 특징으로, 소원의 집에 대한 반전을 기대했는데 의외로 암이라는 과학적, 의학적 반전이 등장한다는 점만큼은 인상적이었어요. 소원의 집에서 빈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기발하긴 했으니까요.
그리고 <알라의 눈>에서 지옥을 묘사하기 위해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관찰한다는, 역시나 과학적인 발상은 괜찮았어요. 조금 더 흥미진진하게 썼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허나 그 외에는 제가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으며, 왜 이러한 내용을 썼는지에 대해서도 알기 어려워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군요. 때문에 별점을 주자면 2점입니다만, 저도 잘 모를 작품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기에 그리 공정한 점수는 아니긴 합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015/05/28

광기의 왕국 - 프리드리히 글라우저 / 박원영 : 별점 2점

광기의 왕국 - 4점
프리드리히 글라우저 지음, 박원영 옮김/레드박스

<하기 리뷰에는 내용 일부,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퇴가 머지 않은 노형사 슈투더에게 찾아온 갑작스러운 의뢰. 그것은 란트링겡 정신병원 원장 울리히가 사라진 날 환자 피에털렌이 탈출한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것.

독일산 추리소설. 독일산 추리소설은 정말 오랫만이네요. 유럽산 추리소설은 별로 취향이 아니었고, 넬레 노이하우스 작품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아 딱히 찾아 읽어볼 생각은 없었는데 국내 최고의 추리애호가 커뮤니티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 자리를 빌어 이벤트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스위스 베른 주 경찰청 소속으로 정년퇴직을 앞 둔 노형사 슈투더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의 두번째로, 최근에 발표된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추리소설 황금기라 할 수 있는 1936~41년 사이에 발표된 작품이더군요. 제가 워낙 고전 황금기 걸작을 좋아하기에 읽기 전에는 굉장히 기대가 컸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고전 본격 황금기 시절 장편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정교한 플롯이나 트릭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인간 심리에 기반한 일종의 수사물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북구 유럽 계열 작품이랄까요?
물론 이런 작품을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에요. 일단 슈투더 형사가 사건에 뛰어들어 진행되는 모든 수사 과정은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냥 증언을 듣고, 그 증언에 따라 무언가를 수사하고,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리고 무언가를 또 찾아내고... 하는 전통적이고 우직한 수사만 있을 뿐이죠.
사건을 해결하게 된 것도 순전히 우연에 불과합니다. 길겐 간호사의 집을 찾아간 것은 순전한 우연, 거기서 이르마 바젬과 피에털렌의 밀회를 목격한 것도 우연, 카플라운이 유츨러를 죽이려 하는 것을 목격한 것도 우연... 게다가 위험한 산길을 걷던 중 경비원 드라이어가 카플라운을 죽이고, 그 드라이어마저 체포 도중 차에 치어 죽는다는 마지막 결말은 무슨 개그물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또 슈투더가 라두너 박사와 그의 아내 앞에서 벌이는 추리쇼, 즉 마지막 상황과 카플라운의 증언 등을 통해 추리해 낸 결론은 진상이 아니며 라두너 박사가 말한 것이 진상이라는 것도 문제에요. 탐정은 수사관이자 정보제공자에 불과하며 진짜 탐정은 의뢰인이라는 발상 자체는 혁신적이지만 공정하지 않기에 정통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죠. 아울러 범인은 세속적인 동기, 즉 돈이 목적이었던 드라이어라는 진상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원장과 대립하며 환자에게 수상쩍은 치료를 하여 매일 밤 환자가 죽어나가게 만들고, 원장의 돈지갑까지 가지고 있으며 수족처럼 부리는 환자와 직원이 있는 악의 축 라두너 박사가 사실은 너무나 좋은 인물이었으며, 심지어는 탐정이었다!라니 비약이 너무 심하잖아요.

내용, 설정면에서의 오류도 눈에 뜨이는데 왜 라두너 박사가 슈투더를 불렀는지, 애초에 왜 경찰이 원장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는지 등이 그러합니다. 특히나 라두너 박사가 모든 진상을 꿰뚫었다는 점에서 슈투더를 부른 것은 불필요한 행동에 불과했어요. 그의 말대로 길겐 등 불필요한 희생만 초래했을 뿐이거든요.

물론 인상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정신병원이 주요 무대로 등장하는 작품답게 "광기의 왕국"으로 통칭하여 정신병에 대해 풀어놓는 부분은 좋았으며 그 중에서도 피에털렌 캐릭터 설정만큼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본인만의 논리로 범죄를 저질렀는데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어서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정말로 미쳐버렸다는 캐릭터인데 이렇게 주변인물로 소모되기 아깝더군요. 그 외의 정신병 관련 다양한 이론과 치료방법들의 디테일도 잘 살아있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인간 심리, 정신병에 대해서 고심한 작가의 노력은 느껴지지만 좋은 추리 소설, 아니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는 어렵네요. 작중 슈투더 형사의 표현인 "아 도대체 언제 이 장광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대로 정신병 이야기를 비롯한 여러 묘사가 지나치게 길고 장황하게 묘사된 감도 크고요. 인간 심리 묘사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만 하겠지만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2015/05/27

