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9/01/27

Uncle Drew (2018) - 찰스 스톤 3세 : 별점 2점



덱스는 길거리 농구 대회에 나가기 위해 캐스퍼를 중심으로 팀을 꾸려 연습하지만 옛 라이벌인 무키에게 캐스퍼를 빼앗긴 후 팀을 잃고 만다. 새롭게 팀을 꾸리려 노력하던 그는 30년 전 길거리 농구의 전설이었던 엉클 드류를 만나게 되고, 엉클 드류는 과거 자기의 팀을 다시 꾸리는 조건으로 덱스와 손을 잡는다.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급 광고인 펩시 콜라의 <<엉클 드류>> 시리즈를 영화로 옮긴 작품.
원전이 된 광고도 좋아할 뿐 아니라 NBA를 좋아하고, 엉클 드류 카이리 어빙 뿐 아니라 제가 좋아했던 과거의 스타인 레지 밀러에 샤킬 오닐, 크리스 웨버 등이 출연한다고 해서 관심갔던 차에 출장가는 비행기에서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완전 실망스러웠어요. 저는 광고의 설정을 따 오던가 했을 줄 알았는데 영화는 진짜 "노인" 들로 등장하거든요. 아무리 NBA 스타들이라고 하더라도 70이 넘은 노인들이 길거리 농구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우승한다는건 무리죠. 물론 꾸준한 노력으로 최소한의 수준은 유지한다고 칩시다. 하지만 작 중에서 엉클 드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30년 전 팀 해체 후 농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묘사됩니다. 심지어 "부츠" 네이트 로빈슨은 휠체어에 탄 지도 한참이고요. 이들이 한창 운동 능력이 절정에 오른 젊은이들을 상대해서 이긴다? 솔직히 말도 안됩니다. 최소한 <<록키 발보아>>에서처럼 상대방이 부상을 입었다는 설정 정도는 등장했어야 합니다.
스토리 전개도 엉망이에요. 엉클 드류가 덱스와 함께 뛸 생각을 하는 것도 급작스럽지만 팀원을 다시 모으는 과정도 너무 쉽고, 그나마 갈등을 빚었던 "빅 펠라" 샤킬 오닐과 엉클 드류의 앙금도 광속으로 해소되는 식으로 아무 생각없이 대충대충 넘어갑니다. 가장 압권은 프리쳐와 아내 베티 루의 갈등이죠. 프리쳐가 농구를 한다고 떠나자 베티 루는 그야말로 목숨 걸고 그를 쫓는데 빅 펠라가 쓰러졌다는걸 알자 "그럼 내가 뛸께" 라고 하거든요. 이건 당쵀 뭔지...
억지스러운 장면도 너무 많아요. 휠체어에 앉아 있던 부츠가 엉클 드류의 농구화 선물을 받고 곧바로 일어서서 공 몇 번 튀기더니 덩크를 하는게 대표적이죠. 엉클 드류가 아니라 지저스 크라이스트인가 봅니다. 마지막에 덱스가 무키를 페인트로 제끼고 3점 슛을 성공시켜 우승한다는 결말은 식상함의 극치를 달리고요. 이럴 거라면 광고의 설정을 따와서 위기에 처한 덱스가 우연히 NBA 선수 카이리 어빙을 노인으로 분장시켜 팀에서 뛰게 한다는게 훨씬 나았을거에요.

캐스퍼 역을 맡은 올랜도 매직의 젊은 스타 애런 고든을 비롯하여 카이리 어빙 등 선수들의 개인기, 쇼다운은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NBA 하이라이트와 비교해서 딱히 장점이 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볼 만했던 장면이라면 엉클 드류와 팀원들이 클럽에서 댄스 배틀을 벌이는 장면 정도? 대역인지는 모르겠지만 카이리 어빙 및 다른 선수들의 화려한 춤사위는 NBA 팬에게는 색다른 볼거리였어요. 프리쳐의 세례 장면 등 웃기는 장면도 제법 있고요.

그러나 이 정도 장점으로 단점을 덮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NBA의 오랜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볼 필요는 없습니다.

2019/01/26

위작의 기술 - 노아 차니 / 오숙은 : 별점 4점

위작의 기술 - 8점
노아 차니 지음, 오숙은 옮김/학고재

역사적인 위조와 사기에 대한 논픽션
유명한 사건 위주로 나열했던 다른 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위작을 만들고 위조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점으로 자신이 천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위조를 다룬 <<천재성>>, 작품을 감정하는 사람들의 자존심 때문에 사건이 벌어진 에피소드들이 수록된 <<자존심>>, 미술계와 전문가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위조가 시작된 이야기들을 다룬 <<복수>>, 위조 경력이 밝혀진 후 오히려 부와 명성을 누린 사람들을 다룬 <<명성>>, 순수하게 범죄 목적이었던 사건들인 <<범죄>>, 여러 기회주의자들에게 이용된 딱한 위조꾼이 등장하는 <<기회주의>>, 가장 강력한 동기인 돈에 얽힌 사건들인 <<돈>>, 단순히 미술계가 아닌 정말로 큰 권력에 대한 이야기인 <<권력>> 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지 재미 위주가 아니라 미술계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담아 정성들여 쓴 글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감정" 이라는 행위에 대한 불신이 담겨있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감정이 아니라 과학에 의한 판정도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기도 했고요. 우리나라의 가짜 반 고흐 그림 사건처럼 과학적인 조사로 손쉽게 범행이 밝혀지는 경우도 많지만 <<갤러리 페이크>>에서 위조품 제작 시 위조품과 같은 시기의 작품을 재료로 이용했던 것 처럼 요새 위조꾼들은 이마저도 이용한다고 하니까요. 
단순한 위조가 아니라 위조인지, 아닌지 모호한 달리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걸 생각하게 만듭니다. 피트쇼트라는 인물이 달리의 후반기 작품을 그렸다는건 거의 정설이지만 달리는 이 작품들을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달리가 끝까지 예술적 마력을 지녔다고 믿게 만드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는 이야기인데 아무리 다른 사람이 그렸다고 하더라도 작가가 서명하고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한다면 이게 과연 위조, 위작일까? 라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공인하고 작품의 수준에 문제가 없다면 별 문제는 없지 않다고 생각되는 쪽인데, 실제로도 이는 가짜나 위작이라고 주장하기 쉽지 않다는군요.

