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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8

2024년 교토대학교 추리소설 연구회 신입회원 추천 도서

출처는 하우미스터리.

'교토대학교 추리소설 연구회'는 아야츠지 유키토, 노리즈키 린타로, 시마다 소지 등 일본 추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다수 배출한 명가지요.
신입생들에게 첫 모임 때까지 읽고 오라고 골라준 책 같은데, 고전 황금기의 본격 미스터리부터 일본 고전, 스릴러, 신본격 및 라이트 노벨에 가까운 최신작까지 폭넓게 선정한게 돋보입니다. 이 중 각자 자신에게 잘 맞는 취향을 골라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이런 동호회에 가입할 정도라면 이미 다 읽어 보았을 작품들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국내 미출간 작품 외에는 저도 다 읽었는데 저는 "용의자 X의 헌신"과 "모든 것이 F가 된다"가 좋았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평균 이상은 되는 만큼,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24/04/27

7인 1역 - 렌조 미키히코 / 양윤옥 : 별점 2점

7인 1역 - 4점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모모

<<아래 리뷰에는 트릭과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명 모델 미오리 레이코가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청산가리 중독이었다. 경찰은 그녀에게 농락당해 모든걸 잃은 의사 사사하라가 범인이라 생각했다. 사건 현장, 그리고 청산가리 봉투에 그의 지문이 있었고 그가 사망 추정일에 레이코를 방문한게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월드 섬유회사의 사장 사와모리 에이지로가 레이코를 죽였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해서 사사하라는 풀려났다.
그런데 사와모리 말고도 레이코가 평상시 원수라면서 이를 갈고 협박해오던 7명 모두가 똑같은 방법으로 레이코를 살해했다는게 밝혀지는데...
.

걸작 "회귀천 정사"로 유명한 렌조 미키히코의 장편. 1984년 첫 출간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렌조 미키히코는 정통 본격물보다는 "회귀천 정사"같은 서정적인 문체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렌조 미키히코하면 떠오르는 작품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과 전개를 보여줍니다. 미오리 레이코 시점에서 상대방이 자신을 살해하도록 유도하는 범죄물이자 도서 추리물로 시작해서, 7명 모두가 똑같은 방법으로 레이코를 살해했다는게 드러나는 시점부터는 하우더닛 본격 추리물이 되는 작품이거든요.
 
가장 인상적인건 트릭입니다. 트릭을 잘 사용하는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꽤 현실적인 트릭을 멋드러지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 트릭을 조금 설명해 드리자면, 레이코의 과거 직장 동료 이시가미 요시코는 레이코가 성형 수술을 했다는걸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돈을 뜯어내고 있었습니다. 레이코는 요시코를 꼬드겨 자기처럼 성형 수술을 시켜준 뒤, 그녀를 독살했습니다. 그리고 시체를 자택 침대 위에 놓아 두고, 7명의 원수들을 한 명씩 불러 거실에서 한바탕 연기 - 나에게 농락당한 의사 사사하라가 나를 죽이려고 독약을 가져왔지만 실패했다. 독약은 저 술잔에 들어있다라며 술잔을 바꿔치도록 유도 - 를 펼친 뒤, 술을 마신척 하고 침실로 뛰어들어가 곧바로 몸을 숨겼습니다. 뒤쫓아 침실로 온 손님들은 레이코와 똑같은 시체를 발견하고는, 자기가 술잔을 바꿔치기해서 레이코가 죽었다고 여기고 도망쳤고요. 이렇게 해서 7명이 한 명을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하는 범죄가 완성된 것입니다.
이 트릭을 성공시키려면 마지막에 레이코가 진짜로 독을 먹고 죽은 뒤, 그 시체를 숨길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게 사사하라였다는 진상도 괜찮았습니다. 청산가리를 준비할 수도 있었고, 세간에는 레이코 때문에 신세를 제대로 망친걸로 알려져있으니 독을 레이코 집에 가져온 동기도 누구나 납득할 수 있어서 사람들을 속이기에는 더할나위 없었던 덕분이지요.

단서도 적절히 제공됩니다. 사사하라가 경찰에 체포된 후, 레이코의 집을 방문할 날짜를 대충 얼버무리는게 대표적입니다. 무려 7명을 대상으로 벌인 계획이라 이틀에 걸쳐 진행했던 탓에, 날짜를 특정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날짜를 대충 둘러댈 수 밖에 없었습니다. 15일의 알리바이만큼은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확실하게 제공하고 있는걸 통해, 7명 모두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는걸 드러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레이코의 입으로 완벽한 알리바이 계획이 설명되었기에, 이를 이용하여 15일 이후 범행이 일어났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본인들은 15일의 알리바이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금붕어 1마리가 죽은 수조를 보고 수사를 펼쳐서 원래는 7마리를 샀다는걸 알아내는 등의 경찰 수사 과정도 합리적으로 그려집니다. 결국 경찰은 이러한 꼼꼼한 수사를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사건 진상에 도달하고요. 이렇게 경찰이 나름 활약을 펼친다는건 여러모로 눈여겨볼만 했습니다. 특히 레이코, 하마노, 사사하라의 시점으로 작품이 전개되고 있는데 경찰까지 신경써서 분량을 안배해 준 정성(?)이 신기하더라고요. 사실 경찰은 헛다리를 짚는 수준으로 그쳐도 내용 전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거든요. 오히려 사와모리의 완벽한 자백 유서를 확인한 뒤에 개인적으로 수사를 진행한다는게 더 설득력이 없지요. 이건 작가가 '일본 경찰은 우수하다!'라는걸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캐릭터와 상황, 심리를 묘사하는 방법과 문체가 굉장히 옛스러워서 확실히 40여년 전 작품이라는 티가 물씬 납니다. 게다가 핵심 인물인 미오리 레이코에 대한 캐릭터 설정이 영 별로입니다. 그녀가 7명에게 원한을 품은 이유도 도무지 알 수가 없고요. 7명 모두 그녀에게 아픔을 주었을 수는 있지만, 거의 대부분 정당한 거래 관계였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얻은게 훨씬 더 많아 보여요. 모두가 선망하는 대 스타가 되어 큰 돈을 만지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멋대로 그들이 자기 인생을 망쳤다며 건수를 잡아 협박한다? 솔직히 죽어도 싼 여자라 생각됩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혼자만의 피해의식에 가까운 복수에 동참해서 스스로 그들을 모두 죽일 결심을 하는 사사하라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에게 아무리 푹 빠져다 한들, 이건 상식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보다 현대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같은 작가가 썼더라면 아마 걸작으로 널리 알려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결과물은 조금 부족합니다. 최소한 '동기'만큼이라도 설득력있게 만들어 주었어야 했습니다.

2024/04/26

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 - 김진엽 : 별점 3.5점

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 - 8점
김진엽 지음/우리학교

작품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설명해주거나, 특정 사조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책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을 설명해 줍니다. 딸아이 논술 학원 교제인데, 생각보다 깊이있는 내용이라 깜짝 놀랐네요.
통사적으로는 사물을 그대로 묘사하는 모방론, 모방이 아니라 감정까지 표현한 표현론, 무관심성에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드는 색의 조합과 평면성을 강조하는 형식론, 뒤샹의 '샘'으로 논의가 시작되어 결국 예술이란게 무엇인지는 정할 수 없다는 예술 정의 불가론, 마지막으로 예술은 사회적 제도와의 연관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제도론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여러 개 있다는 다윈론, 예술은 인간 생존과 관련이 있어서 탄생했다는 진화 심리학과 예술 관계론이 설명됩니다. '예술은 경험이다'는 주장으로 끝맺고 있고요.

사실주의, 낭만파, 인상파,입체파, 야수파 등 각 미술 사조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지만 그 사조와 예술, 아름다움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어느정도 감을 잡게 된 것 같아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 정의 불가론'에 의거하여 사람들마다 답이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 보았는데, 예술은 그걸 감상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움같은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표현론과 형식론을 아우르는 것으로, 뒤샹의 '샘'이 어떤 감정을 일으켰다면 - 개인적으로는 참신함과 더불어 '재미'를 느꼈습니다 - 이 역시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주장대로 일상 속에서 이런 경험을 하도록 해 준다면 더할나위 없을겁니다. 물론 실제 예술 작품을 실생활에 사용하는건 불가능할테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라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경험을 계속 해야 겠지요. 같은 이치로, 집안에서 쓰는 물건들도 되도록 '예술'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걸 골라야하겠어요. 평상시에도 예술과 함께하는 경험으로 일상과 삶을 살찌우고 풍부하게 만드는게 좋을테니까요. 저는 그동안 인테리어 등에 들이는 돈을 무시하고 가성비를 중시했었는데 많이 반성이 됩니다.
이런 감상 경험에 더해, 작가 스스로 그 작품을 만들며 특별한 경험을 했다면 그 결과물이 예술이라는 관점에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수도 없이 다양한 예술 작품의 장르가 존재하고 계속 발표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깊이 새겨둘만한 좋은 설명이 많은데, 대상 독자 연령대가 낮은 듯한 편집 디자인은 아쉬웠습니다. 같은 내용을 성인 대상으로 보다 상세하게,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출간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좋은 책이라는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예술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4/04/24

데드미트 패러독스 - 강착원반, 사토 : 별점 1.5점

데드미트 패러독스 - 4점
강착원반 지음, 사토 그림/놀

친 좀비파 귀족 아르테미아 가문의 외동딸 릴리는 부모님 사망에 따른 생명보험금을 지급받기 직전에 살해당했다. 보험회사 빅베일의 청부였다.
다행히 릴리는 좀비로 되살아났고, 변호사 골드는 그녀를 위해 빅베일에게 보험금 지급 소송을 걸었다. 사망한 그녀에게 그녀 본인의 생명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이었다.
이를 위해 전 왕실의사장 더미로부터 사망증명서까지 받아냈지만, 빅베일이 재판장과 배심원, 의사협회를 매수한 탓에 릴리는 죽은게 아니라 살아있다는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골드의 계획이었다....


좀비와 인간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차별받는 좀비들을 위해 노력하는 변호사 골드의 활약을 그린 단편. 소갯글이 재미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저 그랬어요. 핵심인 재판 과정이 시시한 탓이 큽니다. 릴리가 죽음을 인정받지 못해서 본인의 사망보험금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부모님의 사망보험금을 살아있는 상태이니 수령하는건 당연하니까요. 별로 치밀한 계획이나 드라마가 있지 않아서 시시합니다.
좀비와 인간이 공존한다는 세계관도 어디선가 많이 보아왔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좀비가 익히 알고 있듯 사람을 잡아먹는다던가, 사람을 물어 전염시킨다는 설정없이 약간의 공격적 행동만 있는걸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좀비가 좀비답지 않으니, 인간 사회에 이종이 섞여 살아가면서('인간 세계에 섞여 사는 마족'같이) 차별도 받지만 서로 도움도 주며 공존한다는 흔해빠진 판타지 세계관과 변별력을 느끼기 어려워요. 좀비 존재에 따른 긴장감도 느끼기 어려웠고요.
골드의 동생인 좀비 실버에 대한 드라마도 뻔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작화는 괜찮았지만, 이렇게 단점이 훨씬 많아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별로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4/04/23

IMBA 선정 20세기 최고의 미스터리 100선

미국 독립 미스터리 전문 서점 협회(Independent Mystery Booksellers Association)의 회원들이 선정한 20세기의 미스터리 소설 100선입니다.
출처는 dcinside 추리소설 갤러리입니다. 원글은 이 곳에서 확인하세요.

