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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30

위스키의 지구사 - 케빈 R. 코사르 (주영하) / 조은경 : 별점 2.5점

위스키의 지구사 - 6점
케빈 R. 코사르 지음, 조은경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눈에 띌 때마다 한 권씩 사 모으고 있는, 출판사 휴머니스트에서 출간된 "~ 지구사" 시리즈의 한 권입니다. 제목 그대로 위스키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미시사 서적이죠.

책은 위스키란 곡물을 발효시킨 후 증류하여 만든 술이라는 정의에서 시작하여 기본적인 제조 방법의 소개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위스키의 기원이 무엇이며 "위스키"라는 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등 실제 역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이어지죠. '위스키'가 '우스키', 즉 '생명의 물'을 뜻으로 '오스케바'라고 발음되는 게일어를 영어화한 것이라는데 재미있네요. 어원부터가 '생명의 물' 이라니!

다음은 맨 처음 위스키를 만들었다는 스코틀랜드, 경쟁자였던 아일랜드, 신대륙 미국에서의 위스키 역사가 국가별로 소개됩니다. 스코틀랜드의 싱글 몰트 위스키는 저도 무척이나 좋아해서 무척 반갑더군요. 그다지 잘 알려져있지 않은 아일랜드 위스키의 역사도 흥미로왔고요. 아이리시 위스키는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는데 로크스 (locke's)라는 싱글 몰트 위스키는 구할 수 있다면 한 번 구해보고 싶네요. 미국 위스키의 역사는 정착민이 처음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 등 전반적으로 새로운 내용은 많지 않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이 위스키 애호가라는 등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꽤 괜찮았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독립 전쟁 당시 군대에 항상 충분한 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데 무척 놀랐어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이후 알 카포네 등으로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금주법 시대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고요.
그리고 <<21>> 이라는 제목으로 현재의 위스키 시장과 상황을 설명하며 내용은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지구사' 뒤에 한국의 음식 문화 전문가 주영하 씨의 한국 위스키의 역사가 특집으로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본편보다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처음에 위스키를 발음대로 '유사길' 이라는 한자로 표시했다는 내용부터 대한 제국 시절의 유통 과정, 일본 강점기 시기 위스키 시장의 확대와 위스키 원액은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유사 위스키'의 등장, 그리고 해방 후 상황으로 이어지는 내용 모두 말이죠. 아무래도 우리 역사에 관련된 내용이라서 그랬던 것 같네요.

이렇게 대충이나마 통사적인 접근도 가능하고, '지구사'라는 말에 걸맞게 각 국가별 현황에 대해서 다루어 주기 때문에 위스키에 대해 전반적으로 (대충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만족했습니다. 서양 중심의 역사만 서술된 것은 분명 아쉬운 점이지만 주영하 씨의 글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기도 하고요. 위스키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으시다면 읽어보실 필요가 없겠지만, 이쪽 분야를 좋아하시거나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8/11/25

피너츠 완전판 12 : 1973~1974 - 찰스 M 슐츠 / 신소희 : 별점 2.5점

피너츠 완전판 12 : 1973~1974 - 6점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북스토리

드디어 완전판이 제 출생년도에 진입하였습니다! 여러모로 감개가 무량하군요.

수록 에피소드들은 대체로 수년간 이어온 설정에서 유래된 개그가 많은 편입니다. 찰리 브라운의 야구팀이나 여름 캠프같은 이야기들 말이죠. 그래도 조금 새로운 시도가 몇 개 보이는데 대표적인 게 찰리 브라운의 야구팀이 다른 이유로 몰수패당하기는 하지만 첫 승을 거두는 에피소드입니다. 저는 어떤 상황, 이유에서건 찰리 브라운이 감독, 투수로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이기지 못한 줄 알았는데 굉장히 의외였어요. 마찬가지로 패티가 스누피가 비글이라는 걸 알게된다는 것에도 놀랐고요. 영원히 모를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캐릭터도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학교 건물이 가장 독특했어요. 샐리 브라운과 대화하는 (?) 식으로 등장하는데, 시각이 상당히 신선했거든요. 아무도 (심지어 샐리마저도) 정말로 답을 기대하며 대화를 하는게 아니지만 실제로는 생각이 있다는 기묘한 설정을 이야기로 잘 풀어나가고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 처음으로 실체가 등장한 루시의 동생 리런은 좀 아쉽더군요. 라이너스와 크게 구분되는 특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지금 잊혀진 이유도 그래서였겠죠.

그 외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봉투를 뒤집어 쓴 채 참가한 여름 캠프에서 찰리 브라운이 대표로 선출되고 잘 나가는 에피소드들이 우선 떠오릅니다. 여러모로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들어요. 또 스누피의 대 기록 (홈런 기록)을 앞두고 찰리 브라운이 견제사로 사망하는 에피소드는 최불암 시리즈의 오래된 옛 농담과 거의 비슷해서 좀 놀랐습니다. 
아울러 이전 권들과 마찬가지로 당대 유행을 반영하는 에피소드들도 몇 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번 권에는 서머타임 시행 초기의 시행 착오와 스트리킹의 유행이 그러합니다. 오래된 작품이니만큼 이런 이야기가 더 많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무엇보다도 이번 권에서 가장 눈여겨 본 것은 제 생일에 발표되었던 에피소드에요. 개인정보(?)라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 꽤나 반가왔던 내용이라 마음에 듭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빵빵 터지는 재미도 없고, 식상한 설정과 개그가 많아 감점합니다만 오래된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여전히 은근한 개그도 매력적이고요. 이 정도 수준만 유지해 주어도 저는 만족합니다. 다음 권도 기대가 되네요.

2018/11/24

일본의 식문화사 - 이시게 나오미치 / 한복진 : 별점 2점

일본의 식문화사 - 4점
이시게 나오미치 지음, 한복진 옮김/어문학사

선사 시대에서부터 근대까지 일본의 식문화를 정리한 서적. 정확하게는 후기 구석기 시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특정 요리나 특정 시기만을 다룬게 아니라, 통사적으로 전반적인 식문화사를 다루고 있다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몇가지 기억에 남았던 부분을 꼽아보자면, 조몬 시대 초 2만 명 정도였던 일본 열도의 인구가 조문 시대 중기 26만여명 까지 늘어났는데, 그 이유는 도토리, 상수리 나무 열매 및 각종 견과류가 식량 자원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수리 나무 열매는 동일 면적 대비 생산량으로 따지면 생산량이 많은 벼의 1/8에 해당될 만큼 생산량이 많아서 유용했다는군요. 이는 발굴된 당시 인골이 충치가 많은 것으로도 증명됩니다. 
쌀이 주식으로 도입된 이유는 벼가 몬순 아시아에 적합하고 수확량이 많을 뿐더러 토양 침식이나 연작 장애가 없다는 농학적 장점에 더해 칼로리원이며 단백질도 우수하다는 영양학적 장점이 컸던 탓입니다. 부식물 없이 인체 유지를 위한 단백질을 쌀만으로 섭취하려면 체중이 70kg인 사람의 경우 조리하지 않은 쌀을 하루에 약 0.8kg 먹어야 하는데 이는 위장에 부담을 주기는 합니다. 그러나 위장에 일단 채워두는게 가능했기에 유용했습니다. 이만큼을 밀가루로 섭취하려면 3kg을 섭취해야 하는데 이는 위장에 넣어두기 불가능한 양이라네요. 여튼, 이를 위해 농번기에 일본 농민은 하루에 1.5kg씩 쌀을 먹기도 했답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고봉밥으로 밥을 엄청나게 많이 먹은 이유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나 식육의 공급은 여러모로 부족했고, 유제품 역시 거의 활용되지 않았는데 그나마 기록에 남은 유제품은 '소' 뿐입니다. 유즙을 1/10로 졸인 음식인데 현재는 우유를 은근히 가열하여, 표면에 떠오른 막을 걷어내기 반복하여 얻은 유피일 것이라네요.

