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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박물관 보는 법 - 황윤 : 별점 3점

박물관 보는 법 - 6점
황윤 지음, 손광산 그림/유유

부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감상자의 안목". 간략한 책 소개와 부제를 보고 다양한 박물관에 대해 어떤 것을 관람하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실용서라 생각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제 생각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우리나라 박물관과 유물 수집가의 역사를 주로 다루고 있거든요. 일종의 미시사 서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을 정도입니다.

책은 을사늑약 이후 일본의 도굴꾼이 창궐했다는 1909년 <<대한매일신보>>의 기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다행히 1908년 왕립 이왕가 박물관이 세워진 이후, 시장에 나도는 유물들을 웃돈을 얹어 구매함으로써 유물의 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1908~1917년 까지 왕실이 수집한 유물의 규모는 무려 1만 122점, 구입비만 21만원이었다고 하니 대단합니다. 1원이 5만원 정도라고 한다면 100억원 정도 쓴거니까요. 특히나 국립 중앙 박물관의 핵심 유물인 "금동반가사유상"을 1912년 2,600원이라는 거금에 구입한 것이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매자 일본인 고미술상은 경주 남산 기슭에 있는 어느 절에서 찾아낸 이 유물을 40원이라는 금액에 사들인 것이라고 하니 정말 남는 장사 했네요. 천벌이나 받아라! 여튼 이왕가 박물관 덕에 해외로 유출되지 않았으며 지금 보험 평가액만 500억원 수준이라니 다행일 뿐입니다.
다음에 설립된 것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입니다. 식민 통치의 일환인데 총독부의 권력을 앞세워 1930년대 말에는 1만 4천점이 넘는 막대한 전시품을 유치했다고 합니다. 이 때 일본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본국 총리로 임명되어 귀국할 때 자신이 수집한 유물을 기증했는데 여기 포함된 것이 또다른 금동반가사유상이었습니다! 본인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그나마 좋은 일을 해 준 것은 고맙네요.

그 뒤에는 유물 수집가와 그들이 수집한 유물들 이야기입니다.  간송 전형필이야 너무 많이 접해보아서 조금은 식상했습니다만 이외의 인물들도 소상하게 다루어주고 있습니다. 악명높은 유물 반출범 오구라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해 주기 때문인데, 이 중 인상적인 것은 조선 최상류층의 친일파 의사 박창훈과 서민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산 성모 병원을 세운 박병래 이야기입니다. 박창훈은 치부의 대상으로 유물을 수집한 뒤 1940~41년 사이 소장품 전부를 경성미술구락부에 모두 팔게 됩니다. 거의 600점 가까운 소장품을 4000~7000원 사이의 고액에 팔았다니 어마어마한 돈이죠. 해방 후에도 승승장구했다고 하니 입맛이 씁니다. 반면 박병래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백자 중심의 수집을 이어간 뒤 후일 소장품 전부를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기증합니다. 국립 중앙 박물관에 가서 유물 카드에 '수정 (박병래의 호)'가 적힌 유물은 관심있게 봐 두어야 겠어요.

또한 출신 대학이 아니라면 쉽게 가보지 못할 대학 박물관에 대한 상세한 정리도 눈길을 끕니다. 친일파로 유명한 김활란이 이화여대 박물관을 위해서는 대단한 활약을 보였다는 일화가 특히 재미납니다. 박물관의 상징인 국보 백화철화포도문 항아리를 1960년대 1,500만원 (현재 시세로 30억 이상)에 구입한 것이 그것인데, 이 항아리는 장택상의 소유로 그가 야당 지도자로 활동할 때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내 놓은 것이라는 것은 처음 알게된 사실입니다. 

이어서 사립 박물관과 사립 미술관이 소개됩니다. 미국의 게티 미술관을 소개하며 진정한 문화재단의 역할을 알려주는데 한국 기업 휘하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는 아무래도 요원한 일이겠죠.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호림 박물관이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제 공부가 부족한 탓에 호림 박물관은 가본적이 없는데 근시일내에 꼭 한번 가 봐야 겠습니다.

마지막은 근대 미술 및 천안의 씨킴과 아라리오 프로젝트, 아라리오 뮤지엄 소개로 마무리됩니다. 이 부분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는데 한눈에, 책 한권을 통해 읽게 되니 뭔가 통사적인 흐름이 느껴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

이러한 미시사적 이야기는 물론, 박물관별로 주요 소장품도 함께 소개됩니다. 이런 점에서는 원래의 제 생각과 다르지 않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주요 소장품이 관람할 때 가장 체크해야 할 것들일테니까 말이죠. 부록으로 국립 중앙박물관의 경우 간략한 약도와 최적의 동선도 수록되어 있고요.

책의 저자는 황윤으로 역사학자입니다. 저자에 대해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 박물관과 유물에 대한 애정만큼은 깊이 느껴졌습니다. 230여페이지라는 적절한 분량, 책날개도 없는 오래전 문고본 형태의 심플한 디자인에 적절히 삽입된 정밀한 일러스트도 마음에 들고요.

단 불필요한 장식, 군더더기를 덜어내어 (심지어 표지조차 2도 인쇄에 불과합니다) 보급형 책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알겠지만 9,000원이라는 정가가 적합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더 저렴하던가, 아니면 조금만 가격을 올려서 표지 정도라도 딴딴하게 (?) 만드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박물관을 좋아하시고 우리 유물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꼭 한번 보실만한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저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에 실린 박물관별 꼭 보아야 할 유물 목록을 요약하며 글을 마칩니다.

  • 국립 중앙 박물관 - 금동반가사유상, 2층 기증 전시실의 수정 박병래가 기증한 백자들
  •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 백자철화포도문항아리
  • 호암미술관 - 15~16세기 초기 청화백자, <<수월관음도>> 등
  • 플라토 미술관 - 로댕의 <<지옥의 문>>, <<깔레의 시민>>
  • 부암동 서울 미술관 - 이중섭의 <<황소>> 외 근현대 작품.

2016/05/29

음식의 별난 역사 - 이안 크로프턴 / 김시원 : 별점 2.5점

음식의 별난 역사 - 6점
이안 크로프턴 지음, 김시원 번역/레몬컬쳐

'한 권으로 맛있게 즐기는 음식 교양서'라는 부제에 어울리는 음식에 대한 미시사 서적. 선사시대 ~ 21세기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역사에 이름을 남긴 다양한 음식들과 음식에 관련되었던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의 분량이 300여 페이지에 불과하기에 굉장히 짤막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데 핵심을 잘 전달하고 있어서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나쁘지 않은 수준 정도가 아니에요. 음식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음식과 관련된 유명인들의 명언이나 일화, 음식에 대한 다양한 저작물들의 인용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 정보를 얻으려 해도 얻기 힘든 이야기들이 많아서 꽤 만족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우선 '프렌치 토스트'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1346년 그레시 전투에서 프랑스 군에게 포박된 영국 기사들이 몸값 지급 때문에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후 독일에서 달걀물을 입힌 토스트를 '가난한 기사들'이라는 뜻의 '알메 리터'라 부르기 시작했고, 영국에서는 이를 '독일식 토스트'라고 부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동맹국을 기리는 의미로 '프렌치 토스트'라고 바꿔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 콘은 1904년 미국 세인트루이스 세계 박람회에서 페르시아식 패스추리를 팔던 시리아계 미국인 어니스트 함위가 접시가 떨어진 아이스크림 장수에게 패스추리를 콘 모양으로 말아준게 시초라고 합니다. <<오무라이스 잼잼>>에서도 등장했었던 이야기인데 이 책을 참고한 것일까요?

저작물에서 인용된 이야기로는 1729년 조너선 스위프트의 <<겸손한 제안>>이라는 단편 풍자소설이 인상적입니다. 12만 명의 어린 아이들 중 2만 명 정도를 식재료로 사용해야 한다는 제안인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어린아이 요리는 특히나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영주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요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라는 마지막 줄의 풍자로 마무리 됩니다. 지금 제안해도 풍자로서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비슷한 풍자로는 기근에 고통받는 아일랜드 농부들에게 '배가 고프면 뜨거운 물에 커리 가루를 타서 마시면 된다'고 말한 노퍽 공작에 대한 것도 재미있습니다. 런던 비프스테이크 클럽 회원이 <<타임스>>에 기고한 레시피로 제목은 "노퍽 커리 요리!!!". '멍청한 정도에 관계없이 살이 통통하게 찐 공작을 잡아 후추와 여러 향신료로 뭉근히 끓인다. 농부들이 모이는 날 내어 놓으면 좋은데 누구나 달려들어 이 요리를 자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있죠?

명언들은 신랄한 것들이 많습니다. 1799년 나폴리 대사 프란체스코 카라시올로의 말이 대표적이죠. '영국에는 종교가 60개나 되지만 먹을 만한 소스는 오직 한 개 밖에 없다'는 말인데 영국 요리가 형편 없음을 알리기 위함으로 보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먹을 만한 바로 그 한 개가 무슨 소스인지가 더 궁금합니다.
1880년 마크 트웨인이 <<유럽 방랑기>>에서 한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인은 라인의 화이트 와인을 아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이 와인과 식초의 차이점이라곤 라벨이 다르다는 것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역시나 돌직구 풍자의 대가 마크 트웨인답습니다.
당연히 좋은 말도 있습니다. 마티니를 찬양하는 말들이 그러한데 1949년 미국 소설가 버나드 디보토는 "키스보다도 좋은 게 바로 마티니다"라고 했고, 문예비평가 헨리 루이스 멩켄은 "영국 소네트에 견줄 수 있는 미국의 유일하게 완벽한 발명품"이라고 했으며, 동화작가 E.B. 화이트는 "평안함의 묘약"이라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소련의 니키타 흐루시초프까지 "가장 치명적인 무기"라고 불렀다네요. 소련에는 보드카가 있으니 좋은 승부가 되었을텐데 조금 의외군요.

