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상.하 세트 - 전2권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 이후 헤어진 고바토와 오사나이는 각각 다른 이성 친구와 교제하게 된다. 오사나이와 교제하게 된 신문부 열혈 부원 우리노는 매달 벌어지는 연쇄 방화 사건에 집중하고, 이 사건을 다룬 기사를 교내 신문에 발표한다. 기사를 통해 몇 개월간 다음 방화 장소를 예언하고 맞춘 우리노는 신문부의 손으로 범인을 잡을 계획을 세우는데...
요네자와 호노부와 일상계 추리물의 존재를 우리나라에 처음 알림 소시민 시리즈 신간 (이라고 하기는 작년에 나와서 좀 어색하지만 제 기준으로는) 입니다. 십년도 더 전에 출간된 책은 아동용 동화같은 커버 일러스트로 충격을 주었는데, 다시 예쁜 일러스트에 양장본으로 재출간된 것을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십여년 전만 해도 요네자와 호노부는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거의 전작 출간이 되었을 정도의 인기 작가라는걸 여실히 보여주는데, 이런 추리, 미스터리 장르물의 인기에 저도 약간이나마 기여(?) 하지 않았을까 싶어 살짝 뿌듯하기도 하네요.
이 작품은 시리즈 1편인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보다는 2편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과 더 비슷합니다. 조금 긴 호흡의 긴 이야기가 핵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말이죠. 주인공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거주하는 기라시에 매달 장소를 바꾸어가며 방화가 일어나고, 이를 쫓는 신문부 후배 우리노와 이에 얽히게 된 고바토와 오사나이의 이야기가 시간으로 따지면 2학년에서 3학년까지 거의 9개월에서 10개월 동안 펼쳐지거든요.
그런데 방화사건 쪽 주인공은 우리노이며 그와 교제하게 된 오사나이가 양념처럼 등장할 뿐이고, 고바토가 다른 여자 친구 나카마루와 교제하며 일상계 추리를 펼치는 이야기는 서로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는게 특이합니다. 이러한 고바토의 일상계 이야기는 다른 일상계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대단한 사건들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나카마루와 함께 데이트를 가던 코바토가 만원 버스에서 누가 버스에서 먼저 일어날 것인지를 추리하고, 나카마루가 이야기해 준 자신의 오빠에게 있었던 기묘한 도난사건에 대해서 추리하고, 헤어지기 직전 나카마루가 토마토를 싫어하는게 아닌가하고 추리하는 세편 정도?의 사건이 등장하죠.
버스 이야기는 추리에 비하면 분량이 과할 정도로 길어 별로였고, 토마토 이야기는 정말로 스쳐지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하는 나카마루의 오빠가 3일간 여행 갔다 온 후 집에 유리창에 깨져있고 누군가 침입했지만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기묘한 도난사건 이야기는 꽤 괜찮았어요. 조금 깊게 들어가면 그동안 오디오 알람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몰랐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설령 이런 일이 생겨도 집 주인을 부르지 무단 침입은 하지 않겠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아요. 이야기 전부 다 소소하니 심심하지만 담백해서 일상계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그런데 연쇄 방화 사건 쪽은 개인적으로 불만이었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나름 번득이는 부분이 있어요. 특히 연쇄 방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가 괜찮거든요. 우리노가 다음 번 방화 장소를 추리해 낸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노의 친구로 범인인 히야가 우리노의 기사를 보고 그곳에 불을 질렀다는 진상이 그것인데 상당히 의외성이 있어 감탄이 나올 정도였어요. 우리나라 영화 <<밀정>>에서도 등장했었던 간단한 트릭으로 용의자를 좁히고, 진범을 추리해 내는 과정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제대로 된 추리물은 아닙니다. 거의 전편에 걸쳐 탐정역을 수행하고 온갖 추리를 펼친 우리노의 마지막 추리쇼를 박살내기 위한 오사나이의 복수극일 뿐이에요. 복수를 위한 오사나이의 공작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고요.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해있던 우리노와의 통화 당시 고의로 기차 소리를 들려주어 현장 근처로 오해하게 만들고, 범행 현장 근처에 서점에서 책을 산 영수증을 우리노의 눈에 띄는 곳에 놔 두는 식인데 우리노가 이를 추리해낸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렇게 해서 자신을 범인으로 오해하게 만든 의도가 불분명하거든요. 마지막 순간 추리쇼를 펼친 우리노에게 면박을 주고 재기불능 수준의 창피를 주기 위해서? 복수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모든게 작위적입니다.