그리고 9세기 경에 현재에 계승된 전통적인 일본 요리의 기본적 조리법이 확립되었다고 합니다. 차이점이라면 기름을 이용하는 요리법이 거의 없다는 점인데 이는 육식을 하지 않아 동물성 지방, 버터를 이용할 수 없었고 식용유를 짤 수 있는 깨 등의 작물은 매우 비쌌기 때문이죠. 이는 기름진 맛이 진하고 품위없다는 인식이 정착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회의 형식도 같은 시기 확립되었는데, 공적 질서를 중시하는 전반부 음주가 끝나고, 자리를 바꾸어 예를 찾지 않는 2차회가 이어지는 2부 구성입니다. 현대와 똑같은데 이러한 형식이 헤이안 시대에 이미 확립된 것이라니 재미있네요.

그리고 다회, 가이세키 요리 등 지금도 친숙한 여러가지 용어가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 네덜란드나 포르투칼 요리에서 비롯된 '난반 요리' 설명이 특히 재미있네요. 서양식 요리를 일본식으로 변경한 아이디어가 재미있었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나가사키의 '히가도'는 참치, 무, 당근, 고구마를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간장으로 맛을 낸 조림 요리로 원래는 소고기를 기름에 볶은 조림 요리라고 합니다. 소고기 대신 붉은 빛의 참치로 변경하고, 기름을 많이 쓰지 않는 일본 요리처럼 소테 과정을 빼고 조림 요리로 변화시킨 것이죠. 

이러한 과정을 거친 전통적 식문화의 완성, 그리고 근대에 외국 요리가 대거 도입되며 일어난 변화로 식문화사를 정리하는데 이 과정도 난반 요리와 유사한 점이 엿보입니다. 대표적인게 우스터 소스의 사용입니다. 간장을 만능 조미료로 사용했던 전통적 식문화에 기반하여, 쌀밥에 어울리는 우스터 소스를 서양 간장으로 이해하여 이를 적극 활용하게 된 것이죠. 중국 요리가 일본적으로 변형되고, 여기서 '시나 소바'가 '라면'으로 변화하는 과정도 같은 시각으로 설명합니다. 시나 소바는 원래 돼지고기와 닭뼈 스프에 구워서 조린 돼지고기를 얹고 후추를 뿌려 먹은 면 요리인데, 소바와 우동 등 전통적인 면류를 야식용으로 행상이 팔았던 것 처럼 야식으로 시나 소바가 활발히 팔리면서 일본적으로 변형된게 계기라고 말이죠. 그리고 예를 든 건 고명으로 차슈 외에 멘마, 나루토말이, 다진 파를 얹은 것입니다 

이러한 식문화 역사가 1부 분량이며 2부에서는 식문화, 즉 예법과 용품, 조리법, 조리 기술 등을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법과 용품에 대한 내용은 딱히 흥미롭지 않았으며, 조리법 등을 소개하며 사시미, 스시, 스키야키, 두부, 라멘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다른 관련 서적에서 익히 보아왔던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아 실망스러웠습니다. 30여 페이지에 불과한 3부인 세계로 뻗어나가는 일본 식문화에 대한 소개는 정말 볼 내용이 없었고요. 

아울러 기대에 미치지 못한 2부, 3부의 내용 외에도 책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도판이 부실한 점은 그렇다 쳐도 번역이 너무 엉망입니다. 보다 쉽게 쓸 수도 있었을텐데 너무 어렵게 썼으며, 맞춤법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 오탈자도 많기 때문이에요. 번역을 전문 번역가가 아니라 요리 전문가가 했기 때문이겠죠. 요리 전문가가 각종 용어에 대해서는 훨씬 잘 알 수 있기야 하겠지만 "제 2의 창작" 이라고 까지 불리우는 번역의 역할을 너무 간과했습니다. 어찌되었건 20,000원이라는 가격에 어울리는 수준은 아닙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한 국가의 식문화를 통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책으로 인상적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완성도에 걸맞는 가격은 아니라서 감점합니다. 같은 이유로 선뜻 권해드리기는 어렵네요.

2018/11/23

맥파이 살인 사건 - 앤서니 호로비츠 / 이은선 : 별점 3점

맥파이 살인 사건 - 6점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열린책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별고 없는 조용한 마을 색스비온에이번에서 대저택 파이 홀의 가정부 메리 블래키스턴의 장례식이 치러진다. 추도식을 맡은 목사, 음흉한 앤티크 숍 주인, 고인과 갈등을 겪은 아들, 시신을 발견한 관리인 등 등장인물들의 미심쩍은 행동과 죽음을 둘러싼 소문들이 밀도 있게 다뤄진다. 이후 파이 홀의 주인인 매그너스 파이마저 기이한 죽음을 맞는다. 소식을 접한 탐정 아티쿠스 퓐트는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다... 라는 내용의 인기 추리 소설 시리즈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 최신작 <<맥파이 살인 사건>> 원고를 읽던 담당 편집자 수전 라일랜드는 소설의 결말이 누락된 것을 알고 원고를 전해 준 출판사 사장 찰스를 찾아간다.
찰스로부터 작가 앨런 콘웨이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수전은 사라진 원고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앨런의 자택과 주변 인물들을 조사해 나간다. 그러면서 점차 앨런 콘웨이 죽음이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데...


작 중 최고의 인기 추리 소설 시리즈 중 하나인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맥파이 살인 사건>>과, 이 책의 출판을 담당하는 클로버리프 북스의 소설팀 팀장 수전 라일랜드가 저자인 앨런 콘웨이 사망 사건에 얽힌 진상을 추적하는 두 개의 소설이 함께 수록된 작품. 본 이야기 속에 하나 이상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일반적인 액자 소설이라기 보다는 <<맥파이 살인 사건>>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완성된 추리 소설로 수전 라일랜드 이야기의 동기로 사용된다는 점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보통 액자 소설은 본편 주인공에게 소설 내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데, 이 작품에서의 <<맥파이 살인 사건>>은 강력한 동기 외에는 딱히 다른 역할을 하지는 않거든요.

물론 인기 시리즈로 베스트셀러가 확실한 작품인데다가 수전 라일랜드부터가 굉장한 추리소설 매니아라서 안 찾고는 못 배겼을 거라는, 굉장히 확실한 동기라는 측면에서는 설득력은 높습니다. 문제는 <<맥파이 살인 사건>>이 앨런 콘웨이 사건에서 큰 단서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죠. 앨런 콘웨이가 얼마나 추리 소설을 싫어하고 증오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도구로만 사용될 뿐 딱히 대단한 단서나 트릭이 숨겨져 있지 못한 탓입니다. 그런 도구로의 사용도 대부분 앨런 콘웨이의 장난에 불과해서 크게 와 닿지도 않았고요.
오히려 <<맥파이 살인 사건>> 이라는 추리 소설 자체만으로의 완성도가 높은 수준이라 이렇게 사용되는게 아깝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1955년을 무대로 하고 있는데 크리스티 여사님으로 대표되는 당대 본격 추리물과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였거든요. 단서의 제공도 공정하며 모든 등장 인물들이 동기가 있고 수상하다는 전개도 본격물스러우며,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도 무척이나 합리적이며 범인의 동기도 확실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전 라일랜드의 활약을 그린 본 편도 흥미롭습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딱히 대단한 능력은 없는 출판사 직원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의 최대치를 뽑아내는 전개도 좋으며 ,본격물답게 엄청나게 많은 용의자가 엄청나게 많은 수상한 점을 드러내지만 이 모든게 마지막에 제대로 밝혀지는 결말까지는 아주 완벽했어요.