당연히 위작을 만드는 방법, 출처를 위조하는 방법 등 위작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갤러리 페이크>>를 읽었다면 친숙한 여러가지 방법, 기술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그림을 그린다면 상당히 유용할 정보도 많아요. 과거 사용된 카본블랙 잉크는 숯검정에 기름이나 풀, 고무질같은 고착제를 섞어 간단히 만들 수 있다던가, 유명한 위조꾼 헵번이 추천하는 거장의 작품을 베끼기 위한 이상적인 '위조꾼의 팔레트 (연백, 옐로 오커, 크롬 옐로, 로 시에나, 레드 오커, 번트 시에나, 버밀리언, 로 엄버, 번트 엄버, 테르 베르데, 순수 울트라 마린, 아이보리 블랙의 12가지)' 같은 것이 그러합니다. 

사건 자체가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바스키아가 죽기 전 친하게 지내던 마약상 집 철문에 그림을 그리고 얼마 후 죽었는데 마약상이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인증받으려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스키아 유산 관리 위원회에서는 진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 바스키아의 죽음에 한 몫 했을 마약상에게 큰 돈을 쥐어주고 싶지 않은 마음 탓이 컸을거라고 하네요.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는 죽은 바스키아를 위해서는 공식 작품으로 인정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한 작품이라도 더 알려지는게 작가에게는 좋은 일일테니까요.
미술계 이외의 유명한 위조, 위작에 대한 소개도 충실해서 하워드 휴즈 자서전 위조나 가짜 히틀러 일기나 토리노의 성 수의 등 다양한 위작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중 콜럼버스 전 바이킹이 북아메리카에 도달했다는 증거인 "빈란트 지도"가 위조임이 판명되었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아요.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위조하여 괴링에게 팔아넘긴 반 메헤렌 이야기 같이 다른 유사한 책들에 등장했던 유명 범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거든요. 하지만 반 메헤렌이 재판에 회부된 후 오히려 괴링을 속였다는걸 실제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 증명했으며, 덕분에 '나치 협력자'에서 '괴링에게 사기 친 남자'라는 평판을 얻어 대중의 영웅이 되었다던가, 괴링이 처형 직전에 이 사실을 알게되었다는 등의 후일담이 실려있는 식으로 디테일이 압도적이라는 차이는 분명합니다. 특히나 사건들에 관련된 도판은 정말이지 다른 유사 도서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강력한 장점이고요.

이렇게 재미와 현학적인 지적 욕구 모두를 만족시키는 좋은 책입니다. 동서고금의 유명 위작, 위조 사건에 대해 통사적으로 훝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명 위작가들과 위조품에 대한 일람이 가능할 뿐 아니라 사실로 밝혀진 이야기는 후일담까지 충실하다는 점에서 위작, 위조에 대해 관심있으신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기도 하고요. 번역과 도판, 만들어진 책의 완성도도 최고 수준이기에 제 별점은 4점입니다. 
약간 감점한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타 도서에서 이미 소개되었던 이야기가 제법 있고, 분류도 아주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어서인데 (자존심이고 뭐고 솔직히 돈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죠) 책의 가치를 훼손할 정도는 아닙니다.

2019/01/20

만족을 알다 - 애즈비 브라운 / 정보희 : 별점 2.5점

만족을 알다 - 6점
애즈비 브라운 지음, 정보희 옮김/달팽이

1798년, 일본 연호로 간세이 9년에 일본 에도 주변의 농가와 에도 시내 간다의 나가야, 이치가야의 무사 저택 3 곳을 방문하여 당시 농민과 상공인, 무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한 가상의 기행, 탐방문이자 미시사 서적.

