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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7

몸값과 생명을 둘러싼 속고 속이는 공방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유괴 미스터리 걸작

* 자주 소개드리는 honto의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으로, 이번에는 유괴가 주제인 작품들입니다. 일본 작품만 선정하지 말고, <<킹의 몸값>>과 같은 유명 해외 고전도 포함시키는게 좋았을 것 같네요.유괴는 현재 진행형으로 이뤄지는 범죄를 말합니다. 범인과 피해자, 경찰간의 몸값과 생명을 둘러싼 긴박한 공방,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로를 어떻게 속일 것인지?는 소설의 주제로 매력적입니다. 이런 유괴 주제 미스터리 소설 중에서, 끝까지 결말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걸작을 골라보았습니다.

<<99%의 유괴>> 오카지마 후타리 : 국내 미출간
오카지마 후타리는 '납치의 오카지마', '유괴의 오카지마' 라고 불릴 정도로 유괴 소설의 명수이다. 이 작품은 30여년 전에 발표되었지만,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었던 컴퓨터 등의 첨단 기기를 동원하여 치밀한 유괴 범죄를 그리고 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알리바이도 완벽하고, 증거도 남기지 않은 완전 범죄의 행방에 주목해 보시길.

<<게임의 이름은 유괴>> 히가시노 게이고
광고 크리에이터 사쿠마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망친 원수 카츠시로의 딸과 공모하여 가짜 유괴 사건을 저지른다. 몸값은 3억엔. 유괴와 몸값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의 속셈이 서로 엇갈리며 사태는 의외의 방향으로 굴러간다. 유괴를 순수 두뇌 게임으로 그린 걸작.

<<대유괴>> 덴도 신
감옥에서 알게 된 3명의 남자들이 인생 한방!을 목표로 대부호 할머니를 유괴한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오히려 유괴범들을 손아귀에 넣고, 그들의 범행을 자기 시나리오로 바꾸어 버린다. 이를 통해 5천만엔이었던 몸값이 100억엔으로 늘어나면서 엄청난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대유괴'로 바뀌어 가는 모습이 압권인 작품.

<<유괴의 과실>> 신포 유이치 : 국내 미출간
종합 병원 병원장의 손녀가 유괴된다. 범인의 요구 사항은 몸값이 아니라 입원 환자를 죽이라는 것. 그 입원 환자는 정계의 거물이자 재판 중인 피고였다. 그리고 이 사건과 동시에 '몸값 대신 특정 주식을 사라'고 요구하는 또 다른 유괴 사건이 일어나는데... 두 개의 유괴 사건이 얽히며,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작품.

<<1의 비극>> 노리즈키 린타로
야마쿠라 가문에 아들을 유괴했다는 전화가 오는데, 실제로 유괴된건 지인의 아들 시게루였다. 잘못 유괴했다는걸 범인에게 숨긴채 야마쿠라는 몸값을 전해 주려 노력하지만, 사소한 실수로 시게루는 살해당하고 만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남자마저 살해당한 뒤 명탐정 노리즈키 린타로가 나서고, 사건은 의외의 전개를 맞이하게 된다.

로그 메일 - 제프리 하우스홀드 / 이나경 : 별점 2.5점

로그 메일 - 6점 제프리 하우스홀드 지음, 이나경 옮김/arte(아르테)

<<아래 리뷰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고위층 명사가 유럽 어딘가의 독재자를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었다. 진짜로 죽이려고 했던건 아니고, 심심풀이로 벌인 게임에 지나지 않았지만, 독재자의 부하들은 모진 고문 뒤 사고로 위장해 죽이려 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그는 천신만고 끝에 영국으로 돌아오지만, 독재자의 부하들이 여전히 자기를 노리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불명예를 걱정한 그는 국가의 도움을 받지않고 홀로 도주하여, 과거 추억이 어려있던 도싯 지방에 은신처를 마련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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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직전인 1939년 출간된 전설적인 서스펜스 스릴러.
사실 저는 제목만 보고 최첨단 IT 소재물이라고 착각해 왔었습니다. Log mail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알고보니 Rogue Male 이더라고요! 외톨이 수컷, 일본식 표현으로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와 비슷하겠지요? 일종의 사냥감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가끔은 흉폭함과 야성을 드러내는 주인공에게 딱 들어 맞는 제목입니다.

하여튼, 여러 미스터리 랭킹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던 작품으로, 국내에는 상당히 늦은 2019년에 출간되었는데 명성답게 서스펜스, 긴장감은 발군입니다.
외국에서 망신창이 상태로 이름모를 낚시꾼, 그리고 영국 배의 일등 항해사 베이너의 도움을 얻어 귀국한 뒤, 도싯 지방의 아무도 모르는 오솔길에 위치한 은신처로 이동하기 위해 여행하는 부부로부터 사이드카가 달린 자전거를 구입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하고, 은신처 위치가 좁혀질 위기에 처하자 경찰 시선을 돌리기 위해 다른 곳을 은신처처럼 만들어 위장하고, 결국 외국 비밀 요원 퀴브-스미스에게 위치가 발각되어 좁은 공간에 갇혔다가 탈출하는 과정 모두 읽는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여러가지 잘 안배된 설정들도 긴장감을 더해줍니다. 대표적인게 주인공이 고문을 받아 '눈에 상처'를 입었다는 설정입니다. 사람들 눈에 너무 띄는 탓에 원래 계획이었던 시골 마을에 몰래 숨어드는게 불가능해져버리니까요. 선글라스로 가려도 누구나 눈에 이상이 있다는걸 눈치채버리고 말거든요.
비교적 초반에 비밀요원 중 한 명을 죽이는 바람에 영국 경찰들에게도 쫓기게 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덕분에 주인공의 눈 이상이 전국에 알려졌을 뿐더러, 외국 정보요원들 뿐만 아니라 영국 경찰들도 주인공을 체포하려 해서 이중고를 겪게 됩니다.

주인공의 실력과 의지, 인내력만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조력자 - 특히 미녀 - 를 만나 도움을 얻는 헐리우드 스릴러스러운 전개는 전무합니다. 처음 탈출할 때 외국인 낚시꾼과 일등 항해사 베이너가 선선히 도와주는 장면같이 운에 의지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허용 범위 안쪽입니다. 낚시꾼은 독재 반대파일 수 있으며, 베이너의 경우는 주인공이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라는 설정 덕에 도와주었을 거라는 암시를 주는 식으로 합리적인 설명도 덧붙여져 있고요.

쫓고 쫓기는 대결 구도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치밀하고 끈기있는 추적으로 주인공의 은신처를 알아낸 퀴브-스미스 대령은 라이벌로 손색이 없습니다.
더 놀라왔던건 만만치 않았던 영국 경찰의 수사력 묘사였습니다. 도싯 시골 숲 속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숨어 있던 주인공에게 거의 한끝발 차이로 육박해 올 정도의 솜씨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맞부닥치는 바람에 정면에서 도주극을 벌이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지요.
이런 상대방들의 추적을 통해 원래 사냥꾼이었던 주인공이 사냥감이 되었다는 상황을 잘 알려주는 묘사들도 몰입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몇가지 앞, 뒤가 맞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인공의 독재자 암살 시도가 그러한데요, 주인공은 일관되게 단지 자기의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퀴브 -스미스에 의해 은신처에 산채로 감금당한 뒤에 갑자기 약혼했던 연인의 복수를 위해서라는 동기가 튀어나옵니다. 이럴거라면 처음부터 당당히 죽일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인이 남의 나라 지도자를 쏘려고 했다가 잡혔는데, 이게 왜 외교 문제가 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게임에 불과했다는 말을 외국 정보부에서 선선히 받아들여서 사고사로 죽이려 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주인공은 상당한 고위층으로 보이기에, 당연히 좋은 협박거리(?)로 사용될 수 있었으니까요.

전체적으로 흥미로운건 사실이지만, 경찰 추적이 근처에 이른 탓에 가짜 은신처를 만든 뒤 그 곳에 숨어있다가 도주한 것처럼 꾸미는 장면은 과했습니다. 도주 경로와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일부러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경찰 바로 옆에 숨는 묘기를 부릴 것 까지는 없었어요. 은신처를 감추려다가 본인이 위기에 처하는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잖아요. 또 그렇게 잘 숨을 수 있으면, 모습을 드러내지 말고 은신처에서 숨어 있는게 더 나았을테고요.
게다가 이 시도는 퀴브 -스미스에 의해 숨겨두었던 사이드카가 드러나, 은신처 바로 근처까지 퀴브 -스미스가 찾아왔을 때의 행동과는 반대라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퀴브 -스미스가 근처 농장을 다 뒤져서 오솔길이 은신처라는걸 알아냈다고 추리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앞서 경찰이 나타났을 때 처럼 다른 곳으로 도주했다고 위장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도주했어야 했습니다. 시간도 충분했었고요. 하지만 은신처에 틀어박혀 숨어있는 방법을 택했다가 산채로 감금당하고 말지요.

