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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6

Chat GPT에게 추천받은 역대 최고의 단편 후더닛 미스터리 베스트 10

추리 역사상 가장 빼어난 후더닛 단편 베스트 10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대한 Chat GPT의 답변입니다.

저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결과가 상당히 그럴싸합니다. <<비밀결사>>를 꼽은건 좀 의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준수한 목록으로 보이네요. 못 읽어본 작품은 어떻게든 구해서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1. "모르그 거리의 살인 The Murders in the Rue Morgue" by Edgar Allan Poe - often considered the first detective story, this tale features the amateur detective C. Auguste Dupin solving a series of bizarre murders in Paris.
  2. "얼룩끈 The Adventure of the Speckled Band" by Arthur Conan Doyle - one of the most famous Sherlock Holmes stories, this whodunit involves a woman who fears for her life after her sister dies under mysterious circumstances.
  3. "푸른 십자기 The Blue Cross" by G.K. Chesterton - in this Father Brown story, the eponymous priest solves a case involving the theft of a priceless religious artifact.
  4. "비밀결사 The Secret Adversary" by Agatha Christie - while not strictly a short story, this novella features Christie's recurring detectives Tommy and Tuppence as they try to solve a mysterious kidnapping.
  5. "The Black Cat" by John Dickson Carr - this locked-room mystery features the detective Dr. Gideon Fell trying to solve a seemingly impossible murder.
  6. "The Case of the Late Pig" by Margery Allingham - in this Albert Campion story, the amateur detective must solve the murder of a wealthy pig farmer.
  7. "도둑맞은 편지 The Purloined Letter" by Edgar Allan Poe - another C. Auguste Dupin story, this whodunit involves the theft of a sensitive letter and the efforts to retrieve it.
  8. "부러진 검의 의미 The Sign of the Broken Sword" by G.K. Chesterton - in this Father Brown story, the priest investigates the murder of a retired colonel with a mysterious past.
  9. "The Second Gong" by Roy Vickers - this classic whodunit involves the murder of a wealthy businessman during a dinner party, and the detective's efforts to solve the crime.
  10. "검찰측 증인 The Witness for the Prosecution" by Agatha Christie - this twisty tale involves a man accused of murder and his wife, who may or may not be a reliable witness.

오래된 디자인 - 박현택 : 별점 3점

오래된 디자인 - 6점
박현택 지음/안그라픽스

디자이너 출신 공무원 박현택이 쓴 디자인 관련 컬럼 모음집. 몇 년 전에 읽고 리뷰도 남겼었는데, 기억에서 아예 지워져버린터라 새로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것에서 찾은 위대한 디자인, 오래가는 디자인, 남아 있는 것과 사라진 것 이라는, 디자이너라면 한 번 되새겨 생각해볼만한 주제로 각각 8편, 모두 합쳐 24편의 컬럼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묵직하고 어려울 수 있는 주제인데, 이를 평범한 사람들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여러가지 소품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저도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는 이야기가 많아서 특히 좋았는데요, 대표적인게 추사의 서예 작품에 대한 컬럼이었습니다. 추사체가 왜 좋은지, 서예 작품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잘 몰랐었는데, 추사의 '대팽고회'를 통해 뜻과 형태의 완벽한 결합을 설명해 주고 있어서 확 와 닿았거든요. 촌 늙은이 최고의 음식은 두부라는 글을 잘 쓰겠다는 욕심을 버린 졸박한 서체로 완결하여 완성했기 때문이라는데 과연 무릎을 칠 만 했습니다.
나전칠기 X-box를 통해 단순히 나전칠기 기법이나 문양을 현대 기기에 사용하는게 과연 전통의 계승이나 디자인 혁신인지 되묻는 부분도 디자이너로서 반성하게 해 주었어요. 전통을 단순히 현대에 되살리는건 디자이너가 할 일이 아니고, 계승자가 할 일이니까요. 그 외에도 디자이너라면 한 번 쯤 돌이켜 생각할 내용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컬럼마다 소개하고 있는 여러가지 물건들에 대한 도판 수록도 확실하여 이해를 돕습니다. 디자인의 연관성과 흐름을 보여주는 도판들이 특히 좋았습니다. 석기시대 주먹도끼와 다이아몬드, 선비의 책상과 이슬람 코란 독서대의 비교는 도판만으로 작가의 생각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거든요.
안그라픽스 책 답게 편집과 책 완성도 역시 최고 수준입니다. 두께와 퀄리티에 비하면, 그리고 요새 물가를 생각해본다면 15,000원이라는 가격은 놀랍기만 할 정도입니다. 무려 300페이지가 넘는데 말이죠!

하지만 다른 컬럼들이나 기사를 통해 익히 접했던 내용도 많고, 단순히 특정 사물에 대한 기록과 소개, 그리고 여행 등을 통해 잡했던 개인 경험담에 그치는 컬럼도 없지는 않습니다. 첫 번째는 국민차 비틀 컬럼이 대표적이고, 두 번째는 루이비통 컬럼, 마지막은 계영배 컬럼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5만원 짜리 지폐나 한옥 마을에 대한 비판은 깊이보다는 보여지는 형태에 주로 집중되어 있어서 아쉬웠고요.

그래도 디자이너로서는 한 번 읽어볼만한 좋은 컬럼이자 에세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제 직속 선배님이시기도 하신데,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2023/02/25

세상의 종말에도 무너지지 않는 100가지 삶의 지혜 - 아나 마리아 스파냐 / 정윤희 : 별점 2점

세상의 종말에도 무너지지 않는 100가지 삶의 지혜 - 4점
아나 마리아 스파냐 지음, 정윤희 옮김, 브라이언 크로닌 그림/위너스북

표지와 앞 부분 몇 페이지 소개에 혹해서 구입한 책. 크게 4개의 챕터로 나누어서, 세상에 종말이 왔을 때 익혀두면 유용한 기술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한 페이지의 일러스트와 한 페이지의 짤막한 소갯글로요.

하지만 수박 겉핥기 수준에 그치는 내용은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장 먼저 소개되는 지혜인 "가축 돌보기"의 핵심이 "가축에게 깨끗한 물을 주고 말끔한 우리를 제공하고 스트레스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것 처럼 말이죠. 새 소리 듣기, 통조림 만들기, 붕대 만들기 등등은 한 두페이지 이상의 내용 보강을 통해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제공해주기는 하지만, 이 역시 대단한 디테일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임시 거처 만들기와 길 찾기, 말과 노새에게 마구 씌우는 법 등 비교적 상세한 일러스트가 곁들여진 지혜는 나름 괜찮으나 이런 내용은 극히 드뭅니다.

100가지 지혜의 선정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세상의 종말이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서, 예를 들어 핵전쟁 이후라면 방사능을 피하는 방법같은게 주로 소개되는 식으로 챕터를 구분하여 핵심 지혜를 선정했다면 좋았을텐데 지금은 그냥 작가 머릿 속에 떠오른 대로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이거든요. 우선순위가 한참 낮아보이는 매 길들이기라던가, 활강하기, 맥주 만들기, 잉크 만들기 등은 물론, 뒷부분의 라틴어 이름 익히기, 베란다에 앉아 있기, 신나게 웃기, 방콕하기 등은 아예 기가 찰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100가지 지혜에 곁들여져 있는 일러스트만큼은 무척이나 우수합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높은 퀄리티로, 제가 아주 좋아하는 색감과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샘플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주 멋지지 않나요?



