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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1

2016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2015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13차, 열 세번째를 맞는 블로그 결산입니다.
숫자부터 정리해보면, 2016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3 (53)권, 기타 장르문학 8 (10)권, 역사서 18 (12)권, 디자인 및 스터디 도서 4 (5)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9 (7)권, 기타 도서 15 (21)권으로 모두 107 (107)권입니다. (괄호는 작년) 작년과 거의 비슷하군요.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16년 베스트 추리소설 :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단평 : 세상은 넓고, 모르는 작가도 많고, 재미있는 작품도 아직 이렇게나 많다!
올해 추리, 호러 장르물 중 별점 4점 이상 작품은 단 한편도 없습니다. 그런데 별점 3점짜리는 또 제법 많아요. <<별도 없는 한밤에>><<천사들의 탐정>><<미스테리아 8호>><<사냥개 탐정>><<검은 수도사>><<가면 무도회 1,2>>,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엠브리오 기담>>의 8편입니다.
다 좋은 작품들이지만 한편을 꼽기 위해서 우선 잡지인 <<미스테리아 8호>>를 빼겠습니다. 호러 성향이 강한 <<별도 없는 한밤에>>, <<엠브리오 기담>>도 제외하고 역사 모험물 성격이 강한 <<검은 수도사>>를 빼면 4편이 남네요. 다 좋은 작품들이지만 이 중 추리적으로도 괜찮고 재미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선사한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를 올해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2016년 워스트 추리소설 :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단평 : '미스터리'가 아니었다...
2016년에는 별점 2점 이하의 작품이 무려 16편이라고 한탄했는데 올해는 26편입니다! 읽은 작품 중 반 가까이가 수준 이하였다는 이야기니 참으로 너무하네요. 최악인 별점 1.5점 이하도 무려 열편이고요.

하지만 최악 중의 최악인 별점 1점을 단독으로 획득한 작품이 올해의 워스트인 이 작품입니다. 최악인 이유는 책의 완성도를 떠나 '미스터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냥 청춘 연애물일 뿐이죠. 작품의 수준을 떠나 구태여 추리물이라고 소개하여 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괘씸한 마케팅 때문에 올해의 워스트로 꼽습니다.

2016년 베스트 기타 장르문학 :
<<제라르 준장의 회상>>
단평 : 시대를 뛰어넘다.
올해의 기타 장르문학에서는 별점 3.5점의 이 작품이 베스트입니다. 모두 10권도 읽지 않아 한권의 베스트를 꼽기는 좀 창피하지만요. 여튼 코난 도일 경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고전 명작 모험물입니다.

2016년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양심의 문제>>
단평 : 바탕에 깔린 사상 문제.
도서출판 불새의 용기있는 행보에는 항상 박수를 보내는 바이지만... 이 작품만큼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역겨운 식민지 시대의 유산인 제국주의적 세계관을 은연 중에 포장하여 강요하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2016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신들의 연기, 담배>>
단평 : 교양과 재미의 절묘한 결합.
이 책은 올해의 유이한 별점 4점짜리 책입니다. 교양과 재미,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놀라운 결과물이죠. 제가 꼭 흡연자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2016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조선의 武와 전쟁>>
단평 : 기대에 미치지 못한...
역사 도서는 좀 가려읽는 편이라 워스트가 대체로 없는 편인데 올해는 이 책이 뽑혔습니다. 기대한 내용에 전혀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랄까요?

2016년 베스트 디자인 / 스터디 도서 :
올해 이 분야는 달랑 4권만 읽었기에 별도로 평하지는 않겠습니다. 내년에는 이 쪽 분야도 좀 더 열심히 읽겠습니다.

2016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백미진수>>
단평 : 실력자가 애정을 담아 쓴 미식 에세이의 진수
이 책은 올해 유이한 별점 4점짜리 책. 읽는 내내 즐거우면서도 유용한 좋은 에세이였어요.

2016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레시피>>
단평 : 발췌에 이은 레시피 소개에 그친, 날로 먹은 책
제목 그대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한 음식, 요리를 발췌한 후 해당 레시피 소개가 전부인 책. 저자의 아이디어는 눈꼽만치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2016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서프라이즈 : 인물편>>
단평 : 책의 존재가치 자체를 모르겠다.
올해 기타 도서는 전부 고만고만해서 베스트를 꼽기는 쉽지 않네요. 별점 3점짜리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장서의 괴로움>>) 독보적이라고 하기는 어렵거든요.
하지만 워스트는 확실합니다. 총 4편의 별점 1.5점짜리 망작들 중에서도 이 책이 선명하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왜 책이 나왔는지 이유 자체를 모를 무의미한 결과물입니다.

2016년 베스트 기타 Comic :
<<피너츠 완전판>>
단평 : 발간만으로도 감사한 완전판!
올해 별점 3점을 넘는 만화는 많았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점수가 좋은 작품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총 4권을 읽었고 대체로 별점이 우수했던 <<피너츠 완전판>>을 올해의 작품으로 꼽아봅니다. 단평 그대로 발간된 것 만으로도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2016년 워스트 기타 Comic :
<<역시 빵이 좋아!>>
단평 : 만화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했다.
올해 별점 1점짜리 망작은 본 작 외에 <<스파이 vs 스파이>><<산적 다이어리 2>>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은 최소한 '만화' 이기는 한데 이 작품은 아무리 봐도 만화가 아닙니다. 빵 소개서를 만화처럼 만든 것에 불과하니까요. 최소한의 이야기와 재미도 없기에 올해의 워스트로 꼽습니다.

그외 영화, 만화 등은 대체로 부분별로 5편 이상 감상한 것이 없기에 올해는 선정하지 않습니다.

결산평 :
총 독서 권수가 작년과 똑같다는게 놀라운데 여튼 올해도 100권을 넘겼습니다. 이 정도면 취미인으로 할만큼 한 해겠죠.
문제는 제가 나이가 든 탓인지, 아니면 출간작들의 수준이 갈 수록 떨어지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평균 이하의 작품들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서의 괴로움>>에 나온 유명한 장서가 다니자와의 명서 감정술처럼 - "명저라는 홍보에 넘어가 샀던 책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류 이하 책을 이것저것 찾아 읽지 않았다면 초일류를 초일류라고 인정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한 통과의례일 수는 있겠지만 몇몇 망작들은 그야말로 읽는 시간조차 아깝기 그지 없었습니다. 뭐 좋게 생각하면 이런 작품들을 소개하는게 제 미미한 블로그의 존재 의미겠죠. 찾아주시는 분들의 시간이라도 아껴야 하니까...

여튼,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들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성취하시는 한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임이 분명할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거에요. 사랑합니다~!

2016/12/27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 루스 웨어 / 유혜인 : 별점 1.5점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 4점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예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범죄소설가 노라는 오래전 친구 클레어의 결혼 전 싱글 파티 초대 메일을 받는다. 그녀와는 여러가지 이유로 고향을 떠난 후 10년간 연락조차 없었던 상황.
딱히 갈 생각은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같이 초대받은 당시부터의 친구인 의사 니나와 함께 파티 장소로 향한다.
싱글 파티 장소는 클레어의 대학 시절부터의 친구라는 플로의 할머니 별장으로 으슥하고 멀리 떨어진 장소였다...


"이 동네 사람들은 체호프의 총 (1막에서 총을 복선으로 등장시켰다면 3막에서는 반드시 쏴야 한다) 이야기 들어본 적 없대요?" - 톰. 별장에 장식된 총을 보고
작가는 근본적으로 썩은 고기를 노리는 새가 아닌가. 죽어버린 연애사와 땅에 묻힌 말싸움을 쪼아 먹고 작품에 재활용한다. 그들의 과거는 우리가 고안한 방법으로 새롭게 변신해 좀비처럼 부활한다. - 톰이 연인과 싸운 이야기를 들으며 노라가 하는 생각.
사람은 변하지 않아. 전보다 치밀하게 자기의 본모습을 숨길 뿐이지. - 니나. 10년만에 만난 클레어가 착해졌다는 노라의 말을 반박하며.
"충격이긴 한데 놀랍지는 않다. 그 여자는 생활이 연기였잖아." - 톰의 연인 브루스가 클레어를 평한 말.


