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8/04/28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 P.D 제임스 / 이옥진 : 별점 3점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 6점
P.D. 제임스 지음, 이옥진 옮김/황금가지

코델리아 그레이는 신참 사립탐정으로 파트너 버니의 자살로 인해 독립하게 된 첫 날, 로널드 칼렌더경의 의뢰로 경의 아들 마크의 자살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의뢰받는다. 코델리아는 마크가 학창시절을 보낸 캠브리지를 중심으로 그의 과거사를 뒤쫓으면서, 서서히 자신에게 위협이 닥치는 것을 깨닫고 최후의 순간에 의외의 진상을 밝혀내게 된다...


제가 그동안 너무나 읽고 싶었던 작품 중 하나인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의 재 출간본입니다. 번역도 전부 새로 다시 하였으니 복간이라기 보다는 아예 새롭게 책을 낸 것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겠죠. 이로써 P.D 제임스 여사의 모든 국내 출판 도서들의 독서를 완료했기에 굉장히 후련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코델리아 그레이의 데뷰작이기도 하고, P.D 제임스 하면 떠오르는 명탐정 달그리쉬 총경이 주인공이 아닌 점 등 여러가지 특이한 점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젊은 미녀 코델리아가 주인공인 탓인지 젊은이들이 많이 등장하여 작품이 좀 시끌벅쩍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역시 다른 작품과는 달라 보이고요. 철학적이고 사려깊은 달그리쉬 총경보다는 아무래도 가벼운 느낌을 많이 전해 주더군요. 뭐 저야 좀 생각좀 할라치면 철학적 문체와 사고가 난무하는 달그리쉬 시리즈보다야 이 작품 분위기가 더 읽기는 즐겁고 편했습니다. 참고로 코델리아 그레이는 명탐정 코난의 "하이바라 아이" 이름의 유래가 된 명탐정이기도 하죠.

그런데 솔직히 읽으면서 느낀 점은 왜 그렇게 이 작품이 유명했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단지 절판되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나?

일단 사건부터 이야기하자면 자살사건의 진상 조사라는 의뢰야 이바닥에서는 뻔한 결과를 항상 낳는 법이죠. 바로 자살로 위장한 살인이라는 결과인데, 이 작품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 이면에 있는 진실 역시 대체로 출생의 비밀이나 유산 관련 이야기라는 것도 뻔하고 말이죠.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하면 흥미진진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가 작품의 키 포인트나 다름 없는데 이 작품에서는 코델리아의 조사가 너무 일방적으로 흘러가서 설득력은 있지만 의외성이나 호기심 유발 부분에서는 좀 뒤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립탐정이 하는 조사가 별게 없는 만큼 대단한 추리가 등장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대보다는 추리적 요소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네요.

게다가 마지막의 진상을 밝혀내는 일종의 깜짝쇼와 그 이후에 벌어지는 여러가지 사건들 역시 당혹스러웠습니다. 등장인물들의 극심한 심리변화는 물론이고 사고가 연달아 벌어지는 개연성이 뚜렷하지 않거든요. 너무 급하게 마무리 지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급작스럽게 끝나는 결말은 왠지 개운치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달그리쉬 총경이 등장해서 전체적인 헛점을 마무리 해 주는 부분은 팬으로써 반갑기는 했지만 반칙 같다는 인상을 받았고요.

아울러 과거가 좀 복잡하고 (현실세계에서 가능한 하야테 수준의 복잡한 어린시절 정도랄까...) 생각많은 주인공 코델리아 그레이 역시 여성 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는 좋았지만 개성은 별로 없어보였습니다. 너무 스테레오 타입의 미녀 탐정 캐릭터 그 자체였으니까요. 또한 코델리아의 복잡한 과거에 얽힌 기억이 수사 도중 도중마다 튀어나오는 것은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색적인 요소로만 삽입되었다는 느낌이 강할 만큼 불필요한 이야기이기도 했고요. 차라리 "원 포 더 머니"의 스테파니 플럼쪽이 개성이나 현대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어울리는 캐릭터라 생각되네요.

마지막으로, 심리묘사도 여성 작가 들이 흔히 쓰는 여성의 심리묘사라는 특징이 너무 뚜렷이 드러나 보여서 좀 지루했습니다. 흡사 알렉산드라 마리리나의 작품같았달까요. 여성 작가들이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키면 정말이지 이젠 작품들이 너무 비슷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 (죽은 인물인 버니와 마크를 제외한) 이 사악하고 뭔가 음모를 지니고 있는 듯이 묘사된 페미니즘 적 묘사도 약간 거슬렸는데. 차라리 미네트 월터스의 작품들처럼 델마와 루이스 마냥 그냥 달려주는 것도 아니라서 뭔가 약간 애매하고 가다 만 듯한 인상만 전해 줍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P.D 제임스 여사의 작품 완독의 의미가 더 컸던 독서였습니다. 단점만 너무 절절이 늘어놓긴 했는데 분명 재미는 있었고 달그리쉬 총경이 깜짝 등장해서 명추리를 펼쳐 주는 것 같이 시리즈 독자로서는 반가운 부분도 많았지만 확실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고 명성에도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원래 알려진 제목과 다른 번역판 제목도 용서가 안되고요.
그래도 여사의 다른 장편들 ("어떤 살의", "검은 탑", "나이팅게일의 죽음") 중에서는 중간 정도는 되는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다른 작품들은 번역도 문제겠지만 많이 지루한 편이라서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3점. 전 관대합니다.

2008/04/27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 김민영 : 별점 3점

 

세 개의 관 - 6점
존 딕슨 카 지음, 김민영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수수께끼의 남자가 나타난 뒤 방 안에서 연기와 같이 사라진 그리모 교수 살인사건과 거리 한복판에서 유령과 같은 목소리와 함께 살해된 카리오스트로 거리의 마술사 살인사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 기디온 펠 박사의 추리가 계속되고, 의외의 진상에 도달한다.