레시피로는 록키 산맥에서 나는 굴, 록키 마운틴 오이스터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당연히 록키 산맥에서 굴이 날 리가 없고... 재료는 바로 황소 고환 되겠습니다. 황소 고환을 물에 넣은 뒤 껍질을 벗겨 타원형 모양으로 자르고, 밀가루 + 옥수수가루 + 달걀로 만든 튀김옷을 두른 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뒤 튀겨내는 요리입니다. 닭똥집 튀김과 비슷하리라 예상할 수 있는데 한번 먹어보고 싶습니다. 완전 맥주 도둑일 듯한 느낌!
그 외에도 벌레나 기묘한 재료들을 먹어본 사람들의 감상평 등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저자 이안 크로프톤은 일반인들이 쉽게 참고할 수 있는 도서를 주로 집필했다고 합니다. 국내 출간된 책은 이 책 포함 3권인데 여러가지 자료를 모아 요약하는 능력이 탁월해 보입니다. 정리와 요약의 달인이랄까요?

이렇듯 재미가 넘치지만 딱 한가지 아쉬운 것은 도판이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주요한 항목이라도 도판을 곁들였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15,000원이라는 가격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가성비가 좋다고 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음식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놓치기 힘든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음식 관련 잡학, 미시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6/05/24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2016) - 루소 형제 : 별점 3점



5월 6일 금요일에 본 작품. 리뷰가 늦었네요. 아이 유치원이 놀랍게도 휴원을 하지 않아 유치원을 보낸 뒤 오랫만에 와이프와 데이트 기분을 느끼며 감상하였습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세계관 작품인데 <<어벤져스>>시리즈처럼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지녔다는 미덕은 여전합니다. 거대 블록버스터답게 액션을 꽉꽉 채워 허전한 느낌을 주지 않는 것, 그리고 액션이 이야기 전개와 적절히 어우러지는 배분도 좋습니다.

  1. 나이지리아에서의 럼로우와 벌이는 일전 : 소코비아 협정을 둘러싼 어벤져스 멤버들간의 내분의 시작
  2. 와칸다 국왕을 사망케한 테러범으로 의심되는 버키 체포 작전 : 소코비아 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멤버들의 구금 등 압박 수위가 높아짐
  3. 제모에 의해 각성한 버키의 탈출 : 소코비아 협정 찬성파가 반대파인 캡틴을 추격하며 두 세력 모두 조력자를 모음
  4. 시빌 워 : 캡틴과 버키는 제모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동료들의 희생을 등에 지고 시베리아로. 워 머신은 중상.
  5. 캡틴과 윈터 솔져, 아이언맨의 승부 : 테러는 제모의 작전임을 토니 스타크도 알게 되지만 제모의 진짜 음모로 어벤져스는 분열함.

이런 식으로 긴 호흡의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면서 5개 정도의 대형 액션 시퀀스로 묶어서 설명해주니 이해도 쉬울 뿐더러 재미도 놓치지 않는 것 같아 아주 좋았어요. 신 캐릭터인 블랙 팬서를 위화감없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엮는 솜씨도 놀라왔고요. 그것도 그냥 등장하는게 아니라 캡틴과 버키, 아이언맨 다음의 비중을 보여주면서 멋지게 묘사되어 향후 시리즈를 기대케 하더군요.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액션씬의 완성도도 빼어납니다. 그 중에서도 누구나 입을 모아 말하듯 공학에서의 시빌 워는 정말 압권이에요. 액션에서 각 캐릭터들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파워 밸런스도 잘 맞춰서 누구 하나 빠지지 않게 액션을 선보이거든요. 특히나 신캐릭터 스파이더맨의 통통 튀는 매력과 앤트맨이 자이언트맨으로 변하는 깜짝 액션이 아주 볼만했습니다.
빌런인 제모도 슈퍼 악당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지만 동기와 목적이 확실할 뿐더러, 그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도 상당히 치밀하게 그려져서 만족스러웠어요. 제모를 통해 블랙 팬서가 한단계 성장한다는 일종의 에필로그도 나쁘지 않았고요.

허나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캐릭터들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에요. 대표적인 것이 버키를 지나칠 정도로 애지중지하는 캡틴의 모습에 대한 설득력 부족이죠. 누군가에게 조종을 받았건 말건, 토니의 부모님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은 버키가 맞다면 캡틴이 쉴드를 쳐 줄 수 없죠.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용서를 해 줄 수 있는 것은 토니이지 캡틴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찬성파와 반대파의 의견 대립도 딱히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찬성파 의견이 맞는다 생각하기도 하고요. 슈퍼 히어로들 때문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잖아요? 정의를 위해서라지만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자연재해와 다름없는 존재들이니만큼 엄격하게 관리되는게 당연할텐데 말이죠. 이래저래 캡틴의 이기주의적인 생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여 영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리고 스파이더맨의 등장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너무 어린게 아닌가 싶더군요. 물론 첫 등장은 고등학생이니 아주 잘못된 설정은 아닙니다. 허나 저에게는 별로였어요. 고등학생도 아니고, 그냥 동네 꼬마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거든요.

이렇듯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만한 세계관의 블록버스터에서 더 바라면 안되겠죠. 돈 쓴 느낌은 충분하고 볼거리도 많으며 재미도 놓치지 않은, 괜찮은 흥행작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6/05/22

피너츠 완전판 2 : 1953~1954 - 찰스 M. 슐츠 / 신소희 : 별점 3점

피너츠 완전판 2 : 1953~1954 - 6점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북스토리

1권에 이은 대망의 2권. 1953년에서 54년까지 연재된 분량을 담고 있습니다.

1권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익히 알려진 그림과 캐릭터들이 서서히 정립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1권에서의 냉소적이며 딱히 인기가 없지 않던, 나름 쿨한 남자로 등장해서 충격을 안겨 준 찰리 브라운이 2권에서부터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착하고 순진한, 우리 친구 찰리 브라운으로 그려지고 있거든요. 스누피 역시 스스로의 생각이 많아지는 식으로 단순한 강아지를 넘어선 특출난 캐릭터로 묘사되고요.
또 1권에서는 아기였던 라이너스가 어느정도 자라 천재 소년의 모습을 보여준다던가 (카드 쌓기나 네모난 풍선 불기와 같은 독특한 영역에 한합니다만), 더러움 대장인 픽맨의 첫 등장 같은 반가운 요소도 많습니다. 라이너스에게 담요가 심리적 안정을 준다는 에피소드 역시 처음으로 등장하고요!

한마디로 Oldies but goodies라는 표현이 적합한, 그런 작품입니다. 큰 웃음을 터트릴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어느 편을 읽어도 푸근하고 따뜻한, 아직은 착하고 순진한 시대를 느끼게 해 준다는 점에서 말이죠. 시대를 별로 타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의 팬이 아니시더라도 한번 읽어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나저나... 요새 아이들이 이 당시의 아이들처럼 밖에서 신나게 뛰어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른으로서 미안하기만 할 뿐입니다.

2016/05/21

여태까지 나만의 요코미조 세이시 순위 (2016.05.01 업데이트)

여태까지 나만의 요코미조 세이시 순위

2016년 5월 1일 기준, 원문 글 업데이트합니다. 여태까지 읽은 작품은 모두 11편이네요. 원탑 <옥문도> 외 상위권에 <가면 무도회>가 추가되었습니다. <여왕벌>은 다시 읽으면 점수가 조금 내려갈 듯 싶기는 한데.... 

1위 : 별점 4점
<옥문도>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특징적인 설정과 매력에 더하여 본격 추리적인 완성도도 빼어난 작품.

공동 2위 : 별점 3점
<팔묘촌>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이 적은 모험소설로 유사한 설정의 작품들의 아버지격.
오리지널로의 가치는 높으나 추리물로는 조금 부족한 것이 아쉽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
추리적으로 아주 완벽하지는 않지만 정교한 드라마가 잘 갖춰진 작품.
동기와 전개면에서 만화 김전일 시리즈와 가장 흡사한 느낌을 주는 친숙한 느낌이 좋다.
<여왕벌>
추리적으로는 시시하지만 악의없이 주변을 살육으로 몰고가는 순진한 미녀에 대한 묘사 하나 때문에라도 볼 가치는 충분.
<가면 무도회>
거장이 말년에 보여준 저력. 왜 거장인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작품.

공동 6위 : 별점 2.5점
<이누가미 일족>
너무 전형적이었을 뿐 아니라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묘사가 과했던 작품. 거기에 더해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다.
한마디로 명성에 비하면 실망스러웠다.
<밤산책>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괴담물로 본다면 차라리 더 낫지 않았을까.

7위 : 별점 2점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동기와 트릭 모두 부실하며 추리적으로도 별볼일없는 평균이하의 태작.
표제작 외의 낡아빠진 단편이 점수를 깎아 먹었다. 표제작만큼은 별점 3점.
<백일홍 나무 아래>
역시나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아버린 작품들.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헛점도 많다.

11위 : 별점 1.5점
<삼수탑>
여왕벌의 자가복제에 지나지않는 통속 치정 모험극. 시류와 유행에 영합하려한 전형적인 펄프픽션.


등외
<혼진 살인사건 / 나비부인 살인사건>
이전 "하서 추리문고"를 통해 읽었던 작품들. <혼진 살인사건>은 새로운 번역본으로 다시 읽어 추가하지만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아직 새 번역본으로 발표되지 않아 등수에 포함하지는 않았습니다.