주인공 노라 시점에서 2박 3일간의 외딴 곳 파티와, 파티에서 벌어진 사고 이후 병원에 입원한 노라에게 닥친 상황에 대한 묘사가 교차되어 전개되는 작품. <<미스테리아 8호>>에 수록되었던 멋드러진 리뷰에 혹해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리뷰만큼 흥미롭거나 재미있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 여왕처럼 행동하던, 세상의 중심이 자기라 생각하는 클레어를 축으로 그녀와 관련된 여러 사람이 모인다는 설정부터 뻔합니다. 그녀가 현재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다는 동기도 진부하고요. 사건의 핵심 인물 노라가 사고로 일종의 단기기억 상실에 빠진다는 설정은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또 390여 페이지 분량의 장편에서 330페이지까지가 사건에 대한 설명 부분인데 흥미롭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깁니다. 구태여 길이를 늘이려는 불필요한 시도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아요. 대표적인 것이 일반인을 대표하는 멜라니 캐릭터입니다. 사건 내 전개를 보면 등장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분량 낭비에 불과합니다.

진부하고 뻔한 설정, 길고 장황하며 지루한 서술을 극복하려면 최소한 범행이라도 정교했어야 합니다. 허나 이 역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우선 사고가 아니라 살인 사건으로 밝혀진 후의 과정이 엉망이에요. 그 중에서도 범인이 될 만한 사람이 극단적으로 적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싱글 파티에 초대된 사람은 달랑 5명 뿐입니다. 이 중 그녀를 숭배하는 플로, 파트너를 통해 알게된 연극계 지인인 톰, 아기 때문에 이틀째 아침에 귀가해버린 멜라니는 아무리 보아도 범인이라고 하기 어렵죠. 그렇다면 어린 시절 동성애자라는 것이 클레어에 의해 폭로된 니나, 그리고 옛 연인이 이번 클레어의 결혼 상대라는 것을 알게 된 노라가 남습니다. 이 중 현재 동성 파트너와 알콩달콩 지내고 있으며 의사라는 안정적 지위를 얻은 니나가 10년도 전에 일어난 일로 범행을 저지른다? 그럴리가 없죠. 설령 니나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제임스가 아닌 클레어를 타겟으로 했어야 합니다. 구태여 노라의 폰을 이용하면서까지 제임스를 끌어드릴 이유는 없어요.
그렇다면 결국 작품에서 몰아가는 것 처럼 노라가 범인일까? 이 역시 전개에 의해 부정됩니다. 정말로 클레어의 입을 통해 그녀의 남편될 사람이 제임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묘사가 좋은 예입니다. 그녀가 메시지를 보냈다는 상황에서 아무런 묘사를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전개에 따르면 동기도 모호합니다. 10여년 전 헤어진 연인이 친구와 결혼한다고 살의를 품는다는건 말도 안되니까요.

아울러 범행 자체만으로도 허술하기 그지없습니다. 애초에 누군가 침입했다라는 것을 미리 파티 참가자들에게 노출할 필요는 없습니다. 총을 쏘기 위한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면 너무 과한 설정이에요. 게다가 참가자 중 '남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와 닿지 않아요.
또 작품 내에서는 총을 쏜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 밝혀주지는 않는데 (노라 시점에서는 플로일 것으로 묘사되지만요), 그게 누가 되었건 실패했다면? 즉 제임스에게 명중하지 못해 그가 살아 남았다면?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것도 이해불가고요. 아무리 명사수라고 해도 한 방에 사람이 죽기는 쉽지 않을텐데 말이죠.
총격 이후 제임스를 차에 태운 후의 묘사 역시 석연치 않습니다. 노라가 운전대를 잡은 것은 우연에 불과하기에 다음에 벌어진 사건들은 모두 사고에 의한 것입니다. 치밀한 계획과는 거리가 멀어요.
게다가 결정적 증인인 플로가 건재하다는 점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빠져나가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플로가 클레어를 숭배하기 때문에 그녀가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사건을 담당한 라마 경장이 플로가 증언했다고 밝히죠. 그것도 결정적 순간에요. 이래서야 범행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해요. 노라가 병원을 탈출한 후 클레어와 벌인 생명을 건 추격전 역시 쓸모없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노라가 진상을 눈치채게 되는 제임스가 보낸 메시지를 10년 만에 깨닫는다는 클라이막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늦게 깨달은 것도 문제지만 이름을 이용한 조잡한 트릭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솔직히 이렇게 허술하게 조작하느니 마지막 톰의 병문안 때의 이야기처럼 노라가 오지 않는 것이 클레어에게 더 유리했을거에요. 플로에게 범행을 뒤집어 씌우는게 더 말이 되죠. 플로가 총을 쏜 것도 사실이고, 탄알을 바꿔치는 것도 손쉬울 뿐 아니라 여신처럼 숭배하는 친구의 결혼을 참기 어려웠으리라는 동기도 그럴듯 하니까요.

그래도 계속 뭔가 사건이 터지게 만들어 흥미를 잡아끄는 전개, 뭔가 불편한 여자들만의 심리를 제대로 그려낸 묘사는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저와 같은 평범한 남자에게는 좀 지루하고 짜증스러운 묘사라는 점... 영국 출신 여성 작가 - 예를 들자면 미네트 월터스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삐딱한 여성 심리 묘사는 아직까지도 영 와 닿지 않네요. 노라를 비롯한 등장 캐릭터들 대부분 정상이 아니라는 것도 읽는 내내 불편함을 가중시켰습니다.

한마디로 단점에 비하면 장점은 미미한 작품. 여성 시점의 범죄 스릴러 유행에 편승한 그냥저냥한 결과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별점은 1.5점.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덧붙이자면, 솔직히 친구가 곧 결혼한다고 해서 독신 생활 마지막 파티를 벌이는데 뭐 이리 복잡하고 귀찮은 일들이 많은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한국에서처럼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먹는 문화라는 것은 조금 신기하긴 했습니다만.

2016/12/25

하나씨의 간단요리 1,2 - 쿠스미 마사유키 / 미즈사와 에츠코 : 별점 2.5점

하나씨의 간단요리 1 - 6점
쿠스미 마사유키 지음, 미즈사와 에츠코 그림/미우(대원씨아이)
하나씨의 간단요리 2 - 6점
쿠스미 마사유키 지음, 미즈사와 에츠코 그림/미우(대원씨아이)

<<고독한 미식가>>로 잘 알려진 쿠스미 마사유키가 원작을, 미즈사와 에츠코가 만화를 맡은 일상계 구루메 만화.

쿠스미 마사유키의 작품들을 보면, 대체로 일상계와 평범한 먹거리 들을 조합하여 친숙함으로 어필하는 작품이 많은 듯 합니다. 독신자가 이런저런 상점가 가게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사 먹는다는 <<고독한 미식가>>, 은퇴한 직장인이 혼자서 이런저런 음식을 사먹거나 집에서 간단한 요리를 해먹는다는 <<방랑의 미식가>>, 샐러리맨이 주로 혼자 이자카야를 돌아다니며 술을 먹는 <<황야의 미식가>> 모두 그러합니다. 이 작품도 남편의 단신 부임 탓에 가정 주부지만 주로 혼자 생활하고 식사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해요.

하지만 주로 어느정도 나이가 있는 중년 남성이 주인공인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주인공이 30세 젊은 여성이며, 말버릇이나 호들갑스러운 행동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다른 작품들이 주로 아저씨 대상으로 일상계스러운 소소한 매력으로 승부한다면 이 작품은 그에 더해 주인공 하나코씨의 귀여운 매력과 적절한 개그, 유머가 더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 장면만 보면 '개그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니까요.
또 하나씨 주변 인물들이 비교적 적극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 역시 차이점입니다. 친구 미즈키를 비롯해서 하나씨의 친정 부모님,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서점 사장님, 이웃집 동거인 죤 & 요코 등등 모든 주변 인물들이 나름의 존재감을 가지고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거든요. 덕분에 이야기도 풍성해질 뿐 아니라 보다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아울러 또다른 주역인 음식들 역시 다른 작품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밖에서 먹는 한끼 식사나 술안주 등이 주로 등장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정말 혼자 사는 여성이 먹음직한 음식들이 소개되거든요. 게다가 집에서 해먹는 과정이 대충이라는 것은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단팥죽에 떡을 구태여 넣어 먹는다던가, 지하철에서 우연히 들은 명란 덮밥 레시피에 가다랑어포를 추가한다던가하는 약간의 어레인지는 확실히 주부스럽더군요. "포만감과 만족감이 죄책감과 패배감으로 돌변해 가는 오후..."라는 대사와 같이 다이어트에 신경쓰는 장면과 같은 디테일도 좋았고요. 그 외의 몇몇 밖에서 사먹는 음식들 역시 주부, 30대 젊은 여성스러움이 물씬 묻어납니다.