존 딕슨 카 최고 작품 중 하나라는 "세 개의 관". 번역된지는 꽤 되었지만 솔직히 기디온 펠 박사 시리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통 손이 가지 않던 차에 이제서야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추리 소설 역사에 길이 남을 명탐정이긴 하지만 기디온 펠 박사를 싫어하는 이유는 잘난척하는 캐릭터와 장황한 언변으로 엘러리 퀸이나 파일로 밴스 같은 짜증 계열 탐정으로 저한테는 분류되기 때문이죠. 솔직히 방코랑 탐정이 개인적으로는 더 마음에 듭니다.)

어쨌건 이 작품은 고딕 호러물과 추리물의 결합이 특기인 딕슨 카의 작품답게 "트란실배니아의 흡혈귀 전설"이라는 호러적인 소재를 도입하고 있으며. 이러한 흡혈귀 전설에서 유래한 관, 그리고 관에서 살아나온 시체라는 설정을 "불가능 살인"의 기묘함과 잘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눈 위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범인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흡혈귀나 마술사와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니까요.

또한 이러한 불가능 살인 사건이 무려! 2건이나 벌어지며 (모두 밀실 살인사건으로 볼 수 있는데 한 건은 자신의 방에서 살해된 그리모 교수 사건이고 또 하나는 눈이 쌓인 거리 한 복판에서 총에 맞아 살해된 마술사 프레이 사건입니다) 2건 모두 의외의 진상을 보여주기에 추리적인 재미도 상당한 편입니다. 아무래도 하나보다는 두개가 낫지요^^
하지만 두 개의 사건 중 그리모 교수 사건은 완벽한 트릭과 장치에 의한 정교한 밀실 살인 사건이라면, 프레이 사건은 우연과 특수한 상황이 결합된 돌발 상황일 뿐이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범인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우연과 우연이 여러개 겹친 상황은 아무래도 높은 점수를 주기가 힘들죠.
그리고 첫번째 사건도 아주 정교하고 공들인 장치와 트릭이 어우러진 밀실 사건으로 명성에 값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범인의 "체력"에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고 있다는 것은 사실 납득하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트릭 면에서는 아무래도 알려진 것 만큼 완성도가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대가 너무 큰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흡혈귀 전설에서 시작해서 마술에 이르기 까지 풍부한 지식과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작품과 트릭에 녹여내는 솜씨 하나만은 과연 대단했습니다. 트란실배니아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또 기디온 펠 박사의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장황한 강의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아울러 해드리 경감과 랜폴같은 시리즈 캐릭터의 등장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있고 기디온 펠 박사는 여전히 짜증 계열 타입이기는 하지만 재미, 작품의 역사적인 의의를 되새겨 볼 때 별 세개는 충분히 줄 수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PS : 그리고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국내에 출간된 딕슨 카 작품 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네요.

작품목록 :
연속살인사건 (고성의 괴사건) / 해골성 / 황재의 코담배갑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 세개의 관 / 화형법정 / 모자수집광사건 / 감미로운 초대 (밤에 걷다)

이 중 딱 세 작품만 꼽아 본다면 저의 영원한 베스트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정통 추리와 고딕 호러의 완벽한 결합체인 "해골성", "화형법정" 을 꼽겠습니다.

2008/04/22

악마의 공놀이 노래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3점

 

악마의 공놀이 노래 - 6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긴다이치 코스케는 휴양차 오카야마의 귀수촌에 머물게 된다. 귀수촌은 23년 전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졌던 마을로 긴다이치는 당시 사건 담당자 중 한명인 이소카와 경부로 부터 해당 사건에 대한 재 조사까지 의뢰받는다. 마침 마을에서는 23년 전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의 사생아가 영화배우로 성공하여 귀향하여 떠들썩한 분위기인데 갑자기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입니다. 이로써 국내에 출간된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시리즈는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전부해서 "혼진 살인사건", "팔묘촌", "옥문도", 그리고 이 작품이죠.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긴다이치 시리즈는 아니니까 제외하더라도 말이죠.

일단 이 작품은 혼진 살인사건과 팔묘촌 중간 정도에 걸치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혼진 살인사건과 같은 완전 본격물은 아니지만 팔묘촌 같은 모험물 성격도 아니고, 본격과 어느정도의 드라마가 잘 조화된 작품으로 생각되네요. 이러한 작풍은 "옥문도"와 유사한 성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상기 타 작품들과 비교해서 이 작품의 가장 특이한 점은 긴다이치 시리즈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골 촌 마을의 독특하고 기괴한 가족 관계와 유별난 캐릭터들이 비중있게 등장하지 않는 것이죠. 물론 시골 촌 마을과 촌 마을을 지배하는 가문 (유라 가문 - 니레 가문)이라는 일관된 설정(?)은 유지하고 있고, 또 이 가문과 얽힌 여러 인물의 복잡한 인간관계 역시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부 정상적인 성격과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거든요. 외모적으로 장애를 지니고 있는 캐릭터가 한명 나오기는 하지만 비련의 공주같은 캐릭터로 다른 작품들처럼 호러 분위기를 전해주지는 않죠. 때문에 작품의 분위기도 한결 본격물에 가까우며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세련되고 현대적인 느낌을 전해 줍니다.

추리적으로는 총 4건 (과거의 살인까지 5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사건 자체의 트릭은 빼어난 것은 없지만 범인이 과연 누구인가? 와 진상에 대한 추리적 접근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전개도 좋지만 독자에 대한 공정한 설명, 즉 단서에 대한 접근이 충분히, 합리적으로, 공평하게 제시되는 만큼 추리적인 완성도 역시 상당한 수준이죠.