알고나 먹자 - 전호용 : 별점 2.5점

알고나 먹자 - 6점
전호용 지음/글항아리

딴지일보에 연재되었다는 음식 관련 컬럼 모음집. 존경하는 이웃 블로거 밥과술님이 추천해 주셔서 관심이 가던 차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호평이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재미도 있고 장점도 많은 책인데 일단은 식재료 에세이라고 불러야 될 정도로 재료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부제인 "본격 식재료 추적 음식문화 박물지"에 어울리는 디테일로 된장, 고추장에서 시작해서 고기와 각종 야채, 곡물까지 대부분의 한국 음식에 사용되는 재료를 일람하고 있거든요. 온갖 농산물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주고 김장이라는 큰 주제로 중간 부분을 마무리하고 있는 목차도 좋고요.
그리고 저자가 실제 농사일을 해 왔던 경험을 토대로 썼다는 점에서 다른 음식 관련 컬럼, 에세이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 책만의 굉장한 장점이기도 합니다. 글 줄 하나하나마다 저자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게 흡사 동네 할아버지가 해 주는 재미난 농산물 관련 엣 이야기 같기 때문이에요. 순수 한국 기준의 내용들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참고로, 경험을 토대로 했기에 다른 책들과는 상당한 시각차를 보인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황교익같은 전문가가 염전은 허구이며 갯벌을 썩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 것에 반해 이 책에서는 경험에 기인한 나름의 긍정적인 부분, 즉 젓갈이 좋았다... 라는 이야기를 해 주는 식으로 말이죠. 장점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경험자의 의견으로는 충분히 받아들일만 한 것 같아요.
저자의 농사 경험 및 실제 요식업에 몸을 담았던 경력에 토대를 둔 노하우를 소개하는 것도 괜찮은 점입니다. 젓갈을 사러 가면 양념 젓갈은 사지 말라는 것, 이유는 양념 젓갈은 그 상태로만 먹어야 하고 다른 요리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500그램 한 통 사기 어렵다는 것이죠. 젓갈집 들어가서 이거저거 하나씩 먹어보고 "이거 양념 안 한 것도 있어요?"라고 물어보고 있다고 하면 그건 그 집에서 담근 젓갈일 것이라는 것도 다른 곳에서 알기 어려운 좋은 정보고요. 그리고 저자가 곰소에서 산 바지락젓을 이용한 계란찜과 황새기젓의 살을 발라 다진 뒤 청양고추, 마늘을 다져 넣고 발사믹 시초를 넣은 양배추 쌈장의 레시피가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개인 경험담에서 시작해서 음식 관련 정보 소개, 그리고 레시피로 이어지는 완벽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흔한 음식 관련 서적에서 많이 소개되지 않는 소소한 것들에 대해 자세하게 파고든 것도 큰 장점이에요. 마늘이나 생강, 각종 향신료, 콩과 잡곡 등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알려준 책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거든요. 처음 접하는 내용들이라 이래저래 생각할 거리가 많기도 한데 다른 곡식을 심었더라면 배는 주리지 않았을텐데 구태여 쌀을 심은 이유에 대해 논하는 부분이 그러하죠. 쌀은 마약이었다!라는 결론인데 참신했어요. 겉보리가 꽁보리라던가, 고량주는 수수로 담근다라던가, 전래동화 <해님 달님>의 호랑이가 떨어진 곳이 수수밭의 수수대를 날카롭게 잘라낸 밑동이 있던 자리라는 것, 그래서 호랑이 피가 수수대에 뭍은 것이 아직 남아 수수대 밑동이 붉다는 전설같은 것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시시콜콜한 여러가지 정보들을 제공해 주는 것도 기대에 값하는데 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의 소개라던가 늙은 고기가 싸지만 보쌈, 수육에는 좋다는 이야기나 집에서 쓰는 칼에 대해 알려주는 등 다른 곳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정보가 가득합니다.

그 외에도 지나치게 우리 농산물을 강조하지 않는 것도 독특했던 점이에요. 중국산 마늘은 씨알이 굵고 매운맛, 향이 강하니 고기 요리나 볶음 요리를 할 때 넣으면 좋다는 것은 아주 유용한 것이죠  타박만 할 게 아니라 용도에 맞게 쓰라는 것, 암요. 맞는 말이고 말고요.

아울러 전형적인 딴지일보 마인드가 엿보이는 것도 다른 유사 에세이와의 차이점으로,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토대로 자본주의, 계급사회를 비판하는데 설득력 충분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 자체가 불편한 독자도 분명 있겠죠. 그리고 농산물에 대한 불안을 토로하며 GMO 농산물을 비롯하여 고기 소비, 물고기 양식 등 총체적인 것에 대한 비난은 그 해결책이 없다는 점에서 조금 아쉽긴 했어요. 생협, 또는 직거래 장터와 같은 단기적인 방안이 크게 실효를 거두리라 생각되지 않으며,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음식 관련 서적으로 보기에는 학술적 근거 대신 개인 생각과 경험이 많이 들어가 있어 적절치 않으며, 요리 서적으로 보기에는 레시피가 거의 없기에 실망하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부분도 레시피가 부족하다는 것으로, 간단한 레시피도 몇가지 소개되고 있긴 하나 실제 집에서 해 볼 수 있을 만큼의 디테일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관심있으면 따로 찾아보라는 뜻일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있는 글들이라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만 단점도 있고 일부 기대와 다른 부분 때문에 감점합니다. 재료보다는 조금 더 "요리", "음식" 쪽으로 포커스를 옮긴 후속작이 나와주었으면 하네요.

2015/05/26

산적 다이어리 1 - 오카모토 켄타로 / 주원일 : 별점 2점

산적 다이어리 1 - 4점
오카모토 켄타로 지음, 주원일 옮김/애니북스

저자 오카모토 켄타로가 고향인 오카야마 현에서 사냥꾼 생활을 하는 동안의 에피소드를 그린 에세이 만화.

왜 사냥꾼이 되었는지에서부터 시작하여 사냥꾼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즉 총기 면허를 따고 총을 구입하고 총기 소지 허가를 신청하고 등의 과정이 실제 사냥을 하는 체험과 뒤섞여 전개됩니다. 사냥 이야기는 사냥의 시작에서부터 사냥한 동물을 조리해 먹는 것까지 일관된 패턴의 이야기고요. 그러나 단순 반복은 아니고 사냥감에 따라 사냥법, 조리법이 다르고 가끔은 추운 날씨 속 물에 빠진 오리를 건져 오는 것 같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는 등 소소한 변화가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허나 개인적으로는 사냥을 한 동물을 요리해 먹는, 와일드하고 독특한 구루메 만화로서의 재미가 더 컸습니다. 법적으로 한국과 다른 일본에서의 수렵 활동 이야기는 아무래도 와 닿기 어려운 부분이 많으니까요. 제가 관심이 있거나 흥미있는 분야도 아니고요.
그에 반해 주인공이자 저자 오카모토 켄타로는 취미가 아니라 정말 먹으려고 사냥을 하는 인물로 첫 사냥물인 멧비둘기라던가 토끼, 오리는 그렇다쳐도 뱀, 까마귀까지 무조건 직접 요리해 먹습니다. 때문에 등장하는 요리들 모두 설득력이 넘칠 수 밖에 없어요. 맛 역시도 직접 먹어본 사람의 증언이니만큼 마찬가지고 말이죠. 그래서 평범한 요리는 물론 살모사 구이 (소금, 후추 살짝)라던가 까마귀 꼬치구이 같은 독특한 요리까지 등장하는데 모두 맛에 대해서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은 잘 살아 있습니다.
아울러 비록 크게 와 닿지는 않았지만, 총기인 공기총이라던가 사냥 방법에 대한 정보도 충실하게 제공되고 있어서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상당히 재미있을 것입니다. 특히 까마귀 사냥을 위해서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짜내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그림이 너무 별로에요. 아무리 에세이 만화라고는 해도 사냥, 요리가 중심이라면 그러한 소재에 걸맞는 디테일한 묘사는 기본이 되어야 할텐데 말이죠. 또 정보 제공에만 충실할 뿐 별다른 재미요소가 없다는 것도 감점요인입니다. 한마디로 케이블 TV의 낚시 채널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본인에게는 무척이나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이겠지만 TV로 그걸 재미있게 보는 시청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독특하긴 하나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과연 멧돼지를 잡았을지 조금 궁금하기는 하지만 후속권을 구입하게 될 것 같지는 않네요.