주인공을 은신처에 가둔 퀴브 - 스미스가 바로 그를 죽이지 않고 회유하는 척 연기를 하는 장면도 이상했습니다. 바로 죽이지 않는 이유를 영 모르겠더라고요. 영국을 떠나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을 받기 위한 목적은 전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별로 대단한 서류가 아니라는건 주인공과 퀴브 -스미스의 대화로 이미 드러날 정도이고, 주인공 서명 정도를 위조하는게 그리 어려울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영국 정부와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도 21세기의 한국 독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불명예가 예상된다는데, 도대체 무슨 불명예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주인공이 "사실 내가 아는 영국인 중에 그가 가져온 망할 문서에 서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거부하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고집 때문에 거부할 것이다."며 서명을 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무엇보다도 퀴브-스미스와의 마지막 대결이 아쉬웠습니다. 총이 없어서 고대 로마의 노포와 비슷한 무기를 직접 만들었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퀴브 스미스가 환기구를 막았던 자루를 빼다가 주인공이 쏜 화살에 맞고 죽는건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주인공에게 총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환기구로 고개를 내민다는건 영 석연치 않았습니다. 물론 직전에 주인공이 서명을 하겠다며 퀴브-스미스를 구워 삶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총이 없다는걸 퀴브-스미스가 확실히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내용을 보강하던가, 아니면 퀴브-스미스가 예상하지 못한 무기를 사용하는 식으로 끌고가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최소한 주인공과 자웅을 겨룬 라이벌에게 어울리는 결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명성의 이유는 잘 알 수 있지만, 지금 시점의 한국 독자가 읽기에는 다소 낡은 느낌도 없지 않아서 감점합니다.
이런 작품은 아무래도 영화로 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과거 2번이나 - 그 중 한 편은 흑백 고전 영화 시대의 거장 프리츠 랑 감독이고, 또 다른 한편은 명배우 피터 오툴 주연 - 영화화 되었더군요. 곧 베네딕트 컴버비치 주연으로 다시 영상화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떻게 만들어질지 기대되네요.

2022/11/26

두산 베어스의 22시즌을 마무리하며

 


올 시즌, 두산 베어스는 60승 2무 82패로 9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제 예상보다 훨씬 못한 결과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10승 이상을 기대했던 1선발 에이스 미란다의 부상과 중도 퇴출이었습니다. 확실한 1선발이자 연패 스토퍼 역할을 해 줄 투수가 없으니 연패도 잦아지고, 이닝 이터의 부재는 중간 투수들의 부담을 불러오는 등 악순환이 이어졌습니다. 대체 선발로 선을 보였던 박신지, 최승용 선수도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고요. 반등을 기대했던 이영하 선수는 이제 더 이상 선발로 가치가 없는 현실만 일깨워 주었습니다.
중간 투수진도 정철원 선수가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며 신인왕까지 수상했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부활을 기대했던 박치국, 이승진, 이형범, 김강률 선수는 결국 시즌 내내 별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고 홍건희 선수도 솔리드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니까요.

당연히 타선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스트라이크존 확대로 성적이 하락할거라는건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큰 타격을 입을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중심 타선은 한심할 정도입니다. 김재환 선수는 몸값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으로 보여주었고, 양석환 선수도 전년 대비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병살타 신기록을 세운 호세 페르난데스 선수를 비롯, 스텝업을 기대했던 박계범 선수의 성적은 처참할 지경이고요. 박건우 선수의 뒤를 이어 만개할걸로 믿었던 김인태 선수도 부상 등으로 제몫을 하지 못했습니다. 강승호, 정수빈 선수도 기복이 심해서 시즌 한창 때에는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했던건 팀 컬러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각목으로 때려 부수던 우동수 깡패곰 시절이나, 선발로 찍어 눌렀던 판타스틱 4를 기대하는건 아닙니다. 하지만 '육상부' 시절의 BQ 넘치던 플레이들은 가능하잖아요? 뛰지 못하면 잘 하기라도 해야죠. 올 시즌은 공수에 있어 실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끝내기 안타를 치고도 세레머니 할 생각 탓에 병살 아웃되어 허무하게 끝나버렸던 SSG전이 대표적입니다. 수비를 못하면 1군에 올리지 않는다는 베어스 철학은 어디갔는지도 모르겠고요.
근성과 투지로 '미라클 베어스'라고도 불리웠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실수하고 못하면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아무리 전력이 떨어져도 LG전에서만큼이라도 근성을 보여주던게 바로 얼마 전인데 말이지요. 오재원 선수같은 선수가 필요한데, 그런 역할을 해 줄 선수가 없다는게 너무나 아쉽습니다.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해본다면, 결국 김태형 감독의 책임이 커 보입니다. 물론 프런트 진의 잘못도 작지는 않아요. 작년에도 글을 남겼었지만, 김재환 선수에게했던 투자, 그리고 직전해 정수빈 선수를 잡아서 박건우 선수룰 놓친 것 모두 프런트 진의 실수니까요. 선수단 구성이 엉망이 된 건 프런트 책임이지요.
그러나 팀 컬러의 실종, 잘못된 선수 기용, 끝없는 타격 부진, 유망주 육성 실패 등은 모두 감독에게 가장 책임이 클 것입니다. 직전 시즌까지는 눈부신 성과를 보였지만, 재계약은 더 못하고 감독이 교체된건 당연한 수순입니다.

이제 2023년부터 이승엽 감독을 맞아 새롭게 달리게 되었습니다. 아직 시즌은 커녕, 스토브 리그가 마무리되지도 않았고 동계 훈련 역시 시작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전망이 밝네요.
가장 큰 이유는 외국인 선수 교체와 양의지 선수의 복귀 덕분입니다. 알칸타라 선수의 복귀가 확정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둘이 합쳐 20승은 해 주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스물스물 생기거든요. 스탁, 미란다, 브랜든 합쳐서 14승을 거두었던 작년보다 +6승이 더해지며, 단순 WAR만 비교해도 박세혁 선수보다 +3 이상 높은 양의지 선수의 복귀까지 합치면 거의 10승이 더해지는 셈입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70승 2무 72패로 거의 5할이니, 5강 싸움은 가능한 수준이 됩니다. 올해 5위였던 기아의 성적도 비슷했지요.
기존 선수들도 조금 기대가 생깁니다. 일단 투수진은 외국인 투수 두 명이 정상적으로 로테이션을 돈다는 가정 하에 올 시즌 스텝업한 곽빈 선수를 필두로 4선발로는 차고 넘치는 최원준 선수, 갑툭튀 정철원 선수는 확실한 상수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올해 부상으로 정상 가동되지 못했던 박치국, 김강률 선수 등이 힘을 보태주고, 기대주인 최승용, 이병헌 선수 등 신인 몇 명이 뒷받침만 해 주면 올해보다는 확실히 나을 겁니다.
올해 가장 큰 문제였던 타선의 해결사는 호미페 대신 선택된 새 외국인 타자 호세 로하스와 복귀한 양의지 선수 두 명입니다. 팀에 부족했던 장타력을 더해줄 수 있는 선수들이니까요. 여기에 신임 이승엽 감독과 전면 교체된 코치진이 반드시 터져야 하는 김대한 선수를 비롯, 몇몇 선수만 알을 깨도록 도와준다면 더할나위 없겠습니다. 그걸 위해 선택한 신임 감독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유튜브 등을 통한 마무리 훈련 모습 등은 긍적적으로 보였습니다.

뭐 그래도 당장 우승을 노린다는건 도둑놈 심보입니다. 작년 성적을 보면 말이죠. 가을 야구가 아니라 한국 시리즈 진출이 당연한 것인줄 알았던 좋았던 시절은 다 갔으니, 당분간은 성적을 내려놓고 팬으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에 박수를 쳐 줄 생각입니다. 당장 내년은 성적보다는 앞으로가 기대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를, 그리고 LG에게는 반드시 이겨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내년 시즌에는 선수단의 핵이 될 만한, 근성 넘치고 팀 컬러를 대표할만한 스타 선수가 나와주면 좋겠습니다. 김대한, 송승환, 안재석, 이유찬, 정철원, 최승용 선수나 아니면 다른 선수 누구라도요. 겁없이 뛰어도 되는 시즌이니 부담갖지 말고!

