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5/04/30

샘 호손의 사건부 - 에드워드 D 호크 : 별점 3점

하아.. 정말 긴 기간동안 읽었네요. 그동안 바쁘기도 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림 하나 없는 원서를 읽느라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선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시리즈 캐릭터를 만나는 재미가 컸습니다. 특히나 1920~30년대의 미국 촌동네를 무대로 한 색다른 배경과 시골의사인 주인공 샘 호손의 설정이 여러모로 재미를 가져다 주더군요. "금주법"을 이야기 중간중간에 포함시켜 보여주는 식으로 시대물 분위기를 물씬 내주고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시골에서의 생활상을 현실감있게 보여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무엇보다도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듯 기발한 착상의 불가능 범죄가 속출하는 전통 퍼즐 미스테리 형식의 작품 성격이 딱 제 취향이었습니다. 때문에 어렵게 한줄한줄 읽기는 했지만 나름 재미있고 보람있는 독서였다 생각됩니다. 아울러 번역이라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죠.

하지만 단편의 명수라는 별칭에는 걸맞지 않는 수준의 작품도 분명 있습니다. 이 작가의 문제는 트릭보다는 "동기"와 "전개" 라고 보여지는데 이러한 소설적인 플롯이 약한 작품이 꽤 있는 편이거든요. 이런 점만 더 신경써 주었더라면 완성도를 훨씬 높일 수 있었을텐데 아쉽더군요. 이런 부분 때문에 번역이 된다하더라도 높은 평가를 받기에는 약간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마음에 드는 작품집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 중 베스트로는 "유개교의 수수께끼"와 "투표 부스의 수수께끼", 그리고 호손 시리즈는 아니지만 보너스로 실려있는 단편인 "긴 추락" 이었습니다.

뒷부분의 해설에 따르면 시리즈는 시간대순으로 계속 진행되어 이제 2차대전 직전의 시대까지 왔다고 하는데 후속 작품집도 궁금해지네요. 한권 읽어 봤으니 다음 권에 도전해 보고 싶기도 하고요. 완독하는데 1년은 족히 걸릴 것 같아 두렵긴 합니다만....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번째 이야기 "유개교의 수수께끼" :
이 시리즈의 기념할 만한 첫번째 작품입니다. 트릭 자체도 상당히 괜찮을 뿐 아니라 당시 시대상황과 잘 맞물린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조금 억지스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눈에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어요.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궁금하시다면 제 어설픈 번역 참고하세요.

두번째 이야기 "물레방앗간의 수수께끼" :
마을 물레방앗간에 화재가 발생하고 마을에 소설을 쓰기위해 찾아왔던 보스턴의 학교선생 고드웨어너가 시체로 발견된다. 샘 호손은 자기가 직접 운반을 도와준 잠겨있던 금고안의 소설들이 사라진 수수께끼에 집중하는데.....
물체 소실 트릭이랄까요? 금고안에 있던 소설이 사라진 방법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묘사됩니다. 투계장이나 금주법시대 밀조주를 파는 곳 같은 것이 이야기에 잘 녹아들어 있던 것도 재미있었고요. 그러나 동기나 이야기 전개는 좀 대충대충...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습니다.

세번째 이야기 "가재잡이 오두막의 수수께끼" : 
부유한 대 부호 딸의 약혼식이 벌어지는 저택에서 당시 인기있던 "후디니" 같은 류의 탈옥 마술을 연기하기 위해 마술사 줄리안 샤벨이 가재잡이 오두막에서 쇠사슬과 수갑으로 묶인 채 갇혀있다가 목이 잘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당시 가재잡이 오두막 주위는 약혼식 파티 손님들이 둘러싸서 지켜보고 있는 상태. 범인은 어떻게 그를 죽이고 사라질 수 있었을까?
밀실 살인 트릭으로 트릭 자체는 기발하고 신선하지만 과연 가능했을까..라는 점에서는 납득하기 좀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설정이나 무대 배경은 참신하고 좋았는데 약간 아쉽더군요.

네번째 이야기 "저주받은 야외음악당의 수수께끼" : 
독립기념일 축제가 있는 날, 예전 흑인 노예가 린치당해 죽어 유령으로 나타난다는 야외음악당에서 음악회 도중 드위킨스 촌장이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칼에 찔려 죽으며, 그 직후 섬광과 함께 유령처럼 범인이 사라진다....
일단 작가가 좋아하는 "불가능 범죄"에 너무 치중한 듯한 작품입니다. 동기도 문제가 있고, 트릭도 설득력이 부족했을 뿐더러 이러한 야외음악당에서의 음악회 도중에 촌장을 죽여야 했던 그 당위성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냥저냥한 수준이었다 생각되네요.

다섯번째 이야기 "승무원 차의 수수께끼" : 
이웃 마을 의사의 신혼여행때문에 대신 이웃 마을로 가야하는 샘 호손은 특수 제작된 밀폐된 공간인 승무원 차 안에 설치된 금고로 보석을 운반하는 기차에 타게 된다. 하지만 한밤중에 모든 문이 닫혀진 승무원 차 안에서 차장이 살해당하고 금고가 열려 보석이 도난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밀실 살인이긴 하지만 차장의 다이잉 메시지가 등장해서 이채롭네요. 상식적으로 이해가능한 트릭으로 그다지 놀랍거나 치밀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섯번째 이야기 "붉은 소학교의 수수께끼" : 
소학교에서 선생이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 학생이 유괴당한다. 당시 근처에는 어떤 어른이나 자동차, 마차도 없었고 길에도 인적이 전혀 없는 상태, 아이는 결국 찾지 못하고 유괴범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하는데...
또 등장하는 "인간소실" 트릭이네요. 이 작은 촌동네에 왜 이리 강력범죄가 많은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유괴범이 등장합니다. 트릭은 상당히 잘 짜여져 있고 제목부터 "붉은"색에 집착하여 독자에게 힌트를 주는 방식이 신선했고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사람이 죽지 않는 등의 독특함도 괜찮았어요.

