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7/11/26

의자의 재발견 - 김상규 : 별점 2점

의자의 재발견 - 4점
김상규 지음/세미콜론

2011년에 초판이 발간된 책으로 좋은 의자란 무엇인지, 좋은 의자 디자인은 무엇인지, 어떤 의자들이 있는지, 누가 유명 의자 디자이너인지 등 의자에 대한 여러가지를 알려주는 디자인 에세이집.

의자는 제품 디자인에 있어 궁극의 소재 중 하나죠. 관련 도서도 몇 권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유명 디자이너들의 유명한 디자인 작품이라던가, 여러 디자인 회사들에 대한 소개와 설명은 재미있으며, 도판도 충실하지만 제가 읽어왔던 다른 책들과 비교할 때 이 책만의 차별화 요소는 특별히 없습니다.
출간된지 제법 된 탓에 지금 시점에서는 이미 생명력을 다한 작품과 소재가 많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3D 프린터가 보편화된 지금 보기에는 아이들 장난감과 다를 바 없는 스웨덴 디자인그룹 프론트의 '스케치 가구' 퍼포먼스가 대표적이죠.

또 내용이 정리가 되어 있지 못한 느낌이 강한데, 이유는 저자의 욕심이 과한 탓입니다. 의자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고, 좋은 의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고, 좋은 의자 디자인은 또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등 펼쳐 놓은 이야기는 많지만 정작 눈에 잘 들어오지는 않아요. 저자의 글 솜씨도 그닥이며, 책의 목차와 내용도 잘 정리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괜찮았던 다른 문화와 연결되는 의자 이야기를 다듬어서 좀 더 소개해 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예를 들어 영화 속, 명화 속 의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등 다른 책에서 보기 힘든 아이디어가 빛나는 이야기들말이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7/11/25

오래된 디자인 - 박현택 : 별점 4점

오래된 디자인 - 8점
박현택 지음/안그라픽스

부제는 박현택의 디자인 예술문화 산책. 저자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근무하시는 디자이너로 동문 선배님이시더군요. 알라딘 등을 통한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가던 차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바라본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에세이인데 저자의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미적 관점이 잘 결합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글재주도 빼어나서 읽기도 편하고요. 읽기 편하다는게 얼마나 큰 장점인지는 이 책 맨 앞에 수록된 도올 김용옥의 서두만 읽어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도올의 글도 물론 좋아요. 깊이도 있고요. 그러나 읽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솔직히 서두만 읽었을 때에는 본문도 이렇지 않을까 긴장을 많이 했을 정도인데 무척 다행이었어요. 단순한 생활 속 신변잡기 같은 글들 뿐 아니라 복잡하거나 사연있는 디자인이나 미학 이론을 설명하는 글들마저도 쉽게 읽히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생각됩니다. <<호랑이 요강과 마르셀 뒤샹의 샘>> 이라는 글이 좋은 예에요. 요강에서 시작하여 변기로 이르는 과정과 변기가 미술관에 놓인 사연을 통해 "다다이즘"을 설명하는 내용인데 다다이즘은 "예술품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언제 예술인가?"라는 질문이 더 적절한, 제도의 산물이라는 것으로, 결론은 이렇게 억지스러운 것 보다는 호랑이 요강이 더 정이 가고 좋다!라고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삶을 위한 예술은 있어도 예술은 위한 삶은 없기 때문이죠. 이렇게 요약하니 좀 두서가 없어 보이는데, 실제로 글을 한 번 읽어보시면 호랑이 요강과 샘의 차이가 무엇인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세한도를 디자인 전문가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에세이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세한도가 왜 뛰어난 그림인지는 관련된 서적을 이전에도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각 디자이너로서 "편집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니 세한도는 "그리드"시스템, 모듈 관점에서 보아도 완벽하다는 것을 그림과 함께 설명해주니 더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또 명품, 유명 디자이너가 손댄 것들보다도 우리 주변에서 보아왔던 재활용 디자인 등도 중요하다고 서술한 관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싸고 좋은, 유명 디자이너가 손 댄 것이 당연히 좋고 예쁘겠지만 단지 미학적, 디자인적으로 뛰어나다는 관점보다 중요한 것은 삶과 생명 그 자체라는 논리로 디자이너가 만든 가죽으로 된 이케아 쇼핑백이 수백만원에 팔리는 세상에 경종을 울려줍니다. 저자는 다른 글들에서도 허울뿐인 허례 허식을 비판하면서 "사실 디자인이란 그리 대단한 것도 전문적인 것도 아니다. 그걸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지상 최대의 화두이며 고도의 전문적인 분야로 취급되고 싶어 할 지 모르지만, 우리 삶 속에서의 디자인이란 조금 다듬어진 상식의 범주일 수도 있다."라는 말을 남깁니다. 저도 디자인 전공자이지만 정말이지 와 닿는 말이에요. 이런 글들이 더욱 널리 알려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선민의식은 제발이지 사라졌으면 하거든요.