덕분에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 용도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2/19

리버티 바 - 조르주 심농 / 임호경 : 별점 2점

리버티 바 - 4점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

바캉스 분위기 가득한 휴양지 앙티브에서 과거 전쟁 당시 프랑스 정부를 위해 일했던 윌리엄 브라운이 살해되었다. 경찰은 메그레 경감을 파견했다. 첩보전에 관련된 사건이라는 괴소문을 막기 위해 빠른 진상 파악이 필요했던 탓이었다.
수사 결과, 브라운은 오스트레일리아 거대 목장주였지만 유럽에 왔다가 향락에 빠진 나머지 아내와 가족으로부터 의절당해 빈털털이가 된 신세였다. 수입은 매달 아들이 보내주는 5천 프랑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중 2천 프랑 정도만 정부에게 주고 나머지 돈은 한달에 9일 정도를 칸의 리버티 바에서 보내며 써 버렸다는 것, 그리고 아들 해리 브라운이 그가 재산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조건으로 백만프랑을 제안했지만 윌리엄 브라운은 가족을 귀찮게 하려는 일념하나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이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리버티 바에서 사는 창녀 실비가 해리와 만난 뒤 2만 프랑을 손에 넣는걸 발견한 메그레 경감은 그 돈은 윌리엄 브라운의 유언장 댓가라는 증언을 확보했다. 알고보니 윌리엄은 정부와 장모, 리버티 바의 주인 자자와 실비에게 유산을 남겼었다....

조르주 심농의 대표작인 메그레 경감 시리즈. 완역 출간 시도가 좌절된 국내 출간된 시리즈 중 17번째 작품입니다. 1932년에 발표되었던 고전이지요. 메그레 경감이 휴양지 앙티브, 그리고 칸을 무대로 활약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무대만 휴양지일 뿐, 피폐하고 팍팍한 소시민의 삶이 작가 특유의 묘사를 통해 가득 담겨있습니다. 하긴 메그레 시리즈에서 꿈과 희망, 여유를 느낀다는건 말도 안되죠. 모든걸 잃은 남자가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인 리버티 바의 묘사도 아주 멋드러집니다. '방탕한 게으름'이라는 표현이 아주 기억에 남네요.

장점이라면 '드라마'로서의 재미입니다. 밑바닥 인생끼리 얽힌 기묘한 인간 관계에서 동기가 빚어져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의 극적인 전개가 아주 볼만한 덕분입니다. 원래 창녀 출신이었던 리버티 바의 여사장 자자는 단골 윌리엄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윌리엄이 실비와 관계를 가지자 격분하여 살해하고 말았던게 진상이거든요. 이 진상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은 일종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함으로서 상당한 재미와 흥미를 가져다 줍니다.

자자가 윌리엄을 정말 사랑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그리고 칼에 찔린 윌리엄 브라운이 자자에 대한 마지막 애정과 책임을 쥐어짜서 차를 몰고 별장으로 돌아간 뒤 죽었다는 점에서는 진짜 사랑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이 수차례 영화화된 이유도 이런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라는 이유가 클 것 같아요. 사건을 마무리하고 메그레 경감이 부인과 나누는 아래의 마지막 대사는 정말이지 심금을 울립니다.
"그는 한 선술집과 한 착한 늙은 여자를 찾아냈어. 그러고는 같이 술을 마셨지."
"술을 마셔요?"
"그래요! 그들이 술을 마시면 세상이 다르게 보였지.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거든……. 그들은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었지……."
"그러고 나서요?"
"늙은 여자는 그게 왔다고 믿게 되었어."
"뭐가 왔는데요?"
"누군가가 자기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자기가 영혼의 짝을 찾게 되었다고! 모든 것을 찾게 되었다고!"
메그레 경감이 죽을 날이 머지 않은 자자를 풀어주고 사건을 대충 마무리하는 결말도 진짜 사랑 이야기에 잘 어울렸습니다. 해피 엔딩이라고 하기는 애매합니다만.

그러나 추리적으로 딱히 별볼일 없다는건 아쉬웠습니다. 메그레 경감 시리즈가 고전이지만 대단한 트릭이 사용된 작품이 거의 없다시피한데, 이 작품은 제가 읽었던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을만큼 추리물 요소는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메그레 경감의 끈질긴 수사로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은 잘 그려져 있지만, 우연과 운이 많이 좌우했다는 점에서 정교한 이야기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실비와 해리가 만나는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진상을 알아낼 수 있었을까요? 아마 불가능했을겁니다.
스스로 자기 파괴적인 행동만 반복하는, 또 여러가지 이유를 대며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몰고가는 여러 등장인물들 묘사도 지나칠 정도로 뻔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메그레 시리즈에서 그동안 많이 등장했던 인물들과 별로 다르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드라마로서는 볼 만 했지만, 추리물로 보기는 다소 어렵기에 감점합니다.

유튜브를 찾아보니 브루노 크레머 주연의 1991년도 제작된 TV 시리즈 버젼이 올라와 있더군요. 프랑스어를 몰라서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원작을 그대로 영상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작을 읽으셨다면 한 번 비교해보셔도 재미있을겁니다.

2023/02/18

Chat GPT에게 추천받은 역대 최고의 추리소설 베스트 10

요사이 화제인 Chat GPT에게 추천받은 역대 최고의 추리소설 베스트 10입니다. 지구가 멸망할 때 남겨두어야 할 10편의 작품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아래와 같이 추천해주네요. 
고전들은 다른 리스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양들의 침묵>>과 <<다빈치 코드>>가 조금 특이했습니다. 좋은 작품들이니 납득할만 합니다. 

Certainly, here are 10 of the best mystery novels of all time, in no particular order: 

  1.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by Arthur Conan Doyle - This classic Sherlock Holmes story follows the legendary detective as he investigates a supernatural beast that is terrorizing a family.
  2.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by Agatha Christie - This iconic whodunit mystery sees detective Hercule Poirot investigating a murder on a luxurious train journey.
  3. "The Maltese Falcon" by Dashiell Hammett - This hardboiled detective novel features private investigator Sam Spade as he investigates the theft of a valuable artifact.
  4. "The Name of the Rose" by Umberto Eco - This historical mystery novel takes place in a medieval monastery, where a series of murders lead a Franciscan friar to investigate the secrets hidden within the walls.
  5. "The Big Sleep" by Raymond Chandler - This noir detective novel follows private investigator Philip Marlowe as he investigates a wealthy family's dark secrets.
  6. "Rebecca" by Daphne du Maurier - This gothic mystery novel tells the story of a young woman who becomes haunted by the memory of her husband's dead first wife, Rebecca.
  7. "And Then There Were None" by Agatha Christie - This classic mystery novel sees ten strangers trapped on an island and being picked off one by one by an unknown killer.
  8. "The Moonstone" by Wilkie Collins - This 19th century mystery novel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first detective novels, and follows the investigation into the theft of a valuable diamond.
  9. "The Silence of the Lambs" by Thomas Harris - This psychological thriller features FBI trainee Clarice Starling as she enlists the help of incarcerated serial killer Hannibal Lecter to track down another killer.
  10. "The Da Vinci Code" by Dan Brown - This controversial mystery novel follows symbologist Robert Langdon as he investigates a conspiracy involving the Catholic Church and the Holy Grail.