일곱번째 이야기 "크리스마스 첨탑의 수수께끼" : 
크리스마스 예배가 끝난 직후, 마을 목사가 첨탑 종루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당시 첨탑의 입구는 잠겨진 상태의 밀실로 그 장소에 있었던 집시가 범인으로 체포되는데...
"범인이 안에 있는 잠겨진 방" 이라는 밀실같지도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내용면으로 본다면 2번이나 반전이 거듭되며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읽는 재미를 전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여덟번째 이야기 "16호 독방의 수수께끼" : 
우연찮게 검거한 전국적인 범죄자 조르쥬 렘 (통칭 "뱀장어")은 렌즈 보안관이 자신있게 신축한 감방 건물의 가장 안쪽 방인 16호 독방에 수감된다. 하지만 탈옥의 명수인 그는 모두에게 탈옥을 예고한 후, 철저하게 감시되는 엄중한 감옥안에서 탈옥에 성공하게 되는데...
탈옥물. 그러나 트릭도 그다지 기발하지 않을 뿐더러 렌즈 보안관의 부주의에 기인하고 있는 등 완벽하고 세밀한 점도 부족했습니다. 작품 안에서 같이 진행되는 총기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짤막한 부분이 오히려 추리적으로는 더 뛰어나나 여겨질 정도로 말이죠. 작품 내에서도 푸트렐의 "13호 독방의 문제"를 언급하는 데 그냥 일종의 오마쥬라고 생각하고 읽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아홉번째 이야기 "오래된 여관의 수수께끼" :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여관에서 주인이 강도에게 총격당해 살해된다. 여관 종업원은 그가 뒷문으로 도망쳤다고 하나 뒷문은 잠겨있는 상태로 보안관은 증언의 모순을 고려하여 종업원을 범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날 다른 일로 여관을 찾아간 호손 앞에서 같은 강도가 나타나 총격을 가하고 잠겨있는 뒷문으로 사라지는데....
간만에 총격 사건이라는 큰 사건이 발생하지만 사건의 전개나 트릭은 간단합니다. 여관의 구조를 자세하게 서술하며 이야기를 끌어나가고는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허무할 정도로 별다른게 없더군요.

열번째 이야기 "투표 부스의 수수께끼" : 
선거 투표일에 렌즈 보안관과 경합하는 보안관 입후보자 헨리 오티스가 투표 부스 안에서 치명상을 입고 살해된다. 칼에 찔린 상처이지만 투표 부스 어디에도 흉기는 발견되지 않고 그가 투표 부스 안에 있는 동안 외부에서 접근한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흉기를 감추는 트릭이 교묘하게 잘 짜여진 작품입니다. 동기와 범인은 굉장히 시시하지만 흉기를 감추는 이 트릭 하나 때문에라도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되네요. 개인적인 베스트 중 한편입니다. 궁금하시다면 제 번역을 한번 참고해 보시길.

열한번째 이야기 "농산물 축제의 수수께끼" : 
마을의 농산물 축제 날, 최대 행사인 "타임 캡슐 묻기" 행사가 벌어진 직후, 마을의 문제아 맥스 맥니어가 실종된 것을 알게된 호손은 피묻은 책을 단서로 타임 캡슐을 다시 발굴할 것을 요구하며 발굴된 타임 캡슐 안에서 맥스의 시체를 발견한다. 타임 캡슐은 밀봉된 상태였고 여러 물건들을 넣고 파묻기 직전까지 안에 시체란 없었던 것을 마을 주민 모두가 확인 한 상태. 과연 어떻게 범인은 시체를 안에 넣었을까?
마을 축제를 배경으로 해서 호손이 마음에 두고 있는 여성이 등장하는 등, 팬으로서는 즐길 요소가 많았던 작품입니다. (이 책 한권 읽고 팬이라고 하기도 좀 뭐하지만요^^)
그러나 밀봉된 타임 캡슐안으로 시체를 이동시킨다는 기발한 발상과 괜찮은 트릭에 반해 공정한 정보 제공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힌트인 캡슐의 구조를 자세히 설명하는 부분을 좀 대충 대충 넘어간 것 같거든요. 그래도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열두번째 이야기 "떡갈나무 고목의 수수께끼" : 
영화 촬영중에 낙하산으로 뛰어내린 스턴트맨이 저주받은 나무로 알려진 마을의 고목에 매달려 목이 졸려 죽은채 발견된다. 뛰어내릴 때 까지는 살아 있었고 착륙하자마자 죽은, 사고가 아닌 살해당한 시체. 그를 누가 어떻게 살해한 것일까?
이 작품은 무성영화에서 토키 영화로 넘어가던 과도기 영화 촬영이 소재인지라 이야기 자체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QED"에서 한번 먼저 읽었었던 공중에서 살해당한 다이버라는 소재도 흥미로왔고요. 하지만 이 작품 최대의 약점은 호손의 부주의로 비롯된다는 점에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참고로 말한다면, 예전 "코난"에서 동일한 트릭이 등장한 적이 있다는 정도?

열세번째 이야기 "긴 추락" : 
쥬피터 스틸의 카리스마 경영자 빌리 컴이 중역실에서 투신하지만 어디에서도 시체를 발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3시간 45분이 지난 후 그가 투신하여 떨어지고 회사의 경비담당 맥그러브가 사건을 추리하여 범인을 밝혀낸다.
이 작품은 보너스같이 실려 있는 작품으로 호손 시리즈는 아닙니다. 하지만 밀실에서 투신한 후, 4시간여가 지나서 아래로 떨어진 시체 라는 기상천외한 사건은 무척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습니다. 동기와 트릭이 완벽해서 단편의 모범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제 발번역도 한번 참고하시길~

2005/04/20

낯선 승객 - 패트리셔 하이스미스 / 심상곤 : 별점 2점

낯선 승객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심상곤 옮김/해문출판사

촉망받는 건축가 거이는 문란하고 애정없는 아내 미리엄이 이혼조차 해 주지 않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같은 기차에서 만난 브루노에게서 "내가 당신 아내를 죽일테니 당신은 나의 아버지를 죽여달라"라는 완벽한 범죄 시나리오를 듣지만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브루노가 정말로 미리엄을 살해한 후 아버지 살해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협박까지 하게되자 거이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결국 범행을 저지른다.

두건의 범죄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보장된 완전범죄로 남게되나 브루노의 아버지가 고용한 사립탐정 제러드의 집요한 추적이 이어지면서 거이의 인생은 파국을 맞게 되는데....

 "태양은 가득히"의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데뷰작. 기차에서 사람 한명 잘못 만난 것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게 된다는 작품이죠.

서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 2명이 우연히 만나 서로의 원수를 바꿔서 죽여준다는 설정은 프레데릭 브라운의 "교환살인"과도 거의 동일한 아이디어죠. 또 예전에 히치콕 감독 영화로 먼저 접하기도 해서 그동안은 손이 가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왠걸! 영화와 소설이 굉장히 딴판이라 무척 놀랐습니다. 중반부까지는 같은데 그 이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해서 결말은 아예 반대더군요. 영화에서 테니스 선수였던 주인공 거이는 건축사로 나오며 영화에서는 결국 교환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데 반해 소설에서는 브루노의 협박에 의해 심신 상실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니까요.
때문에 영화는 거이가 아내 살인범이 자기가 아니라 브루노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을, 소설은 범죄 이후 두명의 주인공이 심리적으로 붕괴하는 과정을 (주로 거이 중심이지만) 중반부 이후부터 굉장히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비교해서 보니 보다 색다른 재미가 있네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나 완성도, 재미 모두 영화쪽이 더 낫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소설은 두 사람이 우연히 과거에 서로 만나서 서로가 원하는 사람들을 각각 살해했다..라는 것을 사립탐정이 추리해내지만, 이후 검거 과정에서는 아무런 물증을 제시하지도, 찾아내지도 못하고 단지 마지막에 미행에 의한 도청으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식이라 별로 정교하게 느껴지지 않았거든요.그러나 영화에서는 거이가 발버둥치면서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브루노가 결국 아내를 살해했다는 것을 타당하게 밝혀내기 때문에 훨씬 세련되게 전개되었다 생각합니다.

