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3/01/29

여고생 드래곤 - 땅콩 : 별점 3점


오랫만에 완결까지 정독한 웹툰. 여고생 김민지가 이세계 골드 드래곤과 몸이 뒤바뀐 뒤,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분투한다는 내용의 개그 판타지입니다.
인간이 이세계 용의 몸으로 전생한다는건 <<드래곤과 조지>>에서 접했었던, 다소 흔해빠진 이야기입니다. 김민지로 전생한 드래곤이 남자친구와 사람에 빠진 뒤 모든 능력을 포기하고 인간이 되는걸 택한다는 이야기 역시 흔하다면 너무나 흔한 이야기이고요. <<인어공주>>와도 별로 다를게 없잖아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흔해빠진 이야기를 특유의 개그 센스로 보완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 합니다. 게다가 개그가 아주 잘 짜여져 있기까지 합니다! 판타지 세계의 경우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놓인 상황과 등장인물들간의 티키타카를 통해서 개그가 발생하는데, 민지의 일행인 스미스가 '전설의 초거대 짐승'을 죽이고 나서의 경우가 있습니다. 초거대 짐승은 알고보니 현자가 남긴 보물 '사냥의 신'의 남편이라서 난처한 상황에 빠지고 말지요. 또 판타지 세계에서는 전형적인 클리셰를 비트는 개그 요소도 많은데, 도미니크가 만년설원에서 얼음 검을 넣고 용사의 힘을 얻지만 더운 지방으로 이동하자 검이 녹아버리고 만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여고생 몸에 들어온 골드 드래곤 시점의 개그는 전형적인 캐릭터 개그물인데 이게 또 대박입니다. 주위 사람들을 '필멸자'라 칭하는 등 독특한 화법과 정신세계로 현실을 바라보는게 매 화마다 한두컷 정도 선보이는게 전부인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게다가 이 한두컷 정도 분량으로 100여화를 넘게 이어가면서 결론적으로 또 다른 하나의 긴 이야기 - 그것도 결국은 청춘 로맨스를!!!!! - 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는 점에도 박수를 칩니다. 약간 <<엘하자드>> (OVA 버젼) 느낌도 나는데 개인적으로는 뒤지지 않는다 싶을 정도로 아주 괜찮았어요. 100여화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적절한 분량도 마음에 들고요.

민지의 일행 중 더러움을 담당하는 도미니크에 의한 화장실 개그가 없는 편은 아니고, 지나치게 개그에 몰두해서 무리수를 두거나 중간중간 전체적인 흐름에서 다소 이질적인 전개를 보이는 에피소드도 살짝 거슬리기는 합니다. 작화도 아주 좋다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단점은 사소합니다. 이 정도면 누가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개그물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3/01/28

중고책으로 돈버는 사람들이라....


제가 헌책을 많이 조사해보고 구입해서 그런지, 얼마전부터 SNS에 이런 광고가 뜨더군요.

시세가 높은 책이 저렴하게 나올 때 구입해서 되파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있나 싶은데, 비결을 알아보려고 클릭해보니 뭔가 등록해야 하고 귀찮아서 포기했습니다.
혹시 저 비결에 대해 알게되신 분이 계시다면 부디 제게도 공유 부탁드립니다~

딕 브루너 - 브루스 잉먼 외 / 황유진 : 별점 5점

딕 브루너 - 10점 브루스 잉먼 외 지음, 황유진 옮김/북극곰

미피의 창조자 딕 부르너의 일생과 작품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소개하는 책. 대표작을 망라한 화려한 도판이 인상적입니다.
미피를 창조한 동화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버지 출판사에서 천 권이 넘는 책의 표지를 디자인했던 그래픽, 북 디자이너 출신이라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금수저이기는 한데 능력있는 금수저였던거지요.
그가 주로 추리, 범죄 소설이 많이 출간된 레이블 <<검은곰>> 을 위해 만든 표지들이 다수 소개되고 있는데, 이 레이블은 당시 덴마크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성공의 요인 중 하나가 표지 디자인이었다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작품이 재미있어서 성공했겠지만 표지 디자인이 꽤 눈길을 잡아끄는 것도 사실이에요. 소개된 표지들만 보아도, 딕 브루너가 레이블과 시리즈에 일관성을 주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좋아했다는 마티스의 색감과 꼴라주 스타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는게 눈에 확 띄였고, 제가 추리소설 애호가다보니 소개된 표지들 중 레슬리 차터리스의 세인트 시리즈,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경감 시리즈처럼 알고 있는 작품과 시리즈도 제법 되는데, 모두 분위기가 그럴싸하더군요. 조르주 심농이 딕 브루너에게 자기 작품을 자기보다 잘 드러냈다고 했을 정도니 말 다했지요.
단순한 표지 소개 뿐 아니라, 딕 부르너 스스로 검은곰 레이블의 캐릭터를 만들고 디자인에 반영해간 과정도 쉽게 알 수 있었서 좋았습니다. '펭귄 북스'와 같은 레이블 디자인을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한 셈인데, 모든 결과물이 탁월하다고 보기는 힘들어도 그 꾸준함에는 박수를 칠 수 밖에 없네요.

그리고 이러한 표지, 편집, 포스터 디자인 작업 소개 이후, 동화 작가로서의 작품이 소개되면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미피 소개가 시작됩니다. 미피 첫 작품은 디자인은 물론 이름도 달랐고, 판형도 정사각형 형태가 아니었다는 것에서 시작해서, 미피를 어떻게 만들어 냈으며 작업을 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등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새같으면 컴퓨터로 처리할 아웃라인과 색체 분할 작업을 스케치를 거쳐 색종이를 정확하게 오려 덧대는 아날로그적인 작업 방식이 독특했어요. 저도 90년대 디자인과를 졸업한 오래된 디자이너 출신인데, 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이미 컴퓨터가 보급되어 있던 시대라 저역시 이런 작업을 실제로 겪어보지 못해서 더욱 신기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그냥 오려붙이는게 아니라 치밀한 스케치 과정을 거쳐 아웃라인 작업을 먼저 진행한다는 일종의 노하우(?)도 기억에 남고요.