덧 : 오카모토 켄타로가 한국 사람이라면 청설모를 사냥해도 요리해 먹었을 것 같은데 과연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2015/05/22

퍼펙트 게임 (2011) - 박희곤 : 별점 2점

PerfectGAME.jpg

2011년에 개봉한 야구 영화. 최동원, 선동렬이라는 두 대투수의 잊을 수 없는 15이닝 연장 무승부 완투 승부를 소재로 만든 영화입니다. BTV 설치 기념으로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완전 실망스럽더군요. 도대체 뭘 생각하고 만든 것인지 알 수가 없거든요. 이 영화의 핵심은 두 대투수의 엄청난 투수전 한 경기죠. 때문에 당연히 두 투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어야 합니다. 즉
선동렬 - 지금이 아마츄어 시절부터 우상이었던 최동원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그 때인가?
최동원 - 고질적인 어깨부상, 이제 최고 투수는 선동렬인가? 아니면 아직 나인가?
이러한 고민이 보여지고, 이것들에 의해 괴로워하고 또 성장하는 모습이 나왔어야 해요. 여러가지 문제에 시달리다가 치열한 승부를 통해 한단계 높은 곳으로 도약한다는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면 충분했을 것입니다. 야구 팬들도 이러한 내용이면 만족했을테고요.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핵심 이야기는 뒷전이고 온갖 주변 에피소드에 시간을 낭비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박만수 캐릭터와 관련 에피소드죠. 해태 타이거즈의 무명 백업 포수로 야구라는 꿈 하나만 가지고 최저 생활비에도 모자른 연봉을 받으며 버티는, <공포의 외인구단>의 뜨기 전 백두산같은 인물인데 저는 이 영화에 이러한 인물이 왜 나오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한국 영화의 고질병인 억지 신파, 억지 감동을 주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에 불과하다 생각됩니다. 실존인물도 아니고 말이죠. 물론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에 가상인물이 등장해서 감초 역할을 하는 것이 뭐 아주 없는 사례는 아니지만 이런 쓰잘데 없는 인물이 나와서 흐름을 다 깨먹는건 아주 잘못된 것으로 보여요.
그나마 박만수는 야구 선수로 영화에 아주 중요한 역할 (동점홈런)을 담당하기라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스포츠지 여기자에요. 상당한 비중으로 온갖 장면에 출연하는데 당쵀 왜 나오는지를 알 수가 없더군요. 의상이나 분장도 80년대로 보이지 않아 영 몰입도 안 되었고요.
그 외에도 이 게임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하는 에피소드, 마지막에 영호남이 하나되는 감동의 도가니탕도 무리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캐스팅의 문제도 지적하고 싶어요. 그 중에서도 양동근. 저는 양동근의 연기는 죤 웨인 스타일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영화에서든 그 인물이 된다는 메소드 액팅과 반대되는, 어떤 영화에서 어떤 인물을 연기하던 죤 웨인이라는 연기 스타일이요. 제가 본 양동근 출연작에서의 양동근이 연기한 캐릭터는 모두 동일 인물이라 여겨질 정도의 외모, 발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약간의 사투리만 구사할 뿐 결국 양동근이더라고요. 문제는 그가 연기한게 야구 팬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선동렬"이라는거...  마찬가지 이유로 손병호의 김응룡 감독 연기도 완전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조승우의 최동원 연기와 최동원 중심의 롯데 이야기는 괜찮은 편입니다. 외모부터 발성 등 기본적인 캐릭터가 꽤 그럴듯하고 허구이기는 하나 팀 내에서 김용철과의 갈등, 고질적인 어깨 부상으로 인한 고민 등 야구 중심으로 드라마가 잘 잡혀 있거든요.
강현수라는 가상의 인물과 그의 아버지 강감독 에피소드가 뜬금없기는 하지만 최동원의 인간성을 부각시키고 김용철이 그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니까요.
야구 시합의 열기, 긴장감은 잘 그려내었기에 이러한 롯데 - 최동원 이야기처럼 해태 - 선동렬 이야기를 구성했더라면 영화가 훨씬 좋았을텐데 안타깝기까지 하네요. 아니면 차라리 최동원이 모든 것을 불살랐던 1984년 한국시리즈를 영화로 만드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야구 팬으로서 이런 영화가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기본적인 영화 완성도의 문제가 있어서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슈퍼스타 감사용>이 아직까지는 국내 야구 영화 중 최고인 것 같군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는데 저같은 가벼운 야구팬에게도 어필할 수 없는 야구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건 애시당초 무리였으리라 생각됩니다.