그러나 마을에 전해지는 "공놀이 노래"를 토대로한 범행은 솔직히 좀 작위적이었습니다. 이 동요 그 자체만으로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가문의 "옥호"를 통해 피해자가 특정된다는 전개는 너무 짜맞춘 티가 나거든요. 이 바닥 전설적인 작품 중 하나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비하면 억지스러움이 너무 커 보일 정도로 말이죠. 또한 "변장" 등의 설정은 사실 그렇게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며 마지막의 범인 체포를 위한 함정 수사 부분은 약간 기대에 미치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런대로 합리적인 단서에 더하여 사건의 동기 및 진행과정 역시 설득력있게 전개되는 추리물의 미덕을 잘 보여주면서도 긴다이치 시리즈만의 독특함도 놓치지 않는 수작이라 생각되네요. 뭐니뭐니 해도 긴다이치가 연쇄살인의 피해자로 예정된 사건을 한번은 막아낸다는 점이 참으로! 독특한 점이죠. 비련의 주인공들과 어두운 과거사, 아이돌 등 등장인물들만 놓고 본다면 하야미 레이카 - 겐모치 경감 등 올스타 캐릭터가 총 등장하는 만화판 "김전일" 시리즈의 분위기와 가장 유사한 작품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론은 추천작입니다. 별점은 추리적 요소가 약간 부족한 점 때문에 3점이지만 재미만 따진다면 그 이상의 점수를 줄 수도 있는 작품으로 생각되네요.

2008/04/20

위치우드 살인사건 - 클라우드 왓햄 : 별점 1.5점

 

위치우드 살인사건 - 4점
클라우드 왓햄 감독, 레슬리 앤 다운 외 출연/워너브라더스

휴가 차 영국으로 온 확률론의 전문가 루크 윌리엄스 교수는 기차에서 만난 라비니아라는 할머니로부터 위치우드라는 동네에서 연달아 벌어진 세 번의 살인 사건 이야기를 듣는다. 할머니는 범인을 알고 있다며 런던의 경찰청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으나, 역에 도착하자마자 의문의 차 사고로 즉사하고, 이를 보고 심상치 않게 여긴 윌리엄스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위치우드에 가 보기로 마음먹는다. 윌리엄스는 마법에 대한 연구를 하는 중이라며 둘러대고 마을 유지인 이스터필드 경의 저택에서 지내며, 살인 사건의 진범을 밝히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또 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루크는 이스터필드의 약혼자 브리짓에 대한 의심이 싹트게 되는데..

작년 생일선물로 받은 DVD인데 짬내서 감상하다 보니 5개월이 지나서 이제 겨우 2편 봤습니다. 두번째로 고른 것이 이 "위치우드 살인사건" 입니다. 원제는 "Murder is Easy" 원작은 거의 20년전에 읽어서 기억나지 않아 선뜻 보게 되었습니다. 추리 영화는 아무래도 내용을 알고 있으면 재미가 많이 떨어지니까요.

일단 미스마플이나 포와로 시리즈가 아니라서 특이하긴 한데 초반에 잠깐 등장하는 노파가 "카리브해의 비밀"의 미스 마플 헬렌 헤이즈라는 것은 시리즈의 팬을 위한 장치였을까요? 하지만 역시나 큰 재미는 없었습니다. 원작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영화는 정말 정교함이 떨어지고 긴장감도 없어서 참으로 지루한 것이 졸작 추리물의 전형을 보여주거든요.

그나마 여러가지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는 중반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문제는 중반 부터입니다. 별다른 단서를 주지도 않고 주인공의 삽질만 굉장히 부각되며, 가장 중요한 용의자 이스터필드 경과 브리짓, 앨스워디에 대한 곁다리 단서만 감질나게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추리와 상관없이 진상과 함께 사건이 밝혀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허탈하게 끝나는 것이 황당할 뿐입니다. 게다가 전혀 설득력 없는 엔딩까지 어우러지니 정말 힘이 빠지네요.

전에 본 "카리브 해의 비밀" 보다는 나았지만 절대로 좋은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는군요. 도찐개찐이랄까...

아울러 시대 배경을 70년대로 바꾸고 컴퓨터가 등장하는 등 약간의 각색이 있긴 하지만 그나마 전개에 별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촬영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 살짝 바꾼 느낌만 들 정도로 작품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엉망인 각색과 긴장감 없는 편집이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예전 TV 시리즈였던 마플이나 포와로 시리즈가 추리물로는 훨~씬 뛰어난 작품으로 생각되네요.

다음 작품은 좀 나았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데.. 아직 많이 남았단 말이닷!

레이디 킬러 - 도가와 마사꼬 / 김갑수 : 별점 3점

레이디 킬러 - 6점
도가와 마사꼬 지음, 김갑수 옮김/추리문학사

컴퓨터 전문기사 혼다 이찌로오는 주말부부로 평일에는 도쿄에서 가명으로 여자들을 헌팅하여 시간을 보내는 일상을 보내며, 자신의 헌팅 이야기를 "사냥꾼의 일기"라는 노트에 자세히 기록해 놓는다.
그러나 그가 사냥한 여성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 뒤 수사망이 좁혀오자 혼다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냥 여성을 찾아가지만 그 여성마저 살해된 것을 알게 되며 주요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오른 혼다는 결국 여러가지 단서를 통해 정체가 드러나 경찰에 체포된다.
변호사 하다나까와 신지는 혼다의 변호를 맡아 그의 무죄를 증명해 주기 위해 여러가지 조사에 착수하는데...


원제는 "사냥꾼의 일기".
도가와 마사코는 국내에 많이 소개된 작가는 아니며, 저는 장편은 이 작품밖에 번역된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단편은 몇편 더 있긴 한데 단편들과 이 작품은 분위기 자체가 많이 다릅니다. 단편은 일종의 괴기 환상 소설같은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었고 완성도도 아주... 별로거든요. 그러한 단편들 비해 이 작품은 제대로 된 추리물의 구조를 잘 따라가고 있어서 무척 의외였습니다.