딕 브루너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고 하기는 부족하겠지만, 디자이너 딕 브루너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도판도 훌륭하고 책 디자인도 발군이에요. 내용이 딱딱하거나 어렵지도 않고요. 제 별점은 5점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들을 소개하는 시리즈인데, 다른 책들도 구해봐야겠습니다.

2023/01/23

사키 - 사키 / 김석희 : 별점 2.5점

사키 - 6점 사키 지음, 김석희 옮김/현대문학

국내 첫 출간된 영국의 쇼트쇼트 대가 사키 단편선. 무려 71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발표작 중 절반에 가까울 정도에요. 몇몇 작품은 이런저런 경로로 읽었었는데, 꽤 인상적이었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대를 앞서는 빛나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도 많고, 기묘한 맛 스타일로 서늘한 느낌을 담뿍 전해주는 반전물, 피식거리게 만드는 웃음 가득한 작품들도 다수 수록되어 있거든요. 몇몇 작품은 걸작이라 부를 수 있고, 번역도 좋습니다. '께느른하다' 같은 단어까지 사용한건 놀라왔어요. 열심히 사는 농부가 화가인 이복형을 보고 느끼는 감정인데, 몸을 잘 안 음직이고 게을러 보이는 상태를 잘 표현한 말이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아주 좋았다! 라고 말하기도 애매합니다. 대부분의 작품들 등장인물과 소재가 비슷하고 자가복제한 작품이 많은 탓입니다. 적당한 신분의 어떤 인물이 속물이거나 허영심 가득해서, 혹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 탓에 낭패를 겪는다던가, 부르주아적인 습성으로 타인을 대하다가 예기치못한 상황에 처한다던가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한 거짓말로 문제가 발생한다던가, '소악마' 캐릭터의 원조격인 악동들이 어른들을 골탕먹이는 내용도 많아서 읽다보면 지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나칠 정도로 짜증나는 인물들 묘사, 지나친걸 넘어서는 과한 장난들은 거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키우던 고양이가 아무리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해도, 고양이를 죽인 이웃집 아이를 돼지 먹이로 주려고 한다는 <<참회>>가 대표적입니다. 지나치다 못해 끔찍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정말 엄선된 몇몇 작품만 읽는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몇몇 기억에 남는 작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깜빡 잊은 지명>>
길에 버려진 시체로 자신을 위장하려 한 남자가 살해당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은 뒤 털어 놓은 고백.
기상천외한 발상과 온갖 기묘한 상황이 펼쳐지는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주인공이 당장 체포되지 않는 이유가 그레이하운드들이 그를 쫓고 있고, 누가 먼저 잡는지에 대해 큰 내기가 걸려있었다는 묘사가 등장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화자가 자기가 사실은 죽은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결론은 좀 억지스러웠습니다. 지명을 잊어버린 것은 사소한 문제일 뿐, 생김새 등 모든 면에서 이미 가짜라고 드러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사냥 자루>>
사냥 클럽을 이끄는 펠러비 소령은 후핑텅 부인의 숲에서 오랫만에 사냥을 이끌 계획이다. 그러나 후핑턴 부인의 조카딸 엘리자베스가 데려온 러시아 청년 블라디미르가 여우를 먼저 사냥해 버리고 마는데...
블라디미르의 사냥 자루가 눈 앞에 대롱대롱 매달러 있는 상황을 통해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가져 오는 전형적인 작품. 굉장히 영국 부르주아스럽고 전형적이지만 긴장감만큼은 최고였습니다.
아쉬운 건 블라디미르가 잡은 건 사실 여우가 아니었다는 반전인데... 마지막에 슬며시 드러내는 것 보다는 조금 드라마틱하게 가져가는게 어땠을까 싶네요. 발표 당시에는 먹혔음직 하나 지금은 좀 낡은 방식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생쥐>>
몸 속에 들어간 생쥐 때문에 시어도릭은 모르는 여자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는 위기에 처하는데....
지금 보아도 괜찮은 반전이 돋보였던 작품. 앞에 앉은 여자가 장님이었다는 암시, 복선을 제공해 주었더라면, 그리고 긴장감을 조금만 더 높여주었다면 쇼트쇼트 역사에 길이 남는 희대의 걸작 중 한 편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토버모리>>
한 시골마을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서, 참석자 중 한 명인 코넬리우스 에핀은 저택에서 키우는 고양이 토버모리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는 곧바로 사실로 밝혀지지만, 토버모리가 그동안 보고 들은 사람들의 말을 폭로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당황해했고, 결국 코넬리우스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토버모리를 죽이는데 동의한다.
영국 부르주아들의 가식을 비웃는 풍자물. 뒷담화, 불륜 등 온갖 더러운 짓은 다 하면서 서로 만났을 때에는 고상한 척을 하는 가증스러운 상태를 말하는 고양이라는 소재로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입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유머러스한 전개도 돋보이고요. 코넬리우스가 코끼리에게 말을 가르치려다가 밟혀 죽었다는 결말도 깔끔했습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토버모리의 폭로가 기대만큼 화끈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점인데, 발표된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이 정도가 한계였겠지요. 별점은 4.5점. 풍자 블랙 코미디계의 H.O.F (Hall of Fame)에 입성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브로그>>
마을 최악의 말 브로그를 소유한 멀렛 가족은 수년간의 노력으로 새로 이사온 펜리카드 씨에게 드디어 말을 팔아치웠다. 그러나 펜리카드 씨는 멀렛 가족의 딸 제시에게 호감을 드러냈고, 가족은 브로그가 사고를 쳐서 그 호감을 없애버릴까 노심초사하게 되는데....
내용은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가족)만 생각하는 가족의 이야기로 이 책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내용으로 그리 높은 평가를 할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아래의 딱 한마디만큼은 기억에 남기에 소개해드립니다.
“펜리카드가 그 말을 타고 밖에 나가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건 분명합니다.” 클로비스가 말했다. “적어도 제시가 그 사람과 결혼해서 남편한테 싫증이 날 때까지는 안 돼요. "