그 외의 다른 글들 모두 대부분 하나하나 곱씹을 만한 좋은 글들입니다. 도판도 적절하고요. 
몇몇 글들은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고, 소재와 글이 잘 어울린다고 여겨지지 않은 글도 있습니다만 소수일 뿐으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입니다. 사소한 단점을 제외하면 최고 수준의 디자인 에세이입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7/11/19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 엘러리 퀸 / 박진세 : 별점 1.5점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 4점
엘러리 퀸 지음, 박진세 옮김/북스피어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프로젝트 일곱번째 책. 박람강기(博覽强記)는 국어사전 풀이로는 "여러 가지의 책을 널리 많이 읽고 기억을 잘함." 이라는 뜻입니다. 북스피어에서는 장르 소설이 아니라 소설 외의 다른 책들을 이러한 이름으로 펴내고 있습니다. 제가 읽은 것으로도 작가의 수입, 지출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인 <<작가의 수지>>, 서간문집인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기행문인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이 있었습니다.

이 책 역시 박람강기 레이블로 출간된 책 답게 추리 소설은 아닙니다. 엘러리 퀸이 추리 소설을 연대별로 구분하여 각 연대별로 걸작을 꼽은, 추리 소설의 큰 역사와 대표작을 소개하는 일종의 가이드 북이자 서지 정보 책입니다.

그러나 제목만 다를 뿐, 추리 소설 애호가들에게는 익히 잘 알려져 있는 <<퀸의 정원>>의 단순 번역본에 불과해서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이전에 관련해서 글을 남긴 적이 있을 정도로 이미 이런 저런 곳에서 공개되어 있는 내용이거든요.

물론 저는 일본어 사이트로 접했고, 영어나 일본어를 못하는 독자분들께는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으리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의미가 있으려면 제가 링크한 일본 사이트처럼 국내에 번역되었는지, 어떤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지, 간략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대충 훝어보니 약 30권 정도만 국내 소개된 듯 한데 간단한 수고 만으로도 이 정도 정보는 제공해 줄 수 있었을 거에요. 한 마디로 돈 받고 파는 책이 공짜 일본 사이트보다 담고 있는 정보가 부실합니다. 이 정도 수고도 하지 않고 그냥 책을 출간한 것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지금 이 책을 읽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희귀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엘러리 퀸의 책 자랑 정도 밖에는 없습니다. 

그나마 내용이라도 재미있다면 괜찮겠지만 선정된 125 편의 책 소개 대부분은 작가와 탐정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제일 궁금한 내용은 정작 알려주지 않으니 뭘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완벽하게 성공하기는 했습니다만, 이래서야 이게 책 가이드로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또 이 책이 발표된 해는 1969년 증보판 기준으로 보아도 이미 50년 전이며, 선정 기준에 "역사적인 중요성"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게다가 "단편" 이어야 한다는 기묘한 기준도 있기 때문에 (아마도 잡지 EQMM의 홍보를 겸한 듯 싶어요) 국내에 소개되어 있다 하더라도 재미나 완성도 측면에서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제가 읽었던 잘레스키 (자레스키) 왕자 시리즈 중 한편인 <<오번 가문의 비극>> 단편이 대표적이죠. 도저히 눈 뜨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거든요. <<아마추어 괴도>> (래플스 시리즈)도 마찬가지고요.
<<뜀뛰는 개구리>> 처럼 그 어떤 기준을 들이 대어도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작품도 선정되어 있는 것도 문제지만... 그래도 이 작품은 재미라도 있으니 좀 낫긴 하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추리 애호가로서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 번역되었다는 점 외에는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앞서 말씀드린 이유들에 더해 번역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고요. 추리 소설 명작 리스트가 궁금하시다면 이런 것 같은, 인터넷에 여러가지 공개된 자료를 참고하시는 것이 훨씬 나으실 겁니다.

2017/11/18

다이아몬드 미스터리 - 마틴 위드마크 / 김영선 : 별점 2.5점


다이아몬드 미스터리 - 6점
마틴 위드마크 지음, 헬레나 윌리스 그림, 김영선 옮김/한길사

"팀과 티나의 탐정 사무소" 시리즈 제 1작. 아동용 작품으로 제목 그대로 팀과 티나의 탐정 사무소에 의뢰된 카라트 씨의 다이아몬드 도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소개에 따르면 북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탐정 소설 시리즈라고 합니다.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예상 외로 정통 추리물이라 놀랐습니다. 사건이 있고, 용의자들도 세명이나 등장하며 용의자들 모두 어딘가 수상쩍다고 소개됩니다. 여기에 더해 다이아몬드를 어떻게 빼돌렸는지에 대한 나름 정교한 장치 트릭까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래리 스미스 씨가 매일 아침 먹는다는 사과를 이용하여 사과 속에 보석을 쑤셔넣고 창 밖으로 던진 후 밖에서 회수해 왔다는 트릭을 밝혀내는 과정은 정통 본격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에요. 래리 스미스의 사무실 및 그 어떤 장소에서도 사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과 래리 스미스의 행동 관찰을 통해 진상을 추리해낸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이외에도 주어진 떡밥, 예를 들면 마가레트 로스 부인의 화려한 치장이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한 것 등도 모두 깔끔하게 설명되는 것도 만족스러웠으며, 이 모든 내용이 80여 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에서 모두 정리되는 것도 좋았습니다.