순전히 팬심으로 써보는 2022 두산 베어스 예상!

명탐정에게 장미를 - 시로다이라 교 / 김은모 : 별점 1점

명탐정에게 장미를 - 2점
시로다이라 교 지음, 김은모 옮김/문학동네

<<허구추리>>로 유명한 시로다이라 교의 데뷰작. 두 편의 중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망작 of the 망작입니다. 올해는 아직 다 가지 않았지만, 올해의 최악으로 꼽겠습니다. 읽어보실 필요는 당연히 없습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수록작별 상세 리뷰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메르헨 난쟁이 사건>>
'난쟁이 지옥'이라는 독약에 관련된 참혹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첫 번째 피해자 후지타 게이코는 난쟁이 지옥을 만들었던 다케바야시의 딸이었고, 두 번째 피해자 구니오는 다케바야시의 조수였다. 두 사람은 각종 언론사 등으로 보내진 <<메르헨 난쟁이 지옥>>이라는 동화 속 모습 그대로 살해당했다.
유력한 용의자인 다케바야시의 또 다른 조수였던 쓰루타는 첫 번째 사건에서의 알리바이가 완벽했다. 오히려 쓰루타는
후지타 가에 나타나 게이코의 딸 스즈카를 동화의 마지막 피해자 한나처럼 죽일 수 있다며 협박하는데...


어떤 이야기와 살인 사건이 맞물려 전개되는 작품은 많습니다. '마더 구스' 동요를 이야기 전개에 써먹었던 크리스티 여사님의 <<주머니 속의 호밀>>이나 밴 다인의 <<비숍 살인 사건>> 처럼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빼 놓을 수 없을테고요.
이렇게 범인이 무언가를 따라서 범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해서이거나 범행에 관련된 중요한 무언가를 숨기려고 했다는 등이 있습니다. 단순히 범인이 정신병자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와 같은 이유는 특이했습니다. 난쟁이 지옥을 팔고 싶은데, 독약의 효능 등이 잊혀졌으니 이를 다시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기묘한 잔혹 동화를 창작하여 뿌린 뒤, 그 이야기대로 잔혹한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이거든요.
쓰루타는 구니오의 장기말에 지나지 않았는데, 오히려 구니오의 뒷통수를 쳐 그를 살해하고, 신출귀몰한 능력자 범인인양 후지타 가에 나타나 자기는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며 협박했다는 진상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세가와 미유키가 사건의 모순을 눈치챈 계기가 된 동화 속 등장인물 이름인 한나, 니콜라스, 플로라는 모두 후지타 가족 이름과 연결된다는 등 단서 제공도 공정합니다. 히브리어 뜻까지 알아야 하는 등 좋은 단서로 보기에는 어렵지만요.

명탐정 세가와 미유키도 일본 만화 등에서 흔히 보았던 전형적인 쿨 뷰티, 차도녀 안경 선배 설정이기는 한데 명탐정으로서의 고충 - 진상을 드러내어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입는 - 을 묘사한건 신선하더군요.
물론 명탐정이 마음에 상처 따위는 입어서는 안되지만요. 유불란의 말대로 명탐정의 혈관에는 강침이 돌아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 유불란도 감정에 휩쓸려 버리기는 했지만요.

그러나 좋은 작품은 아닙니다. 일단 억지가 심합니다. 아이 사체로 만든다는, 주술에 가까운 독약 '난쟁이 지옥'의 설정부터가 억지입니다. 기묘한 동화를 창작하고, 성인 여성을 납치하여 온 몸을 난도질하는 엽기 범죄 역시 마찬가지에요.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독약 광고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어떤 장소에 '난쟁이 지옥'을 풀어서 사람들을 심부전으로 죽게 만들고, 매스컴에 '난쟁이 지옥'으로 일으킨 범죄라는 성명서를 내는게 훨씬 손쉽고 깔끔했을겁니다. 게이코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후지타 가에 독을 푸는게 더 현실적이었을테고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게이코에게 '난쟁이 지옥'에 대해 알린 뒤, 범행 현장으로 찾아오도록 시켰던 트릭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게이코가 '난쟁이 지옥'에 대해 업보가 있다고 생각한건 독을 이용하여 친모를 살해한 탓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죄의식을 느끼고 구니오의 덫에 스스로 빠질리 없지요. 그런데 그 사실을 구니오 등이 알 턱이 없으니 이는 모순입니다. 게이코가 친모를 살해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했을거에요.

딱히 명탐정이 필요했던 사건도 아니라는 문제도 큽니다. 쓰루타가 게이코 사건에서의 알리바이가 어쨌건 간에, 구니오 사건에 대한 수사만 철저히 진행했어도 사건은 해결되었을테니까요. 게이코는 퇴근길에 납치당한게 아니라 그녀 스스로 현장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생겨난 구니오의 알리바이가 파헤쳐지지 않은 것도 경찰의 부실 수사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납치는 못했더라도 공범이 있다던가하면 범행은 저지를 수 있었습니다. 세간의 화제가 된 강력 사건을 이렇게 허술하게 수사한다는건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게이코의 편지를 후지타 가에서 내놓지 않는걸 경찰이 방관하는 것도 납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기발한 부분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독배 퍼즐>>
미하시의 후배로 스즈카의 가정 교사를 맡았던 야마나카 후유미가 '난쟁이 지옥'에 독살당했다. 가족이 모두 모인 티 타임에서 차를 마신 직후였다. 조사 결과 티 포트에 '난쟁이 지옥'이 가득 들어있었다. 누가, 왜 포트에 독을 넣었을까? 미하시는 이번에도 명탐정 세가와 미유키에게 사건을 맡기는데....

한마디로 최악. 진상은 명탐정 세가와 미유키를 흠모하게 된 스즈카가 명탐정을 다시 만나기 위해 사건을 일으켰다는 겁니다. 그녀가 어머니의 유품인 '난쟁이 지옥'을 티 포트에 넣었던 거지요.
그런데 스즈카는 중학생입니다. 아무리 명탐정이 보고 싶어도 가족 모두가 먹는 차에 먹으면 바로 죽는 독을 다량으로 푼다는게 과연 말이나 될까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장난삼아 풀었다면 모를까요. 너무 써서 바로 뱉을 수 밖에 없다는건 증명되지도 않았고, 증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가족이 모여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차가 쓰다고 바로 뱉어낸다는 것도 잘 상상이 안되고요. 야마나카 후유미가 미각 장애가 있어서 차를 삼켰다는 만화같은 설정도 거슬렸습니다.

어쨌건 명탐정은 불렀지만 이유를 알려줄 수 업어서 미하시 등이 내세운 가짜 진상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즈카가 계모 교코의 살의를 눈치채고, 독이 묻은 찻잔 흔적을 감추기 위해 독을 포트에 쏟아 부은거라는데, 비상식적입니다. 계모가 자기 목숨을 노리지만 계모와 아버지가 너무 사랑해서 그걸 숨기고 독을 가지고 도박을 한다? 아버지, 아니면 미하시에게 말하고 도움을 구하는게 당연하잖아요? 그리고 교코가 스즈카를 죽이려 했다면 '난쟁이 지옥'을 썼을리도 없어요. 그 독이 어디에 있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온 가족이 다 아니까요. 의학적으로는 병사로 판단되더라도, 아버지 가쓰히토와 미하시는 의심의 눈초리를 절대 거두지 않았을 겁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하시가 스즈카를 은밀하게 조종해서 후유미를 살해한 진짜 흑막이었다는 연극도 어처구니 없었어요. 건실한 청년 미하시 캐릭터와 어울리지도 않으며, 그래봤자 스즈카가 실행범이라는건 바뀌지 않으니까요. 이런 억지 연극을 꾸미는 것 보다는 차라리 스즈카의 뇌종양을 미유키에게 알리고, 경찰 고발을 취소해달라고 부탁하는게 나았을 겁니다.

