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약속 -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북플라자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능한 바텐더 무카이는 사실 15년 전 호적을 구입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탄생한 사람으로 그 전에는 얼굴의 큰 반점 탓에 사람들이 기피하여 자잘한 범죄를 저지르며 먹고 살다가 야쿠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던 범죄자였다. 그리고 도주 중에 만난,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노부코로부터 복수를 약속하고 거액을 받아 새롭게 태어나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노부코의 딸을 죽인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두 명의 범죄자가 풀려났다는 편지가 배달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의 가족들에게도 위해를 가한다는 협박이 이어지는데...
란포상 수상작가 야쿠마루 가쿠의 2015년 작품. 무려 15년 전 했던, 지키고 싶지 않은 약속을 지켜야 하는 딜레마도 흥미롭고 평범한 바텐더가 누명을 쓴 후 도주를 하면서 범인이 누군지 더듬어 가는 과정이 박진감있게 묘사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범인들의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옛 동창을 가장해서 편지를 보냈다는 아이디어도 좋았고요.
그러나 그 외에는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주인공 무카이와 범인, 그리고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가도쿠라와 이이지마의 관계입니다. 책 소개에서 "한 번 죄를 저지른 사람은 새 삶을 꿈꿀 수 없는 것일까?" 운운하는데 소갯글부터 오류투성이에요.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빚을 졌기 때문이고, 그것도 생명을 빚졌다면 생명을 걸고 갚아야 하는게 당연합니다. 한 여인이 죽기 전 전재산을 주면서까지 부탁한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는 무카이의 태도는 정말이지 납득하기 어려워요. 평온한 삶을 놓치기 싫어하는 소시민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는건 나름 설득력이 있긴 하지만 죽을 뻔한 사람을 구해주고 새 삶을 살게 해 주었다면 은혜갚을 생각을 해야죠. 노부코의 딸을 잔혹하게 능욕하고 살해한 가도쿠라와 이이지마는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원한 해결 사무소>> 급의 화끈한 복수가 이어져도 시원치 않을 판에 청부업자가 양심 운운하며 도망칠 생각이나 하는 판이니 이게 대체 뭔가 싶네요.
반대로 범인 오치아이가 무카이의 딸을 죽이려고 하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복수의 대상이 영 잘못됐잖아요? 가도쿠라와 이이지마가 출소하지 않더라도 복수를 하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을텐데 15년이나 기다린 이유도 잘 모르겠고 무카이의 모든 걸 빼았으려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방법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했을테니까요. 예를 들어 남편의 정체를 알고 배신감에 몸부림치는 무카이의 아내를 꼬셔서 결혼한다던가... 하여간 지금의 설정은 여러모로 억지스럽습니다.
전개도 여러모로 짜임새가 부족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개미지옥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무카이의 심리묘사는 괜찮은데 가도쿠라 살인사건 이후부터는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작위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이지마가 서둘러 도주하는 바람에 신발을 버려두고 가는데 신발 안에 GPS가 들어 있었다던가, 도주하다가 정말로 우연히 옛 피해자에 대한 탐문 조사를 벌여 피해자의 아들 이름이 고헤이라는걸 알게 된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대표적이죠.
게다가 오치아이의 복수극임이 밝혀진 후 이어지는 급전개는 정말이지 가관입니다. 연인의 자살이 무카이 탓이라고 믿는 오치아이에게 그녀는 사실 친아버지에게 강간당했다는 진상을 털어놓고, 이를 고헤이가 짠하고 나타나서 사실이라고 말해주는 장면은 황당하기 짝이 없어요. 고작 이 정도로 마무리하려고 3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을 소모했나 싶어 화가 날 정도입니다.
또 범행 기도 당시 장갑을 끼고 있었기에 칼에 지문이 묻어있다면 당연히 바 내부 인물을 의심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데 이를 대충 넘기는 것도 문제에요. 이 부분과 오치아이가 초반에 만난지 15주년을 기념하는 건배를 제의한 날이 실제로는 다른 날이었다는 등의 단서를 연결하면 충분히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하긴 이 정도로 단서를 줘 봤자 오치아이가 15년을 기다린 이유가 설명되지 않아서 알아채기는 불가능했겠지만요.
또 무카이가 다카토 후미야라는걸 아는건 노부코가 외에는 호적을 구해 준 마카베 밖에는 없다는건 분명 합리적 추론이지만 마카베가 이 정보를 십수년 뒤 복수극에 써먹을 이유는 없죠. 당연히 노부코가 나갔던 피해자 모임에서 관련된 연결고리가 생겼다고 보는게 타당한지 않나요? 최소한 고헤이에 대해 우연하게 알아채는 것 보다는 이 쪽이 설득력이 높아요. 여러모로 소득없고 전개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마카베 추적은 단순힌 분량 늘이기에 불과해 보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읽는 재미만큼은 괜찮지만 여러모로 문제가 더 크기에 감점합니다. 가벼운 킬링타임용 읽을거리 이상의 책은 아니네요.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