물론 성인 시각으로 보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왜 카라트 씨가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고 누가 봐도 어린아이임이 분명한 팀과 티나에게 사건을 의뢰하는지 부터가 석연치 않거든요. 경찰 수사만 했다면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는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또 아쉽지만 삽화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기대했던 북유럽 스타일(?)의 깔끔하고 차분한 그림이 아니더라고요.

그래도 별점은 2.5점. 아이들을 위한 정통 추리 입문서로서는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추리 강국 북유럽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네요. 나중에 제 딸 아이가 조금 더 크면 한번 권해볼 생각입니다.

2017/11/17

인간증발 - 레나 모제, 스테판 르멜 / 이주영 : 별점 2점

인간증발 - 4점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책세상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는 매년 10만명이 실종되고, 이 중 85000명이 스스로 사라진 사람들이라는 충격적 전제로부터 시작된 프랑스 작가의 논픽션.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 및 현장 취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 소개가 아주 흥미로왔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대와는 좀 많이 달라요. 우선 "인간 증발"에 대해 다루고는 있지만 직접 인터뷰나 취재가 가능했던 특정 사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소문이나 저자의 추측에 의지하지 않는 것은 좋아요. 허나 큰 빚, 야쿠자의 협박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회사나 학교에서 실수를 저질러서 혹은 오래전부터 짝사랑했다는 남편 직장 사장의 고백을 받아서 라는 식으로 증발 이유가 뜬금없고 황당한 것이 많아서 당황스러웠어요. 그나마 이 정도면 드라마라도 있지만... 정말 뜬금없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사례의 경우는 정말이지 와 닿지 않았습니다.
또 스스로 증발을 택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 보니 낙오자가 된 경우는 같은 레벨로 설명하면 안될텐데 좀 의아했습니다. <<마키오의 고백, 증발 65년>>은 가난과 학대로 집을 나와 떠돌던 마키오의 이야기인데 이건 스스로 택한 증발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마찬가지로 "부락민"이 차별받는다는 언급은 그 차별 때문에 증발한 것이 아니므로 사족에 불과했고요.
그 외 자살자에 대한 이야기나, 실종자를 찾는 탐정들 인터뷰, 사라진 가족이 북한에 갔을 것이라 믿는 어떤 가족의 이야기들도 주제에 적합한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핵심은 인간 증발이 아닙니다. 모든 취재와 인터뷰는 결국 "일본인은 체면이 중요하며 조직 내에서의 관계가 중요하다. 체면을 잃고 수치심을 느끼게 되면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일본만의 특이성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책 안에서 딱히 설득력 있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나름 근거로 삼기 위하여 독특한 일본만의 사회, 문화를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에 적지 않은 분량이 할애되고 있는데 - <<지옥의 캠프>>, <<오타쿠의 성지>>, <<토요타 시, 떠나거나 병들거나 미치거나>> 등 - 너무 억지스러웠어요. 일본 사람들은 이상하다! 그런데? 그 다음이 없는거죠. 
정말 저자의 주장이 맞다고 이야기하려면 이러한 일본만의 특수한 문화 소개 후 이것 때문에 증발한 사람의 사례를 연결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도 못했고, 증발의 원인이 저자의 주장 때문이 맞는지도 이 책에 실린 내용으로 파악하기는 어려워요. 여러모로 프랑스인이 통역을 써 가며 취재한 한계가 느껴졌습니다.

물론 기대에 값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증발이라는 말이 몸과 함께 과거를 씻어내고자 했던 도망자들이 온천을 찾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흔하게 이런저런 작품에서 많이 보아왔던, 회사에서 잘렸지만 출근하는 척을 하다가 결국 증발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아서 놀라왔으며 탐정에게 의뢰하여 증발자를 찾았지만 가족이 재회를 거부한다던가, 인생 낙오자들이 후쿠시마에서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게 된다던가 하는 등의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인간의 밑바닥을 볼 수 있는 기회라 물론 생각했는데 여러모로 실망스럽네요. 개인적인 문제로 야반 도주나 증발을 기도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려면 차라리 <<사채꾼 우시지마>> 를 보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2017/11/12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 윤광준 : 별점 1.5점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 4점
윤광준 지음/오픈하우스