2015/05/20

멀리 돌아가는 히나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5점

멀리 돌아가는 히나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엘릭시르

고전부 시리즈 네번째. 모두 일곱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단편집입니다. 가을, 겨울을 거쳐 봄방학에 이르는 시기를 다루고 있죠.
각 이야기별 줄거리 및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해야 할 일은 간략하게>
가미야마 고등학교 7대 불가사의 중 첫번째라는 "비밀클럽의 권유 메모"를 찾는 내용으로 소박한 학교 관련 일상계 소품. 추리적으로도 대단치 않습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시체를 숨기려면 전쟁터에"라는, 브라운 신부 단편 ("브라운 신부의 옛날 이야기")에서도 인용되었던 격언이 핵심입니다.
그래도 이야기 서두에 등장하는 음악실 괴담에서부터 제목과 일맥상통하는 호타로의 행동이 잘 연결되는 결말 부분의 반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상계도 이런 반전이 가능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에요. 사토시도 의외로 정곡을 찔러서 만만한 남자가 아니라걸 알려주고요. 여기에 음악실 괴담까지 해결해주기 때문에 여러모로 풍성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사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추리지만 이런게 고등학교 무대에 적합한 트릭이겠죠. 여기가 뭐 부동고교도 아니고.
한마디로 말해서 일상계 왕도를 걷는 작품이에요. 시리즈 팬에게 여러가지 재미를 선사해 주기도 하고 말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대죄를 짓다>
수학선생님이 진도를 착각한 이유에 대한 아주 짤막한 이야기.
진상은 소문자 a와 d를 착각했다는 것으로 사소하고 별거 아닙니다. 그냥 화를 낸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지탄다의 생각을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하지만 그것도 뭐 대단한건 아니고... 과연 화를 내는 것도 에너지 낭비인건지 좀 궁금하네요.
별 내용이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정체 알고 보니>
고전부원들이 온천 여행을 떠나는데 숙소인 여관에서 지탄다와 마야카가 목매달아 죽은 시체의 유령을 본다는 이야기.
<고전부> 시리즈 추리의 핵심, 즉 "신경쓰이는" 지탄다를 납득시키기만 하면 된다는게 잘 드러납니다. 진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추리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전달되는 단서들을 조합하여 나름의 합리적으로 설명해주기는 합니다. 유카타를 말리기 위해 헤어드라이어를 쓰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뭐 그런 변수까지 다 등장시키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테니...
<고전부> 시리즈의 핵심을 꿴다는 측면에서 꼭 봐야 하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기억이 있는 자는>
"10월 31일, 역 앞 고분도에서 물건을 산 기억이 있는 자는 지금 즉시 교무실 시바자키한테 와라." 라는 교내 방송에 대한 호타로의 추론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누군가가 한 말에 대한 추리를 통해 의외로 숨겨져 있는 범죄에 대한 진상을 파헤친다는건 "9마일은 너무 멀다"를 떠오르게 합니다. <9>하지만 이 작품에서 진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호타로가 지탄다를 납득시켜 승부에 이기기 위한, 순수한 추론일 뿐이거든요.
몇 가지 증거, 즉 방과 후에 호출 방송을 한 것, 학생지도부가 아니라 교감이 불렀다는 것, 10월 31일이라고 날짜를 지칭한 것, 방송을 두 번 반복하지 않은 것 등만 가지고 추론을 이끌어내는 호타로의 솜씨는 인상적이지만 진상이 위조지폐와 관련된 범죄라는 것은 비약이 너무 심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새해 문 많이 열려라>
새해 참배에서 창고에 갇히게 된 호타로와 지탄다가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이는 소동극. 너무 추운 날에 남녀 단 둘이서 신사 창고에 갇힌다는 만화스러운 전개를 가진 작품.
궁지에 몰리고 별다른 수단이 없는 둘이 가진 몇가지의 소품을 최대한 활용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펼쳐지는, 일종의 모험담이라고 봐도 되겠죠? 이전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팥을 담은 주머니 양 끝을 묶어 전달했다는" 고사를 효과적으로 써먹는 것도 좋았습니다. Side라는 부제로 구분하여 이바라와 사토시 시점, 호타로와 지탄다 시점을 번갈아 보여주는, "이니시에이션 러브"같은 전개도 독특했고요.
그러나 유실물이 무녀 아르바이트 중인 마야카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등 운에 의지한 작전이라는 것, 창고에 갇힌 시점에서 지탄다의 체면을 그렇게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었을지 잘 납득이 안된다는 것, 무엇보다도 <고전부> 시리즈의 매력인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계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은 약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제 초콜릿 사건>
이바라 마야카가 사토시에게 주려던 초콜릿이 고전부실에서 도난당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의 작품.
내용 자체는 정말 별게 없지만 고등학생의 순진하고 풋풋한 사랑이야기, 즉 집착하지 않는 것에 집착하면 더 편한 마음으로 지내던 사토시가 마야카에게 집착해야 하는 딜레마를 다룬 이야기라 생각하고 보면 괜찮은 작품.
하지만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별로라 잘 와닿지는 않더군요. 뭔가 좀 더 말랑말랑하고 애틋하게 표현하는게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특이한 캐릭터를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이긴 했지만, 이런 류의 평범한 일상계 사랑이야기에는 적합한 캐릭터들은 아닌것 같아요. 일상계라면 보다 일상계다운 주인공이 나와 주는 것이 훨씬 좋았을 거에요.
또 에너지 절약 주의, 즉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하지 않는다라는 호타로만큼이나 특이한 사상을 가진 사토시같은 고등학생이 실존할 것이라고 생각되지도 않기도 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추리와 내용, 캐릭터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그나저나 책 뒤 해설을 보니 작가는 일종의 도서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봐도 도서 추리는 아닌데...

<멀리 돌아가는 히나>
표제작. 제목 그대로 히나 축제에서 히나 인형(으로 분장한 지탄다)이 다리에 생긴 문제로 멀리 돌아가게 된 경위를 밝혀내는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 
그러나 이 추리는 곁가지일뿐이고 내용은 히나 인형 옆에서 우산을 받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호타로와,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밝히는 지탄다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드러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전 편의 사토시의 심리묘사보다는 호타로 묘사가 괜찮아서 그런대로 괜찮게 읽혔습니다. 사토시는 3인칭이고 호타로는 1인칭인 덕분입니다. 훨씬 말랑말랑하고 귀엽고, 여튼 좋았어요.
아울러 히나 인형이 돌아가게 된 계기 역시 일상계다운 괜찮은 진상이였습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럴듯했거든요. 공정한 정보제공도 돋보였고 말이죠. 별점은 3점. 묘사, 전개, 추리적인 부분 모두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결론적으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 일상계 작품다운, 평범하게 재미있는 수준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일상계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 챙겨볼만한 시리즈임에는 분명해요. 이 시리즈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호타로와 지탄다의 관계가 한발자욱 더 나아갈 수 있을지 너무 너무 궁금해집니다. 후속권이 빨리 나와주면 좋겠네요.

2015/05/18

어이없게도 국수 - 강종희 : 별점 2점

어이없게도 국수 - 4점
강종희 지음/비아북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며 임원까지 될 정도로 잘나가는 워킹맘이었다가 집에 눌러 앉은 저자가 한가한 틈을 이용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국수들에 대해 한토막씩 써 내려간 음식 관련 수필집.
요리사도 아니고 음식 전문가도 아닌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다지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국수별로 짤막하게 자기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먹었는지라던가 관련된 자신만의 일화를 써 내려간 글들이에요. <오무라이스 잼잼>에서 음식 관련 상세 설명 대신, 조경규만의 일화가 중심인 만화다! 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이 책의 국수 삽화도 조경규씨가 그렸더군요. 인연이라면 인연이랄까. 몇몇 글들은 - 대표적으로는 짜장면, 구포 국수, 니신 소바 등을 들 수 있습니다 - 관련된 시까지 인용하는 등 설명도 제법 충실하지만 비중으로 따지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과 국수를 엮은 구성이나 저자의 글솜씨가 나쁘지는 않아 재미있게 읽히며, 무엇보다도 누구나 떠올릴법한 평범한 국수들이기에 해당 국수에 대해 저만의 경험과 추억 등을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 아주 좋았어요. 마침 생각나는대로 저만의 국수 일대기를 몇개 적어본다면,
  1. 시원한 국물하면 -안양 관양동 바지락 칼국수.
  2. 더운 여름은 냉면이 최고지. 딸아이가 좋아하는 - 산본 투데이몰 지하 "후원" 물냉면과 육수.
  3. 아버지 학생 시절부터도 유명했다는, 하지만 별 맛은 없더라 - 부산 보수동 완탕.
  4. 밤에 아내와 야식으로 먹는 시원한 국물에 계란 하나 깨넣은 라면.
  5. 아내가 딸아이를 위해 만드는 -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
  6. 돈내고 먹는거보다 뛰어난, 회사 식당 진리 메뉴 - 해장에는 얼큰 백짬뽕.
  7. 예전 회사 앞 중국집에서 점심마다 먹었더랬지 - 사천탕면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꽤 재미난 주제이니 생각날 때마다 추가해 봐야겠군요.