농민은 자급자족, 상인은 편리함과 협력 중심으로 생활이 이루어지고 무사는 농민과 상인의 중간 정도의 삶으로 상당히 검소한 삶을 추구했다는 내용인데 사실 책이 쓰여진 목적은 당시 에도와 그 주변의 삶이 얼마나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절약적이었는지를 설명하며 이를 현대 사회에 도입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이네요. 실제로 이 정도였나? 싶은 의문이 생길만큼 당대 에도 주민들의 친환경 에코 라이프에 대한 칭송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옛날이 좋았다는 류의 이야기로 그치는 건 아닙니다. 이러한 삶을 현대 생활에 도입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잘 정리되어 있을 뿐더러 현 시점에 새겨들어야 하는 내용이 많거든요. 다양한 주택 건설에 응용된 친환경 소재에 대한 이야기 및 에너지 절약과 폐기물 제로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 산림 자원 보호에 대한 이야기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심지어 식생활마저도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 육류 중심의 식생활 대신 에도 시민들처럼 벼농사와 다양하게 자연으로 부터 얻을 수 있는 수확물, 그리고 어패류에 의존하는 생활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눈여겨 볼 만 했고요.
그런데 당시 농민들은 소출의 50%를 바쳐야 했고 아이들도 2명 이상 키우기는 힘들었다던가, 솜씨있는 목수라도 다다미 6장 정도에 불과한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살 수 밖에 없었고 무사마저도 텃밭을 가꾸어 어느정도 자급자족해야 했다는 팍팍한 삶에 대한 설명은 조금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까지 아끼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도 결국 삶의 질이 이 정도밖에 안된다면 뭘 위해 아끼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현실은 가혹한 법이겠지만 좀 너무합니다...

하여튼, 이러한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절약에 대한 설명도 나쁘지 않지만 당시 에도의 삶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디테일들도 최고입니다. 당시 주택이 어떻게 생겼고, 각 방들은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는지, 집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수리하는지, 당시 거리 풍경과 행상인들에 대한 소개 및 무사 저택에 대한 설명이 상세한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되기 때문이에요. 일러스트도 깔끔하지는 않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충분하고요. 사진을 찍어서 함께 소개해드리고 싶은데 제 형편상 그건 좀 힘들고... 궁금하시다면 이 링크로 한 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쪽 내용 중에서는 무사 저택의 구조가 아주 그럴듯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통풍과 환기에도 치중하며 자연을 집 안으로 들이는 일본 주거 공간의 진수라는 구조는 한 번 따라해 보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문제는 이 책에 나온대로 문을 열고 살면 겨울에는 정말 추울 것 같아 보인다는건데 일본인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던 것일까요? 하긴 지금도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추위에 강해 보이는걸 보면 예전부터 단련된 덕분이 아닌가 싶군요. 

이렇게 에도 시대 삶에 대한 디테일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았던 독서였습니다. 친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장황해서 지루한 면은 없지는 않으나 이 정도면 별점 2.5점은 충분하죠. 근대 직전 에도 주민들의 삶이 궁금하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특히 에도 문화를 좋아라하는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소타츠에게는 필독서라 생각됩니다. 먹거리에 대한 소개도 자급자족하는 농산물에서 시작하여 밥 짓는 방법이라던가 각종 절임과 같은 반찬, 장류, 행상인이 파는 음식들까지 상세하지는 않으나 적당한 수준으로 실려 있기도 하니까 말이죠.
아울러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시는 분들도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정말이지 저자의 주장대로 항상 편하게만 살려는 생각을 좀 버려야 할 때니까요. 

덧붙이자면, 다음에 일본에 가게 되면 이 책에 나온대로 다카나와 관문을 지나 니혼바시까지 7Km 정도 된다는 상가거리를 한 번 걸어서 지나가보고 싶어지네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2019/01/19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 나카야마 시치리 / 김윤수 : 별점 2.5점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 6점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엽기적인 살인 범죄가 잇달아 발생한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 고테가와는 과거 성범죄 등을 일으켰던 우범자 수사 중 알게 된 우범자 도마 가쓰오와 그의 보호 관찰관 우도 사유리와 친분이 생기지만 우도 사유리의 아들 마사토가 세번째 피해자로 발견되고, 피해자들의 성이 아-에-이.. 순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된 시민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급기야는 우범자 명단을 내 놓으라며 경찰서까지 습격하게 된다. 시민의 습격을 막던 고테가와는 시민들이 도마 가쓰오를 노린다는 우도 사유리의 전화를 받고 그를 구하려 반장 와타세의 도움을 받아 경찰서를 나서는데...

저자인 나카야마 시치리는 2010년 "고노미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대상을 받으면서 데뷰한 작가라는데 이력을 봤더니 10년도 안되는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쏟아내었더군요. 하지만 잘 모르는 작가이고 제목도 전혀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던 차에, 어디선가 괜찮은 작품이라는 리뷰를 얼핏 보고 출장 중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괜찮은 부분이 많더군요. 우선 엽기적인 범죄극에 형법 39조에 대한 비판이 곁들여져 사회파스러운 느낌을 주는게 좋았습니다. 저 역시도 최근 일어나는 흉폭한 범죄에 대해 더 강하게 단죄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범인이 심신 미약이었다던가, 단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형을 경감해준다는건 말도 안되죠. 짐승은 짐승답게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병자들이 회복해서 사회에 복귀하는걸 막자는건 아니지만, 그들의 회복을 지원하고 기다려주는건 죗값을 치룬 다음이어야 합니다. 이 작품은 절대로 회복되지 않고 다시 살인마로 돌변하는 정신 이상자와 그들의 끔찍한 범행 묘사를 통해 이에 대한 메시지만큼은 확실하게 전해줍니다. 참고로 제목의 "개구리 남자"는 범인이 개구리를 잔혹하게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 처럼 사람을 죽이고 다녀서 붙여진 별명인데, 그만큼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범행이 이어집니다.