그러나 작화 면에서는 좀 아쉽습니다. 그림으로는 세계 챔피언급인 다니구치 지로, 음식 만화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츠지야마 시게루에 비교하면 확실히 묘사력이 부족하거든요. 동글동글 귀여운 그림체는 하나씨 표현에 어울리나 또다른 주인공인 '음식'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대체로 사먹거나 정말 간단한 인스턴트 음식 중심이기는 하지만 딱히 먹고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음식이 없다는 것은 작화탓도 큽니다. 맛있는걸 먹고 행복해하는 하나씨 표정만으로는 많이 부족해요. 이게 얼굴만 잡히는 포르노도 아니고...
또 어쩔 수는 없었겠지만 하나씨의 수다에 대한 번역이 조금 부실해 보이는 것도 조금 눈에 거슬렸어요. 뭔가 라임을 활용한 아재개그 스타일 말장난이 중심인데 적절히 번역하는 것은 어려웠겠지만 조금 더 맛을 살려줄 수는 없었을까 싶거든요. 

별점은 2.5점. 요리, 음식만화지만 캐릭터의 매력과 스토리적인 재미가 결합되어 있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확실히 많은 작품입니다.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도 분명하고요. 요리만화를 좋아하신다면 한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덧붙이자면, 동글동글 귀여운 그림체에 이런저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드라마, 거기에 더해진 여러가지 음식 이야기. 이러한 주요 키워드만 놓고 보면 <<아빠는 요리사>>와 똑같군요. 본인의 히트작 <<고독한 미식가>>를 벤치마킹한 <<방랑의 미식가>>나 <<황야의 미식가>> - 이쪽은 <<술한잔 인생한입>>도 많이 참조한 것 같습니다만 - 도 그러한데 인기 히트작을 참조하여 새로운 파생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도 결과물만 좋다면야 뭐 나쁘지야 않죠.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니까요. 허나 <<아빠는 요리사>>가 수십년간 이어온 장기 연재작으로 가족 구성, 분위기가 오래전 분위기인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남편의 단신 부임으로 강제 독신 신세가 된 하나씨를 비롯, 옆집에서 동거하는 존과 요코, 결혼도 하지 않고 애인과 아기부터 가지게 된 친구 미스즈 등 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확실히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초콜릿의 비밀 : 자크 제냉의 아틀리에로 떠나는 미식 여행 - 프랭키 알라르콩 / 강현정 : 별점 3점

초콜릿의 비밀 - 6점
프랭키 알라르콩 지음, 강현정 옮김/시트롱마카롱


만화가 프랭키 알라르콩이 초콜릿에 대한 만화를 그리기 위해 프랑스의 유명 셰프 자크 제냉의 아틀리에를 찾아간 후 여러가지를 배우고 경험한다는 내용의 작품.

부제대로 자크 제냉의 비중이 굉장히 큽니다. 원래 셰프 출신이지만 딸 아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생을 맞게 해 주기 위해 초콜릿의 세계로 뛰어들었다고 하는군요.
독특했던 것은 장인이지만 겸손하다는 것입니다. 초콜릿에 대해서는 장인급의 충분한 솜씨와 자부심을 갖춘 것은 확실합니다. 단순한 것에서 최고를 추구한다는 사고방식부터 범상치 않죠. "딱 보면 즉각적으로 느낌이 와야 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스스로를 우월하다 내세우는 장면은 단 한장면도 없습니다. 대화와 사교 면에서 여러모로 겸손하고 매력적인 인물이에요. 이러한 점은 스스로를 쇼콜라티에라고 부르지 않고 초콜릿 가공사로 부르는 첫 장면부터 대표적으로 드러나는데, 일본 요리 만화에 흔히 나오는 스스로의 실력만을 믿는 괴짜 장인들 - 우미하라 (가이바라), 세리자와 등등등 - 과는 정 반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만화와 현실의 차이인지, 일본과 프랑스의 문화 차이인지도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재미있네요.

아울러 등장하는 수많은 레시피와 초콜릿, 케이크들도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이 중 집에서 해봄직한 레시피 중의 하나는 핫 초콜릿입니다. 잘게 자른 초콜릿 300g (카카오 64%?)에 우유 1리터. 우유를 끓이고 잘게 자른 초콜릿을 넣은 후 거품기로 계속 저어 녹인 후,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불에서 내려 뜨거운 상태로 서빙. 이건 꼭 딸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번 주말에 해 봐야 겠어요.

또 레시피, 인터뷰가 전부도 아닙니다. 초콜릿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과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거든요. 카카오 열매의 경우에는 자크 제냉의 친구인 쇼콜라티에 스테판 보나와 함께 페루까지 날아가 어떻게 재배하고 어떻게 수확하며, 어떻게 제조, 유통하는지 알려줄 정도에요. 몇몇 초콜릿은 프랭키가 직접 실습생으로 만들어 본 경험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요.

문제는 120여페이지라는 분량으로는 이 모든 것을 다루기는 조금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14,000원이라는 가격도 분량에 비하면 과한 편이고요.
또 일반적인 초콜릿보다는 특정 아이템 (발렌타인 초콜릿 등)에 소재가 집중되어 있다는 것도 좀 아쉬웠습니다. 이것은 자크 제냉 아틀리에의 1년 시즌을 바탕으로 그려진 만큼 어쩔 수 없는 점이었겠지만요.

그래도 풀 컬러에 작화도 빼어난 만큼,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선물일 것입니다. 아니, 실제로 먹을 수 없으니 최악이려나요?

2016/12/23

화가 - 미쓰다 신조 / 현정수 : 별점 2.5점

화가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호러영화 같은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 레나. 코타로가 곧바로 이사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하자.

곧 중학생이되는 코타로는 할머니와 함께 치바에서 머나먼 도쿄 근방의 무사시 나고이케라는 낯선 지역으로 이사온다. 코타로의 부모님이 갑작스러운 교통 사고로 사망한 탓.
코타로는 새 집에서 왠지모를 기시감을 느끼고, 이후 집 안에서 온갖 이형의 존재와 사투를 벌이게 된다. 동네에서 사귄 새 친구 레나와 함께 이유를 밝혀내기 위한 조사에 착수한 코타로는 오래전 신문을 통해 그 집에서 10년 전 일가족이 이웃집 정신병자에게 살해되었다는 것, 그리고 유일한 생존자는 바로 코타로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미쓰다 신조의 '집' 시리즈. '화가 (禍家)'는 한국말로 하자면 '재앙의 집' 이겠죠? '집' 시리즈 답게 '집'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자 장치로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새롭지는 않습니다. 설정부터가 진부하기 때문입니다. 몰락한 막장 명문가 (수많은 작품들...), 잔인하게 일가족이 살해당한 사건 (수많은 작품들...), 이형의 존재가 지나가는 길이나 궤도에 있으면 죽거나 해를 입는다 (<<귀담백경>>의 <<방울소리>> 라던가 <<백귀야행>> 등등등), 죽음의 연쇄는 막을 수 없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데스티네이션>> 등등등) 등 모두 어디선가 보아왔던 설정들이죠.
뻔한 설정이라도 미쓰다 신조라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은데 딱히 그렇지도 않습니다. 작가의 장기인 일본적인 요괴나 주술, 심령 묘사가 두드러지지 않는 탓입니다.

악역인 시미에의 작전도 허술합니다. 코타로의 양부모를 죽인 것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레나와 친해진 후, 코타로와도 격의없이 지내게 된다던가 하는 과정은 그렇게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코타로와 할머니가 이 곳으로 이사오리라 생각한 것 부터가 말이 안되죠. 어떤 어머니가 아들 가족이 살해당한 집에 손자를 데리고 다시 이사를 간답니까?

다행히 장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뻔하지만, 뻔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쓰였다는 뜻이고 많이 쓰였다면 그건 그만큼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죠. 이에 더해 극단적으로 말하면 초등학생의 모험물이라 할 수 있는 작품 특징 덕분에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읽히는 편입니다. 특히 코타로 소년 캐릭터가 괜찮습니다. 급작스럽게 닥치는 여러 사건과 사고 속에서 의지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며 자신의 힘으로 어려움을 돌파해나가려는 전형적인 '점프식' 주인공인데 작품과 잘 어울렸어요. 아울러 주인공이 어리고 모험물적인 전개를 갖춰 작가 특유의 장황하면서 복잡한 묘사가 덜하다는 것도 장점이라 할 수 있겠죠.