그런데 문제라면, 작가의 이러한 개인적인 일화들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그냥 바쁜 직장 생활 관련 이야기라면 모를까 저자의 어린 시절이나 특정 지역 한정 이야기, 혹은 워킹맘의 비애 같은 것은 저한테 와 닿을리 없는건 당연하겠죠. 직장 생활 이야기 역시나 저자의 직장 경력이 기자, 잡지사나 마케터라는 전문성이 필요한 유니크한 업종이라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습니다만....
또 국수들에 대해 설명이 실린 에피소드들도 거의 대부분이 이 바닥에서 유명한 서적들에 의존하기에 새로운 것을 얻거나 인상적이었다고 하기 어려워요. 진주냉면 이야기처럼 직접 발로 뛰어 알아낸 정보나, 접해보지 못한 서적을 바탕으로 한 글들도 몇편 있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요.
무엇보다도 본인 경험 위주의 일기, 신변잡기류의 글들이라 저자의 명성이나 경력에 마케팅이 많이 기대야 할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성공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와 제가 굴짬뽕을 먹은 경험에 대한 수필을 각각 썼을 때 일반 대중 독자들이 어떤 글을 선택할지도 자명하잖아요? 글의 수준이나 완성도가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빼어난 글로 보이지도 않고 말이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가벼운 읽을거리, 소일거리로 본다면 괜찮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수 관련, 아니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 견문록> 같은 다른 음식 관련 수필과 비교해 본다면 국수 관련 컨텐츠면 무엇이든 찾아보는 매니아라면 모를까 구태여 선택할만한 가치, 재미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네요.

덧 : "구포 국수"가 정말 맛있다고 소개되고 있더군요! 아버님 고향이자 현재 부모님이 거주하고 계신 곳인데 전혀 몰랐네요. 다음에 부모님 댁에 방문하면 꼭 먹어봐야 겠습니다.

2015/05/13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4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4 - 6점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고서 전문 헌책방 비블리아를 무대로 한 연작 옴니버스 추리 단편집의 네번째 권.
다른 시리즈와는 다르게 책 한권이 하나의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것이 특이했던 작품입니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및 크게 세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동일하지만 세개의 단락이 하나하나 독립적인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전부 에도가와 란포 매니아 가야마씨의 내연녀 기시로 게이코가 자신이 물려받은 소장품을 비블리아에 파는 대신, 그가 남긴 금고를 열어달라는 의뢰를 받아 해결해 주는 큰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는, 어떻게 보면 한권짜리 긴 장편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각 단락별로 짧게 소개해 드리자면, 첫번째 단락인 <외딴섬 악마>는 의뢰에 대해 소개되는 것이 주요한 내용입니다. 도입부 성격이라 당연히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으며, 고작해야 의뢰인 기시로 게이코가 시오리코를 테스트하는 것이 전부에요. 셜록 홈즈 단편에서 서두에 홈즈가 의뢰인을 추리해내는 추리쇼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문제는 테스트가 커버를 씌워 놓은 란포의 작품 초판본을 맞춰보라는 것이라 일반 추리물로 보기 어렵다는 점이죠. 주어진 단서를 가지고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는 추리물이지만 일반인은 작중 고우라의 반응 정도만 가능할 뿐,. 고서 전문가 외에는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니까요. 당연히 시오리코는 쉽게 맞춰 버리기는 합니다만.

두번째 단락 <소년 탐정단>은 금고를 열기 위해 필요한 열쇠를 내연남인 가야마씨 본가에서 찾는 내용.
<소년 탐정단>의 이야기들과 흡사한 보물 찾기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소개되는 책과 본편 내용이 비슷하게 일치하는 다른 <비블리아> 시리즈 단편과 유사합니다. 3권에서 시오리코와 문제가 있었던 고서당 히토리 서방의 주인과 가야마 나오미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를 해결해 주는 일상계스러운 내용도 나쁘지 않았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오리코씨가 활약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는 것이 단점이네요. 가야마 나오미를 도발한 뒤 보물이 어디 있는지 찾게 만든다는, 홈즈 시리즈인 <보헤미아의 스캔들>과 동일한 트릭이 사용될 뿐 특별한 추리가 선보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초판본이 따로 숨겨져 있었다는 반전이 있기는 한데 특별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은 정도고요.

마지막 단락인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는 금고를 여는 세가지 장벽 중 마지막 남은 하나인 히라가나 암호를 맞추는 트릭이 핵심입니다. 또 시오리코의 어머니 지에코가 전면에 등장하여 "과연 금고에 뭐가 들었을지?"를 주제로 시오리코의 승부를 벌이는 내용이라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았어요.
무엇보다도 가야마씨 부친의 과거 직업과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원고에 얽혔던 사건을 엮어 이만큼이나 픽션을 짜 맞춘 것도 대단한 능력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랬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추리 애호가로서 당연한 일이겠죠. 가야마씨가 어떻게 썼을지도 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앞선 단락들 - 특히 첫 단락과 - 과 동일한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일반 추리물로 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란포의 데뷰작 <2전 동화>에 사용된 소품 및 암호, 그리고 란포가 초판 발행 시 범했던 실수까지 인용한 란포 매니아, 아니 란포광(狂)을 위한 트릭이거든요.
또 제가 싫어하는 시노카와 지에코가 실제로 등장해서 의도를 드러낸다는 내용은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네요. 시오리코를 자신의 길로 유혹하기 위한 의도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기는 합니다. 문제는 완벽한 최종 보스로 그려진 것에 비하면 계획이 너무 즉흥적이고 치밀하지 못하다는 것이죠. 이럴 거였으면 본인이 금고를 연 뒤 원고를 갖고 도망치는게 시오리코를 더 자극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란포 작품들과 함께 흘러가는 이야기는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시리즈 최초로 주요 등장 작품을 다 읽은 것은 처음이라 더욱 반갑기도 했고요. 허나 추리적으로는 건질게 너무나 없기에 감점합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를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말으셔야 겠지만 단품으로서의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덧 1 : 제가 가지고 있는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2,3에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가 <누름꽃과 여행하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네요. 읽을 당시에는 그렇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죠. 마침 시오리코씨가 극찬한만큼 다시 한번 읽어보았는데 역시나, 딱히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한게 아닌가 싶거든요. 어떤 점이 그렇게나 좋았을까요?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덧 2 : 제가 가지고 있는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2,3 역시 절판되었네요.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죠?

2015/05/12

큐이디 Q.E.D 49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큐이디 Q.E.D 49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 증명종료 49
Q.E.D. 증명종료 49 (제 리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리즈. 이번 권에는 홍콩 흑사회 조직이 관련된 <무관계한 사건>, 그리고 잔잔한 일상계 드라마 <러브 스토리> 두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강력사건 1건에 일상계 1건이라는 황금비율이죠. 상세한 내용 및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무관계한 사건>
취업 준비생 도마시노 쿄우헤이는 판에 박힌 대답을 반복하여 면접관들에게 합격을 애원하지만 제대로 되지는 않는다.
한편, 홍콩 흑사회 조작인 청해의 두목 사미 쵸우가 카지노 호텔 사업으로 문제가 있던 16M의 두목 스탄레 라우와의 미팅 자리에서 암살당한다. 기이하게도 보디가드들로 둘러싸인 "인의 장벽" 안에서 살해당한 것.
그 후 알바 중이던 쿄우헤이는 카지노 호텔 사업 관련자인 도우지마 건설의 아마기 신이치가 16M에게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하는데...

