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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1

귀담백경 - 오노 후유미 / 추지나 : 별점 1.5점

귀담백경 - 4점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북홀릭(bookholic)

최근 좀 격조했습니다. 프로야구 시즌 중에는 책 읽는 시간을 내기가 확실히 힘드네요. 야구 시청으로 저녁에 퇴근 후 잠깐 짬내어 독서하는 시간이 거의 통으로 사라져 버렸거든요. 중계 중에 읽는걸 시도해 봤는데 집중이 잘 안되더라고요....

여튼, 1주일만에 읽은 이 책은 오노 후유미의 괴담집입니다. 짤막한 괴담 99편의 모음집이라기에 흥미가 동해 읽게 되었습니다. <시귀>, <마성의 아이> 등을 통해 접했던 작가의 필력도 어느정도 신뢰가 갔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주 실망스럽습니다. 본인, 혹은 지인이 겪은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불과하거든요. 내용의 맥락도 없는, 서너페이지 분량의 두서없는 경험담일 뿐입니다. 이래서야 인터넷 괴담 사이트 게시판을 읽는 것과 별다를게 없죠. 아니, 그보다도 더 못합니다. 심지어 무섭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유로는 일단 내용이 괴담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 많은 탓이 가장 커요. 화자들이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기묘한 현상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서정적인 착한 이야기들의 비중이 상당하거든요. '오노 후유미'라는 작가가 글을 썼다는 것도 무섭지 않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서정적이고 여성스러움이 느껴지는 섬세한 묘사가 괴담과 잘 맞지 않더라고요. 문체와 묘사에서의 완성도는 높지만요.
또한 무서운 이야기들도 뻔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워낙에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기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없진 않습니다. 그 중 몇개를 짤막하게 소개해드리자면,

1. 늘어나는 계단
한 중학교의 7대 불가사의 중 '늘어나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은 평소에는 열세단이지만 심야 2시에 계단 숫자를 세면서 오르거나 내려가면 계단이 계속 이어져 끝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이 괴담에 도전한 두 친구. 그들은 불가사의한 일이 올라가야 하는지, 내려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해 한명은 올라가고, 다른 한명은 내려가기로 한다. 그리고 도전을 시작하는데... 주인공은 열셋까지 세고 다 내려왔지만 머리 위에서 친구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 넷". "열 다섯".....
전형적인 괴담인데 서로 숫자를 세고 내려오고, 올라가는 것으로 운명이 갈린다는 극적 전개가 괜찮았어요. '목소리'가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영상물이나 아니면 라디오 드라마 같은 것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더라고요.

2. 파란 여자
F씨의 집에는 유령이 있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처음 목격했는데 그건 그녀가 아직 1층 다다미방에서 부모와 함께 잘 때였다. 부모가 곤히 잘 때 눈을 뜬 그녀가 본 것은 푸른빛이 모여 커다란 여자 얼굴. 그 여자의 무서운 쏘아보는 표정에 F씨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 후 여자의 기척은 다다미방에서 여전히 느껴졌으나 F씨의 아버지가 급사한 후 여자의 기척이 사라져 F씨는 죽은 아버지가 쫓아 준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의문을 느낀다. 애초에 그 다다미방은 부모님 침실이고, F씨가 커서 자신의 침대에서 자게 되었을 무렵 어머니도 침실을 나누어 그곳은 아버지 방이 되었다. 그리고 여자의 기척이 나타난 것은 다다미방 주변 뿐. 여자가 쏘아본 사람은 누구였을까. 여자가 사라진 것은 원하는 바를 이뤘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 어른이 되어 알게 된 진상이 인상적인 작품. 그야말로 어른의 이야기로 괴담이라기 보다는 나름 '반전'의 묘미가 느껴진 것도 좋았습니다.

3. 마음에 들다
Y씨의 딸은 몇 가지 단어만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 '미피'인형, '그네'. 인형은 사준 것이지만 왜 그네가 좋은지는 모른다. 딸은 아직 그네 놀이를 할 정도로 크지 않고 딱히 태운 기억도 없다. 그러나 어느 틈에 '그네'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자꾸 반복하여 태워주니 '그네'와 다른지 그네에 타면서도 '그네'라고 칭얼거린다. 대체 뭘까? 딸아이는 갓난아이 때부터 엉뚱한 곳을 볼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Y씨가 빨래를 하는데 등 뒤에서 딸이 신이 나서 까르르 웃었다. 쳐다보니 아이는 '미피'의 목에 끈을 걸어 흔들고 있었다. 뭐 하는 거냐고 거칠게 말하자 딸은 '그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 딸은 허공을 손가락질 했다. '그네'
오싹한 걸로 따지면 이 책 속 괴담 중 베스트로 꼽을만한 그야말로 괴담! 아이는 어른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는 속설을 가지고 섬찟한 이야기를 잘 만들어 낸 것 같아요. 

이외에도 학교에서의 숙박 학습 중 장지문을 통해 손가락이 튀어나와 구멍을 뚫는다는 <훔쳐보기>는 생각만해도 섬찍해서, 그리고 <건널목의 지장보살>은 사고가 잦은 건널목에 놓여진 지장보살이 부서지자 사고가 없어졌다는 반전이 돋보여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기대에 너무 미치지 못해 점수를 줄래야 주기 힘듭니다. 오노 후유미 정도의 작가라면 이런 단순한 괴담의 자기풍 베껴쓰기가 아니라 최소한의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로 재창조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래서야 우리나라에서 한때 유행한 <깊은밤 갑자기> 류의 공포 실화집보다 나을게 하나도 없어요. 별점은 1.5점. 몇몇 괜찮은 이야기 덕에 최악은 면했지만 이 정도면 재앙급이랄까. 장르문학 팬이시라도 되도록 피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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