그러나 범인이 드러난 직후부터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일단 범인이 찰스였다는 진상은 놀랍지만 이게 밝혀지는 이유가 잠깐 스쳐지나간 해고된 비서와의 대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우연에 기댄 작위적인 전개일 뿐 아니라, 찰스의 행동이 너무나 허술해서 황당할 정도에요. 앨런 콘웨이을 사전에 만났고, 이미 완성된 원고를 전달받았다는걸 수전이 아는 순간 모든게 끝나 버리잖아요? 마지막에 수전을 죽일 생각이 들었다면 비서부터 죽였어야죠. 
또 동기에 대한 설득력도 낮습니다. 앨런 콘웨이가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를 완벽한 조롱거리로 끝장내기로 작정했다 하더라도, 그의 계획과 인터뷰는 책을 화제로 만들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작품 자체의 수준도 높은 만큼 판매에 지장이 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아요. TV 시리즈야 물 건너 갈 수도 있겠지만 판매량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증명한다면 영상화 판권을 소유한 업체가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고요. 즉, 수전 라일랜드가 처음에 찰스를 의심하다가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일 리 없다'고 생각을 접은게 타당한 추리입니다. 수전만큼의 추리 소설에 대한 애정을 찰스가 보였다면 그나마 조금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래서야 현실성이 없죠.
아울러 앨런 콘웨이가 시리즈 제목을 활용하여 '애너그램' 이라는 말을 만들어 안배한게 고작 아티쿠스 퓐트의 이름을 풀어서 해석하면 욕이다라는 핵심 동기는 물론, 앨런이 추리 소설을 우습게 보았다는 각종 설정 (예를 들어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지하철 역 이름이나 만년필 회사 등으로 대충 지은 것)도 딱히 이상하다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우습게 보고 그것을 조롱하고자 했더라면 좀 더 거대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수전을 죽이려고 시도한 후 경찰에 체포되어 출판계 동료들이 수전을 배신자라 생각하여 등을 돌렸다는 후일담도 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앨런 콘웨이는 모든 사람들이 싫어해서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더라도, 수전을 죽이려고 시도한 것은 엄연한 범죄인데 배신자는 무슨 배신자랍니까... 마지막 수전이 그리스로 옮겨가는 에필로그는 솔직히 완전한 사족이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두 편의 완성도 높은 추리 소설을 한 권으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은 굉장하지만 위의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욕심이 좀 지나쳤달까요? 차라리 <<맥파이 살인 사건>> 만으로 출간되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볼만한 부분이 많고, 현대에 전통 본격물을 제대로 복원한 공 만큼은 인정합니다. 추리 장르 애호가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8/11/18

마블스 - 커트 뷰식, 알렉스 로스 / 최원서 : 별점 2.5점

마블스 - 6점
커트 뷰식 지음, 알렉스 로스 그림, 최원서 옮김/시공사(만화)

포토 저널리스트 필 셸던의 시각으로 바라본 마블 슈퍼 히어로 이야기. 휴먼 토치가 첫 등장하는 1939년부터 시작하여 네이머와 토치의 사투, 2차 대전 후 영웅이 된 캡틴 아메리카와 다양한 영웅들의 등장, 엑스맨의 등장으로 시작된 초인들에 대한 공포, 갤럭투스의 침공, 그웬 스테이시의 죽음 등이 필 셸던의 시선을 통해 전개됩니다. "마블스"는 필 셸던이 이 경이로운 능력자들을 부르는 자신만의 별칭이고요.

특징이라면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일반인 시선에서 바라본 슈퍼 히어로들의 경이, 두려움, 그리고 이를 이성으로 재단하고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뇌가 심각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일반인 시각에서 바라본 일종의 르포르타쥬 형태로 묘사하고 있어서 설득력이 높을 뿐 아니라, 탁월한 작화력의 소유자인 알렉스 로스의 그림이 더해지니 정말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도 참신합니다. 그야말로 "현실감" 이라는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수 있죠.
또 마블 세계관의 팬으로서는 휴먼 토치, 네이머,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판타스틱 4... 등 셀 수 없이 많은 마블 슈퍼 히어로들, 심지어 죠나 제이머슨과 벤 유릭 등이 등장한다는 점도 볼거리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액션이 제대로 선보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르포르타쥬, 다큐멘터리 형식이 강한 탓으로 필 셸던은 사건이 벌어지면 휩쓸리는 군중 1 정도의 비중으로 모든 사건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볼 뿐이거든요. 사진작가다운 과감한 앵글 (앤트맨을 밑에서 찍는 장면은 정말이지 최고입니다) 은 나쁘지 않지만 이래서야 슈퍼 히어로물 다운 재미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겠죠.
필 셸던의 생각과 고뇌는 시종일관 같아서 뒤로 가면 갈 수록 지루해 진다는 것도 단점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독특하기는 하나 재미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선뜻 권해드리기 조금 애매하네요.

2018/11/17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 서미애 : 별점 1.5점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 4점
서미애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년 전 모종의 사건으로 딸을 잃은 우진. 깊은 슬픔에 빠져 간신히 삶을 지탱하던 그는 아내마저 갑작스럽게 떠나보내고 만다.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우진은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절망 속에 주저앉지만 그때 그런 그를 붙드는 뭔가를 발견한다. 누군가 우진에게 남긴 편지 한 장, "진범은 따로 있다"는 단 한 줄의 메모.

삶의 벼랑 끝에서 무너져 내리던 우진은 딸과 아내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풀기 위해 그 한마디를 붙들고 다시 일어난다. 가슴에 묻어둔 딸의 살인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자,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드러나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에서 인용)

한국 추리, 장르 문학 암흑기부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 작가 서미애의 신작 장편소설. 제목의 별은 주인공 우진의 딸 수정을 의미합니다. 딸이 고등학생 일당에게 살해 당한 후, 모든 것을 잃고 지옥에서 살게 된 우진의 심정을 잘 나타낸 제목이죠.