추리적으로도 괜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시미에가 사실 가미츠케 가의 딸인 시메이로 오빠의 유지를 받들어 범행을 끝내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몇몇 디테일로 드러내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예를 들면 코로가 화요일, 목요일 낮에 짖은 이유를 가정교사로 레나 오빠의 공부를 봐 주기 위해 오는 시미에의 동선과 일치시키는 식이죠. 물론 개가 짖는다고 지나가는 사람이 다 살인범은 아닐테니 말도 안되는 설정이기는 합니다만.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이러한 디테일들을 통해 시미에의 존재를 눈치챈 두번의 기지로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도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개 코로까지야 그렇다 쳐도 레나에게서 받은 부적이 휴대전화였다는 반전은 정말이지 멋졌습니다.
또 정신병자 살인마 카미츠케 군지의 범행은 사당에서 뛰쳐나온 이형 존재의 동선에 위치한 자신의 집 대신 맞은편 무나카타가를 이용하려는 것이었다는 진상도 나쁘지 않습니다. 정신병자나 할 법한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긴 하나 이에 이르는 과정을 나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충분한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더라도 영적인 무언가에 대한 묘사는 충분히 섬찟합니다. 형태를 그리지 않고 분위기와 소리만으로 공포심을 자아내는 묘사력은 여전히 발군이에요. 이들은 살인범 카미츠케 군지를 제외하면 모두 살해당한 코우타의 가족으로 무언가를 코우타에게 전하기 위해 딱 한번만 나타난 것이라는 반전도 나쁘지 않고요.
허나 반전이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니고, 이 반전 탓에 이후 이들에 대한 공포가 사라져버린다는 점은 좀 아쉬웠습니다. 이러한 점은 사당에 관련된 그럴싸한 설정과 묘사 - 여기에 있는 건 구제할 수 없는 절망, 불합리할 정도의 우월감, 끝을 모를 악의, 압도적인 광기, 소름돋는 증오, 너무나도 제멋대로의 살의... -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굉장히 무서운 무언가처럼 묘사하다가 별다른 설명없이 흐지부지 마무리되어 버리거든요. 사실 이해가 잘 안되는게, 군지가 사당을 박살낸 후 무언가 탈출(?) 했다면 사당은 그냥 빈 껍데기가 아닌가 싶은데 이러한 부분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건 문제라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레나와 코타로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이 (초중반부에 등장했던 정체모를 꼬마 아이로 보이는) 가미츠케 가문의 단 하나남은 소년의 등장으로 마무리 되는 것도 좋았어요. (그런데 만약 소설대로라면 결국 코타로는 죽게될 것 같은데 레나와 곧 태어날 아이까지 그렇게 될지... 좀 많이 걱정이 되는군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춘 작품인데 미쓰다 신조 입문으로는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2016/12/18

해가 저문 이후 - 스티븐 킹 / 조영학 : 별점 2.5점

해가 저문 이후 - 6점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최신 단편집<<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이후 6년만이라고 하네요. 모두 13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록 작품 수 부터가 남다르군요.

작품들은 확실히 최신 작품스럽습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는 확실히 궤를 달리하고 있거든요. 말초적인 부분을 건드리는 작품은 거의 없어요. 심리나 특정 상황에 대한 묘사에 기대는 작품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특정 몇몇 작품은 아예 공포라는 감정보다는 그냥 인간에 대한 묘사, 환상에 대한 묘사로만 이루어져 있을 정도에요.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이 기묘한 '강박'을 다루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 해요. '강박'을 주제로 한 앤솔로지 수록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이전부터도 느낀 것이지만 "음악"을 전면에 드러내어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작품이 많다는 것도 눈에 띈 점입니다. 대표적인 것은 <<N.>에서 환자 N이 괴물을 보고 달아나면서 차에서 라디오를 켰을 때 록 음악이 터져나오는 것에 대한 묘사입니다. "더 후"의 노래가 끝나고 흘러나온 것은 "도어스"의 <<세상의 이면으로 건너오라>>였다는데 참으로 절묘해요. 오싹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직접적인 공포가 드러난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변화가 좋게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네요. 작가의 연륜이 쌓이고, 내면의 성찰이 깊어졌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는 작품들이지만 이런 류의 작품을 스티븐 킹이 쓸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대표적인 예는 사후세계를 환상적으로 묘사한 <<윌라>>라던가, 홀로 헬스 자전거 운동을 하다가 강박적인 상황에 빠져든다는 <<헬스 자전거>>, 9.11 테러 때 회사를 땡땡이 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스콧에게 죽은 동료들을 상징하는 물건이 갑자기 찾아온다는 <<그들이 남긴 것들>> 등 입니다. 사후세계 등 초자연 현상을 다루고 있지만 단지 소재일 뿐 내용과 전개는 인간 관계나 강박적인 심리 묘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관계가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고, 딱히 반전도 존재하지 않고, 기묘한 현상에 대한 설명도 없고, 심지어 무섭지도 않기 때문에 여러모로 지루했습니다. 스티븐 킹만의 문체와 묘사로 환상 세계를 그린 묘사는 나쁘지 않지만 새롭다기보다는 변주에 불과해 보이기도 하고요.
이는 남편이 꾼 꿈을 통해 공포가 실체화 된다는 <<하비의 꿈>>과 비행기 사고로 죽은 남편의 전화를 받는다는 <<뉴욕 타임스 특별 구독 이벤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핵폭탄이 투하된 순간을 그린 초단편 <<졸업식 오후>> 역시나 지극히 익숙한 소재임에는 분명하고요.

다행히 과연 스티븐 킹이구나! 싶은 작품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전체 별점은 2.5점. 아래 소개해드릴 4편이 바로 그것입니다. 짤막하게 소개해 드리며 리뷰를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길.

<<진저브래드 걸>>
아이가 죽은 후 강박적인 달리기를 시작한 에이미, 그러나 그녀는 우연히 이웃에 사는 연쇄 살인마 피커링의 살인 현장을 목격한 후 그에게 쫓기게 되는데...

피커링에게 사로잡힌 에이미가 살아남기 위해 탈출하는 과정의 서스펜스가 어마무시한 작품. 묘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아이가 죽은 후 슬픔을 잊기 위해 에이미가 달리기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과정을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이후 탈출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해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최후의 순간에 피커링이 수영을 못 한다는 설정을 갑자기 드러낸 것은 약간 반칙 같고, 어떻게보면 조금 뻔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강박증과 추격전이라는 두 개의 테마 만큼은 잘 그려낸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N.>>
저명한 정신과 의사 조니 본세인트가 자살하고, 그가 남긴 원고는 여동생에 의해 오랜 친구 찰리 킨에게 보내진다.
원고는 1년 전, 조니에게 N.이라는 강박증 환자가 찾아온 날부터 시작된다. N.은 충동에 의해 찾아간 한 장소에서 태고의 무시무시한 존재의 봉인이 풀리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막기 위한 사명을 갖게 되나 이로 인해 엄청난 강박증을 갖게 된 환자였다...


대부분 1인칭으로 쓰여진 의사의 원고와 서간문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작품. 고대로부터 유래된 절대자, 봉인, 심연, 심지어 "크쑨"이라는 이름까지는 러브크래프트를 연상케합니다.

그러나 환자 N.이 이야기하는 그의 과거, 즉 그가 애커먼 들판에서 '크쑨'이 처음 나오려는 것을 발견한 후 그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의 설득력이 실로 대단할 뿐더러, 이 과정을 모든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배열하려고 하는 강박증과 잘 연결시켰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또 유일한 증거는 N.의 증언밖에 없지만 그것을 단계별로 정신과 의사가 기록했다는 식으로 설득력을 보장함은 물론, 일종의 주간 드라마 같은 방식 (환자가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므로) 독자의 흥미를 지속시키는 전개 방식도 아주 빼어났어요.
이에 설득당한 조니 본세인트, 그리고 그의 여동생 셰리아가 자살하고 이 사명을 찰리 킨이 받게 된다는 <<링>> 스타일의 저주의 연쇄 역시 볼만했습니다.

그러나 N.이 이야기한대로 이 사명을 가진 자가 그냥 죽어버리면 '크쑨'의 봉인이 풀릴리 없다는 법칙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던가, 여러명이 "크쑨"을 바라보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묘사가 없는 등 디테일이 조금 아쉽습니다. 혼자서 그렇게 두려움을 느낀다면 누군가와 같이 가면 되잖아요?
그리고 <<링>> 수준 만큼은 아니더라도 뭔가 연결고리, 법칙을 부여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좀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면 N.이 조니 본세인트를 찾아온 이유와 조니의 동생으로 이어지는 관계에 이름의 이니셜이 이어진다던가 하는 것 처럼 뭔가 법칙을 넣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도 재미와 공포에 있어 압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진전을 이어받은, 거장이 달리 거장이 아님을 보여주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벙어리>>
영업사원 모네트는 성당에서 고해 성사를 시작한다. 고해 성사의 내용은 그가 영업 출장 중 한 벙어리 히치하이커를 태우고, 그에게 아내에게 얽힌 복잡한 가정사를 털어 놓는 것에서 시작했다. 아내 바브는 직장에서 거액을 횡령하고 '카우보이 밥'이라고 부르는 애인과 흥청망청 쓴 후 도망가 버렸다...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 벙어리 스탠리 두세트

고해성사를 하면서 아내 바브와 그에 얽힌 범죄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모네트의 입담이 볼거리로 그게 누구건 선의를 베풀면 보답을 받는다는 전래 동화같은 이야기입니다만... 보답이 불륜과 범죄를 저지른 아내와 정부를 때려 죽이는 것이라니! 역시 스티븐 킹답습니다. 실제 뉴스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창작 비화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결말이 좀 뻔하긴 하지만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주 비좁은 것>>
이웃 그룬왈드와 땅, 그리고 애견의 죽음에 얽힌 송사에 휘말려 있는 주식 거래인 커티스는 어느날 그룬왈드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모든 요구를 수용할테니 이 모든 것을 끝내자는 제안. 커티스는 홀로 그룬왈드를 만나러 폐허처럼 버려진 공사 현장으로 찾아갔다가 권총으로 협박당한 후 공사 현장 화장실에 갖히게 되는데...