책과 열쇠의 계절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3점

책과 열쇠의 계절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요네자와 호노부청춘 학원 추리 단편집. '고전부'나 '소시민' 시리즈와 비슷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탐정의 역할입니다. 이 시리즈는 두 주인공인 호리카와와 마쓰쿠라가 각자 추리를 펼치며 서로를 보완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약간 버디물스러운 느낌도 들어요. 뛰어난 관찰력과 독특한 발상의 추리력을 갖춘 호리카와는 뻔한 고등학생 탐정 캐릭터인 반면, 모든걸 의심하면서 추리를 시작하는 마쓰쿠라의 독특함은 나쁘지 않았고요.

또 두 주인공이 도서위원이라서 대부분의 이야기에 주제가 되는 책이 등장한다는 것도 차이점인데, 저 역시 독서 애호가(?)인지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상계로 한 획을 그은 작가답게 평범한 일상계로는 우수한 시리즈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913><913>>
도서위원 호리카와 지로와 마쓰쿠라 시몬은 선배 우라가미로부터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금고를 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과거 둘이 에도가와 란포의 <<흑수조>> 속 암호를 풀었던 모습을 눈여겨 보았던 탓이었다.
일요일, 우라가미 선배 집에 방문한 둘은 할아버지 서재 방에 놓여져 있었던, 어울리지 않았던 책들이 단서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마쓰쿠라는 정보를 바로 공개하지 않고 따로 조사가 필요하다며 호리카와와 밖으로 나온 후, 그가 생각했던 의심을 털어놓는데...


등장하는 책은 많지만, 중요한건 할아버지가 남긴 단서가 되는 책들

마쓰쿠라의 의심은 우라가미 선배가 후배 둘에게 금고를 열어달라고 부탁한 이유가 무엇인지에서 시작됩니다. 가족이 정당한 유산 상속인이라면 금고를 여는 전문가를 부르면 됐으니까요. 그래서 마쓰쿠라는 우라가미 선배와 선배의 가족은 금고를 그렇게 쉽게 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추리합니다. 선배 집에서 대접받았던 차는 시판차와 똑같은 맛이었는데 그걸 끓여서 따로 찻주전자에 내 놓은 이유, 화장실을 간다고 했을 때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던 이유 등 기묘했던 행동은 그 집이 선배 가족의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찻잎이 어디있는지는 모르지만 살고 있는 척을 해야 해서 차를 끓여 내 놓았고,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던건 집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닐까봐 걱정했던 것이었지요.
할아버지의 단서는 이상한 책의 분류 번호에 대한 것으로, 그것을 통해 금고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를 이용하여 선배 가족의 정체를 밝히는 작전을 펼친 것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책 4권의 3자리 분류 번호를 50음도로 변환하면 모두 6자, "타스케테쿠레 (살려줘)"라는 말이 된다고 조작하는 방식으로요. 이 작전으로 선배와 선배 가족의 눈을 돌린 틈에, 마쓰쿠라가 집 안을 조사하여 노인을 발견하고 구해내게 됩니다.
금고 안 내용물은 할아버지 그림과 가족 앨범이었다는 결말도 깔끔했어요.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눈에 뜨이기는 합니다. 할아버지가 말했던건 서재방에 단서가 있고 그건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허나 서재방의 책 중 다른 책들과 사뭇 다른 책이 있다는건 어른이 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금고 번호가 도서 분류 기호라는건 어른이 된다고 알 수 있는건 아니고요. 즉 할아버지가 말했던 단서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선배 가족이 금고를 열기 위해 후배를 부른 것도 이상했어요. 저 같으면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는 정도로 끝냈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은 아쉬웠습니다.

<<록 온 로커>>
도서위원 컴비 둘은 함께 미용실을 찾았다. 함께 가야 40% 할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점장이 "귀중품은 '반드시' 지참하실 것"을 말했고, 이걸 이발 중 이야기하는걸 저지했다, 그리고 곧 종료 시간이라고 말하고 난 뒤 염색이 필요해 보이는 손님을 받았다는 등의 단서를 조합하여 마쓰쿠라는 미용실에 최근 도난 사건이 있었고, 범인을 잡기 위해 점장이 함정을 팠다는 추리를 펼칩니다. 호리카와는 마쓰쿠라의 도움으로 둘의 예약을 받았던 곤도가 범인이라는걸 알게 되고요. 이 작전을 모르는 사람을 점장이 의심하고 있으니, 그걸 모르고 예약을 받은 곤도가 범인이라는 추리로요. 이는 결국 사실로 밝혀집니다.
마쓰쿠라의 추리에 이어 호리카와의 추리가 이어지는 티키타카가 볼만했고, 마지막에 범인 곤도가 도주하는걸 저지할 수도 있었지만 나서지 않았던건 소시민 시리즈와 비슷한 감성을 느끼게 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평범한 일상계로는 적절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일본의 미용실 모습은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는데 비해 남자 둘이 미용실을 가는게 굉장한 금기인 것처럼 묘사되는게 신기했습니다.

<<금요일에 그는 무엇을 했나>>
기말고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후배 도서위원 우에다 노보루가 호리카와와 마쓰쿠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주 금요일, 학교에 누군가 침입하여 교무실 앞 창문이 깨졌는데 그걸 보고 학생지도부 요코세 선생이 노보루의 형인 불량 학생 우에다 쇼가 시험 문제를 훔치려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요코세 선생은 이른바 '명탐정' 같은 사람으로, 무슨 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학생 누군가를 아무런 근거없이 범인으로 지목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에다 쇼가 그 날, 밤 늦게 돌아왔는데 무슨 일을 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는 점이었다...
둘은 우에노 쇼가 결백하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형제가 같이 쓰는 방을 수색하는데...


등장하는 책은 <<파랑새>>. 유리창을 깬 원인이기도 한 새와 연결되는 장치. 헌책방에서 산 이름을 알 수 없는 애장판 만화도 중요한 단서 중 하나. 그 외에도 노보루가 관심있어하는 책으로 나니아 연대기를 비롯한 판타지 시리즈가 언급됨.

추리를 통해 밝혀낸 우에다 쇼의 알리바이는 가족과 별거 중인 아버지 병문안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있어서 그 사실을 숨겼던 것이지요.
우에다 쇼의 바지 주머니에서 '라이라이켄'이라는 라면집 쿠폰을 찾아낸 뒤, 이상할 정도로 좁았던 집 등의 단서를 통해 아버지가 별거 중이라는 노보루의 답변을 끌어내어 우에다 쇼의 그날 행적을 추리해내는 과정은 깔끔했습니다. 완벽한 일상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 사건을 맡아서 끌어가는 과정과 결말이 다소 석연치 않습니다. 우에다 노보루의 부탁부터 억지스럽습니다. 왜 호리카와에게 부탁했는지 모르겠어요. 작중에서도 우에다 혼자서는 도저히 알리바이를 찾을 수 없어서 그랬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호리카와에게 부탁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호리카와가 딱히 알리바이 찾기로 이름을 떨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친한것도 아니니까요.
호리카와가 부탁을 선뜻 받아들인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에초에 우에다 쇼는 증거가 집에 있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설령 부탁을 받아들인다 해도 집을 뒤지느니 우에다 쇼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게 더 나은 해결책이었어요.