우진이 자살하려는 아내 혜인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뛰어가는 도입부, 그리고 아내의 자살 이후 자신이 몰랐던 아내의 처절한 고독과 새삼스러운 딸의 부재를 깨닫는 장면의 묘사는 아주 좋습니다. 작가의 말의 따르면 친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후 쓴 작품이라는데 확실히 이런 슬픔을 느껴본게 분명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잘 쓰여져 있어서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렇게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묘사는 자신도 죽을 결심을 한 우진이 "진범은 따로 있다"는 메모를 발견하고, 혼자만의 수사를 시작하는 전개에 강한 설득력을 부여하기도 하고요.
수사 초기 아내 자살의 원인이 된 병원에서의 수모를 우진이 새삼스럽게 겪는 부분까지는 정말이지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내용은 솔직히 엉망입니다. 어설픈 클리셰가 난무하고 캐릭터의 설정과 역할도 제대로 배분되어 있지 못하지만, 무엇보다도 추리, 스릴러물로 볼 수 없는 이야기 전개 때문입니다. 범죄, 사건은 등장하지만 추리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고, 스릴도 당최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진범의 정체가 밝혀지는 과정부터 황당하기 짝이 없어요. 우진이 사건에 뛰어든 직후, 3인조 윤기, 재강, 승찬의 대사를 통해 세영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3인조는 우진이 다시 추궁을 시작해서 세영을 만나려 한 것이고요. 그럼 진범은 누구겠어요? 당연히 진범은 세영이겠죠... 이렇게 이야기의 핵심이 초, 중반에 드러나 버립니다.
또 사건의 진범을 쫓는 전개에서 우진이 하는 일은 세영의 아버지인 전 검사 출신 (딸 사건 담당) 변호사 재혁에게 문자를 남기는 것 뿐입니다. 정작 독자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역할은 사건을 은폐한 핵심 인물인 재혁이 담당하니 이게 뭔가 싶더군요. 재혁도 검사 시절 연줄로 우진의 위치를 추적해서 뒤를 쫓는 것 외에 하는게 없기는 마찬가지고요.
추리가 없으면 분위기라도 잡아줘야 하는데 우진과 세영은 평범한 부녀처럼 바다, 천문대 여행을 즐길 뿐이라 긴장감 역시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전개도 작위적입니다. 세영과 우진이 엮이는 장면부터 그러합니다. 세영은 우진의 딸을 살해한 3인조에게 쫓기던 와중에 '우연히' 우진의 차를 타게 되고, 우진과 함께 '우연히' 바다로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우연히' 트럭 사고에 휘말려 응급실을 방문하고 여기서 '우연히' 우진이 세영의 핸드폰으로 그녀의 신분을 알게 된다는 식입니다. 도대체 우연이 몇 번 겹쳐야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감도 오지 않네요.

그리고 사건을 '우연히' 키우게 된 원인인 3인조가 세영을 만나려 한 의도도 전혀 설명되지 않아서 의아합니다. 진범이 따로 있다고 해도 3인조가 지금 시점에 안달이 날 필요는 없어요. 이미 법의 심판은 받았고, 주역이라 할 수 있는 재강은 서울대 법대에 다닐 정도로 모두들 부모의 재력으로 잘 살고 있는 와중에 무얼 두려워 하는걸까요? 본인들이 저질렀지만 숨겨 놓은 죄가 밝혀지는게 아니라, 본인들이 저지르지 않았지만 뒤집어 쓴 죄가 밝혀진다는데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그들을 단죄한 검사 재혁이 세영의 아버지로 일종의 딜을 통해 가벼운 형벌을 주었다 치더라도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다시 법정에 세워 판결을 내리는 건 어려울테고요. 어차피 자기들끼리 여자를 보호하려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 것이라고 입만 맞춘다면 무거운 형벌을 받지도 않을테고 부모들에게 피해가 갈 리도 없죠. 한마디로 쓰잘데 없는 행동으로 이를 3인조의 브레인같은 서울대 법대생 재강이 모른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무엇보다도 3인조가 내분을 일으키고 재강이 윤기를 살해했다는 이야기는 당쵀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이 상황에서 재강이 당당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장면도 이해가 되지 않고 말이죠.

이러한 무리수는 제가 보기에는 독자는 다 알지만 작가 스스로만 세영의 정체를 잘 감추었다고 생각하고, 진정한 흑막은 3인조, 그 중에서도 재강이다! 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전형적인 추리 소설류에서 따온 뻔한 설정인데 정말이지 무의미했습니다.

아울러 캐릭터 설정과 묘사, 배분도 엉망입니다. 누가봐도 주인공 우진이 탐정 역할을 수행하며 악을 단죄해야 하고, 사건의 절대악은 진범인 세영과 이를 은폐한 재혁이어야 합니다. 허나 우진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하는게 없고, 세영은 마지막 부분의 묘사를 빼면 시종일관 가정 불화로 고통을 겪는 불쌍한 소녀로 그려집니다. 재혁도 세영 부분의 묘사와는 다르게 딸 바보 인격자로 묘사되고요. 3인칭 시점이었다면 단서가 복선처럼 등장했을지도 모르나... 세영과 제혁 모두 각자의 시점으로 묘사되어 이야기의 공정함이라던가 복선 모두 안드로메다만큼 거리가 멉니다. 세영이 마지막에 절대악으로의 면모를 드러내며 범행을 고백하는 장면도 뜬금없기 그지 없고 무언가 깔끔하게 단죄하는 느낌도 들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요.
또 이를 핸드폰으로 촬영한 것 정도로 다 잘 해결될거라고 보는 것도 무리죠. 재혁과 세영을 감금, 포박한 상태에서 얻은 자백이 과연 증거 효력이 있을까요? 고문해서 증거를 날조한 거와 다를 것도 없잖아요?

그래서 결론 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딸과 아내처럼 가족, 친지를 잃은 사람의 슬픔이 어떤지를 그리는 절절하고 먹먹한 묘사만큼은 일품입니다만 추리, 스릴러 장르물로서는 꽝이에요. 추리물을 표방하지만 신파 드라마 쪽 완성도가 훨씬 높다는 점에서는 전형적인 한국 장르물이구나 싶네요. 여튼,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절대로 아닙니다.

2018/11/15

쥐덫 - 애거서 크리스티 / 김남주 : 별점 2.5점

쥐덫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황금가지

황금가지의 정식 한국어 판으로 다시 읽은 크리스티 여사님의 대표 단편집. 이전에, 무려 14년 전에 해문 출판사 버젼으로 읽고 리뷰를 남겼었죠. 다시 읽은 김에 짤막하게 리뷰 남깁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무려 9편이나 되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보니 완성도가 낮은 작품도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다 좋아보였는데 말이죠. 예를 들어 <<관리인 사건>>은 정보 제공이 공정하지 못해서 좋은 단편이라고 하기는 힘들고, <<조니 웨이벌리 사건>>의 경우는 증거가 너무 빈약해요. <<사랑의 탐정>>은 범인들의 위증에만 기대고 있는 최악의 작품이고요. 14년 동안 너무 많은 작품을 읽어온 탓이겠죠. 
여사님 리뷰의 바이블인 <<애거사 크리스티 완전 공략>> 에서의 별점도 2점에 불과하며, 이유는 메인인 <<쥐덫>>의 트릭은 재탕한 것이고 추리 소설로 알맹이가 너무 없으며, 다른 단편들은 추리 퀴즈 수준이기 때문이라는데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갑니다.

그래도 마냥 폄하하기만은 힘듭니다. <<쥐덫>>은 아무리 트릭을 재탕했다 하더라도 폐쇄된 공간, 제한된 등장인물들끼리 빚어내는 긴장감이 일품이기 때문입니다.어차피 트릭도 대단하지 않은, 평범한 인물 바꿔치기에 불과해 재탕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트릭에 기댄 추리 퀴즈 같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줄자 살인 사건>> 에서 짤막한 분량 안에 사건의 동기까지 집어넣은 솜씨는 눈여겨 볼 만 합니다. 피해자 스펜로 부인이 처음에 꽃집을 시작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한 페이지도 안되는 과거사를 살짝 언급한 후, 스펜로 부인이 하녀일을 할 때 사라진 에메랄드를 연결하는 식이거든요. 하녀 외에 여주인의 몸종이 있었을 것이다라는 당대의 상식이 잘 공유되지 못한 건 안타깝습니다만...
그 외에도 <<완벽한 하녀 사건>>과 <<검은 딸기로 만든 '스물네 마리 검은 새'>>는 이런 트릭을 사용한 작품의 교과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요. 최소한 <<퀸 수사국>> 같은 정말이지 추리 퀴즈에 불과한 이야기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푸아로미스 마플에 할리 퀸까지 등장하는 종합 선물세트라는 점도 돋보이는 점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추리 소설의 팬이자 크리스티 여사님 팬이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이시라면 이미 읽어 보셨겠지만요.