윤광준의 생활명품 에세이 신작.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직접 써 보고 경험했던 제품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모두 45개의 제품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일단 저는 '생활 명품'은 지극히 평범할 수 있지만 오래 사용하면서 장점과 특징을 알게되어 진가를 깨닫게 되는 제품들이라 생각합니다. '명품' 보다는 '생활'에 방점이 더 강하게 찍힌다는 뜻이죠. 그만큼 일반인들의 진입도 아주 어렵지만은 않아야 한다고 느끼고요.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되는 제품 대부분은 그다지 오래 쓰지도 않았으며 좋아하는 이유도 단지 개인 취향, 개인 기호에 불과한 제품이 다수라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가젯들입니다. <>와 같은 얼리어답터 잡지라면 모를까, <<생활 명품>>에는 영 어울리지 않더군요. 이런 류의 디지털 제품들은 아무래도 수명이 정해져 있고, 시간이 지나면 더 좋은 제품이 더 싸게 나오는게 당연하니까요. 게다가 이 가젯들에 관련된 저자의 사고방식도 '독일에는 가전 메이커의 A/S 센터가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고장이 잘 안나니 당연하다. 이를 보면 국내 가전사의 A/S망이 풍부하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라는 식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스텔앤컨'의 좋은 음질이 전문가가 내부 회로를 변경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어이없음의 극치였어요. 디지털 음원을 재생하는데 회로의 변경이 큰 의미가 있나요? 자체 스피커로 음악 감상하는 도구도 아닌데 말이죠.
여러 식품 소개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별로입니다. 수많은 싱글 몰트 위스키 중에 구태여 '글렌리벳'을 점찍는 것은 순전히 개인 취향에 불과하기죠. 자기 취향의 '디자인'을 갖추었다고 생활 명품이라고 추켜세우는 몇몇 제품들 역시 마찬가지로 '아물레또 스탠드', '이노 디자인 T라인' 등이 대표적인데, 저는 저자 취향 외에 생활 명품이라고 이야기할 포인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긴, 저자의 사고 방식이 이전과 조금 달라진 게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저서에서는 유달리 '명품은 비싼게 당연하다.'는 주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거든요. 예전 저서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죠. 좋은 재료, 원료를 사용하여 장인 정신으로 꼼꼼히 만든 명품이 비싸다는 것에는 동의하나, 앞서 말씀드렸듯 '생활 명품'이라는 제목에 부합하는 사고 방식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컨데 '아물레또 스탠드'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 마트에서 파는 스탠드 중 가장 가성비가 적절하고 괜찮은 제품을 소개하는게 더 적절했을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생활 명품'이 아니라 그냥 '명품' 소개에 불과하여 이래서야 비싸고 좋은 제품을 소개하는 널리고 널린 잡지들과 다른 이 책만의 차별화 포인트가 뭔지 잘 모르겠네요.

물론 몇몇 제품은 여전히 와 닿고, 갖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긴 합니다. '토앤토' 신발', '요괴손 등긁개'가 그러합니다. 저 역시 잘 쓰고 있는 '세타필', '에버노트' 소개도 반가왔던 부분이고요. 그 외에도 "생활 명품"이라는 단어 취지에 부합하는 제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개된 45개 제품 중 그러한 제품은 절반, 아니 1/3도 되지 않으며, 근저에 깔린 저자의 사고 방식 역시 "생활 명품"에 적합해 보이지는 않기에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무래도 저자가 오랜 시절 사용한 생활 명품 소재가 고갈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후속권이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나온다 하더라도 이대로라면 더 찾아볼 이유는 없겠네요. 아울러 후속권 제목은 독자의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생활"이라는 단어를 빼 주었으면 합니다.

2017/11/11

최후의 도박 - 로버트 B. 파커 / 강호걸 : 별점 2점

스펜서는 보스턴 레드삭스 관계자 해럴드 애스킨으로부터 유망한 투수 마티 러브가 승부 조작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의뢰받는다. 조사를 위해 작가로 위장한 스펜서는 락커룸 등에서 관계자 인터뷰를 진행하지만, 그날 고리대금업자 프랭크 두어와 히트맨 월리 호그의 방문 및 협박을 받게 된다.

탐정 스펜서 시리즈 세번째 작품. 이전에 전작을 읽고 더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모처에서 "프로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글을 읽고 호기심이 동해 찾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마디로 킬링 타임용 펄프 픽션이더군요. 쑥쑥 읽히는 재미는 있지만, 한번 읽으면 그 뿐입니다. 소재가 된 프로야구도 승부 조작과 도박이라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전형에서 한 발자욱도 더 나아가지 못했고요.