100편의 리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가 리뷰를 올린 작품은 모두 링크를 걸어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The Tiger in the Smoke - 마저리 앨링엄 (Allingham, Margery) (1952)
4. Aunt Dimity's Death - 낸시 애서튼 (Atherton, Nancy) (1992)
5. In the Heat of the Night - 존 볼 (Ball, John) (1965) / 국내 출간: 밤의 열기 속에서 (하서출판사)
6. Sheer Torture - 로버트 버나드 (Barnard, Robert) (1982)
7. Track of the Cat - 네바다 바 (Barr, Nevada) (1993)
8. The Beast Must Die - 니콜라스 블레이크 (Blake, Nicholas) (1938) / 국내 출간: 야수는 죽어야 한다 (황금가지)
9. When the Sacred Ginmill Closes - 로렌스 블록 (Block, Lawrence) (1986)
11. The Fabulous Clipjoint - 프레드릭 브라운 (Brown, Fredric) (1947)
12. The Thirty-Nine Steps - 존 버컨 (Buchan, John) (1915) / 국내 출간: 39계단 (문예출판사)
13. Black Cherry Blues - 제임스 리 버크 (Burke, James Lee) (1989)
15. The Thin Woman - 도로시 캔넬 (Cannell, Dorothy) (1984)
17. Thus Was Adonis Murderd - 새라 코드웰 (Caudwell, Sarah) (1981)
18. The Big Sleep - 레이먼드 챈들러 (Chandler, Raymond) (1939) / 국내 출간: 빅 슬립 (문학동네)
19. The Murder of Roger Ackroyd - 애거서 크리스티 (Christie, Agatha) (1926) / 국내 출간: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황금가지)
20. The Concrete Blonde - 마이클 코넬리 (Connelly, Michael) (1994) / 국내 출간: 콘크리트 블론드 (알에이치코리아)
21. The Man Who Liked Slow Tomatoes - K. C. 콘스탄틴 (Constantine, K. C.) (1982)
22. The Monkey's Raincoat - 로버트 크레이스 (Crais, Robert) (1987) / 국내 출간: 몽키스 레인코트 (노블마인)
23. The Moving Toyshop - 에드먼드 크리스핀 (Crispin, Edmund) (1946)
24. Dreaming of the Bones - 데보라 크롬비 (Crombie, Deborah) (1997)
25. The Last Good Kiss - 제임스 크럼리 (Crumley, James) (1978)
26. The Yellow Room Conspiracy - 피터 디킨슨 (Dickinson, Peter) (1994)
29. Booked to Die - 존 더닝 (Dunning, John) (1992)
30. Old Bones - 아론 엘킨스 (Elkins, Aaron) (1987)
32. Time and Again - 잭 피니 (Finney, Jack) (1970)
33. Who in Hell Is Wanda Fuca? - G. M. 포드 (Frod, G. M.) (1995)
35. The Hours Before Dawn - 실리아 프렘린 (Fremlin, Celia) (1958)
36. A Great Deliverance - 엘리자베스 조지 (George, Elizabeth) (1988) / 국내 출간: 성스러운 살인 (현대문학)
37. Smallbone Deceased - 마이클 길버트 (Gilbert, Michael) (1950)
38. “A" Is for Alibi - 수 그래프턴 (Grafton, Sue) (1982) / 국내 출간: 여형사 K (큰나무)
39. The Killings at Badger's Drift - 캐롤라인 그레이엄 (Graham, Caroline) (1987)
40. The Man With the Load of Mischief - 마사 그라임즈 (Grimes, Martha) (1981)
43. The Silence of the Lambs - 토머스 해리스 (Harris, Thomas) (1988) / 국내 출간: 양들의 침묵 (나무의철학)
44. Tourist Season - 칼 하이어센 (Hiaasen, Carl) (1986)
46. On Beulah Height - 레지널드 힐 (Hill, Reginald) (1998)
47. A Thief of Time - 토니 힐러먼 (Hillerman, Tony) (1988) / 국내 출간: 시간의 도둑 (고려원미디어)
48. Cotton Comes to Harlem - 체스터 하임즈 (Himes, Chester) (1964)
49. Hamlet, Revenge! - 마이클 이네스 (Innes, Michael) (1937)
53. When the Bough Breaks - 조너선 켈러먼 (Kellerman, Jonathan) (1985) / 국내 출간: 큰 가지가 부러질 때 (청담문학사)
54. The Beekeeper's Apprentice - 로리 킹 (King, Laurie) (1994)
55. Dark Nantucket Noon - 제인 랭턴 (Langton, Jane) (1975)
57. To Kill a Mockingbird - 하퍼 리 (Lee, Harper) (1960) / 국내 출간: 앵무새 죽이기 (열린책들)
59. Get Shorty - 엘모어 레너드 (Leonard, Elmore) (1990)
60. Sleeping Dog - 딕 록티 (Lochte, Dick) (1985)
61. Rough Cider - 피터 러브시 (Lovesy, Peter) (1986)
63. The List of Adrian Messenger - 필립 맥도널드 (MacDonald, Philip) (1959)
65. Bootlegger's Daughter - 마거릿 마론 (Maron, Margaret) (1992)
66. Death of a Peer - 나이오 마시 (Marsh, Ngaio) (1940)
67. Sadie When She Died - 에드 맥베인 (McBain, Ed) (1972)
68. The Sunday Hangman - 제임스 매클루어 (McClure, James) (1977)
69. If I Ever Rreturn, Pretty Peggy-O - 섀린 매크럼 (McCrumb, Sharyn) (1990)
70. A Stranger in My Grave - 마거릿 밀러 (Miller, Margaret) (1960) / 내 출간: 내 무덤에 묻힌 사람 (엘릭시르)
71. Devil in a Blue Dress - 월터 모즐리 (Mosley, Walter) (1988)
72. Edwin of the Iron Shoes - 마르샤 물러 (Muller, Marcia) (1977) / 국내 출간: 세계 여성 작가 서스펜스 걸작선 ‘쇠구두를 신은 에드윈’ (고려원미디어)
73. Death's Bright Angel - 자넷 닐 (Neel, Janet) (1988)
74. Mallory's Oracle - 캐럴 오코넬 (O'Connell, Carol) (1994)
75. Child of Silence - 애비게일 파젯 (Padgett, Abigail) (1993)
76. Deadlock - 새라 패러츠키 (Paretsky, Sara) (1984)
77. Looking for Rachel Wallace - 로버트 파커 (Parker, Robert) (1980)
79. Vanishing Act - 토머스 페리 (Perry, Thomas) (1995)
80. Crocodile on the Sandback - 엘리자베스 피터스 (Peters, Elizabeth) (1975)
81. One Corpse Too Many - 엘리스 피터스 (Peters, Ellis) (1979) / 국내 출간: 99번째 주검 (북하우스)
82. Blue Lonesome - 빌 프론지니 (Pronzini, Bill) (1995)
84. No More Dying Then - 루스 렌델 (Rendell, Ruth) (1971)
85. The Wrong Murder - 크레이그 라이스 (Rice, Craig) (1940)
87. Blood at the Root - 피터 로빈슨 (Robinson, Peter) (1997)
89. A Broken Vessel - 케이트 로스 (Ross, Kate) (1994)
90. Concourse - S. J. 로잰 (Rozan, S. J.) (1995)
91. Murder Must Advertise - 도로시 L. 세이어즈 (Sayers, Dorothy L.) (1933) / 국내 출간: 살인은 광고된다 (블루프린트) (ebook), 광고하는 살인 (동안)
95. Chinaman's Chance - 로스 토머스 (Thomas, Ross) (1978)
96. A Test of Wills - 찰스 토드 (Todd, Charles) (1996)
98. The Sands of Windee - 아서 업필드 (Upfield, Arthur) (1931)
100. Sanibel Flats - 랜디 웨인 화이트 (White, Randy Wayne) (1990)

다른 유사 리스트와 구분되는 특징이라면 한 작가 당 하나의 작품만 꼽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개되는 작가들이 다른 리스트에 비하면 훨씬 많고, 다른 리스트에서 찾아보기 힘든 작품들 - 예를 들자면 "스트라이크 살인" - 도 눈에 뜨이지요.

하지만 영미권, 특히 미국 작가에 집중되어 있다는 단점이 큽니다. 몇 안되는 유럽 작품에 "뒤마 클럽"이 속한 것도 납득불가고요. 작가별 대표작들도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87분서 시리즈'라면 당연히 "살의의 쐐기"를 꼽아야 하지 않을까요? 온갖 하드보일드 작품들을 망라하면서 정작 제임스 엘로이의 작품이 없는 것도 믿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참고 수준에 그칠 리스트입니다. 어차피 작품 선정 기준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으니 당연하겠지만요.

2024/04/22

04.16 ~ 04.21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삼성, 키움 원정, 홈 6연전
성적 : 2승 4패

좋았던 점
  • 비교적 푹 쉰 계투진
  • 강승호, 박준영, 전민재 선수로 구성된 내야진 활약

나빴던 점
  • 선발 투수들의 부상과 부진
  • 땅을 파고 들어가는 수준의 양석환, 라모스 선수 타격
  • 치명적이었던 여러 실책들과 실책성 플레이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전주 분위기가 좋아서 3승 3패, 5할 승률을 기대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삼성 전은 스윕패를 기록했지요.
가장 큰 이유는 선발진이 붕괴했기 때문입니다. 선발 투수가 초반에 4실점 이상 기록하면 이기기 힘듭니다. 그런데 일요일 마지막 경기의 알칸타라 선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투수가 초반 대량 실점하여 경기를 제대로 끌고가기 힘들었습니다. 믿었던 알칸타라, 브랜든 선수가 부상으로 대체 선발이 투입되었던 주간 첫 두 경기는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곽빈, 최원준, 김동주 선수마저도 초반에 대량 실점한건 아쉬웠습니다. 여기에 실책과 실책에 가까운 수비가 동반된건 변명의 여지가 없고요. 그리고 김동주 선수는 야수 실책이 후 실점하는걸 반복하고 있는데, 제대로 코칭해 주었으면 합니다. 멘탈 문제가 커 보이는데 선발로 계속 뛰려면 반드시 고쳐져야 할 부분이니까요.

그래도 키움과의 홈 3연전을 위닝으로 가져간건(비록 일요일 경기는 '승리당한' 수준이었지만...) 다행입니다. 눈여겨볼건 야수진의 조정입니다. 끝없이 부진한 양석환 선수를 빼고 1루수 강승호, 2루수 전민재, 유격수 박준영 선수에 선발 포수로 김기연 선수를 기용했는데, '메가 베어스포'라 부를만한 목요일 대폭발로 성적이 다소 세탁된 감은 있으나 대체로 고른 활약을 해 주었습니다. 외야의 김재환 선수도 눈에 띄는 수비 실수는 범하지 않았고요.
초반에 선발진이 대량 실점을 한 덕에 그동안 거의 출근 도장을 찍었던 이병헌, 박정수, 김명신 선수 등의 계투진이 무리하지 않았다는 의외의 효과를 거둔 것, 그리고 라모스 선수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 있게 된 것도 수확이라 할 수 있겠지요. 가격도 타격이지만 수비도 기대 이하였습니다. 라모스 선수보다는 조수행 선수나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간 김대한 선수를 기용하는게 성적과 미래에 더 보탬이 될 겁니다.

이번 주는 NC, 한화와의 홈, 원정 6연전이 펼쳐집니다. NC는 현재 2위의 강팀, 한화도 올 시즌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다가 브랜든 선수의 부상이 길어질 경우 화요일, 일요일은 대체 선발 투입(아마 박신지 선수?)으로 어려운 경기가 예상됩니다. 때문에 좋은 주간 성적을 위해서는 퐁당퐁당 투구를 선보이는 곽빈 선수가 잘 던질 차례인 수요일 경기, 여전한 활약을 선보이는 알칸타라 선수가 투입될 토요일 경기는 무조건 잡아야 합니다. 최원준 선수와 김동주 선수는 잘 던져주기를 바랄 뿐이고요.

하여, 이번 주 예상(이라고 쓰고 본 뜻은 기대)은 3승 3패입니다. 언제나처럼 무리하지 말고, 부상 선수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허슬~ 두!!