2018/11/11

책 정리하는 법 - 조경국 : 별점 2점

책 정리하는 법 - 4점
조경국 지음/유유

저도 독서가 취미인 애서가로 쌓이는 책에 대한 고민은 항상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사 계획 때문에 최근에는 고민이 더욱 늘었고요.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부제인 "넘치는 책들로 골머리 앓는 당신을 위하여"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제만 보면 딱 저의 고민을 해결해 줄, 그런 책이라 생각되었거든요.

그런데 읽고 나니... 너무 완벽하게 기대를 배신당해서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이유는 저자가 이 책의 독자가 누구인지를 쓰면서 망각한 탓입니다. 머리말 서두에서 "이 책을 읽는 분이라면 분명 자신만의 특별한 책 정리법이 있을 겁니다." 라고 쓴 걸 보면 저자도 이 책은 어느 정도 책을 소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독자라는걸 잘 알고 있는 듯 해요. 저 역시 그런 사람으로서 저자만의 특별한 노하우 공유를 기대했고요. 하지만 실제 내용은 정말이지 '초보자' 수준의 지식을 설명하고 나열하는데 그칠 뿐입니다!

그나마 제목과 연결고리를 가질만한 내용은 4부인 <<서가의 다양한 형태들>> 정도입니다. 직접 만드는게 최고라며 사이즈 등 여러가지 팁을 소개해 주고 경량랙 등 기성품에 대한 소개도 충실한 덕이며, 자금의 여유가 있다면! 이라며 추천하는 이케아 빌리 시리즈도 눈여겨 볼 만 했습니다. 다음에 이사갈 때 저도 한 번 고려해 봐야겠더라고요.
7부인 <<책을 싸는 이유와 노하우>>에서 맥도날드의 포장용 봉투가 완벽한 책싸개라고 알려주는 부분도 실용적인 팁이라 인상적이었어요. 튼튼하기도 하고 가벼우면서도 색깔도 무난하니 괜찮다는 이유인데 실제로 사용해보니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앞으로 애용할 듯?

하지만 괜찮은 팁과 노하우 공유는 이 정도에 그칩니다. 다른 내용들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 수준에는 걸맞지 않는 초심자용 내용이 많아요. 예를 들어 4부인 <<책 정리하는 법>>은 제목만 놓고 보면 책의 핵심인데, 책을 어느정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 자신만의 정리법이 있을테고 저 역시 그러한만큼 딱히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니었어요. 그냥 헨리 페트로스키의 방식, 십진분류법, 분야별 분류, 작가별 정리, 출판사별 정리 등 다양한 방식만 나열될 뿐입니다. 책 목록 정리법도 '비블리'라는 어플리케이션을 추천하며 마무리하는데 이 역시 새로운 내용도 아니며 딱히 땡기지도 않았고요.
마지막에 책을 정리하는 최후의 방법이라며 소개되는 다양한 책 처분법 역시 새로운 내용은 전무합니다. 기증하거나, 온라인을 통해 팔거나 헌책방에 파는 등의 방법이 소개되는데 책을 어느 정도 소유하고 있는 애서가라면 당연히, 누구나 알 내용이에요.

저자 본인 기준에 맞추어져 있어서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습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완벽한 서재의 조건 중 180*80 센티미터 크기의 책상이 필요하다는 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서재는 책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하고, 책을 읽는 곳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는데 그런 것 치고는 책상이 너무 크잖아요! 차라리 이 책에도 등장하는 일본의 유명 애서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는 "방 안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의자 주변의 반경 1미터 남짓이면 충분하다"는 완벽한 서재 쪽이 더 공감이 갑니다. 공간을 좁게 구성하는게 책을 보관하는 기능에는 훨씬 유용한게 당연하니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자신의 책상, 독서대, 스탠드, 커튼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모두 저자의 기준일 뿐입니다. 
제목과 아예 동떨어진 이야기가 많은 것도 문제인데 2부인 <<남의 서재 엿보기>>는 저자가 과거 잡지사에서 일할 때 사진가의 서재를 찾아 인터뷰했던 기억을 더듬어 쓴 내용으로 책 정리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저자의 헌책방을 열기까지의 과정도 재미는 있지만 단순한 개인사 에세이라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어요.
마지막으로 도서출판 유유의 책 답게 내용과 분량에 비하면 높은 가격도 매력을 떨어트립니다. 저는 전자책으로 약 7,000여원에 구입했는데 종이책은 200쪽에 불과한 분량임에도 정가가 무려 12,000원입니다! 도판도 모두 흑백에다가 특별한 일러스트가 사용되지도 않았고, 양장본도 아닌데 이 가격은 정말 미친게 아닌가 싶어요. 종이책은 모르겠지만 전자책은 1/3 분량이 유유 출판사 책 소개에 할애되어 있는데 이건 또 뭔가 싶고요.

사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은 저자의 머릿글에 모두 나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이렇게 길게 쓸 필요도 없었어요. 책 정리법의 핵심은 "책 욕심을 버리는 것" 이며, 그렇지 못하면 내가 가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내 정리법은 공간을 구분하는 데에서 시작하고 서가별로 여러가지 기준을 세워서 정리한다... 는 짤막한 글인데 이게 정말 전부에요. 이 책 본문에 소개되는 실제 책 정리에 대한 디테일은 그만큼 별 볼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쉽게 읽힌다는 점, 그리고 드물지만 유용한 팁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가격과 전체적인 수준을 고려한다면 권해드릴만한 책은 아닙니다.

2018/11/10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 하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5점

[세트]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하 세트 - 전2권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 이후 헤어진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각각 다른 이성 친구와 교제하게 된다. 오사나이와 교제하게 된 신문부 열혈 부원 우리노는 매달 벌어지는 연쇄 방화 사건에 집중하고, 이 사건을 다룬 기사를 교내 신문에 발표한다. 기사를 통해 몇 개월간 다음 방화 장소를 예언하고 맞춘 우리노는 신문부의 손으로 범인을 잡을 계획을 세우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와 일상계 추리물의 존재를 우리나라에 처음 알림 소시민 시리즈 신간 (이라고 하기는 작년에 나와서 좀 어색하지만 제 기준으로는) 입니다. 십년도 더 전에 출간된 책은 아동용 동화같은 커버 일러스트로 충격을 주었는데, 다시 예쁜 일러스트에 양장본으로 재출간된 것을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십여년 전만 해도 요네자와 호노부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의 전작 출간이 되었을 정도의 인기 작가라는걸 여실히 보여주는데, 이런 추리, 미스터리 장르물의 인기에 저도 약간이나마 기여(?) 하지 않았을까 싶어 살짝 뿌듯하기도 하네요.

이 작품은 시리즈 1편인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보다는 2편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과 더 비슷합니다. 조금 긴 호흡의 긴 이야기가 핵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말이죠. 주인공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거주하는 기라시에 매달 장소를 바꾸어가며 방화가 일어나고, 이를 쫓는 신문부 후배 우리노와 이에 얽히게 된 고바토와 오사나이의 이야기가 시간으로 따지면 2학년에서 3학년까지 거의 9개월에서 10개월 동안 펼쳐지거든요.