제일 큰 문제는 명탐정 미유키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스즈카만 걱정하고 피해자 야마나카 후유미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미하시와 미유키에게는 후배이기도 한데 왜 그녀의 죽음은 비통해하지도 않고, 진상을 덮으려고만 할까요? 살인범 스즈카를 무슨 순정만화 속 비련의 피해자처럼 묘사하는 마지막 장면은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명탐정이 진실을 밝히는 바람에 비극을 불러왔다 운운하는데, 스즈카가 사람을 죽인건 사실이라서 뭐가 비극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1점. 명탐정을 부르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만화같은 동기를 비롯하여, 뭐 하나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2022/11/20

알라딘의 2022 당신의 기록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알라딘의 한 해 기록.
2022년이 다 가려면 한 달 넘게 남았기에 좀 빠르다 싶기는 합니다만, 언제나처럼 포스팅 합니다.

작년 대비 책을 좀 더 구입하기는 했지만 딱히 특별한건 없는데, 올해는 구매한 도서 중 소수만이 구매한, 희소성이 있는 책을 따로 소개해주는 부분이 눈에 뜨입니다. 제가 구입한 책 중 희소성이 있는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여튼, 확실히 올 한해도 이제 슬슬 저물어가는군요...

알라딘의 2021 당신의 기록

클락성 살인사건 - 키타야마 타케쿠니 / 김해용 : 별점 1.5점

 

클락성 살인사건 - 4점
키타야마 타케쿠니 지음, 김해용 옮김/북홀릭(bookholic)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자기장 이상으로 멸망을 앞둔 세계, 유령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탐정 미나미 미키는 파트노 시노미 나미와 함께 '클락성'으로 향했다. 수수께끼의 미녀 쿠로쿠 미카가 '스킵맨'이라는 유령을 퇴치해 줄 것을 의뢰했기 때문이었다. '클락성'은 그 이름처럼 거대한 세 개의 시계가 외벽에 설치된 저택으로,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나타내는 시계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밤, 클락성의 주인 쿠로쿠 박사와 박사의 동생 슈지가 목없는 시체로 발견되었고, 두 명의 목은 박사의 딸로 오랫동안 혼수상태였던 미온의 방에 놓여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서로 떨어진 관에 있던 두 사람을 살해하는 것, 그리고 입구를 마모루가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던 미온의 방에 잘린 머리를 가져다 놓는건 불가능해서 사건은 미궁에 빠졌고, 슈지의 아들 레이마와 박사의 아들 린, 그리고 결국 루카마저 죽고 마는데...


전자기장 이상으로 멸망을 앞둔 지구를 무대로, '유령'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탐정 미키가 '클락성'에서 일어난 괴 사건을 해결하는 SF 판타지 추리물. '물리의 다케야마'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잘 짜여진 물리 장치 트릭의 대가 기타야마 다케쿠니의 데뷰작으로 메피스토 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국내 출간된지는 꽤 되었지만, 다소 유치해보이는 제목과 낯선 작가 이름 탓에 손이 가지는 않았는데 어딘가의 랭킹에서 추천하기에 구해보게 되었네요. 작가의 다른 작품인 <<인어공주>>을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요.

그런데 작품은 대체 제가 뭘 읽었나 싶을 정도로 엉망이었습니다. 제대로 리뷰를 쓰기 힘들 정도로요.
일단 유령이 등장하는 세계관과 물리 법칙을 따르는 본격 추리물은 잘 어울리지 않더군요. 그냥 지구 멸망을 앞두고 있었다 정도의 설정으로 충분했을겁니다. 뭔가 있어보였지만, 사실상 알맹이 없었던 다른 유치한 설정들 모두 없는게 차라리 나았고요. 멸망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조직인 12사도와 SEEM, 그리고 그들이 멸망을 막기 위해 찾는 '한 밤의 열쇠'라는 존재 등등은 모두 본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거든요. 미키가 유령을 잡을 수 있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에요.
사건과 연관이 있던건 클락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모두 시간에 대한 유전병이 있는 도르 가문의 후손이며, 클락성은 일부러 시간에 대한 감각을 지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정도였습니다만, 이 역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작위적인 설정이라 별로 와 닿지 않더군요.

기대했던 트릭도 별볼일없었습니다. 거대한 세 계의 시개가 벽 면에 붙어 있는 클락성의 특징을 활용한 트릭이라는게 빤히 들여다 보였던 탓입니다. 즉, 서로 떨어진 두 관을 시침과 분침이 다리 역할을 하는 특정 시간에 이동했던 것이지요. 시간만 알면 단순 소거법으로 범인은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알리바이가 없는건 린 밖에 없었으니까요.
이 트릭은 아래와 같은 클락성에 대한 도판만 사전에 공개되었다면, 누구나 풀어낼 수 있었을겁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도 권말 해설을 통해 똑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추리의 묘미를 즐기기 위해서는 도판을 보지 말라고요. 반대로 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의 추리력이 형편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클락성을 실제로 보고, 잠시 머물기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거대한 시계 바늘이 과거와 미래의 관을 오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걸 떠올리지 못하니까요.


시계 트릭보다는 차라리 범인은 린이 아니라 미키라 주장하는 미온과 나미의 추리 대결이 더 볼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되는, 박사와 슈지의 머리를 잘랐던 이유에 대한 추리가 괜찮았거든요. 범인이 두 개의 관을 시계 바늘을 이용하여 오가기 위해서는 특정 시간에만 시계 바늘로 만들어지는 길이 열리고, 그건 처음 길이 열리고 나서 2시간 뒤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범인 린은 아날로그 시계를 볼 줄 몰랐고, 클락성 안에는 시계도 없어서 첫 범행에서 시계의 목을 베어 가지고 왔다고 추리합니다. 시체의 안구가 2시간 지나면 변하는 법의학적 상식을 이용했기 때문이라나요. 제가 여태까지 보아왔던 시체 훼손 추리물에서 손에 꼽을만한 독창적인 동기였습니다. 얼마전 소개해드렸던 엽기 토막 살인이 등장하는 추리 소설들 랭킹에서 언급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문제는 이 추리에도 헛점이 많다는 겁니다. 구태여 시체의 목을 벨 필요는 없었습니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바늘의 위치만 확인해도 되었을 일이니까요. 린이 아날로그 시계를 볼 줄 몰라서 범인이 될 수 없다고 하는 미온의 주장도 마찬가지로 현실적이지 않아요. 거대한 시계가 붙어있는 집에서 태어나 자라온지 십년이 넘었다면, 시계를 볼 줄은 몰라도 그걸 이용하는 방법은 충분히 알 수 있는게 당연하잖아요?

미온이 루카와 린의 모친이었다는 일종의 반전도 불필요했을 뿐더러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린의 동기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는건 알겠어요. 하지만 누나였어도 돼잖아요. 어린 소녀를 근친상간으로 임신시켜 출산하게 했다는건 지나치게 극단적인 설정이었어요. 불쌍한 루카를 죽인 이유도 모르겠고, 결국 세계가 멸망하는 건지도 알 수 없는 결말도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절판된게 당연하다 싶은 망작이었습니다. 중고 가격이 상당한 편인데, 절대 그만한 값어치는 없습니다.

2022/11/19

나의 차가운 일상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1.5점

 

나의 차가운 일상 - 4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범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와카타케 나나미는 우연히 알게된 지인 이치노세 다에코가 자살 시도 후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낼 약속을 했기에 나나미는 그녀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걸 믿지 않았고, 누군가 다에코가 쓴 '수기'를 나나미에게 보낸 뒤 나나미는 다에코 사건을 혼자서 파헤치기 시작했다. '수기'는 다에코가 친구 도모요가 식물인간이 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회사를 옮겨가며 조사에 나섰고, 어렸을 때 부터 독살을 반복해 왔던 범인 세누마 도루가 누구인지 찾아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범인인줄 알았던 세누마 도루는 다에코 사건과 관계가 없다는게 드러났고, 나나미 앞에서 세누마 도루마저 살해당하는데....