2024/04/21

용서받지 못한 밤 - 미치오 슈스케 / 김은모 : 별점 2.5점

용서받지 못한 밤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놀
<<아래 리뷰에는 핵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키히토의 아내 에츠코는 어린 딸 유미가 베란다에 올려두었던 엉겅퀴 화분을 떨어트린 탓에 일어난 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리고 15년 뒤,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은 유키히토에게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협박범은 '사고를 친 딸, 엉겅퀴에 대해 알고 있다'며 돈을 요구했다. 하지만 협박범을 만나자마자 유키히토는 기절했고, 장성한 딸 유미는 휴양 겸 해서 아빠 고향으로의 여행을 권했다.
유키히토 가족이 고향 하타가미를 등진 이유는 30년 전, 유키히토의 아버지 미나토가 마을 유지들을 살해했다는 의심을 샀기 때문이었고, 유키히토는 말이 나온 김에 누나 아사미와 함께 당시 사건의 진상도 밝힐겸 하타가미로 향했다.


미치오 슈스케의 장편. 30년 전 하타가미에서의 사건과 15년 전 에츠코의 사고사, 그리고 현재 하타가미에서의 살인 사건이 연결고리를 가지고 펼쳐집니다. 
핵심은 30년 전 사건 - 신울림제에서 마을 유지 4명에게 독버섯을 먹여 2명을 죽게 만든 - 의 진범은 누나 아사미였으며, 현재의 협박범 시노바야시 유이치로가 유키히토를 협박한건 이 사건이었다는 겁니다. 딸아이 유미가 실수로 엄마를 죽였다는게 아니라요. 시노바야시는 유키히토가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은걸 모르고, 전화를 받은게 아버지 미나토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30년 전 사건에서 아버지가 혐의를 뒤집어쓰게 되었던 원인인 마을 신사 신관 다라베 요코의 편지는 아버지가 일부러 조작 - 눈을 벼락으로 바꾸어서 - 했었습니다. 딸이 진범인걸 알고 딸을 지켜주기 위해서요. 마침 벼락을 맞아 당시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던 아사미는 자신이 범인인걸 모른 채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고요.

이런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복선도 탄탄합니다. 유키히토가 애초에 집에서 엉겅퀴를 키웠던 계기는 어린 시절 하타가미에서의 추억에서 비롯되었던 겁니다. 어머니가 꽃에 해박해서 집에서 키워 약으로도 썼었거든요. 마침 아사미가 독버섯 해독제로 엉겅퀴를 쓴게 두 사건을 연결하여 유키히토의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요. 아버지가 한자에 해박해서 한자를 가지고 여러가지 장난을 치는 설정은 다라베 요코의 편지 내용 조작을 알려주며, 누나 아사미가 사건 당시 기억 - 특히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까지 - 을 극히 최근까지 잃었다는 증거도 여러가지 일화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런게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전개에 녹여낸 솜씨는 일품이라 할 수 있어요.
그 외에도, 유미가 아기일때 저지른 실수로 에츠코가 죽은걸 협박범이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30년 전 사건은 정말로 미나토가 저지른 것인지? 협박범 시노바야시를 죽인건 누구인지? 등의 수수께끼가 계속 펼쳐져서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신은 없다'는 마지막 문장도 대박입니다. 아무리 선의에 의한 행동이라도 그 결과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씁쓸함을 이렇게 잘 그려낸 작품은 쉽게 찾기 어려울 듯 합니다.

하지만 '딸아이의 사고'와 '엉겅퀴'라는 키워드는 어떻게든 연결시켰지만, 전개와 설정에 억지가 많다는건 단점입니다. 아사미가 무려 30년간 기억상실이었는데, 마침 30년만에 방문했던 고향에서 벼락이 치는걸 보고 기억을 되찾는다는 설정이 대표적이에요. 마침 그 순간에 옆에 있었던 협박범 시노바야시를 본의아니게 살해하게 되었고, 이 순간이 마침 그 순간에 벼락 사진을 찍던 아야네의 카메라에 잡힌다는 일련의 연쇄는 우연이 너무 지나칩니다.
아사미가 기억을 되찾은 뒤, 남은 마을 유지 2명을 마저 살해하다가 결국 죽고 만다는 결말도 뜬금없었습니다. 복수를 생각했다면 꼭 이 시점에 했어야 했나? 싶고, 누가 보아도 수상한 외지인 유키히토를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이유도 알 수 없어요.
가족의 엄마가 환각 버섯에 중독되어 성폭행당하다가 살해당했다는 등의 설정도 이렇게 길게 끌고갈 필요가 있었을지는 좀 의문이에요. 이런 설정 없이도 4명의 '갑뿌'가 허튼 짓을 하다가 엄마가 죽게된건 누구나 떠올릴 수 있었는데 말이지요.
 
독자가 추리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큽니다. 30년 전 사건 당일 아사미가 독버섯을 넣으러 신사로 향하던 순간에 찍힌 사진이 그 예입니다. 화면에 '고스트 현상'이 보인다고 이야기되는데, 알고보니 이건 '눈'이 찍힌 것이고 이를 통해 독버섯을 넣은건 벼락이 치기 전날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작중 묘사만 가지고 이를 추리해내는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눈'을 '벼락'으로 바꾼 트릭 역시 번역된 글로는 떠올리기 불가능한건 마찬가지고요.

오래된 사건을 조사한다는 아야네는 사건의 핵심 당사자이기도 한 유키히토 가족과는 다르게 반쯤은 장난처럼 사건을 바라보는 행태가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고전 본격물 속 떠돌이 탐정같은 설정도 도무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요. 무언가 시리즈 캐릭터로 보이는데, 억지로 등장시켜서 시리즈로 만드는 것 보다는 빼는게 더 나았습니다. 실제 사건 해결에 별로 기여하지도 못하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졸저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후속으로 '요리 외의 추리 소설 속 여러가지 중요 소재들'을 쓰게 된다면 이 작품 속 '엉겅퀴'는 꼭 언급하고 싶습니다. 사건을 일으키는 핵심 소재이기도 하고, 중요 단서가 되기도 하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런 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2024/04/20

권외편집자 - 츠즈키 쿄이치 / 김혜원 : 별점 3점

권외편집자 - 6점
츠즈키 쿄이치 지음, 김혜원 옮김/컴인

일본의 편집자이자 작가, 사진가인 저자가 자신이 출판계에서 쌓아온 경력을 털어놓는 에세이집.
지금도 발간되고 있는, 저도 아주 좋아하는 잡지인 'popeye'와 'Brutus'에서 시작하여, 독립후 사진까지 직접 맡아 취재하여 발표한 Tokyo Style, 일본의 기묘한 장소들과 같은 기사들과 기사를 토대로 발표한 책들, 지금은 e-mail magazine 작업을 진행한다는 저자의 출판 여정과 함께, 이러한 취재와 창작 과정에서 느꼈던 여러가지 감정들과 단상들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편집자'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기자, 작가, 사진가, 창작자로서의 작업이 훨씬 많은건 의외였습니다. 저자가 원하는 책을 만들지 않고는 못배기는 사람이라서 그렇기도 한데, 여튼 익히 알고있고 친숙한 편집자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이야기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직접 기획해서 만든 기발한 책들 소개도 인상적이었어고요. 아무도 안 만들 것 같아서 만들었다는데, 일본, 미국의 기묘하고 재미있는 장소라던가 러브 호텔 사진집 등 소개만 보아도 재미있는게 너무 많더라고요. 그 중 가장 흥미로왔던 책은 성인 잡지 독자 투고 일러스트에 주목하여 출간한 기획이었습니다. '핀카라타이소 (ぴんから体操)'라는 작가는 그 중에서도 특출났던 덕분에, 출간 후에 유명해져서 전시회까지 정기적으로 열린다고해서 어떤 작품인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보자마자 변태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승자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는 시선, 판매량과 관계없이 원하는 책을 내고야 마는 열정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이런 책을 만들어도 먹고 살 수 있는 문화적 저변도 부럽고요. 물론 저자도 인세로 먹고 살지 못한다고 언급은 하지만, 이런 책을 여러 권 출간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요. (SF 전문 출판사 '불새'의 안타까운 최후가 겹쳐집니다)

백전노장다운 조언, 경험담도 새겨들을만한게 많습니다. 몇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내 돈 주고 구입하기'
무작정 인터넷으로 검색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머리와 주머니의 돈으로 판단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미술이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문을 두드리고 열어봐야 경험이 쌓인다.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머지않아 주변 의견에 흔들리지 않게 되고 좋다고 느낀 자신의 감각을 확신할 수 있는 날이 온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남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게 자신을 다져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 "현시연"의 마다라메의 말이 떠오릅니다.

속독이나 다독은 밥을 급하게 먹거나 과식하는 것과 같다. 편집자를 하고 싶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책을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100번 읽은 책을 몇 권이나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 추리소설 1,000권을 넘게 읽었다고 우쭐했던 저를 반성하게 만드는 명언입니다. 추리 소설 중에 100번 읽을만한 책이 무엇일지 한 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젊었을 때는 록만 들을거야라고 고집부리다가 어른이라면 재즈를 들어야지 하다가 마지막에는 고급 노래방에서 언니들과 흘러간 유행가를 부르는 승자 그룹보다, 죽을 때까지 핑크 플로이드를 들으며 만족하는 패자 그룹이 훨씬 존경스러워졌다.
: 성인잡지 독자 투고 일러스트를 모아 책으로 만드는 사람다운 견해였어요. '병신같지만 멋있어!' 느낌의 말이기도 하지요. 패자들을 위한 멋진 헌사라 생각됩니다.

프로란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걸까',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매일 그런 생각만 끝없이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을 대신해 철학자는 평생 동안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책으로 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가를 지불하고 책을 읽는다. 이처럼 누군가를 대신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 먼 곳까지 가보는 사람, 맛을 연구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프로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일을 한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
: 이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무릎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직장인이 그 업무의 '프로'라서 월급을 받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기도 하니까요.

이외에 실제 책을 여러 권 출간한 '프로'다운 말도 많습니다.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대략적인 스케치를 하는 정도가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준비는 결과를 가정하고 단정짓는 과정이 아니라 기초를 닦아두는 과정이다." 처럼요. 미술 대학을 부정하는 말도 기억에 남네요. 저 역시 아득히 오래 전이지만 미대 졸업생인데, 솔직히 대학에서 예술이나 디자인에 대해서 무언가 배웠다는 실감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냥 그런 작업을 하는 공간과 같은 분야에 관심있는 친구들을 모아놓은 오프라인 모임에 가깝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전부가 다 볼만하고 좋은건 아닙니다. 꼰대스러움이 글 곳곳에 묻어나는건 별로였어요. 대표적인게 '기획과 여정도 처음부터 모든걸 꼼꼼하게 계획하지 않는게 좋다. 예기치 못한 만남은 예상을 뛰어넘은 장소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모든걸 꼼꼼하게 계획해야 하는 취재, 업무가 있는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는 MBTI가 J인 사람은 견디지 못할 상황이기도 하고요. 업무의 특성과 사람마다 개성이 모두 다른데, 자신에게 잘 맞았다고 남에게도 단정지어 이야기하는건 꼰대지요.
"그들의 삶은 세상에서는 패배자라 하고 부모에게는 근심거리가 될지도 모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건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았다."와 같은 글도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다는 현실을 알려주는게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아닐까 싶은데 말이지요.
그리고 신선했던 취재들도 거듭되다보니 "수상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와 비슷해져서 식상해져 버리고 맙니다. 러브돌을 만드는 오리엔트 공업 이야기는 그냥 같은 취재더라고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인터넷 메일 형태의 매거진을 정기 간행하는 등 꺾이지 않는 저자의 열정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4/19

미술관에 간 과학자 - 미우라 가요 / 지종익 : 별점 3점

미술관에 간 과학자 - 6점
미우라 가요 지음, 지종익 옮김/아트북스

과학자가 쓴 미술 작품 해설(?) 책은 전에도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 역시 유명 작품을 저자의 전문 분야로 분석하는 책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약간 달랐습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하는건 맞습니다. 다만 그게 화학이나 물리학이 아니라 '심리학'이더라고요.