<<허황된 이야기꾼들>>
잔돈푼을 구걸하려는 사람을 거창하면서 허황된 이야기로 단념시킨다는 이야기. 이야기는 뻔했지만 신사답게 구걸하는게 어떤 것인지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샤르츠 메테르클루메 교수법>>
기차를 놓친 귀부인 칼로타가 자기를 가정교사로 착각한 부인을 따라가 그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이야기.
끔찍할 정도로 지나친 장난을 그리고 있는 소품으로 개그 콘서트에 어울릴법한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리치는 방법이라며 허풍을 떤 제목의 교수법 아이디어만큼은 괜찮았어요. 로마 고대사의 사비니족 여인 납치를 실제로 실연하는 식으로 아이들을 가리지거든요. 다른 방식으로 녹여내었더라면 더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맹점>>
에그버트는 삼촌 롤워스 경에게 대고모 할머니가 요리사 세바스티앙에게 살해당했다는 증거를 입수했다. 하지만 롤워스 경은 증거인 편지를 벽난로에 태워버렸다. “요리사로는 아주 비범하기 때문." 이라며...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범죄물로 흥미롭게 전개되다가 마지막 한 마디로 극적 반전이 이루어지는 초단편 (쇼트쇼트)의 교과서 같은 작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참고로, 롤워스 경의 심정은 어느정도 이해가 됩니다. 대고모가 살해당한건 먼저 세바스티앙을 자극했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다고 살인이 정당화될 수야 없겠지만 컵에 든 커피를 얼굴에 끼얹은건 솔직히 심했습니다.

<<평화 장난감>>
전쟁 놀이에만 열중하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의회와 역사적 인물들 인형을 선물했지만, 아이들은 그 장난감을 가지고 또다른 전쟁놀이를 시작한다는 이야기. 다른건 모르겠지만, '평화 장난감'이라는 발상이 기발했습니다. 전쟁이나 파괴에 대한 장난감이 대세인 지금에도 먹힐만한 아이디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크리스피나 엄벌리 부인의 실종>>
집안의 독재자였던 엄벌리 부인이 사라진 뒤, 남편은 매년 2천 파운드의 돈을 은밀하게 요구받았다. 부인을 돌려보내지 않는 조건이었다...
마크 트웨인의 <<붉은 추장의 몸값>>과 비슷한, 기발한 발상의 유괴극.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부인이 사라졌는데 경찰이 나서지 않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던건 조금 아쉽네요. 이런 상황이라면 엄벌리씨가 부인을 죽여서 마당 어딘가에 묻어버렸어도 무방했을 거에요. 차라리 그런 인상을 주면서 마무리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엉뚱한 침입자들>>
평생을 원수로 지낸 울리히와 게오르그는 함께 나무에 깔린 뒤, 해묵은 원한을 청산하고 친구가 되기로 하는데...
숲을 둘러싼 오래된 원한이 살의에까지 이르른 원수 두 명이 산중에 고립된 뒤 친구가 되기로 합니다. 그러나 둘은 구조대가 아니라 배고픈 늑대 떼들에게 둘러싸이고 만다는 반전이 인상적인 걸작 쇼트쇼트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메추라기 먹이>>
인기없는 상점에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주인은 연극을 펼치는데...
인기없는 마을 상점에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상점에 정체불명의 손님이 방문한 뒤 무언가 드라마가 벌어지는 것처럼 꾸민다는 이야기. 전략은 성공해서 마을 주부들의 호기심을 가게에 집중시키게 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SNS 를 활용한 페이크 다큐성 타겟 광고라고나 할까요? 시대를 앞서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임시 정원>>
정원 자랑하기 좋아하는 밉살스러운 이웃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임시로 멋진 정원을 꾸며주는 서비스 업체가 등장하는 이야기.
결말은 다소 답답했지만, 역시나 독특한 아이디어가 좋았습니다. 브루주아들의 허영심 비판에 딱 맞는 아이디어이기도 했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달력>>
클로비스는 예언을 적은 달력을 18펜스에 팔 생각을 했다. 예언은 모두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애매한 것들이었지만, 조슬린이 사냥터에서 화를 당할거라는 예언은 성공하기 힘들어졌다. 조슬린이 절대로 말을 타지 않고 사냥터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상품 아이디어가 등장합니다.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실하게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이비 점쟁이의 뻔한 수법을 특정 시기와 결합된 달력이라는 제품에 도입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거든요. 실제로 만들어 팔았어도 괜찮았겠다 싶을 정도로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불가피한 희생>>
천 파운드가 넘는 돈을 잃은 딸이 그 댓가로 홀어머니를 채권자 도박꾼과 결혼시킨다는 이야기.
다른 무엇보다 체면을 중요시하는 부르주아 풍자를 잘 그려낸 소품으로 대단히 신선하거나 재밌다기 보다는, 주인공 딸이 이 책에 등장하는 속물 부르주아 중에서도 뻔뻔하기로는 첫 손가락에 꼽을만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별점은 2.5점.

<<네모난 달걀>>
1차대전 참호에서의 참혹한 전투를 겪는 병사들의 위안은 술집가 카페가 합쳐진 공간 '에스타미네'에서의 한 때였다. 그곳에서 나는 자칭 양계업자를 만났다. 그는 품종 계랑을 통해 자기 양계장 닭이 네모난 달걀을 낳게 하는데 성공해서 거액을 벌었지만, 전쟁에 끌려온 뒤 양계장을 운영하는 고모가 돈을 내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소송 비용으로 수십 프랑을 요구하는데....
'나'의 마지막 말이 깨는 반전의 맛을 가져다 주는 작품. 그는 휴가를 얻으면 '양계업자'의 고향에 가서 네모난 달걀 산업 현황을 확인하고 돈을 빌려주겠다고 말하지요. 그러자 '양계업자'는 자기 말이 사실이라면 어쩔 셈이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나'는 대답하죠. "당신 고모님과 결혼하겠소" 별점은 3.5점입니다.
아울러 시키는 1차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했다는데, 그런 경력답게 굉장히 탁월한 참호 묘사도 눈여겨 볼 만 했습니다.