와카타케 나나미의 데뷰작이었던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의 후속 장편. 작가와 이름이 똑같은 '와카타케 나나미'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이야기입니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은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 속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일상계 단편, 그리고 단편이 모여 하나의 큰 사건을 이야기하는 연작 구성이었던 반면, 이 작품은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장편에 가깝습니다. 지인의 사고에서 촉발된 조사가 거대한 사건들을 연쇄적으로 일으키는 방아쇠가 되고, 결국 비참한(?) 결말로 이어지는 내용이니까요.
전작은 꽤 성공적으로 국내 시장에 소개되었으며, 재판까지 이루어졌던 반면 후속작은 있는지도 몰랐었는데, 읽고나니 왜 소개가 늦어지고 그 존재도 알 수 없었는지 알겠더군요. 추리적으로 별볼일 없고, 여러 사건들 - 세누마 도루가 벌인 독살 사건들, 이치노세 다에코 자살 미수 사건, 세누마 도루 살인 사건 - 이 모두 따로 놀고 있어서 내용도 정리되지 않은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와카타케 나나미가 수사에 나선 계기가 된 다에코 자살 미수 사건과 세누마 도루가 독살범임을 밝혀내는 다에코의 수기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세누마 도루를 살해한 것도 다에코 사건과 무관하게 가족이 저지른 범행이고요. 다른 하드보일드 소설처럼 한 사건에서 다른 사건들이 파생되는게 아니라, 그냥 우연찮게 전혀 다른 사건들이 한 인물 주변에서 일어났을 뿐입니다. 이런 우연이 한 번에 겹친다는 것, 그리고 자살 시도와 불합리한 죽음이 너무 많다는건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각 사건들의 세부 요소들도 제대로 짜여져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치노세 다에코의 '수기'가 좋은 예입니다. 이치노세 다에코가 세누마 도루의 수기를 어떻게 입수했는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탓이에요. 세누마 도루가 누나 이시하라 사와코에게 주었던걸 사무실에서 우연히 입수하여 복사를 했다는데 말도 안돼요. 사와코는 분신 자살을 선택하여 동생과 수기의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했을 정도인데 수기를 그렇게 허술하게 놔 두었다? 그럴리 없지요, 애초에 연쇄 독살범이 버젓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자기 범행을 고백하는 수기를 남긴 것 부터가 말이 안되고요.

다에코 자살 미수 사고를 일으킨 이가라시의 동기도 불분명합니다. 다에코를 놓치기 싫어서 그랬다는데, 그와 다에코의 관계가 이런 엄청난 사건을 불러올 정도였는지 독자는 알 수가 없거든요. 단순히 '놓치기 싫었다' 정도로 간주하기에는 지나치게 치밀한 범행이라는 인상도 지우기 힘듭니다.
이가라시가 와카타케 나나미의 추리만으로 자백한다는 것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자백도 결국 '다에코가 자살했다'는거라 허무했습니다. 결국 와카타케 나나미의 진상 조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는거잖아요. 자살 동기도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세누마 도루 살인 사건도 억지스러웠습니다. 누나 이시하라 사와코는 동생이 연쇄 독살범이라는걸 수기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동생의 범행으로 가족이 고통받을까 두려웠다면, 수기를 입수한 뒤 바로 죽였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범행이 계속되어 체포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구태여 한참 기다렸다가 죽일 이유는 없습니다. 마침 도루가 와카타케 나나미와 만나고 있던 그 시점에 범행을 저지른다는 것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사와코가 도루를 죽였다는 증거가, 와카타케 나나미가 담배를 피우는걸 알고 있었다는 것 뿐이라는건 비약이 심했습니다.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는걸 보지 않아도 냄새로 알 수 있으니까요.

캐릭터들도 별로였습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와카타케 나나미는 불행과 사고를 불러온다는 점에서는 하무라 아키라와 비슷한데, 시종일관 진지하고 어두워서 호감가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짜증만 유발하는 다른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체로 성격들이 괴퍅하고 모가 나 있는 탓에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대표적인건 세누마 도루입니다. 정신병자이기도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과 접촉하면 심한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이상 체질을 가지고 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나마 밀실이었던 다에코의 방에서 가스가 누출되었던게 아니라, 그 전 노래방에서 가스 호스를 다에코 입에 직접 물려 가스를 흡입하게 하고, 술에 취한 것 처럼 위장해서 집으로 옮겼던 이가라시의 범행 정도만 괜찮았어요. 그리고 동행들과 집의 가스를 단속한 뒤 문을 잠겄던 겁니다. 나중에 이동할 때 가스 냄새가 나는 향수를 조합하여 뿌린 뒤, 그 때 집에 들어가서 가스를 누출시켰고요. 가스를 언제 흡입했는지는 밝혀내기 힘들고, 순전히 냄새로만 판단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한 괜찮은 트릭이었다 생각되네요.

하지만 이 트릭 외에는 말씀드렸듯 건질게 없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의 후속작이라고는 하지만, 제목 외에는 관련성을 거의 찾을 수 없으며 완성도, 재미, 수준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습작 수준의 작품으로 작가의 팬이 아니리시라면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2022/11/13

고양이가 있는 카페의 명언탐정 - 기타쿠니 고지 / 문승준 : 별점 2점

 

고양이가 있는 카페의 명언탐정 - 4점
기타쿠니 고지 지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변호사가 탐정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속 도시타는 가난한 동네 변호사로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의뢰 해결이 주 업무라 법정 다툼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법정물로 보기는 힘듭니다. 그보다는 일본 추리 소설 시장에서 나름대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특정 분야 전문가가 소시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을 수행하는 일상계 추리 단편집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다른 전문가 - 서점 점원헌책방 주인, 요리사, 화과자 장인, 시계 수리 전문가, 사진가, 바리스타라쿠고가복화술사, 호텔리어, 심지어 스님까지 - 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각자의 직종과 관련된 사건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반해, 이 작품은 그냥 동네 사람들의 다양한 의뢰를 받기 위해서 변호사라는 직업을 설정한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법률 전문가스러운 느낌이 별로 들지 않거든요. 도시타는 화자이자 커뮤니케이션 담당일 뿐, 탐정 역할은 도시타의 동생 리쓰가 담당하고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 리쓰 캐릭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일단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지고,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도시타' 에 관련된 말을 하는 루틴이 있고, 현재 상황과 분위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해야 하는 말은 반드시 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닙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우영우를 떠오르게 만드네요. 결은 좀 달리하지만 엄청나게 머리가 좋다는 설정마저도 똑같고요. 그러나 우영우만큼 호감가게 묘사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전문가 일상계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었습니다. 비일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독특함에 목숨을 건 나머지 이상한 만화 주인공이 되어버리고 만 거지요.
또 추리한 결과를 형에게 바로 알려주지 않는 이유도 설명이 없는데, 여기에 무뚝뚝하고 무례한 행동에 더해져 굉장히 비호감이었어요. 다른 캐릭터들도 글래머 소꼽친구 간호사 사키, 여자를 밝히는 스님 마루메, 전 야쿠자 출신이자 현 카페 주인인 이모부 등 비현실적이거나, 호감가지 않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었고요.

그래도 추리적으로 괜찮았다면 나쁘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수록된 네 편의 단편들 모두 그렇게 좋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보 제공이 공정하지 못하거나, 이야기 전개가 리쓰 캐릭터처럼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설정이 많았던 탓입니다. 입 안에 넣은 치과 치료용 충전물이 라디오처럼 동작한다는 이야기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따뜻한 인간 드라마 중심의 전형적인 일상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전문가 일상계로 보기에는 전문성, 일상성 모두 떨어지며 추리적으로도 그닥이라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한 가지 꼽자면 일본에서도 변호사가 먹고 살기 힘들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정도?
딱히 영상화 되었다는 소식도 없고, 후속권도 출간되지 않았으며 국내에서도 금새 절판된걸로 보면 다른 분들의 평가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되네요.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참고로 '고양이'는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시피 한 수준이므로 집사분들께서는 낚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길....

1화 <<못된 며느리와 낙서 소동>>
고토에 아줌마는 도시타에게 며느리 험담 끝에 며느리를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고토에 아줌마가 돌아간 후, 리쓰는 그녀의 섬망성 기억 상실을 눈치챘다. 형제는 사태 수습을 위해 며느리 에가와 씨를 만나러 갔다가 ,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던 낙서 소동에 휘말리는데...

진상은 알고보니 고토에 할머니의 병을 낫기 위해 며느리 에가와가 마당에 자생하는 디기탈리스 잎을 떼어 말린 뒤 몰래 먹였다는 겁니다. 고토에 할머니는 디기탈리스 잎의 부작용으로 치매와 비슷한 용태를 보인거지요.
그런데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디기탈리스가 심장병에 효과가 있지만 독성 또한 강하다는건 정보 검색으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자동 완성으로 '디기탈리스 중독'이 함께 뜰 정도로요. 이걸 약재로만 알고 먹였다? 설득력이 약합니다. 자기 험담만 하는 시어머니에 대한 며느리의 살의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때문에 이를 효심으로 포장하는 마무리는 억지스러웠습니다. 도시타가 제대로 된 변호사였다면 며느리를 경찰에 신고하는게 맞았어요.
추리를 하기 위한 정보 제공도 빈약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고요.