그런데 방화사건 쪽 주인공은 우리노이며 그와 교제하게 된 오사나이가 양념처럼 등장할 뿐이고, 고바토가 다른 여자 친구 나카마루와 교제하며 일상계 추리를 펼치는 이야기는 서로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는게 특이합니다. 이러한 고바토의 일상계 이야기는 다른 일상계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대단한 사건들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나카마루와 함께 데이트를 가던 코바토가 만원 버스에서 누가 버스에서 먼저 일어날 것인지를 추리하고, 나카마루가 이야기해 준 자신의 오빠에게 있었던 기묘한 도난사건에 대해서 추리하고, 헤어지기 직전 나카마루가 토마토를 싫어하는게 아닌가하고 추리하는 세편 정도?의 사건이 등장하죠.
버스 이야기는 추리에 비하면 분량이 과할 정도로 길어 별로였고, 토마토 이야기는 정말로 스쳐지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하는 나카마루의 오빠가 3일간 여행 갔다 온 후 집에 유리창에 깨져있고 누군가 침입했지만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기묘한 도난사건 이야기는 꽤 괜찮았어요. 조금 깊게 들어가면 그동안 오디오 알람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몰랐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설령 이런 일이 생겨도 집 주인을 부르지 무단 침입은 하지 않겠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아요. 이야기 전부 다 소소하니 심심하지만 담백해서 일상계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그런데 연쇄 방화 사건 쪽은 개인적으로 불만이었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나름 번득이는 부분이 있어요. 특히 연쇄 방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가 괜찮거든요. 우리노가 다음 번 방화 장소를 추리해 낸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노의 친구로 범인인 히야가 우리노의 기사를 보고 그곳에 불을 질렀다는 진상이 그것인데 상당히 의외성이 있어 감탄이 나올 정도였어요. 우리나라 영화 <<밀정>>에서도 등장했었던 간단한 트릭으로 용의자를 좁히고, 진범을 추리해 내는 과정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제대로 된 추리물은 아닙니다. 거의 전편에 걸쳐 탐정역을 수행하고 온갖 추리를 펼친 우리노의 마지막 추리쇼를 박살내기 위한 오사나이의 복수극일 뿐이에요. 복수를 위한 오사나이의 공작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고요.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해있던 우리노와의 통화 당시 고의로 기차 소리를 들려주어 현장 근처로 오해하게 만들고, 범행 현장 근처에 서점에서 책을 산 영수증을 우리노의 눈에 띄는 곳에 놔 두는 식인데 우리노가 이를 추리해낸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렇게 해서 자신을 범인으로 오해하게 만든 의도가 불분명하거든요. 마지막 순간 추리쇼를 펼친 우리노에게 면박을 주고 재기불능 수준의 창피를 주기 위해서? 복수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모든게 작위적입니다.
또 정통 추리물이라면 동기가 무엇인지를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우리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그런 자각이 전무하다는 것도 실망했던 부분입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도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요. 이래서야 잘 된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고바토가 마지막에 구리킨톤을 먹으며 오사나이가 우리노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5월 이후라고 추리해내고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멋대로 오사나이에게 키스하려 했기 때문" 이라고 답하는 장면은 깔끔했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복수를 꾸밀 정도의 일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또 우리노는 명예욕은 있지만 사건에 열정적으로 뛰어든 좋은 녀석인데 이쓰카이치의 기사로 확인 사살까지 당하니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쓴 이유는 작가의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동일한 느낌의 또다른 일상계 시리즈인 고전부 시리즈와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서겠죠. 고바토가 마지막에 추리를 통해 자기 만족을 채우는 인물이라는 걸 깨닫는다던가, 오사나이는 대단한 행동력과 책략을 갖춘 팜므파탈로 묘사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소시민을 꿈꾸는 고바토 죠고로와 회색을 신봉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의 캐릭터부터가 완벽하게 겹치기에 이번 기회에 선을 그은 거죠. 시리즈 다음 작품이 출간된다면 고바토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들어 추리를 펼치고, 오사나이는 추리를 위한 각종 작전을 짜내고 실행하는 행동대장 역으로 묘사되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큰 변화가 작품에 좋게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바토야 그렇다 쳐도 오사나이 캐릭터 변화가 문제에요. 앞서 말씀드린 억지스러운 복수극 전개가 모두 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냥 예전처럼 한 발자욱 물러나 사건을 추리하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지금은 여러모로 작위적이고 억지스럽기만 해서 별로였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일상계 추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드는 구성은 좋고, 추리적으로도 눈여겨 볼 부분도 제법 됩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해요. 억지스럽게 설정까지 바꾸어 가며 시리즈를 이어나가느니 그냥 고전부 시리즈에 집중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2018/11/04

악몽을 파는 가게 2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악몽을 파는 가게 2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최신 단편집 2편. 원초적인 공포보다는 순문학 쪽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물씬 풍겼던 최근 작풍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편보다 수록작들의 수준이 높아요. 전권에서는 <<우르>>라는 기대 이하의 졸작이 수록되어 있던 반면 이번에는 수록작 대부분 완성도가 평균 이상입니다. 과거와 같은 화끈함은 없지만 일정 경지에 오른 거장이 맘먹고 쓴 쉼표같은 작품들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한마디로 스티븐 킹의 현재를 보여주는 좋은 단편집입니다.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작품 한편, 한편은 더욱 뛰어난 작품이 많아요. 작품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으니 참고하시길. 아울러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하다는 것도 역시 잊지 마세요.

<<허먼 워크는 여전히 건재하다>>
도망친 여러 남자들 사이에서 얻은 각각 4명, 3명의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 재스민과 브렌다의 이야기.

암담한 아줌마 버젼의 <<델마와 루이스>>로 둘의 암담함과 자기 파괴로 이어지는 심리 묘사 외에 별다른 내용은 없고 오히려 연로한 두 시인의 등장도 뜬금없기는 합니다. 허먼 위크가 아직 건재한 것도 딱히 별 상관이 없고 말이죠.

하지만 두 아줌마들의 암담함에 대한 묘사가 그야말로 압권이라 그 둘이 순식간에 사로잡히는 자기 파괴적 생각에 동의하게 만드는 수작입니다. 이제는 스티븐 킹을 호러의 제왕이 아니라 암담함의 제왕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요. 같은 암담함이라도 <<1922>>는 픽션 느낌이 그래도 좀 있었는데 이 작품은 너무 현실적이라 더 와 닿고 무섭네요. 작품을 쓰게 된 발단이 되었다는 기묘한 교통 사고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고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컨디션 난조>>
아내 엘렌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시체를 집 안에 방치해 놓은 광고쟁이 프랭클린의 이야기. 
이전의 킹이었다면 프랭클린이 아내를 죽였다거나, 아내의 시체가 모종의 이유로 되살아났다거나, 시체 냄새를 맡은 아파트 주민들이 좀비같이 변해 거대한 학살을 불러 일으키는 식으로 전개되었겠죠. 그러나 이 작품에서의 프랭클린은 아내를 사랑하는 평범한 인물이며, 그의 행동은 "사랑" 때문으로 묘사됩니다. 결말도 그냥 아내 시체 옆에 머물 뿐이고요.

이렇게 대단한 드라마는 없지만 그래도 킹이 쓴 순애보라는 점 만큼은 독특합니다. 오지 오스본의 발라드같은 느낌이랄까요? 과거의 킹 스타일도 좋지만 이런 이야기도 나쁘지는 않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철벽 빌리>>
조지 그래섬이라는 전 메이저리그 관계자가 스티븐 킹에게 1957년 뛰었던 '철벽 빌리' 라는 선수에 대해 해 주는 긴 이야기 형식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철벽 빌리" 캐릭터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인터넷 용어로 따지면 "야모순바 (야구밖에 모르는 순진한 바보)" 그 자체인데, 그래서 무서운 인물이거든요. 야구를 하고 싶은 소년에게서 야구를 빼앗으려 하자 모든걸 없애버리고, 친구의 승리가 빼앗겼다고 느끼자 심판을 살해해 버리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캐릭터가 존재함에도 빌리와 그의 잔혹한 행각의 비중보다는 1957년 당시 야생적이었던 메이저리그와 선수들, 시합 장면에 대한 묘사 비중이 높다는 점이 특이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또 이는 직접 살해 현장을 목격하지는 않은 조지 그래섬 1인칭 시점인 탓도 큰데, 조지 그래섬의 입을 빌어 실제 존재했던 팀과 선수들에 대해 조금씩 풀어가며 설득력을 높이는 솜씨도 일품이에요.