전개도 탄탄하고 세련된 편입니다. 대표적인게 도마 가쓰오와 이름이 비슷한 나쓰오라는 소년의 과거 일화를 조금씩 소개해주면서 도마 가쓰오가 범인이 아닐까? 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주는 과정입니다. 
물론 나쓰오가 저지른 미카 살인 사건은 이미 앞부분에서 도마 가쓰오의 범행으로 소개된 '교살'이 아니기에 나쓰오는 도마 가쓰오가 아니라는게 밝혀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미카 사건 직후 시민의 한노 경찰서 습격이 몰아치기 때문에 고테가와가 도마 가쓰오의 집에서 그가 범인일 수 있다는 증거를 포착한 뒤 도마 가쓰오와 생명을 건 사투로 이어지는 과정은 위화감없이 진행됩니다. 경찰서 습격 장면 묘사는 그만큼 임팩트가 넘쳐서 독자가 딴 생각을 하기는 힘든 덕분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비록 본격물 수준의 대단한 트릭이 사용된건 아니지만 범죄 스릴러물로서의 완성도는 충분합니다. 특히 도마 가쓰오가 범인이었다고 마무리되는게 아니라 이 뒤에도 무려 두 번이나 반전!이 더 있다는게 돋보이는 점입니다. 단지 깜짝 반전이 아니라 나름대로 설득력도 높습니다. 
첫번째 반전은 우도 사유리가 진범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도 충분히 설명됩니다. 네번째 피해자 에토 가즈요시가 남긴 물어뜯은듯한 상처, 그녀가 과거 범행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는 묘사, 보험금 등 받을 수 있는 돈과 그녀의 주택 대출금이 일치한다는 등 여러가지 복선이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나쓰오였다는 진상은 살짝 서술 트릭 느낌도 들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부상을 입은 채 우도 사유리와 맞서 싸우는 고테가와에 대한 묘사는 흡사 <<검은 집>>의 클라이막스를 방불케했습니다.
마지막 반전인 오마에자키 교수가 흑막이었다는 결말도 좋습니다. 이 쪽은 증거보다는 형법 39조에 대한 복수라는 동기가 와 닿더군요. 우도 사유리와 같은 단순히 "돈" 이라는 측면 보다는 훨씬 그럴듯할 뿐더러 사회파 소설다운 느낌을 전해주어서 괜찮더라고요.
결국 풀려나게 된 도마 가쓰오가 자신이 "개구리 남자" 임을 자각하고 아-이-우-에-오 순으로 오마에자키 교수를 죽이러 가겠다고 결심하는 마지막 에필로그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의 에필로그를 연상케 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고요.

다만 경찰서 습격 이후의 묘사가 장황하고 강약조절에 실패하고 있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경찰서 습격에서 이미 한바탕 클라이막스를 거치고, 다시 도마 가쓰오와 고테가와의 목숨을 건 사투가 이어진 후, 또 다시 우도 사유리와 어둠 속에서 결전을 벌이는 식으로 강-강-강으로 이어지는 탓입니다. 덕분에 가장 중요한 우도 사유리와의 결전은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하게 됩니다. 목숨도 한 번 걸어야지 세 번이나 연속으로 걸면 값이 싸 보이게 마련이죠.
오마에자키 교수의 동기도 앞서 말씀드렸듯 설득력은 높지만 그가 우도 사유리를 다시 범죄로 인도했다는 이야기는 영 와 닿지 않아요. 사람의 정신과 기억을 마음대로 복사하고, 집어넣을 수 있다는건 말도 안되니까요. 설령 그녀의 악마성을 깨워 아들 살해까지 유도했다 하더라도 에토 가즈요시를 살해한 이유는 도무지 납득이 안 갑니다. 결국 도마 가쓰오가 범인으로 드러날 판인데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없습니다. 아울러 사유리가 오마에자키 교수가 지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하지 않은 이유 역시 불분명하고 말이죠. 싸이코 연쇄 살인마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도 석연치는 않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서스펜스 넘치는 전개에 더해 몇 번의 반전까지 제공한다는 점과 형법에 대한 비판 정신만큼은 괜찮은 작품입니다. 과유불급이라고 서스펜스가 지나친 탓에 표류해 버리는 후반부는 아쉽지만 추리, 스릴러물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하네요. 최소한 킬링 타임용으로는 충분한 수준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19/01/18

서치 (2018) Searching - 아니쉬 차간티: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이빗 킴은 사랑하는 아내 파멜라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로 고등학생인 딸 마고를 키우는 싱글 대디. 하지만 딸과의 거리감을 강하게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밤에 급작스럽게 걸려온 딸의 전화를 자느라 받지 못한 뒤, 만 하루가 지나서야 그녀가 실종되었다는걸 알고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의 부탁으로 딸의 SNS 계정에 접속한 데이빗은 그녀가 친구하나 없는 외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2019년 첫 감상한 영화네요. 얼마전 국내에서 개봉해서 깜짝 흥행한 스릴러로 짤막한 소개글이 아주 흥미로와서 관심이 있었는데 오랫만의 출장길 비행기 안에서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딸이 실종된 후 아버지가 그녀를 찾아 나선다는 조금은 뻔한 추리 스릴러인데 이 작품이 돋보이는 이유는 현대인이 많이 사용하는 컨텐츠와 솔루션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카메라는 데이빗의 행동을 기록하지 않아요. 페이스 타임, 각종 뉴스 화면, SNS 등 여러가지 메신저, 검색창 등으로 그의 행동이 드러나는데 이 과정에서 정말로 최신 IT 트렌드는 다 나오는거 같아요. 심지어 넷카마까지 등장하니 말 다했죠.