차라리 낙서 소동 쪽이 추리적으로는 조금 더 낫습니다. 다른 낙서들과는 그림이 달랐고, 키가 작은 사람이 그렸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은 꽤 그럴싸했거든요.
하지만 진상은 앞서 사건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초등학교 3학년생이 새가 부딛힐까봐 '버드 스트라이크'를 리카 씨네 가게 쇼윈도에 그렸다는게 전혀 와 닿지 않았거든요. 쇼윈도가 그 가게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닐테고, 1층 건물 쇼윈도에 새가 날다가 부딛힐일이 그렇게 많을리 없으잖아요. 애초에 범인 신지의 집 창문에 새가 부딛혀 죽은 것부터가 작위적이지요. 이를 리쓰가 맨션의 깨진 창문만 보고 바로 알아챘다는 추리도 비현실적이고요.

아울러 전혀 다른 두 이야기를 억지로 결합할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화 <<협상 상대는 요통으로 고생하는 전과자>>
도시타 형제는 연립 재건축을 앞두고, 퇴거를 거부하는 임차인을 설득하는 의뢰를 받았다. 리쓰는 찾아간 임차인 아라키 데쓰조의 집 안에서 '사취'가 나는걸 느꼈고, 여러가지 주변 정보들을 조합하여 그가 길고양이를 돌보고 있다는걸 추리해 내는데...

길고양이를 돌본다는걸 훔쳐온 쓰레기 봉투 속 내용물을 통해 추리하는 과정, 그리고 사취는 길고양이가 물어온 쥐의 시체였다는 진상까지의 전개와 과정은 깔끔했습니다. 퇴거를 불응했던 이유가 유치원에 드는 햇볕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작위적이지만 나쁘지는 않았고요.

전반적으로 잔잔한 일상 드라마 느낌을 가득 전해주는 작품으로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로 꼽을 만 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3화 <<만화가 지망생과 사라진 유언장>>
도시타는 이모네 카페 단골인 만화가 지망생 레논 씨의 사건 을 수임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형이 레논 씨가 유언장을 숨겼다고 주장해서 법정에서 다툼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레논 씨는 도시타에게도 유언장은 없었다고 말했지만, 형이 어머니가 유언장을 남겼다는 말을 녹음해서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수록작 중 유일하게 변호사가 활약할만했던 이야기. 핵심은 '유언장은 어디에 숨겼나?' 라서 변호사가 나설만한 부분은 없지만, 레논 씨가 왜 유언장을 숨겼는지에 대해서는 법률적 해석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레논 씨가 어머니 장례식 초야 직후, 카페를 방문한 뒤 책꽂이 위에 있는 책을 떨어 트렸다는 점에 착안하여 카페의 만화책 중 한 권 안에 유언장을 숨겼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만화책에 대해 사소해보였던 레논 씨의 질문이 중요 단서가 된다는 점도 좋았고요.

하지만 유언장 내용이 유산을 형이 아니라 레논 씨에게 전부 남긴다는 거라서 유언장을 숨기고 형과 유산을 반으로 나누려 했다는 동기가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착하고 바보같아도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그리고 이런 동기였다면 유언장을 숨기는게 아니라 태워버리는 식으로 없애는게 당연합니다. 유언장을 어떻게든 드러내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하는 전개를 보면 더더욱요. 이는 유언장이 없을 경우 법률적으로 레논 씨가 한 푼도 건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작가가 선택한 억지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4화 <<한심한 피고인과 소음 트러블>>
도시타는 마약용 주사기를 수백개 구입하려다 경찰에게 상처를 입힌 에비스 씨의 국선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 어떻게든 집행유예를 받으려고 도시타는 노력했지만, 에비스 씨는 거부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리쓰가 급작스럽게 증인 요청을 하여 판결은 연기되었다.
그 사이 도시타는 소꼽친구 사키의 소개로 이웃이 내는 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도모코 씨를 만났다. 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조사한 결과, 도시타 형제는 아무런 소음도 들을 수 없었다....


도시타가 국선 변호사로 선임되어 법정 장면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법정에서 날선 공방이 펼쳐지는 법정 미스터리는 아닙니다. 왜 에비스 씨가 징역형을 받고 싶어하는지를 추리해낸 뒤, 진상을 파악하여 그의 갱생을 돕는다는 감동적인 (?) 인간 드라마이기 때문입니다. 도모코 씨 이야기도 마찬가지에요. 소음 공해는 단순한 소재였고, 도모코 씨 남편이 정리 해고를 앞두고 회사에서 수모를 당하면서 근무하는 상황의 극복이 핵심이거든요.

드라마 모두 좋은 이야기에요. 문제는 추리적인 부분입니다. 에비스 씨 시간의 경우, 오래전 이혼한 아내가 키우던 아들이 칼에 찔린 뒤, 부모는 수혈이 안 되는 탓에 행인들로부터 피를 뽑으려고 주사기를 구입했다는 동기부터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딱히 추리를 할 부분도 없고요.
도모코 씨가 치과 진료를 받은 이후, 이빨에 채운 충전물이 우연히 방송을 수신하게 되어, 일종의 광석 라디오처럼 동작했다는 진상도 황당하기 그지없더군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극히 드물겁니다. 설령 실제 일어나더라도 입 안에서 소리가 나는걸 모른다는건 말도 안되겠지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마지막 이야기였는데, 아쉬움이나 여운을 남기기는 커녕 더 읽어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만 굳게 만들어 주네요.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 니시자와 야스히코 / 김은모 : 별점 2점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 4점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인 소년 마모루 미키가미는 어느 순간 부모님과 떨어져 머나먼 어딘가에 있는 기숙학교에 재학하게 되었다. 그곳에 머무는 학생들은 그 외에 스텔라와 중립, 시인, 여왕님, 신하 (마모루가 붙인 별명)의 모두 6명이었다. 어느날 '교장 선생님'이 새로운 학생의 입학을 알리자 마모루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은 눈에 띄게 동요했다. 마모루는 '시인'에게 이유를 물었고, '시인'은 신입생이 오면 학교에 살고있는 무엇인가가 깨어나며, 과거 마모루가 전학왔을 때도 그랬다는 말을 해 주었다. 몇일 뒤, 신입생 루 베넷을 처음 만났을 때, 마모루를 포함한 학생들 모두는 세계가 뒤틀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루 베넷은 입학한 첫날 사라져 버렸고, 그를 찾기 위해 '교장 선생님'과 '사감'이 학교를 비운 사이, 신하, 시인 등 다른 학생들과 선생들이 차례로 살해당하고 마는데....


<<일곱 번 죽은 남자>>와 '탓쿠 & 타카치' 시리즈로 유명한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장편 범죄 스릴러. 예전에 소개해드렸던 "헌책방 스탭의 추천"에서 반전이 놀라운 작품으로 소개되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숙학교에 모인 소년, 소녀들'이라는 주제는 일본 만화에서는 많이 보아왔던 내용입니다. 이 상황에 대해 학생들이 하나씩 펼쳐놓는 추리가 초반부의 볼거리입니다. 맨 처음에 '중립'은 그들을 특수한 비밀 탐정으로 만들려는 목적이라고 추리했습니다. '여왕님'은 그들이 전생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특별한 아이들이라 한 곳에 모이게 되었다고 추리했고요. 다른 기억을 떠올릴 때는 현재를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학교에 오기 전 기억이 없다면서요.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학교는 가상 현실 속 세계라는 '시인'의 추리였습니다. 기억 상실은 물론 '뒤틀림' 까지 설명가능했던 덕분입니다. 얼마전 읽었던 <<앨리스 살인게임>>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좋은 아이디어였다 생각되네요. 시인이 자기 자신, 즉 케네스 더피도 가공의 인물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진상과 맞닿아 있기도 하고요.

반전도 놀라왔습니다. 사실 학생들은 모두 70대 이상의 노인들이었던 겁니다! 그들 모두 치매 탓에 12살 이후의 기억을 잃고, 12살에 갇혀 있던 상태였어요. 이는 '교장 선생님' 시워드 박사의 연구를 위해서였다는 설정도 설득력 높습니다. 다수가 같은 착각을 하면, 그 착각이 객관적 사실로 변한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노인들이 10~12살 아이들이라고 착각하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상당히 그럴싸했어요. 노인 모두가 자기들이 아이들이라고 믿고 생활하게 되었지만, 잘 모르는 신입생이 나타나면 노인을 억지로 어린 아이로 착각하게 만드는 정신적인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뒤틀림'이 일어났다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고요. 역자의 말대로 <<벛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가 떠오르지만, 주인공들도 진상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이런 변주도 아주 좋네요.