일단 스토리는 위에 간략하게 적어놓았지만 분위기가 이색적입니다. 법정물도 아니고 사회파 스러운 수사물도 아니고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완전범죄물도 아닌, 중간정도에 걸치는 중립성을 잘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각 쟝르의 재미있는 부분만 잘 따다가 만든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죠.
전개 방식도 나름 독특해서  전반부인 "사냥과 사냥감" 편에는 "사냥꾼의 일기"의 저자(?) 인 혼다 이찌로오의 엽색행각 및 서서히 함정에 빠지는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으며 후반부인 "증거의 채집" 편에서는 변호사 신지를 중심으로 혼다 이찌로우의 무죄를 밝혀내기 위한 수사 및 추리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963년 작품 치고는 굉장히 신선한 아이디어라 할 수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얼마전 읽었던 "이와 손톱"과 좀 유사한 전개일 수도 있는데 아예 두가지 이야기를 확 나눠 버린 과감함(?) 은 이 작품이 조금 더 돋보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부족한 부분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치밀한 완전범죄 공작을 깨트리는 이야기이니 만큼 불꽃튀는 두뇌대결, 아주아주 사소한 단서에서 밝혀지는 진상같은 것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변호사 하다나까와 신지의 약간의 조사를 통해서 너무나 중요한 단서들이 연달아 밝혀지고 있는 등, 경찰 수사의 헛점이 많이 보이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물론 1부에서 혼다가 너무나 명백하게 죄를 뒤집어 쓰기에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쨌건 조사가 어설퍼 보이는 것은 추리물에서는 큰 약점이죠.
그리고 마지막 반전 및 진상이 결과적으로는 범인의 "자백"에 의존한다는 것과 동기에 대한 설득력이 약간 떨어져 보이는 것 역시나 부족한 점이었고요. 마지막으로 아무리 작품이 "헌팅" 에 뒤이은 붕가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지만 지나칠 정도로 묘사가 자주 등장해서 좀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런 묘사 굉장히, 아주아주 싫어합니다)

그래도 마지막 반전, 범인의 고백과 "사냥꾼의 일기"를 통해 밝혀지는 반전, 사건의 진상이 굉장히 인상적이라 뭔가 좀 어설프고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상당한 수준의 작품으로 기억에 남게 합니다. 그만큼 반전 하나는 아주아주 좋았습니다. 엄마친구 아들같은 혼다가 수렁에 빠지는 내용도 디테일하면서도 참 감정이입하기 좋았고 말이죠^^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한번 읽어볼 가치는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작가의 대표작인 "거대한 환영"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뭐, 취향은 좀 탈 것 같긴 하지만...

PS : 헌팅의 대상자 중에 작가를 희회한 듯한 "도다 마사꼬" 라는 인물이 나오는 것은 특이했습니다. 샹송가수였던 이력을 티내고 싶었나봐요^^

2008/04/18

너를 노린다 - 마쓰모토 세이쵸 / 문호 : 별점 3점

 

너를 노린다 - 6점
마츠모토 세이조 지음, 문호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쇼와 전기 제작소 과장 다쓰오는 어음 사기에 말려들어 자살한 직장 상사의 복수를 위해 회사에 휴가를 내고 어음사기단의 조사에 착수한다. 몇가지 안되는 단서 중 그는 최초 어음 사기단과 차장을 연결해 준 야마스기 상사, 그 중에서 연락책 역할을 담당하는 듯한 우에자키 에쓰코라는 여성에게 주목한다. 몇번의 미행 끝에 우익의 신예 거물 후네자카가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친구인 신문사 기자 다무라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둘은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다.

한편 회사의 부탁으로 나름의 사건 조사를 진행하던 세누마 변호사와 그의 부하 다루마가 납치-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여 경찰 역시 수사에 나서고 다쓰오와 경찰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결국 놀라운 진실에 도달하게 되는데....


사회파의 시작이자 거두 마츠모토 세이쵸의 장편 소설입니다. 원제는 "눈의 벽"입니다. 번역 제목이 굉장히 난데없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어쨌건, 나름 대표작 취급을 받고 있기도 하고, 정통 사회파 추리물에는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라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세이쵸 같이 다작 작가는 초기작이 후기작보다 훨씬 뛰어난데 이 작품의 경우는 실질적인 장편 데뷰작이라서 더욱 기대가 컸습니다.

일단 일반적인 사회파 작품들과는 다르게 경찰 (또는 경찰 출신 인물)이 아닌 일반 직장인이 주인공이라는 점은 특이하게 다가오더군요. 그러나 덕분에 "수사"에 많은 내용을 할애하고 있는 사회파 작품들에 비한다면 아무래도 "수사" 부분에서의 정교함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 많이 든 것은 단점이지만요. 또한 다쓰오가 초반부터 단 한번의 미행으로 사건의 배후 인물을 눈치챈다는 설정이나 여러가지 단서가 우연에 기반하고 있는 이야기 전개는 솔직히 너무 쉽게 간게 아닌가 싶었어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다쓰오의 시점에서 프로와 아마츄어를 언급하며 일반인의 한계를 자주 묘사하는 것은 작가 스스로도 상당히 답답해 하며 작품을 써 나간 느낌도 들었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역시 거장다운 느낌도 전해줍니다. 일종의 시체 조작 트릭, 그리고 몇가지 사소한 단서에서 진정한 범인의 정체를 드러내는 부분이 그러한데 복선도 확실하고 잘 짜여져 있었습니다. 뭐 거의 반세기 이전의 작품이기에 법의학적인 면으로 본다면 좀 말이 안되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시대를 감안해야겠죠.
아울러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 역시 꽤 인상적이에요. 정교한 복선 덕에 합리적이면서도 상당한 놀라움을 가져다 주거든요. 도쿄역에서 시작하여 나가노현의 촌까지 확장되는 방대한 작중 무대를 역시나 사회파 다운 꼼꼼한 자료조사를 통해 상세하게 묘사한 것 역시 치밀하고 좋았고요. 이 방대한 무대 덕분에 기차 시간표와 지명을 계속 언급함으로써 작가의 전작인 "점과 선" 같은 기차 시간표 알리바이 트릭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 저는 제대로 한대 먹긴 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본다면 기대에 값하는 아주 흡족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분량이 꽤 되는 장편이지만 전체적으로 꽉 짜여진 느낌을 별로 전해주지 못하는 것은 분명 작가의 데뷰작에 가까운 작품이라 하더라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점 과 선"과 "제로의 촛점"이나 "모래 그릇" 과 같은 초기작 보다는 약간 처지고, "나비성" 이나 "적색등" 과 같은 후기작보다는 나은 중간정도의 작품으로 생각되네요.