하지만 단지 트렌드에 편승하는 수준으로 그치는건 아닙니다. 데이빗의 개인적인 수사는 이런 편집이 아니었다면 관객에게 쉽게 설명되기 어려웠을거에요. 딸의 계정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과정이라던가 각종 검색어를 통한 검색, 그 외의 개인 정보에 의지한 수사 과정은 해당 컨텐츠와 솔루션 화면의 적절한 활용으로 이보다 더 나을 수 없을 정도로 명쾌하게 전달됩니다. 그 외의 각종 전개도 어떻게 이렇게 이어갈 수 있었는지 감탄이 나올 정도에요. 편집에 2년이나 걸렸다는 말이 이해가 될 정도니까요. 대표적인게 자신의 동생 피터와 마고의 관계를 의심한 데이빗이 설치한 몰래 카메라로 동생과의 갈등을 전개하는 장면입니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 로즈마리 빅이 사실은 아들이 마고를 절벽에서 밀어버린 사건을 덮기 위해 여러가지 공작을 펼쳐 범인까지 날조했다는 반전도 괜찮습니다. 경찰이 피해자 가족을 어떻게 속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상당히 높은 편이기도 하고요. 물론 로즈마리 빅이 데이빗을 속인거라는 진상이 드러나는 상황은 우연에 가깝고 별다른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지만 스릴러로서는 충분한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부녀지간,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내용으로도 마음에 들고요. 제가 딸 하나를 키우는 아빠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각종 컨텐츠와 솔루션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아이디어에 너무 집착한 면도 없지는 않습니다. 범인으로 날조한 희생양이 자살 직전 동영상을 남겼다는 설정은 솔직히 무리수죠. 피터 킴과의 SNS 대화가 중반 이후에 드러나는 등 헛점이 많은 것도 문제고요. 왜 경찰이 처음부터 마고의 노트북을 가져가서 조사하지 않았는지 솔직히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해피엔딩 정도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풀어주는게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싶고요. 딸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부녀의 관계가 좋아졌다는걸 더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그래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괜찮은 스릴러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직 감상하지 않으신 추리, 스릴러 애호가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9/01/13

시인장의 살인 - 이마무라 마사히로 / 김은모 : 별점 2.5점

시인장의 살인 - 6점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립 신코 대학의 미스터리 애호회 회장 아케치 교스케와 조수? 하무라 유즈루는 소녀 탐정 겐자키 히루코의 요청으로 영화 연구회 여름 합숙에 참가한다. 영화 연구회 합숙은 이상한 협박장 때문에 취소되기 직전이라 외부인의 참석을 허용했던 것. 그러나 합숙이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급작스러운 좀비떼의 습격으로 일행은 3명의 사망자를 낸 채 합숙 장소인 '자담장'에 갇히고 만다.
일행은 여러가지 바리케이트로 좀비의 습격을 막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기하는데 첫 날 밤이 지나고, 영화 연구회 회장인 신도가 좀비에게 물려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문제는 신도의 방은 좀비가 들어올 수 없는 밀실이었다는 점....


신인 작가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데뷰작으로 '2018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8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17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제1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 제27회 아유카와 데쓰야상 수상, 2018 서점대상 노미네이트' 등 온갖 상을 휩쓸었던 화제작.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유명세만 듣고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다라메 기관" 이라는 정체 불명의 연구소에서 마지막 테러를 위해 선택한 것이 좀비 바이러스의 살포로, 테러의 성공으로 수천명의 사람들이 감염된 후의 이야기를 다룬 좀비물이라는 점 때문에 말이죠.
사실 좀비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은 이미 좀비의 특성 자체를 핵심 트릭으로 써 먹은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이라는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살아있는 시체의 죽음>>은 미국을 무대로 시작부터 좀비물임을 드러낼 뿐더러 분위기가 살짝 블랙 코미디 느낌인데 반해, 이 작품은 초중반의 좀비 등장 전까지는 상큼한 대학교 신입생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대학생들의 여름 캠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전형적인 일본풍 청춘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학생 아리스" 시리즈가 갑자기 좀비물이 되다니! 덕분에 좀비가 처음 등장할 때는 상당히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좀비가 처음 주인공 일행을 습격하는 담력 시험에서 신코대학 미스터리 애호회 회장인 '신코의 홈즈' 아케치 교스케 (이름부터가 아케치 코고로와 가미즈 교스케에서 따왔잖아요) 가 바로 좀비에게 물려 이야기에서 퇴장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놀랐습니다. 물론 아케치 교스케는 이름과 별명만 거창한 단순한 추리 소설 매니아로 별다른 능력은 없으며, 진짜 명탐정은 겐자키 히루코라는 소개는 진작부터 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탐정 에가미 지로 정도였던 초반부 비중에 비하면 너무나 허무한 퇴장이었습니다. 흡사 영화 <<파이널 디씨젼>>에서 스티븐 시걸이 초반에 활약도 못하고 죽어버리던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어요.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다양한 수상 경력에 값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첫 사건인 영화 연구부 부장 신도 살인 사건이 그 중에서도 가장 괜찮아요. 밀실에서 좀비에 물려 죽었는데, 좀비가 어떻게 밀실에 들어갔는지? 에 대한 수수께끼가 핵심으로 신도의 연인인 호시카와의 존재와 좀비의 특성을 잘 활용한 괜찮은 트릭이 등장합니다. 좀비가 된 호시카와와 신도가 사투를 벌일 때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는지, 신도가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지 등 세세하게 파고들면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나무랄데 없죠.