심리학으로 그림을 분석한 책은 처음 보았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사진 등을 통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장면의 묘사가, 실제 눈을 통해 지각할 수는 없다는건 놀라왔어요. '초점'이 빛나간걸 확인할 수 없다는 것처럼요. 상식적으로 바라보는 사물에 초점이 맞을 수 밖에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인데, 여태까지 생각하지도 못했었습니다.
시간과 날짜 등에 따라 다른 색의 변화를 그려낸 아래의 모네의 루앙 성당 연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이걸 눈으로 확인하는건 무척 어렵다는군요. 인간의 눈은 조명이나 그림자를 배제하고 원래의 색으로 보게끔 만들어져 있는 탓입니다. 즉, 모네는 '뇌'로 그림을 그렸다는 의미입니다! 여태까지 빛의 변화를 인상파 작가들처럼 느끼지 못했던 저의 둔감한 센스를 탓했었는데 알고보니 그게 당연한거라니, 위안이 됩니다.
잭슨 폴록의 그림이 프랙탈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연구도 신기했습니다. 프랙탈 차원 값은 1에서 2까지로 2로 갈 수록 복잡해지는데, 폴록의 초기작은 인간이 가장 기분 좋음을 느끼는 1.45 정도였다가 말년으로 갈 수록 수치가 상승해서 1950년 작품은 최대치라 할 수 있는 1.9에 이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냥 물감을 뿌린게 아니라 굉장히 고민하고 연구하여 그렸다는건데 어떻게 연구해야 저런걸 물감을 뿌려 완성할 수 있는지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확실히, 거장이 달리 거장이 아니네요. 이를 통해 코끼리가 그린 그림이 예술이 아닌 이유도 알 수 있었고요. 연구와 고민이 뒷받침되지 않은 단순한 우연의 산물은 예술 작품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지요.

이외에도 그림에서 안정, 불안감을 느끼는 요인 - 광원이 왼쪽에 있는게 안정적임 - 이라던가 그림속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 방향 - 왼쪽에서 오른쪽 -,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 방향에 따른 감상자의 생각들, 광택이 나는 장식품을 투명하게 만드는 방법에 따른 '투명시' 설명 등 그림의 여러 요소들을 이용한 연구들이 가득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 예시 작품들이 흔히 보지 못했던 독특한 것들이 많아 좋았습니다. 인간의 시각은 복수의 정보를 통해 얻은 정보를 콜라주해서 얻었다는걸 호크니의 사진 콜라주를 통해 알려주는게 대표적이에요. 호크니는 화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사진 콜라주 작품도 발표했는지 몰랐네요.

다만 도판이 너무 작아서 알아보기 어렵고, 어떤 내용은 정보와 내용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이해하지 못한 설명도 제법 되고요. '인간의 눈에는 단파장, 중파장, 장파장에 반응하는 세 종류의 시세포가 있다. 이중 빨간색을 지각하는 건 장파장에 반응하는 시세포로 알려져 있다. 놀랍게도 전형적인 빨강에 해당하는 파장 760나노미터가량의 빛에 대한 시세포의 반응은 거의 0에 가깝다. 빨강은 눈길을 사로잡는 색이지만 눈의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색이라는 것이다. 이 장파장에 반응하는 시세포의 절정은 656나노미터 정도로, 우리에게는 황색으로 보인다. 즉, 단파장, 중파장, 장파장의 세 시세포는 청, 녹, 적이라는 빛의 삼원색에 반응하는 수용기가 아니다. 어떤 색으로 보일지는 세 종류의 시세포가 반응하는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 그 결과, 보일 리 없는 빨간색이 어떤 색보다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는 글처럼요. 빨간색이 왜 선명하게 보인다는건지, 저는 이 글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애초에 글 자체가 친절하게, 쉽게 쓰여져 있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목차 구성도 불만스럽습니다. 앞서 광원 등의 위치로 심리적 안정감과 시간의 흐름이 정해진다는 설명은, 글을 반대로 읽는 일본이나 아랍권에서의 예를 비교해주면서 설명해 주는게 당연히 좋았을거에요. 하지만 일본의 예는 한참 뒤에 따로 소개되어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어요.

그래도 워낙 좋은 내용이 많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서구권, 그리고 일부 일본 작품만 연구에 활용되었는데, 우리 작품도 이런 시각으로 연구한 책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4/04/17

Q.E.D. iff 증명종료 22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2점

[고화질]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22 - 4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

두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 편은 강력 사건, 한 편은 일상계라는 전형적인 "Q.E.D" 시리즈다운 구성입니다.
직전 권은 대실망을 안겨 주었는데, 이번 권은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두 편 평균한 별점은 2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도난, 수뢰, 그리고 살인"
현직 중의원 하쿠바 유우키가 보석 도난 사건의 용의자로 떠올랐다. 그는 3개월 전 알선 수뢰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비서의 자살로 법망을 빠져나간 전력이 있었다. 경찰은 좌천당한 엘리트 아카기에게 사건 수사를 맡겼다.알고보니 보석 도난 사건은 아카기의 계획이었다. 하쿠바 유우키가 비서를 살해했다는걸 증명하기 위한 단서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계획대로 비서 자살 당시 하쿠바 의원의 알리바이를 증명했던 친구 아사마의 휴대전화를 입수하여 거짓 알리바이를 밝히는 것 까지는 성공했지만, 의원의 범행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이 때 타니바타 경감의 부탁으로 자살했던 비서 사건의 재수사에 나섰던 토마가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초반에 등장했던 고급 시계를 훔쳐낸 트릭, 아카기의 위장 보석 도난 사건 트릭은 괜찮았습니다. 짧게 지나가기 아깝다 생각될 정도로요. 캐리어 생활에 위기가 닥친 아키기 형사가 주위를 속이고 사건을 꾸며내면서까지 성공 가도에 집착하는 설정도 재미있었고요.
사건 당시 정박해 있던 배의 위치 때문에 사체가 발견 장소까지 흘러가지 못해서 자살설이 부정된건 합리적입니다.

그렇지만 이야기 완성도는 낮습니다. 아카기가 손에 넣은 증거는 바의 주인 아사마의 휴대전화에서 입수했습니다. 현직 중의원 하쿠바를 제대로 수사하는건 어려웠을지라도, 강력 사건 수사 중인 경찰이 아사마의 거처나 소지품을 압수수색하는건 어렵지 않았을겁니다. 이를 위해 보석 도난 사건까지 꾸며낸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하쿠바 의원의 알리바이 트릭도 별로입니다. 비서의 옷을 입고 직접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이 방법 카메라에 찍히도록 만든게 전부거든요. 이 트릭을 쓴다면 의원이 아사마를 이용해 알리바이를 꾸며내면서까지 직접 뛰어들 이유도 없습니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고, 뛰어드는건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게 더 완벽했을테니까요.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안된다? 어차피 아사마에게 거짓말을 시켰는데, 다른 사람에게 못 시킬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방범 카메라에 찍혀있던, 뛰어내린 남자가 비서의 옷을 입고 있던걸 보고 '타카오가 맞아, 틀림없어.'라고 했던 하쿠바 의원의 말도 토마의 주장처럼 결정적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양복이 비서 것이있으니 비서가 뛰어내렸다고 생각한건 당연합니다. 심지어 비서의 어머니도 양복만을 알아본건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증거로 성립하려면 최소한 비서의 양복을 빌려 입을 수 있었던건 하쿠바 의원 뿐이었다는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애초에 밤에 방범 카메라에 찍힌 화면에서 '양복'을 특정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지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있는 설정, 괜찮았던 사소한 트릭을 잘 써먹지 못한 이야기라 감점합니다.

"타인의 생활"
치과의사 남편과 사별한 아마쿠사 하루미는 동네 친구들, 그리고 손자 핫사쿠와 함께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유품 중에 500만엔이 넘는 코이마리 그릇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릇은 사라져버렸고, 동네 친구들과 감정사는 손자 핫사쿠를 의심했다.

핫사쿠가 범인인 듯 몰아가지만, 하루미가 그릇을 숨겼던게 진상이었다는 일상계.
토마가 핫사쿠의 결백을 증명하는 현실적인 추리도 좋았지만, 사랑의 도피(?)가 원인이었던 진상이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하루미와 남편이 사랑의 도피(?)를 해서 결혼했기 때문에 본가와는 절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가로부터 선물받았던 그릇의 가치를 모르고 평소에 과자 그릇으로 썼던거지요. 지금 비싸다는걸 드러내면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숨겼다는 이유도 타당해 보였고요. 사랑의 도피(?)를 이렇게 잘 써먹은 작품은 처음 보네요.

핫사쿠를 비롯한 동네 친구들의 수상함을 드러내는 묘사는 진부했고, 감정사가 사건을 파헤치려고 하는게 억지스러운 등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Q.E.D 일상계 완성도는 대체로 괜찮은 편이라는걸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04/16

미스터리 문학의 책장 : 결말이 충격적인 미스터리 5편

구독 중인 미스터리 문학 전문 유튜버 (북튜버) '미스터리 문학의 책장' 에서 소개해 준 아이템입니다.

소개하고 있는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국내 소개 된 4편 중 2편을 읽어보았는데, 그렇게 '충격적인 결말'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어요. 그래도 좋은 작품이었던건 분명하니, 기회가 되면 나머지 두 편도 읽어볼까 합니다. 마사키 도시카라는 작가는 접해본 적이 없기도 하고요. 이런 식으로 알아가는거지요.

1. 리버스 - 미나토 가나에
커피를 좋아하는 회사원 후카세는 보통의 회사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던 그는 역시 커피를 좋아하는 미호코를 만나 사귀게 된다. 특별하진 않지만 편안하고 사랑스러운 날들이 이어졌다. 나호코가 한 통의 편지를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편지에는 단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후카세 가즈히사는 살인자다'라는 문장이. 나호코는 후카세에게 이 편지에 대해 추궁하기 시작하고, 숨겨졌던 일들이 하나씩 정체를 드러낸다.

2.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남부 노스캐롤라이나 슾지대에서 태어난 카야는 엄마와 언니, 오빠들, 마지막으로 아빠마저 집을 떠나 어린 나이에 홀로 남겨졌다. 하지만 카야는 어린 나이와 마을에서는 '마시 걸'이라고 불리우며 차별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살아 남았다. 놀라운 생존 본능과 흑인 점핑, 그리고 첫 사랑 테이트의 도움 덕분이었다. 심지어는 글을 깨우친 뒤 독학으로 슾지에 대한 여러가지 연구를 진행하며 책까지 출간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테이트와의 이별, 첫 남자 체이스에게 배신당하는 아픔도 겪었다.
몇 년이 지나 돌아온 체이스는 그녀를 강간하려 시도했고, 카야는 겨우 몸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뒤, 체이스는 망루에서 떨어진 시체로 발견되었고, 카야는 유력한 용의자로 법정에 서게 되는데...


3. 옥문도- 요코미조 세이시
쇼와 21년, 즉 1946년 일본이 항복한 직후 옥문도를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가 찾았다. 전우 기토 치마타의 죽음을 알리고 유서를 전하기 위해서라는 표면적인 이유 뒤에는,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세 여동생이 살해당할테니 그걸 막아달라는 유언이 있었다.
기토 가문은 섬의 선주로 막강한 권세가 있었지만 다이코라고 까지 불리웠던 막강했던 선대 선주 카에몬이 죽은 이후 본가와 분가와의 세력 다툼과 두 후계자의 징집으로 말미암아 서서히 가세가 기울고 있었다. 치마타의 배다른 세 여동생은 대단한 미인들이었지만 모자란 듯 묘한 분위기를 지녔고, 명탐정이라고 불리우는 코스케의 방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곧 세 자매는 차례로 괴이한 방식으로 살해당하게 되는데...


4.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 마사키 도시카
평범하고 행복한 주부였던 미즈노 이즈미. 평온했던 이즈미의 삶은 아들 다이키의 사고사로 180도 달라지고 만다. 사고 후 15년이 흘러 젊은 여성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주요 참고인인 불륜 상대는 행방불명됐다. 수사에 나선 형사 미쓰야와 가쿠토는 무관해 보이는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연결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이키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사랑 이면에는 어떤 어둠이 숨어 있었을까?