또 정통 추리물이라면 동기가 무엇인지를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우리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그런 자각이 전무하다는 것도 실망했던 부분입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도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요. 이래서야 잘 된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고바토가 마지막에 구리킨톤을 먹으며 오사나이가 우리노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5월 이후라고 추리해내고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멋대로 오사나이에게 키스하려 했기 때문" 이라고 답하는 장면은 깔끔했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복수를 꾸밀 정도의 일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또 우리노는 명예욕은 있지만 사건에 열정적으로 뛰어든 좋은 녀석인데 이쓰카이치의 기사로 확인 사살까지 당하니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쓴 이유는 작가의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동일한 느낌의 또다른 일상계 시리즈인 고전부 시리즈와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서겠죠. 고바토가 마지막에 추리를 통해 자기 만족을 채우는 인물이라는 걸 깨닫는다던가, 오사나이는 대단한 행동력과 책략을 갖춘 팜므파탈로 묘사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소시민을 꿈꾸는 고바토 죠고로와 회색을 신봉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의 캐릭터부터가 완벽하게 겹치기에 이번 기회에 선을 그은 거죠. 시리즈 다음 작품이 출간된다면 고바토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들어 추리를 펼치고, 오사나이는 추리를 위한 각종 작전을 짜내고 실행하는 행동대장 역으로 묘사되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큰 변화가 작품에 좋게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바토야 그렇다 쳐도 오사나이 캐릭터 변화가 문제에요. 앞서 말씀드린 억지스러운 복수극 전개가 모두 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냥 예전처럼 한 발자욱 물러나 사건을 추리하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지금은 여러모로 작위적이고 억지스럽기만 해서 별로였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일상계 추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드는 구성은 좋고, 추리적으로도 눈여겨 볼 부분도 제법 됩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해요. 억지스럽게 설정까지 바꾸어 가며 시리즈를 이어나가느니 그냥 고전부 시리즈에 집중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 작품은 시리즈 1편인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보다는 2편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과 더 비슷합니다. 조금 긴 호흡의 긴 이야기가 핵심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말이죠. 주인공 고바토와 오사나이가 거주하는 기라시에 매달 장소를 바꾸어가며 방화가 일어나고, 이를 쫓는 신문부 후배 우리노와 이에 얽히게 된 고바토와 오사나이의 이야기가 시간으로 따지면 2학년에서 3학년까지 거의 9개월에서 10개월 동안 펼쳐지거든요.
그런데 방화사건 쪽 주인공은 우리노이며 그와 교제하게 된 오사나이가 양념처럼 등장할 뿐이고, 고바토가 다른 여자 친구 나카마루와 교제하며 일상계 추리를 펼치는 이야기는 서로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는게 특이합니다. 이러한 고바토의 일상계 이야기는 다른 일상계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대단한 사건들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나카마루와 함께 데이트를 가던 코바토가 만원 버스에서 누가 버스에서 먼저 일어날 것인지를 추리하고, 나카마루가 이야기해 준 자신의 오빠에게 있었던 기묘한 도난사건에 대해서 추리하고, 헤어지기 직전 나카마루가 토마토를 싫어하는게 아닌가하고 추리하는 세편 정도?의 사건이 등장하죠.