이에 대해 마쓰쿠라의 추리 - 우에다 노보루가 형의 퇴학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도 좁고 어차피 형은 아버지랑 살 터였기에. 그래서 알리바이 증거를 찾아내서 없애려고(형을 퇴학시키기 위해) 호리카와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호리카와는 인간 관계가 깨져도 무방한 사람이었으니까 - 는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형의 퇴학을 바란다면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이 이상적입니다. 구태여 알리바이를 찾아내고, 또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늘린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애초에 학교에서 퇴학당할 정도의 위기에 처한다면, 증거 유무와 관견없이 병문안 당사자였던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도 않았을테고요. 모든 상황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마쓰카와의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한 주장으로 보이지만, 이전에 보여줬던 추리력과 상반될 정도의 비합리적인 주장이라서 오히려 캐릭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리창을 깬건 마쓰카와였다는 결말도 별로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없는 책>>
3학년 선배 고다가 자살한 뒤, 자살한 선배의 친구 하세가와가 도서실에 나타났다. 그는 고다가 책 사이에 유서를 넣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라며, 빌렸던 책을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둘은 하세가와의 빌린 책에 대한 언급을 통해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걸 알아채는데....


등장하는 책은 이와나미 문고에서 나온 쇼펜하우어의 <<자살론>>.

극히 적은 정보만 가지고 원하는 책을 찾아준다는 이야기는 서점이나 도서관이 무대인 작품에서는 굉장히 많습니다. 아예 이런 내용이 핵심인 <<서점원 하야미>>라는 만화가 떠오르네요. 이번 이야기는 이런 류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반전과 함께 여운도 남기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하세가와가 찾아달라고 하며 알려준 핵심 정보는 고다가 책을 읽다가 덮었는데 책 등이 보였고, 밑에 바코드 스티커가 있었다는 겁니다. 고다가 좋아했던건 소설책이고요. 그런데 현장 조사를 통해 하세가와는 고다의 오른쪽에 있었다는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일본의 소설책은 대부분 세로쓰기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므로, 책을 읽다가 덮으면 하세가와의 위치에서 책 등과 스티커를 함께 보는건 불가능합니다. 즉, 하세가와의 말은 거짓말이었던 것이지요.
마쓰카와는 고다 선배의 유서를 날조하려는 속셈이었다고 하세가와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호리카와는 고다 선배의 유서는 육필이라 위조할 수 없고, 오히려 유서를 받은 뒤 친구가 자살한 탓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은밀하게 유서를 드러내려고 했던 거라고 추리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묵직한 내용에 추리적으로도 좋았으며, 두 주인공의 차이를 강하게 드러내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람의 선의를 믿지 않고, 무조건 나쁜 의도일 것이라 짐작한 마쓰카와의 잘못과 이를 반박하는 호리카와의 말이 대미를 장식하거든요.
선배 교실에 가서 불필요한 연극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문제는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옛날 이야기를 해줘>>
마쓰카와는 호리카와에게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숨겨두었던 현금을 함께 찾아보자고 부탁했다. 그간 호리카와의 추리력을 눈여겨 보았던 탓이었다.
호리카와는 마쓰카와가 내 놓았던 과거의 단서들를 함께 검토하다가 과거 마쓰카와 가족에게 차가 한 대 더 있었다는걸 추리해내었고, 둘은 결국 그 밴을 찾아내는데...


여러 책이 등장하지만 핵심은 아버지 밴 안에 있었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제로의 초점".

보물찾기 이야기인데 마쓰카와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호리카와가 잡아낸 마쓰카와의 이야기 속 단서 - 동생이 멀미를 했다는 것 - 라는 착안점은 좋았습니다. 그때까지 마쓰카와는 당시 탔던 차가 렌트카라고 생각했는데, 동생의 멀미는 담배 냄새 때문이라는걸 깨닫고 담배 냄새가 나는 차를 렌트할리가 없었다는걸 깨닫게 되거든요. 결국 그 차는 빌린 차가 아닌 아버지 차였다는 추론에 이르게 됩니다. 또 이 추리는 자동차로 여행을 가다가 동생이 심하게 멀미를 했었다는 별게 아닌 추억담이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는 점과 호리카와는 마쓰카와가 잊고있던 기억을 떠오르게끔 도와주는 정도의 도움을 줄 뿐이라는 점에서 완벽한 일상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뒤 차를 찾아내는 과정, 그리고 차 속에서 발견한 열쇠의 '501호'가 어디인지를 추리하는 과정도 그럴듯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책'이 중요 단서로 사용된다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차 안에 굴러다니던 헌 책이 도서관 '제적본' 책이라는걸 알아낸 뒤, 도서관이 위치한 도시의 5층 건물을 검색한다는 것으로 도서위원인 아이들의 특기가 발휘된 것은 물론이고, 그 도시는 차로만 갈 수 있다는 등의 설정이 덧붙여져 있어서 여러모로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일상계 보물 찾기로는 더할나위 없긴한데 딱 한가지 억지가 있습니다. 주차장에 주차해 둔 차라면 당연히 주차비를 냈을테니, 주차비를 내는 누군가는 차의 존재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누군가가 그렇게 했던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 그 누군가가 몇 년 동안 차를 뒤져 그 안의 보물을 가져가지 않았을리도 없겠지요. 즉, 자동차가 주차장에 장기 주차되어 있었다는게 밝혀진 순간 보물찾기는 끝났어야 마땅합니다. 이걸 바로 떠올리지 못한건 이상해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친구여, 알려 하지 마오>>
호리카와는 도서관 검색을 통해 마쓰카와의 아버지가 돈을 도둑맞은 피해자가 아니라 돈을 훔쳤던 가해자였다는걸 알아낸다. 단서는 마쓰카와 시몬, 레이몬 형제 이름과 이에 대해서 마쓰카와가 '3/5이다'라고 했던 말이었다. 시와 예 (레이)는 중국 고전 5경에서 따왔으니 아버지 이름도 그럴 것이다라고 추리하여 아버지 이름을 검색했던 것이다.