묘사력으로는 수록작 중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작품. 그야말로 거장의 글 솜씨가 제대로 발휘되었습니다. 바로 직전에 읽었던 <<별도 없는 한밤에>>의 첫번째 작품 <<1922>>가 떠오를 정도로 읽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네요. <<1922>>가 생지옥, 그리고 쥐에 대한 묘사로 독자를 미치게 만든다면 이 작품은 "화장실"과 "오물"에 대한 묘사가 정말 생생합니다. 정말이지 읽는게 힘들 정도였어요.

또 화장실에서 커티스가 죽게되더라도 일종의 사고사로 보이게 된다는 정황 묘사도 그럴싸 할 뿐더러, 그룬왈드가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가 도망가고 심지어 암까지 걸린 것을 커티스 탓으로 돌린다는 범행 동기 역시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나 범행 방법은 완전 범죄를 그린 범죄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잘 짜여져 있다 생각되네요.
아울러 이를 탈출하기 위한 커티스의 노력도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커티스가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 애견 벳시의 인식표 덕분이라는 소소한 디테일도 마음에 든 부분입니다.

딱 한가지, 커티스가 탈출 이후 보여준 행동과 그룬왈드의 자살은 좀 석연치가 않더군요. 특히 그룬왈드가 어차피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커티스를 다시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닐텐데 왜 포기했는지는 정말이지 모르겠어요. 저 같으면 자살하기 전에 커티스에게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복수했을겁니다!

여튼 별점은 3.5점. 두번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악취미이긴 한데 재미만큼은 명불허전입니다.

2016/12/17

피너츠 완전판 4 : 1957~1958 - 찰스 M. 슐츠 / 신소희 : 별점 3점

피너츠 완전판 4 : 1957~1958 - 6점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북스토리


최근 출간되고 있는 피너츠 완전판 4번째 권.

어느정도 틀이 잡힌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특히 부각되는 것은 불쌍한 우리 친구 찰리 브라운입니다. 연날리기에 항상 실패하는 찰리 브라운, 루시가 놓은 공을 차는 것을 항상 실패하는 찰리 브라운, 중요한 야구 게임에서 결정적 실수를 하는 찰리 브라운 등등 익숙한 설정이 대거 등장하거든요. 대표적인 것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내가 가장 괴로운게 뭔지 알아? 날 감독으로서 믿어준 너희 선수들을 실망시켰다고 느껴져서..."
"이런, 찰리 브라운, 그래서 괴로운 거였다면 신경 쓰지 마, 잊어버려. 우린 한 번도 널 믿었던 적이 없으니까!"

"저 많은 별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하찮게 느껴지지 않아, 찰리 브라운?"
"아니, 난 원래 하찮은 사람이니까 상관없어!"


가끔 "사람들이 왜 날 안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어떻게 완벽한 사람을 안 좋아할 수 있는 거지?" 라는 뜬금 대사를 하거나, 슈뢰더와 라이너스에게 조언을 해 준다던가, 포기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의외의 모습도 눈에 띄이긴 합니다만... 전반적인 분위기를 헤칠 (?) 정도는 아닙니다.

다른 캐릭터들 역시 익숙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라이너스는 천재성이 부각되는 일부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주로 담요 관련 개그, 루시는 찰리 브라운을 냉혹하게 지적질하거나 떠벌이는 개그, 슈뢰더는 베토벤 관련 개그 등 정형화된 개그를 선보이기 때문이에요.

이렇듯 캐릭터와 설정들은 굉장히 뻔하고 익숙한데도, 그리고 발표 시점에서 반세기 이상이 훌쩍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미나다는 것이 정말 대단합니다. 라이너스가 2주 동안 담요를 못 가지게 되었을 때의 상황이 좋은 예입니다. 라이너스의 신경 불안 증세와 마지막 발작(?)은 정말이지 기가 막혔어요.

그 외에도 완성 단계에 이르른 작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 연재가 된 성실함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진보 대 보수"의 싸움같은 시사적인 요소가 가끔 보이는 것도 신기했던 점이고요.

여튼 별점은 3점. 팬이라면 당연히 소장해야 하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5권이 얼마전에 나왔던데 바로 구입해봐야 겠네요.

2016/12/16

용의 귀여운 일곱 아이 - 구이 료코 (쿠이 료코) / 김완 : 별점 3점

용의 귀여운 일곱 아이 : 쿠이 료코 작품집 - 8점
구이 료코 지음, 김완 옮김/㈜소미미디어

<<용의 학교는 산 위에>> 만큼의 긴 제목을 지닌 쿠이 료코의 단편집. 제목 그대로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용의 학교는 산 위에>>는 영 아니었지만 그놈의 팬심으로 구입했는데 다행히도 아주 괜찮네요. 발상도 기발하며, 모두 길이에 걸맞는 완결성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서랍 속 테라리움>>과 비교하자면 의외성은 덜하지만 완성도가 더 높은 작품이 많네요. 흡사 쇼트쇼트와 일반 단편의 차이점과 마찬가지랄까요?

작품별 편차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쿠이 료쿄 팬들께는 적극 추천드립니다.

<<용의 소탑>>
바다나라와 산나라의 전쟁을 가로막는 국경 지대의 용. 용의 새끼가 부화하여 둥지를 떠날 때 까지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에 머문다.
양국은 교류가 끊겨 기본적인 물자 보급에도 문제가 생기고, 마침 산나라에 포로로 잡혔던 청년 '사난'은 소금을 가져다 줄 것을 약조하고 풀려난다.


전형적인 중세풍 세계관에 ''이 등장하는 식으로 약간의 판타지가 결합된 시대물로, 막강하면서도 기묘한 존재 탓으로 적대하던 사람들이 하나가 된다는 (외계인이 쳐들어 오면 힘을 합치듯이) 왕도스러운 내용입니다.

그러나 쿠이 료코스러운 변주가 하나 들어가서 작품이 독특한 매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역'입니다. 전형적인 이야기에 딱 한가지의 설정 추가로 독특함을 만들어 낸다는 점은 <<던젼밥>>과 똑같네요. 결국 사난과 유르카가 하나가 된다는 해피엔딩도 마음에 들었고요.

딱 한가지 이해가 안되는 것은 등장하는 크리쳐는 '용'이라기 보다는 그리폰같았다는 건데... 그래도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인어금렵구>>
누가 봐도 인어인 기묘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무대로 한 작품.

하지만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습니다. 인어가 멀리 떨어진 학교로 가고 싶어하고, 주인공은 그것을 도와준다. 그리고 그것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라는, 한여름날 짧은 만남 이후 추억과 여운을 남기고 각자의 길을 간다는 전개는 전형적인 "보이 미트 어 걸" 그대로고요. 이 와중에 약간의 성장기 느낌을 전해주는 것 역시 동일합니다.

그러나 <<용의 소탑>>이나 <<던젼밥>>처럼 '인어' 라는 설정이 추가되어 독특한 매력을 풍깁니다. 이 설정에 더해 비교적 짧은 분량안에서 '서로 다르기에 마음을 전하기 힘들다'는 주제를 설득력 넘치게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깔끔하면서도 흑백톤 위주의 작화 역시 이야기에 꼭 맞아 떨어져서 마음에 들었고요.

한마디로 익숙한 주제에 약간의 변주를 더해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 최고치로 발휘된 작품. 별점은 4점입니다.

<<나의 신>>
중학교 입시를 앞둔 소녀가 갈 곳을 잃은 물고기 신을 어항에서 키운다는 이야기로 신은 별다른 능력이 없고, 소녀는 입시에서 떨어진다는 현실적이면서 일상적인 결말이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이야기만 놓고 보면 딱히 대단할 것은 없는 소품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늑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늑대인간이 주인공인 드라마. 남녀관계가 아니라 모자관계를 그린다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늑대인간이 실제 인간 세계에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디테일한 설정도 인상적이었어요.

