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 P.D. 제임스 지음, 이옥진 옮김/황금가지 |
코델리아 그레이는 신참 사립탐정으로 파트너 버니의 자살로 인해 독립하게 된 첫 날, 로널드 칼렌더경의 의뢰로 경의 아들 마크의 자살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의뢰받는다. 코델리아는 마크가 학창시절을 보낸 캠브리지를 중심으로 그의 과거사를 뒤쫓으면서, 서서히 자신에게 위협이 닥치는 것을 깨닫고 최후의 순간에 의외의 진상을 밝혀내게 된다...
제가 그동안 너무나 읽고 싶었던 작품 중 하나인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의 재 출간본입니다. 번역도 전부 새로 다시 하였으니 복간이라기 보다는 아예 새롭게 책을 낸 것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겠죠. 이로써 P.D 제임스 여사의 모든 국내 출판 도서들의 독서를 완료했기에 굉장히 후련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코델리아 그레이의 데뷰작이기도 하고, P.D 제임스 하면 떠오르는 명탐정 달그리쉬 총경이 주인공이 아닌 점 등 여러가지 특이한 점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젊은 미녀 코델리아가 주인공인 탓인지 젊은이들이 많이 등장하여 작품이 좀 시끌벅쩍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역시 다른 작품과는 달라 보이고요. 철학적이고 사려깊은 달그리쉬 총경보다는 아무래도 가벼운 느낌을 많이 전해 주더군요. 뭐 저야 좀 생각좀 할라치면 철학적 문체와 사고가 난무하는 달그리쉬 시리즈보다야 이 작품 분위기가 더 읽기는 즐겁고 편했습니다. 참고로 코델리아 그레이는 명탐정 코난의 "하이바라 아이" 이름의 유래가 된 명탐정이기도 하죠.
그런데 솔직히 읽으면서 느낀 점은 왜 그렇게 이 작품이 유명했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단지 절판되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나?
일단 사건부터 이야기하자면 자살사건의 진상 조사라는 의뢰야 이바닥에서는 뻔한 결과를 항상 낳는 법이죠. 바로 자살로 위장한 살인이라는 결과인데, 이 작품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 이면에 있는 진실 역시 대체로 출생의 비밀이나 유산 관련 이야기라는 것도 뻔하고 말이죠. 때문에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하면 흥미진진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가 작품의 키 포인트나 다름 없는데 이 작품에서는 코델리아의 조사가 너무 일방적으로 흘러가서 설득력은 있지만 의외성이나 호기심 유발 부분에서는 좀 뒤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립탐정이 하는 조사가 별게 없는 만큼 대단한 추리가 등장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대보다는 추리적 요소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네요.
게다가 마지막의 진상을 밝혀내는 일종의 깜짝쇼와 그 이후에 벌어지는 여러가지 사건들 역시 당혹스러웠습니다. 등장인물들의 극심한 심리변화는 물론이고 사고가 연달아 벌어지는 개연성이 뚜렷하지 않거든요. 너무 급하게 마무리 지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급작스럽게 끝나는 결말은 왠지 개운치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달그리쉬 총경이 등장해서 전체적인 헛점을 마무리 해 주는 부분은 팬으로써 반갑기는 했지만 반칙 같다는 인상을 받았고요.
아울러 과거가 좀 복잡하고 (현실세계에서 가능한 하야테 수준의 복잡한 어린시절 정도랄까...) 생각많은 주인공 코델리아 그레이 역시 여성 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는 좋았지만 개성은 별로 없어보였습니다. 너무 스테레오 타입의 미녀 탐정 캐릭터 그 자체였으니까요. 또한 코델리아의 복잡한 과거에 얽힌 기억이 수사 도중 도중마다 튀어나오는 것은 사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색적인 요소로만 삽입되었다는 느낌이 강할 만큼 불필요한 이야기이기도 했고요. 차라리 "원 포 더 머니"의 스테파니 플럼쪽이 개성이나 현대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어울리는 캐릭터라 생각되네요.
마지막으로, 심리묘사도 여성 작가 들이 흔히 쓰는 여성의 심리묘사라는 특징이 너무 뚜렷이 드러나 보여서 좀 지루했습니다. 흡사 알렉산드라 마리리나의 작품같았달까요. 여성 작가들이 여성 주인공을 등장시키면 정말이지 이젠 작품들이 너무 비슷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 (죽은 인물인 버니와 마크를 제외한) 이 사악하고 뭔가 음모를 지니고 있는 듯이 묘사된 페미니즘 적 묘사도 약간 거슬렸는데. 차라리 미네트 월터스의 작품들처럼 델마와 루이스 마냥 그냥 달려주는 것도 아니라서 뭔가 약간 애매하고 가다 만 듯한 인상만 전해 줍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P.D 제임스 여사의 작품 완독의 의미가 더 컸던 독서였습니다. 단점만 너무 절절이 늘어놓긴 했는데 분명 재미는 있었고 달그리쉬 총경이 깜짝 등장해서 명추리를 펼쳐 주는 것 같이 시리즈 독자로서는 반가운 부분도 많았지만 확실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고 명성에도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원래 알려진 제목과 다른 번역판 제목도 용서가 안되고요.
그래도 여사의 다른 장편들 ("어떤 살의", "검은 탑", "나이팅게일의 죽음") 중에서는 중간 정도는 되는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다른 작품들은 번역도 문제겠지만 많이 지루한 편이라서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3점. 전 관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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