허무하게 죽어버린 아케치 외의 다른 캐릭터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고전 본격물 애호가인지라 화자인 하무라가 밴 다인 (반 다인)과 쓰즈키 미치오도 모르는 미스연 회원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건 굉장히 와 닿더군요. (쓰즈키 미치오는 저도 잘 모릅니다만) 미스연 회원들이 즐겨 읽는다는 라이트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비판도 인상적이고요.
미스터리에 대해 잘 모르고, 태생적으로 사건을 불러 일으켜 희생자를 만드는 소녀탐정 히루코 설정도 좋아요. "천재지변급으로 희생자를 만드는 인물" 들인 코난김전일 캐릭터에 관련된 인터넷 농담을 조금 더 진지하게 구현해 놓았는데, 본인 스스로 희생자를 줄이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리를 한다는 이유는 충분한 설득력을 지닙니다. 하무라를 원한 이유가 '조수'가 있으면 조금 더 오래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그럴듯했고요.

그러나 두번째 살인 사건인 다쓰나미 살인사건부터는 여러모로 애매하네요. 범인의 원한이 아무리 깊다 한들 좀비가 된 다쓰나미를 또 죽인다는 범행을 저지른다는건 말도 안되니까요. 동상을 옮기는 등 엄청난 수고를 추가로 해야 할 뿐 아니라 지나치게 위험한 방법으로 자신과 다른 일행의 생명까지도 걸어야 하는 행위기 때문입니다. 동상을 이용해 다쓰나미의 몸무게 이상으로 탑승이 불가하게 조작해 놓았다 한 들, 좀비들이 다쓰나미를 끌어내 먹어 치우고 다른 좀비가 타고 2층으로 올라올 수도 있잖아요? 좀비 설정에 너무 무리수를 둔 느낌이었습니다. 이 범행 방식 보다는 차라리 범행 사전 준비를 위해 카드키를 바꿔치기하고, 그 순간에 CD 플레이어의 음악이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었어요. 세번째 살인 사건인 나나미야 살인 사건은 트릭도 뭐도 아니라서 딱히 설명할 것도 없네요.
마지막 대단원도 그닥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조금 실망스러웠고요. 좀비가 몰려드는 와중에 펼쳐지는 추리쇼라는 상황 설정만 긴박할 뿐, 내용은 딱히 새롭지 않았습니다. 범인도 하무라 아니면 시즈하라 정도로 압축되고 있던 상황이기도 하고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전형적인 좀비물을 청춘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와 엮어 본격물스럽게 만든 하이브리드함은 높이 평가하지만 첫번째 사건과 몇몇 디테일을 제외하고는 본격물로서의 가치는 아주 높지 않아 감점합니다.
하지만 분위기, 느낌은 나쁘지는 않아요. 전형적인 좀비 호러물을 박진감있게 묘사하여 독자를 사로잡는 맛도 분명 있고요. 1급 추리물은 아니지만 1급 오락물임에는 분명하다는 점에서 여러 상을 휩쓴 이유도 수긍은 갑니다. 좀비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인상적인만큼 좀비물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19/01/12

꼬마 니콜라 (양장) - 르네 고시니 글, 장 자크 상페 그림 / 윤영 외 : 별점 2.5점

꼬마 니콜라 (양장) - 6점
르네 고시니 글, 장 자크 상페 그림, 윤영 외 옮김/문학동네

르네 고시니와 장 자크 상페 컴비의 전설적인 명랑 아동 소설. 모두 5권의 책 - 꼬마 니콜라, 꼬마 니콜라의 쉬는 시간, 꼬마 니콜라의 여름방학, 꼬마 니콜라와 친구들, 꼬마 니콜라의 골칫거리 - 을 한 권의 양장본으로 묶은 책입니다. 850여 페이지라는 분량과 묵직하면서도 깔끔한 장정에 비해 3만원대 가격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다시 읽어보니 확실히 캐릭터 설정만큼은 빼어난 점이 있습니다. 오래전 명랑만화스러운 캐릭터이기는 한데 르네 고시니의 글과 장 자크 상페의 그림이 잘 어우러져 확실한 존재감을 느끼게 해 주거든요. 또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본다면 이런 류의 캐릭터 설정의 원조격이라고 해도 무방할테고요. 여러모로 무난한 주인공 니콜라, 먹보 알세스트, 부자집 아들 조프루아, 꼴지 클로테르, 경찰관 아들로 유일하게 호루라기를 가진 뤼퓌스, 학교짱인 외드, 선생님의 애제자인 모범생 아냥 등 학교 친구들은 물론 심지어 어른들까지도 그러합니다. 집안일에 별 관심이 없고 무언가 하려고 하면 어설픈 허당인 니콜라 아빠라던가 말썽장이들에게 항상 눈을 바라보라고 하는 부이옹 선생님 등 모든 캐릭터들이 독보적입니다.