물론 당시의 사회상을 잘 반영하여 짜여져 있는 만큼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합니다. 평작이긴 한데 몰입시키는 맛은 뛰어났달까요? 뭐 이런 것이 거장의 실력이겠죠. 저의 별점으로는 3점 되겠습니다.

2008/04/15

쓸쓸한 사냥꾼 - 미야베 미유키 / 권일영 : 별점 2점

 

쓸쓸한 사냥꾼 - 4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북스피어

헌책방 다나베 서점의 사장인 이와씨와 이와씨의 손자인 미노루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담은 단편집입니다. 예전 "판타스틱" 창간호를 통해 이미 접해본 작품이기도 하죠.

이 단편집의 가장 특이한 점은 중간의 딱 한편을 제외한 나머지 5편이 "책"을 주요 소재로 하여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편은 실제 존재하는 책, 나머지 3편은 작가의 창작물로 보이는데 헌책방이라는 무대 설정과 잘 어울리는 괜찮은 아이디어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작가의 의욕과는 관계없이 두번째 작품 "말없이 죽다"를 제외하고는 이 멋진 설정이 그다지 효과적으로 쓰이지 못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과히 인상적이지 못했고요. 물론 이와씨와 미노루 및 매 편마다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디테일한 심리묘사와 헌책방을 중심으로 한 여러 설정들은 충분한 읽을거리로서 기능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평작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사실 평작 수준이라는 것은 절대 욕을 먹을 수준은 절대 아니긴 합니다. 이 단편집도 실려있는 모든 작품들이 단편으로서는 일반적인 수준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작가가 미야베 미유키 여사라는 것이 좀 큽니다. 여사의 다른 작품들에 비교한다면 부족한 부분만 눈에 많이 뜨이거든요. 이게 바로 거장의 불행일지도 모르겠지만요.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별로 추천할 요소가 없는 평범한 단편집입니다. 재미도 뭐 그냥저냥한 수준이고 추리적으로도 높이 사줄 수 있는 요소가 없습니다. 책 덕분에 벨린저의 대표작인 "이와 손톱"이 국내 정식 재출간되는 길이 열렸다는 의의 이외에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책과 착각해서 구입한 "혼죠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가 훨씬 좋았기에 주객이 전도된 느낌마저 듭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추리적 요소와 재미, 완성도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유일한 작품 "말없이 죽다"를 꼽습니다. 다른 작품들은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고 크게 재미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딱 한편 때문에 취향도 아닌 다른 작품들을 사 본 격이니 전체 책의 별점도 2개밖에 못 주겠습니다....

"6월은 이름뿐인 달"
잡지 "판타스틱" 창간호에 실려있었던 작품입니다. 그때는 별로 좋은 평을 하지는 않았었던 것 같은데 책으로 엮여져 나와 따로 읽으니 의외로 재미있었습니다. 그나마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나은 수준이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말이죠... 어쨌건 어떤 작품이건 역시 "책"으로 읽어야 제 맛이 사는거 같네요. 전혀 다른 작품들이 섞여 있던 잡지에 비교한다면 한가지 이야기로 우직하게 밀고나가는 맛이 더 좋았거든요.
하지만 주요한 단서로 묘사되는 "이와 손톱"은 사실상 어떤 단서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서 역시나 앞서 이야기한 설정을 위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긴 하네요. "봉인" 부분에 대한 것 때문에 "이와 손톱"이 소재로 쓰였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적이지 않거든요.

"말없이 죽다"
헌책방 다나베 서점의 이와씨 시점이 아닌 작품으로 이와씨와 미노루의 비중이 한없이 낮은, 독립적으로까지 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연작으로의 느낌이 많이 줄어들며 나름의 설정이 힘을 받지 못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기발한 맛이 아주 일품인 단편이었습니다.
굉장히 황당한 상황에서 작중 화자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기도 했지만 작품 자체가 물 흐르듯 전개되어 극중의 상상과 현실이 조화롭게 완결되는 것이 마음에 드네요.
추리보다는 상상력에 기대는 부분이 많고 우연에 의한 전개가 등장하는 등 정교한 부분은 조금 부족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단편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책"이라는 소재와 "사건" 이 가장 잘 들어 맞는다는 점에서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무정한 세월"
유일하게 "책"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지 않는 단편입니다. 작품의 중요한 소재인 "유령 이야기"가  일본의 과거사가 얽혀 약간 섬뜩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여러가지 면으로 비추어 볼 때 이 작품집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추리적인 요소도 거의 없고요.
더 섬뜩하게 달려주거나 아니면 과거사에 대한 다른 시각을 좀 더 디테일하게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느낌만 강하네요. 도대체 작가가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헛갈리기까지 합니다.

"거짓말쟁이 나팔"
"거짓말쟁이 나팔"이라는 일종의 잔혹동화와 아동 학대의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설득력있게 조화되는 작품입니다. 스토 전개도 합리적이고 나름 잘 짜여져 있는 구성을 갖추고 있고요. 하지만 역시나 추리적 요소가 거의 없고 사건도 너무 쉽게 해결되어 버려서 좀 맥이 빠지는 소품이었습니다.

"일그러진 거울"
여성 심리를 디테일하게 그리는 맛이 일품인 작품입니다. 한장의 명함으로 비롯된 심리묘사와 마지막의 끝맺음도 인상적이고요. 그러나 추리물은 아닐 뿐더러 이와씨와 미노루의 다툼이 작품과 잘 융합되지 못해서 평작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기 힘들더군요.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여성 심리 묘사 빼고는 남는게 없는 작품이라는 것이 정답일 것 같네요.