2023/01/21

도박 중독자의 가족 - 이하진 : 별점 1.5점

도박 중독자의 가족 - 4점 이하진 지음/열린책들

인터넷 상에서 화제이길래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왜 화제가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제목부터가 잘못되었어요. '범죄자의 가족'이 되어야 맞거든요. 시동생이 가족들은 물론 주변 지인들의 돈을 빌려가고, 심지어 명의 도용 등의 범죄를 저지르면서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가정 관계가 파탄이 났으니까요. 시동생이 도박 (정확하게는 주식) 중독자라는건 범행의 원인일 뿐입니다.
이야기도 실제 상황을 만화로 그려낸거라 드라마 요소는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시동생이 도박을 해서 어떻게 큰 돈을 잃었는지, 아니면 가족 돈을 어떻게 빼돌렸는지 같은 범죄 (?)에 대한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거든요. 가족들이 받은 피해, 특히 맏며느리인 작가와 시어미니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만 반복적으로 등장할 뿐입니다. 초반에야 그렇다쳐도, 후반까지 동일한 상황 탓에 변함없는 갈등이 벌어지는건 지루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작가 본인이 피해자라는 시각으로만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는데, 뭔가 공평치 않아보였어요. 시어머니의 무지한 언행 때문에 작가가 상처받고 이혼까지 생각하는게 이야기의 대부분으로, 그 둘 사이에 낀 남편에 대한 배려나 고려는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작가와 아들과의 유대관계만 짤막하게 보여질 뿐이지요. 왜 남편에 대해서는 이렇게 소홀하게 다루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봤을 때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낀 남편에게도 지옥같은 생활이었을텐데 말이죠.
시동생은 일용직 등으로 돈을 어떻게든 갚아 나가고 있고, 남은 가족들은 겨우 관계를 복원하고 자기 살 길을 찾았다는 결말은 현실적이기는 하나, 이야기의 완결로 보기에는 부적절했습니다. 인생도 그냥 계속 흘러간다는건 서사구조로 본다면 기승.... 에서 마무리된 것과 다를게 없지요. 도박 중독자인 시동생의 치료와 회생, 아니면 손절(?)한 작가 외 다른 가족의 파멸이라도 그려졌다면 모를까요. 결말에서 시동생 비중은 없다시피한데, 이 역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어요. 갈등의 매개체 역할만 하고, 결국 치유도 못하고 극적 드라마도 없이 사라져버린거니까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초반부에 토르가 타노스 머리를 날려버리고 영화가 끝나버린 셈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만화가 그려졌다는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봤을 때, 현재의 결과물은 일기에 가깝습니다. 작화도 내세울게 없을 정도로 단순하고요. 한 편의 완성된 '만화'라고 볼 수 없어요.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어서 딱히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2023/01/15

한밤의 지하철 공포미스테리 걸작선 - 정태원 편역 : 별점 2점

<<밤에 걷다>>와 <<본인방 살인 사건>> 다음에 집어든 오래된 책입니다. 최근 오래전 책을 다시 뒤져보는 취미에 푹 빠졌거든요. 이 책도 출간된지 벌써 30년이나 되었네요.
정태원 님께서 편역한 앤솔러지입니다. 서두에서는 공포를 다룬 미스테리 작품을 모았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다 그런건 아닙니다. 공포 보다는 서늘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기묘한 맛'에 더 가깝다거나, 아예 블랙 코미디스러운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는 탓입니다. 질 드레'를 '지르도 레'처럼 번역한걸보면 일본어 판본을 번역한 듯 하며, 그런걸 보면 정식 허가를 받고 출간된 책은 아닐 것으로 여겨지네요.

그래도 유명한 추리 소설 전문가 정태원 님이 편역한 책 답게, 작품별 작가 소개와 작품들의 출처를 대체로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다는건 좋았습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 작품들이 고루 포함된 점도 장점이고요. 수록작 13편 중 눈여겨 볼 만한 좋은 작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아내가 불륜 상대와 자살한 뒤, 홀로 남은 아들을 외국에서 키우다가 아들이 이미 미쳐버렸다는걸 깨닫는 <<길고 어두운 겨울>>입니다. 아들을 말도 통하지 않는 베이비시터에게 맡겨두고, 일본에서 가져온 똑같은 동화책만 계속 읽는걸 방관했는데, 알고보니 동화책은 잘못 제본된 책이었고 아들은 동화책을 읽는게 아니었다는게 - 그냥 멍하니 같은 자세로 있었던 것 -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이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위한 빌드업도 탄탄하고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였어요. 작가 소노 아야꼬는 경력을 보면 이런 장르물을 발표했을걸로 생각되지 않는 작가인데 다른 작품도 궁금해집니다.
아내가 낳은 딸을 없애기로 결심한 남자가 어두운 공간에서 마녀의 시체라며 토막난 무언가를 건네준다는 <<10월 게임>>도 등골 서늘한 결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레이 브래드버리 작품다왔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다소 뻔했지만 <<오리 대신에>>, <<비만클럽>>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오리 대신에>>는 짤막한 분량으로 깜짝 반전을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비만클럽>>은 살찌워진 남편이 사람들에게 먹힐 때 일종의 특권으로 조리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데 '산채로 먹힘'을 선택한다는 발상이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내용의 설득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기묘한 맛' 쇼트쇼트로는 우수한 편입니다.
조숙하고 다소 정신나간 아이가 어른을 없앤다는 설정의 <<식용 거북이>>와 <<살인유전>>은 각각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빼어난 묘사력, 스탠리 엘린의 반전 구성 능력이 돋보였습니다. <<식용 거북이>>는 예상 가능했다는 점에서, <<살인유전>>은 서사를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있으나 평균 수준은 됩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작품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앤솔러지 전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들이 문제라 생각됩니다. '공포'를 다룬 장르물에 적합한건 사실입니다만, <<피의 책>>이라는 작가의 단편집에 이미 수록된 작품들을 그대로 수록해 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는 기쁨은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최소한 여러 단편집에서 대표작만 엄선하여 수록했어야 했는데, <<피의 책>> 수록작 중에서 최고의 작품들인지도 솔직히 미심쩍었습니다. <<한밤의 지하철>>은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이라는 영화로 재탄생할 정도로 유명한 작품으로 기승전결은 확실하고 화끈하게 달려주는 괜찮은 작품이라 예외로 치더라도, 마을 사람들이 거인을 만들고 자멸한다는 <<언덕에 마을이>>와 암세포가 사악한 크리쳐로 변해 사람들을 습격한다는 <<영화관의 악령>>은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기괴한 상상력 외에는 건질게 없었으니까요. 결과물도 재미보다는 혐오쪽에 가까왔습니다. <<영화관의 악령>>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형과 사투를 잔혹한 묘사로 버무린게 전부라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신 투명인간>>은 존 딕슨 카의 정통 추리물로 작품 수준을 떠나 왜 이 앤솔러지에 수록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호러물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작품인데 말이지요. 추리적으로도 영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이전에는 평균 이상이라 호평했었는데, 번역의 문제였을까요?
<<아내 살인 되돌리기>>, <<살고 싶어했던 여자>>는 양산형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로 많이 흔해빠진 설정과 전개를 보여주는데다가 별로 무섭지 않은 등 감점 요소가 많았습니다. <<두 병의 소오스>>는 걸작이라는건 분명하나 이 앤솔러지에서는 빼는게 맞지 않았을까 싶네요. 워낙에 많은 이런저런 앤솔러지에 수록된만큼 신선함도 떨어질 뿐더러, 공포와는 좀 거리가 있는 '기묘한 맛'에 가까운 작품이니까요.