2016/05/20

책장의 정석 - 나루케 마코토 / 최미혜 : 별점 2.5점

책장의 정석 - 6점
나루케 마코토 지음, 최미혜 옮김/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일본 유명 독서가 나루케 마코토가 자신이 책장을 관리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는 책. 목차는 모두 4개 - 책장에 대한 정의,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책장과 책 관리법, 저자가 생각하는 책 선택법과 독서법, 그리고 마지막 부록으로 웹에서 호평받는 서평 쓰는 법 -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확실히 고수의 책장 관리와 독서법은 남다른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확실한 자신만의 철학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놀랍기도 했고요.

저자의 책장 관리법을 설명드리자면 '보기 편할 것', '20퍼센트의 여백이 있을 것'과 '승부수가 될 책만 둘 것', '다양성은 갖되 위화감을 없앨 것', '언제나 변화할 것' 입니다. 보기 편한 것과 여백은 그렇다 치고, 승부수가 될 책만 둔다는 것은 좀 독특한 논리더군요. 소설이나 만화는 일절 꽂지 않고 오로지 논픽션 중심으로만 책장을 관리합니다는 것으로, 소설과 만화는 이미 완성되어 있어서 정보의 업데이트가 필요 없기에 책장에 계속 남아있게 되며 결국 공간을 차지하게 되어 나중에는 버리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양성은 테마를 정해 두는 것입니다. 저자의 테마는 '남들이 읽지 않는 재미있는 책' 이며, 테마는 약 5년 정도? 주기로 바꾸면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언제나 변화하는 책장'이 바로 책장 관리의 핵심입니다. 우선 앞으로 읽을 책,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두는 공간인 <신선한 책장> (장소는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며 편안한 곳에, 책을 눕힌 채로 놓고 책등의 제목이 보이게 쌓는, 즉 서점의 '평대' 느낌)이 있습니다. <신선한 책장>에서 다 읽은 책을 <메인 책장>으로 옮기는 것이죠. <메인 책장>에 넣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자의 기준은 1. 재미있는가 2. 새로운가 3. 정보가 많은가 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20퍼센트의 여백과 같은 공간 관리에 신경쓰며 주, 혹은 한 달에 한 번 <메인 책장>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책장이 꽉 차면 결국 책을 처분해야 하지만 나름 선별한 것이라 버리기 어려우면 시간을 두고 고민할 수 있게 따로 공간을 만들어 관리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관리하면 역사 관련 서적은 어떻게 하는지 좀 궁금해집니다. 역사는 정보가 새롭게 바뀔 여지가 아무래도 적잖아요? 이미 정해진 과학, 수학 쪽 논픽션도 마찬가지일테고요. 또 정말로 '소장하고' 싶은 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물어보고 싶네요. 1년에 1~2권만 건진다고 해도 수십년이면 엄청 많아질텐데 말이죠.

이러한 책장 관리법 외에 저자가 추천하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 딱히 언급할 건 없습니다. 하지만 독서법에서 포스트 잇을 유용하게 활용한다는 것은 괜찮더군요. 요건 바로 따라해봐야 겠어요.

마지막 서평 쓰는 법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좋은 책만 서평을 쓴다는 점에서 저와 차이는 있지만 같이 서평, 독서 감상문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 참고될만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작법 측면에서 '1) 책 제목은 반드시 겹화살괄호로 쓸 것 2) 어미는 통일 할 것  3) 수식어와 피수식어를 너무 떨어뜨리지 말 것 4)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데 2번과 4번은 저도 항상 쓰면서 고민하는 부분이라 확실히 이해가 되더군요. 
그리고 글의 구성에 대한 설명도 참고가 많이 되었습니다. '총괄 1,2 - 에피소드 1,2 - 감상 - 저자 - 일러스트나 장정 - 대상 독자 - 정리의 순으로 적는다'는 것으로 총괄 1은 그 책이 어떤 식으로 재미있는지를 분명하게 소개할 것. (이것만 따로 잘라 내도 서평으로 구성될 수 있는 참신한 핵심 내용), 총괄 2는 총괄 1에서 다 말하지 못한 재미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할 것. 1이 '재미있다'라면 2는 '정말로 재미있다'라고 재 확인하는 것. 에피소드 1은 재미를 구체적으로 쓸 것. 2는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쓸 것, 감상은 에피소드들이 어떻게 재미있었는지를 쓸 것, 다음은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소개하고 일러스트와 장정 등 글 이외의 요소 언급할 것, 예상되는 독자층에 대해 쓰고 마지막으로 정리할 것. 정리와 총괄의 차이는 서평을 읽은 사람에게 책에 대해 결단을 내리게 만드는 것 이라는 것인데 유용하겠다 싶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쓴 서평 예문도 괜찮았으니까요. 지금 쓰고 있는 이 서평도 이러한 이론에 기초해서 쓴 것인데, 앞으로도 많이 써먹을 것 같네요.

이 책을 쓴 저자 나루케 마코토는 저자는 1955년 생으로 1991년 일본 마이크로 소프트 법인 사장으로 취임하여 2000년까지 역임했으며, 이후 투자 컨설팅 회사를 설립한 비즈니스 맨입니다. 라는 서평 사이트의 개설자로 마음에 드는 책을 무조건 사고, 1년에 200권도 넘는 책을 읽는다는 독서가이기도 하고요. '시마 사장'이 떠오르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인데 독서가답게 글도 잘 쓰고 나름의 철학도 분명히 있는 사람이더군요.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독서관이 명확하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앞서 말씀드렸듯 책장 정리에 대한 욕심이 솟구치게 만드는 책입니다. 자신이 독서가라고 생각되신다면, 그리고 집에 쌓이는 책 정리에 고심하고 계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 역시 이사가게 되면 책장에 여유를 좀 두고 자주 정리해서 안 읽게 된 책은 정리해야 겠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마지막으로 저자가 추천하는 책 중 국내에 소개된 책들만 따로 모아서 소개드립니다.

  • 만지트 쿠마르, 이덕환 <<양자혁명 : 양자물리학 100년사>> 까치 글방
  • 크리스틴 바넷, 이경아 <<제이콥, 안녕? 자폐증 천재 아들의 꿈을 되찾아 준 엄마의 희망 수업>> 알에이치코리아
  • 다니엘 T 맥스, 강병철 <<살인단백질 이야기 : 식인풍습과 광우병,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저주받은 가족>> 김영사
  • 오코우치 나오히코, 윤혜원 <<얼음의 나이 : 자연의 온도계에서 찾아낸 기후 변화의 메커니즘>> 계단
  • 구메 구니타케, 정애영 <<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 1~5>> 소명출판
  • 궁리출판편집부 <<세계만물 그림사전>> 궁리
  • 마크 레빈슨, 김동미 <<더 박스 :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 경제학>> 21세기 북스
  • 빌 로스, 이지민 <<철도, 역사를 바꾸다>> 예경

2016/05/18

SF 영화 - 김종철 외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별점 1.5점

SF 영화 - 4점
김종철 외 지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엮음/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사)
동서고금의 SF 영화의 대표작들을 시대순으로 훝는 SF 영화 소개 연대기.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엮음' 이라는 명칭 하에 김종철, 이용철, 김봉석, 듀나, 김도훈, 유지선, 이상호 씨가 저술하였습니다.
머리말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장르별로 100여 편의 걸작들을 선정하여 소개하는 책이라고 되어있는데 이 책에 소개된 작품은 88편입니다. 수록작 면면을 보면 100편을 채우기가 그리 어려웠을 것 같지 않은데 이유는 잘 모르겠군요. 뭐 소개작 중 제가 본 영화는 32편에 불과하니 이래라 저래라 하긴 어렵지만요.

여튼, 이렇게 SF 영화에 한 획을 그었다는 88편을 소개하는 책인데... 솔직히 기대에 전혀,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냥 피상적인 개인 감상에 그치는 글이 있는 식으로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못한 탓이 큽니다. 개중 최악은 <<사구>>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그냥 거대한 실패작이다라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낼 뿐이에요. 저는 아주 좋아하는 작품입니다만,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거대한 실패작이 왜 SF 걸작이랍시고 소개된답니까? 필자가 여러명이라는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책의 취지에 맞게 왜 그 영화가 선정되었는지, 후대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등 모든 영화 소개를 동일한 포맷으로 작성하도록 명확한 가이드만 있으면 되잖아요.
물론 소개된 영화가 왜 SF 영화사에서 중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제대로 짚어주는 글이 없지는 않습니다. 허나 이 역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의 재탕에 불과한 것들이 많아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많은 정보가 노출된 유명 작품일수록 그 정도가 심합니다. <<매트릭스>>에 대한 글이 대표적으로 어떤 내용이 언급될지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더라고요. 스탠리 큐브릭, 제임스 카메론, 존 카펜터, 폴 버호벤, 뤽 베송의 작품들 소개들도 대체로 그러했고요.
마지막으로 도판이 부실한 것도 굉장히 실망스러운 부분입니다. 특히 소개에서 작품의 아름다운 미술을 찬양하는 작품의 경우에는 반드시 도판이 필요했다 생각되는데 이 책에서는 영화 포스터조차 수록되지 않은 작품이 대부분이에요. 저작권 문제가 있으리라 여겨지기는 하나, 상상력을 비쥬얼로 표한한 시각효과가 SF 영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점, 그리고 다른 유사한 책의 사례를 본다면 솔직히 직무유기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참고할 수 있는 사진은 물론, 보다 상세한 소개에 무료 감상이 가능할 경우 방법까지 소개해주고 있는 몇몇 블로그들 (이글루스의 예를 들자면 사자왕 님 등)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지죠.