호리카와도 전편에서 독자가 가졌던 의문을 그대로 가지고, 자신의 추리 결과로 도서관에서 기사를 검색하게 됩니다. 자동차가 월 정액 주차장에 남겨져 있었던건 누군가 돈을 계속 냈다는 의미라는 추리는 저와 같은데요, 호리카와는 왜 돈을 계속 냈을까?에서 또 다른 추론을 얻어냅니다. 주차장에 놓여진 차를 처분할 수 없었던건 그 안의 열쇠 때문이었고, 열쇠를 지금 당장은 회수할 수 없었다는 처지였다고요.
그리고 줄거리 요약처럼 '오경'의 한자를 통해 마쓰카와 아버지 이름을 추측하여 검색한 결과, 마쓰카와의 아버지가 절도범이었다는걸 알게됩니다. 즉, 마쓰카와의 아버지는 지금 구속 수감 중이라 열쇠를 회수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여기까지의 추리는 기가 막힌데 그 뒤는 특별히 추리적인 부분은 없습니다. 뒷부분은 마쓰카와가 돈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에 대해 반론하는 호리카와 사이의 자기 주장 대결이 대부분이에요.
마쓰카와가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평소에 돈을 아끼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 이유 등 약간 사회파스러운 분위기가 눈에 뜨이기는 하지만, - 약점이란 건 그런 거야. 약점 하나로 세상은 변해….. - 어차피 고등학교 2학년 생이 하는 이야기니 그렇게 깊이있는 이야기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호리카와 역시 이상론만 이야기해 줄 수 있을 뿐이고요.
이야기는 마쓰카와가 그 돈을 찾으러 후미쿠라 정에 가서 건물들을 뒤졌는지, 그래서 돈을 찾았는지 밝혀지지 않고, 평범한 도서위원으로 마쓰카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호리카와 시점에서 마무리됩니다. 아무래도 마쓰카와가 돈을 찾으면 더 이상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을텐데, 어떻게든 마쓰카와가 평범한 도서위원으로 돌아와 이야기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추리도 괜찮았고, 대단원의 막을 장식하기에는 나무랄데 없는 깔끔한 전개의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2023/02/12

황제의 코담뱃갑 - 존 딕슨 카 / 전형기 : 별점 5점

황제의 코담뱃갑 - 10점
존 딕슨 카 지음, 전형기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브는 이혼 후 거주하던 프랑스 휴양지 바로 옆 집에 사는 로스 경의 아들 토비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했다. 이 소식을 듣고 분개한 전남편 네드 애트우드가 한 밤중에 몰래 침실로 숨어든 날, 둘은 로스 경이 살해당한 직후를 목격했다. 토비를 비롯한 이웃 가족의 오해를 살까 두려웠던 이브는 이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겼다. 그러나 애트우드가 빠져나가다가 계단에서 굴렀을 때 흘렸던 코피와 로스 경이 살해될 때 만지고 있었던 코담배 케이스 파편이 잠옷에 묻어 있었던 등의 증거와 이브를 미워하는 하녀 이베트의 증언 탓에 유력한 용의자로 몰렸다. 결국 이브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모든 사실을 고백했지만, 정작 애트우드는 뇌진탕 탓에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나선건 영국인 정신분석 전문의 킨로스 박사였다.

존 딕슨 카의 대표작 중 하나. 구입해서 읽은지는 오래되었지만, 얼마전 <<마녀의 은신처>>도 읽은 참에 국내 출간작 전권 리뷰를 올리고자 재차 읽게 되었습니다. - 참고로, 엘릭시르의 새 출간본은 아니고 동서문화사 판본입니다. - 역시나, 다시 읽어도 걸작이더군요. 이웃집에서 일어난 수상한 사건을 목격했다가 위기에 빠진다는건 <<이창>> 등 여러 작품에서 사용된 소재이기는 한데, 이 작품은 1942년이라는 발표 시점을 보아도 원조격인데다가 목격자가 오히려 범인으로 몰린다는 독특한 전개부터 굉장한 긴박감을 자아냅니다. 전남편과 벌인 다소 우발적인 사고, 주인을 미워하는 하녀의 돌발 행동 등이 겹쳐져 이브가 범인으로 몰리는 과정도 꽤 설득력 넘치고요. 사건 직후 피묻은 잠옷을 입고 집으로 들어왔다는건 누가 봐도 수상한 일이니까요.

킨로스 박사의 말 하나하나 모두가 논리적이며, 그의 지극히 논리적인 추론이 바탕이 된 이야기 전개가 많다는 점도 추리 애호가로서 반가왔습니다. 토비가 그날 밤 일을 고백한 이브를 추궁할 때 킨로스 박사가 그를 몰아붙이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토비는 그녀가 애트우드와 침실에 있었으니 자신을 배신했다면서, 또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게 아니냐고 추궁하는데 킨로스 박사는 이 두 사건은 동시에 일어날 수 없다며 토비의 입을 닥치게 만들지요.
이브를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고롱 서장을 설득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브에게는 동기가 없거든요. 고롱 서장은 로스 경이 이브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살해당했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로스 경은 그날 이미 토비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했고, 토비는 그 때문에 이브에게 전화까지 걸었습니다. 즉, 그게 무슨 비밀이건 약혼자가 이미 알고난 다음이기에 로스 경을 죽일 이유는 사라져 버리고 만 셈입니다.
무엇보다도 압권은 범인을 밝혀내는 마지막 추리쇼입니다. 박사는 사람들에게 범인인줄 알았던 갈색 장갑의 정체를 먼저 알려줍니다. 그건 토비였어요. 그는 정부인 프뤼 양이 이브와의 결혼을 훼방놓는걸 막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아버지 소장품 중 하나인 드 랑발 부인 목걸이를 훔쳐서 프뤼 양에게 주려고했던 겁니다. 그러나 그는 범인이 아니었습니다. 킨로스 박사는 이브가 이야기했던 사건 당일 서재에서 일어난 일 중 이브가 목격하기 전 상황은 모두 애트우드가 해 준 말에 지나지 않았으며, 암시에 빠지기 쉬운 성격이었던 이브는 이를 자기가 목격했던걸로 착각했던 거라고 설명해줍니다. 애트우드는 이미 로스 경을 살해하고 이브의 침실에 침입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로스 경이 살아있는 척 꾸민 뒤, 그 상황을 드러내는걸 가장 싫어할 이브를 통해 증언될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었던거에요. 재니스 로스 양의 말 그대로 "여자에게 나쁜 소문이 나서는 안 된다고 입을 다물게 하고, 스스로는 조금도 꺼릴 것이 없는 목격자가 실은 범인이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킨로스 박사는 먼 곳에서 본 물건을 '코담배 케이스'라고 말했다는 실수를 통해 애트우드가 범인이라는걸 알아냅니다. 코담배 케이스는 그냥 보면 회중시계와 똑같이 생겨서 첫 눈에 알아보는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마지막에 말한 뒤, 예심판사 사무실 문을 열어 범인 애트우드를 선보이는 장면 - 애트우드는 뇌진탕에서 회복한 뒤 토비가 범인이라고 지목하기 위해 억지로 찾아왔던 것 - 은 역대 추리쇼 등장 작품 중에서도 첫 손을 꼽을만한 마무리였습니다.