딱 한가지 아쉬움이라면 빌리의 사연을 너무 대충 넘긴 것입니다. 빌리 블레이클리와 그 가족을 살해한 원래의 유진 캣서니스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평범한 싸이코 살인마와 비슷하게 느껴지게 만들거든요. 유진 캣서니스 시기의 암담함을 특유의 묘사로 풀어내었더라면 또다른 <<1922>> 수준의 수작 중편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미스터 여미>>
노인 요양원에서 '미스터 여미'라고 불리우는 존재를 목격하면 죽을 날이 머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내용의 단편.

노인들이 아직 젊었을 때 빛나던 존재를 목격하고 얼마나 설레었는지, 그리고 노인들이 죽기 전 젊었을 때의 설레임을 잠시나마 느끼게 된다는 묘사는 킹도 정말 늙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네요. 한마디로 죽을 날이 머지 않은 킹의 바람(?)을 그린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토미>>
조금 독특한 운문(?) 형태의 짤막한 작품. 그런데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1960년대를 추억하기 위해 쓴 개인적인 습작이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초록색 악귀>>
미국에서 여섯 번째로 돈이 많은 뉴섬은 비행기 사고 이후 지속적인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 바닥에서 잘 알려진 목사 라이드아웃을 초빙한다. 전속 물리치료사인 캣 (캐서린)은 그가 사기꾼이라고 확신하는데...
사기꾼으로 알았던 라이드아웃의 캐릭터가 돋보였던 작품. 실제로 몸 속에 존재하는 통증을 불러일으키는 악귀를 끄집어 내 잡을 수 있는 능력자라는게 밝혀지는 전개도 좋았고요.

하지만 악귀를 끄집어내는 과정까지의 전개가 너무 길고, 악귀와의 사투도 심심하며 결말도 그냥저냥이라 아쉬움이 더 큽니다. 정전 상태에서 캣의 손으로 무언가 스물스물 올라온다는 정도로는 약합니다. 결국 라이드아웃의 용기에 담지 못한 초록색 통증 악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한마디로 이 작품만큼은 과거의 크리쳐물 형태로 썼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저 버스는 다른 세상이었다>>
뉴욕의 러쉬 아워에 갇힌 광고쟁이 월슨이 우연하게 나란히 선 옆 버스에서 한 여성이 살해당하는걸 목격하지만, 중요한 프리젠테이션 생각에 그 사건을 무시해 버린다는 내용의 작품.

윌슨에게 연이어 닥치는 불행에 대한 묘사는 재미있는데 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네요. 윌슨이 프리젠테이션에 늦지 않을까? 라는 드라마가 살인 사건보다도 비중이 클 정도로 사건이 건조하게 묘사되는 탓입니다. 한마디로 대단한 드라마가 없는거죠. 주위 사람들에게 무심한 현대인들, 돈이 더 중요한 현 세태를 풍자한다고 보기에는 풍자 요소도 많지 않고요.

한마디로 평범 이하의 태작입니다. 창작 의도는 알겠지만 제대로 구현되었다고 보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부고>>
인터넷 뉴스 매체에서 부고 기사를 쓰는 찐따 마이크에게 가짜 부고를 실제로 만드는 힘이 있다는게 밝혀지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2016년 에드가상 단편 부문 수상작.
작가가 의도치않게 쓴 글이 현실로 벌어진다는 설정 자체는 평범합니다. 오래전 킹 스스로도 <<신들의 워드프로세서>>라는 비슷한 작품을 쓰기도 했죠. 하지만 부고를 쓴 인물 뿐 아니라 근처에 사는 같은, 혹은 비슷한 이름의 인물들이 함께 죽어나간다는 설정으로 차별화를 주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이크가 오지 와이오밍의 라라미에서 숨어 산다는 결말도 나쁘지 않고요. 마이크는 (꿈자리는 사납지만) 꽤 괜찮은 슬로우 라이프를 즐기는 듯 하고, 그의 능력으로 도움을 준 몇몇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 생겼다는 해피엔딩인데 그런대로 괜찮았거든요. 최소한 모두 파멸해 버리는 뻔한 결말은 아니었으니까요.
인터넷 매체 '네온 서커스'와 거기 실리는 기사들, 소속 기자들에 대한 정신나간 묘사들도 최신 트렌드 느낌으로 잘 그리고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작품들 중에서 돋보이냐 하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에드가상을 수상할만한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비슷한 이름의 사람들이 죽는다는 설정을 잘 살리지 못한 탓이 큽니다. 그 사실을 알고 그냥 도망친다? 이야기를 너무 쉽게 마무리한 느낌이에요. 솔직히 부고를 쓴 후 그것을 기자가 실제로 만든다는 다른 단편들쪽이 더 오싹하죠.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예전에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라는 고전 서부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라라미가 정말 미국에서도 유명한 깡촌인가 보네요. 라라미로 도망치면 아무도 그를 찾지 못하고 사건이 해결될 정도라니...

<<취중 폭죽놀이>>
호수 산장에 사는 올던과 어머니가 호수 건너편 대저택에 사는 마시모 가족과 매년 7월 4일, 폭죽 놀이 배틀을 벌인다는 흥겨운 이야기. 결국 올던이 마지막에 구입한 2000달러 짜리 폭죽 "제 4종과의 조우"가 마시모 가족 저택을 홀랑 태우는 결말까지 한 치의 방심도 할 수 없이 유쾌하게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킹이 여러 작가의 작풍을 모방하는 취미가 생긴 듯 한데, 이 작품은 어디로 보나 마크 트웨인이 떠오르더군요. 전편에 걸쳐 흐르는 유머도 그렇고, 마지막에 두 가족 모두 집을 태워먹고 화해한다는 결말까지 말이죠.

올슨과 어머니가 알콜중독이었다는 등의 불필요한 설정은 조금 거슬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 수록작 중에서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킹 작품 중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흔쾌히 권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작품이에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여름 천둥>>
핵전쟁 이후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로빈슨이 유일한 친구 팀린과 애견 간달프마저 죽자 할레이 데이비슨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는 소품. 죽어가는 생존자들이 보이는 인간미가 돋보입니다. 킹의 예전 작품이라면 이들이 사는 마을에 지옥도가 펼쳐졌을텐데 말이죠.

하지만 지옥도 대비해서 화끈한 재미가 부족하다는건 단점입니다. <<카페 알파>>도 나쁘지야 않지만 <<세기말 구세주 전설>>이 아무래도 더 화끈한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18/11/03

위안텅페이 삼국지 강의 - 위안텅페이 / 심규호 : 별점 2.5점

위안텅페이 삼국지 강의 - 6점
위안텅페이 지음, 심규호 옮김/라의눈

중국에서 인기가 많다는 역사 교사 위안텅페이의 <<삼국지>> 강의를 엮어 출간한 책. 800페이지가 넘는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황건의 난에서 시작하여 진나라가 통일하기까지의 약 백년에 걸친 기간 동안의 역사를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사 교사의 강의 답게 '실제 역사' 중심의 강의로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여타의 작업물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데, 우선 소설에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삼국 정립 후 진나라 통일까지의 이야기가 책 분량의 1/4, 거의 200여 페이지에 달한다는 점을 꼽고 싶네요. 위나라에서 사마씨가 정권을 찬탈하는 과정이라던가, 제갈량 사후 촉한의 멸망 과정, 그리고 폭군 손호의 즉위와 함께 멸망으로 치달은 오나라 이야기를 굉장히 상세하게 알려주거든요. 소설에서는 화려하게 다루어지는 전쟁들, 영웅들의 일기토 등의 비중이 한 없이 낮다는 점도 그러합니다. 관도 전투가 20 페이지 분량도 안되며, 적벽 대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적벽에서의 전투 상황은 단 세 페이지에 불과합니다!