5. 우리들이 성좌를  훔친 이유 - 기타야마  타케쿠니 (국내 미출간)

2024/04/15

04.09 ~ 04.14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한화, LG 홈 6연전
성적 : 4승 2패

좋았던 점
  • 국내 선발진(곽빈, 김동주 선수)의 쾌투
  • 살아난 중간 계투진
  • 성장한 이승엽 감독의 용병술
나빴던 점
  • 타선 침체와 엇박에 의한 18이닝 1득점
  • 불안정한 마무리
  • 연이은 주루 플레이 미스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강팀을 만나고, 바로 전주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1승이나 거두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의 2연속 위닝으로 4승 2패를 거두었습니다.

승리를 거두었던 이유는 단연 계투진 덕분입니다. 막 조정을 마치고 올라온 홍건희 선수, 그리고 홈런을 맞은 박치국 선수, 그리고 신예 김호준, 김택연 선수가 각각 자책점 1점씩만을 기록했을 뿐입니다! 우리 불펜은 아껴쓰고, 적절하게 쓰면 약하지 않이요. 고속 사이드암 박치국, 흑마구 사이드암 박정수, 강속구 좌완 이병헌, 우완 정통파 최지강, 우완 제구왕 흑마구 김명신 선수로 이루어진 구성도 좋고요.
결국 이승엽 감독이 적절하게 운영만 하면 되는데, 대체선발 이영하 선수가 만루 위기를 겨우겨우 넘기면서 고작 3이닝만 버티고 강판당한 토요일 경기를 보면 그래도 깨달음을 조금 얻은듯 하더군요. 박치국 선수가 홈런으로 흔들리자마자 교체하는 식으로 9명의 투수를 잘 운용하여 경기를 잡아낸 용병술은 돋보였거든요. 지난주보다는 투수진을 무리시키지 않으면서도 적재적소에 교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앞으로도 적절히 휴식을 주는 운용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투수진은 퓨처스에서도 올릴만한 선수들이 있으니까요. 아주 좋지는 못했어도, 주 중 두 경기 10이닝을 2자책으로 버틴 투동주 선수도 1승 축하합니다. 
일요일 경기에서 허경민, 김재환 선수가 빠진 자리를 전민재, 조수행 선수로 메꾸고, 이들의 활약을 경기를 잡아낸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체 선수들이 타점, 득점과 안타를 기록하며 고르게 활약한건 올 시즌 들어 처음 봤네요. 부진하지만 뚝심있게 박준영, 김대한 선수를 밀어주는 모습도 마음에 들고요. 애매한 현재보다는, 이런 과감한 기용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하지만 브랜든 선수와 곽빈 선수가 퀄리티 스타트 이상을 해 주었던 목, 금 경기를 놓친건 아쉬웠습니다. 류현진 선수와 켈리 선수에게 꽁꽁 묶인 타선 탓인데, 상대팀 에이스 급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연승을 이어가기는 힘듭니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만들면 좋겠네요. 수비가 엉망인건 당장 대책이 없더라도, 타격만큼은 지금보다는 올라와주어야 합니다. 퐁당퐁당이 심한 강승호 선수를 비롯한 양석환, 김재환 선수 등 해 줘야 하는 선수들이 보다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요.
공격적인 주루도 좋지만 볼썽사나운 주루사는 지양하였으면 합니다. 빠른 선수들이 욕심을 내는 편인데, 지금 바뀐 규정에 따르면 도루는 분명 쉬워졌습니다. 무리하지 말고, 도루를 노리는 경기가 더 나을거에요.
아울러 정철원 선수가 무실점 세이브를 연달아 거두기는 했지만, 보직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구속이 전년대비 줄었고 제구가 좋지 못해 출루 허용률이 너무 높습니다. 휴식을 줄 필요가 있어 보였어요.

그래도 1승 5패로 처참했던 한 주를 지나, 4승 2패로 반등하는 모습을 보인건 다행입니다. 그것도 강팀 상대로 말이죠. 이번 주는 삼성, 키움과의 원정, 홈 6연전입니다. 삼성과는 '싸대기 동맹'으로 불리고 있을만큼 붙을 때 마다 치열했고, 키움은 올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강팀이니 어려운 경기가 예상되네요. 게다가 알칸타라 선수가 한 경기 쉬고, 키움전 한 경기는 연속으로 크게 무너졌던 최원준 선수가 나서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브랜든, 곽빈 선수가 연이어 등판하는 삼성전을 위닝으로 가져가야만 주말 키움전에서 다소 여유를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경기들에 포커스를 맞춰야겠지요.

하여, 이번 주 예상(이라고 쓰고 본 뜻은 기대)은 3승 3패입니다. 언제나처럼 무리하지 말고, 부상 선수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허슬~ 두!!

2024/04/14

목요일 살인 클럽 - 리처드 오스먼 / 공보경 : 별점 1.5점

목요일 살인 클럽 - 4점
리처드 오스먼 지음, 공보경 옮김/살림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쿠퍼스 체이스 실버타운에는 노인들 몇 명이 미해결 사건에 대해 토론하는 '목요일 살인 클럽'이 있었다. 클럽 멤버들은 실버 타운을 만든 건축업자 토니 커런이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건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였던 토니의 동업자 이안마저도 클럽 멤버들 눈 앞에서 독살당했다. 그가 새 사업을 위해 수녀원 묘지를 파내는걸 클럽 멤버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저지하던 와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토니 사건 현장 옆에 클럽 멤버 중 한 명인 론의 아들 제이슨이 토니와 함께 찍혀있었던 사진이 놓여 있었고, 제이슨은 토니가 죽은 날 그의 집을 방문했다는게 드러나 궁지에 몰렸다. 그렇지만 제이슨은 다른 옛 친구와 함께 토니에게 원한이 있는 터키시 지아니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묘지 발굴을 반대하다가 이안과 몸싸움을 벌였던 매튜 매키 신부였다. 경찰 조사 결과 신부가 아니라는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전형적인 코지 미스터리 작품. 영국 어딘가의 고급 실버 타운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클럽의 핵심 인물이자 리더인 엘리자베스는 여성이다는 등의 모든 설정이 전형적입니다. 실버 타운을 무대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노인들 및 여러 등장인물들의 숨겨졌던 과거가 서서히 밝혀지는 전개도 비교적 밝은 분위기를 전해주고요. 노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코지 미스터리라는 점에서는 "살인 플롯 짜는 노파"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러나 아무리 가벼운 코지 미스터리라도 분명 추리 소설입니다. 때문에 어느정도의 추리 요소는 갖췄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추리 요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선 토니, 이안 두 명의 죽음은 작품 내 주어진 정보로는 범인을 알아내는게 불가능합니다. 토니를 죽인 범인은 이안에게 토니대신 고용되었던 보그단인데, 그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어요. 토니 커런이 과거 죽였던 택시 운전사의 친구였기 때문에 복수를 위해 죽였다는 동기도 작 중에서 전혀 설명되지 않고요. 경찰이 토니를 죽였다고 생각했던 지아니 역시 이미 오래전에 보그단이 깜쪽같이 죽였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 속에서 보그단이 직접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알아내는건 불가능합니다.
이안을 살해한 진범이 존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존이 수의사였기에 주사기와 약 사용법을 잘 알고 있다는 정도의 단서로는 부족해요. 수녀 무덤에 묻었던 시체가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했다는 동기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이안이 벌인 공사로 시체가 발굴되어도 피해자가 누군지 알아낼 수도 없었을겁니다. 설령 알아냈다 치더라도, 범인이 누구인지는 드러나지 않았을테고요. 증거도 없고, 동기도 불분명했으니까요. 설령 시체가 발굴될까 두려워 이안을 살해했다쳐도, 이안의 뒤를 이은 누군가가 공사를 재개할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이안을 살해한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게다가 다른 여러 사람들이 있는 와중에 늙은 존이 이안에게 몰래 독극물을 주사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정체모를 주사를 놓는걸 방관할 사람이 있을리가 없잖아요?
또 존이 거의 뇌사상태인 아내 페니가 오래전 살인범 피터 머서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아내를 죽인 뒤 자살을 택한다는 결말도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아내 페니가 오래전 살인범 피터 머서를 살해했다는건 지금 시점에 밝혀져도 문제될게 없습니다. 어차피 더 오래 살기도 힘든데 밝혀진들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재판정에 세울 수도 없는 몸상태인데 말이지요. 게다가 존의 동기라던가 페니의 과거를 독자가 알아낼 수 있는 방법도 전무합니다. 이래서야 미스터리 측면에서는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버나드가 몰래 빼돌려 숨겼던 아내의 유골 탓에 자살을 택한다는 것도 그리 좋은 결말은 아니었고요.

경찰이 제이슨의 혐의를 빠르게 포기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제이슨의 주장만으로 그를 풀어주기는 힘들 정도의 정황 증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토니가 죽은 날, 제이슨은 수차례 토니에게 전화를 했고 범행 시간에 토니의 집에 가기까지 했습니다. 제이슨이 범인이 아니라면 다른 명확한 증거를 제시했어야 했는데 그렇지도 못했고, 지아니가 범인이라는 그의 주장 역시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옛 친구 바비 태너가 토니 커런 사건 후 지아니가 도주했다고 했지만, 이 역시 증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왜 경찰은 제이슨을 체포하지 않았을까요? 경찰 입장에서는 존재조차 모호한 지아니보다는 제이슨에게 수사력을 집중하는게 당연합니다. 제이슨이 인기있는 유명인이라서 봐주기 수사를 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캐릭터들도 별다른 매력이 없습니다. 오지랖넓은 노인들이 사건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미스 마플' 이래 변한게 없는것 같네요. 무대포에 가까운 기묘한 행동력은 "뜻밖의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을 떠오르게 만들고요. 한마디로 다 어디서 봤던 설정들입니다. 노인을 중심으로 살인 사건에 일반인들이 뛰어든다는 설정과 전개도 뻔합니다. 앞서 언급드렸던 "살인 플롯 짜는 노파"도 비슷하지요. 
나름의 차이점을 만들기 위해 노인들의 배경 설명에 공을 들였는데 이 역시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오래 전 스파이 출신으로 보이는 엘리자베스가 대표적입니다. 클럽의 리더로서 멤버들을 잘 이끌기는 하지만, 스파이 경력을 보여줄만한 특별한 활약은 선보이지 못합니다. 뭔가 가지고 있는 연줄로 정보를 긁어모으는 정도에 그치거든요. 다른 멤버들인 간호사 출신 조이스, 유명한 좌익 노동 운동가였던 론, 정신과 의사였던 이브라힘의 경력도 사건 해결과는 무관하고요. 그냥 우리 주변에 계실법한 노인분들같은 느낌만 전해 줄 뿐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현재를 서서히 잃어가는 노인들의 삶을 살짝 보여주는 묘사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지루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코지 미스터리하고는 안 맞나 봅니다. 후속권이 있던데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4/04/13

약사의 혼잣말 Season 1 (2023) - 나가무라 노리히로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루 녹청관에서 기녀의 딸로 태어나 동네 의사의 의붓딸로 자란 마오마오는 인신매매단에 의해 납치되어 후궁으로 팔려갔다. 그곳에서 독이 들어있는지를 먼저 판단하는 시식 담당을 맡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배우고 익혀왔던 의학 기술과 면역력 등을 무기로 스스로의 입지를 굳히고, 여러 사건을 해결했다. 그 결과 후궁의 최고 관리자라 할 수 있는 진시의 눈에 들어 그의 직속 하녀가 되었다. 목숨을 걸고 진시의 생명을 구한 뒤, 궁에서 군사로 재직 중인 아버지 라칸의 도발과 대결에 응하게 되는데...

전 24화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넷플릭스로 감상하였습니다. 명나라 정도 시기의 중국 황궁을 무대로, 궁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을 마오마오가 해결하는 추리물입니다. 추리물 시리즈 애니메이션은 정말 오랫만이네요.