"쓸쓸한 사냥꾼"
제일 큰 사건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고 "미완의 추리소설"이라는 추리 소설에 가장 적합한 소재를 지니고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이도저도 아닌 작품이 되어 버린 "졸작" 이었습니다. 추리적으로 뭔가 있을거 같기도 하지만 단지 사건의 몇가지 나열 이외에는 범인도 제발로 찾아오는 등 추리적인 부분에서 기껏 만들어 놓은 설정을 다 무너트리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고 끝마무리도 개운치 않았습니다. 가족의 화합을 다시 그리는 설정인가 싶긴 한데 설득력 없는 전개로만 가득차 있어서 실망스럽기 짝이없는 이 작품집의 워스트입니다. 정작 이 작품이 단편집의 표제작이라는 것이 제일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2008/04/12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3.5점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 8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대답은 필요없어" 이후 정말이지 간만에 읽은 미야베 미유키 책이네요. 사실 "쓸쓸한 사냥꾼"과 착각하고 구입한 책입니다. 단편 미스터리물이라고 해서 착각했어요^^
 
어쨌건, 이 작품은 7가지의 불가사의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에도시대의 혼조 후카가와를 무대로 한 단편 연작 미스터리 물(?)로, 탐정겸 형사로 오캇피키 모시치가 전편에 등장하고 있고 장소와 시간대가 동일하기에 연작 미스터리라고 칭한 듯 합니다.

7개의 이야기는 외잎 갈대, 배웅하는 등롱, 두고 가 해자, 잎이 지지 않는 모밀잣밤나무, 축제 음악, 발 씻는 저택, 꺼지지 않는 사방등 인데 뻔한 괴담들이긴 하지만 작품 내용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 참 재미있게 꾸며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역자 후기를 보니 원래 전승되는 이야기라고 해서 또 한번 놀랐습니다. 원래 있던 이야기와 연관되도록 이야기를 또 꾸미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참 대단한거 같아요. 무엇보다도 모든 작품에서 "희망"을 느낄 수 있는 메시지가 전해지는 것이 마음에 들더군요.
 
하지만 미스터리라고 정의하기에는 시대물 +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했습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범인을 체포하는 것이 함정수사나 잠복에 의존하고 있고 추리라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거든요. 미야베 여사의 필력이 느껴지는 좋은 작품인 것은 분명하나 추리팬에게 추천하기는 조금 난감한 책이긴 합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고 워낙 좋은 작품이라 별점은 3.5점입니다. 아울러 개인적인 베스트는 "두고 가 해자" 였습니다. 모두 다 일정 수준 이상의 단편들이지만 추리적 요소가 가장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지요^^


외잎 갈대는 초밥집 오우미야의 주인 도베에의 강도 살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7개의 이야기 중에서 기이한 이야기와 제일 연관이 없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특이하네요. 작품의 완성도도 높고 내용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문제는 사건의 해결이 "나무 부스러기"라는 단서를 통해 이루어지긴 하지만 우연이 많이 좌우하고 있는 등 추리물로 보기는 힘들다는 거죠.

배웅하는 등롱은 주인 아가씨의 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 한밤중에 에코인으로 매일 다녀와야 하는 하녀 오린의 이야기입니다.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부분이 잠깐 있지만 추리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로 애틋한 느낌이 잘 살아난 서정적인 작품입니다. 등롱을 들고 오린을 매일 바래다 주는 것은 누구였을까요?

두고 가 해자는 남편이 살해당한 오시츠의 이야기입니다. 원래 전해진다는 기이한 이야기도 제일 괴담에 가까우며 내용도 추리물로 보기에 충분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단서와 복선이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고 전개도 아주 명확하거든요. 물론 아주아주 정교한 내용은 아니고 결국은 함정수사지만, 뭐 에도시대니까요^^

잎이 지지 않는 모밀잣밤나무는 잡곡가게 오하라야 근처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계기로 오하라야의 며느리 후보 오소데가 낙엽을 열심히 치우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사건 자체가 불명확하며 전혀 뜻밖의 인물이 등장하는 등 좀 모호한 부분이 많더군요.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따뜻한 내용으로 역시나 호감가는 작품이었습니다. 오소데가 뭐라고 편지를 썼는지는 궁금한데 이런 부분을 드러내지 않음으로 해서 여백의 미를 살린 것이 아닐까 싶네요.

축제 음악은 상상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아가씨 오요시와 모시치의 조카딸 오토시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얼굴베기"라는 악당을 실제 검거하기 위한 노력과 오토시의 질투가 얽히는 추리적인 요소도 있지만 이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축제 음악이라는 비유가 아주 적절하게 쓰이고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워낙에 심리묘사가 탁월하기에 더 와 닿는 부분이 컸다고도 생각이 들고요.

발 씻는 저택은 재산을 노리는 연쇄 살인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곳곳에서 수수께끼들과 기이한 상황들이 계속 발생하지만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는 것이 의외라면 의외일까요. 진상이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평이한 것이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의 시점과 심리를 통해 진행되는 묘사는 좋았지만 전체적으로는 평작 수준의 작품이었습니다.

꺼지지 않는 사방등은 홀로 열심히 살아가는 오유라는 아가씨가 부자집인 이치케야의 정신나간 사모님을 위해 딸 역할을 부탁받는 이야기입니다.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는 부부간의 치정극에 가까운 내용으로 역시나 평작 수준이었습니다. 사방등과 부부간의 관계를 빗대어 사방등의 연료, 불꽃을 지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디테일은 과연 미야베 미유키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묘사되었지만 워낙 이야기가 알맹이없고 별다른 것이 없어서 연작집의 마지막을 마무리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8/04/07

이와 손톱 - 빌 S 밸린저 / 최내현 : 별점 4점

이와 손톱 - 8점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북스피어

생전에 그는 마술사였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성취한 인물이었다.

첫째, 그는 살인범에게 복수했다.
둘째, 그는 살인을 실행했다.
셋째, 그는 그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빌.S.밸린저의 고전 걸작 중 하나. 크게 두가지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배치되어 전개되는 작품으로 한개의 이야기는 마술사 루가 우연히 도와준 탤리라는 아가씨와 결혼하지만 그녀가 살해당한 뒤 복수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의 디테일을, 또 다른 한개의 이야기는 뉴욕 지방 형사법원에서 자신의 고용인 아이샴 레딕을 살해한 뒤 보일러를 통해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험프리스라는 인물의 재판 과정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읽어보고 싶다고 예전 "사라진 시간"에서 언급한지도 2년이 지나서 나와는 인연이 없는 작품이구나... 싶었는데 이번에 다시 재간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읽게되니 정말이지 감개무량하네요.