그래서 전체적인 별점은 2점입니다. 30년이 지나는 동안 정식 출간된 좋은 앤솔러지가 많아진만큼, 다른 책을 구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어차피 절판된지 오래라 구해보시기도 힘드실거에요. 알라딘에서는 책 검색조차 되지 않는군요.

2023/01/14

마녀의 은신처 - 존 딕슨 카 / 이동윤 : 별점 4점

마녀의 은신처 - 8점 존 딕슨 카 지음, 이동윤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핵심 트릭과 범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인 테드 램폴은 대학 은사의 소개로 영국 시골 채터럼에 거주하는 사전 편찬자 기디언 펠 박사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 지방에는 스타버스 가문에서 다스렸던 교도소에 얽힌 저주가 전해지고 있었고, 실제로 스타버스 가문의 주인들은 모두 목이 부러져 죽었다.
램폴은 스타버스 가문의 장녀 도러시와 사랑에 빠졌지만, 가문의 유산 상속을 위해 교도소의 교도소장 방에서 자정에 무언가를 가지고 왔어야 했던 가문의 장남 마틴이 교도소에 간 날 밤 목이 부러져 죽고, 사촌 허버트는 사라지는 사건에 말려드는데....


유일하게 읽지 않고 남겨 두었던 존 딕슨 카의 국내 출간작. 해문의 어린이용 버젼으로 앍어야하나 고민하던 중 엘릭시르에서 나온 전자책이 있길래 냉큼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딕슨 카의 특기가 유감없이 펼쳐지는 작품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추리적인 장치들입니다. 정통 고전 미스터리의 대가다와요. 특히 일종의 순간이동 트릭이 볼만했습니다. 
범인인 손더스 목사는 교도소장 방의 램프 불이 꺼질 때까지 펠 박사와 랜폴과 함께 있었다는 결정적인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램프 불이 꺼진 직후 램폴과 함께 펠 박사 집을 떠났고, 그 뒤 마틴의 시체가 발견되었으니 범인일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펠 박사가 추리해낸 진상은 실종된 허버트가 마틴 대신 교도소장 방으로 갔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도소장 방의 램프는 마틴이 아니라 허버트가 켜고 껐으며, 마틴은 목사가 펠 박사의 집에 가기 전, 목사관에서 이미 살해해서 마녀의 은신처에 사체를 유기했던 겁니다. 이후 사체 발견 후 목사관에 들렸을 때 허버트도 살해했고요. 이 일련의 과정은 마틴이 굉장한 겁쟁이었다는 것과 허버트의 맹목적인 충성이라는 인간 관계, 그리고 마틴은 골초였는데 교도소장 방에는 꽁초하나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 발코니 창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창으로는 빗물이 전혀 들이치지 않았다는 등의 세부적인 단서를 공정하게 제공하는 것에 의해 합리적으로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허버트가 발명가라는 설정으로 발코니에 특수 장치를 했을 거라는 추론같은 잔재미도 충분하고요.

사건의 동기라 할 수 있는, 우물에 보물이 있다는 펠 박사의 추론 역시 합리적이에요. 그는 지극히 공정하게 독자들에게도 제공되는 정보로 이를 추리해냅니다. 초대 교도소장 앤서니 스타버스는 왜 그렇게 완력이 강해졌는지? 교도소장 방 발코니 석재 난간에 깊숙하게 패인 홈의 정체는 무엇인지? 발코니로 향하는 문 열쇠가 왜 필요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미워하던 가족들에게 남겨주지 않은 막대한 재산은 어디에 갔는지? 라는 단서를 통해 앤서니가 난간에 밧줄을 묶은 뒤 바로 아래 있는 우물 안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으며, 그 이유는 우물 안에 재산을 숨겨 놓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니까요.
이 추론을 증명하는, 교도소장이 남긴 십자말 풀이같은 암호문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형편없는 시를 썼다는 인물 설정에도 부합하면서도, 언어가 다른 국내 독자들도 풀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될 정도로 쉬우면서 합리적인 암호였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손더스 목사가 범인임을 드러내는 추리쇼 장면이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펠 박사는 경찰서장과 여러 관계자들과 함께 기차역으로 항합니다. 도착하는 인물이 사건의 주요 인물이라면서요. 그리고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누구냐고 손더스 목사에게 물어보는데 목사는 "당신 미쳤구먼! 나는 저 사람 처음 봅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짓입니까?"라고 답합니다. 여기서 손더스 목사가 가짜라는게 드러나게 되지요. 그 사람은 진짜 손더스 목사의 숙부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아는게 아니라 '모르는 것'이 핵심 증거가 된다는 발상이 아주 신선했고, 이를 추리쇼 형태로 풀어낸 솜씨는 정말로 탄복할만 했어요.
이러한 추리적인 요소들 외에, 딕슨 카의 또 다른 특기인 오컬트적인 부분의 묘사도 빼어납니다. 광기의 교도소장 앤서니 스타버스와 그가 만들어 운영했던 죽음의 교도소, '마녀의 은신처'라고도 불리우는 교수형장 터에 대한 끔찍하면서도 생생한 묘사는 일품이에요. 20세기 초반, 영국 시골 분위기와 음침함이 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스타버스 가문에 내려진 저주(?)도 그럴듯하게 느껴지게 만들고요.