물론 소설도 심리묘사 하나만은 치밀하면서도 극적이므로 충분히 읽으면서 즐길 수 있기는 합니다. 허나 앞서 말씀드린대로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며 해피 엔딩인 영화가 전개나 결말이 더욱 마음에 드네요. 거이라는 친구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지기에 더더욱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05/04/18

Air

"그들에게는 잔혹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하아.. 이게 도대체 얼마만에 애니메이션 시리즈 전화 감상작인지 기억도 안나네요. 1쿨밖에 안되는 12화 시리즈로, 여러 사이트를 통해 본 정보로는 비교적 제 취향인 듯 하여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단 이 쪽 게임(미연시..라고 하나요?)은 전혀 즐기지도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때문에 관련 정보는 전혀 없었고, 그래서인지 캐릭터 디자인은 쉽게 적응되지 않더군요. 내용과 좀 맞지 않는다고나 할까.... 뭔가 실감을 주지 않는 캐릭터 디자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모녀간의 나이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디자인은 최악! 으로 여겨지네요) 거기에 더해 소재 그 자체는 그동안 흔했던 "불치병의 소녀" 이야기의 변형으로 진부하게 여겨질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 전개와 부가 설정들이 독특하고 이야기와 잘 어울려서 신비로움과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며,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단순한 멜로물이 아닌 것이 포인트라 생각됩니다. 무언가 수수께끼로 가득찬 미스즈라는 소녀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밝혀가는 구성인데 1,000여년의 시공을 넘어 "꿈을 꾸다가 마지막 꿈을 꾸면 죽는"다는 시한장치와 "사람과 친하게 지낼 수 없다"는 저주에 걸렸다는 전개는 여주인공 미스즈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개에 여러 복선들을 잘 사용함으로써 다음편을 계속 보게 만들더군요. 초, 중반부에 본 Story와는 별 상관없는 캐릭터들의 이야기들도 재미있었고요.

거기에 감독의 연출 센스가 발군입니다. 초반의 개그컷들은 물론이고 감정을 증폭시키는 화면 연출이 뛰어납니다. 또한 굉장히 좋았던 음악과 잘 어울리는 연출이라 더욱 마음에 듭니다. 종반부에 유키토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버린건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마음에 걸리지만 그것을 계기로 시점을 변화시켜 오히려 더 슬픈 감정이 들게끔 하는 연출은 정말이지...!

무엇보다도 최근 보기 힘들었던 엔딩은 이 작품을 기억에 남게 해 주네요. 슬프기도 하지만 뭔가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 같기도 한 마지막 12화는 꽤나 가슴 뭉클하면서도 여운을 진하게 남겨줍니다. 감상한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선명하네요.
캐릭터만 조금만 더 제 취향이었으면, 그리고 조금만 더 제가 젊었더라도 아마 DVD를 구입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삼나무 관 - 애거서 크리스티 / 신용태 : 별점 3점

삼나무 관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용태 옮김/해문출판사

엘리노어 캘리슬은 부유한 친척인 로라 고모가 별채의 딸 메리 제러드에게 유산을 물려줄 지도 모른다는 괴문서를 받고 약혼자인 로디와 함께 고모가 있는 헌터버리 저택으로 향하나 갑자기 로라 고모가 발작을 일으켜 급사하고 엘리노어는 전 재산을 상속받게 된다.
그러나 약혼자 로디가 메리에게 반해 약혼이 취소되자 엘리노어는 헌터버리 저택을 팔고 떠날 것을 결심한다. 마지막으로 짐정리를 위해 방문한 엘리노어는 마침 찾아온 메리와 메리와 친했던 고모의 전 간호부 홉킨스 양에게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대접하는데 메리가 그것을 먹고 죽게되자 독살범으로 몰려 체포된다.

그녀의 무죄를 확신한 로라 고모의 주치의 피터 로드는 포와로에게 사건해결을 의뢰하여 포와로가 사건에 뛰어들게 되는데....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중후반기 장편.
포와로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엘리노어 캘리슬 중심입니다. 때때로 엘리노어의 심리상태가 1인칭으로 묘사되기도 하는게 독특했습니다.
중반부까지는 엘리노어를 중심으로 사건이 펼쳐지는 전개이며, 후반부는 주로 포와로의 활약이 묘사되는데 이러한 방식은 앞부분에 모든 사건이 서술되고 포와로는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 하나 없이 오로지 독자와 똑같은 공평한 조건에서 추리를 시작하므로 본격 추리물에 딱 맞는 방식이라 생각되네요. 게다가 종반부에서는 실제 법정에서 배심원들을 상대로 역전극을 펼치기 때문에 포와로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법정 드라마" 적인 요소까지 등장하는 등 이래저래 독특한 느낌을 많이 전해 주더군요.
추리적인 부분도 마음에 듭니다. 작은 단서만을 가지고 진상을 꿰뚫어보는 포와로의 추리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죠. 특히 법정물답게 모든 증거가 제출된 뒤 그것을 뒤집는 증거들도 이론적으로 제시되어 이해가 쉬우면서도 합리적이라는 것이 좋았어요. 진상과 진범이 밝혀지는 마지막 부분에서의 임팩트도 상당하고요.

하지만 포와로가 "외국에 있는 많은 친구" 들의 도움을 받아 단서를 모으는 부분은 현실성이 조금 떨어져 보였다는 점. 그리고 전형적인 여사님 특유의 부르조아 숙녀인 엘리노어 캘리슬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반면, 착하고 근면한 메리 제러드가 더 취향이었는데 메리가 피해자가 된다는 점은 좀 아쉬웠습니다. 여사님 작품은 재미도 있고 좋아하지만 부르조아 - 귀족 중심의 편향적인 사고 방식이 자주 옅보이는 것이 시대적인 격차를 느끼게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게 별로 좋지 못한 쪽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추천작입니다. 분위기도 묵직할 뿐더러 여러 서술이나 묘사, 전개방식이 다 독특하고 짜임새 있어서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거든요. 지금 읽어도 추리적인 가치는 여전히 높고 말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2005/04/16

엔드하우스의 비극 - 애거서 크리스티 / 유명우 : 별점 3점

엔드하우스의 비극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해문출판사

포와로는 헤이스팅스와 머제스틱 호텔에서 머물던 중 이웃 엔드하우스의 여주인 닉 버클리양이 저격당하는 사건을 목격한다. 자신의 신분을 밝힌 포와로에게 닉양은 최근 발생했던 수수께끼 같은 살인미수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포와로는 그녀에게 항상 같이 있어줄 친척을 불러올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그녀의 사촌동생 매기는 엔드하우스에 도착한 첫 날, 불꽃놀이가 있는 밤에 닉의 숄을 걸치고 나갔다가 총에 맞아 살해되고 포와로는 그녀 주위의 인물들 - 그녀의 절친한 친구 프레드리커와 부유한 화상 레저러스, 해군 중령 챌린저, 이웃 크로포트 부부 등 - 을 전부 용의선상에 올리고 사건을 분석하지만 별다르게 부유하지 않은 닉 때문에 동기를 찾지 못해 고민한다. 
하지만 그녀의 숨겨진 약혼자가 부유한 모험가이자 비행사인 마이클 세튼이었다는 것, 그리고 마이클 세튼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는 뉴스를 읽고 진정한 사건의 진상을 꿰뚫기 시작하는데....

