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여름 - 아카이 미히로 지음, 박진세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
아카이 미히로의 유괴 미스터리 소설. 1955년생인 아카이 미히로는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 작품의 주요 배경 중 하나인 닛폰방송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마흔여덟이라는 늦은 나이에 그때의 경험을 살려 쓴 본 작품으로 시라누이 교스케의 <매치메이크>와 공동으로 49회 에도가와 란포상(2003)을 수상했다.
20년 전 일어났던 유괴 사건 범인의 딸이 20년 후 유명 신문사 기자로 합격이 내정된다. 이 사실을 폭로한 경쟁사 주간지의 기사를 계기로 신문사는 20년 전 유괴 사건의 재조사를 개시한다. 몇 년 전 사고 때문에 신문사의 한직에서 시간을 보내던 전직 기자 가지가 회사의 명령으로 범인의 주변, 피해자, 당시의 담당 형사와 병원관계자를 거듭 취재한 끝에 봉인되어 있던 진실을 밝혀낸다. <알라딘 책소개 인용>
<하기 리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 49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작품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에서 알라딘의 피니스 아프리카에 편집장 인터뷰를 보고 읽게 되었습니다.
좌천당한 기자 가지 히데카즈가 히로코의 입사를 위해 20년전 유괴사건을 현재 시점에서 다시 뒤쫓아 숨겨진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으로, 읽다보니 바로 직전에 읽었던 <킹의 몸값>, 그리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천국과 지옥>이 중요하게 언급되어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인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유괴라는 범죄가 얼마나 부모와 주변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한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도 한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데즈카 부부가 20년 동안 인형을 아이 대신하여 키워온 모습은 정말 짠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확실히 여성 작가가 썼다는 느낌이에요. 다른 유괴관련 작품들은 범죄자나 피해자(부모)를 대상으로 하여 범죄와 관련된 심리묘사가 주를 이루는 반면, 이 작품은 애틋한 묘사가 디테일하게 펼쳐진다는 점에서 확실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허나 감정에만 호소하는 내용은 아니고 실제 유괴사건에 대한 박진감있는 묘사도 볼거리입니다. <킹의 몸값>의 주제인 '누구를 유괴했는지 보다는 누구에게 돈을 요구하는지가 중요하다'가 그럴싸하게 변주되어 사용되고 있고, 실제 유괴사건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몸값 전달 방식이 기발하게 펼쳐지는게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5천만엔 중 천만엔을 만엔짜리 지폐로 전달받은 뒤, 사람 많은 거리에 뿌리고 혼잡을 이용하여 나머지 돈을 가지고 도망친다는 것으로, 어디서 많이 본듯한 아이디어이고 운에 의지한 측면이 강하지만 실제로 성공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고 현실적이라 마음에 듭니다. 반전 역시 충격적이라 마지막까지 읽는 사람을 몰입시키는 맛이 있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가지가 사건 당시 취재 기자 중 한명이었던 덕분에, 현장과 관계가 깊어서 사건을 지휘했던 이노우에의 비망록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다는건 어이가 없었어요. 20년 뒤 일개 기자가 진상을 밝혀낼 정도라면, 당시 경찰이 무능했다는 이야기밖에는 안되니까요.
그리고 당시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던 츠쿠모의 지인을 만나 주식에 대한 정보를 듣고 호리에에 대해 촛점을 맞추어서 진상을 밝혀내게 되었다는데, 가지가 편집자료실을 이용하여 사건 관계자 이름을 먼저 검색해볼 생각을 했다면 발품을 파는 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었습니다. 저 같으면 비망록을 손에 넣은 시점에서 모든 관계자 이름을 검색해봤을 거에요. 이 부분은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더군요.