특히나 전개가 뻔한데 이 작품에서 스펜서가 탐정으로서 뭔가 추리(?)하는 부분은 딱 한 장면밖에는 없습니다. 마티 러브가 아내 린다를 처음 만났다는 상황 - 싸인을 해 달라고 하는 아내에게 한 눈에 반했다 - 을 너무나 작위적이라 느끼는 부분이죠.
그러나 이후 스펜서가 벌이는 조사는 모든 것이 그의 생각대로,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마티 러브와 아내 린다가 처음 만났다는 이야기는 너무 작위적이다에서 시작해서 린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죠. 약간의 트릭 (사진을 골라달라고 해서)으로 확보한 린다의 지문을 경찰 친구에게 조사 의뢰한 결과 그녀의 본명을 알게 되며, 어린 시절 가출해서 뉴욕에서 매춘부로 일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매춘부 시절 포주(?)를 만나 그녀가 매춘부 시절 촬영한 포르노가 협박 거리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아울러 포르노 마스터 프린트를 찾으러 온 놈팽이가 레스터 프로이드였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물 흐르듯 하여 감탄이 나올 정도에요. 중간에 어떻게 단 한 번의 헛발질도 없을까요? 사실 린다가 마약 복용으로 검거된 과거만 없었더라도 첫 단계에서 꽉 틀어 막혔을텐데 말이죠. 하기사, 이런 저런 좌충우돌로 분량만 낭비하는 작품들 보다야 이런 깔끔한 전개가 읽기에는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게 펄프 픽션의 미덕이겠죠?

그래도 여기까지는 조사, 수사가 핵심이라 보통의 미국식 하드보일드 탐정물과 비슷하기는 한데, 다음부터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히어로물, 고전 서부극의 현대적 변주로 흘러갑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오로지 정의감 때문에 스펜서는 프랭크 두어와 부하 월리 호그를 목숨을 걸고 처단하고, 버키 메이터드와 레스터 프로이드 컴비까지 응징해 버리거든요. 한 가족을 위해 악을 응징한다! 또 이렇게 세 가족을 위해 목숭을 거는 떠돌이 설정은 <<셰인>>의 판박이이기도 하죠.
물론 과거를 매스컴에 고백하는 린다의 큰 결심도 있기는 하나, 스펜서는 목숨을 걸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마당에 이 정도 희생은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러한 헐리우드스러움은 이외에도 작품 곳곳에 묻어납니다. 도나 발링턴이 가난에 쪄든 고향을 떠나 매춘부가 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전형적인 시골처녀 상경기와 다름 없죠. 포주 패트리셔 애틀리가 도덕심을 발휘하여 마스터 프린트 폐기를 도와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뭐 그래도 쑥쑥 시원하게 읽히는 맛은 있으니 나쁘다고 폄하하기만은 어렵습니다. 마지막에 레스터를 작살내는 장면은 아주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요. 스펜서가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에 아주 약간 사로잡혀 있는 묘사도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추리물이라고 보기에는 몇 광년 떨어져 있지만 성공한 펄프 픽션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메이저리그, 범죄, 도박, 포르노까지 모든 흥행 요소가 갖추어 졌을 뿐더러 읽기도 쉽고 결말까지 완벽한 권선징악 해피엔딩이니 이래서야 실패하는게 더 어려울 듯요. 아, 저도 앞으로는 이런 작품을 써야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작품이 발표된 1975년에는 미국에서도 매춘부라는 직업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문제가 된다는 것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지금은 스포츠 스타가 포르노 배우하고 결혼하는 세상인데,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네요.
그리고 스펜서가 굉장히 요리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이전에 읽었던 <<약속의 땅>>에서도 요리를 통해 사람의 인간성을 파악하는 괜찮은 묘사가 등장했었는데, 여기서는 요리 묘사가 과하다 못해 흘러 넘칠 정도입니다. 매일 매일, 매 끼 무엇을 먹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을 정도거든요. 딱히 전개에 필요한 부분도 아닌데 말이죠. 여튼, <<스펜서의 요리책>> 이라는 책이 출간된 이유가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스펜서의 요리책이나 출간되면 좋겠네요.

2017/11/05

화석의 기억 1~3 - 타가미 요시히사 : 별점 2.5점 (국내 미출간)


국내에는 <<nervous breakdown>> , 그리고 <<초공속 가루비온>>의 캐릭터 디자이너로만 알려진 타가미 요시히사의 1980년대 작품. 정확하게는 1985~87년까지 연재된 작품입니다. 대표작이라고 하는 <<카루이자와 신드롬>> 연재 종료 직후 (1982~85) 발표된 작품으로, 작가 인생 최전성기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다른 대표작 <<grey>>와도 년도가 겹치네요. 굉장히 진지한 SF물이면서도 크리쳐 물이기도 하고, 미스터리 스릴러물 성격도 포함된 복잡한 내용을 갖춘 작품입니다.
"누시"라는 큰 곰(?)이 사람을 습격하곤 하는 시골 마을 (정확하게는 '붉은 숲'이라는)이 있습니다. 도쿄에 사는 주인공 미나기 류이치는 어린 시절 어머니 후유코가 누시에게 살해당했는데, 어느날 우연히 본 TV 뉴스에서 누시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을 짐작하고 복수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교제하던 유키에와의 성관계 동영상으로 그녀의 아버지를 협박하여 300만엔이라는 자금을 마련한 후 고향으로 향하죠.
이곳에서 류이치는 대학 조교 혼조 테츠야를 만나고, 백악기 (7,000만년전) 지층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두개골 화석 발굴 현장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후 이 '오파츠'가 교수에 의해 부정당한 테츠야는 홀로 조사를 떠나는 데....! 여기까지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누시가 무엇인지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도 7,000만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화석 정체는 특히나 궁금증을 자아내니까요. <<별의 계승자>>가 살짝 떠오르기도 하고요.