하지만 손더스 목사가 저지른 범행의 원인이 된 티머시 스타버스의 행동에는 다소 의문이 남습니다. 티머시 스타버스는 죽기 전에 자기를 죽이려한건 손더스 목사였다는걸 알리지 않습니다. 어차피 티머시 사후 아들 마틴이 가문을 잇게될 때 확인하게 될 금고 안에 손더스 목사의 범행을 증명하는 서류를 넣어두었을 뿐이지요. 왜냐하면 남은 몇 년 간, 손더스 목사가 도망도 가지 못하고 범행이 드러날 때까지 지옥을 맛보게 하려는 생각이었다는데.... 이는 손더스 목사로 하여금 아들과 조카마저 살해하게 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궁지에 몰린 손더스 목사가 마틴을 죽이고 서류를 손에 넣으려고 했으리라는건 충분히 알 수 있었을겁니다. 한 명을 죽이나, 두 명을 죽이나 어차피 별 차이는 없잖아요. 이런 계획을 세우고 서류까지 작성할 정도였으면 정신도 말짱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왜 이런 무모한 (?) 계획을 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나중에 진술서를 통해 손더스 목사가 왜 도망가지 않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그다지 설득력은 없었습니다. 어차피 몇 년 뒤 범행이 드러날거라면, 스타버스 가문의 숨겨진 보물로 거액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 여행을 떠난다는 등의 핑계로 마을을 떠나 사라지는게 나았을테니까요. 신분도 손더스 목사로 위장하기 전 원래 신분으로 돌아간 뒤, 원래 머물던 뉴질랜드로 떠났다면 영원히 문제가 없었을 거에요.
그 외에도 티머스 스타버스는 보물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게 분명한데, 왜 진작에 보석을 꺼내어 가문의 재산으로 삼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며, 램폴과 도러시가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다던가, 아무리 손더스 목사가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한들 마틴이 선뜻 목사 계획에 응했다는 등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적지 않네요.

그래도 추리적으로 워낙 빼어나기에 단점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습니다. 오컬트적인 요소가 잘 어우러진 특유의 작풍도 아주 매력적이고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전에 올렸던 내용에서 업데이트한, 제가 여태 읽었던 딕슨 카 작품 순위를 공개합니다. 지금 읽으면 별점과 순위는 다소 조정될 수 있지만, 평균 별점이 3점을 넘으니 타율로 따지면 5할 이상! 쳤다하면 장타입니다. 대단하네요.

공동 1위 : 별점 4점
<<해골성>>
<<유다의 창>>
<<흑사장 살인 사건>>
<<화형 법정>>
<<마녀의 은신처>>

공동 6위 : 별점 3점
<<연속 살인 사건>>
<<세 개의 관>>
<<구부러진 경첩>>
<<벨벳의 악마>>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초록 캡슐의 수수께끼>>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
수록작 중<<은빛 장막 속에서>>, <<합법적인 사형집행인>> 별점 4점
<<사라진 방>>, <<분장실의 시체>> :별점 3.5점
<<투명 인간 살인>> : 별점 3점

13위 : 별점 2.5점
<<모자 수집광 사건>>

14위 : 별점 2점
<<밤에 걷다>>

2023/01/08

정보는 모두 당신 손 안에! "독자에의 도전장"을 즐길 수 있는 미스터리 작품들

* 언제나처럼 honto의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국내 소개된 작품은 4편입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단편집도 재미있어 보이는데 꼭 소개되면 좋겠네요.

<<독자에의 도전장>>은 엘러리 퀸이 처음 시작했다고 알려진 미스터리 소설의 한 요소입니다. 사건 해결 부분 앞에 "지금까지의 이야기 중 범인을 지적하기 위한 증거는 모두 갖춰졌습니다. 범인을 맞춰보세요." 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만큼 작가가 공정하게 이야기를 썼다는 뜻이기도 하고,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다음 작품들과 함께 범인과 동기를 논리적으로 추리해 보시지요.

<<돈돈 다리 떨어졌다>> 아야츠지 유키토 (국내 미출간)
대학교 추리 소설 연구회 활동 당시부터 범인 맞추기에 대한 작품을 쓰고 있었다는 저자.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에게 전해진 범인 맞추기 작품을 읽고 수수께끼를 푼다는 형식의 단편집으로 수록작 5편 중 4편에 독자에의 도전장이 들어있다. 동서고금의 유명 미스터리 작가들도 등장하는 등,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된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이색 & 의욕작.

<<월광 게임>> 아리스가와 아리스
부제가 Y의 게임이며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아리스가와 아리스라는 점 등에서 엘러리 퀸을 의식하고 썼다는 걸 알 수 있는 데뷰작. 논리와 공정함을 중시하는 작품으로 클로즈드 써클, 연쇄 살인 사건, 다이잉 메시지 Y, 그리고 '독자에의 도전장'까지 본격 미스터리 요소가 가득한 작품이다.

<<점성술 살인사건>> 시마다 소지
작가의 데뷰작이자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 첫 등장 작품. 6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사체 일부를 잘라는 엽기 살인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채 40년이 지난 뒤, 미타라이 기요시에게 관계자의 수기가 도착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본작은 일본 미스터리 역사상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트릭의 신선함이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츠지무라 미즈키
학교에 갇힌 고등학생을 찌르는 기억이 나지 않는 '죽은 동급생의 이름'. SF 판타지이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그린 청춘 소설이기도 한 31회 메피스토상 수상작이자 작가의 데뷰작. 앞선 작품들처럼 저자와 동명의 인물이 등장한다던가, '독자에의 도전장'이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미스터리 사랑이 느껴진다.

<<체육관의 살인>> 아오사키 유고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에 대한 오마쥬가 느껴지는 작품. <<관 시리즈>>의 제 1작으로 제 22회 아유카와 데츠야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밀실 상태의 체육관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탐정은 교내에 살고 있는 애니메이션 덕후로, 해결 부분에서의 논리적인 전개는 말 그대로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 이라고 할 수 있다.

