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열쇠의 계절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
요네자와 호노부의 청춘 학원 추리 단편집. '고전부'나 '소시민' 시리즈와 비슷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탐정의 역할입니다. 이 시리즈는 두 주인공인 호리카와와 마쓰쿠라가 각자 추리를 펼치며 서로를 보완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약간 버디물스러운 느낌도 들어요. 뛰어난 관찰력과 독특한 발상의 추리력을 갖춘 호리카와는 뻔한 고등학생 탐정 캐릭터인 반면, 모든걸 의심하면서 추리를 시작하는 마쓰쿠라의 독특함은 나쁘지 않았고요.
또 두 주인공이 도서위원이라서 대부분의 이야기에 주제가 되는 책이 등장한다는 것도 차이점인데, 저 역시 독서 애호가(?)인지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상계로 한 획을 그은 작가답게 평범한 일상계로는 우수한 시리즈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913><913>>
도서위원 호리카와 지로와 마쓰쿠라 시몬은 선배 우라가미로부터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금고를 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과거 둘이 에도가와 란포의 <<흑수조>> 속 암호를 풀었던 모습을 눈여겨 보았던 탓이었다.
일요일, 우라가미 선배 집에 방문한 둘은 할아버지 서재 방에 놓여져 있었던, 어울리지 않았던 책들이 단서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마쓰쿠라는 정보를 바로 공개하지 않고 따로 조사가 필요하다며 호리카와와 밖으로 나온 후, 그가 생각했던 의심을 털어놓는데...
등장하는 책은 많지만, 중요한건 할아버지가 남긴 단서가 되는 책들
마쓰쿠라의 의심은 우라가미 선배가 후배 둘에게 금고를 열어달라고 부탁한 이유가 무엇인지에서 시작됩니다. 가족이 정당한 유산 상속인이라면 금고를 여는 전문가를 부르면 됐으니까요. 그래서 마쓰쿠라는 우라가미 선배와 선배의 가족은 금고를 그렇게 쉽게 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추리합니다. 선배 집에서 대접받았던 차는 시판차와 똑같은 맛이었는데 그걸 끓여서 따로 찻주전자에 내 놓은 이유, 화장실을 간다고 했을 때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던 이유 등 기묘했던 행동은 그 집이 선배 가족의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찻잎이 어디있는지는 모르지만 살고 있는 척을 해야 해서 차를 끓여 내 놓았고,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렸던건 집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닐까봐 걱정했던 것이었지요.
할아버지의 단서는 이상한 책의 분류 번호에 대한 것으로, 그것을 통해 금고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이를 이용하여 선배 가족의 정체를 밝히는 작전을 펼친 것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책 4권의 3자리 분류 번호를 50음도로 변환하면 모두 6자, "타스케테쿠레 (살려줘)"라는 말이 된다고 조작하는 방식으로요. 이 작전으로 선배와 선배 가족의 눈을 돌린 틈에, 마쓰쿠라가 집 안을 조사하여 노인을 발견하고 구해내게 됩니다.
금고 안 내용물은 할아버지 그림과 가족 앨범이었다는 결말도 깔끔했어요.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눈에 뜨이기는 합니다. 할아버지가 말했던건 서재방에 단서가 있고 그건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허나 서재방의 책 중 다른 책들과 사뭇 다른 책이 있다는건 어른이 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금고 번호가 도서 분류 기호라는건 어른이 된다고 알 수 있는건 아니고요. 즉 할아버지가 말했던 단서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선배 가족이 금고를 열기 위해 후배를 부른 것도 이상했어요. 저 같으면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는 정도로 끝냈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은 아쉬웠습니다.