전반부, 마오마오가 후궁에서 일할 때에는 여인들간의 암투와 애증 관계로 빚어지는 사건이 많고, 중반 이후 진시의 하녀가 되고 나서는 진시와 황제의 생명을 노리는 음모와 마오마오의 출생의 비밀에 대한 꽤 길고 굵직한 드라마가 전개됩니다. 
덕분에 중반 이후 이야기는 추리 비중이 낮은 편이라서 개인적으로는 전반부가 더 흥미로왔지만, 후반부도 나쁘지는 않아요. 진시의 생명을 노린 음모를 밝혀내는 마오마오의 활약도 잘 그려져 있고, 마오마오의 친부라칸과 생모의 슬픈 과거사도 아주 좋았거든요. 마오마오가 라칸과 대결을 펼쳐 이긴 뒤, 생모를 낙적시키도록 유도하는 계획도 자연스럽게 그려지고요. 이를 위한 과거의 복선들도 충실히 깔려있는 편입니다.

마오마오가 모르는게 없다시피한, 지식계의 먼치킨으로 등장하는데다가 꾸미면 이르기까지 하다는 설정은 과했고, 중간중간 납득이 안되는 부분 - 라칸과의 무모한 승부와 같은 - 이 있어서 몰입을 간혹 방해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추리와 재미 모두 기본 이상은 해주는 재미있는 시리즈였어요. 다음 시즌이 기다려지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4/12

한류 미학 1 :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기원 - 최경원 : 별점 3점


우리나라의 문화는 소박하지만은 않다는걸 여러가지 문화재, 유물을 통해 알려주는 책.
설명을 위해 유물들을 '디자인'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유물을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가 사용하는 '제품' 관점에서 분석하여, 해당 유물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갔던 '제품'인지를 알려준다는건데 꽤 그럴싸한 접근법이라 생각되었습니다. 현재의 갤럭시나 아이폰을 먼 미래 박물관 같은데서 본다고 상상한다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어요. 두 제품은 생긴 것만으로는 차이를 느끼기 어려우니까요. 차이를 느끼려면 아이폰이 가져온 혁신을 함께 알려주어야 하는데 이와 유사한 방식이 아닐까 싶거든요. 확실히 디자인 전문가다운 발상이었습니다.

또 디자이너답게 '형태'에 집중하고 있는 유물도 있는데 이 중에서는 삼한 시대의 오리모양 토기의 형태에 주목한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문화권 토기들과 다르게 사실성, 장식을 배제하고 극도로 단순화한 수준높은 추상조형은 이를 소비하는 지배층의 인식 또한 뒷받침 되어야 하므로 높은 수준의 사회적 배경의 뒷받침되었을 거라는 저자의 의견은 설득력이 높아 보였습니다. 굉장히 모던하고 미니멀리즘적인 삼한 시대 토기 역시 마찬가지고요.
고구려의 다양한 화살촉은 실제 쓰임새(양력 등을 활용하여 보다 멀리 쏠 수 있도록) 때문에 발전된 형태라는 글도 흥미로왔습니다. 오히려 더 진지하게 파고들어 연구할 여지가 많은데 중간에 끝난 것 같아 아쉬웠어요. 왜 후대에 계승되어 더 발전되지 못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일반 화살촉보다 분명한 장점 - 사거리 - 이 있어 보이는데, 그걸 상쇄할만큼 단점이 컸던 걸까요? 그렇다면 어떤 단점이 있었을까요? 아, 궁금합니다.

사진이 아니라 직접 그린 스케치로 이루어진 도판도 아주 좋습니다. 저자의 설명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조형적인 완성도를 알려주는 대부분의 글들 도판들이 특히 빼어난데, 아래의 용봉문 투조 금동장식 속 봉황 등의 조형이라던가, 통일신라 말 발걸이에 그려진 말 캐릭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런 스케치가 아니라면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을터라 무척 고마운 도판이었어요.
몇몇 유물의 경우는 디자인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현대의 제품들과의 비교도 시도하는데 이 역시 괜찮았어요. 답을 정해 놓고 끼워맞춘 감이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지향하는 바가 비슷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습니다. 한국형 비파형 청동검은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 걸작품으로 고조선이 상당한 수준의 문명 국가였다는걸 증명해 준다는 등이 그러합니다. 신라의 누금세공 귀걸이도 저 큰걸 귀에 어떻게 걸지? 싶었었는데, 명주실을 꿰어 귀나 모자에 걸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찾아보니 기사도 있네요).

하지만 다소 억지섞인 주장도 없지는 않습니다. 쌍용총 속 벽화의 무인의 패션이 샤넬, 아르마니의 컨셉과 일치하는 시대를 앞서간 패션이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단지 무채색이라는 것 정도로는 논거가 부족합니다. 아래의 백제 허리띠처럼 실제로 꽤 감각적이고 멋드러진 형태라는걸 구체적으로 알려줬어야 했어요.
누구나 최고의 명품이라고 인정하는 금동대향로가 소개되는건 노력의 낭비가 아니었을까 싶고, 무엇보다도 저자의 의견이 과연 맞는지?에 대해서 증빙되지 못한다는 문제도 커 보였습니다.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료적인 근거는 거의 없다시피하거든요.

그래도 디자이너가 유뮬을 제품 관점에서 바라보았다는 책의 컨셉은 확실히 빼어납니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4/11

22대 국회의원 선거 단상

대선도 아니고 국회의원 개표 방송을 이렇게 관심있게 지켜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블로그이지만 이번 선거에 대해 짤막한 개인적인 생각을 올려봅니다.

승자
1위 조국 :진짜 정치인 조국의 탄생. 단 1개월만에 유력한 대선 주자로 올라설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하다.
2위 이재명 : 압승으로 당내 지위를 굳건히하다. 대부분 자기 세력인 국회의원들을 거느린 것도 호재.
3위 이준석 : 여당 대표를 거저 얻은게 아니라는걸 증명하다. 솔직히 놀랐다. 앞으로 더 큰 정치인으로 나아갈 포석이 될 듯.

패자
1위 한동훈 : 정치인으로서 도약할 기회를 모두 잃었다. 당내 자기 세력도 없고, 원외라서 재기하려면 오래 걸릴 듯.
2위 윤석렬 : 레임덕을 넘어선 데드덕의 시작. 과연 이번에도 아내를 지킬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
3위 이수정 : 여러 사람이 떠오르지만 구태여 뽑자면 이 분, 추후 정치인 재도전은 커녕 원래의 방송활동이나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듯.

존칭과 직함은 생략했습니다.

2024/04/09

너무나 애매한 두산 베어스의 현재 (2024.04 기준)

두산 베어스의 현재에 대해 질타하는 글이 자주 방문하는 야구 커뮤니티 파울볼에 올라왔더군요. 읽어보았는데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두산 베어스의 현재는 무척이나 애매합니다. 허경민, 정수빈, 김재환, 양의지, 양석환 선수 등 고액 FA가 즐비한 구성을 보면 윈나우 팀이어야 하는데 성적은 그렇게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액 연봉자들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자리를 주고 키워야 할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지요.
이런 기조는 2021년 김재환 선수 FA 계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당시 이 계약에 반대한다는 글을 올렸었는데, 두산은 이 때  리빌딩을 선언했어야 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김재환 선수는 타 팀으로 이적했읉테고, 이후의 양의지 선수 영입과 김재호, 양석환, 홍건희 선수의 FA 계약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김재환 선수 계약 이후 이승엽 감독 선임과 취임 축하 선물(?) 양의지 선수 계약으로 이런 계획이 모두 틀어지고 윈나우로 갈 수 밖에 없어져 버렸죠. 그 탓에 후속 FA 계약도 이어졌고요. 
그러나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이 FA 계약들은 거의 모두 실패했거나, 실패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김재호 선수는 보상 차원 계약일 뿐이었고, 허경민 선수는 활약은 그럭저럭이지만 코너 내야수치고는 장타력 부족에 요새는 수비력도 슬슬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양석환 선수는 장타력 외에는 단점이 더 많고, 홍건희 선수는 에이징 커브가 느껴지고요. 양의지 선수? 활약은 좋지만 워낙에 거액인데다가 결장도 잦습니다. 나이 탓에 애초에 계약만큼의 활약은 무리였어요.

그나마 계약 만큼의 활약을 해 주고 있는 선수는 정수빈 선수가 거의 유일합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과 중견수 포지션, 빠른 발 덕분). 허나 정수빈 선수 계약을 하지 않았다면 김대한 선수가 자리를 잡고 성장할 수 있었을테죠. 만약 다른 고액 연봉자들과도 FA 계약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1루 강승호, 2루 이유찬, 유격 박계범, 3루 외국인 선수에 홍성호, 김대한, 김인태 선수의 외야와 포수 장승현 선수, 지명타자 김민혁 선수 정도로 5강 싸움은 힘들어 보이는 라인업이지만, 지금 선수단 구성으로도 어차피 최대 기대치는 5위 정도입니다. 5위를 해 봤자 어차피 우승은 거의 불가능하고요. 그렇다면 수백억을 쓸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고액 연봉자들로 인해 젊은 야수진 성장만 정체될 뿐입니다. 타 팀에 비해 젊은 야수들이 없다는 말이 많은데, 김민혁, 홍성호, 양찬열, 이유찬 선수 등은 2군에서는 더 보여줄게 없는 선수들입니다. 1군에서 충분히 시간을 줄 필요가 있어요. 지금처럼 고액 연봉 선수들에게 치여서 제대로 된 출장 기회를 보장받지 못해서야 영원히 성장은 힘듭니다. 잠깐 찾아온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어야 한다? 무책임한 말이에요. 모든 선수들이 동일한 멘탈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니까요. 박건우 선수도 알을 깨는데에는 꽤 오래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최소한 작년의 양석환, 홍건희 선수 계약만이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나았을텐데 왜 무리를 한 걸까요? 두산은 2010년대에 '왕조' 소리를 들어가며 7연속 한국 시리즈를 경험하고 3번 우승한 팀입니다. 좀 쉬어가면 어떻습니까.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싹수가 보이는 영건들의 군 문제 해결과 더불어 코칭 스태프 보강으로 2~3년 정도 옥석을 가린 뒤, 2026년 시즌부터 다시 승부를 보았어도 충분했어요.

팬으로서는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주기만을 바라며, 오늘도 경기를 시청하겠지만 여러모로 단장의 결단이 아쉬운 현재입니다. 이승엽 감독이 모쪼록 미래를 저버리지 않는 운영을 해 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제발 지는 경기에 필승조 좀 쓰지 말라고!

2024/04/08

04.02 ~ 04.07 두산 베어스 경기 감상평

SSG, 롯데 원정 6연전
성적 : 1승 5패

좋았던 점
  • 있을리가.... 그나마 견고했던 1, 2선발 정도

나빴던 점
  • 전부 다!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4승 2패를 기대했는데, 단 1승밖에 거두지 못한 한주였습니다.
시즌 전에 평균 이상은 되어 보였던 투수진 부진 탓이 가장 큽니다. 4선발 최원준 선수는 3이닝 6실점의 부진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고, 3선발 곽빈 선수도 3이닝 6실점에 그쳤습니다. 땜빵 선발이자 롱맨으로 투입된 박신지 선수도 기대 이하였으며, 중간 계투진도 꼬박꼬박 실점했고요. 이승엽 감독에게도 큰 문제가 있습니다. 지는 경기에 필승조인 최지강 선수를 멀티 이닝 연투시키고, 박치국 선수와 정철원 선수를 출첵시키는 운영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시즌은 깁니다. 길게 봐야죠. 김호준 선수도 나쁘지 않았고, 최종인 선수도 실점은 했지만 씩씩하게 공을 뿌리는데 왜 추격조 개념의 활용을 하지 않는 걸까요? 필승조를 아꼈더라면 일요일 경기는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타선 역시 상대 에이스급 투수에게는 꽁꽁 막히는 등 좋지 못했고, 잦은 실책도 패배에 일조했습니다. 특히 강승호 선수의 실책은 거의 대부분 실점과 연결되는 느낌이에요. 아무리 타격이 좋아도 2루수로 계속 기용해야 할 지 의문이 듭니다.
반대로 수비 때문에 뽑았다는 외국인 야수 라모스 선수는 극도의 타격 부진으로 작년의 로하스 선수보다도 빠르게 2군으로 향했습니다. 어이가 없네요.