그러나 생각만큼 대단한 임팩트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읽기에는 낡은 감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앞서 이야기한 두개의 이야기가 서로 포개지며 결말로 치달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뻔할 뿐 아니라 작품의 가장 중요 포인트이기도 한 결말이 저에게는 너무 속이 들여다 보였거든요. 출판사 북스피어가 원서 초판 당시의 봉인 (결말부를 봉인한 뒤 개봉하지 않고 반환하면 책값을 돌려준다는 이벤트) 까지 재현해가며 반전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좀 지나친 설레발이었던 것 같아요. 1955년 작, 즉 반세기 전의 작품이기에 발표 당시에는 충격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읽으면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니까요.

물론 지금 읽기에 좀 낡아보인다고 해서 이 작품의 가치가 뒤떨어지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저는 봉인을 열고 읽었고 그만한 가치는 충분해요. 복수극이야 추리물에서는 발에 채일만큼 많고 진부한 소재이지만 이 작품은 그야말로 복수극의 교과서같은 작품으로 주인공의 복수를 위한 치밀한 과정이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하는 재미가 아주 잘 살아있거든요. 또 이런 류의 복수담에는 정교한 플롯이 재미의 가장 큰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인데 그야말로 "완전범죄"와 "복수" 라는 두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는 주인공의 기민한 행동은 지금 읽어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기도 하고요. 재판과정에서의 검사와 변호사의 신경전, 증언과 단서에 의해 드러나는 진상 같은 법정 드라마로의 재미 요소 역시 쏠쏠한 편이었습니다. 봉인 문제는 단지 좀 귀찮았을 뿐이죠. 칼이 없으면 뜯기도 힘들고...

주인공이 악당(?)을 생각보다 쉽게 찾는다는 것과 몇가지 요소가 우연에 기반하고 있는 등 약간 애매한 부분도 있지만 재미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며 재미 하나는 명불허전으로 잡자마자 하루만에 후딱 읽어버릴 정도였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상복의 랑데뷰"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복수극이라는 것 이외에는 유사한 점이 거의 없는데, 두 작품 다 주인공의 감정 최하단에 "사랑" 이라는 것을 녹여냈기 때문이겠죠. 이 기회에 "상복의 랑데뷰"나 다시 꺼내어 읽어봐야겠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역자의 해설을 통해 제목이 가진 중의적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제목의 의미가 뭘까 궁금했고, 읽어나가면서 제목이 너무 직접적인게 아닌가 싶었는데 역시나 깊은(?) 의미가 있더군요^^ "맹렬하게, 필사적으로"라는 구어 표현을 가지고 단서와 연관시킨 멋진 센스의 제목이라 생각됩니다.

2008/04/06

네 탓이야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3점

 

네 탓이야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캬캬. 결혼하고 간만에 몇만원 이상되는 추리소설을 질렀습니다. 첫번째로 읽은 것은 바로 이 책 "네 탓이야" 입니다. 이전에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재미있게 읽었었고 제가 좋아하는 단편집이기도 하니 안 살 이유가 없었죠. 책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읽어 보았습니다.

일단 일상계라고 생각했던 작가의 작풍과는 다르게 정통 추리 단편의 모양새를 많이 가지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고 독특한 구성도 아주 좋더군요. 탐정역으로 두명의 인물, 프리터인 하무라 아키라와 시경 형사과 경위인 고바야시 순타로 2명이 번갈아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한다는 전개의 구성이 특히 그러합니다. 물론 신경날카로운 노처녀와 약간 독특하고 순박해 보이는 형사라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는 징글징글한 묘사외에 딱히 신선한 맛은 없지만 하무라 편은 하무라 1인칭으로 사건 발생 후 단서를 추적하여 밝혀내는 정통 트릭물, 고바야시 경위 편은 범인 1인칭으로 도서 추리물에 가깝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아주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또 작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인칭과 시점, 시공간의 변경이 대부분의 작품에서 보이는 것도 특징입니다. 물론 너무 남용되는 느낌이 있기에 좀 거슬리는 부분도 있고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에서도 어느정도 써먹은 것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물론 정통 트릭물로 보기에는 트릭들이 좀 약하긴 했습니다. 전개도 무척 쉬운 편이고요. 읽어나가면서 "범인이 누굴까" 라는 고민을 별로 하지 않게 만드는 작품이랄까요? 일상물과 정통물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조금은 섬뜩한"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추리물로의 완성도는 약하다는 겁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작품이 의표를 찌르는 맛과 약간의 섬뜩한 느낌, 그리고 반전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작품마다 편차가 제법 있고 추리물로 보기에는 완전히 에러인 작품도 있기에 정통 추리 팬이라면 약간 애매한 작품이긴 할 것 같네요. 뭐 시대가 변한만큼 추리 단편의 속성도 변한 것이겠죠. 빠른 전개와 흡입력 있는 묘사는 추리팬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꽤 먹힐거 같기도 하고요. 단, 일반 독자에게는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더 권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정통 추리적인 요소를 따진다면 "바다 속"과 "살인공작", 작가 특유의 시점과 공간의 변경을 느낄 수 있는 이색작으로는 "재생"을 추천합니다.