단 지나치게 일상계스러운 내용으로 주인공 케이타의 약간은 철없는 행동이 사건, 드라마의 전부라는 것은 조금 시시하더군요. 그만큼 설득력은 높았지만 이만큼의 디테일한 설정을 그려내었다면 조금 더 극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는게 좋았을 것 같아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무일푼 뱌쿠로쿠>>
천재화가 타카가와 뱌쿠로쿠가 무일푼이 된 후 자신이 그렸던 사자, 호랑이, 용 등을 실체화시켜 큰 돈을 벌고자 한다는 시대극 판타지.

일본화를 모티브로 한 작화가 아주 빼어납니다. 붓을 주로 사용한 듯한 느낌도 발군이고 시원시원한 구도 역시 돋보였거든요. 뱌쿠로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위작의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나중에 아들이 그린 그림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며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한마디로 쿠이 료코의 넓은 스펙트럼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 별점은 3점입니다.

<<제 자식이 어여쁘다고 용은 운다>>
왕자 준이 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용의 비늘을 얻으려한다. 길 안내를 맡은 것은 마을에서 이방인이었던 준.
용을 잡으러 가는 험한 길에서 병사들은 계속 낙오되고, 결국 부상당한 왕자만 남았을 때 준은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왕이 자신의 아들을 죽였기에 그것을 복수하려 한다는 것...


뻔한 복수극. 의외성도 없고 이야기도 좀 막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용의 알과 자식을 동일시하는 전개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수록작 중에서는 제일 처집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누타니 일족>>
초능력 가문 이누타니 일족의 집에 소년 탐정 도다이치 코우스케가 찾아와 하룻밤 묶어가게 된다. 그러나 실수로 일족의 초능력이 들통날 위기에 처해 그것을 숨기려 하나, 오히려 도다이치 코우스케는 연쇄 살인극으로 의심하여 사건은 겉잡을 수 없게 되는데...

제목과 설정부터 여러 작품을 패러디하고 있는 작품. 다양한 초능력을 지닌 가족들의 행동을 '살해당했다'고 오해해 진상을 추리하려는 탐정의 행동이 이야기의 핵심인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나 싶을 정도로 기발하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오렌지로드>>에서 초능력을 감추려는 카스가 패밀리의 노력이 겹쳐져 왠지 모를 향수가 느껴진건 덤이고요.

또 보통 소년 탐정이 사건에 뛰어드는 이유 - 자기와 관계도 없고 부탁한 사람도 없는데 왜 이렇게 애를쓰지>- 에 대해 '자기 능력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힘을 써야할 때 쓴다'라는 슈퍼 히어로스러운 마인드로 알려주는 점도 괜찮았어요. 하기사 명탐정이 슈퍼 히어로와 다를건 별로 없으니까... 아울러 강대한 힘을 과신하다가 화를 부른 상황에서 가장 쓸모없을 줄 알았던 아리사의 '입고있는 옷을 파자마로 바꾸는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반전도 돋보였고요
"힘을 써야 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쓴다, 그러나 힘을 과신하지 말라"는 주제 역시 여러모로 생각해볼 거리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다양한 장르물에 대한 깊은 이해에 더해 유쾌한 분위기, 적절한 반전, 심오한 주제까지 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명작입니다. 단점이라면 너무 짧다는 것과 결말이 약간 시시했다는 것 정도? 그래도 별점은 4점입니다. 장르소설 애호가시라면 이 작품만큼은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2016/12/13

나 홀로 여행 1,2 - 타카기 나오코 / 윤지은 : 별점 2점

나홀로 여행 1.2 세트 - 전2권 - 4점
다카기 나오코 글.그림, 윤지은 옮김/살림


연말이라 모임이 많아서 책 읽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요즈음입니다. 덕분에 만화책을 많이 읽게 되네요.
이 책은 <<배빵빵 일본 식탐여행>>의 저자 다카기 나오코가 혼자 여행을 다닌 이야기를 그려낸 여행 에세이 만화입니다. 1~2권을 거쳐 북으로는 삿뽀로와 하코다테, 남으로는 오키나와와 하카다까지를, 지하철에서 장거리 버스와 배, 비행기, 심지어 침대특급 열차까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소와 방법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내용은 그야말로 평범한 여행기! 제 친구나 가족이 여행 다녀왔다고 이야기 해 주는 것 같은 평범함이 매력적입니다. 유명한 관광지라도 명승지 순례보다는 먹부림이나 온천 목욕 등 자신만의 경험담 소개에 주력하고 있는 덕분이죠.

소개된 이야기 중 개인적으로는 일본 최장거리를 달린다는 심야버스 '하카타호'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신주쿠에서 하카타까지 무려 14시간 20분을 달리는 버스로 비용은 편도 15,000엔! 시간과 비용의 스케일이 심히 남다른데 심지어 중간에 교통 사고 등으로 무려 19시간이나 걸려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내용에서 황당함의 정점을 찍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국민성이 느껴지기도 하네요. 우리나라였다면 아마 폭동과 거센 항의가 있었을 것 같거든요. 저 역시 예전에 도쿄 디즈니랜드에 갔었을 때 비슷한 문화 충격을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뭔가 놀이기구를 타려고 거의 1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급작스러운 문제가 생겨 못 타게 되어 버렸죠. 그런데 줄을 한시간 넘게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뿔뿔이 흩어지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나라였다면 그냥 넘어가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또 목적지였던 하카타 역시 아주 가 보고 싶게끔 소개되고 있습니다. 규슈 국립 박물관은 정말이지 꼭 한번 가고 싶네요. 유명한 라면을 비롯한 다른 먹거리들도 관심이 많이 가고요. 물론 도쿄에서 14시간이나 버스를 탈 생각은 없습니다만...

하지만 침대특급열차 북두성 (호쿠토세이)호는 이야기가 다르죠. <<에키벤>>에도 등장했던 기차인데 정말 한번 타보고 싶더라고요. 홋카이도, 하코다테 역시 평상시 가보고 싶었던 장소이기도 하니까요. 맛있는 해산물은 물론 <<백성귀족>>의 화려한 농산물까지 모두 다 먹어보고 싶거든요.
단, 비용은 문제입니다. 종점 삿포로까지 27,170엔이나 된다고 소개되는데 확실히 부담이에요. 식사도 별도 비용이니 적어도 3만엔은 넘겠죠? 서울 (인천)에서 삿포로까지 직항 왕복으로 국내 항공사편으로더 50만원이 안되는 것으로 조사되는 만큼... 제 평생 북두성 호를 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누가 선물이라도 해 주면 모를까.

그러나 <<배빵빵 일본 식탐여행>>보다는 재미가 덜했습니다. 독신 여성이 혼자하는 여행에 대해 제가 공감할 부분이 있을리가 없으니까요. 다카기 나오코는 혼자서는 밥집도 잘 못 들어갈 정도로 소심한 독신 여성으로 저자와 코드가 맞는다면 즐길거리가 많았겠지만 저에게는 무리였습니다.
또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 공감할만한 주제가 많지 않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한국인이 구태여 일본까지 가서 템플 스테이를 하거나 단식 체험을 할 이유는 없죠. 마찬가지 이유로 직항편이나 다른 교통 수단이 있는데 구태여 도쿄에서 장거리 버스나 침대 열차를 탈리도 없을테고요.
차라리 먹부림 쪽을 더 강조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배빵빵 일본 식탐여행>>과 주제가 겹치니 저에게는 여러모로 애매했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2점. 이런 류의 작품을 좋아하신다면 꽤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으나 40대 남자 감성으로 소화하기에는 애매해서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일본을 또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가더라도 외진 곳을 갈리야 없겠지만 그나마 가마쿠라가 여러모로 저에게 현실적인 여행지인 듯 합니다. 가마쿠라의 계란말이 가게 '오자와'는 가게 되면 꼭 들러봐야겠네요.

2016/12/11

인류사를 가로지른 스마트한 발명들 50 - 알프리트 슈미츠 / 송소민 : 별점 2점

인류사를 가로지른 스마트한 발명들 50 - 4점
알프리트 슈미츠 지음, 송소민 옮김/서해문집

제목 그대로 저자가 선별한, 인류사에서 중요한 50개의 발명이 소개되고 있는 과학사 - 미시사 책.