애거서 여사의 열두번째 장편으로 포와로 장편에서는 다섯번째 작품입니다. 포와로 등장 장편은 정말로 오랫만에 읽은 것 같네요. 여사님 최전성기 작품답게 즐길거리가 아주 많더군요.

일단 보통 본격 미스테리에서 독자가 범인을 짐작케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동기"라 생각되는데 이 작품은 읽는 독자에게 "동기"를 중반 이후까지 가르쳐 주지 않음으로 해서 사건에 대한 궁금즘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여사님의 시대를 앞서간 탁월한 센스가 느껴지네요.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에 여러가지 사건이 병행해서 일어나며 여러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잘 살아있고 포와로가 나름대로 A부터 J까지 정리한 용의자들의 혐의가 끝까지 지속되고 있는 등 흥미로운 요소가 많아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에요. 여사님만의 캐릭터로 창조한 독특한 악녀 캐릭터도 인상적이었고요.
추리적으로도 트릭부터가 빼어나며 사건의 진상도 논리적일 뿐더러 포와로의 "회색 뇌세포"만의 활약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본격 추리물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 단순한 살인사건이지만 상당히 꼬여있는 여러 요소들을 잘 조합해서 이 정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는 역시 여사님 답다고나 할까요? 아울러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지만 상당히 충격적인 진상 및 범인의 정체도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단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어서 포와로의 "회색 뇌세포"의 발동이 좀 오래 걸린다는 점은 불만스러웠고 마지막 "추리쇼" 연극에서 등장인물들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연쇄적으로 빵빵 수수께끼들이 터지고 해결된다는 결말은 너무 작위적이었습니다. 이웃집 크로포드 부부나 프레데리커의 남편 이야기는 빼는게 좋았을 것 같고요.
그리고 먼저 읽었던 "움직이는 손가락" 처럼 범인이 후반부의 우발적 사건에 기대어 완전범죄에 거의 성공할 뻔 한다는 전개는 너무 안일했어요. 범인이 빠져나갈 구멍은 어느정도 만들어 놓긴 했지만 많이 부족한 편이거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단점이 없지는 않기에 여사님의 최고 걸작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약간 모자르긴 하지만 본격 추리물로는 즐길거리가 많기에 추천할만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특히나 포와로 팬에게는 강추드리는 바입니다.

2005/04/14

움직이는 손가락 - 애거서 크리스티 / 이가형 : 별점 2.5점

움직이는 손가락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해문출판사

폭격기 조종사인 제리 버튼은 전쟁 중 부상을 입은 뒤 요양을 위해 동생 조안나와 함께 황무지에 있는 외딴 시골 마을 라임스톡 마을로 이사하게 된다.
이후 버튼이 오래된 책에서 짜깁기한 글자로 이루어진 추잡한 익명의 편지를 받은 뒤, 마을에 유사한 편지가 계속 배달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마을 사람들이 애써 무시하고 지내던 중 마을 변호사 시밍턴의 부인이 편지를 받고 자살한 것이 밝혀지자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를 비웃듯, 사건과 관계된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하던 시밍턴 집안의 하녀가 살해된 후 마을 목사 캘드로프의 부인은 사건의 해결을 위해 "인간들의 관계"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통찰력을 지닌 미스 마플을 마을로 초대하는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초기 장편으로 스스로 뽑은 걸작 베스트 10에 당당히 들어가 있는 미스 마플 시리즈입니다.
그동안 미스 마플 시리즈는 포와로 시리즈만큼 많이 찾아 읽지는 않았습니다. 추리적인 재미는 강해도 너무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배경이라 흥분되는 요소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헤이스팅스같은 강렬한(?) 화자가 없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었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괜찮았어요. 책 뒷부분의 해설처럼 로맨스와 추리, 드라마가 적절히 조화되었기에 여사님이 굉장히 즐겁게 집필하였을 거라 생각되며 최소한 재미면에서는 그러한 작가의 노력이 십분 전해지는 작품입니다. 여사님의 로맨스 소설 단편 모음집인 "리스터데일 미스터리"의 확장된 추리 버젼이라고 할까요?

일단 주인공이자 화자로서 상당한 행동력과 매력, 그리고 일종의 "육감"이라는 특징까지 지닌 캐릭터 "제리 버튼"을 통해 시리즈의 특징이었던 화자가 없다라는 약점을 성공적으로 메꾸고 있는 것이 좋았어요. 이 친구가 거의 동물 수준의 육감과 열정으로 사건에서 좌충우돌 하는 모습이 상당히 귀여우면서도 재미있거든요. 그와 마을 변호사 시밍턴의 의붓딸 메건의 로맨스도 읽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고요. (제리라는 친구가 급작스럽게 사랑에 빠지는 묘사는 약간 어이가 없긴 했습니다만....)
뭔가 수상쩍고 이상한 구석들이 한가지씩 있는 마을사람들의 묘사도 다양한 용의자를 보여주기 위한 뻔한 전개이지만 설득력있는 묘사를 통해 현실감이 느껴졌고 추리적인 부분도 소박하면서도 반전의 묘미가 잘 살아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뭔가 거대한 음모나 기계적인 트릭보다는 이렇게 인간 심리에 기대면서도 앞뒤가 잘 맞아 떨어지는 트릭이 훨씬 현실적이고 와 닿는 것 같아요.

그러나 마플양이 다른 마을로 초대된 탓에 특유의 수다 등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등 특별한 활약이 없다는 것, 그리고 단서가 없이 심증만으로 일종의 연극을 통해 범인을 검거하는 결말은 아쉬운 점입니다. 너무 통속적이고 쉬운 해결방법으로 정통 본격물치고는 안이한 결말이라 생각되었어요. 무엇보다 범인이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는데 우연찮게 발생한 다른 사건으로 인해 그러한 범인의 최대 약점이 묻혀 지나간다는 점은 반드시 보완했어야만 하는 부분으로 보이고요.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명확해서 여사님의 수많은 걸작 중에서 베스트로 뽑힌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차라리 "ABC살인사건"이나 "애국살인"이 포함되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P.S : 그나저나 읽다보니 예전에 읽은 기억은 들지 않지만 케이블에서 방영했던 "미스 마플" 드라마 시리즈로 접한 작품이더군요. 역시나 범인을 알고 읽게 되니 재미가 좀 반감되는군요.