그래도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영화제의 이름을 걸고 쓴 책다운 독특한 기획은 볼만 했어요. 여러 거장들 - 린 타로, 가네코 슈스케, 더글러스 트럼블, 토미노 요시유키 장 지로 (메비우스) - 과의 인터뷰가 개중 백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더글러스 트럼블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어요. 그가 어떻게 특수 효과의 세계에 뛰어들었는지, 어떤 영화가 가장 마음에 드는지, 왜 더 이상 영화를 감독하지 않는지 등이 담담하게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미노 요시유키가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 달라는 말에 "애니메이션을 절대 좋아해서는 안 된다. 좋아하면 그 틀 안에 갇혀 버리게 된다."라고 답한 것도 인상적이고요. 저는 절대 동의하진 않지만...
또 SF 영화에 대한 컬럼들도 꽤 재미있는 편이에요. 특히나 리메이크에 대한 글은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아울러 제가 보지 못했던, 그리고 잘 몰랐던 영화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반가운 일이긴 합니다. 개중 몇개 뽑아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환송대> : <12 몽키즈>의 원형. 30분짜리 단편으로 스틸 사진을 연결해서 만들었다는 형식도 독특할 것 같이 기대되네요.
  2. <세컨드> : 인물의 정체성에 대한 SF의 선구자적 영화라는데 엔딩이 무척 궁금합니다. 다른 인생을 살게 된 남자가 전 부인을 다시 만난 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3. <흡혈귀 고케미도로> : 일본산 SF인데 소갯글만 읽어도 황당합니다. 당연히 관심도 가고요.
  4. <사일런트 러닝> : 숨겨진 SF 영화의 걸작을 단 한 편만 꼽으라면 이 영화를 꼽겠다는 도발적인 서두, 만약 이 영화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SF 영화의 역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북 하나를 통째로 날린 것이나 다름 없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스타 워즈> 사이의 연결 고리다라는 마지막 글만으로도 흥미를 잡아끄는 작품.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보고 싶군요.
  5. <죽음의 중계> : 대부분의 병이 퇴치된 세계에서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여주인공을 TV로 생중계한다는 플롯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무려 1980년에 이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할 따름이에요. 스포일러이기 때문인지 엔딩이 소개되지 않았는데 결말이 궁금해 미치겠어요!
  6. <슈퍼 에이트>: jj 에이브럼스가 만든 스필버그 식 모험담이라죠? <구니스> 등과 비슷한 작품일 것 같은데 언젠가 때가 되면 딸아이와 보고 싶어집니다.
이렇듯 장점이 없지는 않으나 앞서 말씀드린 단점이 더 커서 좋은 점수를 줄래야 줄 수 없네요. 90년대 "키노"의 전성기처럼 책이나 잡지 외에 정보를 구할 방법이 없었더라면 나름의 가치는 분명했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시대착오적인 책입니다. 웹진 컬럼으로 해당 영화 정보가 링크로 걸려있는 형태였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말이죠. 단지 영화 소갯글 모음에 15,000원이라는 가격도 과합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SF 영화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싶다! 정도의 매니아가 아니시라면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긴, 그 정도의 매니아시라면 이 책에 실린 정보들 정도는 이미 알고 계실테지만요....

2016/05/16

문구의 모험 - 제임스 워드 / 김병화 : 별점 2.5점

문구의 모험 - 6점
제임스 워드 지음, 김병화 옮김/어크로스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라는 부제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는 하지만) 문구들에 대해 조망하는 잡학 서적. 종이 클립에서 시작해서 디지털 시대의 문구까지 모두 14개의 챕터에서 다양한 문구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정 항목의 소소한 역사를 다루었다는 면에서는 일종의 미시사 서적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주제별로 동일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해당 문구가 어떻게 고안되어 일상 속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 그리고 유명한 브랜드 제품이 무엇인지까지 알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깊이와 수준이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해당 문구의 역사를 조망하는 미시사적 구성도 탁월하고요.

볼펜과 만년필을 다룬 항목을 예로 들자면,
  1. 이집트에서 검댕과 물로 만든 잉크를 갈대 솔로 찍어 파피루스에 글을 남김
  2. 6세기 이후 깃털 펜 등장. 거친 표면의 파피루스보다 부드러운 양피지 등이 발달하자 가는 선을 그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해 진 것. 이후 19세기까지 사용.
  3. 로마시대부터 금속제 펜촉이 등장하였으나 가공이 힘들고 비쌌음. 이후 19세기에 금속제 펜촉으로 교체.
  4. 19세기 후반 워터맨의 만년필 등장
  5. 1945년 미국에서 최초로 볼펜 판매 시작. 이후 볼펜의 문제점을 개선한 다양한 볼펜들 출시.
의 순으로 해당 문구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변곡점을 단계별로 상세하게 짚어줍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앞서 '잡학 서적'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관련된 잡학도 충실히 풀어내고 있고요. 워터맨이 만년필을 발명한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진, 워터맨이 보험회사 영업사원을 할 때 중요한 계약 시 펜에서 잉크가 새는 바람에 잉크 얼룩이 번져 계약서를 새로 바꾸는 동안 고객이 가 버리고 만 일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부 거짓말이라고 명확하게 짚어주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일화, 잡학들 모두 명확한 사료를 통해 검증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 외에도 기억에 남는 것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명 인사들이 사용하는 연필들에 대한 소개 - 조지 루카스는 딕슨 타이콘데로가, 스티븐 킹의 <다크 하프> 속 작가 조지 스타크가 쓰는 연필은 베롤 블랙 뷰티, 존 스타인벡이 가장 좋아한 연필은 블랙윙 602 (블랙윙의 팬은 많다. 기획자 넬슨 리들 / 작곡가 퀸시 존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작품에도 등장 / 만화가 척 존스 등) - 라던가, 형광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 일본의 호리에 유키오가 사인펜을 만들고, 카터가 파이버팁 사인펜에 형광 잉크를 적용한 '하이-라이터'를 출시하고, 독일의 슈반호이저가 잉크와 디자인을 개선한 '스타빌로 보스'를 출시 - 를 꼽고 싶네요.
또 현재 널리 알려진 제품으로 넘어오면서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친숙한 제품이 다수 등장하는 것도 반가운 부분입니다. 볼펜은 많은 사람들의 연구와 고민을 통해 개발된 물건인데, 그 중 기존 볼펜의 문제점을 개선한 새로운 볼펜이 바로 BIC 크리스털 펜이었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 외의 제품으로는 몽블랑 만년필, 몰스킨 노트, 스타빌로 형광펜 등이 있습니다.

허나 도판이 부실하다는 것은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최소한 소개된 제품의 도판은 빠지면 안 되었을텐데 극히 일부 제품만 도판이 선보이거든요. 앞서 예를 든 볼펜과 만년필 항목에서도 소개된 도판은 빅 크리스털 볼펜, 파커 만년필에 불과합니다. 비중있게 소개된 다양한 볼펜들 (파커 조터, 피셔 우주펜 등)이나 몽블랑 만년필 등은 글로 그칠 뿐이에요. 한마디로 표지에 있는 도판이 거의 내용의 전부랄까... 충실한 도판, 혹은 도해와 함께 보다 상세하게 사전적으로 설명하는 구성이었다면 훨씬 마음에 들었을텐데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정보가 가득함에도 큰 재미를 느끼기는 조금 어렵긴 합니다. 문구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가 아닌 탓이죠. 평범한 일반인이 만년필의 역사나 구조 같은 것에 호기심을 갖기는 아무래도 어려울테니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특정 분야에 대해 엄청나게 깊이 파고든 점은 확실히 대단하나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재미를 느끼기 어려운, 그런 책입니다. 문구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필독서일테지만 (그리고 아마도 이미 구입해서 읽어보셨겠죠), 그렇지 않으신 분들께는 추천드리기 어렵습니다.

2016/05/14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 오노 후유미 / 정경진 : 별점 2.5점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 - 6점
오노 후유미 지음, 정경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오노 후유미일상계 호러 단편집. 6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기본 구조는 동일합니다. 평범한 사람이 오래된 집으로 이사온 후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와 마주치는데, 이것을 '영선 가루카야'라는 상호의 수리점 목수 오바나가 약간의 수리를 통해 해결해 준다는 내용이죠.

일상계 호러물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싶을 정도로 일반인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으로 담담하게 묘사한 장면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문가의 일상계 퇴마(?)물이라는 점에서는 <충사>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요. 전체적인 분위기도 유사하고요. 해결 방법들도 대체로 그곳에 있는 존재들을 인정하고 어르고 달래는 수준이라 더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네요.

하지만 '일상계'인 덕분에 독자를 몰입시킬만한 요소는 확실히 부족합니다. 지나치게 담담하거든요. 흥행(?)을 위해서라면 충격적인 설정이나 이야기를 한두편 선보이는게 좋았을텐데 말이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호러 매니아 기준으로는 맹숭맹숭한 순정물에 불과한 작품들로 제 기대에 미치지는 못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군요. 호러 및 괴담물 초보자에게 권해드립니다.