2023/01/07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 - 이소영 : 별점 3점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 - 6점
이소영 지음/모요사

미술사를 바꾼 여러 가지 그림 도구 및 각종 계기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책. 모두 14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로 제목에서처럼 도구들이 설명되고 있지만 화가의 직업병을 다룬 '백내장' 같은 챕터와 같이 다른 분야도 폭넓게 소개해줍니다.
특히 이런 도구와 각종 계기들이 미술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려주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캔버스의 도입처럼요. 이동이 용이한 캔버스 덕분에 그림이 더 이상 교회와 건물에 붙박이 장식으로 활용되지 않고, 보다 폭넓게 유행하게 되었다니 대단한 혁신을 이룬 셈입니다. 나무 패널에서 캔버스로의 변화가 일어난 이유가 르네상스 시기, 베네치아가 바다에 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그럴듯했습니다. 습하고 소금기가 많은 대기는 프레스코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뿐더러, 베네치아에서는 나무는 배를 만들기 위한 중요 자재였기 때문이었다니까요. 그래서 해양강국답게, 돛을 만들던 기술을 활용한 캔버스가 대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캔버스의 질감을 그림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기법 소개도 좋았어요.
이런 캔버스만큼, 아니 더 큰 미술사의 혁명을 불러온 재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아크릴 물감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 미술은 현실 세계에 없는 입체감 없는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라는 사조가 등장했는데 이는 경쾌하고 선명한 색감, 빠른 건조에 어디에나 그릴 수 있는 등의 장점을 갖춘 아크릴 물감의 등장으로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아크릴 물감 챕터에서는 이렇게 아크릴 물감이 현대 미술을 그야말로 '접수'한 신소재라는걸 여러가지 작가들의 작품들을 예를 들어가며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기술과 결합된 현대미술의 큰 이바지를 한 빌리 클뤼버, 그리고 그가 주축이 된 창작집단 E.A.T 소개도 좋았습니다. 당연히 미술가들이 기계적인 작품을 혼자서 만들지 못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기술자들과 만나서 작업을 진행했는지는 몰랐었어요.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어떻게 서로 다른 두 분야 사람들이 만나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과물을 탄생시켰는지를 어느정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협의 기간이 오래 걸렸고, 심지어는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구현하지 못할 때 다른 기술을 제시하여 전혀 다른 결과물을 창조해내는데 일조했던 작품도 있었다니 - 앤디 워홀의 <<은색 구름>> - 이 정도면 함께 창작을 진행한 동료라고 보아도 무방할것 같아요. 더 이상 기술의 도움없는 예술은 없는 시대이기도 하니까요.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습니다. 템페라화가 대표적입니다. 저는 템페라화는 유화가 유행한 뒤에는 사라졌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초중반에 나름 인기를 끌었다고 하더군요. 약간 몽환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질감과 색감이 현대 미술의 어떤 분야와 잘 어울렸기 때문이라나요. 게다가 21세기에는 공장에서 제조된 물감의 유해성이 알려지며 템페라 물감이 또다시 유행한다고 합니다. 자연친화적인 재료니까요. 또 달걀 노른자를 사용한 템페라처럼 부엌 재료들이 일찍이 물감 재료로 활용되었다는 내용도 재미있었어요. 렘브란트의 그림에 밀가루가 사용되었던 식인데, 확실히 화가들도 계속 연구와 고민을 계속하는 사람들이라는걸 잘 알려주는 일화가 아닐까 싶네요.
'종이'에서는 터너의 수채화의 독특한 질감과 효과는 모두 그가 사용했던 종이 덕분이었다는 내용을 알려줍니다. 종이에 상처를 낸 뒤 물을 붓고 거기에 물감을 떨어뜨려 무늬와 명암을 얻는 터너의 기법은 현재의 종이로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종이 원료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제지 회사에서 전문가용으로 '터너풍 수채화 종이'를 개발해서 판매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팔레트'는 미술 도구로서의 팔레트를 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이상 팔레트는 필요없는 그림의 시대가 열리는 과정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화가들이 팔레트에 뿌린 물감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팔레트에는 대체로 열 개 정도의 물감만 쓰였고, 전통적인 팔레트는 혼색을 위해 사용되었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은 혼색 대신 튜브에서 짜낸 물감을 비비고 흩뿌려 작업했다고 합니다. 즉 인상주의의 탄생은 튜브형 물감의 도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이후에는 팔레트도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튜브형 물감과 같은 합성 물감도 한 항목을 할애하여 설명해주는데, 일전에 다른 다른 책에서 읽었던 고흐의 독특한 노란색이 시간이 흐르며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백내장'은 독특하게도 화가들의 직업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눈 질환을 앓은 화가들이 많았다는데, 드가가 거의 완전 실명에 이르른 탓에 유화를 그리지 못해 파스텔화와 조각으로 작품 세계를 이어갔다는건 몰랐었습니다. 유별나게 인상파 화가들에게 백내장 등의 질병이 많았던건 여러가지 물감들에 포함된 납 성분, 야외에서의 작품 활동을 즐긴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업 방식 등이 이유였겠지요. 이를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인상파 화가 메리 커셋의 작품이 초기의 세밀하고 부드러웠던 그림에서 거친 파스텔 화로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백내장에 걸린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컴퓨터에서 재현하면 드가와 모네의 화풍과 비슷하다는 도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림과 미술사, 각종 재료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내용이 가득한 책입니다. 확실히 미술사 전문 출판사 모요사의 책 답게 재미와 가치를 동시에 잡고 있어요. 도판이 너무 작다는 점, 그리고 소개되는 모든 작품의 도판을 수록하고 있지 못한 점은 좀 아쉬우며, 전문가적인 이야기에 개인적인 느낌과 감상이 다소 많이 섞여 있는 것도 옥의 티라 할 수 있지만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3/01/06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3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2.5점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3 - 6점
한국일보 경찰팀 지음/북콤마