반전까지 이르는 과정도 잘 짜여져 있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싫어하는 코튼 부인의 저염 건강식 요리, 게이트 볼 정도 밖에 없는 야외 활동, 열 살에서 열두 살 먹은 아이들치고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사고방식과 말투가 어른스럽고 실제 그 또래들보다 지력이 뛰어나다는 점 등 엄청나게 다양하고 방대한 단서를 통해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제공되는 단서는 온갖 세세한 데에 이르기에 공정함 측면에서는 최고 점수를 줄만 합니다. 예를 들면 일본인 마모루가 영어를 금방 습득했던 이유처럼요. 작 중에서는 '머리가 좋다' 고 설명되지만, 사실은 12살 이후 미국에 살면서 영어를 익혔기 때문입니다. '전화 부스' 방에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최첨단 전자 장치들과 사건이 일어난 뒤 아이들이 '전화 부스'에 설치되어 있던 전화를 걸 수 없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려 60년 뒤 제품들이라 최첨단으로 보였을 뿐이며, 전화도 미래의 물건이니 걸기 힘들었던게 당연하지요.
아이들이 학교에 오기 전 어떻게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잠시 머물렸던 중계점이 있었다는 공통의 기억과 신문과 잡지는 물론 텔레비젼도 없는 시설, 사감 파킨스 씨 이름과 그가 내는 추리 퀴즈에 항상 등장하는 치매 노인 등 단서들은 그 외에도 너무나 많습니다. 이 많은 단서들 중 가장 결정적인건 이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데니스 루드로가 '이 세계, 건물과 사람 모두 거짓이며 우리는 꿈을 꾸고 있을 뿐'이라고 한 말일 테고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 스텔라라는건 다소 뜬금없었지만, 학교 세계에 푹 빠져 소녀로 있고 싶었던 스텔라가 판타지를 깨트리려고 했던 다른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동기만큼은 중반에 소개되는 마모루의 종교관 - '자신의 판타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부정하고 말살하려 한다. 자신의 환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이 피를 흘려도 태연하다.' - 으로 거의 돌직구처럼 드러내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야말로 전개 과정에서 독자와 정정당당히 승부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데니스가 사라진 상황에 대한 시인의 추리 등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은 그 밖에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정교하게 잘 짜여져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힘듭니다. 곳곳에 헛점이 많이 보이는 탓입니다. 학교는 가상 현실이라는 '시인'의 추리처럼요. 추리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최신의 첨단 기술로 60년 전 과거에 사로잡혀서 최신 폰으로는 전화도 걸지 못하는 노인의 추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역자는 '등장인물들도 속고 있으므로, 이 작품은 서술 트릭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반쯤은 의도적인 설정 오류 때문에 서술 트릭이 아니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반전을 숨기기 위한 색다른 추리를 위해 집어넣은 장치로밖에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이런 설정 오류는 가상 현실 외에도 텔레비젼과 비디오 테이프, 비디오 게임 등에 대한 설명 등 곳곳에서 눈에 뜨입니다. 오래전 TV, 자동차를 구하기 위해 고생했다는데 정작 이런 미래 기술(?)은 거리낌없이 도입했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지죠.

그래도 이 정도 오류는 반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있을텐데, 살인 사건은 도무지 용납이 안됩니다. '신하' 살인 사건부터 보자면, 수업 도중에 스텔라가 급작스럽게 저지른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동안 스텔라의 판타지에 잘 맞춰주던 '신하'가 왜 갑자기 살해당할 정도로 스텔라 심기를 거슬렸을까요? 게다가 이 자리에는 '시인'도 함께 있었습니다. 즉, '시인'은 범인이 스텔라라는걸 알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시인'이 스텔라와 함께 있으라는 마모루의 말을 선선히 들었을리 없습니다. 당연히 마모루와 함께 있으려 했겠지요. 케네스 (신하) 만의 사정이 있었을거라는 '사감'의 말로 퉁치고 넘어갈 수는 없어요.

코튼 부인 살해도 억지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치매 노인을 아무리 우습게 봤어도 총을 겨누고 있는 사람 앞에서 욕설을 퍼붇는 것도 말이 안돼지만,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돼요. 전개를 보면 '학교'에서 일어났던 기존 사건들은 모두 '사감'이 숨기고 있던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렇다면 코튼 부인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려다가 충돌을 일으켜 총에 맞아 죽을 이유는 없어요. '신하'는 사고사로 착각했다쳐도, '시인'은 엄연히 칼에 찔려 죽었으니 당연히 경찰에 신고했었어야 합니다. 이를 설명하려면 '사감'과 코튼 부인이 한패였어야 했는데, 그런 설명은 전무합니다. 오히려 '교장 선생님'마저도 '사감'이 살인 사건을 은폐한걸 몰랐다고 묘사될 정도지요. 경찰이 나타나면 곧바로 진상이 드러날테니, 이야기를 끌고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또 스텔라가 판타지를 지키기 위해서 뭔가 거슬렸던 신하를 죽이고, 범행을 목격한 시인을 죽인건 그렇다쳐도 그 뒤의 범행은 아예 설명이 불가합니다. 여왕님과 마모루를 설득해서 교장 선생님과 사감만 조용히 기다렸으면 만사 해결이었을텐데 말이지요. 자동차로 이동해서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었던 여왕님 살해야 그렇다쳐도, 중립을 실해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충격적인 반전과 반전을 위한 빌드업은 대단했지만, 살인 사건 쪽으로는 영 별로였고요 감점합니다. 작가의 장점 - 아이디어 - 과 단점 - 무리수 - 을 한 눈에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2022/11/06

흑백합 - 다지마 도시유키 / 김영주 : 별점 2점

흑백합 - 4점
다지마 도시유키 지음, 김영주 옮김/모모

<<아래 리뷰에는 반전,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52년, 여름방학 동안 롯코산에 있는 아버지 친구의 별장에 놀러 간 열네 살 소년 스스무는 동갑내기인 가즈히코와 함께 햇살이 눈부신 연못가에서 자신을 연못의 요정이라 칭하는 소녀 가오루를 만났다. 방학을 함께 보내며 세 아이의 첫사랑이 시작된다.
1935년, 독일 베를린에서 고시바 회장의 해외 시찰 일행은 아이다 마치코라는 수수께끼 같은 여성과 만났다.
1941년, 호큐전철의 차장과 히토미라는 여학생이 고베를 중심으로 비밀스러운 교제를 이어나간다.


순문학과 추리 문학이 절묘하게 만난 최고의 걸작이며, 온갖 상을 휩쓸었다는 광고 문구에 혹해서 읽기 시작한 작품.
중학생 아이들의 만남과 설렘, 첫사랑 묘사는 무난했습니다. 50년대 오사카와 전전의 베를린을 돌아다니는, 시대를 교차하며 전개되는 와중의 풍광 묘사도 좋았고요.

그러나 추리 소설 측면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단서가 부족하고 공정하지 못해서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는 탓입니다.
가오루의 고모인 히토미의 첫사랑이었던 호큐 전철 차장이 교제를 반대하는 히토미의 오빠를 살해한 사건이 핵심인데, 이후 전개를 통해 호큐 전철에서 차장으로도 일했던 데릴사위인 히토미 고모의 남편을 범인처럼 그려나갑니다. 1935년의 아이다 마치코는 오사카에서 찻집을 하는 '롯코의 여왕' 인 듯 하고요. 하지만 마지막에 가즈히코의 엄마가 살인을 저지렀던 호큐 전철 차장이자, 베를린에서 만났던 아이다 미치코였다는게 드러납니다. 가즈히코에게는 새엄마였던 거지요. 그런데 이 반전은 독자가 추리하는건 불가능합니다. 그 어떤 단서도 사전에 제공되지 않거든요. 유일한 단서는 제목 뿐이에요. 과거 도쿄의 불량 서클 흑백합파의 리더 '흑백합치' 였던 아이다 미치코가 범인이다!라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이 제목 단서도 이상했습니다. 아이다 미치코가 1935년 베를린에 갔던 이유는, 결혼을 약속했던 가오루 아빠의 농간 때문이었어요. 그는 집안의 반대를 이기지 못해 아이다 미치코를 속여 베를린으로 보내버렸던 거지요. 그렇다면 가오루의 아빠이자 히토미 고모의 오빠는 이미 아이다 미치코가 누구인지 보면 알아챘어야 합니다 (전 연인이니까). 그런데 히토미와의 교제를 반대하며 만나러 갔을 때의 장면을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게 그려집니다.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던 아이다 미치코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단연코 공정치 못한 묘사였습니다. 애초에 아이다 미치코가 베를린으로 갔을 때 들고 있었던, 히토미 고모의 오빠가 쓴 쪽지에 기입된 서명을 독자에게 공개하지 않은 것 역시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쿠라사와'라는 성이 드러났다면, 원한 관계 정도는 독자가 알 수 있었을테고, 히토미 오빠의 죽음에 또다른 동기가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두 번째 사건인 가오루의 삼촌이자 히토미 고모 동생 키요지를 살인 사건은 사건 자체가 억지스러웠습니다. 가오루의 아빠 키쿠요가 살해된건 1945년 공습 와중이었습니다. 공습 탓에 죽었다는걸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고요. 그런데 1952년에 사실은 살해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 주장을 누가 믿어 줄까요? 심지어 주장을 한게 야쿠자에게 도박 빚으로 협박을 당하고 있었던 키요지였다면, 단순한 협박으로 치부될 공산이 높았을 겁니다.