이야기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뒤뜰에서>
쇼코는 고모에게서 물려받은 오래된 주택으로 이사한다. 그런데 서랍장으로 막혀있는 미닫이 방의 문이 스스로 열리는 것을 알게된다. 서랍장을 치우고 정리하던 날 밤, 쇼코는 여자 형체의 무언가가 그곳을 통해 기어나오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의 기본 구조를 잘 보여주는 첫번째 단편. 유령의 첫 등장이라던가, 고모가 예전에 미닫이를 아예 막은 적도 있지만 긁는 소리가 집안 전체에 울려 견디지 못했다라는 일화 등 섬찟한 부분도 제법 있습니다. 오바나가 등장한 후 설명하는 진상 - 유령은 위협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목이 말라서 그런 것이다 - 이 앞부분의 거리 묘사 및 방의 과거 수리 이력과 엮어서 풀어내는 결말도 깔끔하고요.
한마디로 시리즈의 첫 시작으로는 차고 넘치는 작품. 수록작 중 가장 무서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천장 위에>
오래된 무가 저택에 사는 고지는 어머니가 천장 위에 누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치매를 의심한다. 천장 수리 후 아이들에게도 무언가가 나타나자 고지는 천장을 수리한 목수 구마다에게 연락하고, 구마다는 '영선 가루카야'의 오바나와 함께 찾아온다.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깔끔한 맛이 부족한 작품. 이유는 천장에 있는 존재가 무엇인지, 왜 나타나는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말도 설명 없이 옛날부터 있던 일종의 봉인을 원상복구 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되고요. 뭐 이게 현실적인 것일 수는 있지만... 독자로서는 많이 아쉽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방울 소리>
조모의 집으로 이사온 유코는 비오는 날마다 정체불명의 상복입은 여자를 본다. 그리고 지난 몇년간, 그 거리의 집들에는 정체모를 상복입은 여자가 찾아오면 집안 사람 중 누군가 죽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상복입은 여자의 이동 경로에 따르면 마지막에는 유코의 집을 찾아오게 되는데!
작품들 중 유일하게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죽이는) 무언가가 나오는 작품. 유코가 곧 죽을 수 밖에 없는 굉장히 심각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전개되어 묘한 맛이 느껴집니다.
허나 이러한 묘한 괴리감이 작품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무서울 수 있었던 작품인데 소재를 허투루 낭비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에요. 작가가 원한 것이 이러한 담담함이라면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곧 죽을 예정인 유코마저 담담하게 그린 것은 실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그리고 이 무언가의 정체는 끝까지 불분명한데 덕분에 전작과 마찬가지로 개운한 맛이 부족하기도 하고요.
그나마 해결책은 마음에 듭니다. 맞서 싸우는게 아니라 그냥 순응하는 것으로 '그것'이 그냥 지나갈 수 있도록 우회로를 내어준다는 것인데 작품 분위기와 잘 어울릴 뿐 아니라 현실적이라는 것이 좋았어요. 오래된 거리가 자동차가 들어오면서 문의 위치가 바뀐 탓에 문제가 일어난 것이라는 설정도 나쁘지 않았고요.
이렇듯 단점, 장점이 명확한 이야기인데 그래도 평작 수준은 되는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이형의 사람>
할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한 아버지를 따라 시골로 이사온 마나카는 언제부턴가 집 안 어딘가의 공간에서 노인의 유령을 만나게 된다...
마나카가 할아버지 유령을 만나는 장면의 묘사들은 섬찟한데 그 뿐입니다  나머지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네요. 집안에서 학대받았다는 할아버지의 유령의 정체도 진부했어요. 오바나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아서 이게 같은 시리즈인가 싶기까지 했습니다. 해결책 역시 구마다와 오바나가 집을 수리한  나타나지 않더라... 가 전부이고요.
이래저래 부족함만 많이 느껴진 작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만조의 우물>
마리코는 결혼과 함께 조모가 살던 집을 물려받아 산다. 남편 가즈시가 취미로 정원 우물을 복구하는데 그 이후 정원수와 식물이 모두 죽어나가고 집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들어오는데...
정원의 식물들이 죽은 이유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 특이했던 작품. 이유는 우물물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라서 물을 준 식물들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해결 방법도 '우물을 메워야 한다'는 단순명쾌하며 직접적인 것이라 다른 작품들과 확실히 차별화 되고요.
허나 집 안에 들어온 것이 무엇인지 등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등 단점도 여전합니다. 그냥저냥한 평작 수준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리 밖>
이혼 후 딸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온 마미는 친정 식구에게 쫓겨나다시피 오래된 고택을 빌려 살게된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아이의 유령을 보게 되는데...
호러물의 기본 공식 중 하나인 '이형 존재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우는 작품.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전부터 있었으며, 유령 때문에 이전 거주자가 해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결혼에 실패하고 돌아온 꼴보기 싫은 딸자식을 치워버리기 위해 싸다는 이유만으로 유령 집에 살게 만든 친정 식구들의 행동이 그것입니다. 시골이라 더 이웃 눈치를 본다는 설정도 살짝 들어가 있기는 한데 여튼, 어딜가나 참 사람이 무섭다 싶더군요.
여기에 더해 아이가 등장하는 장면이 호러영화 스타일로 묘사된 것이 이채로왔습니다. 자동차 후방 카메라 등을 활용한 장면들이 그러한데 글로만 읽어도 섬찟한 맛이 있었어요.
차가 없으면 생활이 어려운 시골 마을의 환경과 유령을 엮은 설정도 마음에 들었고요,
딱 한가지, 학대로 아이가 죽었다라는 뻔하디 뻔한 설정만 뺀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은 없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6/05/12

던전밥 2 - 구이 료코 / 김완 : 별점 3점

던전밥 2 - 6점 구이 료코 지음, 김완 옮김/㈜소미미디어

전편에 이은, 판타지 구루메 만화 2권.
독특한 던젼 내 식재료로 만드는 요리들은 여전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전통적인 몬스터인 오크, 미믹, 켈피에 대한 에피소드도 기본은 해 줄 뿐더러 골렘 몸에 야채를 경작한다는 에피소드와 보물벌레 에피소드는 아이디어부터가 굉장히 기발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사령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는 것도 아주 그럴듯했고 말이죠.
또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캐릭터들의 디테일이 조금씩 쌓아올려져 가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자면, 미믹 에피소드에서 칠첵의 나이가 밝혀지는 장면은 ("칠첵씨...") 기존 판타지 세계관에 기반한 것이기는 한데 굉장히 웃겼어요.
짤막하지만 부록 만화도 재미있습니다. 사령술과 술을 엮는 발상이라던가, 오크 부인을 품평하는(?) 장면은 아이디어와 유머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이야기들이었거든요.
당연하지만 작화도 여전히 안정적이라 무척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한가지 걸리는 것은, 라이오스의 동생을 구하기 위한 메인 이야기 전개가 지지부진한 것입니다. 이쯤되면 벌써 소화된거 아닌가 싶을 정도거든요... 허나 문제는 사소할 뿐, 독특함과 재미 모두를 갖춘 작품으로 추천하는 바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6/05/10

퀸 수사국 - 엘러리 퀸 / 배지은 : 별점 2점

퀸 수사국 - 4점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검은숲

엘러리 퀸 단편집. 1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300페이지도 안되는 분량에 18편이나 되는 단편이 수록된 것에서 짐작되지만, 이야기의 깊이는 없습니다.  대부분 '1. 사건이 발생한다. 2. 유일한 단서로 OOO이 있다. 3. 용의자들 중 범인은 누구인가?'' 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거든요.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엘러리 퀸이 쓴 "추리 퀴즈" 모음집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트릭이나 수수께끼의 수준이 굉장히 중요하겠죠? 허나... 아쉽게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어요. 가장 큰 이유는 "영어권"에서만 적절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일종의 말장난같은 트릭이 많은 탓으로 <협박 부서 돈이 말한다>, <희귀 서적 부서 괴상한 학장>, <자살 부서 명예의 문제>, <보물찾기 부서 구두쇠의 황금>, <다잉메시지 부서 GI 이야기>의 5편이 그러합니다. <담합 부서 대리인들의 문제> 역시 특정 지식의 전문성에 기반한 트릭이라 평범한 독자가 해독하기 어렵고요.
아울러 <허위 주장 부서 타임 스퀘어의 마녀>와 같은, 추리물이라고 하기 어려운 형편없는 쓰레기는 작가 명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야기가 뒷받침되지 않다보니 동기와 용의자가 명백해서 범행을 저지를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트릭만 믿고 범행을 저지르는 이야기가 많은데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훨씬 설득력있는 설명이 필요했어요. 이 작품들이 명백한 '추리 퀴즈'가 아닌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면 말이죠.

그래도 전부 폄하하기 어렵긴 합니다. 아래에서 보다 상세하게 설명드리겠지만 엘러리 퀸의 명성에 걸맞는, 정통 본격물 황금기의 고급진 트릭을 사용한 작품도 있거든요.
무엇보다도 저와 같은 정통파 고전 본격물의 팬에게는 번역되어 출간된 것 만으로도 아주 반가운 일이기도 하고요.

허나 괜찮은 작품은 절반 정도에 그치며, 괜찮은 것도 트릭을 활용한 '추리 퀴즈'의 영역일 뿐 한 편의 "작품"으로 높은 수준을 보인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좋은 작품들 및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더해 별점은 2점입니다만... 여러모로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네요.

각 단편별 짤막한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꼭 참고하시길.