이런 류의 특정 발명이나 아이템들을 소개하는 책은 그동안 몇번 읽어보았는데, 역시나 아주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몇몇 부분은 나쁘지 않았어요.
첫번째로는 현재의 시점으로 앞으로의 방향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백열등이 LED로 바뀌고 있고, 자동차가 전기 자동차로 바뀌는 식입니다. 대체 에너지를 중요 발명으로 언급하는 등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내용과 항목도 눈에 뜨이고요.

또 새롭거나 독특한 시각, 내용의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그 중 첫번째는 기계 베틀 항목에서 기계베틀, 즉 직조기가 발명된 후 기계 보조원으로 전락한 직조공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름 전문직이었으나 하루 아침에 쓸모없는 단순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자 1844년 폭동을 일으켰고. 결국 11명이 총살되고 24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것인데 현재의 AI의 발전 방향을 보면 이런 일이 조만간 여러 산업분야에서 벌어질 것으로 보여서 남일 같지가 않더군요. 제가 봐도 앞으로 10년 내 필요없어질 기술이 한두개가 아니니까요. 대표적인 것은 다들 아시다시피 우선은 운전일테고, 이후 여러 분야로 확산될텐데 저부터도 걱정이네요.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여튼, 두번째는 섭씨와 화씨의 어원입니다. 섭씨는 온도 측정 눈금을 고한한 '셀시우스'의 이름을 딴 것이고 화씨는 '파렌하이트'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데 저는 처음 알았네요. '셀시우시'가 중국 발음으로 '섭이사'가 되었고 그래서 '섭씨'가 되었다는데 지금은 많이 쓰이지 않지만 '불란서', '화란'과 비슷한 방식이죠? 외래어의 유입과 적용은 참으로 재미난게 많은 것 같습니다.
세번째는 컨베이어 벨트 기술 항목에서 소개된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라는 인물 소개입니다. 이력을 보니 인간 공학의 시조와 같은 사람으로 이른바 '테일러리즘'을 만든 장본인인데 아직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죄송스럽기만 할 따름입니다. 제가 UX를 업으로 한지 10년이 훨씬 넘어가는데 공부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 반성이 되네요. '예전에는 인간이 첫 번째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시스템이 첫 번째 위치에 있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을 보면 정말로 이 바닥의 선구자적인 인물임에는 분명해 보이는데 전공 분야 공부도 빼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좋았던 부분은 이 정도에 불과합니다. 전체적인 단점을 상쇄하기에는 아쉬움이 더욱 많아요. 가장 큰 단점은 앞서 말씀드렸듯 뻔하다는 것에 더해 깊이 역시 부족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류의 책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몇 페이지 안에서 해당 발명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으로, 몇 페이지 분량치고는 잘 요약하고 있기는 하나 아무래도 해당 주제에 대한 시작점 정도에 불과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소개되는 주제별로 레벨이 너무 다르다는 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은 점입니다. 어떤 것은 특정 발명품 한가지만을 다루는데 - '안경', '나침반', '지퍼', '백열등', '자동차' 등등 - 어떤 것은 그 분야 전체를 아울러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 '도구', '무기', '약', '악기' 등 - 이는 앞서 말씀드린 깊이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데, 개인적으로는 발명품으로 주제를 좁히는게 그나마 적은 분량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도구'는 그 자체가 발명이기에 언급되는 것이 이상할 뿐더러 무기, 약, 악기 등과 마찬가지로 몇 페이지로 요약될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무기 관련 책은 제가 소장하고 있는 책만 시대별, 분야별로 10권 가까이 될 정도니까요. 마찬가지로 '컴퓨터' 항목 안에 반도체와 인터넷 이야기까지 우겨 넣은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인터넷은 분리했어야죠.
마지막으로 단점으로 꼽기는 좀 어렵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인류사를 가로질렀다 하기 어려운 발명도 몇개 속해있는 것은 불만입니다. 진공청소기가 우리 인류사에 그렇게 대단한 역할을 수행했을까요? 또 지퍼가 없었다면 세상이 굉장히 살기 불편해졌을까요? 이 발명으로 우리들 삶이 조금은 나아졌을지 모르겠지만 '인류사'라는 표제 하에 소개되기에는 너무 미미한 발명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유사한 다른 책들과 비교했을때 딱히 좋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추천드리기는 좀 어렵네요.
마지막으로 이 책에 소개된 50개의 항목을 레벨을 맞추어 상세하게 분류하고 재정의하여 저만의 인류사 대표 발명을 꼽아봅니다.

불, 바퀴, 말과 글, 수학과 수체계, 배와 보트, 유리, 돈, 렌즈, 나침반, 인쇄술, 천문학, 달력, 전기, 증기기관, 항공, 철도, 화약, 전신과 전화, 백열등, 자동차, 사진, 냉장기술, 합성수지, 컨베이어벨트 기술, 라디오와 텔레비젼, 페니실린, 핵에너지, 컴퓨터와 반도체, 인터넷, 피임, 인공지능, 로켓.


빠진 것은 도구, 화장실, 도자기, 기계 베틀, 온도계, 통조림, 자전거, 진공청소기, 음반과 CD, 취사 조리기, 영화와 영화관, X-레이, 지퍼, 악기, 세탁기, 레이저, 대체에너지, 위성 네비게이션입니다. 무기는 화약으로, 약은 페니실린으로, 컴퓨터는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분리하였으며 로봇은 인공지능으로 바꾸었고요. 화장실과 도자기, 온도계, 취사조리기는 추가의 여지가 있겠습니다만...

2016/12/10

스파이 vs 스파이 : 블랙(& 화이트) 작전 - 안토니오 프로히아스 / 최연석 : 별점 1.5점

스파이 vs 스파이 : 블랙(& 화이트) 작전 - 4점
안토니오 프로히아스 지음, 최연석 옮김/시공사(만화)


수십년전 모 잡지 (아마도 <<학생과 컴퓨터>>?) 에서 처음 접했던 만화가 있습니다. 흰색과 검은색, 똑같이 생기고 색깔만 다른 멸치처럼 생긴 스파이 두명이 복잡한 장치와 계획을 가지고 (주로 부비 트랩이죠) 승부를 벌인다는 내용인 <<스파이 대 스파이>>죠. 슈퍼 히어로나 유명 캐릭터물만 있는 줄 알았던 미국 만화에서 처음 접했던 파괴적인 슬랩스틱 개그물이라는 문화 충격과 함께 정교한 그림, 쉽고 재미난 이야기로 즐겁게 감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허나 이후 게임까지 등장한 인기에 비하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아 그 이유가 궁금했던 차에 정식 소개된다는 것을 알고 출간과 동시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피천득의 <<인연>> 같은 느낌이네요. 예전의 좋았던 추억은 추억대로 남겨 놓는건데... 괜히 구입해 읽은 것 같습니다.
일단 책 소개를 보면 24건을 가려 뽑았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기준으로 뽑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 느꼈던 정교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스파이 대 스파이>>의 핵심은 일종의 '골드버그 장치' 스러운 장치들을 활용한 개그인데 그런 이야기의 비중이 너무 낮습니다. <<유도탄 장난>>이나 <<잠수함 대결>>, <<출구에서 출구로>> 등등 전체에서 한 반정도나 될까요?
또 생각외로 잔인한 발상들도 눈에 거슬립니다. 원숭이와 뇌를 바꾸어 골탕먹인다는 이야기라던가, 피라냐를 먹인다는 식의 이야기가 그러한데 재미있지도 않고 기분만 불쾌해질 뿐이었어요.

게다가 어렸을 때에 보았던 버젼은 잡지 판형으로 한페이지에 한 에피소드가 들어가는 식이라 화면이 축소된 덕에 작은 컷 안에 정교함이 잘 살아 있어서 마음에 들었더랬죠. 하지만 복간본은 한 페이지가 거의 1~2 컷입니다! 원래 미국에서도 이렇게 발표된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페이지를 통으로 소화할 정도로 밀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컷 분할에 따른 흐름과 호흡도 잘 느껴지지 않았고요. 특히 작품의 페이지를 넘기는 방식으로 보다 보니 스파이들의 대결이 잘 살아나지 않는 듯 합니다.
이 책 만큼은 판형을 키워서 1~2페이지에 한편 정도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출간되었어야 합니다. 페이지는 얇아지더라도 이 편이 훨씬 가치가 높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잊혀진 클래식의 재발굴 복간은 분명 환영할 일입니다. 지금 읽기에 낡아보이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요. 그러나 이 모든걸 감안하더라도 심각할 정도로 재미가 없어서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혹 저와 같이 옛 추억을 더듬으시려는 분들이 계시다면 부디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2016/12/05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점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 4점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arte(아르테)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사진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로 홈런을 날린 작가 미카미 엔의 또다른 일상계 연작 단편집. 유명 휴양지 에노시마에 위치한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진관인 '니시우라 사진관'을 정리하기 위해 찾아온 손녀 마유가 이런저런 일상 속 수수께끼를 해결해 나가는 내용입니다. 모두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제목에서처럼 '사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이야기에 녹여내었다는 점입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가 책에 대한 정보를 활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별다른 사건은 아니지만 호기심을 자아내는 수수께끼들이 등장한다는 일상계 느낌의 전개와 소소하면서도 훈훈한 분위기 역시 <<비블리아 고서당>>스럽고요.