하지만 뻔한 내용이 항상 똑같은 캐릭터들에 의해 반복되기 때문에 뒤로 가면 갈 수록 지루해집니다. 이야기는 대체로 비슷해요. 학교에서 무언가 이벤트가 열리는데 - 단체 사진, 건강 검진, 특별 수업, 장학사 방문 등 - 아이들의 장난으로 해당 이벤트가 파국으로 치닫는다던가, 누군가 특별한 아이템을 학교에 가지고 와서 그로 인해 소동이 벌어진다던가,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르는 누군가가 아이들 때문에 봉변을 당한다는 내용이 이어지거든요. 아이들 반응과 행동도 구체화된 캐릭터 이상의 무언가를 전혀 보여주지 못해서 지루하기는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나이가 들어서 읽으니 이러한 꼬마 니콜라와 친구들의 못말리는 장난이 재미있지가 않고 공포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서로 몇마디 말을 나누면 바로 싸움이 시작되고, 떼와 억지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딸아이 한 명을 키우는 입장에서 바라보니 이건 생지옥이 따로 없어 보였어요. 이런 아이들 수십명을 한 반에서 통제하고 가르치는 담임 선생님은 정말 성녀입니다. 교직이 왜 성직이라고 불리우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반세기 전 작품이기 때문이겠지만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서슴없이 따귀를 날리고 강하게 훈육하는 묘사도 섬찟했던 부분입니다. 뭐 등장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훈육하려면 어쩔 수 없었겠다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화나 교육이 아니라 바로 체벌로 들어가는 묘사는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추억으로 딸 아이에게도 권해줄까 싶어 구입했는데 이래서야 무리가 아닐까 싶네요. 딸아이에게는 이 폭력적인 작품보다는 <<피너츠>>를 권해줘야 겠습니다.

2019/01/06

돌이킬 수 없는 약속 - 야쿠마루 가쿠 / 김성미 : 별점 2점

돌이킬 수 없는 약속 - 4점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능한 바텐더 무카이는 사실 15년 전 호적을 구입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탄생한 사람으로 그 전에는 얼굴의 큰 반점 탓에 사람들이 기피하여 자잘한 범죄를 저지르며 먹고 살다가 야쿠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던 범죄자였다. 그리고 도주 중에 만난,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노부코로부터 복수를 약속하고 거액을 받아 새롭게 태어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노부코의 딸을 죽인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두 명의 범죄자가 풀려났다는 편지가 배달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의 가족들에게도 위해를 가한다는 협박이 이어지는데...


란포상 수상작가 야쿠마루 가쿠의 2015년 작품. 무려 15년 전 했던, 지키고 싶지 않은 약속을 지켜야 하는 딜레마도 흥미롭고 평범한 바텐더가 누명을 쓴 후 도주를 하면서 범인이 누군지 더듬어 가는 과정이 박진감있게 묘사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범인들의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옛 동창을 가장해서 편지를 보냈다는 아이디어도 좋았고요.

그러나 그 외에는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주인공 무카이와 범인, 그리고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가도쿠라와 이이지마의 관계입니다. 책 소개에서 "한 번 죄를 저지른 사람은 새 삶을 꿈꿀 수 없는 것일까?" 운운하는데 소갯글부터 오류투성이에요.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빚을 졌기 때문이고, 그것도 생명을 빚졌다면 생명을 걸고 갚아야 하는게 당연합니다. 한 여인이 죽기 전 전재산을 주면서까지 부탁한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는 무카이의 태도는 정말이지 납득하기 어려워요. 평온한 삶을 놓치기 싫어하는 소시민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는건 나름 설득력이 있긴 하지만 죽을 뻔한 사람을 구해주고 새 삶을 살게 해 주었다면 은혜갚을 생각을 해야죠. 노부코의 딸을 잔혹하게 능욕하고 살해한 가도쿠라와 이이지마는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원한 해결 사무소>> 급의 화끈한 복수가 이어져도 시원치 않을 판에 청부업자가 양심 운운하며 도망칠 생각이나 하는 판이니 이게 대체 뭔가 싶네요.
반대로 범인 오치아이가 무카이의 딸을 죽이려고 하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복수의 대상이 영 잘못됐잖아요? 가도쿠라와 이이지마가 출소하지 않더라도 복수를 하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을텐데 15년이나 기다린 이유도 잘 모르겠고 무카이의 모든 걸 빼았으려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방법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했을테니까요. 예를 들어 남편의 정체를 알고 배신감에 몸부림치는 무카이의 아내를 꼬셔서 결혼한다던가... 하여간 지금의 설정은 여러모로 억지스럽습니다.

전개도 여러모로 짜임새가 부족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개미지옥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무카이의 심리묘사는 괜찮은데 가도쿠라 살인사건 이후부터는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작위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이지마가 서둘러 도주하는 바람에 신발을 버려두고 가는데 신발 안에 GPS가 들어 있었다던가, 도주하다가 정말로 우연히 옛 피해자에 대한 탐문 조사를 벌여 피해자의 아들 이름이 고헤이라는걸 알게 된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대표적이죠. 
게다가 오치아이의 복수극임이 밝혀진 후 이어지는 급전개는 정말이지 가관입니다. 연인의 자살이 무카이 탓이라고 믿는 오치아이에게 그녀는 사실 친아버지에게 강간당했다는 진상을 털어놓고, 이를 고헤이가 짠하고 나타나서 사실이라고 말해주는 장면은 황당하기 짝이 없어요. 고작 이 정도로 마무리하려고 3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을 소모했나 싶어 화가 날 정도입니다.