<협박 부서 돈이 말한다>
촉망받는 오페라 가수 루치아를 협박하는 협박범의 정체는?
답은 중고 서점 직원 아널드. 루치아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협박인데 그것은 미국에서는 일언반구 꺼낸 적도 없으므로 영국에서 알려졌을 것임. 즉 범인은 영국인일 가능성이 높음. 아널드는 고향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영국식 단어를 말해서 들통남.
우리나라도 따지면 고향을 속여왔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사투리가 튀어나왔다는 이야기랄까... <경성탐정록><운수 좋은 날> 처럼 해당 언어권 독자가 아니면 풀 수 없는 트릭입니다. 한국 독자로서 딱히 점수를 줄만한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담합 부서 대리인들의 문제>
엄청난 돈이 걸린 권투 시합의 도전자가 유괴된다. 범인들의 요구사항은 10만 달러. 그리고 돈을 전달하는 대리인으로 엘러리 퀸이 임명된다. 범인들의 대리인은 유명한 스포츠 기자 잭맨.
돈을 건네주는 자리에서 엘러리는 기자를 가장한 범인임을 눈치채고 그를 제압한다. 스포츠 기자라면 모를리 없는 권투 시합에 대한 잘못된 설명을 떠벌인 덕분. (오서독스 스타일의 권투 선수는 라이트 훅으로 치명타를 날릴 수 없다)
일종의 말실수로 꼬투리를 잡는다는 내용인데 비약이 너무 심합니다. 엘러리가 권투에 이렇게까지 빠삭한 이유도 설명되지 않으며, 유괴범 중 한명이 배신했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작위적이고요.
독특한 소재 (권투 시합과 유괴) 외에는 점수를 줄만한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불가능 범죄 부서 세 과부>
새어머니의 유산을 노리는 두 자매는 그녀를 독살할 계획을 세운다. 새어머니 역시 첫번째 독살 기도 실패 이후 철저하게 조심하나 결국 그녀는 독살당하고 만다. 어떻게 그녀를 독살할 수 있었을까?
답은 자매 중 한명이 새어머니의 주치의를 유혹한 뒤 진찰 시 입에 넣는 체온계에 독을 바른 것!
오래전 <세계의 명탐정 50인 (이후 44인)>에서 이미 접했던 트릭인데, 트릭만큼은 아직도 선명하게 빛을 발할만한 멋진 트릭이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동기가 명확하고 용의자가 뻔해서 트릭만 믿고 범행을 저지르는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이겠죠. 그야말로 추리 퀴즈를 위한 이야기랄까요.
그래도 평균 이상의 트릭이 사용된 것은 분명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희귀 서적 부서 괴상한 학장>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뉴욕 대학교 인문학부 학장 매슈 아널드 호프 교수는 엘러리의 하버드 시절 은사로 두음 전환을 하는 말버릇이 있다. 그는 셰익스피어와 베이컨의 관계를 증명하는 중요한 서적을 1만달러에 구입할 약속을 한 후, 안전을 위해 엘러리와 아버지 퀸 경감이 거래에 입회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엘러리는 쓰러진 교수를 목격하고, 교수는 "고먼"이라는 말만 남기고 기절한다. 범인은 누구인가?
처음에는 영문학교 교수 오즈월드 고먼으로 의심되었으나 교수의 두음 전환 버릇을 반영하여 엘러리는 진범이 누구인지 밝혀낸다. 진범은 바로 영문학 강사 "모건"이었다.
영어권 독자를 대상으로 한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워낙에 명확한 트릭이라 풀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추리 퀴즈라면 초심자용이랄까요? 솔직히 트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에요. 내용도 굉장히 허술해서 교수의 두음 전환은 차치하고라도 범인을 잡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아 보이고요. 솔직히 추리적인 면보다는 셰익스피어 관련한 도서 거래 이야기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살인 부서 운전석>
세명의 브라더스 형제는 자신들을 알거지로 만들 권한을 소유한 형수 살인사건의 주요 용의자가 된다. 범행 당일 세명 모두 자신들의 차 (캐딜락, 롤스로이스, 쉐보레)를 타고 형수를 방문하였으나 세명 중 누가 범인인지는 알 수 없는 상황. 아마도 제비뽑기를 하고, 제비를 뽑은 사람을 다른 두 형제가 보호하고 있는 것. 유일한 단서는 오른쪽 소매 끝자락이 푹 젖은 레인코트. 범인은 누구일까?
오른쪽 소매만 젖은 이유는 비오는 날 팔로 수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며, 수신호를 오른쪽으로 보낸 이유는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었던 것. 즉, 영국 차 롤스로이스의 주인이 범인이라는 것
트릭과 단서가 뭐건 차종을 통해 범인이 드러난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세대 중 한대만 영국차니까요. 이 경우 쓸만한 소재는 운전대 위치일게 뻔하고요. 이 작품에서는 그것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수신호'를 선택했는데 시대를 느끼게 하지만 나쁘지는 않더군요. 동기가 되는 주식 지분에 대한 이야기 등 세세한 재미도 있고요.허나 레인코트의 물기가 왜 마르지 않았는지, 레인코트가 범인의 것이 확실한지 등 세세한 부분에서의 설명이 부족한 건 문제였습니다. 때문에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공원 순찰 부서 각설탕>
기마 순찰 경관 윌킨스는 세익스 쿠니의 시체를 발견한다. 유력한 용의자는 그에게서 협박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상원의원 크레그, 금융업자 밀라드, 정치가 스티븐스 3명. 유일한 단서는 셰익스 쿠니가 죽기 전 움켜쥔 것으로 보이는 각설탕 한개라는 다이잉 메시지. "설탕"을 "돈"이라는 의미로 본다면 세명 모두 부자이며 승마에는 문외한. 그 외 사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설탕과 관련이 있는 사람은 없음. 최초 엘러리의 추리는 "당뇨"에 걸린 사람이 아닐까 였지만 세명 모두 당뇨와는 무관함. 범인은 누구?
범인은 바로 기마 순찰 경관 윌킨스. 각설탕을 손에 들고 다닌다면 말에게 먹이기 위해서 밖에는 다른 답이 없다. 세명 모두 승마와 무관하다면 범인은 제 4의 용의자임.
범인이 제 4의 인물이었다는 발상의 전환이 돋보였던 작품. 수수께끼고 뭐고 마지막에 메시지를 남기려면 범인을 곧바로 지칭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엘러리의 이론도 공감할 만 하고요.허나 다이잉 메시지로는 너무 빈약해 보이긴 합니다. 기마경찰과 각설탕이 그렇게나 짝이 잘 맞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거든요. 발표 당시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떠 올릴 수 있는 보편 타당한 상식이라면 그건 또 그것대로 너무 쉬워지니 문제네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공개 파일 부서 차가운 돈>
챈슬러 호텔에서 필리 멀레인이 시체로 발견된다. 그는 맨해튼 급여 강도 협의로 10년 복역 후 출소한 상태로, 돈을 찾으러 온 것으로 의심된다. 그의 사체는 깨끗이 면도가 되어 있었지만 호텔 방 안에는 수건이 없었다. 범인은?
범인은 바로 메이드. 쓰던 수건이 없는 이유는 메이드가 가져가고 수건을 교체한 것.
사소한 단서를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전형적인 고전 황금기 본격물입니다. 돈을 호텔방에 숨겨 놓았다는 설정도 재미있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횡령 부서 구관조>
늙은 앤드러스 부인은 의사, 변호사, 말벗이 자신의 돈을 횡령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명의 횡령범은 그녀를 죽여 입을 막지만 마침 경찰이 들이닥쳐 그들을 체포한다. 앤드러스 부인이 미리 퀸 경감에게 연락을 했던 것. 세명 중 범인은 누구?
브릿지 게임을 하던 중에 카드를 뽑아 살인을 한 사람을 뽑은 것을 알게 된다. 3, 9, 킹의 카드를 각각 뽑았는데 킹을 뽑은 사람은 킹 옆 재떨이에 시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의사 쿡. 그러나 의사가 심장의 위치를 놓쳐 4번이나 칼질을 할 이유는 없으므로, 범인은 3을 뽑은 말벗 배곳양이다.
범행 직후 경찰이 들이닥쳤기에 딱히 추리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카드 추첨으로 실행범을 결정했다는 잔혹한 아이디어에 더해 누가 무슨 카드를 뽑았는지, 그리고 범인이 누구인지까지의 추리는 논리적이고 재미있었던 작품.그런데 의사가 심장의 위치를 잘 안다고 해도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 아닐까요? 손이 떨릴 수도 있는 등 변수가 많은데 말이죠. 이런 점에서 추리 퀴즈의 영역을 벗어나지는 못한 듯 싶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자살 부서 명예의 문제>
중요한 결혼 당사자를 협박하는 협박범을 만나 교섭하기로 한 런던 경시청의 버크 경감이 시체로 발견된다. 협박범이 버크 경감의 뒤통수를 쳐 돈을 빼돌리자 절망감에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 유력한 용의자는 애클리, 체이스, 벤슨 중 한명. 범인은 누구?
유서로 보이는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영국식으로 표기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범인은 문서위조범 벤슨임.
앞서 말씀드렸던 미국식 - 영국식 표현을 이해해야 풀 수 있는 트릭물이라 딱히 와 닿지 않았습니다. 단서가 뭐든간에 유서를 위조했다면 범인은 벤슨일 수 밖에 없기도 하고요.  세명의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짤막한 추리는 나쁘지 않았지만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노상강도 부서 라이츠빌의 강도>
마을의 성공한 사업가 앤슨 휠러는 공장 급여를 도둑맞는다. 범인은 의붓아들 델버트로 추정되는 상황. 그러나 엘러리는 사건이 벌어진 현장에서 도둑맞은 돈뭉치를 찾아낸다. 그러나 5개월 여 방치되어 거의 썩어 못 쓰게 되어 버렸다. 범인은 누구?
당연히 돈을 방치할 이유가 없으므로 찾아갈 생각이었을 것. 그러나 5개월이나 찾아가지 못한 이유는? 모종의 이유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으로 범인은 델버트를 쫓다가 부상당해 누워있는 경관 조킹이었음.
라이츠빌이 무대라 오랜 팬으로 무척 반가왔던 작품. 내용도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나름 하나의 작품으로서 충분한 수준을 보여주고요. 주어진 단서도 공정하며 추리도 합리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록작 중 최고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사기 부서 돈을 두배로 돌려드립니다.>
전형적인 폰지 사기로 투자자를 모으고 있는 시어도어 F. 그루스를 체포하기 위해 퀸 경감과 엘러리가 출동한다. 그러나 그루스는 개인 사무실에서 사라져 버린다. 비서 앨버트 크로커가 사무실 문을 열지만 방은 완벽한 밀실 상태. 그는 어디로 사라졌나?
방에는 출구가 단 두개, 문과 창문 뿐. 문은 경찰들이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유일한 탈출구는 창문. 그루스는 창문을 통해 옆방으로 이동함. 그리고 그곳에서 대머리, 몸 속 패드 등을 뗀 후 변장하여 다시 사무실을 "크로커"라는 이름으로 방문한 것. 그리고 창문을 참가 완전 범죄를 완성하려 한 것이다.
독특한 인간 소실 트릭물. 트릭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문이 잠긴 상황 말고는 명확한 탈출 방법이 있다는 점에서 의외성이 높지는 않습니다. 현실적이라는 장점은 있지만요. 무엇보다도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해 그루스가 도주 후 변장하여 다시 돌아온 이유가 이해불가라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단지 불가능 범죄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설득력이 너무 약하죠. 별점은 2점입니다.