그러나 설정과 분위기만 비슷할 뿐 <<비블리아 고서당>> 수준에는 여러모로 미치지는 못합니다.
우선 추리적으로 너무 내세울 것이 없어요. 2장과 3장은 범인(?)이 너무 뻔하며, 4장은 설정이 극히 작위적이러 전혀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입부인 1장이 그나마 괜찮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기대 이하입니다.
또 탐정역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가쓰라기 마유 역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시오리코씨의 안 좋은 부분인 소심하고 나약한 성격을 극대화한 것에 더해, 대학 시절의 민폐 행각을 부각시킨 탓에 영 호감이 가지 않더라고요. 사진에 있어서도 대학 시절 전공했던 정도라 딱히 대단한 전문가라고 하기 어렵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추리 소설에 입문하시는 분들께는 적합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면 딱히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루이가 아직 사진관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마유가 깨닫고, 이후 루이와 다시 만나는 마무리는 후속작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지만 다음 권을 읽을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마지막으로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이 소개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장
가쓰라기 마유는 에노시마에 위치한 니시우라 사진관을 찾아온다. 100년 동안 영업했던 사진관의 마지막 주인인 외할머니 니시우라 후지코가 폐암으로 사망한 후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서.
정리를 시작한 마유는 '미수령 사진' 이라고 적힌 양철 상자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마도리 마사카즈 님'이라고 적힌 봉투를 열어본다. 그 속에는 100여년전 사진과 70여년 전, 20여년 전, 그리고 지금 현재의 에노시마를 무대로 거의 25년 단위로 찍은 한 남자의 사진 4장과 필름 3개가 들어있었다. 문제는 사진 속 인물이 모두 동일 인물로 보이는데 합성은 아니라는 것.
마침 사진을 맡긴 마도리 마사카즈가 방문하고, 그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소중한 사진에 얽힌 수수께끼를 밝혀줄 것을 마유에게 부탁하는데...


'동일한 장소에서 찍은, 거의 25년 단위로 찍은 한 남자의 사진 4장'에 얽힌 수수께끼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첫 작품. 수수께끼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100여년전 사진과 70여년 전, 20여년 전, 그리고 지금 현재의 에노시마를 무대로 한 사진 속 인물이 모두 동일 인물로 보이는데 합성은 아니다! 라는 것으로 괴담 등에서 많이 변주되었었죠.

그러나 이 작품은 괴담이 아닌지라 나름 합리적인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첫번째 사진은 에어브러시를 이용한 가필, 두번째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의 할아버지, 세번째는 아버지가 약간 분장한 것이고 네번째 사진 속 모델 마도리 마사카즈는 할아버지와 꼭 닮은 사람이었다'라는 것입니다. 특히 '에어브러시'라는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합성보다는 한 발자욱 더 나아간, 사진이라는 설정을 활용한 아이디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로 모든 것이 바뀐 현재의 상황에서는 잘 모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 높기도 하고요.

물론 에어브러시로 그렇게까지 똑같게 사람을 그릴 수 있었을까?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이야기의 시작으로 아주 괜찮았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장
마유가 4년전 사진을 그만둔 계기. 그것은 소꼽친구로 인기 아이돌이었던 '루이'의 개인적 비밀 (특정 사이비 종교를 믿는다는)을 드러내는 사진을 찍었다가 그 사진이 유출되어 루이의 인생을 망쳐버린 과거 탓이었다.
그런데 마도리 마사카즈와 사진관을 정리하던 마유는 당시 사건에 연류된 선배 고사카가 비교적 최근에찍은 루이의 사진을 발견한다.
그 사진을 전해주기 위해 고사카를 다시 만난 마유는 고사카와의 대화를 통해 마유는 사진 유출의 진상, 그리고 이후 루이의 삶에 대해 알게 되는데...

루이의 사진을 누가 유출시켰는지? 에 대한 것이 핵심 수수께끼인데 사실 별 내용은 없습니다. 아날로그로 사진을 찍은 것을 전문 카메라맨이 된 아키호가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즉 사진을 잘 모르는 다른 서클 사람들이 한통속이 되어 유출한 것이라는 진상을 이를 몇년간이나 알지 못하고 끙끙대었다는 것 부터가 설득력이 낮아요. 합숙을 하느라 통신이 불가했다는 것은 알리바이가 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내용을 읽어보면 당시 마유가 서클 사람들에게 잘못한 부분이 있는 것도 분명해서 딱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감정 이입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비공개 SNS라도 사진을 올린 것은 마유의 실수라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또 루이에 대한 설정도 딱히 잘 짜여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소꼽친구, 엄청난 미남, 성공한 아이돌이라는 설정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루이가 추락하게 된, 사이비 종교의 신자로 교주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고요.
아울러 해당 종교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더라도 루이는 분명 피해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때문에 면죄부를 주기는 어렵더라도 세간의 비난을 받고 은퇴할만한 일로는 보이지 않았어요. 작중에서 본인이 계속 그만두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며, 마침 사진은 좋은 계기가 된 것에 불과해보이기도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마유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필요가 없기도 하고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뭔가 있어보이는 마유의 과거사를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할 뿐더러, 과거사가 만화와 같은 설정으로 가득차 있어 전혀 와 닿지 않은 작품입니다.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네요.

3장
기념품 가게 주인 겐지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다. 지금의 아내 요코에게 청혼할 때 필요한 자금이 없어 삼촌 오사무와 함께 니시우라 사진관에서 은덩이를 훔친 것.
잠깐 빌려간다는 의미로 차용증을 써서 남겼는데 겐지는 마유에게 들키기 전 차용증을 빼돌릴 결심을 하게 되는데...

은은 과거 니시우라 사진관에서 일했던 오사무 삼촌이 현상 과정에서 나오는 폐약에서 추출한 것, 캐비닛이 일종의 미니 암실?이어서 그것이 열렸다면 증거가 남는다는 설정만큼은 괜찮았습니다. 사진관이라는 무대에 잘 맞는 소재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후 이야기 전개는 영 별로입니다. 캐비닛과 함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 겐지인데 뭐 이렇게 복잡한 설명이 필요했을지 잘 모르겠어요. 상세한 설명 없이 그냥 경찰을 부르는게 빠른 방법이잖아요? 겐지가 은덩이를 훔친 것으로도 모자라 차용증까지 훔치려 한 것은 엄연한 범죄라 정상참작의 여지는 전혀 없기도 하고요.
그리고 캐비닛 속의 필름이 감광되었다 하더라도 열은 것이 겐지라는 증거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단지 캐비닛이 열렸다는 증거 정도밖에는 안되죠. 시간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괜찮았던 소재를 억지스러운 전개로 망친 느낌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다.

4장
정리 중 발결한 마도리 부자의 사진을 전해주기 위해 마도리 가문의 별장을 찾은 마유. 그녀는 아키타카의 아버지 료헤이가 아들을 대하는 매몰찬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발견한 여러가지 이상한 점 - 겐지가 전해준 아키타카는 이전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 별장과 본가를 온통 장식하고 있는 아키타카의 사진, 부자의 사진에 있는 알 수 없는 그림자 등 - 을 토대로 아키타카에 대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역시나 핵심 트릭은 사진에 관련된 것입니다. 료헤이와 아키타카가 찍은 사진은 아주 오래전 료헤이가 찍은 사진에 현재의 아키타카의 모습을 합성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합성'은 사진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뻔한 조작이라 트릭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어려워 보일 뿐더러, 이렇게 복잡한 공작을 할 필요가 있었을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구태여 조작까지 해서 사진을 전시할 필요는 전혀 없죠. 그냥 현재의 아키타카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아버지가 얼굴을 바꾼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단점입니다. 너무나 미워했던 전처의 얼굴과 똑같이 생긴 탓이 컸다던가.. 하는 식의 배경 설명이 반드시 필요했어요. 물론 그랬다면 <<블랙잭>>의 한 에피소드, 블랙잭이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의 후처 얼굴을 어머니 얼굴로 바꾸어 놓는 에피소드와 똑같은 내용이기는 했겠지만요.

아키타카가 아버지에게 강하게, 논리적으로 반항하는 결말 정도만 깔끔할 뿐, 여러모로 부족함과 억지가 많이 느껴지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