2005/04/13

비뚤어진 집 - 애거서 크리스티 / 정성희 : 별점 3점

비뚤어진 집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해문출판사

영국의 외교관 찰스는 이집트에서 소피아 레오니데스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전쟁과 업무로 인한 해외 파견으로 잠시 헤어지게 된다. 헤어지기전 사랑을 고백하며 2년뒤에 영국으로 돌아와서 그녀에게 청혼할 것을 약속한다.
2년뒤 영국으로 돌아온 찰스는 신문을 통해 소피아의 할아버지이자 입지전적인 거부 애리스티드의 사망기사를 읽고 소피아를 만나나 그녀의 할아버지가 사실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자신의 아버지인 런던 경시청 부총감과 함께 레오니데스 저택 -일명 "비뚤어진 집"- 으로 찾아가 사건에 뛰어드는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장편으로 포와로나 마플 시리즈가 아닌 작품입니다. 인터넷 헌책방 "신고서점"에서 이번에 해문 애거서 시리즈가 다량 풀렸는데, "애거서 크리스트 스스로 뽑은 베스트 10" 중 가지고 있지 않거나 기억이 흐릿해서 구입한 작품 중 한권입니다. ( 베스트 10 작품목록 :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 화요일 클럽의 살인 / 오리엔트 특급살인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움직이는 손가락 / 0시를 향하여 / 비뚤어진 집 / 예고살인 / 누명 / 끝없는 밤 )

부유한, 카리스마 넘치는 노인이 지배하는 약간씩 이상한 일가족과 그들이 거주하는 희한한 저택, 그리고 이 일가족 중에 단 한명있는 천사같은 아가씨와의 멜로 드라마까지 등장하는 설정인데 일본의 추리소설에서 흔히 보던 것들이죠? 그러나 싸구려같은 변태스럽고 엽기스러운 묘사 없이 캐릭터들의 확실한 성격 부여와 심리묘사를 통해 점진적인 공포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이 역시 여사님 답더군요.
또한 추리소설 황금기의 걸작답게 독자에게 제공되는 단서도 공정한 편이며 결말부분의 임팩트도 상당합니다. 탐정없이 "화자" 캐릭터에 의한 전개만 보여주는 것도 무척 색다른 시도라 생각되고요.
무엇보다도 전체적으로 "Y의 비극"과 상당히 유사한 설정과 전개라는 점에서 비교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Y의 비극" 쪽이 10여년 먼저 발표되었으니 여사님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내용의 깔끔함은 이 작품을, 추리적인 요소의 완벽함으로는 "Y의 비극"쪽을 더 쳐주고 싶네요. 뭐 그래도 두 작품 모두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과 같은 화자 중심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관찰자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에 논리적인 전개에 의한 지적 쾌감을 느끼기에는 약간 부족하다 생각되며 트릭과 동기를 특정할 수 없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어서 정통 본격물을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고 보이네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읽다보니 예전에 읽었었던 것이라 중반 이후에는 조금 시시해졌다는 것도 조금 아쉬웠고요. 추리 소설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가 범인을 나름대로 상상하고 추리해 보는 것인데 큰 재미 하나가 빠져버려 약간 맥이 풀리긴 했습니다...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어쨌거나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2005/04/12

헬로 네즈미 - 히로카네 켄시 : 별점 2.5점

헬로 네즈미 28 - 6점 켄시 히로카네/대원씨아이(만화)

아카츠카 탐정 사무소라는 탐정사에서 근무하는 일명 "고슴도치"인 고로와 그의 동료인 전 도박사 출신 큐사쿠, 통칭 "구레"를 중심으로 한 사무소의 멤버들이 펼치는 옴니버스 드라마입니다.

사실 작가의 대표작인 "시마과장"은 이래저래 욕도 많이 먹고 문제도 많은 작품이긴 하지만 작품 자체를 끝까지 읽게 하는 통속적인 재미 하나는 대단하다고 생각되며,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재미만큼은 상당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스타일이라고는 해도 너무 사람의 감수성에 치우친 여러가지 사건 전개와 드라마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더군요. 눈물이 너무 많고 사랑도 너무 많은 순정파적인 전개라 2000년대에 보기에는 많이 짜증나거든요. 거기에 그림체도 전통 극화체에 가까와서 그림 하나의 뎃생력과 구성력은 나무랄데 없다 하더라도 역시나 요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내용 자체는 재미있습니다. 눈물 쏙 빼놓는 에피소드들 뿐만 아니라 웃기는 이야기에서 대하 액션, 거기에 괴담과 사극, SF로 까지 통통 튀는 전개는 옴니버스 캐릭터 극의 장점을 잘 살린 이야기로 보여지며 어느정도 성공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추리물도 포함해서요. 물론 너무 "인간 교차점" 스타일의 드라마들은 좀 지루한 맛도 없지 않습니다만....

추리적으로 본다면 탐정 사무소의 탐정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의뢰들어오는 사건은 단순한 조사나 사람 찾기 같은 일(이게 물론 현실적인 것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이 비중있게 다루어져서 관련 에피소드가 많은 편은 아닙니다. 전 29권이나 되는 시리즈 중에서 진정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은 별로 없거든요. 하지만 소수 정예인지 나름대로는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가 몇가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감금장소나 스토커 잠복 장소를 알아내는 실질적인 조사 방식은 개인적으로는 높이 평가합니다. 꽤 현실적이면서도 나름 추리적 요소가 괜찮거든요.

그러나 중반이후에는 소재고갈인지 너무 이야기가 비약해 버려 실망스러운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심령퇴마물", "흡혈귀", "UFO" 에피소드들은 사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에요. 또 일상적인 이야기와 단순 범죄 사건에서 상당한 스케일의 범국가적 스파이 액션까지 다루므로 이야기의 고저가 심해서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평균정도의 재미는 가져다 주는 만화입니다. 별점은 2.5점. 지금은 구하기가 쉽지 않고 일본에서도 대표적인 보수 우익 취향의 만화가로 알려진 히로카네 켄시의 작품이라 앞으로도 구해 볼 생각도 없지만 그냥저냥 지나다가다 눈길한번 줄 만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추리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을 듯 하군요.

PS : "아"로 시작하는 탐정 사무소 이름때문에 전화번호부에서 찾아보고 제일 위에 있어서 의뢰한다는 고객들 에피소드가 꽤 많더군요. 가가 탐정 사무소도 실패한 전략은 아닌 듯....

에피소드 중 추리물을 뽑아본다면

5~6권 - 고로의 애인인 란코의 아버지가 관련되어 있던 비리에 대한 에피소드 :
이 에피소드는 일종의 정경유착에 따른 거대한 음모를 다루고 있는데 킬러까지 등장하며 과격한 액션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정경유착에 관한 디테일이 굉장히 좋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다이잉 메시지 해독이 등장하는데 꽤 괜찮습니다. 좀 더 소규모의 음모였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오버하는 경향이 있어서 약간 아쉽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였습니다.