또 범행 기도 당시 장갑을 끼고 있었기에 칼에 지문이 묻어있다면 당연히 바 내부 인물을 의심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데 이를 대충 넘기는 것도 문제에요. 이 부분과 오치아이가 초반에 만난지 15주년을 기념하는 건배를 제의한 날이 실제로는 다른 날이었다는 등의 단서를 연결하면 충분히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하긴 이 정도로 단서를 줘 봤자 오치아이가 15년을 기다린 이유가 설명되지 않아서 알아채기는 불가능했겠지만요. 
또 무카이가 다카토 후미야라는걸 아는건 노부코가 외에는 호적을 구해 준 마카베 밖에는 없다는건 분명 합리적 추론이지만 마카베가 이 정보를 십수년 뒤 복수극에 써먹을 이유는 없죠. 당연히 노부코가 나갔던 피해자 모임에서 관련된 연결고리가 생겼다고 보는게 타당한지 않나요? 최소한 고헤이에 대해 우연하게 알아채는 것 보다는 이 쪽이 설득력이 높아요. 여러모로 소득없고 전개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마카베 추적은 단순힌 분량 늘이기에 불과해 보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읽는 재미만큼은 괜찮지만 여러모로 문제가 더 크기에 감점합니다. 가벼운 킬링타임용 읽을거리 이상의 책은 아니네요.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9/01/05

밥상 위에 차려진 역사 한 숟갈 - 박현진 : 별점 2.5점

밥상 위에 차려진 역사 한 숟갈 - 6점
박현진 지음, 오현숙 그림/책들의정원

부제는 "역사 속 한 끼 식사로 만나는 음식문화사의 모든 것".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음식 관련 컬럼을 책으로 엮은 결과물로 모두 44개나 되는 컬럼이 실려 있는데 항목별로 다양한 음식들의 유래 등 역사를 비롯하여 음식 관련 기술과 문화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깊이있고 새로운 내용이 많아서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예를 들어 치즈를 응고하는데 사용되는 레닛은 생명 공학 기술로 대량 생산된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오래전 "에이브"에 포함되어 있었던 <<초원의 집>> 소설에서 치즈를 만들기 위해 어린 송아지를 도살하는 장면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데 다행히 지금은 어린 로라가 송아지와 생이별할 일은 없겠네요.

와인에 대해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의 포도 재배와 포도주의 역사에 대해 소개한 글도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포도를 으깨어 즙을 낸 뒤 서늘한 곳에 보관하여 야생효모가 발효시키는 방식의 서양식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즙을 쌀과 누룩에 넣는 방식이라는데 꼭 한 번 맛보고 싶어집니다. 고려 시대의 포도주는 포도즙, 찐 찹쌀, 소맥가루를 섞어 만들었다는데 그 맛이 아주 훌륭하다니까요. 전통주로 이런 술이 제조되어 시판되면 좋겠네요.
술 관련되어서는 막걸리에 대한 글도 기억에 남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고칼로리 식사를 하지만 미국인보다 건강한 이유는 레드와인을 마시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로 시작되는데 놀랍게도 막걸리는 와인보다도 더 건강에 좋다는 내용이거든요. 정확하게는 막걸리용 전통 누룩에는 급성 및 만성 위궤양 억제, 혈소판 응집에 의한 혈전 감소,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등의 효과가 있으며 항암물질 파네솔이 포도주, 맥주보다 10~25배 더 많이 들어 있는 등 놀라운 건강식이라니 이제부터는 술자리에서 막걸리를 애용해야겠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음식 관련 역사 - 게장은 무려 500여년 전 부터 만들어졌을 것이다, 17세기 전주 남부시장을 중심으로 퍼진 콩나물 비빔밥이 오늘날의 전주 비빔밥으로 발전하였다, 일본의 김초밥 후토마키는 도박장에서 간단하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초밥집에 주문하면서 탄생하였다, 결혼식 등 특별한 날에 국수를 먹는 이유는 오래전 밀이 아주 귀한 것이었던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등 - 와 토막 상식 - 쭈꾸미의 어원은 한자 속명인 죽금어竹今魚에서 비롯되었다, 조기助氣는 사람의 기운을 돋운다는 뜻, 굴비屈非는 이자겸이 귀양지에서 임금에게 굴비를 진상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으로 글자를 써서 보내어 유명해졌다 등 - 도 가득하여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신문 연재물답게 각 컬럼마다 길어야 5~6 페이지 분량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에요. 덕분에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으니까요. 깊이가 약간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판은 문제에요. 소개되는 음식에 대해서 단 한장의 가치있는 도판이 없고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일러스트만 몇 컷 실려있을 뿐이거든요. 또 소개되는 몇몇 요리는 별도의 페이지를 할애하여 레시피 형태로 수록되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테고요. 한마디로 책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디테일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짧은 분량임에도 가치있는 정보가 제법 된다는 장점은 높이 살 만 하지만 전반적인 완성도, 만듬새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해서 감점합니다. 음식과 요리 관련 이야기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