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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8

SF 영화 - 김종철 외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별점 1.5점

SF 영화 - 4점
김종철 외 지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엮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사)
동서고금의 SF 영화의 대표작들을 시대순으로 훝는 SF 영화 소개 연대기.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엮음' 이라는 명칭 하에 김종철, 이용철, 김봉석, 듀나, 김도훈, 유지선, 이상호 씨가 저술하였습니다.
머리말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장르별로 100여 편의 걸작들을 선정하여 소개하는 책이라고 되어있는데 이 책에 소개된 작품은 88편입니다. 수록작 면면을 보면 100편을 채우기가 그리 어려웠을 것 같지 않은데 이유는 잘 모르겠군요. 뭐 소개작 중 제가 본 영화는 32편에 불과하니 이래라 저래라 하긴 어렵지만요.

여튼, 이렇게 SF 영화에 한 획을 그었다는 88편을 소개하는 책인데... 솔직히 기대에 전혀,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냥 피상적인 개인 감상에 그치는 글이 있는 식으로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못한 탓이 큽니다. 개중 최악은 <<사구>>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그냥 거대한 실패작이다라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낼 뿐이에요. 저는 아주 좋아하는 작품입니다만,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거대한 실패작이 왜 SF 걸작이랍시고 소개된답니까? 필자가 여러명이라는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책의 취지에 맞게 왜 그 영화가 선정되었는지, 후대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등 모든 영화 소개를 동일한 포맷으로 작성하도록 명확한 가이드만 있으면 되잖아요.
물론 소개된 영화가 왜 SF 영화사에서 중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대로 짚어주는 글이 없지는 않습니다. 허나 이 역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의 재탕에 불과한 것들이 많아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은 정보가 노출된 유명 작품일수록 그 정도가 심합니다. <<매트릭스>>에 대한 글이 대표적으로 어떤 내용이 언급될지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더라고요. 스탠리 큐브릭, 제임스 카메론, 존 카펜터, 폴 버호벤, 뤽 베송의 작품들 소개들도 대체로 그러했고요.
마지막으로 도판이 부실한 것도 굉장히 실망스러운 부분입니다. 특히 소개에서 작품의 아름다운 미술을 찬양하는 작품의 경우에는 반드시 도판이 필요했다 생각되는데 이 책에서는 영화 포스터조차 수록되지 않은 작품이 대부분이에요. 저작권 문제가 있으리라 여겨지기는 하나, 상상력을 비쥬얼로 표한한 시각효과가 SF 영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점, 그리고 다른 유사한 책의 사례를 본다면 솔직히 직무유기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참고할 수 있는 사진은 물론, 보다 상세한 소개에 무료 감상이 가능할 경우 방법까지 소개해주고 있는 몇몇 블로그들 (이글루스의 예를 들자면 사자왕 님 등)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죠.

그래도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영화제의 이름을 걸고 쓴 책다운 독특한 기획은 볼만 했어요. 여러 거장들 - 린 타로, 가네코 슈스케, 더글러스 트럼블, 토미노 요시유키 장 지로 (메비우스) - 과의 인터뷰가 개중 백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더글러스 트럼블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가 어떻게 특수 효과의 세계에 뛰어들었는지, 어떤 영화가 가장 마음에 드는지, 왜 더 이상 영화를 감독하지 않는지 등이 담담하게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미노 요시유키가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는 말에 "애니메이션을 절대 좋아해서는 안 된다. 좋아하면 그 틀 안에 갇혀 버리게 된다."라고 답한 것도 인상적이고요. 저는 절대 동의하진 않지만...
또 SF 영화에 대한 컬럼들도 꽤 재미있는 편이에요. 특히나 리메이크에 대한 글은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아울러 제가 보지 못했던, 그리고 잘 몰랐던 영화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반가운 일이긴 합니다. 개중 몇개 뽑아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환송대> : <12 몽키즈>의 원형. 30분짜리 단편으로 스틸 사진을 연결해서 만들었다는 형식도 독특할 것 같이 기대되네요.
  2. <세컨드> : 인물의 정체성에 대한 SF의 선구자적 영화라는데 엔딩이 무척 궁금합니다. 다른 인생을 살게 된 남자가 전 부인을 다시 만난 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3. <흡혈귀 고케미도로> : 일본산 SF인데 소갯글만 읽어도 황당합니다. 당연히 관심도 가고요.
  4. <사일런트 러닝> : 숨겨진 SF 영화의 걸작을 단 한 편만 꼽으라면 이 영화를 꼽겠다는 도발적인 서두, 만약 이 영화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SF 영화의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북 하나를 통째로 날린 것이나 다름 없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스타 워즈> 사이의 연결 고리다라는 마지막 글만으로도 흥미를 잡아끄는 작품.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보고 싶군요.
  5. <죽음의 중계> : 대부분의 병이 퇴치된 세계에서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여주인공을 TV로 생중계한다는 플롯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무려 1980년에 이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할 따름이에요. 스포일러이기 때문인지 엔딩이 소개되지 않았는데 결말이 궁금해 미치겠어요!
  6. <슈퍼 에이트>: jj 에이브럼스가 만든 스필버그 식 모험담이라죠? <구니스> 등과 비슷한 작품일 것 같은데 언젠가 때가 되면 딸아이와 보고 싶어집니다.
이렇듯 장점이 없지는 않으나 앞서 말씀드린 단점이 더 커서 좋은 점수를 줄래야 줄 수 없네요. 90년대 "키노"의 전성기처럼 책이나 잡지 외에 정보를 구할 방법이 없었더라면 나름의 가치는 분명했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시대착오적인 책입니다. 웹진 컬럼으로 해당 영화 정보가 링크로 걸려있는 형태였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말이죠. 단지 영화 소갯글 모음에 15,000원이라는 가격도 과합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SF 영화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싶다! 정도의 매니아가 아니시라면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긴, 그 정도의 매니아시라면 이 책에 실린 정보들 정도는 이미 알고 계실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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