이 작품을 서술 트릭물로 만드는 핵심 요소인, 여학생이 여자 차장을 흠모했다는 발상도 작품이 발표된게 2008년이라는걸 감안하면 그리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보기 어렵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세 아이의 풋풋하면서도 향수를 자극하는 이야기로는 무난했지만, 추리 소설로는 그냥 저냥이었습니다.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습니다.

2022/11/05

마안갑의 살인 - 이마무라 마사히로 / 김은모 : 별점 2점

 

마안갑의 살인 - 4점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무라와 히루코는 마다라메 기관의 자취를 쫓다가 이전 기관의 연구소였던 '마안갑'을 찾았다. 그곳에는 기관에서 연구하던 예언자 사키미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11월 마지막 이틀 동안 그곳에서 남녀 각각 2명 씩 죽을거라는 사키미의 예언을 두려워한 마을 사람들이 마안갑과 마을을 잇는 유일한 다리에 불을 지른 탓에, 둘은 예지 능력이 있는 여고생 도이로, 기자 라이타, 여행자 오즈 등 여러 사람들과 함께 마안갑에 갇혀 버렸다.
뒤이어 예언대로 기자 라이타는 산사태에 휩쓸리고, 사키미 독살 미수에 이어 도이로가 처참하게 살해되고 마는데....


<<시인장의 살인>>에 뒤이은 시리즈 제 2작. 비현실적인 소재에 의한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는 점에서는 전작과 유사합니다. 전작에서의 좀비가, 이 작품에서는 '진짜' 예언자가 등장하니까요. 고전적인 정통 본격물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클로즈드 서클'에서의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외부에서 경찰이나 구조대가 오면 남아있는 사람들 중 범인이 있을게 뻔하니 클로즈드 서클에서의 범행은 불합리한데, 이 범행을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풀어낸게 작품의 핵심이기도 하고요. 범인 오즈가 범행을 실행한 이유는 바로, 사키미의 예언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클로즈드 서클이건 뭐건간에 자기가 죽을 수도 있으니, 자기가 죽기 전에 다른 사람들을 죽였던 거지요. 와 정말이지 제가 여태까지 읽어보았던 추리 소설 중에서도 동기의 참신함으로는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완전 범죄를 위해 오즈와 도키노가 서로 다른 성별을 한 명씩 죽이는 교환 살인을 계획했는데, 오즈가 도이로를 살해한 뒤 공범 도키노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아서 생겨나는 딜레마도 흥미로왔습니다. 도이로가 살해당한 뒤 히루코마저 죽은 것으로 가장하자 도키노는 죽음의 예언에서 벗어났으니 당연히 사람을 죽이려 할 리 없지요. 하지만 기껏 살인까지 저질렀는데 여전히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있는 오즈는 필사적일 수 밖에 없고요.

히루코의 추리쇼를 거쳐, 마지막에 사키미가 진짜가 아니었다는게 드러나는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그녀는 진짜 사키미를 연구하던 도이로 할아버지의 조수였던 오카자키였습니다. 사키미와 도이로가 도주할 때 대역으로 남겨졌다가 예언자 역할을 떠맡게 되었던 거지요. 다행히 사키미가 예언을 기록한 노트가 있어서, 예언자 행세를 할 수 있었고요. 예언이 다 떨어지자, 자살해서 예언도 맞추고 자신의 신화도 유지하려 했지만 자살에 실패한 뒤 원수와도 같은 도이로 - 자기를 버린 박사와 사키미의 손녀 - 를 죽이도록 상황을 조작했다는 진상도 꽤 그럴싸했고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전작보다 못합니다. 앞서 "'클로즈드 서클'에서 범행을 저지른 동기" 만큼은 말이 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정작 범행은 정교하지 못한 탓입니다.
죽은 네 명 중 라이타 기자와 구키자와의 사인은 사고로 살해당한건 도이로와 도키노 둘 뿐입니다. 그런데 도이로 사건은 공범 둘이 저질렀다는게 전부입니다. 별다른 트릭은 없어요. 이 정도라면 경찰이나 구조대가 오면 바로 범인이 밝혀졌을겁니다. 아무래도 어린 초등학생 아들이 포함된 시시다 부자나 도이로의 숭배자 구키자와가 범인일 가능성은 낮으니 단순 소거법에 의해서도 오즈와 도키노가 공범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셈이고요. 물론 다른 방에 둘만 있었다는 사키미와 핫토리가 공범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고요. 하지만 핫토리는 작중에서 건물이나 가구 정도의 비중으로,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런 그녀가 범인이라는건, 추리 소설로는 반칙일 수 밖에 없지요.
도이로 사건의 단서로 제공되는 박살난 시계 역시 공정한 단서는 아닙니다. 독자는 왜 시계를 부쉈는지를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없으니까요. '시계 바늘 두 개가 모두 비슷한 위치에서 부서져 있었다' 정도의 묘사만으로 두 바늘이 겹쳐진 시간에 범행이 일어났다는걸 추리해내는건 어렵습니다. 방음이 철저한 방과 같은 작위적인 무대 설정도 거슬렸고요.

도키노 사건에서 창을 든 도키노(로 보였던 흰 천을 뒤집어 쓴 누군가)가 달아나면서 젖은 수건을 밟아 발자욱을 남겼는데, 젖은 발자욱은 이전에 찍어 놓았고 범인은 맨발로 자기 방으로 이동했다는 트릭은 너무 간단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창은 벽지를 말아 만든 소품이었다는 것도 예전 <<미스터리 탐정 야쿠모>>에서 접했던 트릭이고요. 한마디로 말해 추리 퀴즈 수준에 불과했어요.
그러나 트릭보다도 더 큰 문제는 이 범행이 일어난 이유입니다. 범인 오즈는 앞서 발생한 딜레마 - 도키노는 사람을 죽일 필요가 없다 - 로 도키노와 다투다 우발적으로 그녀를 빈사상태에 빠트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이 범행을 저질렀다는데, 도키노를 괴한으로 몰아봤자 도이로를 살해하려면 공범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도이로를 살해할 수 없었던건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도키노를 범인으로 몰아봤자 그녀가 깨어난 뒤 사실을 증언하면 오즈가 빠져나갈 방법은 없으니 도키노를 죽일 필요가 있는데, 그렇다면 이런 유치한 조작을 벌일 필요는 반대로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차라리 누구든 범인이 될 수 있는 상황이 더 나으니까요. 아니면 생존자들을 다 죽이던가....

그 외에도 헛점은 곳곳에서 눈에 뜨입니다. 사키미 자살 미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살 실패 후, 도이로를 죽이기 위해 꽃을 흩뿌렸다는 설정부터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도이로가 그녀의 죽음을 예지한다는 보장이 일단 없거든요. 모든 사건을 예지하고 그림을 그리는건 아닐테니까요. 사키미가 죽은건 아니니 그림을 안 그릴 수도 있고요. 게다가 그림에 꽃까지 그린다는건 더더욱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또 오즈가 사키미 방 밖에 꽃을 뿌려 놓은 것 역시 시간대를 겨우 맞춰서 발생한 우연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여러가지 장치와 단서, 복선으로 정교함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단점도 많습니다. 다소 무리한 설정들도 눈에 뜨이고요. 시리즈를 계속 읽을 필요가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