뒤이어 모든 것은 타임머신의 탓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전개와 여기서 불거지는 '타임 패러독스'도 볼만합니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뭔지도 모르면서 찾아 헤메는, 그리고 타임 머신으로 밝혀지는 "용고"의 정체는 원래 지구에서의 생존이 어려워져 만들어낸 외계로의 도망 우주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엔진 (용고)의 폭주로 시공을 뛰어넘어 1987년 붉은 숲에 떨어졌고, 이 "용고"가 계속 시공간을 뒤튼 탓에 7,000만년전과 연결되어 있게 된 겁니다. 누시는 7,000만년 전 숲에 살던 공룡이었고, 7,000만년전 지층에서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 화석은 마찬가지 이유로 과거로 점프한 현대 인류의 것인거지요.
이렇게 원인과 결과가 동일한 타임 패러독스는 도라에몽에서도 익히 보아 온 것입니다. 작 중에서도 용고는 노비타의 책상 서랍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진지한 SF 스토리에 약간의 추리적 요소를 가미한 덕에 꽤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용고"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한 단서가 오래전 한 할머니가 남긴 일기라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누시가 12간지의 움직임을 보이는, 일종의 시계 같은 장소에 나타나며 이를 통해 한 가운데임을 추리하는 식이죠.

그러나 아쉽게도 결말이 완성도를 떨어트립니다. 류이치가 깨닫는 것, '조금씩의 차이가 결과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려내기에는 너무 서둘러 마무리된 탓입니다. 관련자들을 타임 머신이 부른 이유 - 동일한 역사 반복을 위해 - 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고요. 설득력을 갖추려면 또다시 시공을 점프한 후, 류이치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여 현 시점 (1987년)에 "용고"가 없는 평안한 인생을 손에 넣는다는 결말 정도는 보여줬어야 합니다. 마지막 장면이 현세의 기차에서 내리는 류이치가 어머니 후유코와 포옹하는 것이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 6부 스톤 오션의 결말이나 영화 <<프리퀀시>>의 클라이막스처럼 말이죠. 뭐 그만큼의 설득력은 조금이나마 쌓아 올렸어야 하겠지만... 여튼 지금의 결말은 역사가 단순 반복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작가 의도가 제대로 반영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또 흥미로운 본편 전개에 비하면, 곁들여지는 사이드 에피소드들이 이야기에 잘 녹아들지 못한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누시의 정체가 공룡이라는 것도 너무 빨리 밝혀져서 몰입을 저해하고, 누시보다 주인공들 혈족에 전해지는 "용고"를 찾아내려는 음모 이야기는 솔직히 지루했습니다. 이 부분의 핵심인 기업, 친족 간의 파벌 싸움이 이야기에 잘 녹아나지도 않았고 말이죠.
아울러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나 별로에요. 여중생 섹스 파트너와의 성관계 비디오를 그 아버지에게 팔아 넘겨 자금을 마련하는 쓰레기인데다가, 어머니인 후유코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여성 등장 인물들과 정사를 갖는 등 전반적으로 쿨함을 강조하기에는 도가 지나칠 뿐더러 너무 자극적으로 접근하려 한 것 같아 영 별로였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꽤나 흥미로운 소재이지만 지루한 전개에 더해 작가 특유의 허무한 결말이 더해진 결과물입니다. 본 편 이야기에 집중하여 조금만 더 긴 호흡으로 가져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2017/11/04

고양이는 알고 있다 - 이상우 : 별점 1.5점

국내 대표적 추리 작가 중 한 분이신 이상우 작가의 단편집. 표제작을 포함하여 7편의 꽁트 및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우연찮게 읽어보았는데, 수준은 낮은 편입니다. 평균 별점은 1.5점 정도? 때문에 권해드리기는 무리지만 그래도 딱 한편, <<황매실의 하룻밤>>은 괜찮았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이 작품 하나만큼은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낭랑 18세>>
수위와 짜고 빈 사무실을 터는 보일러실 직원의 실패담. 굉장히 짤막한 꽁트인데, 나름 재미있는 트릭이 등장합니다. 지하에서 일하는 직원이 어떻게 빈 사무실을 알아냈나?는 것으로 답은 공범자인 수위가 휴게실에 틀어놓은 음악 테이프죠. 음악을 듣고, 보일러실 직원이 레코드 가게에서 그 노래의 길이로 몇 호인지를 알아낸 것입니다. 4분 12초 짜리면 412호라는 식으로요.
그러나 결국 덜미가 잡히는데, 그 이유는 가게 점원에게 부탁하여 낭랑 18세를 찾은 탓이라는 결말입니다. 그녀가 찾은 것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최근에 유행하던 리메이크 버젼이었던 것이죠.