정확한 내용을 몰랐던, 사건 당일 로스 경이 산책을 갔다 온 이후 왜 기분이 나빴는지, 동물원에서 누군가를 왜 만났었는지가 애트우드의 동기와 이어지는 전개도 깔끔했습니다. 이를 로스 경이 형무소 관련 업무를 진행하며 만났던 재소자 얼굴을 기억했다는 과거 이야기와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덕분입니다. 로스 경은 애트우드가 전과자이자 탈주범이라는걸 알고 있어서, 자기 아들과 이브의 결혼을 방해하려는 애트우드를 쫓아내려고 경고했다가 살해당했던 것이지요.
그 외의 여러가지 추리적인 장치들과 복선들 - 사건 현장에 떨어져있던 드 랑발 부인 목걸이에 혈흔이 묻어있었던 이유, 오르골 태엽이 풀려있었던 이유, 하녀 이베트가 이브를 옭아매기 위해 노력했던 이유 등 - 에 대한 설명도 확실합니다. 목걸이에 혈흔이 묻어있던던 건 목걸이를 훔쳐내려다 아버지가 죽은걸 알고 허둥대던 토비가 묻혔던거지요. 오르골 태엽은 그 와중에 동작해서 풀렸고요. 이베트가 이브를 잡아넣으려고 노력했던건 그녀가 프뤼 양의 친언니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수수께끼가 완벽하게 정리되기에 마지막까지 읽으면 굉장히 후련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어요.
아울러 추리적으로는 일종의 독자에의 도전이 삽입되어 있다는 것도 특기할 만 합니다. 킨로스 박사가 이브에게 그날 밤 일어났던 일을 듣고 범인을 알아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독자도 그 장면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보았고, 그 장면만 알면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있다는걸 선언한 셈입니다. 실제로도 그러했고요.

다만 지금 읽기 다소 낡은 설정은 있습니다. 이브가 초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사건을 방관해 버렸던건, 약혼자 가족이 이웃집에 살고 있어서, 침실에 숨어든 전 남편을 어쩌지 못한 탓 - 들켜서 오해를 살까봐 - 이라는게 대표적입니다. 애트우드와 토비가 버젓이 바람을 피우면서 이브에게 정숙을 강요하는 행태도 그러하고요. 너무 뻔뻔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참고로, 에드보다 오히려 토비가 더 극혐이었습니다. 순진한 척을 다 하다니 알고보면 뒤에서는 다른 여자에게 돈을 요구받을 정도로 놀아나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자기 합리화만 하면서 이브를 차버리는 장면은 정말 기도 안 차더군요.
이브가 남자 복이 너무 없고, 남자들 유혹(?)에 너무 쉽게 빠지다는 것도 낡은 설정이고요.
또 시계처럼 생긴게 알고보니 "코담배갑"이었다는게 핵심인데, 이걸 비교적 노골적으로 알려주고 있다는 것도 낡아보였습니다. 최근 작품이라면 이렇게까지 드러내지는 않았을거에요. 하긴, 이 작품은 아래와같이 책 표지에서부터 노골적으로 알려주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걸작이라는걸 부인하기 힘든 멋진 작품입니다. 이브와 킨로스 박사가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해피엔딩까지 완벽합니다. 제 별점은 5점입니다. 오컬트 분위기 전무한, 일종의 영웅담에 가까운 정통 추리물이니만큼 딕슨 카 입문자라면 이 작품부터 시작하는게 좋겠습니다.

덧붙이자면 that woman opposite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는데 유튜브에 Full Movie가 올라와 있네요. 애트우드의 암시로 이브가 착각하는 장면을 어떻게 찍었을지 궁금해서 잠깐 봤더니만, 걍 말로 퉁치고 끝나서 실망했습니다. 오래전 작품이기는 하지만 연극과 다를게 없는 평면적인 구성에 그쳤더라고요. 게다가 마지막에 애트우드가 이브를 없애려고 찾아오는 장면을 삽입해서 더 영웅담처럼 각색했던데, 좋은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2023/02/11

닌자의 세계 - 야마키타 아쓰시 / 송명규 : 별점 2.5점

닌자의 세계 - 6점
야마키타 아쓰시 지음, 송명규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제목 그대로 닌자에 대한 모든걸 정리하여 알려주는 책. 구성은 몇 권 읽어보았던 다른 AK 트리비아 북 시리즈와 동일합니다. 한 개의 주제에 한페이지 설명과 한 페이지 도표, 도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책은 닌자의 역사에 대해 통사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닌자가 정말로 존재했을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되거든요. 전국시대 당시 첩보를 하는 인간들은 분명 존재했다고 설명해 줍니다. 이들을 모두 '시노비'라고 부르게 되었던건 도쿠가와 막부가 고용했던 이가 사람들이 시노비였기 때문이라고 하고요. 닌자라는 말은 2차대전 이후 야마다 후타로가 쓴 인법장 시리즈 등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답니다. 당연히 만화 등에 나오는 화려한 인법보다는 첩보, 정찰 업무가 주였고, 인술비전서 최고의 인술로도 '모략'이 소개되고 있다는군요. 원래도 대단치않은 기술을 보유했었고, 전국 통일 후에는 대부분 평범한 하급 무사가 되었버려서 그나마의 인술도 잊혀졌지만, 이가에서만 이가를 맡았던 다카토라에 의해 기술을 발전시킬 '무족인' 제도가 도입되어 기술이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막부 말기 이른바 최후의 닌자로 이가의 무족인이었던 '사와무라 진자부로' 가 페리 함대에 잠입해서 조사했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고요. 뭐, 이것도 인술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첩보 활동이었다고는 하지만요. 이가만큼이나 유명했던 코가 닌자는 무족인과 같은 특권을 받지 못해 결국 멸망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에도시대에 예능이 성행하면서 시노비의 기술이 기예로 인기를 끌어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즉, 현재의 닌자 캐릭터는 일종의 광대극 캐릭터인 셈입니다.
이 뒤에는 닌자의 기원에 대한 이론, 유명한 이가와 코가 닌자의 유래와 그 관계, 핫토리 한조와 그 후계자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막부 시대 밀정은 닌자는 아닙니다만, 후계자라면 후계자라면 할 수 있겠지요. 에도 시대 호조 가문의 시노비였던 후마 코타로가 도적이 되었고, 그를 잡는데 도움을 주었던 카이의 시노비 코사카 진나이도 결국 잡혀 죽었다는건 역사적 사실로 보여 흥미로왔습니다.

닌자의 도구, 기술 설명 부분도 흥미로왔습니다. 닌자의 옷이 검은색으로 알려진건 에도 시대 무대 공연 때문일 뿐, 실제로는 저렴하게 물들일 수 있는 감즙색 옷이 많았다는 사실에 기반한 정보들도 좋았고, 시노비 두건 쓰는 법, 닌자의 속옷, 수리검이라고 불린 차검의 다양한 형태와 봉수리검과의 차이, 항아리 뗏목, 소형톱 시코로 등위 도구와 자사구리, 츠리가타나, 사게오칠술 등의 인술처럼 도판이 효과를 발휘하는 항목도 많아서 마음에 들았습니다.
닌자는 가난하다는 기본 상식을 가지고 도구 이야기를 풀어내니 얼마나 창작물이 허구인지도 잘 알 수 있었어요. 한번 쓰고 버릴 수리검에 돈을 투자할 이유가 없지요. 줄에 가로대를 달고 끝에 갈고리를 붙여 올라가는 사다리 카기시바고는 잘 알려져 있기는 한데, 걸 때 소리가 나서 실제로는 잘 쓰이지 않았을 거라는 설명도 좋았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겠지요. 이렇게 실제로는 무의미했을 창작품은 그 외에도 물 위를 걷는 신발 미즈구모(실제로는 두께가30cm이상 되었어야 함) 등이 있다네요.
인술비전서도 당연히 후대의 창작품이지만 그 중 <<만천집해>>는 그래도 상당한 연구가 겻들여진 수작이라는걸 알려줍니다. 도판도 곁들여져 있다하니까요.