<<록 온 로커>>
도서위원 컴비 둘은 함께 미용실을 찾았다. 함께 가야 40% 할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점장이 "귀중품은 '반드시' 지참하실 것"을 말했고, 이걸 이발 중 이야기하는걸 저지했다, 그리고 곧 종료 시간이라고 말하고 난 뒤 염색이 필요해 보이는 손님을 받았다는 등의 단서를 조합하여 마쓰쿠라는 미용실에 최근 도난 사건이 있었고, 범인을 잡기 위해 점장이 함정을 팠다는 추리를 펼칩니다. 호리카와는 마쓰쿠라의 도움으로 둘의 예약을 받았던 곤도가 범인이라는걸 알게 되고요. 이 작전을 모르는 사람을 점장이 의심하고 있으니, 그걸 모르고 예약을 받은 곤도가 범인이라는 추리로요. 이는 결국 사실로 밝혀집니다.
마쓰쿠라의 추리에 이어 호리카와의 추리가 이어지는 티키타카가 볼만했고, 마지막에 범인 곤도가 도주하는걸 저지할 수도 있었지만 나서지 않았던건 소시민 시리즈와 비슷한 감성을 느끼게 해 주어서 좋았습니다. 평범한 일상계로는 적절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일본의 미용실 모습은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는데 비해 남자 둘이 미용실을 가는게 굉장한 금기인 것처럼 묘사되는게 신기했습니다.
<<금요일에 그는 무엇을 했나>>
기말고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후배 도서위원 우에다 노보루가 호리카와와 마쓰쿠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주 금요일, 학교에 누군가 침입하여 교무실 앞 창문이 깨졌는데 그걸 보고 학생지도부 요코세 선생이 노보루의 형인 불량 학생 우에다 쇼가 시험 문제를 훔치려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요코세 선생은 이른바 '명탐정' 같은 사람으로, 무슨 사건이 터지면 무조건 학생 누군가를 아무런 근거없이 범인으로 지목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에다 쇼가 그 날, 밤 늦게 돌아왔는데 무슨 일을 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는 점이었다...
둘은 우에노 쇼가 결백하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형제가 같이 쓰는 방을 수색하는데...
등장하는 책은 <<파랑새>>. 유리창을 깬 원인이기도 한 새와 연결되는 장치. 헌책방에서 산 이름을 알 수 없는 애장판 만화도 중요한 단서 중 하나. 그 외에도 노보루가 관심있어하는 책으로 나니아 연대기를 비롯한 판타지 시리즈가 언급됨.
추리를 통해 밝혀낸 우에다 쇼의 알리바이는 가족과 별거 중인 아버지 병문안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있어서 그 사실을 숨겼던 것이지요.
우에다 쇼의 바지 주머니에서 '라이라이켄'이라는 라면집 쿠폰을 찾아낸 뒤, 이상할 정도로 좁았던 집 등의 단서를 통해 아버지가 별거 중이라는 노보루의 답변을 끌어내어 우에다 쇼의 그날 행적을 추리해내는 과정은 깔끔했습니다. 완벽한 일상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 사건을 맡아서 끌어가는 과정과 결말이 다소 석연치 않습니다. 우에다 노보루의 부탁부터 억지스럽습니다. 왜 호리카와에게 부탁했는지 모르겠어요. 작중에서도 우에다 혼자서는 도저히 알리바이를 찾을 수 없어서 그랬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호리카와에게 부탁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호리카와가 딱히 알리바이 찾기로 이름을 떨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친한것도 아니니까요.
호리카와가 부탁을 선뜻 받아들인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에초에 우에다 쇼는 증거가 집에 있다는 말은 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설령 부탁을 받아들인다 해도 집을 뒤지느니 우에다 쇼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게 더 나은 해결책이었어요.