7권 - 기억상실중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공백의 격류" :
십수년전에 살인을 저지르고 사고로 당시의 기억을 잃어버린 의뢰인의 과거를 조사하는 에피소드로 만화에 딱 어울리는 단서들과 내용전개가 독특하며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8~9권 - "유괴" 에피소드 :
한 대기업의 데릴사위 사장이 내연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유괴당해 탐정 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하는 에피소드입니다. 돈을 주고 풀려나기는 하지만 사회적 응징을 위해 유괴범을 조사하여 소재를 파악하는 과정이 현실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합니다.

14권 - 연쇄 살인마 이야기인 "빨간색의 혼란" :
싸이코 연쇄 살인범 이야기인데 내용 전개는 뻔하지만 꽤 재미있더군요.

14권 - 정체모를 인물이 가입한 보험금을 타게되는 한 주부의 에피소드인 "정체불명의 사례" :
어느날 아무 생각 없이 베푼 선행으로 보험금을 받게되는 한 주부, 그리고 그 보험금에 얽힌 진상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정통 추리적 요소가 많으면서도 내용 전개도 깔끔하며 반전도 상당히 괜찮은 에피소드입니다.

16~17권 - 의학교수와 브로커가 관련된 스캔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진상을 다룬 에피소드 :
범행 장소와 공개된 장소 양쪽에서 동일 시간대에 존재하는 알리바이 트릭을 파헤치는 에피소드로 트릭은 생각외로 시시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이 꽤 재미있습니다.

19~20권 - 한 여인의 완벽한 복수극을 다룬 "의문의 편지" :
자신이 살해될 것을 예상한 한 정치인의 정부가 펼치는 완벽한 복수극인데 시한 장치를 이용한 편지 발송 트릭이 등장합니다.

20권 - 모닝콜을 통한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모닝콜" :
아침에 모닝콜을 받았다는 용의자가 그 시간에 절도를 행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인데 사실 굉장히 간단하긴 하지만 일상적으로 쓰이는 소재를 트릭에 이용하는 발상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24권 - 일본 전통 이야기에 대한 숨은 진상을 파헤치는 "사랑밖에 난 몰라" :
일종의 번외편으로 에도시대에 있었던 방화사건에 관련된 진상을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이 원전격 이야기를 잘 몰라서 몰입은 쉽지 않았지만 역사 추리물 적인 요소가 강하고 트릭과 전개도 재미납니다.

26권 - 한 여인의 밀실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긴머리의 여인" :
시체 이동을 통해 자살로 위장된 한 여인의 살인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로 전편을 통해 가장 독특한 트릭이 등장합니다. 현실감은 왠지 많이 떨어지는 트릭이지만 발상이 무척 기발하며, 사건의 발단이 되는 단 하나의 단서를 쫓아 현장 조사 등을 통해 범인을 밝히는 과정이 좋습니다.

29권 - 도쿠가와의 매장금을 찾는 "보물 찾기" :
암호 트릭이 등장합니다. 암호 자체의 수준은 평이하고 일본어를 좀 알아야 해독할 수 있어서 아쉽지만 너무 어렵지도 않고 나름의 바탕이 있어야 풀 수 있어서 꽤 재미있는 암호로 보입니다.

2005/04/10

가든 살인사건 - SS 반 다인 / 김민정 : 별점 2점

가든 살인사건 - 4점 S.S. 반 다인 지음, 김민정 옮김/해문출판사

파일로 반스는 수수께끼의 전화 제보를 받고 상류층 자제들이 모여 경마 내기를 벌이는 저명한 화학교수 가든 교수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 자리에서 교수의 아들 플로이드와 플로이드의 사촌 우디를 알게 되며 우디가 전 재산을 걸은 "냉정함"이라는 말이 경주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순간 총소리와 함께 우디가 시체로 발견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반스는 현장 조사를 통해 우디가 경마의 실패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 당했다는 것을 밝혀 내지만 이어서 사건의 중요 인물인 간호사 비튼 양의 살인 미수, 가든 교수의 부인 마샤가 독살당하는 등의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반스는 최후의 순간에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내어 모든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추리쇼"를 벌이게 되는데...

반 다인의 파일로 반스 시리즈로 해문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출간한 책을 우연찮게 헌책방에서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해문같은 추리 전문 출판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시리즈를 기획하고 출간해 주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반 다인의 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미루고 있던 차였는데 마침 기회가 되었네요.

먼저 반 다인의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부터 설명하자면, 그동안 제가 읽었었던 "벤슨"과 "비숍" 두 작품 모두 유명세에 비해 별로였기 때문이에요. 탐정인 파일로 반스부터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고 두 작품 다 추리적으로 저에게 그다지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죠. 벤슨은 그다지 평가할 만한 내용도 별로 없었고 지루하기만 했으며, 비숍은 추리적으로는 괜찮긴 했지만 동기의 현실성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그런데 이 작품 역시 같은 점이 불만스럽네요. 파일로 반스는 언제나처럼 지나친 잘난척을 연발하여 읽는 저의 짜증을 불러 일으키며 추리적으로도 동기의 설득력이 너무 약하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범인의 동기가 전혀 와 닿지 않았어요.
또한 마지막의 해결부에서 사건의 증거 자체가 거의 전무하므로 "추리쇼"를 통한 범인의 방심을 노리다는 식인데, "추리쇼"에서 결정적 증거를 제시한다면 모를까 사실상 "방심" 하나만 믿고 연극을 한다는 것은 본격 추리물로서는 최악의 해결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심리적인 부분을 물고 늘어지는 반스 특유의 추리법으로 포장되긴 하지만 동기나 단서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그러한 심증만으로 추리를 전개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죠.

그래서 별점은 2점. 반 다인 스스로가 "추리소설 작가는 6편 이상의 걸작을 쓸 수 없다"라고 했는데 이 작품은 반 다인의 12편의 장편 중 9번째로 발표된 작품이라서 격이 더 떨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새롭게 번역되어서 야심차게 나온 작품답게 번역은 깔끔하고 책 자체도 이쁘게 나온 편이나 단점이 더 많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시리즈를 더 읽어야 하는지 심히 고민되네요.

PS : 책 표지와 디자인은 좀 더 깔끔하고 이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조금 아쉽군요.

2005/04/07

간만에 책 구입 2004.04.07

자주 가는 인터넷 헌책방인 "신고서점"에 어떤 분이신지 소장하시고 계신 추리소설을 왕창 풀은 것 같더군요. 애거서 해문 빨간책 시리즈는 정말 엄청난 양이 올라왔고 최신간도 눈에 띕니다. 저는 이미 구입했지만 최신간 모스경감 시리즈와 "펠리데" 까지 올라와 있으니 어떤 분이신지 정말 가슴 아프셨을 것 같네요.

대충 훝어보고 해문의 반다인 시리즈 "가든 살인사건"과 해문 미스테리 베스트 "낯선 승객", 그리고 애거서 빨간책 시리즈로 "움직이는 손가락", "삼나무관", "비뚤어진 집", "앤드하우스의 비극"을 구입했습니다.

새책 사기는 조금 망설여지는 Choice겠지만 헌책방에서는 이렇게 구입도 2만원 안쪽이니 굉장히 뿌듯합니다.