이번 주는 한화와 LG로 이어지는 홈 6연전입니다. 올 시즌 분위기가 다른 한화는 직전 연패로 전력을 다할테고, LG는 지금 두산 보다 몇 수 위의 강팀이지요. 어려운 경기가 예상됩니다. 양의지 선수가 복귀하고 바닥을 친듯한 양석환 선수가 올라오는 타선은 그런대로 괜찮은 모습이지만 기대가 크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비빌만한건 알칸타라, 브랜든 선수가 투입될 수요일, 목요일 경기 뿐입니다. 최원준 선수 대체 선발도 애매하고.... 여러모로 암울하네요.
그래서 이번 주 예상은 1승 5패입니다. 2승 이상을 도무지 할 것 같지 않군요. 차라리 계투진도 홍건희, 김강률, 김택연 선수가 복귀할 때까지 무리시키지 말고, 알칸타라, 브랜든 선수에게도 휴식을 준 뒤 주말 경기에 출격시켜 LG전만이라도 이닝 시리즈를 가져가는게 팬에게는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우승할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런 글을 쓰면서도 저는 야구를 보겠지요. 제발 무리하지 말고, 부상 선수가 발생하지 않기만 바랍니다. 이승엽 감독님, 시즌은 깁니다. 그럼 허슬~ 두!!

2024/04/07

살렘스 롯 상/하 - 스티븐 킹 / 한기찬 : 별점 2.5점

살렘스 롯 - 상 - 6점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황금가지
살렘스 롯 - 하 - 6점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황금가지

1975년 9월, 소설가 벤 미어스는 어린 시절 머물렀던 메인 주의 외딴 마을 살렘스 롯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귀신들린 마스튼 저택을 소재로 한 작품을 쓰기 위함이었다.
벤은 소설을 쓰며 예쁜 마을 처녀 수잔과 사랑에 빠지며 마을과 점차 융화되었지만, 대니와 랠피 글릭 형제의 기묘한 실종과 죽음을 필두로 마을에 서서히 죽음이 찾아왔다. 알고보니 마스튼 저택에 흡혈귀 발로우가 숨어들어 마을 사람들을 흡혈귀로 만들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벤은 영어교사 매튜, 의사 지미, 캘러한 신부, 그리고 용감한 소년 마크와 힘을 합쳐 흡혈귀가 된 수잔, 그리고 발로우까지 없애는데 성공했지만 매튜와 지미는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을 전부 없애지 못한 벤은 마크와 함께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신문을 통해 결국 살렘스 롯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다는걸 알게 되었다.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의 초기 대표작. 1975년 발표되었으니 거의 반백년이 지난 작품이네요. 고전적 흡혈귀가 현대 미국에 되살아나 작은 마을을 지배하려 하며, 이들을 평범하지만 용감한 일련의 사람들이 뭉쳐 물리친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류의 작품의 원조라 할 수 있겠지요. "피안도"가 갑자기 떠오르네요.

지루한 앞부분을 지나 대니 글릭이 죽은 다음, 마을 사람들이 서서히 흡혈귀가 되면서부터 흥미진진해집니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흡혈귀가 되는게 아니라 서서히, 한, 두 명씩 흡혈귀가 되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상세하면서도 긴장감을 자아내는 덕분입니다. 매튜 선생님 집 2층에서 마이크 라이어슨이 흡혈귀임이 밝혀지는 장면, 지미와 벤 앞에서 마조리 글릭의 시체가 되살아나는 장면, 그리고 수잔이 마크와 함께 마스튼 저택을 찾아갔다가 흡혈귀가 되고 마는 장면 등이 그러합니다.
햇빛을 보면 안되고, 십자가에 약하며 말뚝을 박으면 죽는다, 집 안으로는 초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는 등의 고전적인 흡혈귀 설정을 그대로 가져온 것도 좋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정보를 위해 분량을 할애하지 않은건 영리한 판단이었어요. 작가만의 새로운 설정 - 흡혈귀에 물려도 곧바로, 제대로 치료받으면 흡혈귀가 되지 않는다! - 도 작품 속에 잘 녹아들고 있고요. 
매튜 선생님이 마이크 라이어슨 사건을 꾸며냈다는걸 억지로 추리하는 장면 - 선생님이 마이크 라이어스를 죽이고 말도 안 되는 흡혈귀 이야기를 꾸며냈다. 망창도 속임수를 써서 떼어냈다. 수잔이 아래층에 있는 동안 복화술을 써서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마이크의 반지를 거기다 놔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이야기를 그렇듯해 보이게 하려고 스스로 심장마비에 걸렸다. - 이라던가, 발로우의 은신처가 어디인지를 '분필 가루'라는 단서로 추리하는 식의 추리적 요소들도 재미를 더해줍니다.
오래전 작품이지만 현대적인 부분도 눈에 뜨이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마을 치안관 파킨스 길레스피 였습니다. 마을에 위험이 닥쳤다는건 알고난 뒤 곧바로 뒤도 돌아보지않고 도망쳐버리는데, 시대를 반세기는 앞서간 캐릭터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50년이 넘은 작품답게 현 시점에서 보기에는 다소 지루하고 낡아빠진 부분도 많습니다. '살렘스 롯' 마을과 주요한 마을 사람들에 대해 설명하는 초, 중반부가 대표적이에요. 마크가 학교 짱이 된다던가, 보니와 코리의 불륜이라던가, 에바 밀러가 위젤과 정을 통하고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캐릭터마다 각각 설정과 서사를 쌓아나가는 식인데, 대체로 불필요했습니다. 너무 장황하기도 했고요.
게다가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것 치고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손쉽게 흡혈귀가 되어버린다는 것도 허무했습니다. 끝맺음도 분명치 않은데, 최소한 발로우가 마을에 발을 디디는데 큰 역할을 한 악덕 부동산 업자 래리 등 몇몇 인물들은 최후의 순간이 어땠는지 더 상세히 보여주는게 좋았을겁니다.

흡혈귀 퇴치단(?) 파티 구성도 애매한 편입니다. 흡혈귀에 대한 전문 지식은 매튜 선생과 마크가 겹치고, 행동에 나서는 성인 남성은 벤과 지미가 겹치기 때문입니다. 매튜는 정신적 지주(?) 역할 외에는 하는게 없기도 하고요. 캘러한 신부가 발로우와의 일기토에서 바로 패배한다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도 황당해요. 십자가 없이 공정하게 승부했다면 이길 수 있었다? 그런 류의 설명은 아예 없었는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대부분의 경우 십자가는 무용지물인거 아닌가요? 또 발로우가 보여준 존재감과 능력에 비해 벤의 말뚝으로 죽는다는 최후는 시시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수잔이 흡혈귀가 된 뒤, 말뚝으로 그녀를 없애는게 아니라 저택을 불태워버릴 생각을 진작에 하지 않은 것도 이상했어요. 그래도 남들이 보기에 살인보다는 방화가 모양새가 낫지 않았을까....

이런 단점들 때문에 시대를 초월할만한 작품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04/06

파노라마 섬 기담 - 에도가와 란포 / 박용만 : 별점 2점

에도가와 란포 파노라마 섬 기담 - 4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용만 옮김, 이성규 감수/시간의물레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상 속에서 유토피아를 그리는게 취미인 인기없는 작가 히토미 히로스케는 어느날, 친구로부터 대학 동창인 거부 고모다 겐자부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모다와 히토미는 쌍둥이처럼 닮았었기에, 히토미는 자신이 고모다가 될 계획을 꾸몄다.
계획이 성공해서 고모다가 된 히토미는 고모다가의 돈을 이용하여 공상하던 자신의 유토피아를 실제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모다의 아내 치요코가 히토미의 정체를 눈치챘고, 히토미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살해할 결심을 굳히는데....


에도가와 란포의 대표작 중 한 편. 1926년에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입니다. 중편 분량으로 히토미가 고모다가 되기 위해 벌이는 작전을 그린 전반부, 고모다의 재산으로 꿈꿔오던 유토피아를 만든 뒤 그곳을 아내 치요코와 둘러보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전반부는 꽤 재미있습니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이었던 변장, 자살로 위장하여 히토미 히로스케의 존재를 없앤 방법, 원래 있었던 고모다의 시체를 파낸 뒤 옆의 다른 묘에 묻어 은닉한 방법 등 모두 비교적 현실적이면서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간질 발작으로 사망한 뒤 다시 살아난 사례를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설득력도 높고요. 에도가와 란포 특유의 공포심을 자아내는 묘사도 볼거리입니다. 특히 고모다의 시체를 파내는 장면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렇잖아도 공포스러운 상황을 자극적으로 풀어나가는 솜씨는 역시다 싶더군요.
다만 아무런 조명도 없는 칠흙같은 밤에 무덤을 파내어 시체를 꺼낸 뒤 옆의 무덤에 파묻어 깜쪽같이 위장한다는건 실제로는 무척 어려웠을겁니다. 약간 부가적인 설명이 덧붙여졌더라면 좋았을겁니다.

반면 후반부의 유토피아(아마도 '파노라마 섬')를 치에코와 둘러보는 장황한 묘사는 별로였습니다. 상상력만큼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글로 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그림이 곁들여지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설득력도 낮습니다. 아무리 눈의 착각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넓이 자체를 혼돈할 만큼의 조작을 자연 환경에서 구현했다는건 어림반푼어치도 없지요. 게다가 이 공간을 많은 사람들까지 고용하여 채웠다는건 더욱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숙식 및 기본 생활에 대한 설명이 전무한 탓입니다. 차라리 제목처럼 거대 파노라마를 만들었다고 하는게 말이 되었을겁니다.
치에코를 살해한 뒤 기둥에 숨겼는데, 이를 탐정 기타미 고고로(아마도 아케치 고고로?)에게 들킨 뒤 자살한다는 결말도 급작스러웠으며, 기타미 고고로가 고모다의 정체가 히토미라는걸 눈치챈건 히토미가 과거 습작처럼 투고했던 습작 때문이었다는건 억지스러웠어요. 쌍둥이처럼 닮았다는건 대학 동창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을테니, 이런 증거를 내세울 필요도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별점은 전반부만 따로 떼 보면 2.5점, 전체 통합해서는 2점입니다. 발표 당시 시점으로 본다면 볼만한 가치가 충분했겠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할만한 가치는 없습니다. 다양한 상상력으로 구현한 이상한 공간들을 수없이 접한 시대니까요.

2024/04/05

명탐정의 창자 - 시라이 도모유키 / 구수영 : 별점 2점

명탐정의 창자 - 4점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트릭, 진상 그리고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탐정 우라노 큐와 조수 와타루(별명 하라와타(창자))는 기묘한 화재 사건 조사를 위해 기지타니 마을로 향했다. 진범을 체포했지만, 우라노 큐는 상처로 죽고 말았다. 기지타니 마을에서 행해졌던 소나 의식 때문에 과거 흉악범들이 '인귀'로 부활했는데, 그 중 한 명에게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저승에서 인귀들을 잡기 위해 과거의 명탐정 고조 린도를 우라노 큐의 몸에 부활시켰다. 고조 린도는 와타루와 함께 인귀들을 없애기 위해 활약하게 되는데...


2023년 국내 추리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던 "명탐정의 제물"의 작가 시라이 도모유키의 신간입니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었습니다.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명탐정의 제물"보다는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에 가깝습니다. 추리적인 장치가 엄청나게 많지만, 기본적으로 '특수 설정'이 바탕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그래도 망작에 가까왔던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특수 설정이 이야기의 핵심 장치로 작용하고는 있지만, 추리와 트릭은 특수 설정과 거리를 두고 비교적 합리적으로 설명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딱 한 가지, 인귀가 상대를 물고 뜯어 타액과 피를 접촉하는 방법으로 혼을 옮길 수 있다는 특수 설정만 핵심 트릭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에요. 이 트릭도 정보 제공은 충분하고 나름대로 합리적이라 나쁘지 않았고요.

인귀들이 벌인 사건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일종의 연작 단편 형식이라 많은 사건이 등장하는데, 범인이 과거의 기억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인귀이기 때문에, 동기가 없어서 주어진 단서만 가지고 추리해야하기 때문에 '추리 퀴즈' 느낌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래처럼요.