이에 대해 마쓰쿠라의 추리 - 우에다 노보루가 형의 퇴학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도 좁고 어차피 형은 아버지랑 살 터였기에. 그래서 알리바이 증거를 찾아내서 없애려고(형을 퇴학시키기 위해) 호리카와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호리카와는 인간 관계가 깨져도 무방한 사람이었으니까 - 는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형의 퇴학을 바란다면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이 이상적입니다. 구태여 알리바이를 찾아내고, 또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을 늘린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애초에 학교에서 퇴학당할 정도의 위기에 처한다면, 증거 유무와 관견없이 병문안 당사자였던 아버지가 가만히 있지도 않았을테고요. 모든 상황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마쓰카와의 성격을 부각시키기 위한 주장으로 보이지만, 이전에 보여줬던 추리력과 상반될 정도의 비합리적인 주장이라서 오히려 캐릭터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리창을 깬건 마쓰카와였다는 결말도 별로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없는 책>>
3학년 선배 고다가 자살한 뒤, 자살한 선배의 친구 하세가와가 도서실에 나타났다. 그는 고다가 책 사이에 유서를 넣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라며, 빌렸던 책을 찾아줄 것을 부탁했다.
둘은 하세가와의 빌린 책에 대한 언급을 통해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걸 알아채는데....
등장하는 책은 이와나미 문고에서 나온 쇼펜하우어의 <<자살론>>.
극히 적은 정보만 가지고 원하는 책을 찾아준다는 이야기는 서점이나 도서관이 무대인 작품에서는 굉장히 많습니다. 아예 이런 내용이 핵심인 <<서점원 하야미>>라는 만화가 떠오르네요. 이번 이야기는 이런 류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반전과 함께 여운도 남기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하세가와가 찾아달라고 하며 알려준 핵심 정보는 고다가 책을 읽다가 덮었는데 책 등이 보였고, 밑에 바코드 스티커가 있었다는 겁니다. 고다가 좋아했던건 소설책이고요. 그런데 현장 조사를 통해 하세가와는 고다의 오른쪽에 있었다는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일본의 소설책은 대부분 세로쓰기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므로, 책을 읽다가 덮으면 하세가와의 위치에서 책 등과 스티커를 함께 보는건 불가능합니다. 즉, 하세가와의 말은 거짓말이었던 것이지요.
마쓰카와는 고다 선배의 유서를 날조하려는 속셈이었다고 하세가와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호리카와는 고다 선배의 유서는 육필이라 위조할 수 없고, 오히려 유서를 받은 뒤 친구가 자살한 탓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은밀하게 유서를 드러내려고 했던 거라고 추리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묵직한 내용에 추리적으로도 좋았으며, 두 주인공의 차이를 강하게 드러내는 결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람의 선의를 믿지 않고, 무조건 나쁜 의도일 것이라 짐작한 마쓰카와의 잘못과 이를 반박하는 호리카와의 말이 대미를 장식하거든요.
선배 교실에 가서 불필요한 연극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문제는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옛날 이야기를 해줘>>
마쓰카와는 호리카와에게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숨겨두었던 현금을 함께 찾아보자고 부탁했다. 그간 호리카와의 추리력을 눈여겨 보았던 탓이었다.
호리카와는 마쓰카와가 내 놓았던 과거의 단서들를 함께 검토하다가 과거 마쓰카와 가족에게 차가 한 대 더 있었다는걸 추리해내었고, 둘은 결국 그 밴을 찾아내는데...
여러 책이 등장하지만 핵심은 아버지 밴 안에 있었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제로의 초점".