가든 부터 읽어봐야겠네요. 이래서 헌책방을 자주 간다니까요...^^

어떤 살의 A mind to Murder - P.D 제임스 : 별점 4점



주로 정신병 환자를 치료하는 스테인 진료소의 지하실에서 사무장 보럼양이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런던 경시청의 애덤 달그리시 경시는 사건을 맡아 사건 발생 당시 진료소가 거의 밀폐된 상태였다는 점에 주목하여 당시 진료소 내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조사하며 그녀의 살인에 대해 동기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인물을 찾기 시작한다.
그녀의 유산을 받게 되는 사촌, 그녀를 미워했던 의사, 그녀가 비밀을 폭로하여 궁지에 처한 의사. 그녀가 없으면 승진이 가능한 타이피스트... 등 거의 모든 인물들이 하나씩의 동기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달그리시는 사건 전에 발생했던 15파운드라는 푼돈 도난 사고에 관심을 가지고 이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보게 되는데...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여성 추리 작가 중 한명인 P.D. 제임스 여사의 작품입니다. 세계적 작가답게 출판사에서 공식 홈페이지도 개설해 놓았네요.
"검은탑"과 "나이팅게일의 비밀"에 이어서 세번째로 접해보게 되었는데 여사의 시리즈 캐릭터인 달그리시경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조사해 보니 이 작품이 오히려 앞서 읽은 두 작품보다 먼저 발표된 작품이더군요.

다른 작품을 읽어 보았던 기억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제임스 여사의 작품은 추리소설작가답지 않게 굉장히 서정적인 문체가 인상적인 작품들이었습니다. 여성 작가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묘사들에 있어 섬세하고 감정을 건드리는 특이한 문체를 지니고 있었다고 기억되며, 또한 주인공인 달그리시 경시조차 "시인" 을 겸직하고 있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어서 달그리시 경사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계는 더욱 그러한 색채가 짙었다고 생각되네요.
하지만 이러한 문체가 장점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었을 뿐더러 그다지 좋지 않은 번역으로 출판되어서 이전 두 작품 모두 읽기에는 굉장히 지루했었기 때문에 이 작품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구하기 힘든 작품이라 선뜻 구입하기는 했지만 읽기를 계속 미뤄 온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그런데 읽어보니 왠걸! 여태까지의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박진감있는 이야기 전개와 함께 모든 단서와 상황이 독자와 공평한 두뇌게임을 할 수 있게끔 펼쳐져 있으면서도 합리적인 결말로 흘러가는 등 고전 본격물 못지 않은 완벽한 본격 추리소설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복선과 단서들을 대화와 상황 묘사 속에서 씨줄과 날줄처럼 잘 엮고 있는 것도 아주 좋았어요. 상당히 치밀하게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이거든요. 여러 함정과 장치 역시 만만치 않아 여사의 내공을 느끼게 해 주더군요.
아울러 비교적 빠른 템포로 모든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좋았고 깔끔한 번역 역시 합격점을 줄 만 하네요. 여기에 달그리시 경시의 개인적인 사생활과 로맨스도 살짝쿵 보여주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트릭 자체는 그다지 복잡한 퍼즐 미스테리는 아니라서 서두 부분의 관계자들의 심문을 통해 대체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등장인물이 적은 만큼 동기 측면에서 범인을 유추해 낼 수도 있다는 점, 기존에 읽었던 여타 다른 작품들과 여러 묘사에 관한 부분을 공유한다는 점 등 약간의 아쉬움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쉬움은 정말 작은 부분이며 장점이 훨~씬 큰 작품입니다. 세밀한 심리묘사와 상황설정이 돋보이며 물론 추리물로서의 가치도 최고니까요. 한마디로 모스 경감의 고품격 젠틀맨 버젼이랄까요? 별점은 4점입니다.
많이 늦긴 했지만 이제서야 대거상과 미국 추리작가 협회상 (Grand Master)을 전부 수상했던 제임스 여사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 같아 후련하기도 하네요. 다른 작품들도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정독 해 봐야 겠습니다.

PS : 다른 2편의 장편과 비슷하게 이번에도 진료소를 무대로 하고 있는 것이 조금 이채로왔는데 작가에 대해 좀 조사해 보니 실제 제임스 여사는 병원 관리일을 했으며 남편도 의사였다고 하는군요.

2005/04/06

피의 수확 - 대쉴 해미트 : 별점 2.5점

피의 수확 - 6점
대쉴 해미트 지음, 이가형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컨티넨털 탐정사의 탐정인 일명 "컨티넨탈 옵"은 파슨빌(포이즌빌)이라는 광산촌 마을의 신문사 사장인 도널드 윌슨에게 모종의 일을 의뢰받고 찾아오나 그는 살해된 상황. 이후 옵은 도널드의 아버지이자 실질적인 마을의 지배자인 에리휴 노인을 방문하여 에리휴가 마을을 지배하기 위해 불러왔지만, 오히려 그를 넘어서는 권력을 휘두르게 된 악당들 - 핀란드인 피터, 루 야드, 경찰서장 누넌, 도박사 호이스퍼-을 제거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옵은 책략을 통해 악당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데 성공하고 자신이 살해한 것으로 오해받은 다이나 브랜드라는 호이스퍼의 정부 살인사건의 진범까지 밝혀내며 파슨빌의 재건을 뒤로 한 채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게 된다.

더쉴 해미트의 첫 장편. 컨티넨탈 옵의 마쵸적인 활약을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등장인물과 스케일도 굉장히 방대하고요. 이런 점들 때문에 흡사 대형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여러 사건으로 죽어나가는 사람의 숫자도 여태까지 읽었던 추리소설 중에서는 기록적인 숫자에요. 바로 전에 읽었던 컨티넨털 옵 단편 역시 마을 하나가 관련되는 전쟁과도 같은 상황이 배경이던데 이런 작품에서 주로 활약하는 탐정인지 좀 궁금하군요.
스케일은 크지만 한 마을을 좌지우지하는 거부와 각각의 조직을 가지고 있으며 암약하는 악당들, 이들을 모두 이간질시키고 스스로의 책략으로 자멸하게 만드는 컨티넨털 옵의 활약은 중심이 똑바로 잡혀있으며 재미 역시 충분해서 장편임에도 쉽게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자신부터 정의를 위한 싸움이 아니니 만큼 굉장히 비열하고 사악하지만 오히려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추리소설로만 기대하고 본다면 많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이라는 쟝르 타이틀을 달고 나오기에는 추리적 요소가 적은 편이거든요. 경찰서장 누넌의 동생인 팀의 과거 살인 사건의 진범을 밝혀내는 것, 호이스퍼의 정부 다이나 살인 사건의 진범을 밝혀내는 2가지 사건이 눈에 띄는데 트릭적으로는 별볼일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의 갈등관계 정리에 큰 도움을 주고 스토리에 적합할 만큼 앞뒤는 잘 맞는 편이긴 하지만 캐릭터와 상황설정에 굉장히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거기에 펄프픽션의 전형적인 냄새와 마쵸적인 느낌이 너무 강해서 일부 독자들에게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고요.