<보물찾기 부서 구두쇠의 황금>
전당포 주인 엉클 맬러키가 남긴 유산 4백만달러를 찾는 의사 벤과 서점 주인 이브 커플은 엘러리를 찾아온다. 유일한 단서는 멜러키가 <도둑맞은 편지>를 읽다가 "방 안에 명백한 단서가 있다"라는 말을 남긴 것. 책으로 가득찬 그 방에서 엘러리가 찾은 단서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오 헨리의 <4백만 달러>라는 책이 단서. 책 속 목차를 통해 의미가 있는 유일한 제목인 "between rounds"라는 말을 찾아내어 돈을 찾게 됨.
요약된 줄거리 그대로 영어권 독자를 위한 트릭물입니다. 별로 코멘트할게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술 부서 7월의 스노볼>
보석강도 다이아몬드 짐 그레이디를 교수대로 보낼 수 있는 증인 리즈벳을 열차로 호송하는 작전에 퀸 경감과 엘러리가 동행한다. 허나 전 역을 출발한 열차가 다음 역에 도착하지 않고, 경찰들은 두 역을 수차례 오가지만 열차를 찾지 못한다. 열차는 어디로 갔는가?
전 역 역장이 매수되어 거짓말을 한 것. 즉 열차는 전 역과 지금 역 사이가 아니라 전 역과 전전역 사이에 있었다.
딱 한명 (전 역 역장)만 매수하여 기차가 사라진다는 놀라운 불가능 범죄를 구현한 아이디어가 기발했던 작품. 변장 호송 작전, 화끈한 총격전 등 잔재미도 괜찮습니다. 리즈벳의 대사 등에서 엿보이는 유머도 돋보이고요.현실적으로 과연 잘 되었을지 궁금하기는 하고 엘러리 퀸이 명탐정답지 않게 너무 헤메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평작급은 되지 싶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허위 주장 부서 타임 스퀘어의 마녀>
위칭검양 사후, 그녀의 재산은 조카에게 가기로 되어 있으나 공교롭게도 두 명의 조카가 나타난다. 둘 중 한명은 가짜. 누가 가짜인가?
엘러리가 말도 안되는 이론을 들먹여 범인을 자백처럼 밝혀내는데... 솔직히 추리물로 볼 수 없을 만큼 조잡했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1점.

<투기부서 증권 투기자 클럽>
증권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16명으로 구성된 클럽 멤버 3인은 엘러리를 찾아온다. 자신들에게 지난 세 번에 걸쳐 좋은 정보를 제공한 정보원이 2만 5천달러를 주면 진짜 핵심 정보를 가져다 주겠다고 유혹하는 것. 진상은?
퀸 경감의 말대로 16명의 그룹원을 반으로 나누어 반대 정보를 제공한 것. (반은 오른다, 반은 떨어진다). 이렇게 3주가 지나면 호구(?)는 두명만 남는다. 때문에 찾아온 3명 중 한명이 범인이다.
퀸 경감의 이론이 재미있었던 작품. 시대를 감안하면 아주 선구자적인 아이디어였다 생각됩니다. 이 작품이 원조인지가 좀 궁금하네요.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추리쇼를 할만한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죠. 세명의 재정상태만 조사하면 될 일이잖아요? 게다가 두명의 돈을 가져가려면 당연히 가장 늦은 시간대에 찾아갈 사람이 범인일 확률이 제일 높을테고요. (안 그러면 두번 가야할테니 금방 들통나겠죠?)  이러한 전개면에서의 작위적인 부분이 많아 조금 감점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다잉메시지 부서 GI 이야기>
라이츠빌의 가정용 조명 기구 상점 주인 클린트 포스딕이 살해된다. 용의자는 포스딕의 의붓아들들 중 하나로 상황 증거도 유력하지만 클린트가 죽기전 남긴 "GI"라는 글과 부합하지 않아 골머리를 썩는 중. GI의 의미, 그리고 범인은 누구인가?
GI는 조지 워싱턴 스미스의 이름을 쓰려 한 것이고, E의 세로획까지만 쓴 것이다.
다잉메시지가 아니라 다이잉 메시지 아닌가요? 여튼, 누가 자기에게 그런 짓을 했는지 안다면 이름을 적었을 것이다라는 당연한 논리가 핵심입니다. 이 논리에 기반하고 있기에 트릭은 별거 없어요. 아들들의 풀 네임만 알면 누구나 풀 수 있는, 추리 퀴즈 초심자용 작품이라 할 수 있죠.
당연한 이야기에 뻔한 트릭, 나름 가치는 있지만 많이 부족하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마약 부서 검은 장부>
미국 내 주요 지역 마역 공급책의 이름이 적혀있는 52페이지짜리 장부를 뉴욕으로 옮기는 임무를 맡은 엘러리 퀸. 그러나 출발과 거의 동시에 마약왕에게 납치된다. 그러나 마약왕의 꼼꼼한 수색에도 장부는 발견되지 못했다. 장부를 어떻게 옮겼을까?
마이크로 필름으로 찍은 뒤 파이프 속에 숨긴 것.
시대를 생각한다면 앞서가는 일종의 장치 트릭이 등장하는 작품. 허나 본격물 특유의 공정한 맛 (담배맛에 대한 묘사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부족하죠)은 없다시피하며, 트릭 역시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냥 몸만 뒤지고 고이 풀어주는 마약왕의 행태가 설득력없어요. 당연히 고문이라도 했어야죠. 트릭과 내용 모두 평균 이하의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유괴 부서 아이가 사라졌다!>
뉴욕에 사는 빌리 하퍼가 유괴되고 유괴범의 몸값 유괴 편지가 도착한다. 그러나 몸값 전달 장소는 로스앤젤리스이며 편지 도착 후 2시간 뒤 몸값을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괴상한 편지는 무엇이고 유괴범은 누구인가?
엘러리는 옛 신문을 뒤져 협박 편지가 1년전 기사화된 유괴 사건에서의 편지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범인은 사건을 벌였지만 뉴욕과 로스앤젤리스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 즉, 어린 아이 빌리 하퍼로 사건은 부모의 이혼을 앞두고 벌인 자작극이었다.
유괴범의 편지로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가 인상적이었던 작품. 단서들도 공정하게 배치된 편이며 이야기의 설득력도 높습니다. 가족간의 행복을 다룬 주제와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 엔딩도 마음에 들고요. 추리소설 입문자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은 괜찮은 소품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6/05/07

극장판 안녕 자두야 (2016) - 손석우 : 별점 1점



어린이날 딸아이와 함께 감상한 국산 애니메이션. 이 작품을 본 이유는 딱 하나, 딸 아이가 직접 골랐기 때문입니다. <안녕 자두야>의 TV 시리즈를 보여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을텐데 선뜻 고르는게 신기했어요.

허나... 작품은 완전 별로였습니다. 단지 어른의 시각으로 보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책 속으로 들어간다는 뻔한 설정으로 <신데렐라>와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고전 동화를 자두 캐릭터 식으로 변주하는데 그 수준이 너무나 심각할 정도로 유치했어요. "꺼져", "거지같은게" 등등의 대사들도 굉장히 저렴해서 듣기가 싫을 정도였고요.
물론 모든 애니메이션이 교훈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개그를 표방했다면 최소한 웃기기는 해야하지 않을까요? 자두의 식탐 등 캐릭터에 기인한 개그가 대부분인데 어른이 보기에는 끔찍할 수준입니다. 게다가 딸 아이가 감상하면서 거의 웃지 않는 것을 볼 때, 그리고 극장 내 분위기를 볼 때 아이들이 봐도 별로 웃기지 않은 작품인건 분명해 보이고요.
한마디로 안일한 각본이 작품을 다 말아먹었달까요? 배경의 아트웍이 등 만든 모양새는 그런대로 괜찮아서 더욱 아쉽습니다. 차라리 <크레용 신짱>이나 <아치와 씨팍>처럼 아예 어른들 대상의 개그로 나갔더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분명 아이들을 위한 작품인데 부모로써 아이들에게 너무나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결과물이라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어린이날을 노린 얄팍한 상술의 결과물에 불과해요.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행운을 가슴에 품으시고 절대 쳐다보지 마시길 바랍니다.