인술이 나름 효과있는 술법이라는 주장도 그럴듯했습니다. 급박한 전투에서는 간단하고 실용적이며 빠르게 쓸 수 있는 술법이 사용된게 당연하지요. 한 번 성공하면 상대를 죽일 수 있으니 비밀도 지켜지고요. 이런건 후대 닌자 만화 설정과 비슷하네요. 당연한 일을 좀처럼 할 수 없는게 인간이라 일부러 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해석은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격으로 보이지만요. 물론 설명되는 인술은 무슨무슨술....처럼 이름은 거창하지만 뻔하고 어이없는 것들도 많기는 했습니다. 그나마 고양이 눈으로 시간을 확인한다는 찰천술은 기억에 남네요. 죽은 시체의 동공으로 시간을 확인했다는 클락성 살인사건의 추리가 떠올랐거든요. 정원 한복판에서 등을 둥글게하고 머리를 숨기며 가만히 있는 메추라기 은신술도 나름대로 그럴듯했고요.
참고로 여우 은신술은 물 속에 숨는 술법인데 만화에서처럼 대나무로 호흡하지는 않았다네요. 굵은 나무가 튀어나와 있으면 이상하니까요. 원래는 얼굴에 나뭇잎 등을 붙이고 얼굴째 내밀어 호흡했다고 합니다. 삼베 뛰어넘기 훈련법은 삼베가 아니라 모시풀이었을거라는 추정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은 창작물 속 닌자들 소개로 마무리됩니다. 타츠카와 문고의 사루토비 사스케, 야마다 후타로의 인법첩 시리즈 특징과 주요 대결구도, 시라토 산페이의 닌자 만화 시리즈 소개, 지라이야 소개 등. 시라토 산페이의 만화에서 인술을 합리적으로 설명했다는건 신선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닌자의 체술이 바탕이 되었다고는 해도, 아예 마법같은 것 보아야 현실적인 느낌을 가져다 주었겠지요. 그러나 이 부분은 설명 도판이 아쉬웠습니다. 인술을 합리적으로 설명했다는 부분을 실제 만화 이미지로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거에요.
지라이야의 유래가 중국 소설에 등장하는 도적으로, 도둑질 한 곳에 아래야라는 메모를 담겨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건 처음 알았고요.
마지막 100번째 항목은 실존하는 무술 Ninjutsu입니다. 해외에서는 유명하지요. UFC 초창기(시즌 2)에 닌쥬츠 고수가 나왔던 시합이 기억납니다.

하지만 닌자 역사에 대한 설명 중 야규 일족, 마미야 린조 등 암살, 밀정 활동을 한 실존 인물을 닌자처럼 설명하는건 와 닿지 않았고, 사이고 다카모리까지 언급하는건 도가 지나쳤습니다. 이시카와 고에몬도 닌자였을 수 있다는건 좀 억지스러웠습니다. 비슷한 기술을 지니고 있있으니 전국시대가 끝나고 도둑이 된 닌자가 많았을거라는건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니까요. 마츠오 바쇼 닌자설도 마찬가지, 많이 걸었다는 것과 여비를 누구도 주었는지로 닌자일 수 있다는건 억지입니다.
다른 트리비아북 시리즈에는 파워포인트스러운 도표가 대부분인 책도 있었는데, 이 책은 그래도 일러스트를 통한 설명이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그리 깊이있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할 수 없고 가성비도 좋나고 보기 어려우나 실제 역사와 근거에 기반한 설명과 시리즈 취지에 걸맞는 잡다한 정보가 많은건 분명한 장점입니다. 닌자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만화가족 - 오오시마 토와 : 별점 2점

 

[고화질세트] 만화가족 (총2권/완결) - 4점
Towa Oshima/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여고생>>의 작가가 만화가 가족인 자기 가족을 소재로 그려낸 일상 만화.

저는 이전 다른 리뷰에서도 말씀드렸었지만 '만화가가 나오는 만화는 모두 재미있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별로 실망한 적이 없었어요. 비교적 최근에 읽었었던 <<극도 만화 이야기>>라는 최악의 실패작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만화는 일상 개그로 유명한 작가가 그린 작품이라 그래도 즐겁게 읽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소재도 굉장히 흥미롭잖아요? 일가족 4명, 아버지와 어머니, 딸 둘 모두가 만화가인 가족 이야기라니! 만화가 부부는 많이 있지만 이 정도로 만화가가 많은 가족이 또 있을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이색적인 만화가 가족의 이야기를 잘 담아내지 못한 탓입니다. 오오시마 야스이치가 카와시마 레이코를 처음 만나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가족이 아니면 모를 이야기라 재미있었고, 엄마가 만화가를 잠시 은퇴했다가 레이디스 코믹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는 이야기, 여러가지 도구 사용을 두고 가족끼리 이런저런 정보를 공유하는 이야기는 만화가 가족이라서 알 수 있었던 이야기라 생각되어 만족스럽기는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에피소드가 별로 없다는 거에요.
또 저는 <<일격전 (권법소년)>>과 <<바츠 앤 테리>>, <<특종! 사건 현장>>, <<탐정의 아내>> 등을 좋아했던 오랜 오오시마 야스이치 팬이기에 아버지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를 바랬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도 실망스러운 점이었어요. 그나마도 게임에 진심이었다던가, 딸의 만화를 앞에서는 비판해도 뒤에서는 관심깊게 보고 있었다는 류의 잔잔한 내용들 뿐이며 임팩트있는 에피소드는 파티 현장에서 오오시마 야스이치가 쓰러진 이야기밖에는 없었습니다. 레이디스 코믹으로 유명하다는 엄마 카와시마 레이코는 아이를 구타했던 육아 방식이라던가, 레이디스 코믹을 그릴 때의 독특한 만화 창작 방법 등 비중이 더 큰 편이기는 하나, 잘 모르는 작가인데다가 레이디스 코믹은 전혀 관심이 없는 장르라 와 닿지 않았습니다. 여동생은 4컷 만화만 연재했고, 완전한 프로이자 현역은 아닌 듯 해서 비중도 작고 관련 에피소드도 별로 없어서 언급할게 없네요.
2권은 가족 이야기가 아니라 만화가 오오시마 토와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라 작품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고요. 데뷰 과정과 게임 만화를 그릴 때의 고충들, 에로 만화가로의 각성과 만화 창작 과정의 고뇌를 다룬 에피소드, 그리고 CD와 애니메이션 제작에 얽힌 에피소드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실감나고 재미도 있었습니다만, 이래서야 <<만화가족>>이라고 부르기는 힘들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대단한 재미를 주지도 않고, 내용도 밋밋합니다. 구태여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3/02/04

철벽의 알리바이로 완전범죄 성립!? '교환 살인'을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

* 언제나처럼 honto의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국내 소개된 작품은 4편입니다. 저도 두 편 밖에는 읽어보지 않았는데 찾아봐야겠네요.