발상은 재미있지만, 문을 따기 전에 최소한 안이 비었는지 아닌지 정도는 최소한 확인하고 문을 땄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때문에 그리 현실적인 아이디어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백사도>>
김내성스러운 제목에, 주인공인 그로테스크한 화풍으로 유명하다는 화가 김몽산도 김내성스러운 설정인데다가, 내용을 보니 정말로 김내성의 백사도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이더군요. 김몽산의 최신 대표작 제목이 <<백사도>> 거든요.

그러나 내용 자체는 김내성 작품과는 무관합니다. 자신의 작품을 혹평하는 평론가 곽충빈에게 살의를 품고 독이 든 얼음을 만든 김몽산의 계획이 실패하고 허무한 결말에 이르는 내용으로, 독이 든 얼음을 직접 챙기지 않고 딸에게 운반시킨 잔꾀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설령 김몽산의 계획이 성공하여 곽충빈이 죽었어도 김몽산이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도 지극히 회의적이고요.

거장의 명성에 기대기만 한 수준 이하의 내용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예고 살인>>
유전공학을 이용한 제품으로 유명한 주식회사 무진에서 일하는 천재 학자 김묘숙 박사와 그녀와 함께 기술팀을 이끌던 장주석 기술이사가 차례로 살해당한다...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인 추경감과 강형사가 등장하는 작품. 이 단편집 속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추리적으로는 완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범죄에 김묘숙 박사에게 1시간 이상 지나야 녹는 독약 캡슐을 준다던가, 100kg이 넘는 장이사의 체중을 이용하여 일정 무게 이상의 사람이 밟아야 독이 주입되는 독 주사기를 장치하는 식으로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범인인 변사장이 범인으로 삼을 희생양 (이이사)을 준비하여 사건을 꾸미고 이이사가 범인이라고 몰고 간다는 점, 마지막으로 변사장의 동기가 비교적 상세하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점들이 잘 연결되어 완성되어 있지는 않아서 아쉽습니다. 일단 김묘숙 박사에게 준 캡슐이 1시간이 지나야 녹는다는 것은 마지막 추경감의 추리 외에는 그 어떤 단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트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요. 장이사 체중을 이용한 트릭은 조금 낫기는 하지만 너무 뻔할 뿐더러, 경찰이나 다른 사람이 과체중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은 것은 문제고요.
또 이이사라던가, 비서 미스 구 등을 엮어서 범인으로 꾸미려는 변사장의 계획도 그닥 치밀하게 전개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증거인 "괴문서"를 만든 신문이 변사장 집에서 발견된다는 점에서 좋은 추리물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 이런 증거 앞에서 또 다른 추리들은 전부 불필요해져 버리니까요. 그 외에도 변사장의 계획은 헛점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추경감과 강형사의 툭탁거리는 캐미는 좋고, 앞서 말씀드렸듯 추리물로서의 기본 조건은 갖추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아내의 남자들>>
우연찮게 한 주부의 불륜을 목격한 추경감, 그리고 그날 저녁 추경감은 그 주부가 살해되었다는 것을 전해듣고 사건 수사를 돕기 위해 나선다.

지극히 평범한 불륜 치정극입니다. 약간의 수사가 진행된 후 현장에 남겨진 증거 - 현장 도어 손잡이 지문과 체모 - 로 범인이 체포되기에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무리인 작품. 정숙해 보였지만 사실은 문란했던 한 주부에 대한 묘사를 선보이는게 목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쪽으로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딱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황매실의 하룻밤>>
두 쌍의 젊은 부부는 시골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려고 이동하다가 별장 옆 황매실이라는 작은 촌락을 지난다. 그런데 그 곳에 거주하던 사람들 모두 그들을 보고 말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급한 일로 밤에 전화를 쓰려 별장에서 황매실로 이동한 부부는 황매실 마을이 텅 빈 것을 보고, 황매실 마을이 전설처럼 구미호들이 사람 행세를 하고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하며 두려움에 떠는데...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꽁트인데 이 단편집 최고의 작품. 공포스러운 상황도 설득력이 넘칠 뿐더러, 결말 역시 와 닿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한국적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진상은 바로 '황매실 주민들은 할아버지 제사로 밤에는 모두 아랫 마을에 다녀온 것이며, 제사드리는 날은 목욕 제계하고 외간 사람들과 말도 나누지 않는 법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마우스로 긁어보세요) 인데, 정말 그럴듯 했어요.
별점은 4점! 공포스러운 하룻밤에 대한 묘사가 조금만 더 생생했더라면 5점도 충분했겠지만, 이대로도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고양이는 알고 있다>>
최건일이 청산 중독으로 사망한다. 원인은 팔에 난 상처로, 경찰 수사를 통해 상처의 원인이 된 고양이 발톱에 청산이 발라져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추경감과 강형사는 수사를 통해 최건일의 복잡한 가정사에 주목하는데...