홍콩 흑사회의 암투가 중심인 내용의 작품.

그러나 평범한 일본인 취업 준비생이 사건과 얽히는 과정의 비약이 심하고, 토마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유도 벌어진 사건에 비하면 석연치가 않은 등 전개에 문제가 많습니다. 취업 준비생 설정이라던가 일종의 성장기스러운 전개도 Q.E.D 시리즈에서 많이 반복된 것이기도 하고요. 또 일본이 무슨 무법지대도 아닌데 홍콩 흑사회 조직들이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고 납치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무엇보다도 실제 쵸우 살인사건의 트릭은 "변장"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파의 두목인 라우 본인이 범행을 저지를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물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리즈답게 건질게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기 신이치가 범인을 지목하는 동영상 데이터를 바로 카피한 토마의 안배는 놀라우며, 마지막 협상 장소에서 구태여 원본 데이터가 파기되었을게 뻔한 휴대폰을 가지고 오라고 한 이유 (아미기의 지문과 혈흔, 거기에 더해 라우의 지문까지! 남아있을 것이라는 것)는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전개, 추리면에서 아쉬움이 많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러브스토리>
45년 전, 한 사립대학 영화연구회에서 부장 카마다가 쓴 각본으로 영화 촬영이 시작되지만, 라스트 씬을 정하지 못해 영화는 완성되지 못한다.
그리고 45년이 흐른 뒤, 카마다는 당시 여배우와 똑같이 생긴 가나를 우연히 만나고, 45년 전 영화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촬영을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영화를 완성하지 못하고 카마다는 사망한다. 가나는 촬영이 완료된 필름으로 영화를 완성해 줄 것을 토마에게 부탁하는데...

영화로 꿈을 그리고 싶었던 45년 전 헐리우드 키드들의 멋진 이야기가 펼쳐지는 일상계 드라마. 사랑에 대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내용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일상계 "추리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추리 요소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겠죠. 완성된 영화는 토마의 생각일 뿐 카마다의 의도와 동일하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는, 즉 어차피 "진상"은 없는 내용이니까요.
또 마지막 대사, "영화가 되지 않았다"라는 말의 의미는 완성되지 않았다라는 "후회"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최후가 결정되지 않았다라는 고백이라는데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더군요. 반전도 아닌듯 싶고요.

그래도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추억담으로는 나쁘지 않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결론적으로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 정도? 팬으로 즐길거리가 없지는 않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음권은 50권이라는, 나름 의미가 있는 권수인데 부디 기대에 값하는 작품들이 수록되었으면 합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 6점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고서 전문 헌책방 비블리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연작 옴니버스 추리 단편집.
세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두편은 중학생 소녀의 독후감이나 헌책 출장 감정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를 그리고 있는 전형적인 일상계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도 과거의 시오리코씨 어머니와 수백만엔에 이르는 책의 도난 사건이 얽힌 이야기는 단순 일상계로 보기 어렵지만, 현재 시점의 이야기는 책을 팔려고 내 놓은 뒤 사라진 손님을 찾아 나서는 일상계 이야기라는 것은 동일합니다. 이 정도면 완벽한 일상계 추리물로 보아도 무방하겠죠.
개인적으로는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고, 독서 역시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전 리뷰에서 쓴 대로, 시오리코씨 어머니에 얽힌 이야기는 구태여 등장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나았을겁니다. 악의 최종보스 느낌인데 작품과는 영 어울리지 않아 보이거든요. 책을 좋아하는 미녀 시오리코씨, 그녀를 흠모하는 근육 알바 고우라 다이스케의 순진무구한 사랑 이야기와 더불어 그들 주변, 동네의 소소한 책 관련 사건으로 가득한게 훨씬 좋을 것 같네요.
다른 시리즈에 비하면 추리적으로는 건질게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시오리코씨가 당사자 중 한명이기에 추리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고, 두번째 이야기는 시오리코씨가 책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실수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에요. 마지막 이야기는 추리만 놓고보면 가장 괜찮기는 한데 앞서 이야기한대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였고 말이죠.
덧붙여, 시리즈 다른 편들과는 다르게 등장하는 책들 중 딱히 읽고싶은 마음이 든 책이 없다는 점, 그리고 책의 완성도는 좋지만 각 단락별로 추가된 일러스트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책과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점도 조금 실망한 부분이에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만 놓고 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아주 좋지도 않은, 뭐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중 한권으로는 충분히 읽을만 합니다.

각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
1권에서도 등장했었던 고스가 나오가 자신의 똑똑한 여동생 유이가 쓴 <시계태엽 오렌지> 독후감으로 생긴 문제를 고우라에게 의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독후감으로 생긴 문제라니! 책 관련 추리 소설 중 이 정도까지 사건성을 낮춘 일상계가 있었을까요? 여튼, 소재는 정말이지 참신했습니다.
<시계태엽 오렌지>가 영화로 잘 알려진 내용은 "불완전판"이며, 원래는 알렉스가 개과천선하여 과거의 삶과 결별하고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는 결말이 "완전판"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으며, 이 사실이 내용과 잘 어울리는 전개도 아주아주 좋았어요.

그러나 독후감은 상당히 잘 쓴 내용으로 큰 문제는 없어보이는데 외려 주위의 설레발이 너무 심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원칙적으로는 중학생이 <시계태엽 오렌지>를 읽은 것 부터가 문제가 아닌가 싶은데 왜 그런건 지적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과정이 치밀하고 괜찮기는 하나 결곡 원본은 시오리코씨가 썼다는 일종의 반전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뭐라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요. 결말을 알고 나서 단서를 짜맞추는 방식과 다를게 없으니 말이죠.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의 왕도를 걷는 점에서는 별점 4점도 충분하지만 추리적 요소가 약해 약간 감점합니다.

후쿠다 데이치 <명언수필 샐러리맨>
고우라 다이스케가 대학교 1학년때까지 사귀었던 옛 동창 아키호로부터, 그녀의 돌아가신 부친의 수집 도서 정리를 의뢰받은 뒤의 이야기.

고우라의 과거사, 그리고 현재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푸근한 이야기로, 첫 시작에서 비블리아 고서당으로 팩스와 전화가 온 사실과 아키호가 출장 감정을 의뢰한 이유가 연결되는 치밀한 구성도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알 수 없는 가족간의 사랑이라는 주제와 그것을 드러내는 묘사들, 그리고 후쿠다 데이치가 유명작가 시바 료타로의 본명으로 <명언수필 샐러리맨>은 성공 전에 발표한 책이라는 책 관련 잡다구레한 지식도 좋았고요.