1. 기지타니 마을 사찰 간노지 화재 사건.
Q : 청년 6명이 죽고 한 명이 중태에 빠졌다. 피해자들은 묶여 있지도 않았고 별다른 상처도 없었는데, 왜 화재 당시에 잠겨 있지도 않았던 본당에 머무른 채 죽음을 맞이했을까?
A : (우라노 큐의 추리) 방화를 이용하여 알리바이를 만든 뒤, 화재 현장에서 절도를 했던 자료관장 로쿠구루마 다카시가 범인이었다. 청년들은 마을에 원한이 있는 무나카타 다다시의 후손 스즈무라에게 이끌려 '인귀'를 불러내는 소나 의식에 동참한 뒤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졌었다. 이를 본 로쿠구루마는 청년들 지갑을 훔친 뒤 그들에게 등유를 붇고 불을 붙이고 도주했다. 증거는 로쿠구루마가 최근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던 것 등.
2. 아예 사다 사건
Q : 1936년, 애인 이시모토를 살해하고 국부를 잘라 달아났던 아예 사다 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
A : 80년 전, 이시모토를 살해했던건 명탐정 고조 린도였다. 원래 고조 린도를 끌어들여 살해하려던 이시모토와 아예 사다의 계획이었다. 아예 사다가 국부를 처음에 신문지로 감싸고 있었지만, 체포되었을 때 지저분한 잡지 종이로 감쌌던게 증거. 처음에 신문지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나중에 2층에 있던 이시모토로 부터 절단한 국부를 건네받다가 떨어트려 지저분해진걸 감추기 위해서였다.
3. 농약 콜라 사건
Q : 클럽 D-Mouse에서 독이 든 음료를 마신 손님들이 쓰러져 한 명이 죽고 세 명이 중태에 빠졌다. 범인은 현장을 촬영하던 '아리스'의 눈을 피해 어떻게 빠져나갔을까?
A : 범인은 사건 당시 술 취했던 친구를 부축해 주었던 '어깨녀'였다. 인귀 '체셔'가 미리 여자 하나를 술에 취하게 만든 뒤, 그녀에게 혼을 옮긴 뒤 죽은 '체셔'를 부축해서 옮기는 척을 했던 것이었다.
4.쓰케야마 사건
Q : 마을 자료관에 보관하고 있던 칼(마도 아카고코로시)을 손에 넣기 위해 자료관을 습격해 직원 니시나를 살해하고, 고조 린도에게도 중상을 입힌 무카이 도키오는 누구인가?
A (와타루의 추리) : 78년 전 무카이 도키오는 칼을 두 자루 준비했었다. 칼은 기지타니에서 마카타로 향하는 도중에 숨겨두었었다. 비가 오는 오늘, 산에 올라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내려온건 사냥꾼 이구치 미쓰오 뿐으로 그가 범인이다.

퀴즈들에 대한 증거, 단서는 모두 공정하게 제공되어 정답에 대한 설득력은 높습니다. 시라이 도모유키의 작품답게 퀴즈별로 함께 제시되는 '오답' 추리들도 볼거리입니다. 오답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간노지 화재 사건에서 와타루의 오답 :
사건은 자연 재해였다. 사건 당일, 경내에 곰이 나타나 청년들은 창문이 없는 본당으로 이동했었다. 현장에 '오고령'이라는 종이 그걸 증명한다. 종으로 곰을 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패해서 냄새로 곰을 쫓기 위해 몸에 등유를 끼얹었는데 하필 본당 화염보주에 벼락이 내리쳐 화재가 나 모두 죽고 말았다.
2, 쓰케야마 사건 :
와타루의 오답 : 무카이 도키오는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정면 입구를 이용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지팡이가 떨어져 있었다. 즉, 창문으로 들어올 수 없고 지팡이를 사용하던 환자 스즈무라가 범인이다(칼을 손에 넣은 뒤 칼을 지팡이로 이용했다).
고조 린도의 오답 : 무카이 도키오가 정면 입구를 이용했던건 와타루들과 똑같이 통나무 다리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료관 TV가 부서지지 않은걸 보면 범행 시각은 7시 이후이다. 이건 고조 린도가 습격당한 이후이므로, 범인은 자료관에서 칼을 손에 넣은게 아니었다. 칼은 와타루의 애인 미요코로부터 건네받았다. 미요코는 야쿠자 보스의 딸로 칼을 구하기 쉬웠다.

이런 사건들에 대한 추리 외에도 농약 콜라 사건 범인은 당시 증거를 보면 왼손잡이였는데 체셔는 그렇지 않았았기 때문에, 체셔는 보석점 세이긴도에 나타나 후생성 직원을 가장하여 직원들에게 독약을 먹인 사건의 범인이었다!라던가, 와타루가 어린 시절 히로세 순경에게 폭행당했다는걸 밝혀내는 우라노 큐의 추리, 아리스가 간호사로 대학 병원에서 일한다는걸 맞춘 방법에 대한 추리 등 전체적으로 소소한 추리들이 가득합니다. 모두 공정한 정보 제공 및 합리적 추리라는 본격물의 기본 전개를 잘 따르고 있고요.

과거 흉악범들이 소나 의식으로 '인귀'로 부활한다는 설정을 통해 예전 실제 범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치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모두 조금씩 각색되어 있는데, '아예 사다 사건'은 영화 "감각의 제국"으로 유명한 '아베 사다 사건'이 원조이고, '농약 콜라 사건'은 아마도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쓰케야마 사건은 "팔묘촌"에서도 인용했던 '츠야마 사건'이 원조일테고요. 하지만 이 설정이 유치하다는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의 유명인이 부활해서 뭔가를 한다는건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설정에 바탕을 둔 이야기 전개도 대충 넘어가는게 너무 많아요. 대표적인게 모든 사람들이 '저 사람은 우라노 큐로 보이지만, 사실은 되살아난 고조 린도다'라는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경찰 고위 간부까지 이를 쉽게 믿는다는건 말도 안되지요. 와타루의 여자 친구 미요코의 아버지가 야쿠자 보스라는 것도 비현실적인 설정이었고요. 고조 린도 역시 독특함을 찾기 힘듭니다. 건방지고 철없는 천재 탐정의 스테레오 타입에 불과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모두 좋은건 아닙니다. 추리를 정답에 끼워맞추고 있다는게 가장 큰 문제에요. 고조 린도를 살해하기 위해 국부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는 아예 사다 사건부터 황당하기 짝이 없어요. 이 논리면 '피를 많이 흘리고 죽은 척'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상처 부위는 '국부'일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봐도 '국부를 자른다'가 '고조 린도를 죽인다'보다 앞 선에 있는 이유처럼 보이는데 이래서야 말이 안되지요. '괴상한 성적 취향'으로 대충 수습하고 넘어가기는 어렵습니다.
고조 린도의 추리도 억지가 많습니다. 아리스가 현장에 돌아왔다고 바로 그녀가 관계자라는걸 알아챈 것, 쓰케야마 사건에서 미요코가 공범이라고 추리한 것 등이 그러합니다. 고조 린도 대신 팬인 긴다이치 고스케를 부활시키기 위해 고조 린도를 죽이려 했다는 미요코의 동기부터가 설득력이 전무한 탓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추리'의 재미는 잘 살리고 있지만 단점도 많습니다. "명탐정의 제물"보다는 확실히 못했습니다. 만화로 각색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2024/04/03

언더커런트 - 토요다 테츠야 / 강동욱 : 별점 2.5점

언더커런트 - 6점
토요다 테츠야 지음, 강동욱 옮김/미우(대원씨아이)
도요다 데츠야의 연작 단편집. 작년에 영화화까지 되었던 유명 작품이지요.
카나에가 사라진 남편에 대해 조사해 나가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 대해 사실 '아무것도 몰랐다'는걸 깨닫는 과정,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의 소소한 일화와 호리의 여동생과 얽혔던 과거 등이 함께 펼쳐집니다.

잔잔하고 여운이 남는 전개는 인상적이며, 독특한 유머도 눈길을 끕니다. 작가의 다른 단편집 "커피 시간"에도 등장하는 기묘한 탐정 사카모토의 활약이 특히 돋보였고요. 가라오케에서 상담을 하다가 노래를 부르면서 카나에의 감정을 끌어낸 뒤 눈물을 쏟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을 달래는 '치유계' 탐정으로서의 진면목을 한껏 과시주는 덕분입니다. 말 없이 떠난 남편을 찾는 의뢰인을 위해 부르는 노래가 다운타운 부기우기 밴드의 "배신자의 여행"이라는 절묘한 선곡도 좋았어요.
그리고 유원지에서 카나에를 만나 이런저런 지시를 하는데, 알고보니 그녀에게 붙은 미행을 떼어내기 위함이었다는 것 처럼 탐정으로서도 유능한 인물이라는걸 보여주는 장면도 기억에 남네요. 

하지만 카나에와 남편 이야기 외에 수수께끼의 남자 호리와 호리의 여동생, 그리고 카나에의 관계까지 한 권 안에 모두 담아내어 마무리하는건 무리였습니다. 결말도 급작스러웠고, 카나에가 물에 잠기는 꿈을 꾸는 것을 현재와 연결시키는 전개도 억지스러웠고요. 과거의 사건을 막지 못한 죄책감인지, 현재의 스트레스가 터져나온 건지도 애매했습니다. 호리 여동생 이야기는 빼고 마을 사람들과의 유쾌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채워나가는게 더 좋았을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4/04/02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 나들이

지난 목요일 (3월 28일), 오랫만에 전시회 관람을 갔습니다. 화창하면 더 좋았겠지만, 봄비가 살짝 오는 날이었습니다. 그래도 덥지 않고 선선해서 걷기에 딱 좋았습니다.

언제나 방문하면 찍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도 한 컷 찍고,
첫 번째 목표인 'MMCA 과천 프로젝트 2023 : 연결' 전시로 입장하였습니다. 3층과 4층의 실내외와 옥상 정원을 잇는 무료 전시로, 과천의 꽃과 생태계를 중심으로 둘러보면서 '힐링'하는 경험 제공이 목적으로 보였습니다. 무언가를 자세히 관찰하고, 깊게 사유한다기 보다는, 음악과 함께 둘러보며 쉬어가는 장소라는 느낌이었거든요.
공간의 구성과 연출은 좋았는데, 한 가지 아쉬웠던건 '정원'이라는 전시의 컨셉에 맞는 계절에 방문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확실히 봄이 되어 꽃이 만발했을 때 왔어야 했어요. 꽃과 나무와 함께하는 전시였으니까요.
그래도 일상 속에서 힐링하며 휴식과 여유를 즐기기에는 충분히 좋은 전시였다 생각합니다. 다음 번, 꽃이 피는 주말에 한 번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이어서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도 함께 관람하였습니다.
이 전시는 기하학적 형태, 원색의 색채,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추상 미술의 경향이 한국 미술에서 언제 시작되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연대순으로 상세하게 알려주는 전시입니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를 아우르기에 굉장히 많은 작품이 소개되어 눈이 즐거웠습니다. 유명한 김환기, 박서보 화백의 작품은 물론이고 당대를 풍미했던 여러 작가들의 작품이 가득한 덕분입니다.
또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구상적인, 의미가 있는 형태에서 시작하여 완전한 평면 추상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던가,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옵아트 등의 사조에 한국적 색깔을 더한 작품들도 있는 등 볼거리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하는건, 항상 궁금했었던 추상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모호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론은 '별 차이가 없다'입니다.. 훌륭한 평면 디자인은 그 자체가 훌륭한 추상 미술이기도 하다는걸 많은 작가분들께서 증명해 주셨거든요. 작가분들 중에는 회화와 디자인 양쪽에서 활약한 분도 계시기도 하고요. 저도 UX 디자인을 하며 평면 디자인에 살짝 발을 걸치고 있는데, 나름 예술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도 될 것 같아서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이렇게 많은걸 알려주며 내용과 구성 모두 훌륭했던, 굉장히 좋은 전시였습니다. 한국의 추상 미술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관람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