또 주요 인물에 대한 설명도 소설과는 명확한 차이를 보입니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관우의 비중이 굉장히 낮은게 우선 놀라와요. 실제 역사에서의 일화 중심으로 설명하다보니 딱히 활약도 없고, 전투에서 대단한 무공을 세우지도 않은 그냥 황제의 의형제 정도로 소개될 뿐입니다. 
제갈량 역시 유비 사후 촉한의 리더로 활약은 비중이 작지는 않으나 북벌에서의 실패와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더 상세하게 그려집니다. 제대로 승리한 적은 없고, 전쟁보다는 '정치'에 더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는게 결론이에요. 그런데 실제 역사에서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닌 듯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위연을 좀 더 잘 썼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는 합니다면, 뭐 다 부질없는 이야기죠.
우리가 익히 알던 인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많습니다. 제 머리 속의 삼국지 인물들은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 설정이 뿌리깊게 박혀있는데 그런 전형을 많이 깨 주네요. 예를 들어 유비는 짚신을 삼는 가난뱅이 쪼다라는게 고화백님 해석인데 위안텅페이는 비록 짚신을 삼는 일이 생업이었지만 재벌 2세같은 부잣집 자제 분위기로 퇴폐적인 생활을 추구했다고 합니다. 지역 토호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황건군 반란 진압 시에는 그들로부터 얻은 자금으로 1,000여 명의 군사를 모을 정도였다니 단순한 가난뱅이는 아니었던 것이죠.
또 조조에 대해 비교적 공정한 시각으로 평가하고 있기도 합니다. 조조는 사람의 능력을 잘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임용할 줄 알았으며,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데 능해 헛되이 미혹되지 않았다. 그리고 인물의 귀천을 따지지 않았고 공과를 따지는데 엄격하고 심지어 검소하여 부유와 사치를 숭상하지 않았다고 하니 진짜 대단한 인물은 인물이죠. 사실 조조를 진정한 영웅이다! 라고 하는 컨텐츠가 최근에 많아져서 딱히 새롭지는 않지만 중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견해라 조금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그 외에도 노숙도 인물이었다던가, 장비가 포악하기 그지 없었다는 등 작가만의 해석이 가득한데 그 중에서 조운 조자룡을 유비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게 가장 놀라왔어요. 조운이 오호상장 중 등급이 가장 떨어지고, 이릉대전 당시 후방을 지키라고 한 등을 예로 드는데 정말 생각도 못 해본 내용이었으니까요. 왠지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주요 인물에 대한 해석은 소설 삼국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데, 그 외에도 소설과 연계되어 재미를 더해주는 부분도 많아요. 삼국지에서 의문이었던 일화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게 좋은 예인데, 동탁이 소제를 쫓아내고 진류왕 유협을 헌제로 옹립한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어차피 황제를 쥐고 흔들거라면 멍청한 인물이 황제여야 유리했을텐데 구태여 똑똑하다는 유협으로 대체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위안텅페이의 해석은 유협을 동태후가 키웠기 때문이랍니다. 같은 동씨 일족이었다는거죠. 솔직히 납득은 안되지만 같은 성씨들끼리 해먹은게 많은 삼국지 이야기를 보면 왠지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인기많은 강사다운 말발(?)도 볼거리입니다. 공융에 대해 언급하면서 네 살 때 부친이 배를 사주고 골라 먹으라고 하자 가장 작은 것을 골라 먹고 큰 것은 형한테 양보한게 유일한 업적(?) 으로 배 하나 양보했다고 2,000년 동안 칭송된 인물이라고 비꼬는 식이에요. 이런 일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돌이켜보면 저자의 말대로 배를 사다준 날 배가 아팠거나 그냥 배가 불렀을 수도 있었는데 이런걸 대단하다고 띄워준 건 너무 과하죠. 

이와 같이 삼국지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은 보물상자같은 책이긴 한데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도판이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여러 지역을 중심으로 사건이 이루어지는 만큼 당시 지도는 필수적으로 삽입되었어야 했어요. 휴대폰으로 관련 지도를 검색해 읽으면서 함께 보기는 했지만 이 책에 소개된 지명 기준으로 크게 볼 수 있는 지도가 맨 앞이나 뒤에 수록되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너무나 컸습니다. 이 단점에 비하면 오탈자가 제법 많다는건 단점으로 생각되지도 않을 정도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후한 당시 군벌들이 모았던 인재들은 사실은 실의에 빠진 무뢰한들이었다는 시각 등 역사 교사의 개인 견해가 많이 담겨있기는 하지만 당대 역사를 한 번 일람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생각되네요. 삼국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2018/11/02

수학의 역사 - 지즈강 / 권수철 : 별점 2점

수학의 역사 - 4점 지즈강 지음, 권수철 옮김, 계영희 감수/더숲

중국 교수가 쓴 수학 역사책. 딸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구입한 책입니다.

장점이라면 서양 위주의 수학 역사서가 아니라 동양에서 (중국 한정이지만) 어떻게 수학이 발전했는지를 잘 알려준다는 점입니다. 아예 <<중국 수학의 고고한 품격>> 이라고 따로 분량을 할애해서 소개할 정도인데 내용도 아주 새롭고 재미있었어요. 중국판 피타고라스의 정리인 "구고의 정리"가 어떻게 쓰여져 있는지에서 시작해서 중국 수학을 대표하는 문건인 <<구장산술>>에 대한 소개, 유명한 중국의 수학자들에 대한 소개, 당나라 때 관리 승진 시험 문제로 출제된 "영부족 계산법" 등 처음 알게 된 내용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중국의 고차연립방정식을 의미하는 '천원술'과 '사원술'을 소개하며 이것이 김용의 <<사조영웅전>>에 인용된 항목을 함께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읽을 당시에는 몰랐었는데 수학적인 해석이 함께 해 주니 황용이 얼마나 똑똑한 소녀인지를 더욱 잘 알 수 있었거든요. 김용이라는 작가의 고증, 역사적 깊이에 탄복한 건 덤이고요.

하지만 단점도 분명한데 너무 어렵습니다! 일반인, 특히 학생 상대로 적합한 책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정도에요. 수학사를 대표하는 여러 이론, 그리고 그 예를 소개하고 있는데 설명이 너무 부족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유명 수학적 이론과 수학자 소개에 그치는 다른 수학 역사서에 비해 실제 이론과 문제를 소개한다는 측면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설명이 부족해서 득보다는 실이 커 보입니다. 물론 제 수학적 깊이와 사고가 유치한 수준에 그치는게 문제겠지만 그래도 책 한권으로 설명되었던 "페르마의 정리" 해법을 20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으로 소개하는 식으로 요약이 과한 탓도 커요. 실려있는 각종 수식, 공식도 "왜 그런지?" 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수학 역사서로는 괜찮지만 지금보다는 이해하게 쉽게 소개된 문제를 다루어 주었어야 했습니다. 이대로는 너무 어려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차라리 중국 수학 쪽에 집중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