'교환 살인'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살해 대상을 교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 살인이 저질러지고 있는 동안에 철벽의 알리바이를 준비해서 혐의에서 벗어나는 완전범죄를 만들기 위해서이지요. 

그러나 교환 살인이 트러블, 변심이나 배반 등으로 생각대로 잘 흘러가지 않고 그 와중에 드라마가 발생하는건 추리 소설에서 기본적인 테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런 교환 살인 미스터리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킹을 찾아라>> 노리즈키 린타로

4중의 교환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범인과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노리즈키 경시와 린타로 부자의 활약을 그린 미스터리. 범인 측 시점은 일종의 도서 미스터리로, 노리즈키 경시와 린타로 부자 시점은 본격 미스터리물로 즐길 수 있다. 또 교환 살인으로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에 대한 후더닛 요소도 더해져 있는, 헛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치밀한 플롯이 빛나는 본격 요소가 가득 담겨있는 작품.

<<교환살인에는 어울리지 않는 밤>> 히가시가와 도쿠야

사립탐정 파트, 탐정의 제자 파트, 형사 파트가 순서대로 그려지며 교환 살인물로는 드물게 도서 미스터리 스타일이 아닌 채로 진행된다. 제목에는 있지만 도대체 무엇이 교환 살인인지 궁금해하면서, 가벼운 분위기의 문장에 혹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저자의 속셈에 빠져들고 마는 본격 미스터리.

<<도망자>> 오리하라 이치

교환 살인을 저질렀지만 배신당해서 한 번 체포되었지만 탈주한 뒤 도망자 신세가 된 도모타케 지에코. 그녀와 그녀를 쫓는 형사와 남편, 그리고 인터뷰로 구성되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도피 행각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노골적이며 의미심장한 표현들은 서술 트릭의 대가인 저자의 솜씨를 느끼게 해 준다. 실재로 있었던 사건이 모델인 미스터리 작품.

<<스트레이트 체이서>> 니시자와 야스히코 (국내 미출간)

린지는 바에서 취했을 때 3중 교환 살인 약속을 해 버렸다. 다음날 아침, 자신이 지목했던 살해 대상이었던 상사의 집에서 타살 사체가 밀실 상황에서 발견되는데..... 저자가 SF 설정의 본격 미스터리 작품들을 발표하던 시기의 작품. 수수께끼 아이템이 등장해서 이번에도 SF 설정이구나 싶은 점도 흥미로운 점. 꼭 주인공에 감정이입해서 읽어보시길.

<<낯선 승객>>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교환 살인이 주제인 작품들 중 선구자적인 존재인 이 작품은 히치콕 감독에 의한 영화도 유명하다. 우연히 같은 전철에서 만난 가이와 브루노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브루노가 가이에게 교환 살인을 제안한다는 내용으로 편집광적인 스토커의 무서움을 맛볼 수 있는 심리 서스펜스물.

정보는 모두 당신 손 안에! <<독자에의 도전장>>을 즐길 수 있는 미스터리 작품들

대포와 스탬프 1~9 - 하야미 라센진 : 별점 2.5점

[고화질세트] 대포와 스탬프 (총9권/완결) - 6점 하야미 라센진/미우(대원씨아이)

밀덕 만화가 하야미 라센진의 (현재까지는) 최장 장편. 2017년에 1권이 국내 첫 소개되고, 6년만에 완결을 보았네요.
다음권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 정도로 개별 단편 하나 하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단팥죽을 좋아하고 엄청난 업무 능력을 발휘하는 마르티나 중위, 저명한 SF 작가 키릴 대위, 엄청난 전투력의 소유자인 불사신 보이코 상사, 형무소 출신으로 밤 생활에 능통한 아네티카, 이재에 밝아 보이지만 항상 실패하는 만치코프 등 개성있는 중대원들 묘사도 좋고요.
2차대전 시기를 모티브로 하는 각종 등장 장비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묘사는 작가의 덕력의 깊고 넓음을 짐작케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감상을 말하자면, 장편으로는 함량 미달이었습니다. 제국군과 공화국군, 공국군이 서로 싸우는 치열한 전쟁과 병참 부대 인물들 에피소드가 잘 어우러지지도 못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긴 이야기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서너편 되는데, 전개에 있어서 무리수를 두거나 설명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여기에 더해 빌런 카라이브라힘이 벌이는 여러 악행들은 최악이었습니다. 전쟁과 딱히 관련도 없을 뿐더러, 뭔가 있어보이지만 실상 뭔가 일을 벌일 때 마다 실패하고 정체가 드러나서 도저히 이야기의 한 축을 이끌어가는 악당으로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카라이브라힘의 오른팔인 암살자 소년 유스프는 이야기의 비현실성을 더해주는데 그치고요.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초, 중반까지는 전투 장면도 한없이 유쾌하게 개그 분위기로 끌고가다가 마지막에 전쟁은 비극이라는 결말을 맞는데, 이를 잘 그려내지 못했다는 겁니다. 작가의 작화부터가 비극에 어울리지 않는데다가, 부족한 전개 능력이 발목을 잡았어요. 비극을 그리기 위한 묘사가 죽음밖에 없는 탓이 큽니다. 마지막 권은 그야말로 정점을 찍습니다. 불사신 보이코, 도둑고양이 아네티카 등 중대 핵심 멤버들, 라드반스카 중장, 토이치로브스키, 수도사 등 중간중간 등장했던 여러 인물들이 차례로 죽어나가거든요. 이 죽음들도 전우 (마르티나)와 함께 했던 보이코 상사 말고는 모두 허무한 개죽음에 가깝다는건 - 대표적인게 보드카 아케조코 스페셜 공장 때문에 죽어버린 아네티카 - 수년을 함께했던 독자들이 반길만한 요소는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런 개죽음이야말로 비참한 전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요소일 수는 있습니다만... 최소한의 드라마는 그려주었어야 했는데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꼭 살아남아 주었으면 했던 아네티카 대신, 얌체 캐릭터 만치코프가 끝까지 살아남는다는게 정말 별로였습니다. 죽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작가의 의도였을까요?
키릴 대위는 시력을 잃고, 마르티나는 팔을 잃고 맺어졌던 둘이 헤어지는 듯한 묘사도 별로였어요. 어렵게 맺어진 연인이 헤어지는 것도 전쟁이 불러온 비극인데 이를 왜 자세히 그려내지 않았는지도 의문입니다.
어떤 궁지에 몰려도 상대를 죽이고 탈주했던 핵심 빌런 카라이브라힘이 도주하다 맞은 총으로 죽어버리는 것도 허무했습니다. 출하 요청을 받아 급하게 마무리한게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드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2차대전과 밀리터리물을 좋아한다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데, 전체적으로는 다소 미묘했습니다. 이 작가는 짧은 호흡으로 유쾌한 분위기를 그려낸 작품이 훨씬 잘 어울린다 생각됩니다. 이 작품 역시 초중반부까지의 유쾌한 전쟁물로 끌고갔더라면 더 좋았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