2016/05/05

나만이 없는 거리 1~7 - 산베 케이 / 강동욱 : 별점 3점

나만이 없는 거리 1 - 6점 산베 케이 지음, 강동욱 옮김/㈜소미미디어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특한 펜선으로 그려진 육덕(?)진 캐릭터들, 긴장감을 자아내는 특유의 전개로 독자를 사로잡는 작가 산베 케이의 신작. 이러한 작가의 장점은 전작 <귀등의 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긴 했었습니다. 문제는 장점을 모두 무위로 돌릴만큼 어처구니 없이 끝나버렸다는 것이죠. 때문에 작품의 값어치가 형편없이 떨어져 버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 작품도 처음에는 잘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시작이야 역대급이더라도 또 허무하게 끝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었거든요. 그래서 완결까지 기다렸는데, 다행히 평도 좋은 편이라 늦었지만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일단, 초반부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장점이 유감없이 펼쳐집니다. 특히나 주인공 사토루의 능력 "리바이벌"에 대한 설정이 괜찮아요. 타임 슬립, 타임 리프와 다를게 없는 전형적인 설정이기는 합니다만 위화감을 느꼈을 때만 발동된다는 점, 무엇보다도 사토루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진범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능력이 최대급으로 발휘되어 초등학교 시절로 워프한다는건 정말이지 신의 한수였어요. 여기서부터 어머니의 죽음이 초등학교 시절 동급생인 카요 살인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사건을 막기 위해 싸워나가는 이야기가 아주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천재적인 범죄자인 범인과 초등학생 사토루의 싸움이 대등하게 벌어질 수 있는 것도 사토루가 몸만 초등학생이지 사실은 성인인 덕분이기도 하고요.
이후 범인과의 지략(?) 대결이 상당한 분량으로 펼쳐지는데, 이 과정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전개 역시 돋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산베 케이의 장점이기도 한데 정말이지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첫번째로는 야시로 선생이 진범이라는 것이 비교적 쉽게 드러나는 것을 꼽겠습니다. 카요의 어머니가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 뒤에는 용의자라고 할만한 인물이 거의 남지 않기 때문이죠.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커버하기는 하지만 추리 - 범죄 스릴러물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후더닛"의 매력이 많이 떨어져 아쉽더군요.
두번째 문제는 사토루의 캐릭터가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성인의 지혜를 가진 초등학생이라는 설정을 잘 살리지 못했어요. 작중에서는 아무리봐도 그냥 초등학생일 뿐이거든요. 왠지 "소년 탐정단" 스타일의 모험물로 생각될 정도였어요. 또 사토루보다 더 어른스럽게 그려진 천재소년 켄야의 존재 역시 이질적입니다. <귀등의 섬>의 슈야와 똑같은 캐릭터인데 여러모로 무리수였어요. 작품과 별로 어울리지도 않으며, 꼭 필요한 캐릭터도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세번째 문제는 심하지는 않지만 마지막은 여전히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야시로와 대결하여 그를 궁지에 몰아 넣기는 하는데... 야시로가 패배를 너무 쉽게 인정하는게 영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캠프장에서의 야시로의 살의를 증명할 방법은 거의 없을 뿐더러 과거의 범죄들 역시 공소시효가 지난 것은 물론이고 밝혀낼 수 있는 방법도 없죠. 캐릭터 설정에 의한 것이라면야 할 말은 없지만 개운치는 않았습니다. 패배를 인정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사나이가 아닐까요? 사토루가 만화가로 성공하고 아이리와 다시 만나게 된다는, 너무 평범하고 전형적인 해피엔딩과 구구절절한 에필로그 역시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마지막으로 문제라고 하기는 좀 뭐하긴 하지만.... 사실 기대만큼의 "추리물"은 아니라 조금 실망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범인이 빨리 드러나는 문제에 더해, 범인에 이르는 과정 역시 별다른 추리가 없어요. 결국 범인의 자백에 의존할 뿐이죠. 억울한 누명을 쓴 시라토리 준이 왜 진범이 아닌지를 몇가지 단서로 하나둘씩 밝히는 과정이라던가, 동급생 스기타 히로미 사건의 진상에 대한 추리 등은 나쁘지 않은데 그닥 중요한 요소는 아니거든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산베 케이의 장점을 잘 살려 끝맺음까지 잘 가져간 괜찮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권해 드리는 바입니다.
애니메이션의 평이 아주 좋던데 꼭 감상해 봐야 겠네요.

2016/05/01

귀담백경 - 오노 후유미 / 추지나 : 별점 1.5점

귀담백경 - 4점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북홀릭(bookholic)

최근 좀 격조했습니다. 프로야구 시즌 중에는 책 읽는 시간을 내기가 확실히 힘드네요. 야구 시청으로 저녁에 퇴근 후 잠깐 짬내어 독서하는 시간이 거의 통으로 사라져 버렸거든요. 중계 중에 읽는걸 시도해 봤는데 집중이 잘 안되더라고요....

여튼, 1주일만에 읽은 이 책은 오노 후유미의 괴담집입니다. 짤막한 괴담 99편의 모음집이라기에 흥미가 동해 읽게 되었습니다. <시귀>, <마성의 아이> 등을 통해 접했던 작가의 필력도 어느정도 신뢰가 갔고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주 실망스럽습니다. 본인, 혹은 지인이 겪은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불과하거든요. 내용의 맥락도 없는, 서너페이지 분량의 두서없는 경험담일 뿐입니다. 이래서야 인터넷 괴담 사이트 게시판을 읽는 것과 별다를게 없죠. 아니, 그보다도 더 못합니다. 심지어 무섭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이유로는 일단 내용이 괴담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 많은 탓이 가장 커요. 화자들이 자연스럽게 적응하는 기묘한 현상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서정적인 착한 이야기들의 비중이 상당하거든요. '오노 후유미'라는 작가가 글을 썼다는 것도 무섭지 않은 이유 중 하나입니다. 서정적이고 여성스러움이 느껴지는 섬세한 묘사가 괴담과 잘 맞지 않더라고요. 문체와 묘사에서의 완성도는 높지만요.
또한 무서운 이야기들도 뻔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재미를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워낙에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기에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없진 않습니다. 그 중 몇개를 짤막하게 소개해드리자면,

1. 늘어나는 계단
한 중학교의 7대 불가사의 중 '늘어나는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은 평소에는 열세단이지만 심야 2시에 계단 숫자를 세면서 오르거나 내려가면 계단이 계속 이어져 끝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이 괴담에 도전한 두 친구. 그들은 불가사의한 일이 올라가야 하는지, 내려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해 한명은 올라가고, 다른 한명은 내려가기로 한다. 그리고 도전을 시작하는데... 주인공은 열셋까지 세고 다 내려왔지만 머리 위에서 친구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 넷". "열 다섯".....
전형적인 괴담인데 서로 숫자를 세고 내려오고, 올라가는 것으로 운명이 갈린다는 극적 전개가 괜찮았어요. '목소리'가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영상물이나 아니면 라디오 드라마 같은 것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더라고요.

2. 파란 여자
F씨의 집에는 유령이 있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처음 목격했는데 그건 그녀가 아직 1층 다다미방에서 부모와 함께 잘 때였다. 부모가 곤히 잘 때 눈을 뜬 그녀가 본 것은 푸른빛이 모여 커다란 여자 얼굴. 그 여자의 무서운 쏘아보는 표정에 F씨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 후 여자의 기척은 다다미방에서 여전히 느껴졌으나 F씨의 아버지가 급사한 후 여자의 기척이 사라져 F씨는 죽은 아버지가 쫓아 준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의문을 느낀다. 애초에 그 다다미방은 부모님 침실이고, F씨가 커서 자신의 침대에서 자게 되었을 무렵 어머니도 침실을 나누어 그곳은 아버지 방이 되었다. 그리고 여자의 기척이 나타난 것은 다다미방 주변 뿐. 여자가 쏘아본 사람은 누구였을까. 여자가 사라진 것은 원하는 바를 이뤘기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 어른이 되어 알게 된 진상이 인상적인 작품. 그야말로 어른의 이야기로 괴담이라기 보다는 나름 '반전'의 묘미가 느껴진 것도 좋았습니다.

3. 마음에 들다
Y씨의 딸은 몇 가지 단어만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 '미피'인형, '그네'. 인형은 사준 것이지만 왜 그네가 좋은지는 모른다. 딸은 아직 그네 놀이를 할 정도로 크지 않고 딱히 태운 기억도 없다. 그러나 어느 틈에 '그네'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자꾸 반복하여 태워주니 '그네'와 다른지 그네에 타면서도 '그네'라고 칭얼거린다. 대체 뭘까? 딸아이는 갓난아이 때부터 엉뚱한 곳을 볼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Y씨가 빨래를 하는데 등 뒤에서 딸이 신이 나서 까르르 웃었다. 쳐다보니 아이는 '미피'의 목에 끈을 걸어 흔들고 있었다. 뭐 하는 거냐고 거칠게 말하자 딸은 '그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 딸은 허공을 손가락질 했다. '그네'
오싹한 걸로 따지면 이 책 속 괴담 중 베스트로 꼽을만한 그야말로 괴담! 아이는 어른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는 속설을 가지고 섬찟한 이야기를 잘 만들어 낸 것 같아요. 

이외에도 학교에서의 숙박 학습 중 장지문을 통해 손가락이 튀어나와 구멍을 뚫는다는 <훔쳐보기>는 생각만해도 섬찍해서, 그리고 <건널목의 지장보살>은 사고가 잦은 건널목에 놓여진 지장보살이 부서지자 사고가 없어졌다는 반전이 돋보여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기대에 너무 미치지 못해 점수를 줄래야 주기 힘듭니다. 오노 후유미 정도의 작가라면 이런 단순한 괴담의 자기풍 베껴쓰기가 아니라 최소한의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로 재창조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래서야 우리나라에서 한때 유행한 <깊은밤 갑자기> 류의 공포 실화집보다 나을게 하나도 없어요. 별점은 1.5점. 몇몇 괜찮은 이야기 덕에 최악은 면했지만 이 정도면 재앙급이랄까. 장르문학 팬이시라도 되도록 피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