그러나 내용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아서 아쉽네요. 일단 아무리 엿듣는 사람이 많았고, 부녀가 만날 때마다 싸우는 등 복잡한 가정 사정이 있었다지만 귀중한 책을 몰래 물려주려 했다는 설정이 전혀 와닿지 않았거든요. 이렇게 물려줘봤자 받는 사람이 그 가치를 영원히 알 수 없다면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에피소드가 사건으로 성립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출장 감정을 나선 시오리코가 귀중한 책을 놓쳤다는 것인데, 큰 문제입니다. 아팠다는 설정은 있지만 그래도 그간 보여주었던 책에 관련해서는 너무나 완벽한 캐릭터성이 무너져 버렸으니 말이죠. 감기로 인해 시오리코씨는 출장 감정을 나서지 않고 고우라에게 원격으로 지시했기 때문에 책을 놓쳤다... 라는 식으로 전개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군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아시즈카 후지오
시오리코씨의 어머니 이야기가 첫 등장하는 에피소드.
일단은 시오리코씨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하기 위한 목적에는 충분히 부합하는 이야기입니다. 수상한 손님이 판매를 의뢰한 책만 가지고 주소를 짐작하여 찾아오는 부분에서 그녀의 뛰어난 추리력을 알려주며, 이후 깨우친 진상을 가지고 협박하여 손에 넣기 어려웠던 휘귀본을 입수한다는 부분에서는 사악함을 알려주기 때문이죠. 아울러 "선의의 제삼자"가 되기 위한 교묘한 장치, 즉 장물인 <최후의 세계대전>에 2,000엔이라는 가격표를 붙여 책을 판매, 구입한 것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이 없게끔 안배하는 "악마의 술책" 역시도 돋보였어요.
개인적으로는 후지코 후지오라는 만화가를 좋아하기에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허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오리코 씨의 어머니가 이렇게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은, 그야말로 최종보스로 등장해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치고는 너무 거창하잖아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훨씬 마음에 들기도 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5/05/05

대낮의 사각 1/2 - 다카기 아키미쓰 / 김선영 : 별점 3점

대낮의 사각 1 - 6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대낮의 사각 2 - 6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도쿄대 역사에 남을 정도의 천재 스미다 고이치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 "태양 클럽"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전후 혼란기에 거대한 재력을 손에 넣을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잠깐의 성공 이후 스미다는 폭주하기 시작하고 이윽고 자살이라는 최후를 맞는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의 추종자 중 한명이었던 쓰루오카는 스스로 "사기"라는 범죄로 성공할 생각을 굳히는데....

다카기 아키미쓰의 작품으로 무려 800여페이지가 넘는 초거대작.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 가미즈 교스케, 기리시마 사부로, 햐쿠타니 센이치로가 등장하는 정통파 본격 추리소설이 아니라 쓰루오카 시치로라는 천재적인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한 범죄 소설로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터리 100선에도 선정된 (28위)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 <도착의 사각>이 떠오르는 제목이라 당연히 본격물이라 생각했는데 의외였어요.

범죄 소설의 재미요소라면 무엇보다도 얼마나 범죄가 치밀하게 그려지는가? 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 작품은 그런 점에 있어서는 상당한 수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음 편취 사기가 주로 등장하는데 설득력이 아주 높거든요. 키 포인트 두가지, 어떻게 어음을 손에 넣는지와 그것을 어떻게 현금화 하는지에 대해 재미있으면서도 기발하게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등장하는 여러 사기 사건 중 어음을 발행하는 피해자가 홀딱 넘어가도록 연극을 연출하듯 모든 상황과 장소를 조작하는, 일본 조선 주식회사로 위장한 회사 건물 안에서 벌인 신요 기선 어음 편취 사건, 그리고 실존하는 공사관을 무대로 대사의 비서와 직접 짜고 벌인 파세도나 공사관 사기 사건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외의 사건들도 치밀함은 마찬가지인데 실제 범죄자와 직접 인터뷰를 한 뒤 쓰여졌다고 하니 그 생생함과 설득력이 남다를 수 밖에 없겠죠. 항상 사기는 당하는 쪽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치밀하면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아울러 주인공이 도쿄대 법대 출신이라는 설정을 대기업 임원과의 술자리 대화를 통해 자금을 편취하는 사기라던가, 경찰 취조를 빠져나가는 부분 등에서 효과적으로 써먹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또 범죄 소설은 주인공 범죄자의 캐릭터도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로 "뤼팽"은 고전 본격물에 가까워 뺀다 쳐도 "팡토마스"에서 시작하여 리처드 스타크의 "악당 파커"라던가, 퍼트리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와 같은 유명한 악당 캐릭터는 지금까지도 그 생명력이 이어지고 있죠. 이 작품 역시 등장인물들 묘사가 아주 그럴듯한데, 그 중에서도 자신의 모든 행동을 분단위로 기록한다는 천재 스미다 고이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록 초반부에 퇴장하지만 천재이자 광인으로 그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기 때문인데 시간을 지배한 남자 류비세프의 흑화버젼이랄까요. 참고로, 실존했던 전후 도쿄대 출신 수재들이 벌인 "히카리 클럽" 사건 주역에게서 모티브를 얻어 묘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입을 빈 전쟁 직후, 이른바 전중 혹은 전후파라 불리우는 세대의 시각도 돋보였습니다. 메이지 세대라 불리우는 전쟁을 일으킨 세대에 대해 맹목적인 분노와 적개심 가득한데 1920년대 생인 작가 본인의 시각이겠죠. 허나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성공은 하고 싶고, 위기에 몰리면 피해자 코스프레에 몰두하는 비겁한 인물들일 뿐입니다. 시대의 대악당을 꿈꾸지만 결국 소인배라는 것이 이채롭네요.