버스 이야기는 추리에 비하면 분량이 과할 정도로 길어 별로였고, 토마토 이야기는 정말로 스쳐지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헤비메탈 음악을 좋아하는 나카마루의 오빠가 3일간 여행 갔다 온 후 집에 유리창에 깨져있고 누군가 침입했지만 없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기묘한 도난사건 이야기는 꽤 괜찮았어요. 조금 깊게 들어가면 그동안 오디오 알람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몰랐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 설령 이런 일이 생겨도 집 주인을 부르지 무단 침입은 하지 않겠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는 않아요. 이야기 전부 다 소소하니 심심하지만 담백해서 일상계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그런데 연쇄 방화 사건 쪽은 개인적으로 불만이었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나름 번득이는 부분이 있어요. 특히 연쇄 방화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가 괜찮거든요. 우리노가 다음 번 방화 장소를 추리해 낸 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노의 친구로 범인인 히야가 우리노의 기사를 보고 그곳에 불을 질렀다는 진상이 그것인데 상당히 의외성이 있어 감탄이 나올 정도였어요. 우리나라 영화 <<밀정>>에서도 등장했었던 간단한 트릭으로 용의자를 좁히고, 진범을 추리해 내는 과정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제대로 된 추리물은 아닙니다. 거의 전편에 걸쳐 탐정역을 수행하고 온갖 추리를 펼친 우리노의 마지막 추리쇼를 박살내기 위한 오사나이의 복수극일 뿐이에요. 복수를 위한 오사나이의 공작도 억지스럽기 짝이 없고요.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해있던 우리노와의 통화 당시 고의로 기차 소리를 들려주어 현장 근처로 오해하게 만들고, 범행 현장 근처에 서점에서 책을 산 영수증을 우리노의 눈에 띄는 곳에 놔 두는 식인데 우리노가 이를 추리해낸다는 보장도 없지만 이렇게 해서 자신을 범인으로 오해하게 만든 의도가 불분명하거든요. 마지막 순간 추리쇼를 펼친 우리노에게 면박을 주고 재기불능 수준의 창피를 주기 위해서? 복수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 모든게 작위적입니다.
또 정통 추리물이라면 동기가 무엇인지를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우리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그런 자각이 전무하다는 것도 실망했던 부분입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도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요. 이래서야 잘 된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고바토가 마지막에 구리킨톤을 먹으며 오사나이가 우리노에게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5월 이후라고 추리해내고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멋대로 오사나이에게 키스하려 했기 때문" 이라고 답하는 장면은 깔끔했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복수를 꾸밀 정도의 일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또 우리노는 명예욕은 있지만 사건에 열정적으로 뛰어든 좋은 녀석인데 이쓰카이치의 기사로 확인 사살까지 당하니 불쌍하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쓴 이유는 작가의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동일한 느낌의 또다른 일상계 시리즈인 고전부 시리즈와 명확하게 구분하기 위해서겠죠. 고바토가 마지막에 추리를 통해 자기 만족을 채우는 인물이라는 걸 깨닫는다던가, 오사나이는 대단한 행동력과 책략을 갖춘 팜므파탈로 묘사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소시민을 꿈꾸는 고바토 죠고로와 회색을 신봉하는 에너지 절약주의자 오레키 호타로의 캐릭터부터가 완벽하게 겹치기에 이번 기회에 선을 그은 거죠. 시리즈 다음 작품이 출간된다면 고바토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들어 추리를 펼치고, 오사나이는 추리를 위한 각종 작전을 짜내고 실행하는 행동대장 역으로 묘사되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큰 변화가 작품에 좋게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바토야 그렇다 쳐도 오사나이 캐릭터 변화가 문제에요. 앞서 말씀드린 억지스러운 복수극 전개가 모두 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에요. 그냥 예전처럼 한 발자욱 물러나 사건을 추리하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지금은 여러모로 작위적이고 억지스럽기만 해서 별로였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일상계 추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드는 구성은 좋고, 추리적으로도 눈여겨 볼 부분도 제법 됩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해요. 억지스럽게 설정까지 바꾸어 가며 시리즈를 이어나가느니 그냥 고전부 시리즈에 집중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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