하드보일드의 원조격으로, 그리고 마쵸 탐정의 대부격이긴 하지만 그 역사적인 가치에 준하는 품격까지 기대하는 것은 약간 무리였을까요?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도 있겠지만 저는 아주 약간(!)은 실망스러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PS : 이 전쟁과도 같은 상황에서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것이 묘한데 뒷 해설을 읽어보니 저자의 실제 탐정사에서 근무했던 사건이 바탕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예전 미국에서의 생활이 어떤 것이었는지 도저히 상상이 안가네요. 금주법 시대 배경의 소설들은 다 비슷한데, 역시 사람은 술을 마셔야 하나 봅니다...

2005/04/04

해골성 - 존 딕슨 카 / 전형기 : 별점 4점

해골성 - 6점 존 딕슨 카 지음, 전형기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라인 강변의 대 마법사 메이르쟈가 기차에서 사라지는 사건이 있은지 17년 후, 메이르쟈의 친구로 그가 기거하던 해골성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던 당대의 명배우 마일런 아리슨이 총에 맞고 불에 타 성벽에서 떨어지는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파리의 명탐정 방코랑은 이 사건을 메이르쟈와 아리슨의 친구인 대부호 드오네이로 부터 의뢰 받아 아리슨이 거처하던 해골성 옆 별장으로 조수겸 화자인 소설가 제프리 마르와 함께 떠나며 사건을 정식으로 담당한 독일의 명탐정 폰 아른하임 남작과 추리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이전에 읽었었던 "밤에 걷다" 이후 2번째로 읽은 딕슨 카의 방코랑 시리즈 입니다. 딕슨 카의 3번째 작품이라고 하네요. 개인적으로 딕슨 카 작품은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정통 본격물로서의 가치가 높아 굉장히 선호하는 편인데 우연찮게 헌책방에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동서에서 나온 책도 있지만 최근 자금의 압박이 심해서....^^ (개인적으로 일신 추리문고 판본이 더 마음에 들기도 합니다)

작가의 다른 시리즈인 펠박사와 헨리 메리베일 경 시리즈와는 다르게 방코랑 시리즈는 오컬트를 넘어서는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전해주는 것이 독특하죠. 예를 들어 "밤에 걷다"는 흡혈귀 괴담, 이 작품은 "마술"을 배경 설정으로 다루고 있는데, 고딕호러 스타일이 작품 전체에 굉장히 짙어서 약간 일본 변격물 같은 느낌도 전해줍니다.

그러나 단순히 괴담취향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고 추리적으로도 우수해서 각종 단서가 독자에게 충실하게,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또한 굉장히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클로우즈 써클 타입 ("고립된 별장" 타입)의 미스터리인지라  용의자도 한정되어 있어서 진부해 질 수 있는데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나간다는 것도 큰 장점이고요.
무엇보다도 "올드보이" 못지 않은 반전에 뒤이은 결말은 저의 예상을 초월하더군요. 왠지 박찬욱 감독이 영화로 만들면 굉장히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주인공의 "라이벌"격인 탐정이 등장해서 만만찮은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도 신선했습니다. 보통 주인공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라이벌을 "찐따"로 만드는 이 바닥의 상식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비교적 공평한 시각으로 두명의 능력을 표현하고 있거든요.

방코랑이라는 인물이 유머도 부족하고 잘난척도 심하며 혼자만의 꿍꿍이가 많아서 주인공 탐정으로는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불만스럽지만 거장의 황금기 걸작다운 충분한 재미와 추리물로서의 가치를 동시에 지니는 명작이라 생각되네요. 저는 무척 즐겁게 읽었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해골성의 도해와 구조를 설명한 사이트가 있더군요. 아주아주 약간의 트릭이 밝혀지니 만큼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지만 읽으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둘러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그나저나 정말 해골 모양이네요^^

PS : 한가지 의문은 미국 작가가 왜 프랑스 탐정을 주인공으로 독일 라인강을 무대로 한 작품을 썼는 지는 조금 궁금합니다. 이렇게 설정하는게 더 있어보였을려나?

2005/04/02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 존 르 카레 / 강호걸 : 별점 2.5점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 4점 존 르 카레 지음, 강호걸 옮김/해문출판사

동서 냉전이 극에 달해 있던 시대, 영국의 베를린 지역 정보원 총 책임자 리머스는 런던으로 귀환한다. 동독지역의 정보 기관 총 책임자인 문트에 의해 최대의 스파이였던 카를 리메크가 살해당한 후 조직이 붕괴했기 때문.
귀환한 리머스는 케임브리지 서커스의 관리관과 문트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 뒤, 몰락한 인생의 패배자로 위장하여 폐인같은 생활을 보낸다. 그 징후를 눈치챈 동독측 요원에 의해 포섭되어 동독으로 향한 리머스는 문트에 이은 제 2인자 피들러와의 회담과 제공한 정보로 문트를 서방세계의 스파이라는 제1급 반역죄로 고발당하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리머스가 사랑했던 여인 리즈가 등장하여 모든 계획은 틀어지고 리머스는 패배를 인정하지만, 그 순간 그 모든 계획의 진상을 깨닫게 되는데...

이른바 냉전시대에 발표된 스파이물. 존 르 카레의 출세작이기도 하고 영화화도 된 베스트셀러인데 워낙 이쪽 쟝르를 좋아하지 않아 이제서야 보게 되었네요.

이 작품의 최대 장점은 현실적인 스파이 세계를 그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007' 등으로 친숙한 슈퍼 히어로같은 스파이는 이 책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스파이 소설로 정보와 정보의 교환에 따른 댓가와 음모만 있을 뿐이에요. 슈퍼맨같은 액션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이나 미인 여자 정보원 따위는 없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이야기니까요.
특히 주인공 어학에 대한 재능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는 리머스는 중년 남자로 육체적인 능력도 별볼일 없으며, 주변 조직에 이용만당하는 존재로만 그려지고 있는데 그간 스파이소설의 주인공으로 생각했던 인물들보다 무척 현실적이고 순진한 캐릭터라 왠지 공감되는 부분이 많더군요. 아마 이러한 현실적인 면 때문에 발표 당시 크게 어필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는 "리즈"의 재판정 등장은 작위적인 느낌이 강했습니다. 영국 공산당 당원이라고는 해도 당시 동독에 그렇게 쉽게 갈 수는 없었을텐데 말이죠. 결말도 너무 드라마틱하게 억지스러웠다 생각되고요.
무엇보다도 음모 자체가 책 뒷커버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 처럼 "사상 최대..." 어쩌구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라 생각됩니다. 그만큼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어요. 게다가 음모의 근거가 되는 여러 단서들도 그다지 치밀하지 않고 말이죠.

지극히 현실적인 스파이물의 효시로 이 분야에 있어서는 기념비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고 읽을 가치는 충분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각종 상을 휩쓸고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역시 너무 시대가 지난 것일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