안녕하세요. 2023년 들어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1권2권에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지능범죄편이라는 부제 그대로 다양한 사기 범죄가 주제로 피해자들이 왜 속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단순하고 뻔한 사기도 있지만, 생각하지도 못했던 대담한 발상의 사기극도 등장합니다. 유명하고 잘 알려진 사건도 있지만, 잘 몰랐던 사건도 많아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범행에 대한 치밀한 수사로 범인을 잡아나가는, 수사물로서의 드라마가 느껴지던 1, 2권에 비하면 아무래도 그런 요소는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사람들이 누구나 속아넘어갈만한 정교한 사기극은 거의 없고, 왜 속아넘어가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뻔하고 단순한 사기극이 많다는 점도 실망스러웠어요. 이게 현실이겠지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기억에 남는 사건 몇 가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행복팀 사건>>
심리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는 농아들을 속여 가스라이팅한 뒤, 사이비 종교 교주처럼 군림하며 등쳐먹은 일종의 사이비 종교 사기극. 사이비 종교가 범죄로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아울러 범인들 때문에 자살 등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량이 낮다는건 큰 문제로 보입니다. 이런 놈들은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모쪼록 자살과 가장 붕괴의 원인이 된 사기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은 살인죄 이상으로 판결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대구 금호강 보험금 살인 사건>>
이 사건은 제가 봤던 <<그것이 알고싶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였습니다. 범인의 억울하다는 투서에서부터 시작해서, 범인 가족이 억울하다며 울면서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데, 알고보니 그놈이 진범이 맞아서 황당했었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게 살던 15년 친구를 보험금때문에 살해하는 인간 말종이니 애초에 양심은 없겠지만, 아직도 무죄를 주장한다는데 입맛이 쓰더군요.
그나저나 생소했던 '법보행'이 결정적 증거였다는 것도 기억에 남은 요인으로 대체 얼마나 걸음이 특이하길래 주위 친구들이 모조리 알아볼까 싶은데, 걷는 모습을 자세하게 보고 싶네요.

<<로맨스스캠>>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한 범죄이지요. 책에서 범죄 흐름에 대해 상세히 소개해주고 있는데, 앞으로 이런 범죄 방지를 하자는 차원에서 짤막하게 소개해드립니다.
1. 채팅 앱에서 자신을 여군 간호장교라고 소개한 아만다 앰버는 그 후 메일을 통해 연애를 하자고 접근해온다.
2. 앰버는 자신의 신분증이나 군부대에서 찍은 사진을 종종 보내옴으로써 자신을 믿게 만든다.
3. 메일에서 '자기' '남편' 등 애칭으로 A씨를 부르며 전역한 뒤 한국에서 결혼하자고 구애한다. 어느 날 시리아 내전 지역에 파병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작전 중 사망할 때를 대비해 상속자 이름을 적었는데 '미래의 남편인 당신의 이름을 적어냈다”고 한다.
4. 앰버는 “작전 지역으로 급히 이동해야 하는데 돈을 찾을 적당한 곳이 없다"며 경비와 생활비 명목으로 10만~100만 원을 요구한다.
5. 앰버는 시리아에서 수색 작전을 하다 동굴에서 숨겨둔 무기와 함께 달러 뭉치를 발견했다며, 자기 몫인 500만 달러를 일단 런던 보안업체의 개인 금고로 빼돌리고 그것을 다시 주한미군 기지로 옮기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거액의 비용을 요구한다. A씨는 통관비와 항공수송비를 모아 앰버에게 보낸다.
6. A씨는 달러가 든 가방이 서울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1만 달러를 건넨 뒤에야 가방을 넘겨받는다. 가방에 든 금고에서 검은색 종이만 가득 나온다.


<<인천 공인중개사 전세 사기 사건>>
이중 전세 계약 사기입니다. 집주인에게서 월세 계약을 위임받은 공인중개사가 세입자에게 자신이 집주인이라고 속여 전세 계약을 하고, 그 돈으로 주인에게 월세를 지급한 사건입니다. 등기부등본에서 근저당권 설정 항목을 삭제한 뒤, 근저당권 없는 매물이라고 속여 계약하기도 했고요. 그 외에도 보증금 뻥튀기 등 다양한 사기 행각이 이어졌습니다.
아울러 '전세 사기'를 피하는 방법으로
① 집주인을 만나 신분증, 주소지, 생년월일 확인
② 전세 대금은 주인 명의의 계좌에 직접 입금
③ 등기부등본은 앱 등으로 직접 뽑아 확인

하라고 알려주는데, 아쉽게도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저도 전세 계약을 몇 번 해 보았지만 본인 확인부터가 쉽지 않거든요. 실제 있었던 범행들처럼 대역을 내세우면 알아낼 방법이 사실상 없으니까요. 부동산 계약은 거액이 오가는 만큼 보다 명확한 본인 인증 거래가 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개선되는게 바람직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기 행각보다 더 큰 문제는 47명 전세자금을 떼먹었는데 고작 선고받은게 7년 형이라는 것입니다. 이러니 사기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죠.

<<온라인 암표>>
요새 꽤나 많이 회자되는, 온라인에서 암표를 팔기 위해 매크로를 이용해 표를 구입하는 방식이 소개됩니다. 특정 프로그램을 돌리는건데 캡챠까지 자동 해제하는 기능이 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각 예매처가 사용하는 캡차 문자와 이미지 꾸러미를 미리 매크로 프로그램에 입력해놨다가, 특정 문자나 이미지가 뜨면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꾸러미에서 가장 유사한 것을 찾아 보안 절차를 해제하도록 하는 단순한 DB처리 방식인데, 캡챠가 이렇게 쉽게 뚫리는건지 몰랐네요.

<<검사 사칭 대출 사기>>
유부남 사기범이 검사를 사칭해서 거액을 빌리고 결혼 약속까지 하는 식의 뻔한 사기라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자기가 거액을 빌려주고, 결혼할 사람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건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되요. 전화 한 통화면 충분했을텐데 말이지요.
하지만 "공무원 사칭 사기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기다. 이런 사기가 여전히 통한다는 건 그만큼 한국 사화가 투명하지 않다고 보는 국민이 많다는 증거다."라는 마지막 마무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PC방 패보기 도박 사기>
대담한 발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들은 당시 우리나라 PC방 컴퓨터의 66퍼센트 정도에 악성코드를 설치해서 사기 도박을 벌였는데요, 그 방법은 범인들이 5억원에 PC방 관리 프로그램 업체를 인수했던 것입니다! 범인 중 한 명이 개발자 출신으로 게임 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IT계통에 정통했던 덕분이겠지만, 밝혀진 것만 40억원 정도를 패보기 도박으로 벌어들였다니 꽤나 남는 장사였던 셈이네요.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2 - 한국일보 경찰팀 : 별점 3.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