보물찾기 이야기인데 마쓰카와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호리카와가 잡아낸 마쓰카와의 이야기 속 단서 - 동생이 멀미를 했다는 것 - 라는 착안점은 좋았습니다. 그때까지 마쓰카와는 당시 탔던 차가 렌트카라고 생각했는데, 동생의 멀미는 담배 냄새 때문이라는걸 깨닫고 담배 냄새가 나는 차를 렌트할리가 없었다는걸 깨닫게 되거든요. 결국 그 차는 빌린 차가 아닌 아버지 차였다는 추론에 이르게 됩니다. 또 이 추리는 자동차로 여행을 가다가 동생이 심하게 멀미를 했었다는 별게 아닌 추억담이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는 점과 호리카와는 마쓰카와가 잊고있던 기억을 떠오르게끔 도와주는 정도의 도움을 줄 뿐이라는 점에서 완벽한 일상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뒤 차를 찾아내는 과정, 그리고 차 속에서 발견한 열쇠의 '501호'가 어디인지를 추리하는 과정도 그럴듯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책'이 중요 단서로 사용된다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차 안에 굴러다니던 헌 책이 도서관 '제적본' 책이라는걸 알아낸 뒤, 도서관이 위치한 도시의 5층 건물을 검색한다는 것으로 도서위원인 아이들의 특기가 발휘된 것은 물론이고, 그 도시는 차로만 갈 수 있다는 등의 설정이 덧붙여져 있어서 여러모로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일상계 보물 찾기로는 더할나위 없긴한데 딱 한가지 억지가 있습니다. 주차장에 주차해 둔 차라면 당연히 주차비를 냈을테니, 주차비를 내는 누군가는 차의 존재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 누군가가 그렇게 했던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 그 누군가가 몇 년 동안 차를 뒤져 그 안의 보물을 가져가지 않았을리도 없겠지요. 즉, 자동차가 주차장에 장기 주차되어 있었다는게 밝혀진 순간 보물찾기는 끝났어야 마땅합니다. 이걸 바로 떠올리지 못한건 이상해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친구여, 알려 하지 마오>>
호리카와는 도서관 검색을 통해 마쓰카와의 아버지가 돈을 도둑맞은 피해자가 아니라 돈을 훔쳤던 가해자였다는걸 알아낸다. 단서는 마쓰카와 시몬, 레이몬 형제 이름과 이에 대해서 마쓰카와가 '3/5이다'라고 했던 말이었다. 시와 예 (레이)는 중국 고전 5경에서 따왔으니 아버지 이름도 그럴 것이다라고 추리하여 아버지 이름을 검색했던 것이다.
호리카와도 전편에서 독자가 가졌던 의문을 그대로 가지고, 자신의 추리 결과로 도서관에서 기사를 검색하게 됩니다. 자동차가 월 정액 주차장에 남겨져 있었던건 누군가 돈을 계속 냈다는 의미라는 추리는 저와 같은데요, 호리카와는 왜 돈을 계속 냈을까?에서 또 다른 추론을 얻어냅니다. 주차장에 놓여진 차를 처분할 수 없었던건 그 안의 열쇠 때문이었고, 열쇠를 지금 당장은 회수할 수 없었다는 처지였다고요.
그리고 줄거리 요약처럼 '오경'의 한자를 통해 마쓰카와 아버지 이름을 추측하여 검색한 결과, 마쓰카와의 아버지가 절도범이었다는걸 알게됩니다. 즉, 마쓰카와의 아버지는 지금 구속 수감 중이라 열쇠를 회수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여기까지의 추리는 기가 막힌데 그 뒤는 특별히 추리적인 부분은 없습니다. 뒷부분은 마쓰카와가 돈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에 대해 반론하는 호리카와 사이의 자기 주장 대결이 대부분이에요.
마쓰카와가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평소에 돈을 아끼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 이유 등 약간 사회파스러운 분위기가 눈에 뜨이기는 하지만, - 약점이란 건 그런 거야. 약점 하나로 세상은 변해….. - 어차피 고등학교 2학년 생이 하는 이야기니 그렇게 깊이있는 이야기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호리카와 역시 이상론만 이야기해 줄 수 있을 뿐이고요.
이야기는 마쓰카와가 그 돈을 찾으러 후미쿠라 정에 가서 건물들을 뒤졌는지, 그래서 돈을 찾았는지 밝혀지지 않고, 평범한 도서위원으로 마쓰카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호리카와 시점에서 마무리됩니다. 아무래도 마쓰카와가 돈을 찾으면 더 이상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을텐데, 어떻게든 마쓰카와가 평범한 도서위원으로 돌아와 이야기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추리도 괜찮았고, 대단원의 막을 장식하기에는 나무랄데 없는 깔끔한 전개의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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