유괴라는 범죄가 얼마나 부모와 주변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한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도 한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데즈카 부부가 20년 동안 인형을 아이 대신하여 키워온 모습은 정말 짠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확실히 여성 작가가 썼다는 느낌이에요. 다른 유괴관련 작품들은 범죄자나 피해자(부모)를 대상으로 하여 범죄와 관련된 심리묘사가 주를 이루는 반면, 이 작품은 애틋한 묘사가 디테일하게 펼쳐진다는 점에서 확실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허나 감정에만 호소하는 내용은 아니고 실제 유괴사건에 대한 박진감있는 묘사도 볼거리입니다. <킹의 몸값>의 주제인 '누구를 유괴했는지 보다는 누구에게 돈을 요구하는지가 중요하다'가 그럴싸하게 변주되어 사용되고 있고, 실제 유괴사건에서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몸값 전달 방식이 기발하게 펼쳐지는게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5천만엔 중 천만엔을 만엔짜리 지폐로 전달받은 뒤, 사람 많은 거리에 뿌리고 혼잡을 이용하여 나머지 돈을 가지고 도망친다는 것으로, 어디서 많이 본듯한 아이디어이고 운에 의지한 측면이 강하지만 실제로 성공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고 현실적이라 마음에 듭니다. 반전 역시 충격적이라 마지막까지 읽는 사람을 몰입시키는 맛이 있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가지가 사건 당시 취재 기자 중 한명이었던 덕분에, 현장과 관계가 깊어서 사건을 지휘했던 이노우에의 비망록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다는건 어이가 없었어요. 20년 뒤 일개 기자가 진상을 밝혀낼 정도라면, 당시 경찰이 무능했다는 이야기밖에는 안되니까요.
그리고 당시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던 츠쿠모의 지인을 만나 주식에 대한 정보를 듣고 호리에에 대해 촛점을 맞추어서 진상을 밝혀내게 되었다는데, 가지가 편집자료실을 이용하여 사건 관계자 이름을 먼저 검색해볼 생각을 했다면 발품을 파는 시간을 훨씬 줄일 수 있었습니다. 저 같으면 비망록을 손에 넣은 시점에서 모든 관계자 이름을 검색해봤을 거에요. 이 부분은 솔직히 이해가 잘 되지 않더군요.
반전도 충격적이기는 하나 거기에 다다르는 과정에 대한 설득력은 낮습니다. 가지가 무슨 초능력자도 아니고, 호리에의 웃음을 본 것만으로 사건의 진상을 깨닫게 된다는 것은 억지스러웠고, 무토 국장 아내의 키라던가 미키마우스 티셔츠에 대한 언급이 전무한 것은 공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보다는 호리에에게서 약간의 설명을 듣는다는 식으로 전개하는게 충격은 덜했겠지만 설득력은 더 큰 결말이 되었을겁니다. 아니면 호리에를 진범으로 하여 이야기를 끝내던가요. 이 반전은 달리 보면 해피엔딩을 위한 사족일 뿐이거든요. 또 에필로그에 잘나가게 된 히로코를 묘사하며 마무리되는 것 역시 사족입니다. 차라리 진정한 피해자가 된 슌지에 대해 이야기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히로코는 결국 살인자의 아이는 아니지만 범죄자의 딸은 맞는데, 조사 결과로 뭐가 달라지는건지는 아리송합니다. 거액의 빚을 지고 전전긍긍하다가 협박범이 된 뒤 나중에는 부주의한 행동으로 인하여 애인과 함께 골로 간 멍청한 아버지가 인간 말종이라는건 마찬가지니까요. 단지 살인만 저지르지 않았을 뿐인데,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능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도 아쉽습니다. 아마추어 수준 이상의 바둑 고수이자 순간 기억능력을 갖춘 도자이 신문사의 사장 스기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끝판왕 포스가 철철 넘치는데 하는 일이라고는 여대생에게 회사 입사를 권유하는 것 밖에 없어서 격에 맞지 않는다 여겨졌습니다.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읽는 재미는 있고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작품이지만 추리적으로는 부실한점이 많아서 감점합니다. 란포상을 탄 작품들 대부분이 추리보다는 묘사에 더 치중하는 느낌인데 이 작품 역시 전례를 벗어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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