이렇게 소재 및 전개, 캐릭터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재미를 갖춘 작품이기는 하나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일단 이야기의 흐름이 하나의 거대 장편이라기 보다는 옴니버스 범죄물처럼 토막나 있어서 하나의 호흡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것이 그러합니다. 이럴거라면 여러편으로 시리즈를 쪼개던가, 아니면 큰 줄기의 이야기를 구태여 넣지 않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주인공 쓰루오카의 캐릭터가 스미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본인 스스로 악인을 자처하는데 인간적인 모습이 계속 엿보이게 만드니 죽도 밥도 안된 느낌이에요. 차라리 <야수는 죽어야 한다>의 다테 구니히코처럼 막 나가는 것이 이 작품에는 더 좋았을 겁니다. 그나마 마무리 직전까지는 그런대로 능력있는 악당 필인데 마지막의 급작스러운 몰락으로 캐릭터 훼손도 심합니다. 쓰루오카를 집요하게 추적하던 후쿠나가 검사에 의해 체포된 뒤, 파세도나 공사관 사건에서 고용했던 하수인 곤잘로의 증언으로 한순간에 끝장난다는 결말인데 고작 이정도밖에 안되나? 싶거든요. 좀 더 치밀한 안배, 효과적인 도주가 덧붙여져야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마지막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여성들에 대한 묘사가 별로라는 것도 단점입니다. "여자는 단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도구는 많을 수록 좋다"라는 스미다의 신조가 작품에 반영되어 있는 탓인데 다카코의 자살은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그야말로 개죽음이었을 뿐 쓰루오카가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니까요. 일종의 성녀 이미지를 작품에 집어넣어 쓰루오카의 악을 비교하여 더욱 추악하게 묘사하려는 의도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진부한 캐릭터에 진부한 묘사로 분량만 아까웠어요.
그리고 이건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만화 <쿠로사기> 등에서 이미 접해본 것들과 비슷해서 신선함이 떨어지기는 하더군요. 작품이 발표된 시기에 읽어보았다면 굉장히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을텐데 지금 읽기에는 낡기도 했고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쓸데없는 묘사는 덜어내고 패배를 모르는 냉혹한 악당 쓰루오카의 범죄 행각에 촛점을 맞추었더라면 별점 4점 이상은 너끈했겠지만 이러한 단점들로 인해 감점합니다. 그래도 천재적인 범죄에 전율하게 만드는 거장의 솜씨는 놀라운 고전 명작임에는 분명한 만큼, 추리소설 애호가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 : 현재까지 국내 출간된 다카기 아키미쓰 작품 8편은 전부 다 읽어보았는데 개인적인 순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야망의 덫> - <실험부부> - <파계재판> <문신 살인사건> - <대낮의 사각 (본편)> - <유괴> -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 <제로의 밀월>
작품별 별점 평점이 2.037.., 3점이네요. "타율왕"에 올려도 부족함이 없겠습니다.

참고로, 야망의 덫과 실험부부는 제 추리소설 리뷰 초창기에 읽고 감상을 남긴 것이라 지금 읽으면 점수가 좀 처질 수도 있는 점 양지해 주세요.

2015/05/04

2015.04.28 ~ 05.03 한주간 두산베어스 단상

2015.04.21 ~ 04.26 한주간 두산베어스 단상

좋았던 점 :
1. 윤명준 선수 보직 전환
2. 이현호 선수의 쾌투

나빴던 점 :
1. 부상 때문에 망했어요.
2. 새내기는 새내기. 남경호 선수 부진.
3. 지명타자는 과연 살아날 수 있을 것인지....

기타 감상 :
KT ~ 삼성과의 6연전. 비로 4경기만 치뤘습니다. 결과는 2승 2패. KT 상대로는 위닝 시리즈를 이어갔지만 삼성전에서 전패한게 뼈아프네요. 1위와의 게임차도 2게임으로 벌어졌고요.

KT전에서 니퍼트 선수의 승리를 날려버린 마지막 9회 수비가 아쉬웠지만 기대치에 값한 성적인데 삼성전은 뭐 별로 할 말이 없네요. 첫 경기는 장원준 선수의 부상 및 새내기 남경호 선수의 부진으로 날려먹었고 두번째 경기는 중간계투가 딱 한회를 지키지 못해 무너진 거니까요. 김태형 감독님 인터뷰를 보니 뭔가 깨달으신게 있는 것 같은데 다음 경기부터는 보다 효과적으로 투수 교체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나마 두번째 경기는 7회까지는 마야 선수의 호투가 눈부셨지만 득점권에서 영 부진한 타선이 결국 발목을 잡은 탓도 큽니다. 지난주는 타선 덕분에 위닝 시리즈를 이어갔기에 타선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긴 합니다만, 그래도 지명타자 포지션은 정말 심각한 고민이 필요해 보이더군요. 도대체 득점권에서 뭘 하는건지...

그나마 베스트 플레이어로는 비록 패했지만 위력투를 보여준 마왕 마야 선수와 연장 결승 홈런의 사나이 정진호(날두) 선수를 꼽습니다.

이번 주 예상 :
6이닝 이상을 소화해주며 선발자리를 지켜주던 장원준 선수, 그리고 필승조 김강률 선수가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는데 이거 참 어떻게하나 싶습니다. 김강률 선수는 시즌아웃급 부상이라는데 어찌해야 할지...

이번주는 잠실 라이벌 LG, 그리고 한화를 상대로 하는 각 3연전이 이어지는데 예상 선발은 유희관 - 진야곱 - 니퍼트 - 마야 - 땜빵 - 유희관 순입니다. 순서는 조금 조정될 수 있지만 전통적으로 좌완투수 상대로 약점을 보이던 LG 상대이니만큼 왼손 투수를 몰아넣지 않을까 싶네요. 좌완 중간계투 함덕주, 이현호 선수도 잘 활용해야죠. LG도 요즘 페이스가 저하되어 있는만큼 조금 무리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승수를 거둬야 하니까요. 김성근 감독님을 상대로는 좋은 승부를 한 기억이 별로 없으니....
한화전에서는 마왕 마야 선수 경기만이라도 꼭 잡을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땜빵 선발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경기는 버리는 셈 치고 야수도 백업 중심으로 활용하는 식으로 갔으면 합니다.

참고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두산 백업 중심 라인업
외야 : 박건우 - 정수빈 - 정진호 (박건우 선수는 왜 안 터지는건지...)
내야 : 김재환 - 허경민 - 양종민 - 최주환
포수 : 최재훈


마지막으로, 김강률 선수의 이탈로 노경은 선수의 역할이 갑자기 중요해졌는데 제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네요.
루츠 선수마저 퇴출되는 등 이래저래 어수선하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4승 2패의 한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튼, 화이팅 허슬 두!

덧 1 : KT와 롯데가 대형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네요. KT에서 이적한 선수들은 모두 유망주이니만큼 유망주들이 껍질을 깨고 나오는 여부에 따라 트레이드 성패가 결정되겠지만 당장은 장성우 선수를 얻은 KT의 이득이 더 커 보이기는 합니다. 박세웅 - 이성민 선수라면 두산도 최재훈 선수로 거래를 해 봤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데, 지금 단장한테 그런거 기대하는건 무리겠죠. 또 누굴 퍼줬을지도 모르는거고.

덧 2 : 루츠 선수의 교체, 트레이드한 윤석민 선수의 대폭발 이후에도 김태룡 단장이 자리에 앉아 있는건 당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반 회사에서 이 정도 손해를 끼쳤다면 바로 모가지죠. 구단주 일가의 비밀이라도 쥐고 있나? 참회하는 심정으로 제대로 된 외국인 타자, 그것도 지명타자로 쓸만한 선수를 데려온다면 이번 시즌에 한해 용서해 줄 수도 있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