니키 에쓰코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표제작. 어떻게 보면 전형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콩가루 집안이 등장하는 작품. 빚에 쪼들리는 동생 (최건식), 방탕한 아들 (최호정), 아버지가 반대하는 남자와 교제하는 딸 (최현아), 최건일의 오랜 불륜 대상인 가정부 (석이네) 등에 대한 묘사가 그러합니다.

그러나 콩가루 집안에 대한 묘사 외에는 추리물로 볼 만한 여지가 전무합니다. 강형사의 현란한 헛다리짚는 추리가 펼쳐지는 것 정도는 볼거리이지만, 실상 진상은 별 볼일 없기 때문이에요. 차라리 고양이 발톱에 바른 청산이 흉기였다는게 더 재미는 있었을텐데, 실상은 건식이 소독약을 바꿔치기한게 진상이라니 허무하기 그지 없죠. 이것이 밝혀지는 것도 최호정의 자백에 불과하고요. 도대체 고양이가 뭘 알고 있었던건지 당쵀 알 수가 없네요.
무엇보다도 방탕하고 철없던 최호정이 마지막 순간에 휴머니스트로 돌변하여 눈물까지 쏟는다는 결말은 최악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고로 별점은 1점입니다.

<<아내는 탐정>>
술을 끊은 김말구는 아내 박순임, 딸 김민희와 무인도로 캠핑을 떠난다. 그런데 텐트에서 소주병이 발견되고, 김말구는 새벽에 몰래 술을 마시러 나오는데...

남편이 술을 사다가 텐트에 숨겨놓은 후, 오래전 술을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위장하여 다시 술을 입에 대려고 한 것을 알아챈 아내가 술을 물로 바꿔치기한다는 내용의 꽁트. 아내가 이를 알아챈 이유는 술병을 쌌던 신문지가 올해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모로 딱히 점수를 주기 애매한 수준의 작품이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출동! 검은손 탐정단 - 한스 유르겐 프레스 / 박수현 : 별점 2.5점

출동! 검은손 탐정단 - 6점
한스 유르겐 프레스 지음, 박수현 옮김/아이세움

어딘가 블로그에서 접하고 갑자기 너무나 읽고 싶어서 구입하게 된 아동용 추리소설. 우리나라에는 2004년도에 발표된 판본입니다. 벌써 13년 전이군요.

제가 어렸을 적에 어린이가 읽을만한 소년탐정단 관련 소설은 전설의 명작 <<매거크 탐정단>> 시리즈와 에리히 케스트너의 <<에밀과 탐정들>> 정도 밖에 없었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어린이용 탐정, 추리소설 소개가 시작되었죠. 정말로 많은 어린이용 추리소설이 쏟아져 나와서 지금 보면 정말이지 격세지감입니다. 제가 읽어 보지 못한 작품도 많아서 살짝 질투도 나고 말이죠.
이 작품은 이러한 어린이용 추리 소설의 러쉬 와중에도 탄탄한 위치를 아직 유지하고 있는 (듯한) 인기작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제목만 놓고 보면 첫 번째 작품 같은데, 내용에서는 시리즈 후속작인 느낌이 강하게 나거든요. 탐정단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탐정단이 처음 만들어진 계기라던가, 탐정 단원들 소개가 거의 전무하며 탐정단이 나름 자리를 잡아 경찰과 함께 사건 수사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야기부터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기는 합니다만.

여튼 읽기 시작한 후 곧바로 큰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위화감의 정체는 바로 이 책은 추리소설이 아니라 '숨은 그림 찾기'라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주요 항목별로 수수께끼가 등장하는데, 그 해답은 바로 이어진 삽화 속에 있거든요. 그런데 정답을 찾는 것이 추리력보다는 정해진 클리셰 (대표적인 예는 범행 시 깨진 시계라던가 담배 연기로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를 활용한 숨은 그림 찾기입니다. 이래서야 <<윌리를 찾아서>>와 별로 다르지 않죠.

물론 단점이라고 마냥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주요 독자라는 11세 가량의 아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일 수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소개되는 2편의 이야기 모두 나름의 재미도 있고 숨은 그림 찾기건 뭐건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만큼은 충실하게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 만한 여지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림도 아주 좋은 편이고요.

결론 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물이라는 것에 입문하는 어린 친구들에게는 충분히 좋은, 추천할 만한 책인만큼 나중에 제 딸아이에게 한번 보여주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책이 출간 될 정도인데 왜 전설의 명작 <<매거크 탐정단>>은 아직도 복간이 되지 않는걸까요?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