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의 몸값 -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
구두 회사의 중역 더글러스 킹의 집 거실에서 비밀 중역 회의가 한창이다. 중역들은 더글러스 킹을 포섭하여 회사를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더글러스 킹에게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다. 나름대로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아무도 몰래 준비한 계획은 성공을 눈앞에 두는 듯하지만 뜻하지 않은 변수가 나타난다. 아이가 유괴된 것이다.
하지만 남의 아이다. 남의 아이의 목숨을 위해서 자신이 그동안 힘들게 쌓아 온 부를 허물어뜨리고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인가, 아이의 목숨을 외면하고 부를 유지할 것인가. 어릴 적 가난의 상처 때문에 피도 눈물도 없는 출세지향주의자가 된 그이지만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87분서 형사들이 유괴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일단 몸값을 주어야 아이의 목숨을 보장받는다. 선택은 오로지 더글러스 킹의 몫이다. 이 작품이 발표되고 난 후 비슷한 유괴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으며 몇 년 뒤 일본 영화계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에 의해 [천국과 지옥]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인터넷 서점 제공 책 소개 인용>
에드 멕베인의 87분서 시리즈 장편.
유괴 소재 작품은 그동안 몇권 읽어보았습니다. 유괴 자체가 작전인 정통파 추리물을 비롯하여 피해자 시점, 유괴범 시점, 용의자 시점으로 그린 작품 등 종류도 다양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은 그간 읽었던 작품과 설정에서 확실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내 아이가 아닌 남의 아이를 위한 몸값' 이라는 것이죠.
물론 그 아이가 생판 남이 아니고 킹이라는 인물은 그만한 재력이 있기에 몸값을 턱하니 지불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괴사건은 몸값을 지불하면 그동안 이루어왔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극한 상황에 처한 시점에 벌어지고 작중의 킹은 성공을 위해 걸림돌은 남김없이 쳐내버리는 인물로 묘사되기에 그는 몸값을 내지 못한겠다고 결정합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 수사하는 형사 (스티브 카렐라) 등 주변 인물이 그에게 살인자와 같다는 맹비난을 퍼붓고 심지어 운전기사는 간절히 애걸하며 무릎을 꿇기까지하는 과정이 설득력 넘치게, 숨쉴틈없이 이어지며 그 와중에도 킹과 회사가 관련된 위기 상황까지도 깨알같이 전개되어 돈을 낼 수도 없고 안낼 수도 없는 개미지옥 딜레마에 빠지게되죠.
이러한 과정이 정말이지 처절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읽는 내내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 정도였어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그를 뒷받침하는 박진감넘치는 전개는 역시나 거장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 킹과 다른 한축으로 전개되는 유괴범인 사이, 에디, 캐시 트리오의 이야기도 나름 괜찮게 구현된 편으로 재미를 더합니다. 리더이자 사악한 사이, 똘마니 에디, 박애주의자 캐시 (?)로 이루어진 트리오는 전형적이고 진부하기는 하나 캐시가 사이를 견제하고 사이는 캐시를 강하게 억누르지만 에디가 완충제역할을 하는 식으로 절묘하게 조화되며 나름 긴장감을 가져오거든요. 캐시 캐릭터를 초반부터 잘 그린 덕에 사건이 해결되는 상황에 대한 설득력이 높아지기도 했고요. 또 유괴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에디의 라디오 관련 지식을 이용하여 여러가지 작전을 벌인다는 점, 특히 마지막 몸값 확보 작전에 써먹는 아이디어는 제법 그럴싸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허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그것은 의외로 이 작품이 87분서 시리즈라는 것입니다. 실상 형사들은 하는게 하나도 없거든요. 감식과의 활약이 일부 그려지는 정도고 오히려 메인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스티브 카렐라는 앞서 이야기했듯 몸값을 내지 않기로 결심한 것에 대해 맹비난을 퍼붓는 등 본인의 위치를 망각한 주제넘은 행동만 일삼을 뿐입니다. 킹도 분명 피해자인데 수사관이 하라는 수사는 하지 않고 누구를 비난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이건 징계감이 아닌가요? 게다가 몸값을 전달하는 차량에 동승까지 하는데 결말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킹이 언제나처럼 '직접 나서서' 유괴범을 때려잡는다는 것이니 끝까지 하는게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 작품만 놓고 보면 전형적인 말만 많고 활약은 없는 떠벌이 찌질이에 불과해요. 이렇게 억지스럽게 87분서원들의 이야기를 늘려 시리즈의 하나로 만들바에야 차라리 하나의 다른 작품이 되는게 낫지 싶습니다. 아이디어가 아까와요.
또 결말도 좀 별로였어요. 사이의 총질에도 불구하고 맨손으로 킹이 그를 때려잡는다는 결말은 지나칠 정도의 작위적인 해피엔딩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에디와 캐시가 탈출을 위한 차를 어디서 구했는지, 사이가 돈을 받은 뒤 돌아올 것에 대한 확신은 어디 있었는지, 애는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도 허술하게 느껴졌고요. 개인적으로는 비열한 배신자 피터 캐머런을 킹이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를 알려주는 후일담이 없는 것도 좀 섭섭했습니다. 이런 녀석을 짓밟아버리는 묘사는 안일한 해피엔딩이라도 충분히 참아줄 수 있었는데...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단점이 명확하다고 평하긴 했으나 충분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87분서의 활약을 없애고 (이게 마이너스 1점) 심리묘사 중심으로 마지막을 깔끔하게 처리했더라면 별점 5점은 줄 수 있었을텐데 좀 아쉽네요. 그래도 장점이 워낙 탁월하고 읽는 재미도 확실하기에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제가 쓴대로 단점을 최소화하여 킹의 입장 중심으로 보다 현실적으로 전개했다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천국과 지옥>을 구해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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