첫번째 이야기 "바다 속"
하무라 아키라 이야기. 바다가 내다보이는 고급 호텔로 하무라 아키라는 대학 선배 엔도의 부름을 받고 달려간다. 불려간 이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인 작가 아카쓰키 부이치의 실종과 관련된 핏자국을 지우는 일. 다양한 프리타 생활로 청소쪽도 능통한 하무라는 불만을 가지면서도 핏자국을 지운 뒤,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낸다.
작품집의 시작과 캐릭터의 소개를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작품으로 무대공간의 독특함, 그리고 시작과 끝이 인상적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사건의 진상은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안에 있다는, 어떻게 보면 좀 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설정과 설득력있는 전개 덕분에 읽는 재미가 충분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 "겨울 이야기"
고바야시 경위 이야기. 나는 소꼽친구이지만 나를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긴 요시모토를 살해하고 시체를 은닉한다. 며칠 뒤, 시경 형사과의 고바야시 경위가 찾아오는데...
고바야시 경위 이야기로 겨울 분위기를 잘 살린 작품입니다. 범인 시점의 전개와 디테일한 완전 범죄 시나리오의 구성은 미국 미스테리 단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전해 주더군요. 이 작품도 "소금"이라는 단서를 통한 결말부는 사실 예상 범위 안에 있긴 한데 고바야시 경위와 범인과의 문답을 통한 반전이 효과적이라 그러한 단점이 묻히면서 재미를 극대화 시켜 주는 점이 참 탁월했습니다.

세번째 이야기 "당나귀 구덩이"
하무라 아키라 이야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화 고민 상담소에서 일을 시작한 하무라. 그러나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상담원 중 한명이 자살하고, 최근 그 회사 직원 중 여러명이 자살한 사건 때문에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다.
이 작품은 "일상계"와 어느정도 맞닿아 있는 작품입니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범행이 아닌 정신적 공격을 통한 범행이라는 것이 그러한데요. 자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의 전화라는게 어떤 것인지 영 감이 안와서 설득력이 좀 떨어지긴 했고 결말이 너무 뜬금없었습니다. 걍 그냥저냥한 수준이랄까요.

네번째 이야기 "살인공작"
고바야시 경위 이야기. 나는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 하루미의 사체를 은인 가타쿠라 조교수의 사체와 같이 놓아 두어 동반 자살로 위장한다...
세번째 이야기와 같이 이 작품도 직접적 살인을 담고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일종의 누명 공작 이야기인데 작품 전체에서 보이는 공작이 너무 허술하고 단서가 굉장히 쉽게쉽게 드러나는 등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더군요. 약간의 반전이 있긴 하지만 작품 자체는 평이한 수준이었습니다.

다섯번째 이야기 "네 탓이야"
하무라 아키라 이야기. 하무라는 대학 동창이긴 하지만 과거의 악연으로 얽힌 가요코의 일방적 약속 통보를 받은 뒤 약속을 어기고 술을 먹으러 나가지만 그 뒤 해당 시간에 있었던 가요코의 연적 피살 사건에 연루된다. 결국 가요코에게서 탐정사무소에서 일을 하는 인연으로 사건을 반 강제로 의뢰받게 되는데...
작품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단편으로 작품 자체의 완성도 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전반적인 동기, 즉 "네 탓이야" 마인드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어떤 일도 자기 때문이 아닌 남 탓으로 여기는 이 마인드에서 벌어지는 범행이라는 것이 무척 독특했거든요. 추리적으로는 단 한번의 돌발 사건에 의해 범인이 밝혀지기에 썩 완성도 있다고 보이지는 않지만 동기와 심리묘사가 좋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섯번째 이야기 "프레젠트"
고바야시 경위 이야기. 사에키 리리의 피살 사건 이후 1년이 지난 날, 피살 사건 당일 그녀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었던 지인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진범이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한 진실게임을 시작한다.
이 작품은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그 중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는 전개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솔직히 증언들의 배후에 감추어진 진상이 그다지 놀랍지도 않고 증언 자체들도 별로 꼬이거나 숨겨진 부분이 없어서 추리적으로는 낙제점에 가깝더군요. 범인이 내뱉는 말들이 정말 뜬금없이 등장하기에 범인이 누구인지 특정하기가 땅짚고 헤엄치기였으니까요. 이런류의 작품은 정교한 플롯이 제일 중요할텐데 시작부터 설득력이 없어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작품이 표제작이라 의외였습니다. 작품의 수준도 별로고 1인칭 주인공 하무라가 아닌 고바야시 경위 이야기가 표제작이라니 좀 난데없었거든요. 저와는 달리 작가는 의외로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을지 모르겠군요.

일곱번째 이야기 "재생"
하무라 아키라 이야기. 하무라가 일하는 탐정 사무소에 사무소장의 친구인 작가가 찾아와 사건을 의뢰한다. 사건은 자신이 작품때문에 방에 갖혀 있던 어느날, 알리바이를 위해 몰래 비디오 카메라를 셋팅하고 잠깐 방을 비운 뒤 카메라에 찍힌 영상 때문. 그날 벌어진 살인사건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증거인데...
첫번째 이야기에 등장했던 하무라의 선배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인칭의 혼용을 통해 소설적 트릭을 구사하는 작품입니다. 단서가 명확하게 마지막에 등장하기에 그다지 놀라운 반전은 없지만 발상 하나만큼은 기발하네요. 추리적 요소보다는 심리묘사와 아이디어가 돋보인 작품이었습니다. 단, 이 작품처럼 두명이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트릭을 동일한 장치로 구현한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지는 의문입니다만....

여덟번째 이야기 "트러블메이커"
하무라 아키라와 고바야시 경위 만나다. 빈사상태의 여성이 발견되고 그 여성의 소지품을 통해 여성의 신원을 하무라 아키라로 파악한 고바야시 경위는 사건 조사를 위해 도쿄로 향한다.
이 단편집의 마무리 작품입니다. 하무라 아키라 시점에서 전개되는 사건과 고바야시 경위가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뒤쫓는 사건이 절묘하게 결합되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의 특기이기도 한 시점과 시공간의 변경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물론 단서가 애매하고 범인들의 조작이 좀 치졸해 보인다는 약점도 있지만 마지막 부분까지 긴장감을 가지고 읽어나갈 수 있도록 잘 짜여진 작품이었습니다. 한국 판형에서만의 특징인지는 몰라도 섬뜩한 마지막 대사 한줄이 마지막 페이지에 실려있는 책의 구성도 인상적이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